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 카페에 가는 길이다. 이 길은 아파트와 상가 사이에 있는 샛길이다. 소나무가 길 양옆으로 곧게 서 있다. 가지가 울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시원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든다.
   길에서 바라본 수선집이 컴컴하다. 오늘은 수선집 여자가 출근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제 낮에만 해도 보이지 않던, 통유리 안에 무언가가 놓여 있다. 하얀 종이에 쓰인 검은 글자. 나는 샛길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파트 내 상가는 달랑 세 칸짜리 건물이다. 미용실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수선집이 오른쪽에는 빵 카페가 있다. 샛길 끝에서 돌계단을 내려가면 오른쪽에는 상가가 있고 왼쪽에는 노인정이 있다. 노인정 근처 여기저기엔 할머니들이 심어놓은 푸성귀와 꽃이 지천이다.
   나는 매일 오후 두 시에 빵 카페에 간다. 엄마가 잠든 시간에. 그곳에 가려면 수선집을 지나가야 한다. 수선집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들른다. 수선집 여자는 혼자 일한다. 쉬는 날이 없다. 그녀가 바깥을 내다보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안에 있을 땐 언제나 밖을 내다보는데. 치열하게 일하는 그녀가 늘 부럽다. 수선집에선 우리집과는 달리 옷 냄새만 난다.
   돌계단을 내려와 수선집을 향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석 달 전에서야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쉰다섯. 모든 것에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유리창 앞의 검은 글자가 사자(使者)의 손짓처럼 섬뜩하다.
   통유리 앞에 있던 건 종이가방이었다. 하얀 종이가방에는 검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땐 영락없이 조문을 알리는 표시 같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종이가방 안에는 누군가 맡긴 빨간색 카디건이 들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수선하다 만 옷이 재봉틀 앞에 놓여 있었고 수선한 옷들은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나는 땅콩크림빵과 커피를 사서 다시 한번 수선집을 지나 노인정 앞에서 멈췄다. 방문이 열린 노인정엔 할머니 여섯이 화투를 치고 있었다. 엄마는 한 번도 노인정에 간 적이 없다. 저 할머니들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화투라도 쳤더라면 치매가 더디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엄마는 노인정에 가는 걸 수치로 여긴다. 치매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자존심은 짱짱했다.
   노인정 앞, 고추 포기들 옆에 작약이 한 무더기 피어 있다. 모란일 수도 있다. 해마다 헷갈린다. 얼마 전 산수유가 졌다. 그것도 생강나무 꽃일지도 모른다. 아파트에는 두 종류의 꽃이 모두 있으니. 엄마처럼 나도 무어든 금방 잊어버린다. 이젠 무얼 안다는 것이 사는 데에 힘이 되지 않는다.
   나는 빵집에 갈 때나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나 엄마를 데리고 병원을 오갈 때에도 수선집에서 일하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그곳에 박혀 있는 정물 같다. 언제나 고개를 숙인 채 바느질에 몰두하고 있다. 내가 흐르지 않는 시간에 파묻혀 있을 때에도 그녀의 손놀림은 바쁘다.
   그녀는 첫 번째 항암 치료를 하고 이틀 만에 나왔고, 그다음에는 사흘 만에 나왔고, 세 번째도 사흘 만에 나왔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었다. 5년간 그녀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녀가 506호로 적어놓겠다고 하면, 나는 얼마냐고 묻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석 달 전, 면 소재 원피스의 앞트임을 수선해 달라고 갔을 때 그녀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내용은 커다랬다.
   “손님, 바쁘게 입어야 하는 옷은 당분간 못해요. 제가 오늘 저녁에 입원하거든요.”
   “어디 아프세요?”
   “네. 배가 좀 아파요. 염증이 있어 수술해야 한대요.”
   “염증도 수술해요? 약물 치료로는 안 되나요?”
   그녀는 내 옷을 살피는 중에도 가끔 배를 움켜쥐었다. 나는 늦어도 괜찮은 옷이라며 맡기고 나왔다. 돌아서는데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들어 그녀를 다시 보았다. 짧은 커트 머리였다. 늘 긴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일주일간 문을 닫는다던 그녀는 보름이 지나서야 나왔다.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까지는 엄마의 낮잠 시간이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자던 잠을 그 시간에만 자도록 만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낮잠을 많이 잔 날은 밤에 끊임없이 먹을 것을 달라며 보챘고 그럼 어김없이 또 똥을 누었다. 그런 날은 하루에 목욕을 두 번 시켜야 한다. 엄마가 낮잠을 자는 동안 빵과 커피를 사서 놀이터 벤치에 앉아 점심으로 먹는다. 엄마는 꼭 정오쯤에 똥을 눈다.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나면 안 그래도 없는 식욕이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 식욕은 삶의 의지나 냄새와 연동되는 모양이다. 창문은 활짝 열어두고 나왔다. 엄마만큼이나 집안의 냄새도 나를 침몰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유일하게 의지를 보이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다. 이번 주에는 큰언니가 온다. 지난주엔 작은 언니가 왔으니까. 둘은 같이 약국을 운영하며 격주로 일요일 오전 11시에 와서 오후 6시에 돌아간다. 엄마는 나를 깜빡했다가도 언니들이 오면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언니들은 올 때마다 엄마를, 아침 일찍 똥을 누게 하란다. 언니들이 그런 엄마를 한 달에 두 번씩 맡는다는 건 나로서는 통쾌한 일이다. 불쾌한 것들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그들도 알 것이다.
   언니들과 교대하면 브런치 카페로 가서 점심을 오래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나오면 곧장 옷가게로 간다. 사야 할 옷이 있어서 가는 건 아니다. 그냥 간다. 원피스를 산다. 가끔 스카프를 사기도 한다.
   간혹 엄마의 원피스를 사기도 한다. 엄마가 나를 덜 힘들게 할 땐 엄마가 즐겨 입던 스타일의 옷을 사 와서 걸어둔다. 정신이 잠깐 온전하게 돌아온 엄마는, 그 옷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기도 울기도 한다. 엄마가 나를 할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욕을 할 땐, 엄마가 질색하는 옷을 사 와서 걸어둔다.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지면 내 목표는 성공한 셈이다.
   일요일에 사 온 옷은 월요일이면 반드시 수선집으로 가져간다. 그때마다 수선집 여자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옷은 수선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분명 어딘가에는 수선할 데가 있을 거예요.”
   나는 어떻게든 수선할 곳을 찾아내곤 506호라고 말한다. 내 이름을 말한 적은 없다. 수선집 여자가 처음부터 나에게 동과 호수만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그 옷들은 목요일 커피를 사 올 때 찾아온다. 그녀는 수선한 옷 안감에 매번 이상한 매듭을 지어놓았다. 옷마다 모양이 달랐다. 중간중간 뫼비우스의 띠를 한 개나 두 개를 때론 세 개까지도 만들어놓았다. 내가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사 온 엄마 옷에는 대부분 눈동자를 만들어놓았다. 나는 그녀가 지어놓은 매듭의 의미를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와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을 때가 많았다. 홈쇼핑에서 샀을 것이다. 39,000원에 다섯 장. 나는 집에서 그 옷만 입는다. 세 세트나 샀다. 엄마의 똥오줌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느라 옷은 젖어있거나 냄새에 절어 있을 때가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는다.
   엄마는 대인기피증이 있단다. 평생 교수로 교단에 섰던 사람인데. 의학 공부를 한 언니들이 주장하면 진단명은 고정된다. 세 자매 중 아무런 특장점이 없고 결혼하지 않은 나에게,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맡겨졌다. 엄마의 평소 뜻과 대인기피증 때문에 요양원에는 모실 수 없단다. 대신에 언니들은 내가 간호사로 일하며 받았던 월급보다 더 많이 준다. 매년 물가상승 폭만큼 인상도 해준다. 그들의 호의는 그게 전부다.
   수선집 여자의 이름이 궁금하다. 그녀처럼 나도 내 이름으로 불리지 않은 지 오래다. 가장 많이 불리어지는 게 506호다. 그리고 엄마의 보호자다. 누워 있는 엄마보다도 덜 불린다. 엄마는 병원 갈 때와 약을 탈 때도 이름으로 불린다. 내 이름은 효재다. 한 번도 빛난 적 없는 이름이다.

*
      4차 항암 치료 후 닷새 만에 수선집 문을 열었다. 속이 울렁거려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근육통은 바늘로 찌르는 듯 계속되었고 머리도 누군가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아팠다. 3주 차에 들어가 몸이 회복될 만하면 다시 항암 주사를 맞아야 했다.
   대학을 다니던 쌍둥이 아들들은 서로 의지한다며 올봄에 함께 입대했다. 오롯이 혼자 앓고 있다. 냄새가 싫다. 세상의 모든 냄새가 싫다. 아프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숟가락의 스테인리스 냄새까지 속을 뒤집어놓는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냄새가 있는 줄 몰랐다. 게다가 냄새 때문에 삶의 의욕이 꺾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게에 더 빨리 나오고 싶어도 옷 냄새 때문에 자신이 없어 타로 카드만 만지작거리며 지냈다. 타로점을 볼 때마다 내 운명이 달라졌다.
   
   내 꿈은 수선집이 있는 단지 아파트에 사는 것이다. 방 두 칸짜리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살고 있지만, 내 꿈은 506호 여자가 사는 아파트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일만 했다. 그러면 꿈도 함께 자랄 줄 알았다.
   506호는 월요일마다 새로 산 원피스를 가지고 온다. 이번엔 리넨 소재다. 하얀색과 회색이 섞여 고급스럽다. 오늘은 어디를 수선하라고 할까. 비싼 옷을 수선할 때마다 진땀이 난다. 요즘은 손도 떨리고 눈도 침침하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나를 506호가 쳐다보다 눈길을 내린다.
   “많이 아프셨어요?”
   “네. 생각보다 힘드네요.”
   아무리 봐도 수선할 데가 없어 보이는 옷이다. 506호의 그간의 취향으로 봐선 치마 길이도 품도 소매 길이도 적당하다. 앞가슴 파인 것도 괜찮고 단추도 없는 옷이다. 여자는 옷 색깔과 같은 색으로 가장자리를 박아달란다. 여자는 수선하지 않아도 될 만한 옷을 수선해 달라고 할 때가 많다. 대부분 원피스다. 가끔 스카프도 가져온다. 수선해 간 원피스를 입은 걸 본 적이 없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사 갈 때도 티셔츠와 면바지 차림이다. 내가 입은 티셔츠와 같은 것을 입을 때가 많다. 원피스의 주인이 따로 있나, 하는 의심이 들 때도 많았다.
   506호의 옷을 수선하다 보면 나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무표정한 여자에게 연민이 생겨 있었다. 몸집이 날씬하고 얼굴이 맑은 여자는 어떤 원피스를 입어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5년간 506호의 옷을 수선하면서 옷에 다양한 매듭을 지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506호가 매주 옷을 가지고 온 지 몇 달쯤 지나서부터였을 것이다. 멀쩡한 옷을 수선하려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스물두 가지를 한 사이클로 뫼비우스의 띠를 수놓았다. 매번 다른 사물로 수를 놓았다. 붉은 깃털, 지팡이, 저울, 칼, 잠자리, 까만 망토, 스핑크스, 낫, 탑, 황금열쇠, 천사…… 가끔은 바보와 수레바퀴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건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이혼을 했을 무렵엔 그 두 가지를 함께 지어놓기도 했다. 모든 매듭은 조그맣고 정교했으며 옷감이 상하지 않도록 안감의 솔기에다 놓았다.
   506호가 웃는 걸 본 적이 없다. 내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그날이 그날이다. 그날이 그날인 건 어떤 이에겐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그 빛이 그 빛 같고 그 비가 그 비 같을 땐 마음에서 쥐가 난다. 나는 매일 밖으로 나와 빵과 커피를 사 가는 506호가 부럽다. 가게에서 김과 김치로만 점심을 때우는 나에겐 여자의 모든 것들이 호사스럽게 느껴진다. 여자는 가게에 와도 수선할 곳만 말한다. 그간 둘만의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석 달 전, 내가 여자에게 아프다고 말한 게 유일하다.
   506호가 옷을 찾아가는 길에 노인정 앞에 오래 서 있을 때가 있다. 문이 열린 방안은 노인들의 웃음소리로 왁자하다. 여자는 커피와 빵을 들고 한참을 서서 듣곤 한다. 나는 그 모습이 수선을 맡기는 것만큼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자는 고추나무 옆, 모란이 피어 있는 곳에 오래 서 있을 때도 있다. 작약일지도 모르겠다. 조팝나무와 이팝나무가 헷갈리듯 늘 알쏭하다. 노인정 할머니들이 정성껏 가꾸는 꽃이다. 노인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푸성귀와 꽃 가꾸는 것이 여생의 목표인 양 정성을 쏟는다. 이젠 기쁨이 거기에서만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손길에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고 푸성귀는 탐스럽다.
   오늘 아침에도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네댓이 수레국화 앞에서 한참이나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할머니들처럼 소리 내어 웃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이혼을 하고 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다.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하여 바로 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암탉의 배를 갈랐을 때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알이 연이어 나오는 것처럼, 삶의 장애물은 끝없이 이어졌다.
   
   불행은 본래 얼굴을 감춘 채 찾아오는 것 같았다. 남편과의 이혼은 느닷없었다. 그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단숨에 해버렸다. 고민할 시간을 아예 차단해버렸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결국엔 그것이 나를 상하게 할 게 뻔하기에. 암도 마찬가지다. 가끔 배가 아픈 것 외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506호처럼 느리고 여유롭게 살면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염증 수술을 하려고 배를 열었지만, 암이었다. 항암 치료로 암 덩어리를 작게 한 후에 떼어내야 한다고 했다. 찾아가지 않은 506호의 원피스를 만져본다. 파랗고 하얀색의 잔잔한 꽃무늬 원피스가 예쁘다. 몸에 닿으면 시원한 바람이 일 것 같다. 조용조용한 옷 주인을 닮았다. 나는 그 옷에는 물병을 수놓았다. 내 몸에 대고 거울을 보았다. 노란 얼굴이 옷과 따로 논다. 언젠가 506호에게 타로 카드에 대해 아는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여자의 옷장이 궁금하다. 내가 그간 수선한 옷들만으로도 매장을 방불케 할 정도일 것이다. 돌계단 옆엔 금계국이 한창이다. 노란색이 예쁘다. 처음 보는 풍경 같다.
   사람들은 나를 수선집 여자라 부른다. 내 이름은 근숙이다. 이번에 병원을 오가며 원 없이 들었다. ‘이근숙님, 이근숙님, 이근숙환자분……’ 의사와 간호사가 하도 불러서 내 이름조차 아픈 것 같았다.

*
      “괜찮아요?”
   “많이 힘드네요.”
   근숙의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졌다. 야위어 티셔츠가 헐렁하다. 핏기 없는 얼굴은 푸석하다. 머리카락만 빠진 게 아니라 몸의 모든 곳이 축소된 느낌이다. 506호는 비니를 눌러쓴 근숙을 힐끗 쳐다보았다. 근숙은 비니를 밑으로 더 잡아당겼다. 오늘도 506호는 수선할 옷을 가져왔다. 원피스를 내미는 것이 무안했던지 전과 달리 쭈뼛거렸다. 근숙은 옷을 이리저리 살피며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506호는 마 소재 원피스의 허리끈을 떼어달라면서 뜬금없는 말을 했다.
   “제가 입을 게 아니니 편하게 수선하세요.”
   “손님 옷 아니신가요?”
   “제 옷이긴 하지만, 입지는 않아요. 중고 거래 사이트에 바로 팔 거예요.”
   근숙은 506호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멀쩡한 새 옷을 수선하여 팔다니. 내심 언짢기까지 했다.
   “입으려고 산 거, 아니에요?”
   “입고 나갈 데가 없어요.”
   506호는 매일이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는 게 미칠 것 같아, 그 시간에 파란을 일으키려 옷을 산다고 했다. 막상 그 옷을 입고 나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고 했다. 일주일간 아픈 엄마를 간병한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다. 옷을 사는 순간만큼은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새 옷을 집에 두면 죄책감이 들어요. 수선하여 흠집을 내면 마음이 편해요.”
   근숙은 그간 506호의 알 수 없는 행동이 몇 마디 말에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비싼 옷을 돈 들여 수선해서 싸게 파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근숙의 입장으로선. 노인정에서 웃음소리가 한바탕 흘러나왔지만, 506호는 곧장 집으로 갔다. 한여름 오후의 무더위가 웃음소리에 균열을 일으켰다.
   근숙은 허리끈을 고정하는 세 개의 고리를 떼 냈다. 허리끈을 묶지 않으면 펑퍼짐한 스타일이 돼버릴 것 같았다. 고리를 떼어낸 자리마다 황금색 실로 천사를 수놓았다. 그것이 포인트가 되어 크림색 치마에 생기가 돌았다. 끈을 매지 않아도 입을 만했다.
   근숙은 가게 문을 두어 시간 일찍 닫았다. 가게에 나오는 날이 들쭉날쭉하다보니 손님을 많이 놓쳐버렸다. 506호의 수선한 옷을 집으로 가져왔다. 수를 더 놓아볼까 하고. 그런데 더 놓으면 과할 것 같아 그만뒀다. 입어보았다. 506호의 옷을 입어본 건 처음이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얼굴과 살이 빠져 헐렁한 몸이지만, 제법 어울렸다. 수가 놓인 곳에 눈길을 주었다. 천사와 눈이 마주쳤다. 살아오면서 가끔 느꼈던 작은 기쁨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
      효재는 다른 날보다 늦은 시각에 집을 나섰다. 엄마가 낮잠을 자지 않겠다며 떼를 쓰는 바람에 점심이 늦어졌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배가 고파 본 적이 없다. 허기도 어떤 욕구가 있을 때나 생기는 법이다. 하루에 두 번 의무적으로 먹는다. 두 시에 빵과 커피, 저녁 여덟 시에 고구마나 감자나 과일로. 엄마의 음식은 언니들이 새벽마다 유명 업체의 것을 배달시켜준다. 영양을 골고루 갖춘 식단으로. 엄마는 투정을 부리며 잘 먹지 않는다. 남은 음식은 쓰레기로 버린다.
   스위트밀크롤과 카페모카를 샀다. 늘 사던 카페라테와 크림빵이 아닌. 빵은 부드러운 걸 좋아한다. 딸기크림과 생크림과 모카크림과 땅콩크림이 들어간 빵을 번갈아 사 먹는다. 평소와 왜 다른 걸 샀는지는 모르겠다. 며칠 전, 수선을 맡길 때 수선집 여자와 몇 마디 나눈 것이 기분 좋았나보다. 입안 가득 문, 뜨거운 물을 마침내 삼킨 것처럼. 누군가와 이어지는 대화를 나눠 본 지 오래다. 그녀의 표정이 얼떨떨했지만, 효재는 상관없었다. 마음이 한결같다. 굴곡 없는 마음이 갈수록 효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녀와의 짧은 대화가 효재의 마음에 바람 통로를 만들어준 것 같았다.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 속이 시원하다.
   수선집 여자가 수선한 원피스를 효재에게 보여주려 했지만, 효재는 그냥 달라고 했다. 매번 그랬다. 궁금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손님, 이 옷 예쁜데 입고 다니세요. 이제 곧 여름도 지나가 버릴 텐데.”
   “계절은 별 의미 없어요. 사야 하는 옷감만 다를 뿐이에요.”
   효재는 수선집 여자에게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고인 물 같은 시간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언니들에게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태 꺼내지 못했다. 그 생각도 일요일에 옷을 사고 나면 조금은 견딜 만해진다. 옷을 수선하고 수선한 옷을 팔고 나면 또 한 주가 지나간다. 엄마는 모임이나 집안 행사 때 효재를 데려가지 않았다. 두 언니는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녔지만.
   효재는 수선한 옷을 들고 노인정 앞에 멈췄다. 노인정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미닫이문에는 ‘말숙언니, 추어탕집으로 와요’라는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모두 식사하러 간 모양이다. 가끔 노인정이 조용한 날은 그런 날이다. 효재는 노인정 근처에 심어놓은 고추와 가지와 호박과 오이와 깻잎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잎사귀는 반짝이고 열매는 알찼다.
   지금껏 샀던 옷들은 대부분 팔았다. 몇 개만 남겨두었다. 그건 수선집 여자가 바보와 천사와 수레바퀴를 수놓은 것들이다. 처음엔 그녀가 왜 그런 수를 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옷을 사고도 시간이 남아 타로점을 보러 간 적이 몇 번 있다. 매듭의 의미는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계속 효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옷들은 대부분 무채색이고, 옷감은 부드럽고, 효재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매듭의 의미를 안 후엔 더이상 타로점을 보러 가지 않았다.
   찾아온 옷을 옷걸이에 걸었다. 열 개의 원피스와 함께. 이번엔 어떤 매듭을 지었을지 궁금했다. 허리춤에 노란색 천사가 빛나고 있었다. 옷에 혈색이 도는 것 같다. 여태 수선한 것 중 가장 화려한 매듭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수선집 여자는 비니를 더 깊이 눌러썼다. 얼굴도 샛노랗다. 서너 달 사이 딴사람이 된 것 같다. 효재는 천사들이 수놓인 원피스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
   “이 옷 받으세요.”
   “이걸 왜? 제가 수를 놓아 언짢으세요?”
   “아녜요. 어차피 안 입을 옷인데요, 뭘. 이 옷 사장님이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정성껏 수놓은 걸, 모르는 사람한테 팔고 싶진 않아요.”
   “아니에요. 저는 손님 위해 수놓은 거예요.”
   효재는 한사코 거절하는 수선집 여자에게 옷을 주고는 가게를 나왔다. 여자가 다급하게 따라 나오며 효재를 불렀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갓 딴 풋고추와 오이와 가지가 들어 있었다. 노인정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딴 것들이란다.
   “저, 제 이름은 효재예요.”

임이송

나는 이 소설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아픔을 쓰고 싶었다. 사람은 저마다 성격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아픔도 다르다. 저마다 가진 아픔 중 가정의 해체와 가족 내에서의 소외와 질병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사람들은 상처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유하거나 그대로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나는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2022/10/25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