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왔어? 우리 빌라래!”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현관문 열자마자 나를 딱 마주친 언니가 뒷걸음쳤다.
   “미안. 얼른 알려주고 싶어서.”
   방으로 들어가는 언니를 뒤따라갔다.
   “언니, 공사하고 있는 상가 알지? 거기 유리에 어제까진 아무것도 없었거든? 근데 오늘 학교 끝나고 보니까 영어가 붙어 있는 거야, 이렇게.”
   나는 언니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적었다. Woori Villa. 본 대로 멋지게 쓰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이게 우리 빌라래. 친구가 알려줬어.”
   ‘리’와 ‘라’를 발음할 때 혀가 말려올라갔다. 집주소 말할 때하고는 딴판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알아, 봤어.”
   언니가 손바닥을 냉큼 빼면서 대꾸했다.
   “봤어? 작고 하얀 글씨 예쁘지?”
   “으리 빌라에 새로 생기는 우리 빌라, 기대된다.”
   언니는 핸드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렇다. 우리집 주소는 우리 빌라 201호. 그러니까 빌라 이름이 ‘우리 빌라’다. 2층 건물인 빌라 벽에는 세로로 커다랗게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런데 ‘우’자가 언제부터 ‘으’가 되었다. ‘|’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연서, 너, 으리 빌라에 산다며? 얼마나 으리으리한지 보여주라. 이렇게 말하며 내 앞에서 웃는 애들도 생겼다. 어머, 저기 좀 봐. 의리 있는 사람만 사는 빌라인가 봐. 키득거리며 지나가는 어른들을 본 적도 있다. 떨어진 ‘|’는 어디로 갔을까?
   ㄷ 모양의 우리 빌라는 골목이랑 닿은 건물 1층에 상가가 있다. 그동안 상가는 여러 번 바뀌었다. 슈퍼였다가, 옷 가게였다가, 분식집이었다. 꽤 오래 텅 비어있던 상가에 사람들이 드나들더니,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 첫날은 동굴 같았다. 으스스했다. 며칠 뒤 말끔하게 정리한 다음 누룽지 색으로 칠한 벽을 봤다. 신기했다. 환하고 예뻤다. 살구색 벽돌 붙인 담이 생기고, 다음날엔 그 위에 통째로 유리가 붙었다. 가운데 뻥 뚫린 자리에는 크림색 문이 달렸다. 문에는 유리창이 있어 안이 다 보였다. 동그란 문손잡이는 금빛이었다. 통유리창에 우윳빛 커튼도 걸렸다. 그리고 오늘 상가 문 유리에 Woori Villa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예전에 있던 상가들하고는 완전 달랐다.
   “우리 빌라, 아란치니 맛집이라는데?”
   언니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란치니? 그게 뭔데?”
   “치즈에 밥을 감싸 튀긴 요리래.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방에서 축제 날 먹는.”
   “진짜?”
   나는 언니한테 바짝 붙었다. 핸드폰 속에 Woori Villa 사진과 이런 글이 보였다.
   “우리 빌라에서 정성껏 빚은 아란치니를 맛보세요! 특별한 소스와 함께 내어드립니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

   모퉁이를 돌았다. 이제 금방이다. 걸음이 빨라졌다. 공사하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골목이 조용하다. Woori Villa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 유리에 이마를 갖다 대고 안을 둘러보았다. 벽돌 바닥과 동그란 나무 테이블, 초콜릿 색깔 나무 의자, 그리고 밥알처럼 작은 꽃이 달린 초록 잎사귀 화분이 보인다. 오늘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아니, 있다! 커다란 토마토소스 통이 여러 개 쌓여있다. 저걸로 아란치니 소스를 만드나보다.
   “메뉴가 나왔네.”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같은 반 주아다. 자기소개할 때, 어디서든 영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말했던 홍주아. 영어를 좋아한단다. 나랑 정반대다. 문 유리에 붙은 영어가 ‘우리 빌라’라는 걸 알려준 친구도 주아다.
   “어디?”
   나는 몸을 돌리며 물었다.
   “방금 주웠어.”
   주아가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다.
   “커밍 수운, 우리 빌라.”
   A4 크기의 종이 한가운데 커다랗게 적힌 영어를 주아가 읽었다.
   “우리 빌라, 이제 곧 문 연대.”
   “정말?”
   주아가 종이를 뒤집었다. 영어와 한글로 적힌 메뉴가 여러 개였다. 그림도 있었다. 주아가 영어를 중얼거렸다. 나는 한글로 적힌 메뉴를 소리 내어 읽었다.
   “우리 빌라의 시그니처 아란치니. 손수 빚은 치즈 주먹밥과 특별한 소스의 환상적인 만남! 먹물 아란치니, 김치 아란치니, 새우 아란치니.”
   “치즈볼처럼 생겼네.”
   내 말에 주아가 그림을 짚으며 말했다.
   “맞아, 동그란 아란치니를 반으로 가르면 치즈가 흘러나온대. 포크로 치즈를 둘둘 감아서 접시에 담긴 소스를 찍어 먹어도 맛있고, 밥이랑 소스를 숟가락으로 같이 떠먹어도 맛있대. 우리 빌라 아란치니는 어떤 맛일까?”
   입안에 침이 고였다. 침을 삼키며 다시 메뉴 종이를 보았다. Woori Villa에는 아란치니 말고도 맛있어 보이는 메뉴가 많았다.
   “크림수프도 있네. 나 되게 좋아하는데!”
   “난 안 좋아해.”
   주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란치니는?”
   “음, 한번 먹어보고 싶긴 해.”
   “어떤 아란치니?
   “새우 아란치니. 새우를 좋아하거든.”
   “나는 먹물 아란치니. 어떤 맛일지 제일 궁금해. 김치 아란치니도 맛있을 것 같아. 솔직히, 여기 있는 메뉴, 다 먹어보고 싶어.”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나는 흥분하면 이런다. 콧구멍이 자꾸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거친 숨소리가 난다.
   “이연서. 나, 가야 해.”
   주아가 시계를 보더니, 종이를 내밀었다. 얼결에 종이를 받아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내가 가져도 될까?”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다.
   “떨어진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늦었는지 주아가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잘 가, 주아야. 고마워!”
   나는 종이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

   드디어, Woori Villa가 제대로 문 여는 날이다. 그동안 Woori Villa는 낮에만 문을 열었다. 어제는 Woori Villa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봤다. 나는 식탁 근처 잘 보이는 자리에 메뉴 종이를 붙여놓고, 틈만 나면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출장 간 아빠가 돌아오면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가보고 싶었다. 아침까지 별말이 없던 엄마한테 조금 전,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고, 갈 준비하고 있으란다. 나는 옷장부터 뒤졌다.
   “이연서, 안 나오고 뭐 해? 나 배고프다고!”
   언니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언니, 잠깐만!”
   분명 어디 있을 텐데…… 찾았다! 흰색 레이스 원피스. 이모 결혼식 때 선물 받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다. 서둘러 갈아입고 옷장 거울에 비춰보았다. 치마 길이가 좀 짧아지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걸 입고 간다고?”
   언니가 날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축제 음식 먹으러 가는 날이잖아.”
   언니가 한숨을 내쉬며 슬리퍼를 신었다.
   “언니, 슬리퍼 신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내 맘이거든? 빨리 나와.”
   나는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냈다. 구두가 발에 꼭 끼었다. 뒤꿈치가 아팠다. 괜찮다. 조금만 걸으면 되니까.
   “같이 가, 언니!”
   절뚝거리며 언니를 쫓아가 손을 잡았다.
   “뭐야, 레이스 원피스에 반짝이 구두까지? 엄마가 보면 뭐라 하실까아?”
   언니가 말꼬리를 늘였다. 나는 혀를 쏙 내밀고 웃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좋아?”
   “응!”
   우리 빌라 앞을 지날 때마다 들어가고 싶었어, 라고 말하려는데 벌써 다 왔다. 정말 가까운 Woori Villa.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다행이다. 자리 있다! 얼른 가자.”
   계단을 밟고 언니가 성큼 우리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를 따라 나도 문턱을 넘었다. 몇 번이나 들여다봤던 Woori Villa 안에 내가 들어와 있었다. 밖에서 보던 것과 또 달랐다. 언니랑 나는 하나 남은 동그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맛있는 냄새가 코로 스미고, 처음 듣는 음악 소리가 귓속을 간질였다.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풍선처럼 둥실, 떠올랐다. 크림수프랑 아란치니 세 가지 다 주세요. 외워둔 말을 속삭여보았다. 멋지게 주문해야지. 그러면서 안쪽을 바라보았다. 부엌에서 앞치마를 멘 사장님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목을 빼고 앞을 내다봤다. 순간, 사장님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괜히 가슴이 철렁, 했다. 뭔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사장님이 아란치니가 담긴 접시를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우리한테 다가왔다.
   “어쩌지? 여기가 노 키즈 존이라……”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언니가 고개를 들었다.
   “네? 뭐라고요?”
   언니 입에서 침이 튀었다.
   “앞에 적어놨는데 못 봤나보다……”
   “노, 키즈 존이라고요? 아니, 왜요?”
   “그게 그러니까……”
   귓속에 벌이 들어간 것처럼 말소리가 웽웽거렸다. 언니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 몸은 점점 뻣뻣해졌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는 걸. 들어오지 마시오, 라고 적힌 곳에 들어와 있다는걸.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언니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저 열네 살이고, 동생도 열 살이에요. 근데, 안 돼요?”
   안에 있던 손님들이 우리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아주 기분 좋게 부풀어올라 빵빵했던 내 마음은 순식간에 팡, 터져버렸다. 납작해졌다.
   “아니, 왜들 서 있어?”
   엄마가 왔다.
   “아, 죄송합니다.”
   사장님이 엄마한테 머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구두가 벗겨져 계단에서 넘어질 뻔하고 엄마한테 업혀 나온 것만 기억난다. 아, 언니가 Woori Villa 문 앞에서 이렇게 소리친 것도.
   “이건 차별이죠, 어린이라서 안 된다니 이런 법이 어딨어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얼마 먹지도 않은 저녁을 다 토했다. 열이 났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꿈을 꿨다. 어른 몸이 된 내가 Woori Villa로 들어간다.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한다. 혼자 오셨나요? 아, 네. 창가 자리 괜찮으세요? 좋아요. 나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창밖에서 날마다 내가 보던 자리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저, 크림수프와 먹물 아란치니 주세요.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달콤한 냄새가 나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크림수프가 빵이랑 같이 나온다. 손잡이가 달린 그릇도, 반짝이는 숟가락도 멋지다. 아, 코끝을 간질이는 수프 냄새! 나는 수프를 듬뿍 떠 입안에 넣는다. 앗, 뜨거워! 손에서 숟가락이 미끄러진다. 수프가 허벅지에 튄다. 바닥에 숟가락이 뒹군다. 순간, 내 몸이 작아진다. 열 살로 돌아온다. 깜짝 놀라 깼다.

*

   “그래서 먹물 아란치니가 나오기도 전에 깨버렸어. 꿈인 줄 알면서도 너무 아쉬웠어. 다 먹고 깼으면 좋았을 텐데……”
   주말 지나고 학교에서 만난 주아한테 다 얘기했다. 꿈 이야기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주아가 말했다.
   “오늘 밤 꿈에서는 네가 가게 주인 해. 그리고 어른은 못 들어온다고 하는 거야. 어린이만 들어올 수 있다고. 너도 문 유리에 적어 놔.”
   “아니, 난 그런 가게 주인 안 할 거야.”
   내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 우리 빌라 가서 아란치니 먹어봤어. 맛있었어.”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불쑥, 반장이 끼어들었다.
   “뭐?”
   “진짜?”
   둘레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게 언제인데?”
   “문 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일걸? 엄마랑 갔었거든.”
   맞다. 주아랑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문 유리에 Woori Villa 말고 다른 글자는 없었다.
   “그럼 바뀐 거야?”
   “바뀐 거네.”
   “지금은 문 여닫는 시간도 적혀있고, 그림도 있잖아.”
   “언제부터?”
   “연서야, 너 언제 갔댔지?”
   “지난 금요일.”
   “그럼, 오픈 날부터 바뀐 건가?”
   “아니, 왜?”
   “가게가 작고 테이블이 몇 개 안 돼서 그렇대.”
   나는 언니한테 들은 말을 꺼냈다.
   “우리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데?”
   “가게가 좁아서 위험할 수 있대.”
   “뭐가 위험해?”
   “부딪혀 넘어지거나 다칠 수 있어서.”
   “하지만 그건 조심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이잖아.”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솔직히, 왜 그런지 이유를 잘 모르겠어. 갔을 때 좋았거든. 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노 키즈 존이라니……”
   반장이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우리를 잘 몰라서 그런가?”
   “알게 되면 달라질까?”
   “참, 이거 봐봐. 오늘 아침에 찍은 거야.”
   주아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NO KIDS ZONE 위에 Sorry, 란 단어가 비스듬히 적혀있는 사진이었다.
   “쏘리는 미안하단 뜻이잖아.”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미안하면 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학교 끝나고 주아랑 나란히 Woori Villa 앞에 섰다. 되도록 이 앞을 지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문 유리에 적힌 NO KIDS ZONE을 보면 가시에 찔린 것처럼 마음이 따끔했다. 아침에도 빙 돌아서 학교에 갔다. 그런데 사진을 보고 궁금해졌다. 직접 보고 싶었다.
   “월요일 휴무. 오늘 쉬는 날이네.”
   주아가 말했다.
   “그래서 아무도 없구나.”
   문 유리에 나와 주아 얼굴이 비쳤다.

   Sorry,
   NO KIDS ZONE

   “정말 맘에 안 들어. 바꾸고 싶다.”
   뚫어져라 쳐다보던 주아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내 말에 주아는 문 유리에 손가락으로 자기가 떠올린 단어를 천천히 썼다. 어렵지 않은 영어라 나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주아야, 넌 정말!”
   나는 주아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반짝, 나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주아 귀에 대고 속삭였다. 주아 눈동자가 빛났다.
   “우리 한번 해볼래?”
   “좋아!”

*

Woori Villa 사장님께

      안녕하세요. 언니랑 우리 빌라에 갔던 열 살 어린이에요. 기억하세요?


   잘 모르는 사람한테 쓰는 편지는 처음이다. 여기까지 적고 잠시 멈췄다.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 망설여졌다. 숨을 고르고 연필을 고쳐 잡았다.

   Woori Villa가 생겨서 기뻤어요. 집에 오는 게 기다려질 정도로요. 달라지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궁금했어요.

   이랬던 마음이 바뀌었다. 지금은 NO KIDS ZONE 흰색 글씨를 볼 때마다 움찔움찔하니까.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노 키즈 존, 이란 말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처음 알았어요. 전에 있던 상가들은 모두 드나들 수 있었거든요. 손꼽아 기다린 날이었는데, 나가야 해서 속상했어요.

   속상하다는 말로는 내 마음을 다 담을 수가 없는데…… 얼음이 된 것처럼 몸이 굳어지고 머릿속이 하얘졌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 편지 쓰기는 어렵다. 뒷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라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 친구들이랑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걸 썼다. 맘에 안 들어서 몇 번이나 쓰고 지웠지만, Sorry를 보고 나눈 이야기까지 다 썼다. 너무 힘들었다. 손가락이 아팠다. 손을 털면서 내 이름을 쓸지 말지 고민했다. 쓴다면 어떻게 쓸지, 곰곰 생각하다가 이렇게 적었다.

우리 빌라에 살고 있고
Woori Villa 안에도 있고 싶은
이연서 드림

   이튿날, 나는 일찍 일어났다. 눈이 번쩍 떠졌다. 편지를 예쁜 봉투에 잘 접어 넣었다. 가방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빨리 와, 이연서!”
   Woori Villa 앞에서 주아가 나를 불렀다.
   “일찍 왔네, 홍주아.”
   나는 집에서 가져온 메뉴 종이를 주아에게 건넸다. 주아는 종이를 문 유리로 가져가 대보더니, 가위로 오리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Sorry’S 위에 동그란 아란치니 그림 두 개를 딱풀로 붙였다.
   “와, 잘 어울려!”
   내 말에 주아가 손가락으로 V자를 했다. 이번에는 ‘Coming Soon, Woori Villa’에서 l 두 개와 a를 오렸다. l 하나는 절반을 잘랐다. 그리고 나머지 l에 붙여 k를 만들었다. 그리고 ‘Sorry’ 안에 있는 ‘rr’ 위에 ‘ka’를 붙였다.
   “오케이!”
   주아가 손가락으로 꾹꾹 종이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재미난 모양의 okay 글자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내가 가위를 잡았다. 메뉴 종이에서 크림수프 그림을 오려 주아에게 건넸다. NO KIDS ZONE, 맨 앞에 자리한 N에 내가 건넨 그림이 붙었다. 덮이지 않는 부분엔 동글한 아란치니 그림을 덧붙여 주었다. N은 사라지고, 크림수프와 아란치니가 생겼다.
   “노가 오 되었네. 멋지다, 오 키즈 존!”
   막상 다 붙이고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졌다.
   “자, 그럼 이번엔……”
   나는 가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문 아래 틈으로 편지를 밀어넣었다. 빡빡해서 잘 안 들어가는 걸 주아랑 힘을 합쳐서 겨우 넣었다. 편지가 안으로 쏙, 들어갔을 때였다. 골목 끝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학교로 달려갔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Woori Villa 쪽으로 함께 걸었다.
   “우리 빌라, 열었겠지?”
   주아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수업 시간 내내 나도 그 생각뿐이었다.
   주아랑 모퉁이를 돌았다. 이제 금방이다. 걸음이 느려졌다. 가슴이 세게 방망이질 쳤다.
   “어? 있다! 그대로 있어!”
   주아가 소리쳤다.
   정말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Woori Villa 문을 보았다. 반가운 종이들이 잘 붙은 채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천천히 문에 다가갔다. 떨렸다. 문 유리 너머로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가 보였다. 봉투에서 꺼내진 내 편지였다. 순간, 테이블을 닦고 있던 사장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가슴이 철렁, 했다. 사장님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면서 웃었다. 그러더니 몸을 움직였다. Woori Villa 문이 활짝 열렸다. 어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주아를 쳐다봤다. 주아가 눈을 찡긋, 하며 웃었다.
   안녕! 우리 빌라, 오 키즈 존
   나는 가만히 속삭이며 계단 위로 발을 뗐다.

이숙현

노 키즈 존. 어디선가 이 말을 맞닥뜨리는 어린이를 상상하며 썼습니다. 바람을 담아서요. 마감 직전, 작가와의 만남으로 우연히 만난 구미 문성초 5-1 어린이들 덕분에 결말을 고쳐 썼습니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소중한 이야기 보태준 한 명 한 명에게 고맙습니다.

2022/04/26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