한여름 밤



   조치원 내창천 곁 침침한 돼지 목살 집엘 들어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선풍기에 손을 얹은 채
   주인에게 말대답을 하고는 내려다보니, 그
   낡은 선풍기, 헤드엔 덮개도 없이 강풍으로
   맹렬히 돌고 있더라고. 주인이 한마디 더 하고
   내 손이 몇 센티만 아래로 미끄러졌다면 피범벅
   됐을 거야. 놀랐어, 놀라긴 했는데 고기를 구우며
   늦는 학생들을 기다리면서도, 어떻게 사람들
   드나드는 길목에 저걸 덮개도 안 씌우고
   틀어놨는지 이해가 안 되고, 저러다 누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주인은 대체 무슨 경을 칠 건가
   싶어서, 일어나 그 선풍기 꺼버리고 자리로 왔다.
   고기가 알맞게 익자 도착한 학생들에게 선풍기
   얘기를 하며,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무감각,
   무신경할 수 있느냐고, 목살이 목에 걸린 듯 연신 얼굴을
   찡그렸다. 두 학생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다
   건너다보니, 그 선풍기 또 웽웽 잘만 돌아가고 있고,
   밤은 후덥지근하기만 해서 서둘러, 이차 가자며 먼저
   일어섰다. 저 집엔 다신 안 간다, 술기운 누르며
   비틀대고 있자니, 조만간 어디 농가 주택 구해 텃밭
   일구며 살자던 다짐이며, 몸 부려 땀 흘리고 사는
   꿈인지 현실인지가 생각났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어쩔 뻔했나? 아니, 왜 나는 내 잘린 손가락들은 잊어먹고
   선풍기 걱정만 늘어놓았나? 살 만큼 산 건지 철딱서니
   없는 건지,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던 한여름 밤이었다.





   청송



   병든 어머니 두고 청송 갔다
   점곡 옥산 길안 사과밭 지나 청송 갔다
   끝없이 떨어져 내리는 사과 알들을
   계속 놓치며, 푸르른 청송 갔다
   주산지를 물으며 청송 갔다
   주산지를 거닐며 빗속에 청송 갔다
   동해를 향해 한밤중,
   태백산맥 넘어 굽이굽이 청송 갔다
   병든 어머니 찾아 푸르른 청송 갔다
   청송 지나 계속 눈 비비며 청송 갔다

이영광

자취하던 십 대 이십 대 때처럼 가끔 옷을 꿰매어 입는다. 침침하다. 곤궁해 보이는 건 실은 곤궁하지 않다. 철저하게 생각해보면, 알게 된다.
똑똑한 얘기들은 들을 게 없다.
막막하지 않은 말들은 들을 게 없다.
입장이란 건 내일 생각하면 된다.
입장 이전의 혼돈에 오래 머물기.

2021/12/28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