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더미 옆에 흙더미

   그는 부수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주먹을 휘둘러 눈앞에 넛을 부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같은 동작을 반복했는지. 그는 부수고 있었다. 주먹이 넛에 닿을 때마다 킁, 킁, 그가 서 있는 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제발 좀. 땅이 울릴 때 그는 발을 내려다보았다가 고개를 들어 넛의 오른쪽 끝을 가늠해보았다. 치켜들어. 꽉 잡아. 넛의 끝이 보이지는 않았다. 불 좀 꺼트리지 마요. 그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다 사라지면 너 그때에도. 뒤로 몇 걸음 물러나자 넛은 좀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곧 소행성이. 다시 뒤로 몇 걸음 더 물러났다. 넛은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고 조금 더 많이 보였다. 이번에는 넛의 왼쪽 끝을 가늠해보았다. 춤과 키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압니까? 넛은 한 도시의 경계인지도 몰랐다. 넛의 끝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넛을 상상해보았다. 도시와 도시를 나누는 넛. 한 도시를 둘로 나누는 넛. 어떤 날 넛은 한 나라의 경계로 뻗어나갔다. 시간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나라와 나라를 나누는 넛. 한 나라를 둘로 나누는 넛. 사실 넛의 오른쪽과 왼쪽이란 없었지만. 넛은 그의 상상에 따라 매일 새로운 것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시간과 시간을 나누는 넛. 사람과 사람을 나누는 넛. 그는 부수고 있었다. 시간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이 나를 빤히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거든. 그는 주먹을 휘둘러 넛을 찍었다. 그는 경우와 수치에 대해 거리와 당위에 대해 생각했고 넛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는 부수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들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언젠가 사포는 노래했다. “당신이 내 말소리를 멀리서도 알아들었던 그때처럼, 언제나처럼 여기로 오소서.” 그는 넛에 주먹이 닿을 때마다 넛의 내부에 균열이 생길 거라 믿었다. 겉으로 보기에 넛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꼼짝없는 넛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숨을 거칠게 내쉬다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이제부터 이것은 망고입니다. 그는 부수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위해 넛을 부수기 시작했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넛의 크기는 가늠이 되지 않았고 주먹은 조금씩 다른 부분에 빗맞았다. 그는 정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손바닥만 씻지 말고 손등도 씻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에게 넛은 넛이지 그 무엇도 아니었다. 두 손을 허리에 얹었다. 그러니까 섹스, 게임, 술. 가만히 넛을 노려보았다. 타격할 지점을 정확히 정하면, 같은 곳을 계속 때리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가 무엇이 가능하기를 바라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실제로 무엇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목숨이라는 말. 그는 넛에 표시를 남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수많은 자리 중에 방금 전에 주먹을 박은 자리를 기억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무시는 혀처럼 부드럽고 축축하게 스며. 방금 전에 내리찍은 자리가 조금 뒤에 바로 그 자리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올 때까지 기다릴게. 이런 방식으로 가다가는 주먹이 먼저 상하고 말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 넘을 수 없다. 주먹이 기능을 잃고 말 것이다. 그는 고독했다. 그는 자신이 주먹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건 마치. 그러므로 한 점을 정확히 정하는 것은 그에게 주먹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슬픔은 은거한다. 겨냥과 조준에 성공할 수 있다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넛에 어떤 표식을 남길 만한 것이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앞은 넛이 막고 있었다. 초월에 대해 입 다물라. 그가 넛을 향해 서 있었기 때문에, 넛은 확실히 그의 앞을 막고 있었다. 앞이 막혀 있다면 뒤로 돌아야지. 그는 아주 쉽게 뒤로 돌았다. 입술에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그가 뒤로 돌았기 때문에 뒤로 돈 그의 앞에는 벌판이 있었다. 거기에 나무나 풀, 개나 고양이, 새나 물은 없었다. 벌판이었다. 끝까지 간다면.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순간 그는 끝을 생각했고 벌판의 가운데, 그의 앞을 향해 걸었다. 그건 낭만적이라기보다 파괴적이죠. 그의 두 발이 벌판을 가로질러 나아간다. 벌판은 온통 흙바닥이라 이따금 바람이 불어올 때면 흙먼지가 날려 그는 자꾸 눈을 감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누구랑? 벌판에 있는 것은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거대한 석상들과 그것의 그림자들. 저것은 매머드와 비슷하군. 그는 첫 번째 석상을 지나며 생각한다. 속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는 한. 믿는 편이. 매머드와 비슷한 석상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매머드와 비슷한 석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또다른 석상을 본다. 매머드는 아니고. 큉커나도 아니고. 도루돈도 아니고. 그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석상을 바라본다. 매머드와 닮은 석상에서 매머드의 엄니와 짧은 뒷다리, 머리 위의 혹을 발견했던 그는 계속 석상을 바라본다. 저건. 그러니까. 저건. 그거. 그게. 윗입술 아랫입술 사이 벌어진. 닮은 것 같다. 정확한 그것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는 답답함을 느낀다. 둘에 하나. 지탱하는. 둘 이상. 비둘기? 그는 검은 석상 옆에 검은 석상을 본다. 에밀리. 순자. 쿠드롱. 알렉산더. 야우. 살 수 있나. 그는 50미터쯤 더 떨어진 곳에 조금 전에 본 석상보다 조금 더 작은 석상이 있는 것을 본다. 쿠에시. 범수구리. 콩송. 멜로디. 아니지. 사실 그가 벌판을 걷기 시작할 때, 그는 그의 시야에 들어온 셀 수 없이 많은 석상을 동시에 보았다. 비슷한. 비슷한. 뭔가. 뭔가. 그것들은 벌판의 끝까지. 오른쪽 끝과 왼쪽 끝까지. 그의 오른쪽과 왼쪽은 그가 뒤로 돌아서면 순식간에 왼쪽과 오른쪽이 되었지만.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모두 벌판이었다. 구멍을 찌르다. 허공을 찌르다. 그는 50미터를 천천히 걸었고, 그사이 바람이 두어 번 세게 불어 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작은 석상. 그건 넛 같았다. 분명 앞에 본 두 개의 석상보다 작은데도 그에게는 그것이 넛과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넛을 보자, 넛에 표식을 남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벌판의 가운데 우뚝 섰다. 그가 있는 곳이 어디든.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다. 그는 불안했다. 흙먼지에 뒤덮인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아니지. 그의 앞을 벌판이 가로막았다. 그는 걸었던 순서를 생략하고 곧바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한 발도 실제로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생각을 해보았을 뿐이다. 저 벌판을 향해 걷는다면. 그가 생각만 하지 않고 실제로 그 벌판을 걸었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그도 몰랐겠지만. 그는 걷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표식을 남길 것을 찾을 수 없다면. 그는 지체 없이 뒤로 돌았다. 그가 뒤로 돌았기 때문에 그의 앞에는 넛이 있었다. 그는 넛에 어떤 표시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격할 한 지점에서 시선을 떼지 않기로 했다. 1 리드미컬한 미끄러짐 Ⅺ 쓸쓸하고 느긋한 $ 극과 극을 채우는 진동. 넛에 어떤 숫자나 기호를 새기거나 글자를 쓰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는 넛의 중심을 생각했다. 알아. 나도 너를. 넛의 심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넛의 심부를 떠올렸다. 중심과 주변. 어디에나 그런 게 있기 마련이지. 넛의 심부. 넛의 심부. 그는 머릿속으로 넛의 심부를 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했고 반복을 다시 반복했다. 최초의 소리는 단조였는데. 처음처럼 다시 넛의 심부를 그렸다. 그렇게까지. 그 위에 다시 넛의 심부를 그렸다. 아니 머릿속에는 있는데 단어가 입으로 안 나온다니까. 그는 한자리에 넛의 심부를, 계속 넛의 심부를 수없이 넛의 심부를 그렸다. 모든 것을 앞서간다. 값과 몫이. 그리고 그는 마침내 넛의 심부를 보았다. 계속 그려넣은 넛의 심부가 이제 선명하게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는 희열을 느꼈다. 그가 넛의 심부를 드러나게 한 것이다. 그가 넛의 심부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나타났다. 어떤 도움도 없이 넛의 심부를 찾아낸 기쁨에 그는 압도당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희열의 힘으로 주먹을 들어올렸다. 이미 수없이 휘둘렀던 주먹이지만. 이미 수없이 쥐었던 주먹이지만. 마치 처음 주먹을 쥐는 기분이었다. 그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느 때보다 자신이 있었다. 주먹을 쥔 자신의 손을 가만히 보다가 그는 눈을 감았다.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고 다시 넛을 보았을 때, 그의 눈앞에 넛의 심부가 있었다. 그가 눈을 감았다 떴다고 해서 넛의 심부는 사라지지 않았다. 열기가 그의 팔을 휘둘렀다. 그는 주먹이 정확히 넛의 심부를 맞추는 것을 보았다. 킁. 그는 넛을 보았다. 킁, 다시 주먹을 정확히 넛의 심부를 향해 휘둘렀다. 이번에는 좀더 힘이 들어갔다. 킁. 체온의 상승으로 열기는 더 강해졌다. 킁킁. 그는 자신이 속도를 낸다고 생각했다. 킁킁킁. 그는 그의 힘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일에 큰 만족을 느꼈다. 도취의 정도만큼 넛은 조금씩 더. 점점 더 많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의 이마에 땀이 흘렀지만 그는 땀이 흘러내리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들떴고, 기묘한 성취감에 사로잡혔고, 그를 사로잡은 기운이 그의 몸을 점점 덥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의 행동을 지켜보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킁킁. 킁킁. 그는 거의 주먹이거나 넛이었고. 그는 부수고 있었다. 주먹이 킁, 킁 넛에 닿을 때마다 바닥이 울렸지만. 땅이 울릴 때마다 그의 몸도 울리는 것 같았지만. 땅의 울림과 자신의 몸의 울림이 일치하는 순간에 몸을 부르르 떨 뿐. 그는 이제 조금의 오차도 없이 곧장 넛의 심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를 수 있었다. 주먹이 매번 넛의 심부에 정확히 맞았다. 넛의 심부에 주먹이, 다시 넛의 심부에 주먹이 박혔다. 킁, 킁, 킁, 킁. 그는 속도를 높였다. 킁 킁 킁 킁 킁 킁 킁 킁 바람이 불어 눈에 흙먼지가 들어갔지만 그는 눈물을 질금거리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넛의 심부만을 바라보았다. 수없이 많은 반복 끝에 그는 또 한번 주먹을 휘둘렀고, 넛에 금이 갔다. 넛의 심부의 빈 중심을 가로질러 선은 순식간에 뻗어나갔다. 그가 바로 그 점, 넛의 심부를 향해 수없이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는 넛에 금이 가는 순간을 분명히 보았다. 금은 순간, 꽤 길게 뻗어나갔다. 한 뼘, 한 뼘 반, 세 뼘, 세 뼘 반 그 이상. 금은 넛의 심부의 아래쪽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는 금이 뻗어나간 순간을 다시 보고 싶었다. 너무 찰나여서 그는 그 순간을 충분히 보지 못했다. 그는 아쉬움에 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다시 바라보았다. 금은 몇 걸음 뒤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금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고개를 완전히 꺾었다. 해가 떠 있어서 그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룻밤이 지난 것이다. 그는 밤새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는 사방에 빛이라고는 없는 벌판의 한가운데에서 밤새도록 넛의 심부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밤과 새벽과 아침을 보지 못했다. 다만 그는 부수고 있었다. 그에게는 목표가 있고 행동이 있고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는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넛을 향해 똑바로 섰다. 눈꺼풀 안쪽이 뻑뻑했다. 눈물이 흘렀다. 그는 밤새 거의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물이 충분히 흘러나온 뒤에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넛이 있었다. 그가 밤새 바라보고 있었던 넛이었다. 넛의 심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한 선. 전에 없던 선이었다. 선에 색깔은 없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갈증과 요의를 느꼈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그가 오직 그의 두 손으로 마침내 이루어낸 성공을. 그가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성취감인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침을 삼켰다. 입에 자꾸 침이 고였다. 선을 바라보았다. 한번 생긴 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의 힘을 좀더 확실히 느끼고 싶었다. 그는 넛을 향해, 넛 너머를 향해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치 그 소리를 들을 누군가 있다는 듯이.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만든 것이다.

   그는 부수고 있었다. 자신의 힘을 지켜보는 일은 그를 쉬지 않고 일하게 했다. 이제 그에게는 오직 그의 소리만이 들렸다. 그는 주먹을 좀더 열심히 휘둘렀고, 좀더 빠르게 휘둘렀다. 동이 트고 사위가 어둠에 잠기기를 반복하는 동안. 동이 트다 부서지다 깨지다 흙바닥이 눈밭으로 변했고, 석상 위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가 녹았다. 석상을 타고 물이 줄줄 흘렀다. 석상에 얼룩이 생겼다. 석상이 붉게 물들었다가 어둠 속에 잠겼다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사이. 어떤 석상들이 어떤 석상들과 닮았는지, 어떤 석상들이 모래바람에 조금씩 닳아가는지 어떤 석상들이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그가 생각해보지 않은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없는 것은 없는 것이지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는 계속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그의 몸은 계속해서 일정 체온을 유지했다. 선은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선이 그의 예상을 앞질러 갔다. 킁킁. 킁킁 킁킁. 셀 수 없이 많은 밤이 지났을 때, 그는 구멍을 보았다.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주먹으로 찍었기 때문에 그는 넛이 쪼개질 것을 상상했지만 넛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넛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넛은 어제와 오늘의 경계. 넛은 두려움과 두려움의 경계. 넛은 유혹과 유혹의 부름. 그는 곧 넛 너머를 보게 될 것이고 그는 넛 너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쉼 없이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다시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마침내 구멍을 보았던 것이다. 넛의 끝. 그는 거기에 생긴 것이 분명 넛의 구멍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쏟아져들어오거나 바람이 불어오진 않았지만. 그는 그것이 구멍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서 있는 벌판의 석상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그는 그때 분명 넛이 완전히 뚫렸다는 것을 느꼈다. 넛에 처음 금이 갔던 순간과 달랐지만, 주먹이 분명 뭔가를 뚫고 통과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주먹이 넛에 부딪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서는 감각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주먹은 딱 그의 힘만큼 넛을 향해 나아갔다가 그의 힘보다 강한 넛의 힘에 부딪혀 멈춰 섰다. 이미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한 동작이었기 때문에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에밀 시오랑은 말했다. “무지는 모든 신들을 합쳐놓은 것보다도 오래되었고 더 강력하다.” 넛은 공고해 보였다. 넛은 단단해 보였다. 넛은 거대해 보였다. 아닌 게 아닌데. 그는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그는 빠르게 주먹을 빼냈다. 넛에는 이미 꽤 큰 구덩이가 파인 상태였다. 제발요. 한 번만. 제발. 그는 그 구덩이의 바닥이 여전히 거대한 넛으로 막혀 있다는 사실에 매번 새롭게 솟아오르는 의지를 느꼈었다. 즈즈브브키키브브. 그런데 그 구덩이의 끝에 분명한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는 그의 두 주먹 크기보다 조금 더 큰 그 구멍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구멍은 빈틈없이 막혀 있었다. 그는 구멍을 꽉 막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것을 만져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넛의 구멍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눈물이 고이면 눈을 감게 되죠. 그는 손끝에 닿을 그것의 감촉을 떠올리다가 깨달았다. 그가 이미 넛 속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을. 파도, 파도. 이미 수없이 그의 손이 넛에 닿았다는 사실을. 그는 손가락 끝으로 넛의 구멍을 막고 있는 것의 촉감을 느끼며 깨달았다. 주먹으로 무엇도 만진 적 없다는 것을. 용도 변경. 그는 손을 빼냈다. 구멍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떤 질감. 그의 눈에 그것은 분명히 어떤 질감을 가지고 있는 천처럼 보였다. 고생이 많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느낀 바로 그 질감. 그는 벌겋게 부어오른 자신의 손을 보았다. 방바닥이나 닦고 말해.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등을 보았다. 손바닥에 방금 전에 만진 것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달려가 안기는 개의 숨소리. 저건. 그러니까. 저게. 얇은 모직 코트. 바로 그것과 비슷했다. 질량이 클수록 관성이 크다. 좋지 않은 재질의 모직 코트. 검정 코트. 그도 그런 옷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유구한 외면의 질량. 그가 보기에 그건 분명 검정 코트였다. 왜 검정 코트가 넛을 가로막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정 코트임은 분명했다. 웃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 코트를 누군가 입고 있는 거라면. 그 코트는 곧 누군가의 등이었다. 꼬인 방식도 가지가지. 그가 코트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면 바로 코트가 돌아서고, 코트가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양쪽의 얼굴이 터지고, 양쪽의 피가 흐르고, 누군가는 죽을지도 몰랐다. 당신 애들 생각은 안 해? 그는 코트를, 누군가의 등일지도 모르는 그것을, 그가 애써 뚫어낸 넛의 구멍을 막고 있는 그것을 가만히 보았다. 거기. 거기 누구요. 그는 불러보려다 말았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그가 귀를 기울이자 일시에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는 아직 넛의 안쪽이고 그는 넛 뒤에 누가 있는지 몰랐다. 고요했다. 그는 계속해서 휘두른 주먹으로 검정 코트를 밀어보았다. 검정 코트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그는 구멍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양 손바닥으로 온 힘을 다해 밀었지만 검정 코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에 자신의 체중을 모두 실어 다시 밀었다. 검정 코트는 움직이지도, 돌아서지도, 어떤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씨발. 뭐야. 씨발. 그는 긴장을 풀기 위해 팔을 위아래로 털었고, 제자리에서 두어 번 뛰어올랐고, 의미 없는 말을 반복했다. 뭐야. 씨발. 뭐야. 욕이 저절로 나왔다. 씨발. 그는 두 주먹을 동시에 꽉 쥐었다. 몸이 식는 것을 느꼈다. 손이 시린 것도 같았다. 넛이 그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코트와 비슷한 코트를 입고 있다고 해서 넛이 아닌 건 아니었다. 저건 거의. 그는 더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순간 주먹을 쥔 손에 피가 도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과 똑같이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흙먼지가 날렸다. 숨을 참고 주먹을 휘둘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튕겨 돌아오지 않고 넛에 꽂힌 순간, 그는 눈을 떴다. 넛에 박힌 주먹을 빼내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다. 주먹이 넛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는 주먹을 빼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넛이 주먹을 물고 있는 힘이 강해 주먹을 빼다가 팔이 빠질 것 같았다. 그는 넛에 발을 대고 몸을 뒤로 눕혔다. 그는 두려웠다. 식은땀이 흘렀다. 씨발. 그는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게 중심을 완전히 허공에 두었다. 순간, 주먹이 빠져나오면서 그는 뒤로 넘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몸에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빠져나온 주먹을 보았다. 상하거나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는 분했다. 그는 외치고 싶었다.

   넛은 넛이다.
   넛은 넛이다.
   넛은 넛이다.

   동굴처럼 파인 넛 안은 고요했다. 그는 일어섰다. 넛을 노려보았다. 이제 그의 눈앞에는 그만한 구멍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먹이 박혔던 자리를 피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을 보다 살살 휘둘렀기 때문에 주먹은 깊이 박히지 않고 바로 빠져나왔다. 그는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다시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빠르게 치고 빠졌다. 주먹을 휘둘렀다. 넛 너머를 막고 있는 넛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여러 차례 박혔다가 빠져나온 넛은 짓이겨졌다. 넛은 뚫렸다. 그건 너무 자연스럽고 빠르게 일어난 일이라 마치 오래전에 본 단 한 순간의 미래 같았다. 그는 순식간에 넛을 통과했다. 완전히 짓이겨진 넛을 보았다. 심장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못할 게 뭐야. 씨발.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온 힘을 실어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순간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가 넛에 대한 두려움 없이 주먹에 온 힘을 실었기 때문에. 그는 몸의 중심을 잃고 고꾸라질 뻔했다. 그의 주먹은 어디에도 박히지 않았다. 검정 코트. 그런 건 없다.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 습관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정확히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의 시작과 끝. 단 한 번의 어떤 결심은, 상상은, 생각은. 구멍은 쉽게 뚫렸다. 무엇도 그를 막아서거나 그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은. 뭐야. 그는 자신이 빠져나온 구멍을 향해 돌아섰다. 구멍에 침을 뱉었다. 구멍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허탈했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흙바닥 위에 그어져 있는 금을 넘듯 넛의 구멍을 통과했다. 그는 구멍을 통과하자마자 빠르게 뒤로 돌았다. 이번에도 구멍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구멍은 확실히 뚫려 있었다. 다시 넛의 구멍을 통과했다. 구멍을 통과하자마자 그는 또다시 뒤로 돌아섰다. 넛을 보아야 했다. 넛의 구멍으로 빠져나오기 전, 그가 만들어낸 구덩이. 그가 넘어온 넛 너머. 뒤를 돌았을 때 그의 앞에는 여전히 넛과 넛의 구멍이라고 짐작되는 어둠이 있었다. 그는 피로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 그는 소리를 내보았다. 소리는 그에게 돌아오지 않고 사라졌다. 그는 몇 발 뒤로 물러났다. 음. 고요했다. 넛이 조금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음. 그가 넛을 향해 서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앞에는 분명 넛이 있었다. 중심과 주변이 있게 마련인데. 그는 이미 여러 번 반복한 자신의 생각을 반복했다. 그가 낸 구멍. 넛의 심부. 그는 단숨에 어둠을 가로질렀다. 넛의 구멍을 등지고 앞을 향해 걸었다. 구덩이를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흙먼지가 불어왔다. 숨을 참았다. 그의 정수리에, 어깨에, 발등에. 넛. 넛. 넛. 넛. 주먹을 휘두르던 감각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킁킁. 킁킁.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킁, 킁, 킁, 킁. 환청이 아닌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 석상들이 있을 것이다. 비는 그친 지 오래. 그는 어둠 속에서 익숙한 석상 하나를 알아봤다. 로체. 마칼루. 마나슬루. 이건. 흰. 검은. 영혼의. 그는 분명 그것과 닮은 것을 알고 있고, 그건. 눈측백. 미선. 서어. 파괴의. 그는 그 석상이 어둠 속에 있어서 다른 것과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다른 것. 성적인. 로맨스. 성적인. 조금 떨어진 곳에 조금 더 작은 석상들이 놓여 있다. 짝수와 홀수. 같은 크기의 석상들 몇이 나란히 모여 있다. 이건. 적극적으로. 녹아내린. 망각의. 그는 끝내 그것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무엇과 닮았다는 인상만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그는 계속. 비장한, 변태, 태고의, 판타지, 뭔가 닮은 그것의 근처를 맴돌았다. 뭔가. 뭔가. 그런 건 없고. 조금 더 앞에 낯익은 석상이. 넛을 떠올리게 하는 석상이 있었다. 그는 이제 이 석상은 넛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 오래전의 일. 무엇도 아닌 무엇. 그런 건 없다. 그는 넛을 부수는 데 성공했고, 넛에는 분명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넛에 뚫린 구멍을 생각하자, 성취감이 차오르고, 눈앞이 조금 전보다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만한 넛의 구멍을. 힘을. 마음을. 그는 단숨에 구멍 앞으로, 넛 너머로 돌아온다. 그는 실제로 그 자리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오는 절차는 간단히 생략된다. 그는 넛 너머의 어둠을 더 바라보지 않고 단번에 뒤로 돈다. 순식간에 벌판의 석상들, 어둠 속에 우후죽순 서 있는 석상들이 사라지고. 뒤로 도는 동작이 미처 끝나기 전. 후려침. 그는 쓰러진다. 그는 누워 있다. 그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었던. 있었던. 있었던. 그는 미처 석상들 사이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방금 전까지 반복했던 방식으로 생각한다. 잊고 있었던. 잊고 있었던. 고등어 타는 냄새. 그것이 오랫동안 한 점을 겨냥해 왔다는 사실만이 분명하다. 확실한 겨냥. 한 치의 오차 없는 조준. 그는 어렴풋이. 당신. 그의 팔은 주먹을 기억하고 있다. 거의 주먹이었던 그를 기억하고 있다. 밀어냄. 휨. 벌판이다. 어둠 속에 석상들이 끝도 없이 놓여 있다. 검은 석상 옆에 검은 석상. 큰 석상 옆에 더 큰 석상. 석상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는 벌판이다. 검은 석상과 검은 석상. 어두운 석상과 더 어두운 석상이 흙먼지가 날리는 바닥에 끝도 없이. 하나씩. 놓여 있다. 바람이 불어 그의 머리칼이 흐트러진다. 그의 두 눈은 감겨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더는 현실로 도망칠 수 없다. 그가 무엇이 가능하기를 바랐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절망은 부서지지 않는다. 킁. 킁. 킁. 킁. 킁 킁 킁 킁 환청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는 생각하지 않는다.

윤해서

숨을 참는 습관이 있습니다. 산과 바다를 자주 생각합니다.

2023/01/31
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