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DDP에서


   우리에게는 DDP(동대문디지털플라자)에 얽힌 기억과 사연이 많다. 정아의 경우, 학부생 시절 자주 답사를 왔고, 해나의 경우, 혜화에 살던 2년간 종종 밤 산책을 오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성행하기 전, 함께 DDP 어울림 광장 벤치에 앉아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일 년만에 DDP를 찾았다.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예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업무를 보러 온 직장인, 산책을 하는 커플.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산한 DDP는 처음이었다. 당혹감을 감춘 채, 김사과의 「여름을 기원함」을 펼쳤다.

금요일 오후였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텅 빈 광장에서 빌리 조엘의 〈Piano man〉을 부르던 이들.

   도시는 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음이 아니라.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겠다.1)

   김사과의 「여름을 기원함」은 신경쇠약을 앓는 J의 이야기다. J가 사립대학 도서관에서 마르크시스트 경제학자의 강연회를 듣고 난 이후, 주요 사건이 진행되는데, 그 이야기들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는 소설 속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중앙도서관의 메인홀’을 화두로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해나 : 자하 하디드라는 인명이 그대로 드러나고, 작가가 평소 계급이나 사회문제를 담론으로 내세우다보니 「여름을 기원함」 속 ‘도서관’ 역시 자연스레 DDP와 연결해 읽게 된 것 같다.

   정아 : 건축물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김사과는 자하 하디드라는 건축가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화제가 됐는지 아는 것 같다. 다른 건축가도 아닌 자하 하디드를 소설에서 특정했다는 것 자체가 그 건축가의 스타일을 ‘나는 이렇게 받아들여’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읽는 입장에서 DDP라고 받아들여도 상관없다고 본다.


   DDP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남다르다.

DDP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3차원 비정형 건물이다. 곡선, 곡면, 사선, 사면으로 이뤄진 건축물로, 2009년 공사를 시작해 2013년 완공되었다.

본래 이곳은 서울 성곽 수문이 지나가는 자리였고, 한국 최초 야구경기(1905)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출범 전까지는 야구 중심지이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사가 깊이 녹아든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당시 시장이었던 오세훈은 공간을 허물고 졸속으로 DDP를 지었다. 총 공사비용은 무려 5000억이었다.(사진 출처: 서울시 사진 기록화 사업)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이후, DDP가 들어섰다. DDP 설계안은 공모를 통해 결정되었다. 심사위원은 외국인 4명과 내국인 3명으로 구성되었는데,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국 건축가의 설계안이 우대받을 거라는 우려와 ‘과연 공평한 심사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결국 동대문운동장의 2/3만 허물고 역사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설계된 조성룡의 시안이나, 유걸, 승효상의 시안은 탈락되고 부지의 역사나 정체성과는 동떨어진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이 최종 선정되었다.

   
해나 : DDP는 동대문의 역동성을 담고 있기보다는 자하 하디드의 고향인 이라크의 특색을 더 띄고 있는 듯하다. 중동에는 사막이 많지 않나. 사막 특유의 유동적인 지반을 본떠 자하 하디드는 반듯한 형태의 건축 시안을 지양하고, 물 흐르는 듯한 곡선형 건축물을 주로 설계했다고 하더라.

   정아 : 맞다. 자하 하디드는 페이퍼 아키텍트이기도 했다. 성립될 수 없는 도면을 그려서 인정을 못 받은.

   해나 : 그래서인지 말 그대로 지역성을 무시한, 어디에 있어도 무관한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것 같다.

   정아 : 확실히 건축물은 다 지어질 때까지 결과나 반응을 예상 못하겠다. 좋은 의도, 좋은 기획이라도 그것이 흉물이 될지 모르니까.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자유로운 파사드를 가진 비정형 건축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본질은 바뀌지 않고 형태만 바뀌는 것이 미래의 것이고, 새로운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 무분별하게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J, 넌 미친 게 아니야, 그저 신경쇠약이야.2)

   
정아 : 「여름을 기원함」 주인공의 정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 그래서인지 메인 홀을 비롯한 외부의 것들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해나 : 김사과 작품 전반엔 신경증을 앓는 인물이 줄곧 등장한다. 평범한 이들이 세계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며 망가져가는 「과학자」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다」가 그러하다.
3)
「여름을 기원함」의 경우, 세계를 향한 과격과 절망은 빠지고, 무력만이 남아 있는 느낌이라 읽으며 좀 서글프기도 했다.

   정아 :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소설에서 ‘도시는 무슨 짓을 하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구절이 도시를 걱정하는 모두의 염원은 소용없다고 말하는 느낌이라 슬프게 다가왔다. 주인공 J와 마르크시스트 경제학자, 그를 반대하는 학생 최는 서로 다른 계급, 정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들은 똑같이 망해가는 도시를 걱정한다. 그걸 보고 도시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노력 혹은 욕망이 결국 도시의 죽음을 기원하는 행동이며, 그 안에 사는 우리는 그 기류에 휩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나 : J나 최에게 도시는 안전하지 않은 곳, 불안한 곳인 것 같다. 나아가 현대인들에게 도시는 그런 공간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해체되고, 사라지는 불안한 공간.

   정아 : 그렇다. 정착하기도 어렵고.


   우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1번 출구로 나갔다. 버스킹이나 공연이 벌어지던 어울림 광장엔 시민 몇 사람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광장을 지나 잔디 언덕으로 향했다. 여름 볕이 뜨거웠다.

마스크를 쓴 채 DDP를 가로지르는 행인들

   사산된 도시, 공항 또는 국제화. 아주 작아지는 세계. 모두가 모두를 안다. 아주 좁아지는 세계, 모두가 모두를 역겨워한다. 결여, 미래의 결여, 진리의 결어, 언어의 결여, 결여, 3세계, 금과 피로 만든, 피와 금에 덮힌(…)4)

   
해나 : 근작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5)
에서도 그렇고, 김사과는 줄곧 계급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이 소설도 일정 부분 계급성에 기인하는 것 같다.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최/ 셀린느 쇼퍼백을 든 J. 실직한 아버지를 둔 최/공항에서 일하는 남편을 둔 J. 대조되는 두 사람을 통해 직업, 계층, 세대의 차이를 보여준다. 비약일수도 있으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것을 DDP의 속성과 연관지어 읽게 되었다.

   정아 : 어떤?

   해나 :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권력이랄까.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서 한 블록만 가면 창신동이 나왔다. 여전히 그곳엔 수많은 미싱 공장이 들어서 있는데, 그 공장의 노동자들이나 배달기사들이 DDP에서 열리는 패션 위크나 ‘샤넬전’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떠올린 적이 있다. DDP는 그들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 권력과 계층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생각.

   정아 : 그럴 수 있겠다.

   해나 : 물론 독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DDP의 비하인드를 모르는 이들은 자칫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정아 : 확실히 자하 하디드를 모르면 소설을 읽고 ‘왜 나오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해나 : 어쩌면 이것은 소설의 모호성 때문에 발생된 매력적인 오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아 : 맞다. 알아볼 사람만 알아보라 이거지. 어쩌면 우리가 DDP를 관심 있게 봤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모른다면 DDP를 지나가면서 그저 멋있다, 사진 찍자 하고 그치지 않았을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내가 비정형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비판적으로 바라봤을까 싶기도 하고.

   해나 : 맞다. 배경을 알면 시각도 달라지는 것 같다. 취향도 그에 한몫하는 것 같고.



   산책을 마치며


   ―남는 이야기


   산책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향했다. 세 시간 가량의 긴 산책이었으나, 여전히 남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자하 하디드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개념을 적용해 건물 상부까지 공원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이는 시공, 안전상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 지붕 위의 밟을 수 없는 인공 잔디는 그 실패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하 하디드의 핵심 콘셉트를 다 담아내지 못한 채, DDP는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2014년 공개됐다. 하지만 그 타이틀은 건축물의 압도적인 스케일만을 강조할 뿐, 저 대지에 얽힌 많은 쟁점은 가리고 있다.(사진 출처: DDP 공식 홈페이지)


   
정아 : 「여름을 기원함」이나 DDP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이 들어가본 적은 없는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DDP는 지금까지 보여지는 것 위주로 이용된 것 같다. 그러기 좋은 건축물인 것 같다. 작가가 소재를 잘 선택한 것 같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사실 우리가 선택한 소설 중에 가장 어려웠다. 다층적이라 그런 것 같다.

   해나 : 맞다. 다층적이다. 나는 다시 읽다보니 소설의 정교한 묘사에 눈길이 갔다. 공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도, ‘각진 어깨’라든지, ‘그녀의 머리는 매끄러운 타원형이었고 그녀 남편의 어깨는 직각에 가깝게 반듯했다’ 같은 부분은 상당히 건축적이고 구조적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정아 : 수십 년을 보낸 장소가 갑자기 변하면 속상할 것 같다.

   해나 : 그럴 것이다. 아꼈던 공간이 사라지면 허전하지.

   정아 : 나도 예전에 살던 집이 팔리고 다른 건물이 들어섰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내 유년기를 보낸 곳이 이제 사진이나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게 된 거니까. 그렇다고 뒤에 들어선 건물이 제 구실을 한 것도 아니어서 속상하기도 했고.

   해나 : 이 이야기는 다음에 우리가 얘기할 용산과도 연관되어 있다. 용산은 삶의 터전을 지키려다 희생된 이들의 공간이기도 하고,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공간이기도 하니까.

   정아 : 예고편인가?

   해나 : 그렇게 되나? 그럼 이 멘트는 맨 뒤에 실어야겠다.


   *8월에는 김연수 작가의 「동욱」을 읽고 용산에 갑니다.



경계 없는 작업실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소설가 성해나와 건축학도 원정아. 문학 안에는 사람이, 사람 안에는 건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 안에 있는 건축을 본다.

2020/06/30
31호

1
김사과, 「여름을 기원함」,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4, 83쪽.
2
앞의 책, 77쪽.
3
「과학자」,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다」는 김사과 소설집 『영이』(창비, 2010)에 수록됨.
4
김사과, 「여름을 기원함」,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4, 91쪽.
5
《자음과모음》 2019년 여름호에 발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