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아이들을 아세요



   바리스타가 진한 여름 뜨거운 피아노 소리 내리고
   베란다에 사는 어른들은 짧고 뚱뚱한 스투키에다 건반 닮은 모자를 씌워주었지
   도, 레, 미, 괜찮아요 우리 모두 새하얗고 반듯한 치열을 가진 걸요

   연보랏빛 하바리움 속 헤엄치는 눈부신 아이들을 아니,
   장마철 흩날리는 꽃잎들을 닮았어
   매년 여름 매미 소리처럼 차르르 흩어지던 내 안의 부끄럼 많은 아이들

   비가 쏟아지면, 어릴 적 예방 주사 맞은 자국이 따끔거렸어
   나는 여름이 싫었고 한꺼번에 쏟아지는 법을 몰라서
   온종일 얕은 빗방울처럼 덤벙댔는데

   지평선 너머 가득 번지던 연보랏빛 수국들이 있었지
   빗속에서 내 발가벗은 아이들 살고 매미와 맹꽁이들 첨벙대며 사는 곳
   향기로운 소원을 빌고 종이꽃 띄우며
   즐거웠습니다, 스투키가 한 뼘씩 자라면 다시 돌아올게요

   나도 내 안에 첨벙대는 주름진 매미의 내력을 알아,
   매번 첫 번째 여름을 사는 매미 소리를 듣기 위해
   아침마다 맹꽁이 닮은 딸기에도 뜨거운 귀를 갖다 댔지, 낮달처럼 간지러운 꿈들
   자전거들은 어린 도마뱀처럼 재빠르게 삑삑거리며 뒷산 위로 날아올랐고
   어린이 약국 앞으로 분홍색 코끼리들이 코로 물을 흩뿌리며 걸어가고 있었어

   매일 밤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들이
   퐁당퐁당 투명한 피아노 소리로 젖어들고

   커다란 얼굴을 털며 흔들흔들 웃어대던 수국들,

   우리 모두 한때는 낮달 속에서 첨벙거리는 못생긴 이티였을지도 몰라
   
   수국이 가득 핀 하바리움을 아세요?
   머리가 동그랗고 치열이 고른 아이들을 알아,
   하늘을 나는 자전거에도 코끼리 약국 앞 사거리에도
   매미 소리 나는 베란다에도 꽃잎처럼 반짝이며 살고 있는데





   낯선 태양과 사냥개들의 도시



   파도에 샛노란 태양이 떠밀려온다 살아 있음을 발각당한 것처럼,
   계단 위로 탕탕 빛나는 총성 울리고 아이들은 살점이 뜯겨나간 철로 위로 해바라기를 던진다 구름들은 기도하는 송곳니를 닮았지
   모두 예언된 일들입니다 갈림길에 설 때마다 은쟁반을 닦고 꽃점을 보겠지요
   사랑하기 위해 북북 뜨거운 계절을 닦아내는 사람들, 유리창 속 비행기는 웅웅거리며 새파랗게 이륙할 준비하고
   서서히, 떠오른다

   우리는 길들여진 사냥개들처럼 여기에 있어,
   우주 속에서 서로의 새하얀 꿈을 핥으며


   손을 잡는다
   온몸의 비늘 번쩍이는 도시는 굶주린 악어떼처럼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지
   안녕 안녕, 싸늘한 유리 빌딩들, 검고 번들거리는 눈동자들

   ─모두 갓 태엽을 감은 여름날 인공의 이야기였다


   2

   발밑으로 무수한 톱니바퀴들의 규칙적인 소리

   등불을 켜고 불온한 정원 속을 산책하면 온통 개의 눈동자를 닮은 회색 장미들 쏟아지고
   팔랑팔랑 그넷줄에 감겨 피어난 동화책의 오후 속에도 우리는 머리카락 흩날리며 살아 있었다 싱싱한 두 뺨 상냥하고 동그란 오렌지빛 목소리들, 눈부시게 타오르다, 화르르, 번진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서랍 속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를 닮았지

   흔들리는 잇새로 자기 파괴적인 노랫말처럼 흘려보낸 나날들

   우리는 애써 커튼을 열친다 벗어날 수 없는 새벽의 습관처럼
   아무도 없는 서재에 앉아 이 낯선 오늘에도 아름다운 소제목을 붙인다
   당신의 불완전한 망막에도 뜨거운 피가 고여 있는 것만 같아
   연한 입술과 약 냄새, 파도가 칠 때마다 멀리 발작적인 뱃고동 소리

   예언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여름에도 불완전한 꽃이 피겠지요,
가만히 속삭여보며

   사랑하는 오늘을 하늘하늘 꽃잎처럼 날려보낸다
   샛노란 바다 냄새 밴 동화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컹컹 탄환처럼 뜨겁게 내짖는 소리,
   또다시 사냥개들 떠돌며 살아 있는 도시로 새로운 유리창을 내야지

손연후

살아 있다는 건 늘 아름다워.
오늘분의 슬픔을 밝혀줄 커다랗고 상냥한 등불이 필요해.
하지만 여전히 시는 잘 모르겠고, 오늘을 살아가는 건 너무 어렵다.

2022/07/26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