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a sentence
2화 “저는 뭉텅거리는 단어를 좋아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지하철이나 도서관, 서점 등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식의 기획을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 때 상대방이 느낄 불편함, 우리에 대한 소개와 프로젝트를 설명해야 하는 수고로움, 수많은 거절이 주는 부담감, 혹여 수락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인터뷰를 길게/깊게 하기에는 불안정한 환경,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인 우리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내기 어렵고 녹음이나 사진 등 기록으로 남겨진다는 불안감 등) 때문에 주변의 지인 또는 지인의 지인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기획을 수정했다.
첫 인터뷰에 참여해준 사람은 양주안님이다. 일전에 다큐멘터리 워크샵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양주안님은 여행잡지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주안님이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글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참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 안에는 어떤 문장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해졌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윤형근(이하 ‘윤’) : 요즘 어디를 자주 다니시나요?
양주안(이하 ‘양’) : 제가 직업상 글을 많이 쓰는 편이라, 주로 도서관에서 일을 많이 해요. 낱말을 수집하려면 책이 별로 없는 카페보다는 도서관을 찾게 돼요. (윤: ‘낮말’요? 낮에 사람들 말을 엿듣는 건가요?(웃음)) 아니요.(웃음) ‘낱말’이요, 단어. 원고를 쓰다보면 비슷한 단어들에 질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때 도서관 서가에 나열된 책 제목들을 봐요. 그리고 그중 꽂히는 낱말과 연결지어 원고를 써봐요.
윤 : 기억에 남는 낱말이 있나요?
양 : 최근에 꽂힌 낱말은 ‘충만’이라는 단어였어요. 그 단어 자체가 종교적인 건 아닌데 주로 종교 서적에서 많이 쓰이더라고요. 잡지 기사에서는 잘 안 쓰는 것 같아서, 두세 달 전 기사에 ‘충만’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있어요.
윤 : 미디어에서는 ‘효율’과 관련된 단어들을 많이 쓰이는 거 같아요. ‘충만하다’는 말은 뭔가 좀더 느슨하다고 해야 하나? ‘행복’이라는 말처럼 느슨한 느낌이 들어서 매체에서는 잘 쓰지 않는 것 같네요.
양 : 기사를 쓰면 제 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편집장님이 최종 확인을 해요. 가끔 단어가 바뀔 때도 있고 토씨가 바뀔 때도 있는데, ‘충만’이라는 단어는 살아남았어요.
윤 :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양 : 얼마 전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처음 읽은 건 아니고 세번째 읽었어요.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드는 책이라서요.
윤 : 간단하게 책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어요?
양 : 이 책은 김원영이라는 분이 쓴 책이에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는 병을 가진 분인데,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담아낸, 한편으로는 르포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에세이 같기도 한 책입니다.
윤 :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나요?
양 : 봉사 단체에서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봉사를 잠깐 했었어요. 봉사만 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우리가 장애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그때 찾아봤던 책이었어요.
윤 : 저는 보통 책을 한 번 읽고 마는데, 세 번까지 읽은 이유가 있나요? 다른 책도 보통 여러 번 읽는 편이신가요?
양 : 좋아하는 책은 두세 번 정도 읽는 편이에요. 특별히 이 책을 여러 번 읽은 이유는 살면서 저도 모르게 우월감에 젖어 있을 때가 있는데, 그걸 경계하기 위함인 것 같아요. 열등감은 이겨내기가 생각보다 쉬운데, 우월감은 떨쳐내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내가 어떤 사람보다 좀더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책을 들춰봅니다. 또다른 세상과 시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느낌으로 열어봐요.
윤 : 인상 깊은 구절을 읽어줄 수 있나요?
양 : 제가 표시를 잘 안 해둬서…… 아, 여기 표시한 곳이 있네요. 필자가 이야기한 것 중에 “나는 섹시한 장애인이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썼어요.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장애인들은 보통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착하고 성욕 없는 존재로 그려지곤 하는데, 몸이 불편할 뿐이지 인간성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마치 인간성에도 장애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 책의 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섹시한 사람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기의 모든 욕망을 포괄하는 문장으로 “나는 섹시한 장애인이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그 부분을 제일 좋아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협했던 제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에요.
윤 : 말씀하신 구절 외에도 밑줄 친 부분들이 꽤 보이네요.
양 : 독서모임에서 발제를 하느라고 여러 군데 밑줄을 쳐뒀는데, 비교적 학구적인 내용들이에요. 밑줄 친 것 중에는 “정상이 먼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비정상을 만들어내면서 비로소 정상이란 게 생겼다는 말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이렇게 구체화되고 잘 정돈된 언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는 충만이라는 단어처럼 ‘뭉텅거리는’1) 단어를 좋아해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무언가를 구체화시키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뭘해도 ‘뭉텅거려서’ 하는 게 좋고, 그래서인지 제가 쓰는 글들도 ‘뭉텅거려’ 있고요. 그 상황의 감정을 구체화하고 싶지가 않아요. 구체화하는 순간 낭만이 다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저는 별이 하늘에 있으면, 별이 여기에서 몇 광년 떨어져 있다는 둥의 이야기는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실제 사실보다는 내가 느끼는 게 중요하고 좀더 편한 거 같아요.
윤 : ‘뭉텅거리다’라는 표현이 좋은 거 같아요. 저도 종종 원하는 것들이 구분 없이 ‘뭉텅거려’ 있다고 느끼는데, 필요에 의해서 어느 부분을 잘라내는 순간 내가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들도 사라지는 느낌이 있어서요.
양 : 맞아요. 구체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제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제가 사건에 직면하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 같다고도 해요.
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 : 맞다고 생각해요(웃음). 직면하지 못하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어요.
윤 : ‘직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양 :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직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문제가 있으면 직면하고 싸우고 바꾸고 투쟁해야 한다고요. 근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애초에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껴요. 직면할 패기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반대로 ‘내가 나를 찾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뭐가 더 편한 건지, 어떻게 살아야 좀더 나답게 살 수 있는 건지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직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직면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잠시 동안은.(웃음)
윤 :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을 것 같나요?
양 : 초등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장애인/비장애인에 대한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가 더 어린 나이에 읽히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편 이 책 보면서 제게 습관이 생겼어요. 거리를 걸을 때 ‘여기를 과연 휠체어가 갈 수 있을까?’ ‘여기를 과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안전하게 갈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모든 사람을 위해 건설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요.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세상이고 거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윤 : 제 경우에는 ‘장애인을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곧 포기를 하게 되는데요. 주안님은 어떻게 서로의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지, 혹은 경계를 지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양 : 예전에는 ‘공감을 해야 한다, 내가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우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인정을 하고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는 이해나 공감보다 그냥 그때부터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사고하게 되거든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가족을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양보하고 어느 정도 싸우면서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입장에 있는 이들을 온전히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우위를 둔 것으로 느껴져요. 저는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지를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첫 인터뷰에 참여해준 사람은 양주안님이다. 일전에 다큐멘터리 워크샵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양주안님은 여행잡지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주안님이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글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은 참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 안에는 어떤 문장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해졌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윤형근(이하 ‘윤’) : 요즘 어디를 자주 다니시나요?
양주안(이하 ‘양’) : 제가 직업상 글을 많이 쓰는 편이라, 주로 도서관에서 일을 많이 해요. 낱말을 수집하려면 책이 별로 없는 카페보다는 도서관을 찾게 돼요. (윤: ‘낮말’요? 낮에 사람들 말을 엿듣는 건가요?(웃음)) 아니요.(웃음) ‘낱말’이요, 단어. 원고를 쓰다보면 비슷한 단어들에 질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때 도서관 서가에 나열된 책 제목들을 봐요. 그리고 그중 꽂히는 낱말과 연결지어 원고를 써봐요.
윤 : 기억에 남는 낱말이 있나요?
양 : 최근에 꽂힌 낱말은 ‘충만’이라는 단어였어요. 그 단어 자체가 종교적인 건 아닌데 주로 종교 서적에서 많이 쓰이더라고요. 잡지 기사에서는 잘 안 쓰는 것 같아서, 두세 달 전 기사에 ‘충만’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있어요.
윤 : 미디어에서는 ‘효율’과 관련된 단어들을 많이 쓰이는 거 같아요. ‘충만하다’는 말은 뭔가 좀더 느슨하다고 해야 하나? ‘행복’이라는 말처럼 느슨한 느낌이 들어서 매체에서는 잘 쓰지 않는 것 같네요.
양 : 기사를 쓰면 제 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편집장님이 최종 확인을 해요. 가끔 단어가 바뀔 때도 있고 토씨가 바뀔 때도 있는데, ‘충만’이라는 단어는 살아남았어요.
윤 :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양 : 얼마 전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처음 읽은 건 아니고 세번째 읽었어요.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드는 책이라서요.
윤 : 간단하게 책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어요?
양 : 이 책은 김원영이라는 분이 쓴 책이에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는 병을 가진 분인데,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담아낸, 한편으로는 르포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에세이 같기도 한 책입니다.
윤 :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나요?
양 : 봉사 단체에서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봉사를 잠깐 했었어요. 봉사만 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우리가 장애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그때 찾아봤던 책이었어요.
윤 : 저는 보통 책을 한 번 읽고 마는데, 세 번까지 읽은 이유가 있나요? 다른 책도 보통 여러 번 읽는 편이신가요?
양 : 좋아하는 책은 두세 번 정도 읽는 편이에요. 특별히 이 책을 여러 번 읽은 이유는 살면서 저도 모르게 우월감에 젖어 있을 때가 있는데, 그걸 경계하기 위함인 것 같아요. 열등감은 이겨내기가 생각보다 쉬운데, 우월감은 떨쳐내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내가 어떤 사람보다 좀더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책을 들춰봅니다. 또다른 세상과 시선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느낌으로 열어봐요.
윤 : 인상 깊은 구절을 읽어줄 수 있나요?
양 : 제가 표시를 잘 안 해둬서…… 아, 여기 표시한 곳이 있네요. 필자가 이야기한 것 중에 “나는 섹시한 장애인이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썼어요.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장애인들은 보통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착하고 성욕 없는 존재로 그려지곤 하는데, 몸이 불편할 뿐이지 인간성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마치 인간성에도 장애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 책의 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섹시한 사람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기의 모든 욕망을 포괄하는 문장으로 “나는 섹시한 장애인이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그 부분을 제일 좋아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협했던 제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에요.
윤 : 말씀하신 구절 외에도 밑줄 친 부분들이 꽤 보이네요.
양 : 독서모임에서 발제를 하느라고 여러 군데 밑줄을 쳐뒀는데, 비교적 학구적인 내용들이에요. 밑줄 친 것 중에는 “정상이 먼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비정상을 만들어내면서 비로소 정상이란 게 생겼다는 말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이렇게 구체화되고 잘 정돈된 언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는 충만이라는 단어처럼 ‘뭉텅거리는’1) 단어를 좋아해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무언가를 구체화시키는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뭘해도 ‘뭉텅거려서’ 하는 게 좋고, 그래서인지 제가 쓰는 글들도 ‘뭉텅거려’ 있고요. 그 상황의 감정을 구체화하고 싶지가 않아요. 구체화하는 순간 낭만이 다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저는 별이 하늘에 있으면, 별이 여기에서 몇 광년 떨어져 있다는 둥의 이야기는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실제 사실보다는 내가 느끼는 게 중요하고 좀더 편한 거 같아요.
윤 : ‘뭉텅거리다’라는 표현이 좋은 거 같아요. 저도 종종 원하는 것들이 구분 없이 ‘뭉텅거려’ 있다고 느끼는데, 필요에 의해서 어느 부분을 잘라내는 순간 내가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들도 사라지는 느낌이 있어서요.
양 : 맞아요. 구체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제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제가 사건에 직면하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 같다고도 해요.
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 : 맞다고 생각해요(웃음). 직면하지 못하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어요.
윤 : ‘직면’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양 :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직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문제가 있으면 직면하고 싸우고 바꾸고 투쟁해야 한다고요. 근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애초에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껴요. 직면할 패기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반대로 ‘내가 나를 찾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뭐가 더 편한 건지, 어떻게 살아야 좀더 나답게 살 수 있는 건지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직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직면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잠시 동안은.(웃음)
윤 :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을 것 같나요?
양 : 초등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장애인/비장애인에 대한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가 더 어린 나이에 읽히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편 이 책 보면서 제게 습관이 생겼어요. 거리를 걸을 때 ‘여기를 과연 휠체어가 갈 수 있을까?’ ‘여기를 과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안전하게 갈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모든 사람을 위해 건설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요.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세상이고 거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윤 : 제 경우에는 ‘장애인을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곧 포기를 하게 되는데요. 주안님은 어떻게 서로의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지, 혹은 경계를 지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양 : 예전에는 ‘공감을 해야 한다, 내가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우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인정을 하고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는 이해나 공감보다 그냥 그때부터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사고하게 되거든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가족을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양보하고 어느 정도 싸우면서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입장에 있는 이들을 온전히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우위를 둔 것으로 느껴져요. 저는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지를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피사체가 사람이 아닐 때는 좀더 편안하게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사람을 피사체로 두고 찍을 때는 마음이 조급해져 생각보다 빨리 셔터를 눌러 사진이 흔들리거나, 좀더 신경 써서 찍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생각보다 느리게 셔터를 눌러 남기고 싶은 순간을 놓치게 된다.
B&M friend
윤형근, 김다영, 황정한. 전혀 다른 세 삶을 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잠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각자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세 갈래의 삶을 살고 있으나, 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또다른 삶의 접점 하나가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2018/11/27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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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춤법 기준으로는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표현. 하지만 ‘뭉뚱그리다’(되는대로 대강 뭉쳐 싸다, 또는 여러 사실을 하나로 포괄하다)와 ‘뭉텅하다’(끊어서 뭉쳐놓은 것처럼 짤막하다)의 사이 어딘가에 사는 단어가 아닐까. 양주안님이 발음한 ‘뭉텅거리다’의 어감이 재미있고 주안님의 이야기와 어울려서 그대로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