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눈 같다.
   밖에서 긴 통화를 하고 들어온 세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목이 타는지 단숨에 잔을 비웠다. 등을 벽에 기대고 한동안 말없이 창 너머를 응시했다.
   사람들 벚꽃 참 좋아해.
   넌 싫어?
   슬프잖아. 뭐 저렇게까지 아름답나 싶고.
   좀 그렇긴 하지. 빨리 지니까.
   세진의 눈길은 여전히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저번에 준 펜도 좋더라. 요즘 그걸로 일기 써.
   마음에 든다니 좋네.
   내가 좋지. 문구 회사 다니는 친구 덕에.
   세진은 최근 들어 멍하게 먼 곳을 바라볼 때가 잦았다.
   요즘 많이 힘들어?
   힘들다기보다 어려운 거지. 어렵네, 사는 거.
   이틀 동안 거의 잠을 못 잤다더니 얼굴이 까칠해 보였다.
   얼마 전에, 준수 선배를 봤어.
   세진이 준수 이름을 꺼냈을 때 나는 탁자 벨을 눌러 생맥주를 두 잔 더 주문했다.
   기억 안 나? 둘이 꽤 가까웠잖아.
   잔 바닥에 남은 미지근한 맥주를 털어넣으며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니었구나?
   어디서 봤는데?
   엄마 모시고 건강 검진 갔다가 병원 로비에서. 애가 많이 아프다나 봐.
   그래?
   자세히는 말 안 하는데, 소아암 병동에 있대. 얼굴이 안됐더라. 못 알아볼 뻔했어.
   맥주가 나오자마자 나는 연거푸 몇 모금을 들이켰다.
   술이 고팠어?
   날이 좋잖아.
   세진과 나는 동시에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천변 산책로를 따라 벚나무가 하얗게 늘어서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무 아래 멈춰 서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바람결에 벚꽃 잎들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웃긴 거 같아.
   세진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머리 위 조명등 때문에 숙인 얼굴이 한층 어둡게 보였다.
   뭐가?
   세진이 잔 속 거품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예전엔 나 빼고 다들 영화판에 있을 줄 알았거든. 준수 선배도 그렇고. 근데 나만 있네.
   세진과 나는 이자카야에서 두 시간 정도 더 맥주를 마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예전만큼 오랫동안 수다를 떨지 않게 되었다. 세진과 내가 좀더 각자가 되었다고 할까. 함께 살던 때만큼 밀착되어 있지 않고 속한 세계가 겹치지 않을 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가 문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의 회계팀 사원에서 부장이 되는 동안 세진은 감독 지망생에서 영화감독이 되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세진과 내가 세상을 체험하는 감각 자체가 애초부터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세진이 132색 색연필이라면 나는 48색인 것 같달까. 내가 가져본 적 없는 색깔과 꿈꿔본 적 없는 세계를 나는 세진을 통해 경험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곁에서 세진을 바라보는 내 감정은 만개한 벚나무를 올려다볼 때와 비슷했다. 가질 수 없기에 동경했고 스러져버릴까 봐 애틋했다.
   세진과 나는 이자카야에서 나와 벚꽃이 떨어져 해끗대는 산책로를 걸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서두르지도 않았다. 역 입구에 서서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급히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세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세진과 내가 우리의 오랜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있다는 느낌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4월 초의 포근했던 밤, 그날도 나는 세진에게 준수와 나 사이의 일을 끝내 털어놓지 못했다.
   준수. 기억한다. 기억하고 있다. 늘.

   세진과 나는 스무 살 여름부터 5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같이 지내던 사촌 언니가 인천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면서 방 하나가 비게 되었고 그 소식을 전하자 세진은 반색했다.
   내가 들어가도 돼?
   월세를 아낄 수 있고 버스로 다섯 정거장이면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나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에 세진은 기뻐했다. 기대감에 찬 세진의 눈을 마주하자 나는 평소와 다르게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같이 살기로 얘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뒤늦게 덜컥 겁이 났다. 6학년 때부터 가장 가까운 사이긴 했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기간보다 더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봄에 서울로 올라온 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녔고 그사이 세진은 방학 때 두어 번 서울을 다녀갔다. 연락을 자주 하긴 했지만 세진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몇 번 만나지 못했다. 그런 우리가 같이 사는 건 도리어 관계에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이 실망하고 멀어지게 된다면 내가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다. 반면 세진은 우리가 함께 사는 일에 별걱정이 없어 보였다. 내 우려를 내비치는 게 세진을 못 믿는다는 뜻으로 오해될까 봐, 잘되어가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까 봐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1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세진이 이사를 왔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세진의 단출한 살림을 실은 트럭이 집 앞에 도착하자 공교롭게도 눈앞이 흐려질 만큼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졌다. 그 폭우는 마치 페이드인 같았다. 영화의 장면이 전환되는 것처럼 그날로부터 내 스무 살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절을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비 맞은 짐을 세진의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정리하던 저녁, 흠뻑 젖어버린 책들을 냉동실에 넣으며 깔깔거리던 세진과 짜장면과 탕수육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던 선배들. 이사 이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밤늦도록 세진의 방에 모여 영화를 보거나 영화 얘기를 나누던 후배들. 술에 취하거나 늦게까지 촬영이 이어진 밤이면 세진의 방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에 몰래 집으로 돌아가던 동기들. 세진과 동아리 사람들의 등장으로 조용하고 어둑했던 반지하 집에 들어찼던 시끄럽고 반짝이던 것들. 농담과 폭소, 잔뜩 쌓여 있던 운동화와 빈 술병. 책, 모자, 라이터, 우산. 누군가가 두고 간 자잘한 물건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 밖으로 나가는 소리. 수많은 밤과 새벽. 세진을, 그리고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 속에서 나는 일탈과 자유를 맛보았다. 혼자였다면 하지 않을 말, 하지 않을 행동을 해보았다. 스물다섯 살 봄까지 존재했던 그 시공간이 내게는 낯설고 긴 여행과도 같았다.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때면 이 순간을 두 번 다시 겪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언젠가는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어렴풋한 예감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 시공간에 준수도 있었다. 그는 세진과 같은 노어과였고 세진이 2학년 2학기를 맞던 가을에 3학년으로 복학한 선배였다.

   준수는 개성 강한 동아리 사람들 사이에서 첫눈에 띄는 인상은 아니었다.
   선배는 뭐랄까. 좋게 말하면 사람이 참 뭉근해. 나랑은 안 맞아.
   어느 술자리에선가 취한 세진이 준수를 두고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준수는 말수가 많지 않고 목소리도 작은 편이었는데 오히려 그런 면이 이따금 이목을 끌었다. 술자리에서 그가 입을 열면 왁자하게 떠들던 모두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움직임도 크지 않아서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탁자 끄트머리나 구석 자리에 즐겨 앉았는데 그래서인지 뒤늦게 합류할 때가 잦았던 나는 자주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스물둘. 세진은 3학년이 되었고 나는 전문대 세무회계과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1년 동안은 매일같이 실수하고 혼나고 다시 실수하기를 반복했다. 나이 어린 사회 초년생이란 회사 내 공식적인 막내이자 비공식적인 동네북이나 다름없어서 나는 야근을 안 하는 날보다 하는 날이 더 많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토요일에도 나가 잔업을 했다. 하루하루 덮쳐오는 파도를 맞다보니 나는 내가 깎이는 줄도 모르고 깎이고 깎여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 시기에 내게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준 것이 세진과 동아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세진과 절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세진과 내가 사는 자취방에 자주 찾아와 신세를 진다는 이유로 나를 동아리의 일원처럼 대했고 그들이 모이는 자리에 심심치 않게 나를 불렀다. 내게 그들은 선배나 동기, 후배가 아니었지만 나는 세진이 부르는 것처럼 그들을 불렀다. 그래서 준수도 내게 준수 선배가 되었다.
   사원 2년 차에 접어든 봄이었다. 그날도 저녁 늦게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졸고 있었는데 동우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진이 무슨 심사가 뒤틀렸는지 술을 퍼마시고 있으니 와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금요일 밤 대학가는 예상외로 고요했다. 폭풍 전야의 불길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동아리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호프집에 들어서자 가게 안을 울리는 세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영화에 이 사회가 담기는 건데,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 선배는?
   야, 곽세진. 넌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냐?
   동우 선배가 억울하다는 듯 맞받아쳤다.
   나중에 얼마나 창피하려고 그래?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턱을 괴고 있던 세진이 힘없이 탁자에 엎드렸다. 준수가 물컵을 내밀었다.
   너 취했어.
   세진이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저었다. 나는 선배들에게 인사만 건네고 세진을 일으켜세웠다. 준수와 내가 세진의 팔을 어깨에 한쪽씩 걸치고 대로로 나왔다. 세진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세진과 택시에 올랐다. 둘만 타고 가는 줄 알았는데 준수가 앞좌석에 올라타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곧 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밤이라 위험할 것 같아서. 세진이도 많이 취했고. 나는 앞좌석에 앉은 준수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어깨 위로 세진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세진을 침대에 눕히고 준수와 나는 잠시 취한 세진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무엇이 세진을 이토록 취하게 만든 걸까. 4학년을 앞두고 휴학한 세진은 그즈음 자주 폭음을 했다. 갈게. 그가 침묵을 깼다. 집 앞 골목길까지 그를 따라나섰다. 준수가 뒤돌아 나와 마주섰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잠깐 걸을래? 괜찮으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거리에 있는 24시 마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동아리 사람들이 술이나 안줏거리를 사러 곧잘 들르는 곳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밤이었다. 그는 차도와 가까운 쪽에서 걸으면서 내일은 출근하지 않는지, 회사생활은 어떤지, 요즘 뭐가 가장 힘든지 내게 물었다. 나는 그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질문들이 따뜻하게 느껴졌고 그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를 세진의 절친한 친구나 사회 초년생이 아니라 나라는 한 사람으로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내 눈에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그가 완전한 어른처럼 보였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그가 내게 보여주는 관심이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의 물음에 답하면서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 울컥 치솟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불쑥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숨겨져 있던 내 오랜 열등감과 갑작스레 피어난 그에 대한 열망이 한데 뒤섞이며 일어난 멀미 같은 것이었다.
   마트에 다다르자 준수가 따뜻한 캔커피를 사 왔다. 우리는 커피를 홀짝이며 집 반대 방향으로 더 멀리 걸어갔다. 그가 화제를 이어 갔는데 대부분 일상적인 것이었다. 좋아하는 계절, 가수, 책 그리고 영화. 그러다 그가 지난주에 다녀왔다는 촛불 집회 얘기가 나왔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 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지만, 점심시간 상사들의 대화에서 주워들은 것에 내 생각을 조금 보태 그에게 얘기했다. 현 정권에 대한 우려와 미국의 금융 위기에 관해서도. 준수는 간혹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한참 얘기를 늘어놓던 나는 돌연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유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4년제 대학은 너 같은 애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그는 얼굴을 붉혔다.
   미안.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닌데, 말해놓고 보니 좀 그러네. 세진이가 있었으면 한소리 들었겠다.
   준수가 걸음을 재촉했다.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방금 한 말을 곱씹었다. 그가 왜 사과를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4년제 대학은 나 같은 애가 나와야 한다는 그의 말이 당시 내게는 오히려 칭찬으로 들렸고 그가 나를 제법 똑똑한 아이로 봐주었다는 것이 싫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준수의 그 말은 1년 후 내가 사이버 대학에 편입하고 전보다 나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는 데 영향을 주었지만, 수년이 흐른 뒤에야 그의 말속에 일종의 계급 의식이 배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긴 산책을 함께한 이후에도 준수와 나의 거리는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동아리 사람들이 술자리에 나를 부르면 나는 되도록 그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고, 때때로 둘만 남게 되는 순간이면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딱 그 정도였다. 따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나는 일은 없었다. 준수가 단편 영화의 한 장면을 촬영하러 자취방으로 오기 전까지는.

   해 질 때, 여기 빛이 마음에 든대.
   준수가 촬영하러 올 거라는 얘기는 세진에게 전해 들었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 다녀갈 거라고 했다. 가로수가 앙상해지기 시작한 맑은 가을날, 준수가 스태프 일곱과 배우 둘과 함께 자취방으로 왔다. 그가 촬영할 부분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는데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다. 사소한 기척과 느릿한 몸짓, 빛과 침묵뿐이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는 어디를 갔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여자가 해가 기우는 거실에 앉아 있다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남자가 나타난다. 그들 각자의 시간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는다. 둘은 끝내 한 공간에서 만나지 못한다. 그것이 전부였다. 준수는 이 장면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거울〉1)의 오마주를 담았다고 스태프들에게 설명했다. 촬영 마지막 날, 나는 그가 카메라 뒤에 앉아 오랫동안 코끝을 매만지는 모습을 봤다. 평소와 사뭇 다른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촬영은 세 번 만에 끝났다.
   마지막 촬영 후 2주쯤 지나 준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모레 자취방에서 몇 장면 더 찍고 싶다고 했다. 세진에게 물으니 그날은 의선이 혼자 있을 테니 의선에게 물어보라 했다고 그가 사정을 설명했다.
   혼자 가게 될 것 같은데, 괜찮아?
   오세요.
   내 선선한 대답에 그가 멋쩍은 듯 웃었던 기억이 난다.
   준수는 단편 영화를 거의 3년 만에 완성했다. 그 시간 동안 그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제작비가 부족해 촬영이 두어 차례 중단되었고 부친이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이후의 일은 전혀 모른다.
   어떻게 사람이 그딴 식으로 증발해버리냐? 말 한마디 없이.
   준수가 동아리 사람들 모두와 연락이 닿지 않게 되자 세진은 원망 섞인 투로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언제고 꼭 한 번은 다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해가 거듭될수록 동아리 사람들과도 점점 멀어졌다. 다들 각자 살길을 찾아 대학에 남거나 유학을 가거나 취직을 했다. 나는 사이버 대학을 졸업하고 두 번째 직장에서 대리를 달았다. 세진은 졸업 후 무역 회사와 언론사, 출판사를 거치다가 서른을 앞두고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이듬해 세진의 첫 장편 영화가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세진은 전화로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영화에 완전히 코가 꿰이고 말았다며 실없이 웃었다. 영화인을 꿈꾸던 동아리 선배와 동기 중 동우 선배를 빼곤 모두 영화로부터 멀어져갔다. 선배도 몇 년 뒤에는 연예 기획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멀어지지 않는 것, 떠나가지 않는 것은 없었다. 세월만이 묵묵하고 성실하게 우리 곁에 남았다.

   선배들이 너 보고 싶대. 잠깐 와.
   세진의 첫 장편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반년쯤 지난 무렵이었다. 술과 약간의 흥분에 취한 세진의 목소리가 20대 초의 어느 날을 떠오르게 했다. 핸드폰 너머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의선이 온대! 세진이 외치자 익숙한 목소리들이 떠들어댔다. 야, 술 더 시켜. 의선, 얼른 와. 얼른. 진짜 얼마 만이냐.
   그곳에 준수가 있었다. 그는 수상 축하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컴컴한 지하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짧은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5년 만이었다. 그가 내게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는 예전에 세진과 단편 영화 작업을 함께했던 선배와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벌겋게 술이 오른 얼굴로 나를 환대해주었다. 그들은 학교와 동아리, 촬영지에서의 추억들 그리고 세진의 수상을 두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오늘만큼은 함부로 취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큰소리로 웃고 맥주잔을 엎고 바닥에 포크를 떨어뜨렸다. 그런 소란 속에서 준수는 소리 없이 다가와 무표정한 얼굴로 탁자를 행주로 닦고 새 포크를 내주고는 다시 반질반질한 나무 바 뒤로 돌아갔다. 나는 선배들이 건네는 안부 인사와 따라주는 술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출근을 핑계로 술은 마시는 시늉만 했다. 그들의 여전한 에너지, 영화 앞에서 온몸으로 울고 웃는 날것의 활기.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나를 들뜨게 하면서도 동시에 은근한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너무 많은 자아, 단단하고 투명한 유리알 같은 자아들이 한데 모여 아름답고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들과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밀려오던 수상한 허기와 내 자아의 부피가 줄어든 것만 같은 착각을. 그들이 영화라는 종교를 믿는다면 나는 그들 사이에 낀 이교도 같았다.
   세진과 선배들이 옛 추억을 얘기하며 와하하 폭소를 터트리는 순간마다 나는 바를 힐끔 쳐다봤다. 준수는 바 안쪽에서 등을 보인 채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주문받은 술과 마른안주를 준비하고 빈병을 정리하고 유리잔을 씻었다. 그때 나는 준수가 내 시선을 느끼고 뒤돌아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한번 더 눈이 마주치기를, 내게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기를.
   12시가 가까워졌을 즈음, 다시 바 쪽을 바라봤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모습만 보였다. 이제 가보겠다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각자의 얘기에 빠져있던 선배들이 아쉽다고 가지 말라며 너스레를 부렸다. 세진이 허공에 대고 손사래를 쳤다.
   조용 조용! 우리 의선이 곱게 보내줘야지. 선배들이 출근의 신성함을 알아?
   넌 아냐?
   동우 선배가 장난스레 쏘아붙였다. 세진이 과장된 몸짓으로 두 손을 가슴에 포개었다.
   이 몸은 무역 회사도 다니고, 출판사도 다녔었다고.
   잘났다, 어? 곽 감독이 제일 잘났어. 야, 다들 시끄럽고 짠이나 해.
   성철 선배가 탁자 가운데로 잔을 치켜올렸다. 유리잔 여러 개가 맞부딪치는 사이 나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세진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도착하면 꼭 문자 해.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세진이 대문니를 보이며 천진하게 웃었다.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웃음. 어쩌면 그 어린아이 같은 웃음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를 나와 몇 계단 올랐다. 왁자한 소음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계단 너머 대학가 술집들의 휘황한 조명이 보이자 숨이 막히는 듯했다. 현기증이 일었다. 나는 계단 중간에 멈춰섰다.
   괜찮아?
   준수가 계단 끝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그의 앞에 섰다.
   가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애들도 참, 너까지 부르고.
   괜찮아요.
   넌 늘 괜찮지.
   내내 눈길을 피하던 그가 똑바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 좀 피곤한가 봐.
   준수가 자기 어깻죽지를 주물렀다. 내가 말없이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자 어색한지 괜스레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살아 있었네요.
   아, 어.
   다행이다.
   우리는 잠시 말을 잃고 마주 서 있었다. 건물 앞 골목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저기……
   아, 혹시 몰라서 가져왔는데.
   가방에서 『봉인된 시간』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예전에 두고 갔잖아요.
   이걸 여태 가지고 있었어?
   돌려주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준수가 손바닥으로 표지를 가만히 쓸었다. 툭, 툭. 책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갈게요.
   우산 있어?
   택시 타면 금방인데요, 뭐.
   의선아.
   그가 뭔가를 말하려는 듯 머뭇거렸다. 망설일 때면 코끝을 매만지는 버릇이 여전했다.
   잘 살아요.
   잘 지내요.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다른 말이었다. 나는 곧장 뒤돌아서서 대로 방향으로 걸어갔다. 거의 뛰다시피 했다. 빗방울이 얼굴로 따갑게 떨어졌다. 도망치듯 자리를 뜬 게 왜 나일까. 택시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그는 나를 굳이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걸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니까. 그는 조심스러워만 하다가 결국에 나쁜 사람이 되고 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말처럼 내가 늘 괜찮지는 않았다고 항변이라도 할 걸 그랬나. 당신 앞에서만큼은 늘 괜찮은 척했고 그랬더니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살았었다고. 하지만 준수가 망설인 끝에 돈 얘기를 꺼낼까 봐 나는 두려웠다. 졸지에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그 술자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수가 영화판을 완전히 떠났다는 얘기를 세진에게 들었을 때 나는 알았다. 그날 바에서 그가 뒤돌아보지 않은 이유가 나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준수를 생각할 때면, 못 받은 돈보다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가 혼자 카메라와 녹음 장비를 짊어지고 자취방으로 찾아왔던 오후. 그날의 빛과 그날의 어둠.
   준수는 거실에 장비 가방을 내려놓고 한동안 천장 바로 아래 뚫린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창으로 들어오는 빛줄기와 거실 바닥에 떨어진 빛을 좀더 담고 싶다고 했다. 그가 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그의 뒤에 서 있다가 손이 필요할 때면 다가가 거들었다. 창문을 모두 닫은 고요한 집에서 준수와 나는 숨소리를 죽인 채 카메라 너머의 빛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서서히, 환하게 빛나던 햇빛이 어둠으로 바뀌어갔다. 해가 기울자 그가 서둘러 장비들을 정리했다.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밥 먹었어요?
   아, 응.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가 고쳐 말했다. 아니.
   컵라면 있는데.
   그럼 신세 좀 질게.
   물이 끓는 동안 엄마가 보내준 갓김치와 장조림을 꺼냈다. 찬밥도 데울까 싶어 거실 쪽을 돌아보았는데 그가 책장 앞에 모로 누워 있었다. 나는 준수 앞에 조용히 상을 펴고 반찬과 수저, 뚜껑을 뜯지 않은 컵라면을 올려놓았다. 그는 팔을 베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의 숨소리가 가만가만 들려왔다. 나는 누워 있는 그와 밥상을 사이에 두고 쪼그려 앉았다. 어둑해진 거실에서 그의 찡그린 미간과 간혹 떨리는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그의 무방비함을 건너다보았다. 주전자가 식어가고 집 안에 고인 어둠이 짙어졌다. 가로등이 켜져 창문으로 귤빛 불빛이 비쳐들었다. 나는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그의 가방 밑에 있던 책을 펼쳐보았다. 차르륵 책장을 넘기는데 책갈피에 35mm 영화 필름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왼쪽 페이지 아래 연필로 그은 밑줄이 보였다.
   그렇다. 시간은 영화 속에서 편집의 힘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편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것이다.2)

   몇 번이나 문장을 다시 읽어봤지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눈 나빠져.
   누운 채로 준수가 속삭였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세워 앉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나 오래 잤어? 깨우지 왜.
   너무 곤히 자서요.
   그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는 급히 일어섰다.
   가야겠다.
   그는 애써 차려줬는데 못 먹고 가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장비들을 챙겨들었다. 그가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고쳐 묶을 때 내가 말했다.
   제가 빌려줘도 돼요?
   응?
   세진이한테 들었어요.
   난감하다는 듯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천천히 줘도 돼요. 난 괜찮으니까.
   그가 우두커니 서서 코끝을 매만졌다.
   그럼, 신세 좀 질게.

   나는 준수에게 이백만 원을 빌려주었다. 취직 후 비상금으로 모으던 돈 중 일부였다. 내게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만일의 일을 몹시 불안해했고 그 만일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 머릿속 계산기를 수시로 두드렸다. 그런 내가 그토록 선뜻 그에게 돈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했고 그 이상함은 내 가슴을 들뜨게 했다.
   그 후로 준수와 나는 종종 만났다. 그가 먼저 연락을 해왔고 밥이나 커피를 샀다. 아름다운 노을이나 그림자 무늬를 보면 사진을 찍어 내게 문자 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다. 그가 빌린 돈의 절반을 갚고 난 뒤에 연락이 뜸해졌는데, 세진을 통해 전해 들은 말들이 있었기에 사정을 물어보거나 섣부른 위로를 하기가 망설여졌다. 망설임의 시간이 길어지자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이 마치 나머지 돈을 돌려달라는 독촉처럼 느껴질까 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가 연락하기를 기다렸다.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 것도, 천천히 줘도 괜찮다고 한 것도 나였으니까. 나는 어쩌면 그때, 내 호의가 그에게 가닿아 다른 감정으로 자라나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그 반대가 되었지만.
   지하 바에서 마지막으로 준수를 본 지도 7년이 지났다.
   나는 준수와의 일, 둘만의 만남이나 빌려준 돈에 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세진에게조차 말하지는 않았는데 처음에는 언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미루던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말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준수에게 받지 못한 돈이 있다는 사실을 세진이 알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찾아가 받아오겠다고 할 테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준수와 나 사이의 일을 누군가가, 그게 세진이라고 해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돌려받지 못한 돈, 백만 원. 과연 그것은 내게 옳고 그름만의 문제인가. 나는 이 문제를 다른 이가 납득하도록 설명할 수 없었고 때때로 나 자신에게도 그랬다. 백만 원, 백만 원 되뇌다 보면 그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돌려받지 못한, 아니 대답조차 듣지 못한 내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나는 그 일을 그저 내 안에 가만히 놓아두기로 했다.

   딱 한 번, 준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
   2년 전 겨울이었고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그날 나는 강남으로 외근을 갔다가 버스를 타고 퇴근하고 있었다. 첫눈치고는 제법 눈이 많이 내려 도로 위 차들이 기어가다시피 했다. 성수대교를 건너고 있을 때 멀리 회색빛 하늘 아래 서울숲이 건너다보였다. 몇 달 전 세진에게 전해 들은 얘기가 떠올라 나는 충동적으로 하차 벨을 눌렀다.
   준수 선배가 서울숲 근처에서 카페를 한다더라.
   카페 이름은 ‘Zerkalo’3). 나는 단번에 그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도 앱을 켜고 ‘Zerkalo’를 검색했다.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앱이 알려주는 경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눈발이 거세져 금세 길 위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카페에 가까워지자 문득 내가 거길 왜 가려는 것인지, 정말 준수를 만나고 싶은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놓아둔 것 아니었나. 이제 와 뭘 바라나.
   카페 문은 닫혀 있었다.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출입문에 붙은 종이가 꼬깃꼬깃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여러 날 붙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컴컴한 실내와 빈 의자들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나는 짙은 녹색 외벽과 반짝이는 은색 글씨로 쓰인 간판을 올려다봤다. 그가 영화판을 떠난 후 차린 카페 이름이 가장 존경했던 감독의 영화 제목이라는 것이 내게는 슬픈 농담처럼 느껴졌다.
   눈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나는 지갑 안쪽에서 35mm 영화 필름 조각을 꺼냈다. 오래전 그의 책에 끼워져 있던 작고 얇은 조각. 색이 바랜 네 개의 프레임에는 거울 속 자신을 사진기로 찍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따금 나는 필름 속 남자가 준수일까 생각해보곤 했다. 필름을 반으로, 다시 반으로 접었다. 카페 앞에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손으로 쓸어모아 접은 필름을 넣고 뭉쳤다. 쪼그려 앉아 눈덩이를 바닥에 굴렸다. 눈덩이가 흩어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손으로 눌러 다졌다. 금세 손끝이 얼어붙었다. 흰 눈을 모아 뭉쳤는데 완성된 눈덩이는 누르스름했다. 구둣발로 출입문 앞에 쌓인 눈을 깨끗하게 쓸어내고 그 한가운데에 눈덩이를 내려놓았다.
   기억할까. 빌린 돈의 절반인 백만 원을 흰 봉투에 담아 내가 사는 동네로 찾아왔던 혹한의 밤, 함께 어묵탕을 먹고 나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거리를 걸으며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옛 고려 풍속에 첫눈을 봉하여 사람을 시켜 지인의 집 앞에 갖다 놓으면 그것을 받은 이는 반드시 한턱을 내야 했다는 이야기. 세종실록4)에 그런 장난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그가 말했다. 첫눈을 봉한 그 눈덩이를 약이(藥餌)라 일컬었다고. 준수의 이야기 끝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선배 집 앞에 작은 눈덩이 하나가 놓여 있으면 그건 나니까 꼭 한턱내요.
   준수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빙긋 웃으며 친친 감은 목도리 안으로 얼굴을 숨겼던가. 미끄러운 포도를 앞서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던가.
   몇 발짝 뒤로 물러나 닫힌 카페 문과 유리창 너머에 고인 짙은 어둠을, 그 어둠 속에 희미하게 비친 내 얼굴을, 유리창 위에 걸린 ‘Zerkalo’라고 쓰인 간판을 바라보았다. 이런 순간을 두고 미장센이라고 하는 걸까.
   아침이면 눈덩이가 전부 녹아버릴지도 몰랐다. 설령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눈은 끝내 녹을 테니까, 눈은 본래 녹는 것이니까. 나는 언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눈덩이 위로 흰 눈이 가만가만 쌓이는 광경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두 눈으로 짧은 영상을 찍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잠시 숨을 참은 채로. 그러고는 컷. 나는 곧장 뒤돌아 걸어나갔다.

안윤

첫눈이 내릴 때 생각나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하염없이 눈이 쏟아지는 날에도 나의 세상은 얼어붙었던 것들이 녹아 사라질 시간을 향해 성실하게 굴러간다. 때때로 그 시간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그저 내 안에 가만히 놓아두는 일이 된다. 부끄럽지만 사랑스럽다.

2022/10/25
59호

1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거울 Зеркало〉, 1975.
2
『봉인된 시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분도출판사, 1991.
3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거울 Зеркало〉 원제의 영어 표기.
4
세종실록 1권, 세종 즉위년 10월 27일 癸卯 10번째 기사 (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