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포럼’은 두 개의 벽을 넘는 시도였다. 장애예술이기에 조심해야만 했던 쟁점들을 끌어내야 했고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지원사업의 틀 안에서 과정을 보여주는 시도였다. 이는 포럼에 참여하는 작가들에게도, 포럼을 운영하는 매개자에게도 위험한 시도였다. 지난 4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는 이 두 벽을 넘기 위해 노력했다. 한 달에 두번씩 모둠별 소모임을 진행하면서 장애예술이기에 회피하는 질문들을 끌어내고자 노력했고, 3회차에 걸친 포럼에서 그 과정을 공유해왔다. 3회차 포럼까지 끝난 지금 과연 우리는 두 개의 벽을 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결과부터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시작하자면 우리는 두 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벽 앞에 서서 저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애초에 목표했던 두 개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벽을 넘기 위한 시도들에 대해 되돌아본다.
  화사한 색감의 자연으로 가득 찬 송상원 작가의 작업실에서 시작된 첫 모임은 참여 작가와 매개자 모두를 곤란한 상황으로 이끌었다.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면서 신이 나버린 송상원 작가는 자신이 그린 자연물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파괴되고 있는 지구와 관련된 수년 전 뉴스 기사들을 줄줄이 읊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를 끝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한 곤란한 작가들의 흔들리는 눈빛, 매개자로서 이를 멈추고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나의 불안감은 송상원 작가의 작업 속 화려한 색깔처럼 아직도 선명하다.
  송상원 작가의 일장 연설을 멈춘 건 서찬석 작가였다. 서찬석 작가는 송상원 작가에게 ‘위험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상원 작가님이 환경파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 작가님이 사용하는 물감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건 생각해보시지 않았나요?” 송상원 작가는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은 뒤 아무런 대답 없이 서찬석 작가의 지난 개인전에 대한 감상평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연설에도 다른 작가는 안중에 없었다.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냈고, 서찬석 작가의 작업에 대해 ‘으슬으슬한 공포가 느껴지고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자신만의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송상원 작가와 초면인 이현화 작가와 이주현 작가는 송 작가의 작업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송상원 작가는 서찬석 작가의 작업에 대한 평가를 멈추고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꽃에서 시작한 작업 이야기는 기후변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세계 경제 상황으로 뻗어 나아갔다. 이번에도 송상원 작가의 독주를 저지한 건 서찬석 작가였다. 서찬석 작가는 그동안 송상원 작가는 장애작가로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작업을 해왔기에 자신의 작업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데 익숙하다는 점을 짚었다. 지금처럼 송상원 작가가 자기 작업을 타인에게 들려주는 것과 반대로 타인의 작업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해 볼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자는 의미에서 ‘곤란포럼’이라는 모둠 이름을 정했고 작업에 대한 비평을 하는 선생님과 평가받는 작가의 관계를 형성했다. 매번 송상원 작가가 제시하는 주제로 서찬석, 이현화, 이주현 작가가 작업을 해오고 이를 송상원 작가가 비평하는 ‘거꾸로 비평’하기를 진행하기로 했다. 주제는 ‘지구 온난화/지구 열대화’와 ‘소통의 문제’였다. 송상원 작가는 다른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5점 만점으로 점수를 주고 한줄 평을 남겼다. 좋은 평가의 근거는 대부분 송상원 작가가 좋아하는 색깔, 이미지, 단어들에 기반했다. 반면 감점의 이유는 지각 제출이나 말대꾸 같은 작업 외부의 요소들에 기반했다. 상당히 1차원적이고 비평 상황에서도 가벼운 웃음만 남는 작업이었다.

작가 평가내용 평가
이주현 잘 모르겠다. 미완성이다. 완성이 된다면 다시 평가하겠다. 2.5점
이현화 다 좋았지만 후라이에 후라이팬을 추가해 그려라. 3점
서찬석 북극이 녹는 모습이 생생하지 않다. 배경을 추가하라. 이건 여백의 미가 아니다.
“아~ 나 죽는다”가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불쌍한 북극곰을 더 불쌍하게 표현해야 한다.
4점
‘지구 온난화/지구 열대화’ 과제 평가


작가 평가내용 평가
이주현 작업을 안 했다. 0점
이현화 자수를 공들여 잘했다.
빨간색에 대한 의미도 좋다.
미완성이라서 감점 1점
3점
서찬석 점이 선이 되고 선들이 꼬이는 느낌이 좋았다.
말대꾸해서 감점 0.5점
3.5점
‘소통의 문제’ 과제 평가


단순한 비평 작업을 환기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같이 미술관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태원역에서 만난 우리는 송상원 작가의 소울 푸드인 케밥을 먹었다. 송상원 작가는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의 케밥을 다 먹은 뒤 자신이 튀르키예 여행에서 먹었던 케밥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여행 이야기는 케밥에서 시작해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송상원 작가의 튀르키예 여행기는 미술관에 도착해서야 끝이 났다. 우리는 리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김범 작가의 ‘바위가 되는 법’ 전시를 함께 관람했다. 관람하는 동안 송상원 작가는 거의 대부분의 작업을 카메라에 담았다. 송상원 작가는 김범 작가의 〈노란 비명〉과 〈생명을 잃은 사물들〉에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전시 관람 이후 진행한 모든 곤란포럼 모임에서 〈노란 비명〉과 〈생명을 잃은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결국 포럼의 마지막 날인 3차 포럼에서도 언급되었다.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거꾸로 비평하기’를 진행해왔지만 반복되는 단순한 평가에 참여 작가 모두가 한계를 느꼈다. 외부 전시 관람을 통해 새로운 비평의 장을 도모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2차 포럼 이후 우리는 비평 작업을 내려놓고 작가의 개별적 작업관에 대한 원초적인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눠보기로 했다.
  작가란? 예술이란? 작업이란? 우리는 이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곤란포럼 모둠 구성원 중 이현화 작가와 이주현 작가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작가였다.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기준이 높았기에 작업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2주에 하나의 작업을 해야만 하는 ‘거꾸로 비평하기’ 작업은 두 작가에게 부담이 되는 과정이었다. 사실 작업을 공유하기로 한 마감 날짜를 넘기거나 미완성의 작업을 공유해서 매번 송상원 작가에게 감점을 당하던 두 작가였다. 매개자로서 두 작가의 참여도가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작가로서 그들이 가진 성향을 알고 나서 오히려 그들의 고충이 이해됐다. 예술가로서 느끼는 고충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개인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개인의 삶에서 겪는 고민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각자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서찬석, 이주현, 이현화 작가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던 찰나, 이때까지 별말 없이 앉아있던 송상원 작가가 “외로우면 친구가 필요해요”라고 말하며 대화에 참여했다. 송상원 작가는 자신에게 친구가 필요하지만 자신의 장애로 인해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외로움에 대한 인식과 친구의 필요성은 장애라는 조건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곤란포럼은 구성원 모두가 느끼는 외로움에서 시작하여 ‘친구 만들기’라는 주제로 하나가 되었다.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작업으로 표현해보자는 의견을 모았고 앞으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함께 고민해볼 예정이다.
  장황하게 4개월간의 곤란포럼의 모습을 정리해보았다. 공동창작을 위해 모인 네 명의 작가가 공동의 주제를 찾기까지 4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곤란포럼은 서로에 대한 이해 과정 없이 ‘위험포럼’의 목적을 위해 처음부터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위험한 지점을 건드려야 한다는 의식과 특별한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에 선행해야 하는 작업이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것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선 3개월의 시간이 헛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를 드러낼 수 있었다.
  공동창작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여러 장르와 여러 작가를 매개하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 속에서 작업보다는 작가, 작가보다는 사람에 대해 서로 질문하고 서로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니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참여자는 송상원 작가가 유일했다. 지속해서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왔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서 자신이 좋았던 순간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왔다. 다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어떻게든 위험한 주제를 드러낼지 고민한 비장애 작가와 매개자인 나의 노력은 오히려 평등한 의미에서의 공동창작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송상원 작가가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거꾸로 비평하기’라는 작업을 시도했을까? 서로에 대한 자기소개에서 시작하여 작업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동의 주제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위험포럼’이 넘고자 했던 두 개의 벽을 살펴보자. 우리는 장애예술이 회피하는 지점들을 드러내고자 했고 공동창작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는 지난 4개월 동안 장애예술에 대한 위험한 질문을 위해 노력했지만 ‘친구 만들기’라는 지극히 평범한 주제를 가져왔다. 우리는 ‘거꾸로 비평하기’라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특별한 걸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도 우리는 두 개의 벽 앞에 서 있다. 하지만 시작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우리는 벽 앞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벽이 희미하게 보이는 곳에서 출발했으며 4개월 동안 돌고 돌아 벽 앞에 마주 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벽을 넘기 위해 ‘친구 만들기’의 과정에서 참여작가들이 각자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친구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가 앞서 말한 벽을 넘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위험포럼’은 곤란포럼 모둠이 공동창작을 통해 넘어야 할 벽까지 오게 하는 과정이 되었음은 확실해보인다.

김준기

문화매개 연구자.

2024/02/07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