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심윤경의 『영원한 유산』(문학동네, 2021), 강화길의 『대불호텔의 유령』(2021, 문학동네), 신종원의 「전자 시대의 아리아」(『전자 시대의 아리아』, 문학과지성사, 2021), 박민정의 「신세이다이 가옥」(『바비의 분위기』, 문학과지성사, 2020). 인용할 경우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


   1.

   프로이트의 글에서 읽었던가. 우리의 꿈에는 지금 사는 집이 아니라 유년 시절에 살던 집이 등장한다고. 엄마와 할머니도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꿈에 집이 나오면 늘 그 옛집이 나와. 가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그 주변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마치 박완서나 김원일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집요하고 생생한 열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곳은 흡사 발생학적 장소 같다. 어릴 적 현미경으로 관찰해본 말랑하고 투명한 개구리알처럼, 수정란이 분열하고 낭배가 형성되고 기관이 분화하여 급기야 올챙이가 부화하는 것까지 눈에 보이는 ‘개체 발생의 장소’. 그러나 꿈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법인지, 나의 꿈은 프로이트의 말과 달리 상당히 공평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며 살아온 나에게 독점적으로 꿈에 출현할 ‘집 중의 집’은 없는 모양이다. 모두 고만고만했고,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사고파는 것들이었다.
   나의 무의식만 유난히 얄팍한 게 아니라면, 최근 작가들이 집을 다룰 때 ‘마당 깊은’ 집이나 ‘엄마의 말뚝’이 박힌 집을 회상하는 대신 부동산, 임대차, 재개발 등 집을 둘러싼 제반 상황의 사회적·심리적 역학을 다루는 것에 더 능한 것은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의 심리적 현실에 집home보다 더 육중하게 드리워진 것은 주택house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무의식의 구조라는 것도 그렇게 만만치는 않아서, 어떤 집이 사라지면 또다른 집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집이 사라질수록 사람들은 내 집보다 더 ‘집’처럼 보이는 곳에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어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뒤지고, 어디든 똑같아 보이는 매끈한 프랜차이즈 카페 대신 허름한 구옥을 리모델링한 카페에 찾아간다. 비유적인 의미에서건, 현실적인 의미에서건, 집을 잃으면 폐허라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마치 그것이 훼손되고 황폐해진 나의 집이라도 된다는 듯이. 실제로 한동안 미술관에는 그런 작품들이 쏟아져나왔고 누군가는 거기에 “폐허 애호”1)라는 적절한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항상 발생학적 장소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만약 개체 발생의 차원에서 그것이 폐허가 되어버렸다면 대신 ‘계통 발생의 장소’라도. 그마저 찾기 어렵다면 그것을 흉내 낸 ‘유사 역사적 공간’이라도. 예컨대 적산가옥을 개조한 힙한 카페 같은.


   2.

   1930년대, 남쪽 곡창지대의 지주였던 한 남자가 남다른 교육열 때문에 서울 옥인동으로 올라와 터전을 잡는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장남은 대학을 졸업한 후 그 시대 고등교육을 받은 많은 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주의자로 활동한다. 광복이 되자 그는 결혼하여 독립하게 된 장남을 위해 장충동에 적산가옥을 불하받는데, 불행히도 사회주의자로 활동했던 장남의 행적이 문제가 되어, 6·25 전쟁이 발발한 후 장남과 적산가옥을 모두 잃게 된다. 그후 70년대 초, 차남의 아들인 장손자가 성장하여 큰아버지의 적산가옥을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손자에게 침묵을 요구한다. 장남을 잃은 후 그는 남은 가족들이 무사히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이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며 살아왔고, 애지중지 키운 장손에게 어떠한 위험도 진실도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지금 그 집에는 ‘별’이 살고 있다는 말만을 전했다. 손자는 세월이 꽤 흘렀으니 괜찮지 않겠냐고 되물었지만 실은 자신에게 걸려 있는 연좌제도 풀리지 않았기에 그 말을 스스로도 믿지 못했다.
   이 전형적인 이야기는 내 가족의 이야기다. 도무지 정을 붙이기 힘들었던 그 집안에서 왜 누군가는 그토록 재산 모으는 일에 집착했는지, 왜 누군가는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지, 이 이야기를 듣고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형을 잃은 슬픔보다 형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더 컸던 차남이 평생 지고 살았던 불안이나 그런 아버지와 끝내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차남의 아들 서사에 단지 심리적인 기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내게는 한 다리 건넌 이야기였다. 오히려 나에게 이 ‘아들들의 서사’보다 더 인상에 남았던 건 바로 그 적산가옥이었다. 개인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기억되었을 삶의 절대적 순간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충분히 전형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시대의 광경들이 그곳에서 정확히 포개졌다. 그 집을 불하받은 후 그곳에서 얼마 살지 못했던 지주 집안 출신 좌파 지식인이 상징하는 바나, 분명 합법적일 리 없는 방법으로 그 집을 차지했을, 그리고 아마도 그것을 종잣돈 삼아 부를 축적했을 ‘별’이 상징하는 바가, 그들보다 먼저 탄생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을 적산가옥을 소실점 삼아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그 소실점을 따라 개인과 구조와 역사를 잇는 연장선이 그어졌다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무감한 걸까. 피해와 가해가 뒤얽혀 형성된 한 개인의 심리적 전형성과 ‘적의 재산’ 위로 아슬아슬하게 쌓여가는 대한민국의 발생학적 전형성이 그 선 위에 함께 올라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한다면.


   3.

   황석영의 소설 『한씨 연대기』에는 평양에서 의대 교수였던 한씨가 6·25전쟁 도중 홀로 남하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과 그후 그가 남한 사회에서 겪게 되는 부조리한 시련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아마도 이 소설의 독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씨가 겪은 비극의 세목은 선명하게 기억하더라도 그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 적산가옥의 셋방이라는 사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만한 것이, 이 소설에서 적산가옥은 특정한 사물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준다기보다 적절한 수준의 배경으로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배경에 중요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채 단신 월남한 한씨는 말 그대로 ‘집’을 잃은 사람이고, 그런 그가 죽기 직전 노쇠한 몸을 잠시 의탁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결코 ‘집’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집의 대립항’에 가까운 상징적인 장소여야 하니까. 더구나 한씨가 죽은 후 그의 셋방을 차지하기 위해 잔꾀를 부리는 주변 인물들의 면면까지 고려해본다면, 이 소설에서 적산가옥은 비극적인 역사를 통과하며 피폐해진 개인들의 삶을 양각해줄 세태적인 장치로도 충분히 기능한다.
   그런데 한씨의 죽음 이후 한참의 시간과 거리가 확보된 지금 그 집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그 집을 사고팔며 오간 돈의 흐름이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며 긴 궤적을 그려냈으리라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씨가 죽은 방의 의미는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두터워졌고, 한씨와 그의 이웃들은 그 막강한 집에 잡아먹힌 듯 왜소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룰 몇 편의 소설에서, 자신의 소유주를 능가하는 권능을 갖게 된 ‘적산가옥’이 주변의 시공을 장악하고 비록 ‘인지적 지도’는 아닐지언정 ‘인지적 사물’의 지위에 이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4.

   심윤경의 장편소설 『영원한 유산』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들끓는 욕망의 한복판에 친일파 윤덕영이 남긴 호사스러운 저택 ‘벽수산장’을 세워둔다. 당시 벽수산장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 약칭 ‘언커크’의 본부로 사용 중이었는데, 그 무렵 교도소에서 돌아온 윤덕영의 딸 ‘윤원섭’은 다시 그 집을 차지하기 위해 대단한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언커크의 통역 비서 ‘해동’은 누구의 것이라 단정할 수 없는 벽수산장의 ‘아름다움’을 곱씹으며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이 흥미로운 소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모두 생략하고 우선 단 하나의 질문만을 남겨보자. ‘적산이란 무엇인가.’ 적의 재산을 의미하는 ‘적산’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적산가옥에는 “불을 지르고 싶은 적의와 한입에 삼키고 싶은 상반된 욕망이 뒤섞여”(67쪽) 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호화롭고 그로테스크할 만큼 아름다운 이 저택은 마치 강력한 자석처럼 기괴한 자장을 만들어내고, 그 자장에 빠진 사람들은 어느 한쪽의 극으로 속수무책 끌려가게 된다.

   저택은 다시 복구될까 아니면 이대로 무너져 기억 속으로 사라질까? 해동은 어느 쪽을 바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저택은 나라의 것 같기도, 유엔의 것 같기도, 윤원섭의 것 같기도 했다. 친일파의 자손이 빌붙은 썩어빠진 집이기도 했고 세상에 다시없이 아름다운 것이기도 했다. 적산, 그것은 그렇게 사람을 혼동되게 했다. 썩어 문드러져 짜내야 할 고름인지, 다시 얻지 못할 귀중한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영원한 유산』, 274쪽.)

   박민정의 단편 「신세이다이 가옥」은 그보다 10년쯤 후, 70년대 후반 강남 개발의 여파로 강북 집값이 폭락한 기회를 잡아 후암동 적산가옥을 소유하게 된 괴팍한 할머니를 등장시킨다. 소설은 80년대 초반까지 그 집에 함께 살다 버려지다시피 외국으로 입양 보내졌던 큰아빠의 딸 야엘이 한국에 찾아오며 시작되는데, 후암동 옛집에 가보고 싶어하는 그녀의 바람과 달리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고 지금 그 집에 누가 사는지는 알 수 없다. 화자인 ‘나’는 80년대 중반에 태어났기에 야엘을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어릴 적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 잠시 할머니의 집에 머물렀던 시절에 할머니가 ‘딸들’을 얼마나 모질게 취급하는지 경험한 바 있다. 무능한 가부장을 대신하여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고, ‘일본 망령’ 운운하는 소리 따위를 비웃으며 적산가옥을 손에 넣었던 할머니는 ‘권연벌레’와 ‘쇠 냄새’ 가득한 그 집의 진짜 ‘망령’이었다.

   강남은 당연히 꿈도 못 꾸고 마포나 강변 같은 동네도 말도 안 되게 비싸고…… 용산은 놀랍도록 비쌌다. 내게 그 동네는 우리 집이 망했을 때 기어들어 간 동네였는데? 결혼을 준비하는 1년 동안 나는 예전보다 더 많이, 더 깊이 후암동 집을 생각했다. 1980년대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물론 다르겠지만 어떻게 할머니는 그 집을 소유했을까. 그러고도 어떻게 작은아들에게 떡하니 고덕동 아파트를 사주었을까? (「신세이다이 가옥」, 125쪽)

   이 두 편의 소설은 일종의 비판적 기획이라고도 할 수 있을, 상당히 실증적인 자료에 기반하여 구성된 정교하고 지적인 소설들이다. 1960년대 중반 윤덕영이 세웠던 벽수산장을 중심으로 그곳을 둘러싼 다양한 세력들의 욕망과 갈등을 그려낸 『영원한 유산』이 역사학자의 시선을 지녔다면, 현재 무시무시한 집값을 자랑하는 서울에서 어떻게든 신혼집을 마련해야 하는 ‘나’의 입장으로 70년대 후반 할머니가 적산가옥을 소유하고 재산을 불리는 과정을 회고하는 「신세이다이 가옥」의 시선은 사회학자의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시선의 차이를 잠시 제쳐두고 보면, 두 작품은 소설의 구조적 중심점인 ‘적산’을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영속하는 매듭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된 인식을 보여준다. 앞서 인용한 대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영원한 유산』의 마지막 장면에서 벽수산장을 태우는 화염보다 더 이글거리는 것은 적산을 향한 모호하고 강력한 욕망들이고, 그 욕망들은 망령처럼 살아남아 「신세이다이 가옥」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멈출 줄 모르는 광풍으로 불어닥친다.
   그렇다면 이렇게 메워질 수 없는 열망과 모순까지 포함하여 다음 세대로 채권과 채무를 이어주는 적산가옥을 ‘발생학적인 장소’이자 ‘외상적 장소’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 프로이트의 말처럼 ‘집’이란 집과 같은homely 동시에 집 같지 않은unhomely 언캐니한 것이라면, 이 적산가옥이야말로 가장 ‘집 중의 집’이자 ‘집다운 집’을 이르는 말이 아닐까.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온전히 우리를 위해 마련되었거나 우리가 성취해낸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은 족쇄처럼 우리를 묶어버렸고 또 얼마만큼은 우리가 갈취한 것이니, 물려받은 자산이자 부채로서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물질적·비물질적 방식은 ‘적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유산만이 적산이 아니라, 그것을 근대라 부르든 자본주의라 부르든 지금 우리 손에 받아쥐어 가꾸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적산으로부터 출발했다. 무언가를 청산한다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5.

   이렇게 ‘집’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언캐니하다면 이곳에 유령이 출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산가옥의 다른 이름은 유령의 집. 신종원의 단편 「전자 시대의 아리아」에는 일제강점기 고문 시설이자 연구소인 적산가옥이 등장한다. 이곳은 마치 정상적인 물리법칙을 찢어 마련한 틈새처럼,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 돌출한 기묘한 공간이다. 이곳 지하실에 음향 기록으로 저장되어 남아 있는 조선인들의 음성은 군인과 연구원 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만큼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렇게 억압된 것은 회귀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력한 존재감을 선보이며 등장한 목소리가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그저 “나는 기억해”(69쪽)라는 말과 함께 적산가옥을 무너뜨리며 영원히 사라질 뿐이다. 잠시 회한을 읊조릴 기회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렸던 목소리는 다시 어둠과 침묵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강화길의 장편 『대불호텔의 유령』에는 일본인 사업가가 인천에 세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자, 1918년 화교 가문에 매각되어 광복 이후에도 중식당으로 운영되었던 대불호텔이 등장한다. 이곳은 정확히 말해 적산가옥은 아니지만, 불공정한 개항 이후 실력을 행사했던 외국인 소유의 건물이라는 점과 그후 일제강점기, 광복, 전쟁의 부침을 겪어낸 역사적 장소라는 점에서 적산가옥과 유사한 복잡성을 지닌다. 바로 이 대불호텔 터 유적에서 소설가인 화자는 유령을 목격한다.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친구의 할머니가 화자에게 들려주는 1950년대 대불호텔의 이야기와 지금 화자가 소설을 쓰며 겪고 있는 이야기를 연결한다. 소설이 지금의 이야기를 1950년대 이야기만큼 중요하게 병치한 이유는 명백하다. 대불호텔을 둘러싼 인물들의 악의와 욕망의 서사를 다루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 “원한을 사랑으로 바꾸는 삶”(299쪽)을 희망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매혹적으로 진동하는 존재는 아무리 갈망해도 절대 ‘나의 집’이 될 수 없는 이 음울하고 섬뜩한 건물이다. 바로 그곳에서 두려우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유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가장 풀기 힘든 수수께끼는 그 목소리에 홀린 듯 끌려가는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이다.

   여기에는 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소리들이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있어요. 그 사람들, 그 여자들이 있어요. 그들은 이곳에 스며들어 있어요. 제가 이곳에 영원히 갇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는 나갈 수 없어요. (『대불호텔의 유령』, 264쪽)

   심윤경과 박민정의 소설이 발생학적 장소에 내재한 외상을 인식하고 규명하기 위해 논증한다면, 신종원과 강화길의 소설은 외상적 장소가 간직한 발생의 비밀을 누설하기 위해 속삭인다. 이곳은 발생학적 실험실이라기보다 외상이 침입해오는 유령적 공간. 이들은 새로운 계보를 만들기 위해 외상의 틈을 힘껏 벌려본다. 그 틈으로 침습해오는 실재의 그림자는 상징화되지 못한 채 유령적 심상으로 번성하고, 그런 만큼 두 소설에 영혼과 원혼이 우글거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두 소설이 적산가옥을 외상적 실재가 보존되고 누설되는 장소로 설정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그렇게 흘러나온 실재의 흔적에 직면하는 순간 보여주는 태도는 사뭇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부유하며 떠도는 것들 앞에서 두 소설은 상반된 선택을 한다. 그것은 ‘퇴마’와 ‘강신’. 어쩌면 같은 충동에서 시작되었을, 삶 충동보다 죽음 충동에 이끌려 출발한 길. 그러나 길의 막바지에 이르면 둘의 행로는 갈라진다.
   신종원이 천착하는 것은 기억을 저장하고 변환하는 ‘매체의 계보’. 이 계보는 사라진 것들을 향한 짙은 멜랑콜리를 포함하지만, 애초 기억이란 망각의 전구체임을, 기억과 기록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변환이란 불가피하고 비가역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무당이 은밀하게 소망하는 것은 퇴마인 것처럼, 모든 과거의 것은 사라질 것이고 사라져야만 아름답다. 예술은 늘 그렇게 잔존하는 것들과의 관련 속에서만 빛을 뿜는다. 그러니 재현을 업으로 삼은 예술가는 언제나 배신자나 기생자의 역할을 맡는다. 기억은 돌이킬 수 없지만 예술은 영원하고, 유령은 회귀하지만 그 존재를 변환해줄 예술가가 없다면 무력하다. 유령적인 것은 예술가에게 복종해야만 증폭되고 가시화될 수 있으며 나아가 평화롭게 소멸할 수 있다. 언뜻 의고적인 취향으로 보이는 이 계보에 흐르는 ‘아리아’는 유구한 것들을 사랑하지만 그것들의 사라짐까지 포함하여 사랑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동시대적이다.
   반면, 강화길은 불러내고 끌어들이고 오염시키기 위해 강신을 기원한다. 이 강신의 목적은 부당하게 폄훼되거나 사라져버린 소수자들의 계보를 잇는 것. 그렇지만 삶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정확하고도 안타까운 진실에 의하면 이렇게 사라진 것들을 재소환하는 행위가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다. ‘혼입의 계보’를 시도하는 자는 마땅히 소란과 소음을 감수해야 하고, 그렇기에 이 계보는 단절과 변환의 역학에 의존하기보다 연결과 상속의 의지에 지배된다. 상속을 원하는 자는 유령에게 묻는다. 내 귀에까지 들리는 이 기이한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초과하여 유령의 형태로 영속하는 이 음성의 주인은 누구인가. 상속의 절차는 퇴마의 의식이라기보다 떠도는 목소리를 제 목소리로 삼는 섭식의 과정에 가깝다. 그가 원한과 욕망과 애정과 악의를 섭취하여 어떤 존재로 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뿐이다. 이것이 유령을 소환하는 정당한 거래다.


   6.

   이제 우리 시대에 ‘역사’라는 것이 바라는 바도 가야 할 바도 모두 잃은 채 기억과 증언과 기록의 합집합을 이르는 말이 되어버렸다면, 역사와 가장 유사한 속성을 지닌 것은 ‘외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외상의 본질이 다름 아닌 ‘말할 수 없음’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역사를 외상처럼 인식할 때 그것을 서사화하려는 시도는 흡사 뮤지엄이 사물의 배치와 배열을 통해 과거를 펼쳐놓는 것처럼 공간과 사물에 기대어 이루어지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외상의 장소에서 발생을 말하고자 할 때 적산가옥은 솟아오른다. 우리 눈앞에는 폐허의 더미가 쌓여있고, 누군가는 그 잔해를 재료 삼아 가까스로 구조물을 건축한다. 폐허 위로 다시 역사를 구체화하려는 욕망이 ‘집’을 발생학적 장소로 세우는 동시에 외상적 장소로 무너뜨린다. 두 종류의 상충된 힘이 동시에 작동하는 곳, 구축되는 동시에 허물어지는 곳, 권능으로 군림하는 동시에 속절없이 삭아내리는 곳. 그럴 때 적산가옥은 주체이자 객체이고, 유령이자 구조이며, 실재이자 상징인 것, 그렇게 선명하면서도 희미한 것이 된다.

   미디어 작가 재커리 포름발트의 영상 〈자본의 자리In place of Capital〉(2009)는 1845년 런던 왕립 증권거래소를 촬영한 윌리엄 폭스 탤벗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당시 초창기 사진술은 극단적으로 긴 노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을 포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진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와 마부의 흔적이 흐릿하게 남은 것을 제외하면, 증권거래소를 왕래하는 그 어떤 사람의 형상도 담겨 있지 않다. 카메라의 시선에 포착된 것은 오직 거대한 증권거래소 건물과 텅 빈 거리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최신식 카메라를 들고 다시 증권거래소를 찾아간다 해도 이곳을 둘러싼 운동의 핵심을 포착해낼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증권거래소에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세계를 떠도는 거대하고 복잡한 자본의 운동이 모두 디지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사진술이 초기 자본주의의 운동을 포착해내지 못한 것처럼, 지금 우리 시대의 어떠한 매체도 고도로 발달한 금융의 흐름을 포착할 수 없다. 다만 네트워크상에서 사후적으로 집계할 뿐이다.
   나는 이 오래된 초창기 사진 한 장을 보며, 우리가 실체처럼 대우하고 토대처럼 떠받드는 ‘자본’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포착할 수 없는 유령적인 것임을,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 체제는 마치 육중한 건물처럼 현실 세계에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가 구체적이고도 추상적인 것처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본’이 주체로 활약하는 동시에 객체로 기능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어디에나 침투할 수 있는 막강한 것이면서도 그 어떤 수단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유령적인 것이다.2)

   〈자본의 자리〉라는 영상이 증권거래소의 이미지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자본’이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재현 불가능한 것인지, 그럼에도 그것을 비판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이미지의 계보학’을 수립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유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질문이다. 나는 이 오래된 건물들, 유령적인 동시에 물질적인 증권거래소와 우리가 살펴본 적산가옥들 사이에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비판의 기획 하에 읽어내는 것이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믿는다. 적산가옥은 물려받은 것들이 어지러이 엉켜있는 대한민국의 혼탁한 시작점에 계통 발생적 장소로서 놓여있다. 거기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공이 꾸역꾸역 자라났다. 동시에 그것은 그 발생에 의해 파열하거나 폐기된 것들을 육중하게 누르고 날카롭게 가로지르며 외상적 장소로서 등장한다. 거기서부터 폐허처럼 버려지고 결여로서 남겨진,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 곁에 다시 나타날 망령들이 은밀하게 숨어들었다.
   나에게 내가 사는 지금의 세계는, 원환으로 회전하는 자족적인 것일 수도, 내연기관을 품은 기차처럼 막강한 화력으로 철로를 달리는 것일 수도 없는, 다만 납작하고 평평한 데이터의 바다를 자동 재생 목록에 따라 무한히 떠다니는 것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세계는 고작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주관적인 망상처럼 상상되거나, 혹은 반대로 미약한 나를 둘러싼 강고하게 세팅된 체계나 네트워크로 군림하게 된다. 나는 때로는 나의 내부에만 머무르며 감각과 감정의 차원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정교한 외부에 압도되어 외부가 불러주는 결과값을 반복적으로 상술하고 승인한다. 어느 쪽이든 비평으로서는 실패임이 자명하다. 세계를 무시하는 것이나 세계에 압도되는 것이나, 나에 대한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이나 사물에 과잉 해석을 부여하고 희망하는 것이나, 무력함의 표현이거나 사유의 포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식민주의든 자본주의든 역사나 사회나 국가든, 반드시 우리가 사유해야 하지만 고도로 추상화되어 파악조차 어려운 것들의 흔적이 종종 사물의 형태로 입체화되어 솟아오른다. 우리가 발생한 ‘그때의 그곳’은 쉽사리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유령이자 구조로 남아 우리의 강력한 현실이 된다. 그러니 우리가 단지 ‘폐허 애호’의 수준에서 벗어나 사물에 드러난 연결과 단절의 관계망을 파악하고 싶다면, 건축도 혁명도 불가능한 무한하고 편평한 시공에 여전히 솟아나는 이 울퉁불퉁한 것 앞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성분과 조성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네 편의 소설에도 적산가옥을 형상화하는 방식에는 상이한 요소들이 다양한 비율과 밀도로 결합해 있다. 첫째, 인식적이고 비판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파악하려는 리얼리즘적 전통. 둘째, 기억의 조각과 파편을 소중히 긁어모으는 아카이브적 충동과 그 기록과 자료를 뮤지엄처럼 배치하여 세계를 구성하려는 동시대적 역사의식. 셋째, 그렇게 직조된 구성체를 꿰뚫어버리는 외상의 침입을 실재로서 대우하는 ‘외상적 리얼리즘’의 감각. 거칠게나마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지닌 힘의 개요일 것이다. 보다시피 성실한 재현은 비록 양가성을 지닐지언정 마냥 무력하지는 않고, 그 결과물은 이음새가 헐겁고 버거워 보일지라도 다수의 축으로 결합된 복수의 힘들을 운용하고 있다. 어느 쪽도 만만치 않다. 세계가 아무리 우리에게 건망증과 분열증을 선사할지라도 강박적인 수집과 수렴의 의지는 사라지지 않고, 시대가 아무리 역사를 상처뿐인 넝마처럼 취급할지라도 그 외상으로부터 발생을 관찰해내고야 마는 시도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 버텨볼 수 있을 것이다.

이소

자유 주제로 청탁을 받고서, 내 삶에 들어와 다시는 떠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흘러 흘러 꿈과 집과 상처에 대해, 또 흘러 흘러 역사와 재현에 대해, 또 흘러 흘러…… 더 흐를까 봐 이제 그만 굳혀서 내놓습니다.

2022/04/26
53호

1
윤원화,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워크룸프레스, 2016, 39쪽.
2
이 글은 『릿터』(2021년 10/11월호)에 실렸던 나의 글 「유령이자 구조인 것에 대하여」(『대불호텔의 유령』의 리뷰) 중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