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小說
4화 타오르는 171의 초상 _「삭선」
노체님이 제보하신 일기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해서 러닝을 할까 했는데 밖에 비가 와서 대신 어제 자 일기를 쓰기로 했다. 생일날은 언제나 다른 날보다 좀더 우울하고 꼭 울면서 잠들곤 하는데 어제는 기분이 그다지 우울하지 않았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할머니가 사다리 좀 빌려달라고 온 것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빌려달라고 하실 것 같아서 별로 빌려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미안한데 집까지 좀 가져다달라고 했다. 농촌에서 모든 마을 어르신들의 잡일꾼 노릇을 하는 청년이 된 기분을 느꼈다. 사실 옆집이니 그렇게 수고스런 일도 아니지만 제발 오늘이 마지막이기를 바랐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자전거 타고 샐러드를 사러 가다가 넘어져서 팔다리에 엄청 상처가 났다. 그다지 화나지 않았다. 그저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오늘 점신 어플로 본 운세에서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그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도 있으니 혼자 있으라고 써져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나마 내가 다쳤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라고 지랄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니 점신 어플을 이제 그만 봐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퇴사를 하고 놀고 있다보니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의 안부보다는 나처럼 취준하고 있는 친구들의 안부가 더 궁금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괜히 취준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할까봐 말을 잘 안 걸었는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내가 다시 취준생이 돼서 직장인 친구와 말하는 일을 피하려고 하고 있으니 정말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더 우울해지니 어쩔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위터에 맨날 퇴사하고 싶다고 썼는데, 이제 퇴사하고 싶다는 내 트윗을 보면 좀 내가 싫어지는 기분이 든다.
처음 듣는 이름의 아저씨한테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업무 중 한번 불렀던 콜밴 아저씨였다. 꽃 사진까지 보내주신 마음이 감사해서 답장을 보냈다.
저녁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데 생리통으로 배가 슬슬 아파와서 또 기분을 잡쳤다. 생리할 때가 됐는데도 전처럼 예민해지지 않아서 내가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우울도 미뤄두면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나보다.
화상채팅으로 진행되는 사설 에세이 강의를 듣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듣고 싶었던 이리가레의 글을 읽는 강의였는데 텍스트를 읽어가지 않아서인지 무슨 말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뭘 모방하라는데 뭘 모방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촉각이 시각보다 더 근원적인 감각이라는 얘기도 강조했는데 솔직히 너무 철학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철학자지만. 촉각은 대상과 주체가 없는 감각이라 철학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감각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재밌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걸로 멘붕까지 겪는 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철학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많았는데 나는 왜 이리가레의 글을 읽지 않았지 하는 생각에 또 자괴감이 들었다. 자꾸 다른 브라우저창이나 카톡창을 열게 돼서 손이라도 붙잡아두기 위해 강의를 들으면서 테트리스 게임을 했다. 마우스로도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배도 좀 아프고 아이스크림케이크도 못 먹을 것 같고 강의가 끝나면 바로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의가 늦게 끝나서 또 좀 짜증이 났다. 사실 그냥 끄고 자면 되는 건데 그러지도 못하는 나한테 짜증이 난 것이다. 밤 10시쯤 되니 강의가 끝났고 진짜 잠을 자려는데 갑자기 너무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울었다. 생일은 우울하기 위해 존재하는 날 같다. 축하를 많이 받아도 축하를 적게 받아도 늘 우울하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도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해도 늘 우울하다. 이것도 한국이 이렇게 만든 거다. 나는 생일마다 생일이라면 마땅히 행복해야 하는 이상적인 나와 경쟁한다. 생일이라면 이 정도는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늘 그만큼 행복하지 않으니 우울하다.
한 시간 정도 우울해하다가 카톡창을 켜니 늘 마음 한편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언니에게서 늘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연락한 지 오래된 고등학교 때 단짝친구에게서도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걸 보고 어쩐지 또 눈물이 났고 이젠 정말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생일이니까 우울한 거고 내일은 다를 거라고, 분명 더 나을 거라고 이뤄지지 않을 걸 아는 기대를 했다.
「삭선」
뱉어낸 치약 거품 속에 옅은 피가 섞여 있었다. 혀끝으로 치아 안쪽을 훑어보았으나 특별히 아픈 데가 없었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잇몸병 탓일 것이다. 힘들 때 이를 악 무는 버릇이 어느 정도 원인 제공은 할 것이라고 J가 말한 적 있었다. 아직 물로 헹궈내지 않은 입속을 거울로 들여다보았다. 지저분한 파도가 지나간 자리마냥 남은 거품들이 자잘하게 터지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턱이 빠질 듯한 통증을 느끼며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입안은 금방 말랐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굳어 서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툭 치면 무너지는 버려진 모래성처럼 말이다. 칫솔을 털고 양치를 마무리 할 때까지 벨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일층 현관 인터폰도 통하지 않고 바로 초인종을 누를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302호 할머니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신의 이웃집을 건너뛰고 꼭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먹는지도 알 수 없는 붉은 약초의 원액 따위를 나누어주거나 복도에 말려놓은 우산을 집어넣으라는 식의 오지랖이 주된 용건이었다. 할머니를 가끔은 무시했고 또 가끔은 다퉜다. 문제는 그게 나와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할머니의 지나친 낙관이었다. J는 할머니와 잘 지냈다. 서글서글 웃으며 때마다 고맙다, 죄송하다 잘도 받아주었다. 결국 남겨진 나만 그 성가신 푸념을 견뎌야 했다. 이제 함께 살지 않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할머니는 자주 J의 이야기를 꺼내어 그애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나와 이어가려고 했다.
“사다리 있지?”
대뜸 할머니는 그렇게 물었다. 사다리는 없고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접이식 발판이 있었다. 이 집의 세간살이는 어떻게 또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없는데요.”
“있어. 전에 아가씨가 빌려줬다가 다시 가져갔잖어.”
겪을 때마다 충격적인 화법이었다. 엄연히 내 물건인데, 꼭 자기 것을 훔쳐간 사람 대하듯이. 일부러 문을 얼굴 너비만큼만 열고 서 있는데 그 틈을 기어코 들여다보는 할머니의 태도가 불쾌했다.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기대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베란다에서 발판을 꺼내왔을 때 이미 할머니는 되돌아가고 없었다. 자신의 집으로 가져다놓으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어깨가 한 번 크게 들썩일 정도로 큰 한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외출을 하려던 참이었다. 아니, 별다른 용건이 없었더라도 다시 할머니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 고독함에서 나오는 괴팍함에는 어딘가 전염성이 있었다. 두 마디 이상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입에 남는 텁텁함이 유쾌할 리 없었다. 때문에 나는 발판을 문 앞에 기대 세워놓은 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토록 간절하게 내 존재를 잊어줬으면 하고 바란 적이 없었다. 꾸준히 시끄럽고 머리를 아프게 했다.
8월의 더운 바람이 얼굴을 덮는데도 머릿속이 깡깡 얼어 있는 듯 했다. 무겁고 시려서 생각하는 족족 들러붙어 함께 얼어버리는 큰 덩어리, 그 안에 심지처럼 박혀 있는 한 사람이 있었고 나는 자꾸 모르는 척 했다.
만남의 광장은 누군가를 만나기엔 부적절했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리기도 어려웠다. 동쪽이며 서쪽이며 실력 없는 버스커들이 제 집 안방인 양 노래를 불러댔고 그 번잡함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특히 서쪽의 버스커가 아주 형편없었는데, 그는 랩을 노래처럼 했고 노래를 랩처럼 하는 사내였다. 본인은 긴장감을 바이브레이션으로 잘 위장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듯하였으나 나는 그 자아도취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서 등을 확 덮치는 손길에 놀라 몸을 웅크렸다.
“왜 또 일찍 와 있어.”
원래 여자는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나와 있어야 한다고, 언니는 그게 대단한 신조인 양 자주 말했었다. 오늘도 내 품에 손을 집어넣어 팔짱을 끼면서 같은 말을 했다. 언니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약속 시간에 5분씩 늦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언젠가는 꼭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J가 집을 나간 걸 알고 난 뒤로 내게 건네는 호감 표시가 노골적이어진 언니가 싫지 않았다. 그 말은 오래 생각해야 할 숙제가 될 것이고 나는 언니까지 그런 시시껄렁한 늪에 빠지는 걸 원치 않았다. 이번엔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절대로 사사건건 솔직해지지 말아야지. 오늘도 스스로에게 다짐하지 않았나.
구름떼 같이 모인 사람들 틈을 비집고 광장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섰다. 자주 가던 카페는 얼마 전 인기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와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단골 가게를 잃게 된 일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번번히 아쉬웠다. 자주 가던 국수집이 없어졌을 때 그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묻는 메시지를 계기로 J와 재회했던 적이 있었다. J가 자신의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는 문제로 크게 다투다 처음 헤어졌던 일의 이후였다.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아도 어차피 떠오를 사람이라는 게 새삼스러웠다. 언니와는 결국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애당초 언니와 만나기로 한 목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잊고 한참동안 트럼프 얘기에만 열중해 있었다. 언니는 영어 공부를 위해 트럼프의 트위터를 팔로잉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란 것을 알기에 그저 웃었다. 나는 트럼프가 돈이 없었더라면 302호 할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받아야 하는 관심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그것을 채우지 않으면 쉽게 성을 내는 성격 같은 거. 내가 비아냥거리자 언니는 즐거워하는 표정을 채 지우지 못하며 내가 나쁜 거라고 말했다. 나쁘다는 말을 욕으로 듣지 않는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괜찮아, 나 너 같은 애들 많이 겪어봤어. 하는 듯한 언니의 아량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내 악의를 이해받을 때 도리어 당황하는 쪽은 나였다. 죽어라 나쁜 말을 퍼붓는데 생채기 하나 없이 나를 안아주겠다 두 팔을 벌리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뜻 없는 표정 하나에도 종일을 앓던 지나간 연인을 이해했다고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말과 말 사이의 행간이 길어졌을 때, 언니는 소리 나게 손뼉을 치곤 어서 꺼내보라고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손가락을 휘저었다. 그래 맞아. 언니에게 자기소개서 수정을 도움 받으려고 만난 자리였다. 처음 사설 에세이 강의에서 만났을 때부터 언니는 내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데에 늘 적극적이었다. 기꺼이 클리어파일에 끼워가며 챙겨와놓고 그걸 가방에서 꺼내는 게 망설여졌다. 작문은 자신 있었지만 그건 분명 자기소개서에 적용될 문장들과는 조금 달랐고 언니는 기업에서 좋아할 말들을 귀신같이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처음부터 다시 쓸 거야.”
손을 내밀면서 해맑게 건네는 그 냉정한 말이 어딘지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자신을 소개한다는 말 자체가 낯간지럽다고 생각해왔다. 꼭 맞선자리에 나가 그만그만한 상대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가냘프게 어필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에 반해 언니는 이왕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면 내가 제일 잘해야지라는 신념이 굳게 박힌 사람처럼 뻔뻔했다. 확실한 건, 언니를 알기 전의 나는 언니 같은 사람들에겐 적당히 거리를 둬가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언니가 겨우 두 쪽을 빼곡히 채운 자기소개서를 유심히 읽는 동안 나는 턱을 괴고 창문에 비친 언니를 보았다. 창밖을 지나는 몇 개의 다리가 언니의 반투명한 몸속을 휘휘 지나쳐 다닐 때, 나는 선명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 하루 내게 있어 선명한 것이라곤 사다리를 빌려온 할머니와 수준 낮은 버스킹을 하던 사내를 향한 지나친 증오심뿐이었다. 그냥 지나칠 법한 일들이 자꾸 턱턱 몸에 걸리는 게 내가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근데 있잖아.”
자기소개서를 읽던 언니가 중간 어디쯤을 펜으로 찌르며 말했다. 나는 턱을 괴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틀어 그 부분을 함께 읽는 시늉을 했다.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꼭 반성문 같아.”
인터넷에서 본 합격보장 자기소개서 작성법에는 자신의 단점을 잘 극복한 일화를 적으면 좋다고 쓰여 있었다. 쓰다보니 단점은 무궁했고 극복의 경험은 빈약했다. 일단 나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 사람이 나를 상처주지 않을까, 내가 기대했던 바와 달라 실망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모든 관계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내 의심은 티가 잘 났고 대부분의 상대가 그런 내게 먼저 다가오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면 나는 또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며 하나도 상처받지 않은 척을 한다.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을 때 나는 꼭 한 계단쯤 아래에 서 있는 사람처럼 작아졌지만 그런 내게 내미는 착한 손을 덥석 잡아본 적도 없었다. 아, 딱 한 번 있었다. 결국엔 다시 내쳐졌지만.
다시 머리가 지끈 아파왔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언니 그냥 다음에 봐줘. 오늘은 아닌 거 같아.”
언니는 내 손목을 잡아 내리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전에도 그랬잖아. 그다음이 오늘이었잖아.” 언니가 맥박을 짚듯 쓰다듬는 왼손에는 아직 반지 자국이 선명했다.
나 일 그만두면 우리 놀러가자. 꼬박 하루를 들이는 거야. 어디까지 멀리 갈 수 있는지 가보자. 지금은 말고 나중에 꼭 가보자.
다음이라는 건, 나중이라는 건 늘 편했다. 그 기약 없는 시간이 더는 아무 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 때까지 떠넘기기만 했다. J가 지금 이렇게 새로운 사람에게 손목을 내어준 나를 본다면 얼마나 뻔뻔하다 생각할까. 거봐. 넌 겨우 너야. 하고 끝끝내 헤어짐을 말하던 때와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변명하고 싶다. 그날, 네가 오랜만에 집 앞까지 마중을 나오겠다고 해서 난 정말 기뻤다고.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퇴사를 하는 것도, 더 일찍 퇴사를 하지 않은 것도 후회할 것이라는 모진 충고들을 다 등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일이 던진 악순환의 그물에 허우적거리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 때문에 병들어가는 나와, 그런 나 때문에 자꾸 상처받는 J가 가여웠다. 오래 앓아왔던 일이 끝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J가 읊어준 오늘의 운세는 평소보다 신통력 있게 들려왔다. 그러나 막상 전자공문에 내 사직서가 기안된 것을 마주하니 허무한 마음이 어리광처럼 몰려왔다. 차갑게 돌변한 사수의 태도에 이미 마음이 무거웠다. 충분히 오래 고민했던 것인데, 마치 철없는 충동으로 벌인 일인 양 무안을 주는 이들에 덜컥 놀라기도 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J를 보면 목놓아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집 앞에 도착했지만 J는 없었다. 빌라 건물의 조악한 앞마당을 자기 것처럼 쓸던 할머니만이 나를 발견하곤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길이 엇갈렸나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려고 했다. 계단을 오르는 내 뒤에 대고 싸가지가 어쩌고 하며 혀를 끌끌 차는 할머니도 무시하려고 했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J와 마주쳤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면서 민망한 듯 웃기에 나는 지친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때 할머니의 한마디가 더 날아왔다.
“여자 둘이서 뭘 하겠다고.”
J는 내가 과민하게 오해하는 것이라 했다. 설령 할머니가 우리의 관계를 알고 한 말이라고 해도 어른들 눈엔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J의 말이 맞았다. 마주칠 때마다 시비를 걸어오는 할머니는 그럴 수도 있었다. 할머니와 나는 세대를 떠나 사람과 사람으로서 절대로 좁힐 수 없는 생각의 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고 했다. 다 알았다고. 그만하자고. 더 길고 지루한 설전이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차라리 J는 그러길 바랐겠지만 그날 난 정말 힘들었다. 오래 앓아왔고 바로 결실을 맺게 되리라는 운세 속의 그 일이 퇴직이 아닌 우리의 관계를 일컫는 것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이라도 첨언하고 싶은 변명은 더이상 너에게 원망 받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는 것이었다.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언니는 자기소개서 수정을 마쳤다.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철학자의 저서가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고, 학부생 때 과제로 어쩔 수 없이 했었던 벽화그리기의 경험은 어느 골목을 아름답게 조성한 봉사활동이 되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정말 구직 때문에 애를 먹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어난 사건마다 바쁘게도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온 이가, 낱장의 종이 속에 살고 있었다. 언니가 그어놓은 삭선 아래의 내가 참으로 미련해보였다. 날이 잔뜩 서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 난, 덜 자라고 경험 없는 어린 아이가 거기에 있었다. 언니가 새로 써준 문장들을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꾸 내 마음이 그 아래 드리워진 그늘을 들추어보려고 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다른 일을 착수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라는 문장의 속뜻은 몹시 이기적인 성정 때문에 주변 사람을 상처 입히곤 합니다. 와 같았다. 그건 꼭 일에 관련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다른 기분에 놓인 것만 보아도 쉽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걸 표출해내야만 했다. 나에게 있어 최선의 방어는 언제나 남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끝끝내 외로워지는 건 나라는 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럴 땐 정말 나도 나를 외면하고 싶었다.
“왜.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아?”
언니가 내 굳은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숱하게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봐주었다던 언니에겐 익숙한 반응인 듯 했다.
“어차피 면접관들은 기억도 못해.”
이 거짓말은 어차피 금방 세상에서 사라질 거니 안심하라는 말일 것이다. 잔인하다, 라고 말하면서도 실소가 새어나왔다. 언니도 따라 웃었다. 언니가 내게 필요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는 확신과는 별개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결국 언니에게도 같은 실수를 저지를 거라는 것이었다. J와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도, 닮은 사람을 만나도 나는 여전히 이 층계에 갇혀 내내 울적할 것이다. 이 기분만이 내가 타고난 것인 양.
“자꾸 생각이 어디 가 있네.” 잠시 넋을 놓은 눈동자 앞에 언니의 손이 휘휘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니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아. 옆집 할머니 같이.”
나는 조금 주눅이 든 채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잠시 내 말을 이해하려는 듯 눈을 굴렸다.
“넌 아직 멀었거든.”
별일도 아니라는 듯,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언니의 말은 다정한데 자꾸 내 모난 곳을 깎아낸다. 이 자격지심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하고 싶은데, 언니는 다 괜찮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면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언니가 그어놓은 삭선 밖의 사람이 된다.
맞지도 않는 거 그만 좀 봐. 하고 소리치는데도 J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그날의 운세를 읊었다. 그러다 끝내 울어버리는 그애를 나는 남보다 더 차갑게 바라봤다. 함께 서로의 점괘를 읽어주며 즐거워했던 한때의 기억에 J가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엔 내가 읽어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잠들기 전 J가 낮은 목소리로 읽어주는 모든 것에 두려울 정도로 포근한 안정감을 느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한번은 어떻게 멋진 이성을 만나게 되는 일이 우리에게 최고의 하루가 될 수 있냐고, 그건 서로에게 너무 잔인한 일 아니냐는, 실없는 말장난 따위를 주고받으며 며칠이나 웃었던 일도 있었다. 그런 농담들까지 쓰러진 팽이처럼 비스듬히 흔들리다 끝내 멈추어버리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모든 게 낡은 추억에 불과했다. 분명 J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잠들기 전에 나란히 누워 그날의 운세를 읽으며 지난 하루와 얼마나 들어맞았는지 따지는 일은 우리의 관계에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걸. 아니, 애초에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던 일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J가 맹신했던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옮겨다 적은 오늘의 운세 따위가 아니라 나와의 관계였다.
이 연애만큼은 보다 분명하고 강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적어도 J가 자꾸 내 눈치를 본다는 것 때문에, 그러지 말라는 내 말이 또 자신을 탓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그애의 성마른 책임감 때문에 헤어지리라곤 우리 둘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 쉬운 약속들이 J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같은 건 언제쯤 잊어야 적당한 걸까.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반성에 기울이는 시간은 부질없어진다. 아직도 틀린 운세들에 사로잡혀 있는 내가 답답했다. 후회와 단념 그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못나디못난 자신만 남았다. 나도 많이 애쓴 거야, 하고 뻔뻔하게 계속 모르는 척 해볼까. 그건 네가 착해서 그런 거야. 다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고 말하는 언니의 말을 속는 셈 치고 믿어볼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데, 지난날 내가 뱉었던 말들이 불쑥 나타나 대신 답해주고 있었다. 날이 조금 저물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보다 선명해졌지만 그게 나 일리 없었다.
나중에 언제?
그냥…… 한 한 달 후?
다 끝나고 나서?
그래. 다 끝나고 나서.
작가노트_박몽
정신분석학자 뤼스 이리가라이는 환자들이 언어에 강하게 압도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체성 혹은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 언어와 그 언어에 반영된 문화가 그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번 일기의 인상적이었던 몇 개의 장면들 중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장면을 보면서 오래 생각했다. 내가 나를 말하고자 할 때에는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까. 텍스트가 그림이라면 어떤 물감이 쓰일 것이고 어떤 배색을 가질 것이며 그 질감은 또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종국엔 그것이 선택받을 수 있을까 하는 무력한 고민들. 일기 속의 주인공 역시 생일이라는 특수한 하루 속에서 오래 고민하고 있는 듯 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사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또 타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보게 되는 순간들이 과속방지턱처럼 하루의 군데군데 튀어나와 있었다. ‘나를 증명하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에게 언어는 외부의 압력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는 소설 속 화자의 곁을 맴도는 목소리를 구상하게 했다.
말의 무게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 역으로 말하지 않음이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권태로운 연인 관계를 떠올리게 됐다. 헤어진 연인인 J와 새로이 관계를 시작하려는 ‘언니’의 사이에 있는 듯하나 결국 소설 속 ‘나’는 자신이 언젠가 뱉었던 말들(언어들)로 인해 한 걸음을 내딛는 데에 주저함을 느낀다. 그 회상이 함의하고 있는 솔직한 자기소개에 삭선을 덧대보지만 화자는 자신을 외면하지 못한다. 적어도 내가 일기에서 발견한 인물의 내구성은 그런 모습에 있었다. 퀴어 로맨스를 작심했지만 사랑 얘기보다 사람 얘기에 힘을 싣게 된 것은 순전히 본 일기의 영향일 것이다. 더 큰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일기였다.
월과월과월
매주 월요일(月)에 모여,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넘나들며(越), 문장(문장의 최소 단위를 뜻하는 우리말 ‘월’)을 쓴다는 목표 아래 모인 창작 동인이다. 만화 시나리오 작가 강아는 좋아하는 만화와 소설 앞에선 조금 상기되는 편이다. 대학원생 박몽은 동경에 거주중이고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 단 한 해도 학교를 쉰 적 없는 학교 덕후다. 생활체육인 이문경은 책을 만들며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
2020/09/29
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