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악취 / 세팅
악취
계단을 오르다가 기억을 잃었습니다
스토크 다발도 함께 굴렀겠지요
호흡이란 멈추기로 예정돼 있는 걸까요
아무도 훔쳐가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렸을 텐데
나의 취향이 아름답지 못한 걸까 봐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가보지 못한 먼 도시에선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이 꽃을 모자 속에 넣고 다닌다 들었는데
내가 벗어준 모자를 당신이 쓰고 다닌다는 소문은
왜 내 귀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과연 순서가 문제였을까요
스토크를 담가둔 물이 탁해지고 있습니다
화병의 역할은 깨지는 데 있다고
당신은 내게 알려주었지만
저렇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악취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살아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나의 사랑이 악담에 가까운 농담이 될까 봐
꽃말 같은 건 검색하지 않을 겁니다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준다면
악취에 휩싸인 향기를 믿겠습니다
조금만 더 믿어보겠습니다
세팅
시간을 설정해놓고도
전자레인지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져
돌아가고 있거나
터져버릴 예정인
습관처럼
어두컴컴한 부엌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누군가를 놀래킬 수 있을까
그렇게 돼버리는 일이 있다
가쁜 숨이 들락거리는
위생 랩처럼
불가능한 챌린지처럼
나의 시린 왼발을 건드릴 수 있는 건
나의 차가운 오른발뿐이고
날이 선 식기를 여러 벌 차려야지
데워져가는 빈 그릇을 보면 허기가 지니까
오늘의 메뉴는 식사가 끝난 이후에 결정될 것이다
이 규칙에 번복은 없다
오경은
시간을 엮는다고 삶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순간마저 없다면.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2023/01/31
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