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오이는 빼주세요 / 울울한 페이지를 말리는 방법
오이는 빼주세요
향긋하고
아삭한
오이는 빼주세요
저는 이제
안 먹어도 되거든요
평생 안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오이 한 조각
이미 먹었거든요
아직도 뱃속에 남아
길쭉하게 자라는 기분
생각만 해도
입안이 뽀드득뽀드득
오이 비누 향
거품
새어나올 거 같거든요
그러니 제발
오이는 빼주세요
못 먹는 거 하나쯤
다들 있는 거잖아요
울울한 페이지를 말리는 방법
물에 젖은 종이처럼
반쯤 투명해진 마음
눈에 비친 글자처럼 반쯤은 알 것 같은
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마음
여기 있지
함부로 건들면 찢어질 거 같고
아무리 잘 말려도
이전과는 같을 수 없는
마음 한 페이지
울울한 마음에
그냥 넘기다간
우르르
번져
무너질지
몰라
‘너와 나’ 페이지
켜
켜
이 쌓아
ㅇ
ㅗ ㅁ ㅏ ㅇ
ㄴ -
ㅁ
다정하게 말려주기……
김성진
돌이켜 봅니다. 자주 멈칫하던 내가 거기에 서 있습니다. 어린 내가 무언가를 말하는데… 잘 받아적었나 모르겠습니다. 틀려도 괜찮답니다. 그래서 괜찮을 거 같습니다.
2020/07/28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