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a sentence
6화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될 수 있었을까?”
“데미안 만나보면 어때?”
누구를 인터뷰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친구로부터 ‘데미안’을 추천받았다. 데미안은 고등학교 동창 박윤중의 애칭이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문학 선생님과도 친분이 깊던 한 친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졸업 후 7년 만에 연락을 해봤다. “윤중아, 나 형근이야.” 어색했지만, 어색함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책을 즐겨 읽던 윤중은 성수동에 있는 소셜 벤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수동에서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이번 인터뷰는 윤형근이 묻고 박윤중이 답을 했다.
*
윤형근(이하 ‘윤’) : 고등학생 윤중은 항상 책을 들고 다녔던 것 같아. 요즘은 무슨 책 읽는지?
박윤중(이하 ’박‘) :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쓴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로군요』(이소담 옮김, 코난북스, 2017)를 읽고 있어. 일본의 내로라하는 사회학자 열두 명을 찾아가서 “사회학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학자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을 모은 대담집이야.
윤 : 평소 사회학에 관심이 있었어? 이 책을 보게 된 이유가 궁금해.
박 :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음 달까지만 하고, 내년부터 다시 새로운 삶을 구상하고 살아야 하는데, 막막한 느낌이 들더라. 그러다보니 나의 출발점을 확인해보고 싶었어. 사회학이라는 원점. 내가 사회학을 전공했거든.
윤 : 그럼 책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네가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보자.
박 : 대학에 사회과학부로 들어왔는데, 세부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어. 정치학, 행정학, 법학,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중에서. 근데 되게 혼란스러운 거야.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났어. 그래서 모든 과목을 하나씩 들어봤어.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학과가 없는 거야. 남은 게 사회학이었어. 어떻게 보면 소극적으로 선택을 한 거지. 근데 사회학을 좀더 공부해보니까 다른 학문들은 어떤 것이 맞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고 하면, 사회학은 ‘그게 왜 문제인데?’라고 질문을 하는 거 같은 거야. ‘어떻게’를 말하기 전에 ‘왜’ ‘무엇을’을 묻는 학문이었어. 배워보니까 재밌고 잘 맞더라고.
윤 : 철학이랑 비슷한 건가?
박 :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해 좀더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학문 같아. ‘인간은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고 해야 할까. 사회학은 ‘왜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일까?’라고 질문해.
윤 : 한결 사회학이라는 게 흥미롭게 들리네.(웃음)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는 시점에 네가 왜 너의 원점, 사회학을 짚어보려는지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아.
박 : 아무래도 사회학적 사고와 생각이 내 삶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가봐. 그런데 사회학으로 대학원 석사까지 마쳤는데,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 “도대체 사회학은 무엇인가?” “도대체 사회학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질문들이야. 쉽게 사회학이란 사회를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하면 되는데, 애써 의미를 덧붙이게 돼.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욱 조심스럽고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잖아.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읽게 됐어.
윤 : 책에서 좋았던 부분들 얘기해줄 수 있어?
박 : 서문부터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있었어. “박사 학위도 따지 않은 애송이가 어찌해서 사회학자인 척을 하고 다니지?”라는 말을 저자가 듣곤 했다더라고. 우리나라 역시 대부분의 사회학 연구자들이 박사 학위를 중요하게 여겨. 이 분야를 독단적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증이라고 생각을 해.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은 결국 연구를 주도하지 못하고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어.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어서, 문장이 눈에 띄더라.
윤 :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많이 다르지 않나보구나.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그런 분위기를 꼬집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비교적 젊은 연구자라서일까?
박 : 저자도 85년생이고 나랑 동갑인데, 이 사람이 사회학 책을 쓰기 시작할 때가 스물대여섯 살부터야.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언숙 옮김, 민음사, 2015)1), 『희망난민』(이언숙 옮김, 민음사, 2016)2) 라는 책도 썼는데 모두 다 히트를 쳤어. 그때부터 청년문제에 있어 대표 격으로 방송에 많이 참여했고 ‘사회학자’로 대중에게 각인됐지. 그러다 다른 사회학자들을 만나면 ‘박사도 아닌데 어디 가서 사회학자라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늘 들어왔기 때문에 이 사람한테도 중요한 질문이었던 거야. 과연 사회학이란 무엇인지, 사회학자란 누구인지 말이야. 그런 점에서 이 책,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로군요』은 단순히 흥미로운 대담집이 아니라, 저자가 이것으로 자기의 원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윤 : 이 책을 읽게 된 질문인 ‘과연 사회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책에서 찾은 힌트가 있다면?
박 :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았어. 왜냐면 열두 명의 사회학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중에 여덟아홉 명은 진짜 구닥다리야.(웃음) 인터뷰를 하러 온 저자에게 ‘당신(저자)이 사회학자라면 그 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 적어도 박사 학위 정도는 따는 게 좋지 않겠나?’라는 말을 하거든. 물론 나도 박사가 얼마나 중요한 거라는 것도 알고 그런 시선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인 듯 하는 건 위험한 것 같아.
윤 : 마지막 인터뷰한 사회학자는 어떤 사람인지?
박 : 저자가 열두번째로 만난 사회학자는 가이누마 히로시인데, 후쿠시마 원전에 관련된 사회학 논문을 써온 사람이야. 실제 후쿠시마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조사하고 그걸 바탕으로 논문으로 써냈어. 후쿠시마 대지진과 원전 사고 후에도 후쿠시마에 방문하고 관련 글들도 계속해서 써냈어. 오랫동안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학자여서, 다른 학자들과는 다른 시각을 좀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장소를 연구하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사람으로서, 제도권의 학자들이 늘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그런 얘기나 할 거면 후쿠시마에 대해 아예 거론하지 말라며 강도 있게 비판을 해.
윤 : 그의 이야기에서 생각해볼만한 데가 있었을 것 같아.
박 : 익히 알고 있는 지식들이 어쩌면 우리의 편견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예컨대 후쿠시마로부터 수입한 수산물은 모두 방사능에 오염됐으리라는 것이나 그 지역으로는 여행을 피해야 한다는 것 등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잖아. 실제 히로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방사능 오염 우려로 출입이 제한된 구역은 후쿠시마 전체 지역의 2.3퍼센트이고, 실제 피폭 경험이 있거나 위험성이 있다고 진단 받은 사람도 지역 인구 중 2.6퍼센트라고 하더라고. 꼭 후쿠시마 관련해서만 아니라 어떤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이나 편견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려면, 더 많은 연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검증하고 믿을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또 하나 그가 한 말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단지 후쿠시마 원전에다 시멘트를 쏟아붓고 더이상 유출수가 없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복원됐을 때 비로소 후쿠시마가 복원되는 것이라고 얘기하더라. 그 둘 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학의 출발점, 앞으로 하고 싶은 사회학과 굉장히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윤 : 책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 중에 또 기억 남는 사람이 있어?
박 : 대학 시절의 은사인 우에노 치즈코를 찾아간 부분이 기억에 남네. 우에노 치츠코는 저자에게 “바닥까지 소비되지 않도록 부디 조심해라.”라고 당부해. 사실 자기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 대부분을 보면 자기 기술 하나를 믿고 시장에 나와 적응하고는 있지만 계속하다보면 기술적인 면도 자기 삶도 소비가 돼. 필수적인 운명 같은 거지. 보통 그 바닥이 보일 때까지 자기를 몰아세우며 기술이든 자기 자신이든 모두 소비해버리게 되거든. 우에노 치츠코가 한 말은 우리에게도 유효하게 들리는 말인 것 같아. 어른으로서, 스승으로서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지지와 격려가 아닐까 생각을 했어.
윤 : 이 책의 저자는 사회학이란 무엇인지 결국 자기만의 답을 찾았을까?
박 : 저자는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사회나 자신을 구상하는 학문’이라는 말을 해. 사회학이 지닌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회’나 ‘자신을 상상하는 힘’에 매력을 느낀다는 거거든. 사회학이란 건 지금의 사회를 설명하고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될 수 있었을까를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게 만들고 새로운 나를 기획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보는 거야.
윤 : 사회학의 힘을 빌려 ‘새로운 나’를 상상해본다면?(웃음)
박 : 앞으로 먹고사는 일이 문제긴 하지. 지금까지는 내가 하는 일에 투자자가 있어서 경제적으로 크게 걱정이 없었지만 곧 소득이 불안정해질 테니까. 대신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생겨 좋기도 해. 누구와 어떤 프로젝트 작업을 해볼 수 있을까 요즘 관심이 많고, 새로운 나를 상상하게 돼.
윤 :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있는지?
박 : 이 책에서 힌트를 좀 얻었는데, 히로시의 경우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서 리서치 프로젝트를 만들었어. 리서치 결과물들을 후원해줬던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형태인거지. 좀더 넓은 범위의 이익을 목표로 하게 되거든. 나도 내 관심 분야가 사회랑 유리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혼자서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이야.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는 수치에 따라 명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경우에는 불명확한 부분이 많고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연구자의 의도에 따라 결론을 바꿀 수도 있어.
윤 : 통계치 조작 같은 거?
박 : 통계치 조작까지는 못해. 하지만 질문을 언제, 어떻게 던지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거든.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설문에 “○○당은 □□당에서 떨어져나온 정당입니다. 이 당을 지지하겠습니까?”라고 적는다면, ‘떨어져나오다’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해. 또 우리가 어떤 결과물을 해석할 때 적극적인 해석과 소극적인 해석을 사용할 수도 있어. 반면 크라우드 펀딩은 기획의 주체와 성격 자체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자유도가 높은 편이지.
윤 : 새로운 일을 벌여나가려면 앞으로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 수 있잖아. 너만의 필살기가 있다면?
박 :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은 결국 리서치라고 생각해. 대학원 때도 주로 데이터 분석을 했거든. 논문도 그걸 활용해서 냈고. 물론 지금은 내 기술이 좀 낡았겠지? 아무래도 요즘은 딥러닝이 유행이기도 하고.(웃음) 기존 방식이 많은 데이터를 모아서 빠르게 처리하고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면, 요즘은 AI가 적용되면서 사람과 같은 분석가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집중을 하는 거지. 스스로 직접 판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야. 실제 연구 결과를 비교해보면 사람이 하는 것보다 AI가 만드는 값들이 더 정확해. 앞으로 이런 AI를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나한테는 쉽진 않겠지.(웃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만들어내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 상관없이 무언가를 상상하고, 연구하고, 일을 함께해온 사람들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감각은 또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활동들, 그러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들이 주변에 많은 것 같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이 인터뷰처럼. 이거 돈 주나?(웃음) 아무튼, 이 두 가지 능력과 사회적 지식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
누구를 인터뷰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친구로부터 ‘데미안’을 추천받았다. 데미안은 고등학교 동창 박윤중의 애칭이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문학 선생님과도 친분이 깊던 한 친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졸업 후 7년 만에 연락을 해봤다. “윤중아, 나 형근이야.” 어색했지만, 어색함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책을 즐겨 읽던 윤중은 성수동에 있는 소셜 벤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수동에서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이번 인터뷰는 윤형근이 묻고 박윤중이 답을 했다.
윤형근(이하 ‘윤’) : 고등학생 윤중은 항상 책을 들고 다녔던 것 같아. 요즘은 무슨 책 읽는지?
박윤중(이하 ’박‘) :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쓴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로군요』(이소담 옮김, 코난북스, 2017)를 읽고 있어. 일본의 내로라하는 사회학자 열두 명을 찾아가서 “사회학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학자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을 모은 대담집이야.
도대체 사회학은 무엇인가?
윤 : 평소 사회학에 관심이 있었어? 이 책을 보게 된 이유가 궁금해.
박 :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음 달까지만 하고, 내년부터 다시 새로운 삶을 구상하고 살아야 하는데, 막막한 느낌이 들더라. 그러다보니 나의 출발점을 확인해보고 싶었어. 사회학이라는 원점. 내가 사회학을 전공했거든.
윤 : 그럼 책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네가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보자.
박 : 대학에 사회과학부로 들어왔는데, 세부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어. 정치학, 행정학, 법학,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중에서. 근데 되게 혼란스러운 거야.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났어. 그래서 모든 과목을 하나씩 들어봤어.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학과가 없는 거야. 남은 게 사회학이었어. 어떻게 보면 소극적으로 선택을 한 거지. 근데 사회학을 좀더 공부해보니까 다른 학문들은 어떤 것이 맞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고 하면, 사회학은 ‘그게 왜 문제인데?’라고 질문을 하는 거 같은 거야. ‘어떻게’를 말하기 전에 ‘왜’ ‘무엇을’을 묻는 학문이었어. 배워보니까 재밌고 잘 맞더라고.
윤 : 철학이랑 비슷한 건가?
박 :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해 좀더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학문 같아. ‘인간은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고 해야 할까. 사회학은 ‘왜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일까?’라고 질문해.
윤 : 한결 사회학이라는 게 흥미롭게 들리네.(웃음)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는 시점에 네가 왜 너의 원점, 사회학을 짚어보려는지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아.
박 : 아무래도 사회학적 사고와 생각이 내 삶에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가봐. 그런데 사회학으로 대학원 석사까지 마쳤는데,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 “도대체 사회학은 무엇인가?” “도대체 사회학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질문들이야. 쉽게 사회학이란 사회를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하면 되는데, 애써 의미를 덧붙이게 돼.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욱 조심스럽고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잖아.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읽게 됐어.
박사 학위 없는 사회학자
윤 : 책에서 좋았던 부분들 얘기해줄 수 있어?
박 : 서문부터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있었어. “박사 학위도 따지 않은 애송이가 어찌해서 사회학자인 척을 하고 다니지?”라는 말을 저자가 듣곤 했다더라고. 우리나라 역시 대부분의 사회학 연구자들이 박사 학위를 중요하게 여겨. 이 분야를 독단적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증이라고 생각을 해.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은 결국 연구를 주도하지 못하고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어.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어서, 문장이 눈에 띄더라.
윤 :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많이 다르지 않나보구나.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그런 분위기를 꼬집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비교적 젊은 연구자라서일까?
박 : 저자도 85년생이고 나랑 동갑인데, 이 사람이 사회학 책을 쓰기 시작할 때가 스물대여섯 살부터야.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언숙 옮김, 민음사, 2015)1), 『희망난민』(이언숙 옮김, 민음사, 2016)2) 라는 책도 썼는데 모두 다 히트를 쳤어. 그때부터 청년문제에 있어 대표 격으로 방송에 많이 참여했고 ‘사회학자’로 대중에게 각인됐지. 그러다 다른 사회학자들을 만나면 ‘박사도 아닌데 어디 가서 사회학자라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늘 들어왔기 때문에 이 사람한테도 중요한 질문이었던 거야. 과연 사회학이란 무엇인지, 사회학자란 누구인지 말이야. 그런 점에서 이 책,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로군요』은 단순히 흥미로운 대담집이 아니라, 저자가 이것으로 자기의 원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 사회학
윤 : 이 책을 읽게 된 질문인 ‘과연 사회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책에서 찾은 힌트가 있다면?
박 :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았어. 왜냐면 열두 명의 사회학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중에 여덟아홉 명은 진짜 구닥다리야.(웃음) 인터뷰를 하러 온 저자에게 ‘당신(저자)이 사회학자라면 그 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 적어도 박사 학위 정도는 따는 게 좋지 않겠나?’라는 말을 하거든. 물론 나도 박사가 얼마나 중요한 거라는 것도 알고 그런 시선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인 듯 하는 건 위험한 것 같아.
윤 : 마지막 인터뷰한 사회학자는 어떤 사람인지?
박 : 저자가 열두번째로 만난 사회학자는 가이누마 히로시인데, 후쿠시마 원전에 관련된 사회학 논문을 써온 사람이야. 실제 후쿠시마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조사하고 그걸 바탕으로 논문으로 써냈어. 후쿠시마 대지진과 원전 사고 후에도 후쿠시마에 방문하고 관련 글들도 계속해서 써냈어. 오랫동안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학자여서, 다른 학자들과는 다른 시각을 좀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장소를 연구하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사람으로서, 제도권의 학자들이 늘 일반론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그런 얘기나 할 거면 후쿠시마에 대해 아예 거론하지 말라며 강도 있게 비판을 해.
윤 : 그의 이야기에서 생각해볼만한 데가 있었을 것 같아.
박 : 익히 알고 있는 지식들이 어쩌면 우리의 편견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예컨대 후쿠시마로부터 수입한 수산물은 모두 방사능에 오염됐으리라는 것이나 그 지역으로는 여행을 피해야 한다는 것 등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잖아. 실제 히로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방사능 오염 우려로 출입이 제한된 구역은 후쿠시마 전체 지역의 2.3퍼센트이고, 실제 피폭 경험이 있거나 위험성이 있다고 진단 받은 사람도 지역 인구 중 2.6퍼센트라고 하더라고. 꼭 후쿠시마 관련해서만 아니라 어떤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이나 편견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려면, 더 많은 연구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검증하고 믿을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또 하나 그가 한 말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단지 후쿠시마 원전에다 시멘트를 쏟아붓고 더이상 유출수가 없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복원됐을 때 비로소 후쿠시마가 복원되는 것이라고 얘기하더라. 그 둘 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학의 출발점, 앞으로 하고 싶은 사회학과 굉장히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윤 : 책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 중에 또 기억 남는 사람이 있어?
박 : 대학 시절의 은사인 우에노 치즈코를 찾아간 부분이 기억에 남네. 우에노 치츠코는 저자에게 “바닥까지 소비되지 않도록 부디 조심해라.”라고 당부해. 사실 자기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 대부분을 보면 자기 기술 하나를 믿고 시장에 나와 적응하고는 있지만 계속하다보면 기술적인 면도 자기 삶도 소비가 돼. 필수적인 운명 같은 거지. 보통 그 바닥이 보일 때까지 자기를 몰아세우며 기술이든 자기 자신이든 모두 소비해버리게 되거든. 우에노 치츠코가 한 말은 우리에게도 유효하게 들리는 말인 것 같아. 어른으로서, 스승으로서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지지와 격려가 아닐까 생각을 했어.
윤 : 이 책의 저자는 사회학이란 무엇인지 결국 자기만의 답을 찾았을까?
박 : 저자는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사회나 자신을 구상하는 학문’이라는 말을 해. 사회학이 지닌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회’나 ‘자신을 상상하는 힘’에 매력을 느낀다는 거거든. 사회학이란 건 지금의 사회를 설명하고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될 수 있었을까를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게 만들고 새로운 나를 기획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보는 거야.
함께 상상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감각
윤 : 사회학의 힘을 빌려 ‘새로운 나’를 상상해본다면?(웃음)
박 : 앞으로 먹고사는 일이 문제긴 하지. 지금까지는 내가 하는 일에 투자자가 있어서 경제적으로 크게 걱정이 없었지만 곧 소득이 불안정해질 테니까. 대신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생겨 좋기도 해. 누구와 어떤 프로젝트 작업을 해볼 수 있을까 요즘 관심이 많고, 새로운 나를 상상하게 돼.
윤 :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있는지?
박 : 이 책에서 힌트를 좀 얻었는데, 히로시의 경우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서 리서치 프로젝트를 만들었어. 리서치 결과물들을 후원해줬던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형태인거지. 좀더 넓은 범위의 이익을 목표로 하게 되거든. 나도 내 관심 분야가 사회랑 유리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혼자서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이야.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는 수치에 따라 명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경우에는 불명확한 부분이 많고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연구자의 의도에 따라 결론을 바꿀 수도 있어.
윤 : 통계치 조작 같은 거?
박 : 통계치 조작까지는 못해. 하지만 질문을 언제, 어떻게 던지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거든.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설문에 “○○당은 □□당에서 떨어져나온 정당입니다. 이 당을 지지하겠습니까?”라고 적는다면, ‘떨어져나오다’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해. 또 우리가 어떤 결과물을 해석할 때 적극적인 해석과 소극적인 해석을 사용할 수도 있어. 반면 크라우드 펀딩은 기획의 주체와 성격 자체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자유도가 높은 편이지.
윤 : 새로운 일을 벌여나가려면 앞으로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 수 있잖아. 너만의 필살기가 있다면?
박 :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은 결국 리서치라고 생각해. 대학원 때도 주로 데이터 분석을 했거든. 논문도 그걸 활용해서 냈고. 물론 지금은 내 기술이 좀 낡았겠지? 아무래도 요즘은 딥러닝이 유행이기도 하고.(웃음) 기존 방식이 많은 데이터를 모아서 빠르게 처리하고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면, 요즘은 AI가 적용되면서 사람과 같은 분석가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집중을 하는 거지. 스스로 직접 판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야. 실제 연구 결과를 비교해보면 사람이 하는 것보다 AI가 만드는 값들이 더 정확해. 앞으로 이런 AI를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나한테는 쉽진 않겠지.(웃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만들어내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 상관없이 무언가를 상상하고, 연구하고, 일을 함께해온 사람들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감각은 또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활동들, 그러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들이 주변에 많은 것 같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이 인터뷰처럼. 이거 돈 주나?(웃음) 아무튼, 이 두 가지 능력과 사회적 지식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
“책을 들고 서주시면…… 아, 전자책이니까 그럼 손에 들고!”
B&M friend
윤형근, 김다영, 황정한. 전혀 다른 세 삶을 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잠시 비슷한 삶을 살았다. 각자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세 갈래의 삶을 살고 있으나, 이 프로젝트를 빌미로 또다른 삶의 접점 하나가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2019/03/26
16호
- 1
- 젊음과 행복에 대해 기존과 다른 새로운 시선을 담은 책.
- 2
- 일본 NGO 단체인 피스보트와 세계 일주를 하면서 그 안에서 각국의 참여자들과 공동체 실험을 하는 것을 직접 참여/관찰해서 엮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