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
   “밤을 보내고 아침이 밝아오도록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너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덩치가 등장하고부터 할머니는 종종 이런 말을 했었다. 그때 나는 할머니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할머니는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새까만 밤을 홀로 보내고 연푸른 새벽빛이 번지도록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어젯밤 할머니는 골목 안쪽에 있는 백숙집 쓰레기통에서 적당히 살점이 붙어있는 닭고기를 한 움큼 물고 담벼락 위로 올라왔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백숙집 닭고기는 언제 먹어도 좋았다. 할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할머니도 먹어!”
   “배불리 먹고 온 거야. 너나 얼른 먹어.”
   “히히, 그래?”
   나는 반갑게 할머니 앞으로 밀어놓은 닭고기를 잡았다. 그때였다.
   “여기 있다!”
   덩치를 졸졸 쫓아다니는 흰수염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장 덩치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허둥거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숨어!”
   할머니가 재빨리 말을 뱉었다. 그러고는 덩치를 향해 앞발을 들어올렸다.
   “백숙집에는 가지 말랬지!”
   덩치가 소리쳤다. 순간 할머니가 덩치를 향해 몸을 날렸다.
   “키야옹!”
   할머니가 덩치의 앞가슴을 물고 담벼락 아래로 굴렀다. 덩치의 소리가 매섭게 치솟았다. 나는 재빨리 담벼락을 달려 이웃집 지붕 아래로 숨어들었다.
   “캭!”
   흰수염도 담벼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할머니……“
   나는 두 눈을 감고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런 일은 전에도 숱하게 벌어졌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희붐하게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돌아올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다. 고개를 처박고 나는 설핏 잠이 들었다.
   “이거 뭐야?”
   “조그만 게 아직도 여기 있네?”
   덩치랑 흰수염의 목소리였다.
   ‘도망쳐!’
   가슴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잽싸게 몸을 틀었다. 덩치랑 흰수염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수염을 바짝 세우고 나는 바지런히 담벼락 위를 달렸다. 담벼락은 구불구불 길게 이어졌다.
   얼마쯤 달렸을까. 숨이 코끝까지 차오른 느낌에 나는 달음박질을 멈췄다. 그리고 수염 끝으로 주위 공기를 살폈다. 다행히 친구들의 냄새는 묻어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친구들의 냄새가 없는 곳이면 안전하다고 했다. 담벼락 위에 길게 몸을 뻗고 담벼락에 둘러싸인 좁은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양쪽으로 세 집씩 여섯 집이 마주보고 있는 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지나가면 딱 맞을 만큼 좁았다. 붉은 벽돌에 시멘트를 발라놓은 담장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고, 아래쪽으로는 시커먼 이끼가 덮여있었다. 큼큼한 냄새도 났다.
   “이러니까 친구들 냄새가 안 나지……!”
   휭하니 몸을 돌리려는데 골목 끝 집 자그마한 대문 옆에 층층이 쌓여있는 종이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골목으로 내려가 종이 뭉치로 다가갔다.
   대문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게 쌓아올린 종이 뭉치는 종이상자를 쫙 펼쳐서 차곡차곡 얹어둔 거였는데, 아래쪽에는 쫙 펼친 종이상자 하나를 정면으로 세워놓아 뒤에 있는 종이 뭉치를 가리려는 듯 보였다.
   “이런다고 여기에 종이 뭉치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모르겠어?”
   피식거리며 정면에 세워놓은 종이상자를 툭 쳤다. 종이상자는 맥없이 쓰러졌다. 그 뒤로 나 하나쯤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공간이 나타났다.
   “우와!”
   쫙 펼친 종이상자 묶음은 바닥부터 대문 중간 높이까지 촘촘히 쌓여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몸을 길게 뻗고 누울 정도의 빈 공간 옆으로 벽돌처럼 네모나게 접은 종이상자가 층층이 쌓여있고, 빈 공간과 벽돌 같은 종이상자 위쪽에 종이 뭉치가 지붕처럼 얹혀 있었다. 한 마디로 종이상자로 만든 집이었다.
   서둘러 상자 집의 빈 공간으로 들어갔다. 보던 것보다 훨씬 아늑했다. 나는 앞발을 길게 뻗어 맥없이 쓰러진 종이상자를 끌었다. 그러고 보니 정면을 향해 세워놓은 종이상자는 이 집의 대문이었다.
   “이 귀한 걸 쓰러뜨리다니! 쯧쯧!”
   낑낑거리며 종이상자를 일으켜 세우자 집안이 어둠에 잠겼다. 살짝 배가 고픈 것도 같았지만 꼼짝하고 싶지 않았다. 앞발에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포근한 상자 집 덕에 잠도 금세 들었다.
   “이걸 누가 건드렸나!”
   거친 목소리가 상자 집 문을 건드렸다.
   ‘집주인이다!’
   도망을 쳐야 하나 싶었다.
   “주인이 있는 곳은 차지하면 안 된다. 그건 우리들의 룰이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부리나케 상자 집 밖으로 튀어 나갔다.
   “에구머니나!”
   고불고불 파마머리를 한 할머니가 정면에 세워놓았던 종이상자를 툭 놓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담벼락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저놈의 괭이 새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할머니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그것 좀 치우시라구요.”
   걸쭉한 아주머니 목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바짝 몸을 낮춘 채 골목 안을 내려다보았다.
   “내 물건 내 집 앞에 쌓아놓는 게 뭐가 어때서?”
   할머니가 아주머니를 향해 우악살스럽게 소리쳤다.
   “지저분한 게 꼬이니까 그러죠!”
   아주머니도 악에 받친 듯 소리를 높였다.
   ‘지저분한 거라니? 내가?’
   아주머니 말에 기분이 확 상했다. 나는 자리에서 꿈쩍도 않은 채 아래쪽을 내다보았다. 할머니 옆에 오도카니 서 있던 남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을 제 입술에 갖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싱긋 웃더니 살그머니 고개를 까닥였다.
   “얼른 가!”
   할머니가 상자 집의 종이 묶음을 가지런히 챙기며 아이에게 소리쳤다. 아주머니는 세게 콧방귀를 뀌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두른 아이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타박타박 골목을 나섰다. 나는 아이의 뒤를 가만가만 쫓았다.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힐끔 보았다. 그러고는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의 웃음이 화들짝 놀랐던 가슴을 스르르 녹여줬다. 아이가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몸을 돌렸다. 우선은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동시에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이번에는 덩치와 흰수염에게로 생각이 옮겨갔다. 찢어질 듯 솟구치며 엉키던 울음소리가 왕왕 울렸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할머니는 언제고 만날 거였다. 그때까지 덩치랑 흰수염을 피해 잘 먹고 잘 지내야 했다. 백숙집 닭고기가 생각났다. 백숙집은 아직 주인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도 틈나는 대로 백숙집을 찾아가 쓰레기통을 뒤졌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수염을 세우고 나는 훌쩍 담장을 넘었다.
   백숙집에 다가갈수록 익숙한 냄새가 맡아졌다. 오다가다 만났던 친구들의 냄새였다. 친구들도 먹을 걸 찾아 백숙집 주위를 어슬렁대는 게 분명했다. 서둘러야 했다. 나는 날개라도 단 것처럼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가까이에 백숙집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키야옹!”
   “캬아악!”
   백숙집 뒤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좋은 곳을 차지하려면 전쟁을 치르는 수밖에 없지.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 발톱으로 할퀴고. 상대의 몸에 피를 내야만 그곳의 주인이 될 수 있단다.”
   가끔씩 담벼락 위로 낯선 친구들이 찾아오면 할머니는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며 발톱을 휘둘렀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었다.
   나는 백숙집 가까이 있는 담벼락을 타고 올랐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는 얼룩무늬 친구가 있었다. 녀석도 백숙집을 찾아오다가 캭캭거리는 소리를 듣고 담벼락으로 올라온 듯 보였다.
   “결국 백숙집에도 주인이 생기나 보다.”
   얼룩무늬 친구가 허탈한 듯 말을 뱉었다. 나는 백숙집 뒤편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덩치와 흰수염 둘이서 새까만 친구 하나를 매섭게 공격하고 있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도 새까만 친구처럼 덩치와 흰수염의 공격을 맥없이 받아냈을 것 같았다.
   “도와줘야겠어.”
   백숙집 뒤편으로 내려가려는데 얼룩무늬 친구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까망이한테 너 같은 아기가 도움이 될 것 같아?”
   “까망이?”
   덩치와 흰수염에게 맞서고 있는 친구가 까망이인 모양이었다. 얼룩무늬 친구가 말을 이었다.
   “까망이도 싸움이라면 누구한테도 지는 법이 없었는데, 이제 까망이도 늙었나 봐.”
   얼룩무늬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담벼락 뒤쪽으로 사라졌다. 그러는 새 까망이도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눈가와 앞다리에는 빨간 핏물이 비쳤다.
   “이제부터 여기는 우리 둘이 주인이다!”
   “근처에서 알찐거리는 녀석들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덩치와 흰수염이 떵떵 큰소리를 쳤다. 주위에 숨어있던 친구들이 허탈한 듯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지?”
   먹을 것을 편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를 따라다닐 걸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였다.
   하루 종일 쏘다녔지만 소득이 없었다. 상자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느릿느릿 담장을 타고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할머니나 옆집 아주머니에게 걸리면 상자 집에서도 쫓겨날지 몰랐다. 고개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고요한 골목에 구수한 냄새가 가득했다. 골목 안 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뱃속이 요란스럽게 꿀렁거렸다.
   “야옹아!”
   담벼락 아래에서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살그머니 꼬리를 세웠다.
   “너 이거 먹을 줄 알아?”
   아이가 찐 고구마를 내밀었다. 당연히 먹을 줄 알았다.
   “야옹!”
   다급하게 야옹거렸다. 아이가 생긋 웃으며 찐 고구마를 상자 집 앞에 내려놓았다.
   “이거 먹고 여기에서 자. 여기 내 집이야.”
   아이가 상자 집을 가리켰다. 나는 얼른 꼬리를 내렸다. 집주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하룻밤을 보냈다.
   “내일 또 만나.”
   아이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작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헐레벌떡 상자 집 앞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고구마를 먹었다. 고구마는 달았다.
   단잠을 자고 나는 꼭두새벽같이 상자 집에서 나왔다. 상자 집을 가리고 있는 네모난 종이상자도 얌전히 세워두었다. 상자 집 옆 작은 대문이 열리고 할머니와 아이가 나왔다. 아이의 눈길이 힐끔 상자 집에 닿았다. 나는 맞은편 집 지붕으로 살포시 올라갔다. 다행히 아이가 나의 움직임을 알아보았다.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할머니와 골목 입구에서 헤어진 아이는 대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학교에 이르는 길을 아이와 나란히 걸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는 빵조각을 내게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빵은 먹지 못했다.
   “다른 거 갖다 줄까? 고구마?”
   아이는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가 찐 고구마를 갖고 왔다. 옆에는 맑은 물도 한 접시 놓았다. 나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고구마를 맛있게 먹었다.
   그 뒤로도 아이는 잘 구운 생선이며 삶은 닭고기, 당근이나 호박 따위를 상자 집 옆에 내어놓았다. 먹을 것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상자 집 안에서 달게 잠을 자고 상자 집 주위를 맴돌다가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은 다아 학원에 가 있어. 그런데 나는 학원에 안 가니까 같이 놀 친구가 없어.”
   먹을 걸 내어주고 아이는 내 옆에 앉아 주절거렸다. 나는 귀를 쫑긋거리며 아이의 말에 반응했다.
   “여기는 할머니 집이야. 원래는 할머니 혼자 살았는데 작년에…… 엄마가 일을 하러 가서 나 혼자 있으니까 할머니가 데리고 온 거야.”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왜 혼자 살아?”
   머릿속에 할머니가 떠올랐다. 하지만 아이에게 대꾸해줄 방법이 없었다. 아이가 허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 가끔 아빠가 찾아와……”
   말을 흐리며 아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디가 아픈가 싶었다. 나는 아이 곁에 바싹 다가가 살며시 몸을 비볐다. 아이의 손이 내 이마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골목 안쪽으로는 햇살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나는 전날 저녁에 아이가 챙겨준 음식을 찔끔찔끔 나눠 먹으며 골목 안 담벼락과 납작한 지붕 위를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바람이 살랑거리며 털끝을 간질였다. 기분 좋은 오후가 시작되는 참이었다. 그런데 수염 끝에 낯선 느낌이 다가왔다. 나는 얼른 상자 집 쪽을 돌아보았다. 까만 고양이가 상자 집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거긴 내 집이야!”
   상자 집 쪽으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까만 고양이가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 백숙집 뒤편에서 보았던 까망이었다.
   “아하, 이 냄새가 네 꺼였구나.”
   까망이가 비웃듯 입꼬리를 뒤틀었다. 서둘러 상자 집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까망이의 발톱이 내 어깨를 잡았다.
   “캬악!”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나는 빽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집었다. 까망이의 발톱이 다시 나의 앞가슴을 공격했다.
   “이제 여기는 내 집이야!”
   까망이가 소리쳤다.
   “아니야. 여긴……!”
   까망이의 말에 반박을 하려는데 까망이의 이빨이 내 목을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게!”
   까망이가 물고 있던 목을 놓았다.
   “캑캑캑!”
   숨을 고르고 있는데 까망이가 상자 집의 네모난 종이상자를 툭 쳐냈다. 가려져 있던 상자 집이 그대로 드러났다.
   “와우, 여기 최곤데!”
   까망이가 의기양양하게 상자 집으로 발을 들였다.
   “안 된다고!”
   까망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발톱을 세우고 까망이의 등을 할퀴었다. 하지만 까망이는 조금도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아가,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너는 다른 곳을 찾으렴.”
   “덩치한테는 꼼짝도 못 했으면서!”
   성이 나서 나는 박박 큰 소리를 냈다. 까망이의 꼬리가 반짝 세워졌다. 그러고는 눈을 갸름하게 떴다가 다시 크게 뜨며 말했다.
   “너의 할머니도 덩치한테 당했지.”
   “무슨 소리야?”
   “우리 싸움꾼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싹 돌았어. 너의 할머니도 한때는 싸움 좀 한다는 싸움꾼이었는데 덩치한테 꼼짝도 못 하고 당했다고.”
   까망이는 마치 즐거운 이야기라도 들려주는 듯 떠벌렸다. 더는 봐줄 수 없었다. 이빨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까망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까망이는 싸움꾼이었다. 날렵하게 몸을 피하더니 두 발로 내 등을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내 뒷덜미를 물었다. 나는 최대한 버둥거리며 까망이의 이빨을 피했다.
   “키야옹!”
   “캬앙!”
   사나운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아이, 재수 없어. 저리들 가!”
   옆집 아주머니가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싸움을 끝낼 수 없었다. 여기에서 물러나면 나는 상자 집을 잃고, 아이와도 헤어져야 했다.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거야.”
   헥헥거리며 까망이에게 돌진했다. 까망이는 여유롭게 몸을 피하며 나를 공격했다. 까망이의 발톱에 내 털이 뽑히고 상처가 났다. 어쩌면 빨간 핏물이 비쳤을 것 같았다.
   “너 뭐야!”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까망이의 몸이 데구르르 굴러갔다. 옆으로 아이의 가방이 툭 떨어졌다.
   “당장 꺼져!”
   아이가 매섭게 소리쳤다. 까망이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를 보았다. 아이가 옆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까망이는 맞은편 지붕 뒤로 잽싸게 사라졌다.
   “괜찮아?”
   아이가 나를 안아 올렸다.
   “에이, 여기 피나잖아.”
   아이는 나를 끌어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현관 입구에 있는 약상자에서 빨간약을 꺼냈다.
   “저렇게 무대뽀로 덤비는 녀석들은 혼꾸녕이 나야 해. 절대로 봐주면 안 돼.”
   아이는 내 몸 구석구석에 빨간약을 바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는 도망쳐. 다치면 너만 손해야.”
   아이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눈에 물기가 차는 것 같았다.
   “이야옹.”
   나는 아이를 향해 앞발을 내밀었다. 나를 걱정해주는 아이가 참 고마웠다.
   그날 저녁 아이는 자그마한 나무토막 하나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저 녀석이 또 찾아올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빨도 발톱도 단단해져야 해.”
   아이는 매일 저녁 먹을 것과 함께 고무공도 갖다 놓고, 뜯어진 가방도 챙겨줬다. 나는 아이가 내어준 물건들을 맹렬하게 뜯고 할퀴었다. 그럴수록 이빨과 발톱이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까망이는 물론 덩치랑 흰수염이 한꺼번에 공격을 해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러는 새 까만 밤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휘영청 떠 있는 둥근 달에 할머니의 얼굴이 그려졌다.
   “원래 우리는 혼자 사는 동물이야. 너는 잘할 수 있다.”
   할머니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할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잘해야 했다. 나는 아이가 넣어준 청가방을 힘 있게 물어뜯었다. 그때 상자 집 뒤로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수염을 발딱 세웠다. 낯선 기운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다가 찌익 미끄러졌다. 그러고는 거칠게 숨을 내쉬고 다시 터억터억 걸었다. 상자 집 안에서 나는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철컹 대문 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
   남자가 아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현관문 소리 그리고 할머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조용해지더니 우당탕 소리와 함께 가볍고 날랜 발소리가 좁은 마당을 지났다. 그리고 상자 집 문이 활짝 열리고 아이가 들어왔다. 화들짝 놀라 나는 아이를 보았다. 속옷 차림에 맨발인 아이는 잔뜩 몸을 옹크린 채 파들파들 떨었다. 상자 집에 내가 있다는 걸 잊은 것처럼 아이의 눈은 상자 집 바깥을 향했다.
   “이야옹……”
   낮은 소리로 아이를 부르는데 현관문이 부서질 듯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발자국을 다급한 발자국이 따라나섰다.
   “이 새끼, 어디로 도망친 거야!”
   남자가 험악하게 소리쳤다. 아이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무릎 사이로 고개를 처박았다.
   “네가 이 모양이니까 네 자식이 너 싫다고 도망치지!”
   할머니도 악을 썼다. 다시 무엇인가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대문이 철컹거리며 열리고……
   “이 새끼 때문에 애 엄마가 도망친 거라고요.”
   “애 엄마도 애도 다 너 때문에 병들고 아픈 거야. 억지 부리려거든 다신 오지 마라!”
   할머니가 성질을 부렸다. 그래도 남자는 좁고 어두운 골목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아유, 또 찾아와서 난리네!”
   옆집 아주머니도 빽빽거렸다. 남자가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엇인가를 마구 집어던지는 듯했다. 떨어지고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에 아이는 두 귀를 양손으로 막고 달달 떨기만 했다.
   “야옹……”
   나는 아이에게 앞발을 기댔다. 그래도 아이는 반응이 없었다. 남자의 등장과 함께 아이의 정신이 몸에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을 때는 도망치라던 아이의 말이 생각났다.
   ‘저 사람이 나타나면 너는 항상 여기로 도망친 거야?’
   나는 물끄러미 상자 집을 둘러보았다. 나라면 모를까 아이가 숨기에는 너무나 작고 약한 집이었다. 무대뽀로 덤비는 녀석은 절대 봐주지 말라던 말도 떠올랐다.
   ‘봐주지 말라더니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아이가 던져주었던 고무조각과 해어진 수건이 보였다. 나는 고무조각과 수건을 앙칼지게 물어뜯었다. 언제까지고 숨어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우당탕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열렸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래?”
   할머니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쿠당탕거리며 상자 집이 무너졌다.
   “키야옹!”
   나는 잽싸게 상자 집을 빠져나왔다. 무너진 상자 집 위에 할머니가 쓰러져 있고, 아이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듯 붙어버렸다.
   “이 새끼, 여기 있었어?”
   남자가 성큼 상자 집 쪽으로 다가왔다.
   “안 된다!”
   할머니가 양팔을 쫙 벌리고 남자 앞에 맞섰다. 담벼락 위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우리를 공격해오면 할머니는 항상 내 앞을 버티고 막았다. 나는 슬쩍 아이를 보았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이는 영락없는 나였다.
   ‘숨지 않을 거야! 싸워서 지킬 거야!’
   나는 가볍게 몸을 날려 남자의 허벅지 안쪽을 물었다. 놀란 남자가 비척거리다 옆으로 쓰러지는데 할머니가 덥석 남자의 몸을 덮쳤다.
   “여기 신고 좀 해줘! 애 아빠가 애를 막 때린다고!”
   할머니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데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다가왔다.
   “벌써 신고했어요!”
   옆집 아주머니가 대꾸했다. 그리고 경찰관 아저씨 두 명이 저벅저벅 골목 안으로 다가왔다.
   “아, 이 새끼는 뭐야!”
   남자가 큼직한 손으로 나를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나는 악착같이 남자의 바지에 매달렸다. 경찰관 아저씨가 남자를 잡았다. 그제야 나는 남자의 바지를 놓았다. 할머니가 헉헉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속옷 차림의 가녀린 아이가 할머니 품에 안겼다. 나는 멍하니 아이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안은 할머니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도 바들바들 떠는 것 같았다. 나는 느릿느릿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나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

최은영

아픈 아이들의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글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 글이 아픈 아이들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11/27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