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김씨네 편의점〉이 인기다. 늘 조연 혹은 단역에 머무르던 아시아계 인물들, 그 가운데서도 한국계 가족을 주연으로 삼은 서구권 드라마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재현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불편하다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다. 〈김씨네 편의점〉 1화에서는, 지독하게 가부장적인 아버지인 ‘김씨’와, 딸에게 교회를 다니는 한국인 남자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한국인’인 우리에게도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기에서 같지만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우리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외국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문학작품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사실 ‘외국인’과 ‘조연’이라는 단어의 조합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주민’ 혹은 ‘외국인 노동자’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존재하지만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들. 까무잡잡한 피부에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조연으로서, 외국인은 연민의 대상과 더불어 ‘욕망’의 대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여 지나갈 수 있는 ‘백인 남성’을 묘사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비행기 안에서 말을 걸었던 여자는 뿔테 안경의 정체를 밝힌 후에도, 지미에게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결혼한 여자라는 걸 안 뒤엔 호감도가 급격히 내려갔지만 그는 여자에게 계속 친절하게 대했다. 매몰차게 떼어버리기엔 여자는 너무 섹시했다. (중략) 그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간 여자는 다음날 바로 이메일을 보내왔다. 괜찮다면 너를 우리 아들의 영어회화 교사로 초빙하고 싶다, 비용은 후하게 지불하겠다, 는 내용이었다.1)


   『잠실동 사람들』(정아은, 한겨레출판사, 2015)의 지미 더글러스는 소설 안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그 등장만으로 한국인들이 바라보는 서구인, 특히 백인 남성에 대한 편견과 선망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미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영어 교육에 열을 올리는 한국사회를 의아하게 여기나, 그러한 ‘한국문화’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함을 깨닫고 곧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이용한다. 그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연애와 섹스에 자유로울 것이라는 편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은 개인이 아닌 민족적 집단으로 인식되며, 존재 자체로 한국인의 서구를 향한 열망을 대변한다. 그들이 대부분 원어민 강사의 직업을 지녔다는 점, 호감을 주는 인상으로 인기가 많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쾌적한 외모,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태도 등은 한국인이 선망하는 서구인의 조건이지만, 주목할 점은 이것이 그들의 노력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개성을 발언할 기회 없이 선입견만으로 지나치듯 서술되거나(『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혹은 한국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완벽하게 내면화한 모습(『잠실동 사람들』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그려진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오현종, 문학동네, 2011)에 등장하는 미국인 강사는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백인 남성으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지만,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묘사되면서 선입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민음사, 2015)의 매켄지 또한 돈을 벌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한국에 잠입한 후, 호감을 주는 첫인상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의 대상으로 그려지기 이전에, 문학이 사회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소수자로 살아가는 외국인들이었다. 2000년대 등장한 소위 ‘다문화 소설’은 한국에서의 이주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그 삶에 관한 독자의 인식을 고취한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완득이』(김려령, 창비, 2008)는, 이주민들의 삶을 일방적인 연민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한계를 넘어, 성장하는 주체로 그리기도 하였다.
   「인터뷰」(조해진, 『천사들의 도시』, 민음사, 2008)의 나탈리아 쪼이 역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민을 온 고려인이다. 여러 타자를 다룬 단편을 묶은 소설집 가운데 「인터뷰」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나탈리아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제목과 같이 소설은 가상의 인터뷰와 유사한 형식을 취하지만, 그 틀이 모호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나탈리아는 계속해서 회상과 독백으로 흘러간다. 시점은 주의를 잃은 나탈리아의 회상을 따라 그의 이야기를 묘사하며, 때문에 독자는 ‘인터뷰’ 형식이 갖는 경계를 넘어 더 가까이에서 나탈리아의 삶을 지켜보게 된다.
   연인을 두고 한국으로 오게 만든 남편에게마저 버림받은 후, 나탈리아는 텅 빈 가구 대리점을 지키며 살아간다. 이상적인 주방을 연출한 대리점은 나탈리아가 한국에 오며 품었던 환상―아름다운 주방과 윤택한 생활, 남편이 지닌 목수로서의 꿈과 같은―을 충족시켜준다. 지금은 매출을 올리지 못해 쫓겨날 날만 기다리며 나탈리아는 가구들 사이에서 쇼윈도의 일부로 전시된 채 존재한다. 이러한 ‘전시’된 상황은 나탈리아의 처지를 거리를 두고 지레짐작하거나, 쉽게 동정하거나, 혹은 갑자기 나탈리아의 손을 잡는 이웃 분식집 주인남자처럼 욕망의 대상으로 삼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나탈리아는 쇼윈도 문을 “안쪽에서부터 잠가놓은 채” 지낸다. 사람들이 그녀를 “일방적”으로 쳐다보며 지나가면서, 그녀는 소통할 수 없는 존재로서 치욕감을 느낀다.
   그러나 인격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독백체의 인터뷰어(서술자)는 나탈리아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도자 역할에 가깝다. 서술자는 작품 초입에서 이름이 없던 나탈리아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인격체로 대우한 것이다


    지금, 저기 쇼윈도 안쪽의 4인용 화이트 파농 식탁에 앉아 있는 여자를 나탈리아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저 여자를 나탈리아가 아니라면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2)


   그래서 인터뷰어는 여자를 ‘나탈리아’라고 호명하고 나탈리아는 “그렇군요. 나는 나탈리아.”라고 긍정한다. 그렇게 이름을 줌으로써 나탈리아는 소통 가능한 존재가 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두 분류 중 어느 하나에 속하지 않는 중간 지대의 타자 또한 존재한다. 「세실, 주희」(박민정,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18)에는 앞서 말한 백인 남성 조연들과는 반대로 한국에 대한 열망과 동경을 지닌 인물, 세실이 등장한다. 세실은 코리안 뷰티의 상징으로 통하는 명동의 뷰티 편집숍 ‘쥬쥬하우스’에서 일하는 일본인 직원이다. 세실의 가장 큰 욕망은 자신이 좋아하는 유노윤호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다. 때문에 세실은 쥬쥬하우스의 매니저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주희에게 한국어 공부를 도와달라고 한다. 주희는 그런 세실의 부탁에 응하지만 세실의 삶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주희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이었다. 좋아하는 연예인 하나 때문에 타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3)


   이 단편에서 세실은 한국에 대해 일부만 알고 일부는 모르는 인물로 그려진다. 세실은 유노윤호가 속한 그룹 동방신기로 상징되는 한류문화와, 한국이 성형을 비롯한 뷰티산업의 강국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외모를 칭찬하는 일이 무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나, 한일 관계에 얽힌 역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주희씨도 성형을 좀 했겠죠? 한국 여자분들은 성형을 많이 하니까요. 보편적으로.”라고 천진하게 묻거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집회 행렬에 거리낌 없이 섞여들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이렇듯 세실은 무지한 동시에 순진한 열망을 갖고 있는 존재다.
   세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낯선 공간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와 맥락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레 주희와의 관계에서 권력의 열위에 있으며, 이는 주희도 인지하고 있다.


   주희는 세실의 작문을 보며,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신경 쓰지 않고 문장을 대충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국어 사용자로서 자신이 가진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4)


   주희는 세실이 계속해서 무지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무지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 세실의 모습 안에서 주희 자신을 발견한다. 히메유리 학도대 출신 외증조모를 둔 세실이 위안부 집회 인파 속에 놓이게 되는 장면은 친구 J를 따라 뉴올리언스의 어느 골목에 갔다가 속수무책으로 성희롱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주희 자신의 경험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

   ‘이주민’ ‘다문화’라는 단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는 문학을 포함한 콘텐츠에서 외국인들을 묘사하는 방식 또한 아직 편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온 이유, 살아가는 모습, 앞으로의 미래 또한 개인의 수만큼 무궁무진할 것인데, 그들의 삶에 상상력을 더해볼 수 있는 작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때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쯤에서 다시 한번 자각해야 하는 것은, 상황이 다를 뿐 우리는 삶에 대해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다.’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면, 분명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단어와 문장 또한 달라지리라 믿는다.


비하인드랩연구소

김수현, 김원지, 장은진.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 속 ‘조연’을 마주한다. 조연을 표현하는 문장과 단어를 아카이빙하고, 조연에게 전사와 후사를 덧입히는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문학이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을 깊이 성찰해나갈 예정이다.

2018/12/25
13호

1
정아은, 『잠실동 사람들』, 69쪽; 이하 이 책에서 인용할 경우 본문에 쪽수만을 표기한다.
2
조해진, 「인터뷰」, 『천사들의 도시』, 40쪽.
3
박민정, 「세실, 주희」,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5쪽.
4
같은 책,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