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



   아무래도 이제는 상류를 찾아 떠나야지 물가에 가니 물이 떠내려오고 있고

   그건 우리가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사파이어, 더피, 클로버, 레터프레스, 로미오, 라디오미터……
   그런 것들을 건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팔을 뻗어서. 아니, 아니, 팔 말고. 날갯짓으로. 발톱으로, 집게로, 지팡이로

   누가 자꾸 죽지 말라고 해서 죽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다고 또 잘 살아가지는 못하고 있고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상류도 멀었고

   그래, 죽이지 마, 얘들아, 일단 죽이지는 말고―

   헤엄칠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입고 온 옷을 벗었다. 맨몸은 죄 다르게 생겼다 날아오거나 기어오거나, 바퀴와 의자, 혹은 네 발 또는 두 발, 세 발로 매끄럽고 거칠고 단단하고 물컹거린다.
   
   어쨌든. 모조리 상류로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만 잘못한 게 아니니까.

   지나치는 아기 나무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겼네

   누군가는 연약한 것들만 골라 뽑고 자르고 불 지르고 돌팔매질하니,
   상류에는 그런 것들이 많다지?

   부드러운 털과 살, 가죽과 근육, 뼈와 내장을 더듬으며 조금 울다가

   각자 가진 이름의 수를 세어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그런 이름이 있는 줄도 모르고.





   기제



   봐, 이 여름. 꼭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덥지 않고 슬프지도 않고 사랑 없고
   돌봄.
   있을까 없을까

   내다본 풍경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지상에 걸친 낮고 좁은 창을 열고

   열린 문을 흐리게 더 빤하게 활짝

   고양이 모습의 유령 한 명이 들어온다!

   뒤를 이어 버려진 유령 개 한 명
   개미를 등에 업은 개미 유령.

   총 세 명.

   아직, 더

   날개깃 듬성듬성한 비둘기 유령 한 명

   어디를 뒹굴다가 온 빛들일까
   딱딱한 살의가 벽돌을 들고 쫓아오고 있다니

   깔깔 웃으며, 이 악물고, 지껄이며 뇌까리며

   환하게 지친 전면 유리창이라니

   이세계의 여름 방학은 길기도 길다
   이 루프물. 알 것 같다 마지막 기회는 뭘 죽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살려내라고, 어서 살게 하라고

   다정한 마음은 과분하다
   너희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권누리

시와 소설을 씁니다. 대체로 실패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직 아오리를 먹지 못했고요. 여름이 채 끝나기 전부터 여름이 시작될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ps. 저번에 맡겨두신 사랑은 제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찾아가세요. 감사합니다.

2022/08/30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