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야, 오늘부터 선생님 말씀 진짜 진짜 잘 들어야 해. 수업 시간에 딴생각하지 말고.”
   엄마는 어젯밤부터 다섯 번 넘게 이야기하고도 부족했는지 현관에서 다시 한번 말했다. 민지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수업 시간에 잘 듣나 안 듣나 선생님이 바로 안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는데 엄마는 민지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딩동. 문자가 왔다.
   엄마가 핸드폰 보는 틈을 타 꾸벅 인사를 하고 달려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아아.”
   마음이 급했다. 얼른 학교에 가서 두기에게 새로 산 안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민지는 신발주머니를 붕붕 돌리며 2학년 3반 교실로 뛰어올라갔다.
   신발장을 밟고 올라가 창문 너머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두기 자리에 두기는 없고 책가방만 걸려있었다.
   ‘두기는 어디 있지? 짠! 하고 멋지게 등장해야 하는데.’
   유리창에 코를 대고 고개를 돌리다 그만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또, 또, 신발장 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나요, 안 했나요? 눈빛만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민지는 후다닥 내려와 먼지 위에 찍힌 발자국을 지웠다.
   “고민지, 앞으로.”
   슬그머니 자리로 들어가 앉으려 했지만 선생님이 민지를 불렀다.
   ‘걸렸구나!’
   어쩐 일인지 선생님은 민지를 혼내지 않았다. 대신에 민지 머리 위에 차갑고 딱딱하고 쫀쫀한 무언가를 씌워주었다.
   “이게 뭐에요?”
   “우리의 새 친구, 집중호우.”
   민지는 더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민지의 진짜 친구 두기를 찾아야 한다.
   “수정아, 두기 못 봤어?”
   “엄두기? 저기 있잖아.”
   수정이가 교실 뒤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 두기를 가리켰다.
   ‘두기가 보면 깜짝 놀라겠지?’
   민지는 안경을 고쳐 쓰고 살금살금 두기에게 다가갔다.
   “안경, 두기야.”
   안녕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그만, 안경이라고 말해버렸다. 민지는 두기가 안경을 발견할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응, 안녕.”
   하지만 두기는 민지를 본체만체하고 거울만 뚫어져라 보았다. 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두기를 불렀다.
   “엄두기, 안녕.”
   드디어 두기가 뒤돌아 민지를 보았다. 이번에 민지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빳빳이 세워 두 안경알 사이의 코 받침 위로 아주 천천히 가져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두기가 말했다.
   “민지야, 이걸로 선생님이 우리 머릿속을 볼 수 있대.”
   두기가 민지에게 웬 까만 머리띠를 내밀며 말했다. 민지의 안경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어깨 위로 붕붕 날던 민지의 마음이 배꼽까지 가라앉았다.
   ‘어떻게 라일라 안경을 못 알아볼 수가 있지?’
   민지의 안경은 그냥 안경이 아니었다.

   라일라, 라일라, 라일라의 안경만 있으면 문제없다네.
   누구도 우리를 말릴 수 없지. 라일라, 라일라.

   ‘캡틴 라일라’ 극장판 개봉을 기념하여 한정판으로 나온 ‘라일라 안경’이다. ‘캡틴 라일라’는 민지와 두기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다.
   ‘라일라처럼 머리를 묶고 올 걸 그랬나.’
   민지는 머리를 양 갈래로 나눠 잡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민지의 정수리에서 까맣고 뾰족한 뿔이 하나 솟아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 민지는 캡틴 라일라가 아니라 라일라의 천적 메가맨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제 보니 두기도, 수정이도, 교실의 친구들도 모두 다 뿔이 달린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섰다.
   “어때요? 머리띠 마음에 드나요?”
   “네.”
   “아니오.”
   모두가 네, 라고 하는 와중에 민지는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민지는 시커먼 머리띠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이 민지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아까 선생님이 머리띠 이름 알려줬는데 혹시 생각나는 사람?”
   “집중호우요.”
   두기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두기 잘 기억하고 있네요. 집중호우는 한자 좋을 호에 친구 우를 써서, 집중을 도와주는 좋은 친구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선생님이 칠판에 한자를 적자 아이들 몇몇이 머리 위로 손가락을 들어 따라 썼다.
   “나도 저것 쓸 수 있는데. 마술 천자문에서 봤어.”
   민지는 집중호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늘부터 집중호우가 여러분이 수업을 잘 들을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머리띠가 어떻게 도와줘요?”
   “모르는 것 물어보면 알려주는 것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그러는데 이거 우리가 딴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알려주는 거랬어. 그죠, 선생님?”
   아이들은 저마다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민지도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집중호우를 어디서 들었는지 드디어 생각이 났던 것이다.
   “선생님, 뉴스에서 날씨 아저씨가 말한 집중호우가 이거예요?”
   “아닙니다. 여러분! 질문은 설명 다 끝나고 하라고 선생님이 말했나요, 안 했나요?”
   민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선생님은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설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만, 그러다가 질문을 까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 여기를 잘 보세요.”
   선생님이 집중호우에 달린 세모뿔을 가리켰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사람 머리 모양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까맣게 잠들어있던 집중호우가 깨어나 불빛을 내뿜었다. 아이들이 쓰고 있는 집중호우에 빨강과 초록의 불빛이 반짝거렸다.
   “우와, 예쁘다! 크리스마스트리 같아!”
   두기의 말에 아이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조용, 조용. 집중의 박수를!”
   아이들은 박수를 세 번 치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여러분이 선생님 말을 집중해서 잘 들으면 집중호우에서 초록 불빛이 나오고, 지금처럼 선생님 말은 안 듣고 자기 하고 싶은 생각만 하면 빨간 불빛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친구의 머리 위에 놓인 집중호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2학년 3반 교실에 스물세 개의 초록 불빛이 빛났다. 두기가 머리 위 불빛을 손으로 가렸다. 그리고 외쳤다.
   “선생님, 저 지금 집중하고 있나 안 하고 있나 맞춰보세요.”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건 그럴 때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언제 쓰는 거예요?”
   “지금 한번 연습해보도록 합시다. 자, 다들 눈을 감으세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눈을 감았다. 하는 수 없이 민지도 두 눈을 꼭 감았다. 아무것도 없이 까만 배경에 초록빛 야광 점만 이쪽저쪽으로 흔들거렸다. 어지러웠다.
   “조용히 머릿속으로 숫자 하나부터 스물까지 세어봅니다.”
   민지는 실눈을 뜨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조용한 교실에 민지의 목소리만 퍼졌다.
   ‘아, 머릿속으로 세라고 했지, 참.’
   그만 깜빡 숫자를 입 밖으로 세고 말았다. 어디선가 삐빅, 삐빅 알람이 울렸다. 민지도 두기도 눈을 번쩍 떴다. 선생님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고민지. 그렇게 집중 안 하고 딴생각 하니까 틀리죠.”
   교실 텔레비전에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고민지라고 이름이 떠 있었다.
   “누군가 딴생각을 하면 이렇게 알람이 울립니다. 아마 지금 민지 엄마, 아빠한테도 핸드폰으로 알람이 갔을 거예요. 민지가 수업에 집중 안 한다고.”
   순식간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집중호우의 불빛도 사라졌다.
   민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알람을 받고 실망할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속상했다. 두기는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의 두기라면 분명히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민지에게 와서 위로를 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두기에게는 민지보다 집중호우라는 새 친구가 더 소중해 보였다.
   2교시는 수학 시간이었다. 2학년 3반은 곱셈 공부 전에 구구단 놀이를 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민지도, 수학을 싫어하는 두기도, 구구단 놀이는 모두 좋아했다.
   민지와 두기가 마주 보고 앉았다. 이렇게 앉으니 두기의 집중호우 불빛이 훤히 잘 보였다. 하지만 민지는 두기가 아니라 자기 집중호우가 지금 무슨 색일지 보고 싶었다. 눈을 있는 힘껏 위로 치켜떠 봤지만 눈알만 빠질 듯이 아팠다.
   “민지야, 너 이거 또.”
   두기가 민지의 집중호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또 빨간색으로 바뀐 모양이었다. 민지는 한숨을 쉬며 놀이를 시작했다.
   “구구단을 외자, 구구단을 외자. 삼오.”
   “십오, 구구단을 외자.”
   그때 알람이 울렸다. 모두 놀이를 멈추고 선생님을 보았다.
   “이수정, 집중해야지!”
   텔레비전 화면에 수정이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떴다. 수정이 얼굴이 이마 위 불빛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수정이만 보았다. 삐빅, 삐빅, 알람이 계속 울렸다.
   "자, 다들 구구단 놀이에 집중!"
   민지는 평소와 달리 쉬운 문제도 자꾸 틀렸다. 구구단을 떠올리려고 해도 자꾸 집중호우가 신경 쓰였다. 이건 두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놀이는 세 번을 못 넘기고 계속 끊겼다. 민지는 오늘 구구단 놀이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가는 또 빨간 불빛이 나올까 봐 애써 생각을 지웠다. 놀이를 마치고는 모두 수학익힘책을 풀었다. 교실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났다.
   쉬는 시간이 되자, 수정이는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민지는 수정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친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수정이에게 다가가 담요를 덮어주었다. 집중호우가 선생님 말처럼 좋은 친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좋은 친구는 친구를 울리지 않는다.
   3교시는 국어 시간이었다. 민지는 조금 전부터 귀 뒤쪽이 욱신거리며 아파 도무지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또 집중호우가 빨갛게 변해버릴 것 같았다.
   “선생님, 머리가 너무 아파요. 보건실 가면 안 돼요?”
   민지는 혼자 교실을 나왔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혼자 서 있으니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민지는 2반 신발장을 밟고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친구들을 보면 조금 덜 무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2반 아이들의 머리 위에도 민지와 똑같이 집중호우가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초록 불빛을 밝히며 선생님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민지는 얼른 숨었지만 이미 한발 늦어버렸다. 교실 안에서 엄청나게 큰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너! 수업 시간에 무슨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민지는 2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진짜 보건실에 가려는데 다시 복도에 서니 등 뒤가 서늘하니 누가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민지는 살짝 1반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세 내려왔다. 1반도 2반과 똑같았다. 창문 너머 교실에도, 복도에도, 민지와 웃고 장난치던 친구들은 없었다.
   보건실은 민지처럼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픈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오늘따라 아픈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민지 네가 벌써 마흔아홉 번째야.”
   보건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집중호우가 민지의 안경다리를 꾹 누르고 있었다.
   “이따 수업 들어가기 전까지만 풀자.”
   선생님이 민지의 집중호우를 풀어주었다. 귀 뒤에 푹신한 밴드도 붙여주었다. 민지는 라일라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4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민지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 시간 차례였다. 서둘러 운동장으로 뛰어내려갔다.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은 운동장에 나온 게 맞나 싶을 만큼 조용히 줄을 서 있었다. 선생님은 민지에게 다가와 다시 집중호우를 씌워 주었다.
   운동장 한가운데 바닥에 훌라후프 여럿이 누워있었다.
   “오늘은 원반을 던져 훌라후프 안으로 정확히 넣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질문! 원반던지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게 던져요.”
   “돌리면서 던져요.”
   “많이 던져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답을 외쳤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군요?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집중이죠! 딴생각하지 않고 또렷하게 정신을 집중한 후에 원반을 던져보세요. 이렇게요.”
   선생님은 손에 들고 있던 원반을 바닥의 훌라후프 안으로 가볍게 던졌다. 골인이다.
   “우와!”
   아이들은 짝짝짝 박수를 쳤다.
   “오늘은 원반던지기 점수가 제일 높은 사람부터 급식을 먹습니다.”
   박수 소리가 멈췄다.
   먼저 민지가 원반을 던졌다. 원반은 후프 가까이도 가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다음으로 두기가 원반을 던졌다. 원반은 부드럽게 날아 후프 안에 쏙 들어가 앉았다. 민지는 다시 온 정신을 모아 원반을 날렸다. 하지만 원반은 후프를 지나 저 멀리 구령대 앞까지 날아갔다. 민지는 그 후에도 열 번 넘게 원반을 던졌지만, 후프 안에 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민지가 혼자 중얼거렸다.
   “집중만 하면 된다더니, 순 사기야.”
   “고민지, 집중!”
   두기가 민지 집중호우의 빨간 불빛을 가리키며 선생님 흉내를 냈다. 민지는 화가 났다.
   “나 아까부터 계속 집중했거든?”
   하지만 두기는 민지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좀 더 열심히 집중해 봐.”
   두기의 원반이 사뿐히 후프 안에 착지했다.
   그때, 민지는 중요한 것을 보고 말았다. 두기가 완벽하게 원반을 던지는 와중에도, 두기의 집중호우는 아주 빨갛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엄두기, 너 집중 안 했지? 집중호우에 다 보여.”
   “무슨 소리야? 저기 딱 들어가는 것 못 봤어?”
   “너 지금 아주 아주 새빨간 색이거든?”
   두기는 민지의 말에 놀라 집중호우를 벗어 보았다. 정말 빨간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나 잘 던졌는데 왜 빨간색이지? 이거 이상해, 민지야.”
   두기가 억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상하긴 아까부터 이상했어.”
   민지가 집중호우를 벗었다. 민지의 집중호우는 아까부터 계속 빨간색이었다. 분명 민지는 아까부터 계속 최선을 다해 집중했는데 말이다. 민지는 더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중호우는 민지의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하루종일 도와주기는커녕 방해만 했다. 민지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셨다. 라일라는 메가맨과 맞서 싸울 때면 항상 눈을 감고 힘을 모았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민지는 온 힘을 다해 집중호우를 멀리 내던져버렸다. 집중호우는 예쁜 포물선을 그리며 빙그르르 날아가 운동장 끝 철조망에 걸렸다. 두기는 그런 민지를 보고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민지가 두기를 향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저런 건 친구가 아니야.”
   두기는 자신의 손에 들린 집중호우를 빤히 바라보더니 민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지를 따라 큰소리로 외쳤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두기가 내던진 집중호우도 철조망 위에 걸렸다. 그 모습을 본 수정이도 두기를 따라 집중호우를 벗어던졌다.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2학년 3반 스물세 개의 집중호우가 철조망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철조망으로 달려가는 선생님의 주머니에서 핸드폰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야, 밥 먹으러 가자.” 
   아이들은 우르르 급식실을 향해 달려갔다.
   두기가 민지에게 말했다.
   “근데 민지야, 왜 안경 벗었어? 멋있었는데.”
   민지는 두기를 보고 섰다. 역시, 그럼 그렇지. 민지는 안경을 꺼내 썼다.
   “어때? 잘 어울려?”
   “응! 라일라보다 잘 어울려!”
   민지는 신발주머니에서 라일라 안경을 하나 더 꺼내 두기에게 내밀었다.
   “선물이야.”
   두기가 활짝 웃으며 라일라 안경을 썼다. 민지와 두기는 라일라 노래를 부르며 급식실로 뛰어갔다.

   라일라, 라일라, 라일라의 안경만 있으면 문제없다네.
   누구도 우리를 말릴 수 없지. 라일라, 라일라.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 작품 제목을 패러디하였습니다.

은소홀

미래의 학교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곤 하는데요. 우연히 접한 AI 헤드밴드 활용에 관한 기사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어른들은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지만,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진짜 그러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거든요.

2020/12/29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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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 작품 제목을 패러디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