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료실 18번 책장 네번째 칸 여섯번째 줄 2번 책



   오른쪽왼쪽 앞뒤 위아래
   친구들이
   딱 붙어 있어도, 잔뜩 몰려 있어도
   하나도 신나지 않아, 여기서는
   아무도 날 봐주지 않는 걸

   반짝이는 눈동자 나타날 때면
   쿵쿵 쿵! 가슴이 울렸지
   혹시나 하고 두근두근
   혹시나, 콩닥콩닥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겉만 보면 알 리 없지
   내 속에 있는 비밀 이야기
   이 도서관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지
   여기, 나만 알지

   세 번 죽었다가 세 번 살아난
   삼척동자의 백두대간 레일로드 모험기, 그리고
   눈물 부르는 러브스토리, 나만 알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
   겉만 봐선 모르니까





   듣고 보이는 마음



   할아버지가 어릴 적 살던 바닷가에선
   여름 앞두고
   온 마을 사람 모여 해마다
   제사 지냈대요

   용왕님, 하늘님, 천지신명님
   바다 나간 우리 식구 무사히
   집으로 부른 배 타고
   돌아올 수 있게
   굽어살펴주시길 바라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빠가 어릴 적 살던 집, 마당 한구석에선
   덩그러니 달 떠 있는 밤하늘 아래에
   물 한 사발 떠놓고
   굽은 허리, 아픈 무릎 굽혀가며
   절 하던 할머니가 있었대요

   조상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일터로, 학교로 나가는
   우리 식구 오늘도
   아무 탈없이 지내게 해주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빠에게서 두 귀로 듣고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우리 할머니들 마음 담긴, 그 길 따라
   여기 지금 나, 이렇게
   있습니다

연진영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혼재되어 있던 청소년기를 지나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까지 목도하고 있는 청년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대가족 안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옛이야기에 노출된 채 성장했다. 새로운 것이 출현하는 21세기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미디어 매체에 떠밀려 외면 받는 도서관에 전시된 책, 이제는 특별한 뉴스거리가 되어 버린 고사(출어제) 지내기, 정화수 떠놓고 빌기에 담긴 사람 대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길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의 매개체가 되는 아동청소년문학가가 되어 인간다운, 사람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