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기
   출산 한 달 만에 설익은 쌀처럼 버석거리는 몸을 이끌고 영화관에 갔다. 기어이. 혼자서. 영화는 <곡성>. 새벽 수유를 하며 느낀 공포는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잠과 영화와 여행. 아이가 태어나고 잃은 것들. 별일 아닌 것들. 고작 이걸 하려고 시간을 벌었나 싶은 일들. 나를 잃지 않고 아이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친구다. 지금은 부부. 아이가 한 명 있다. 이름은 결. 자기 결대로 살라는 뜻이다. 예쁘고, 잘 먹고, 짜증 부린다. 처음 겪는 이 시간이 낯설다. 먹이고, 치우고, 재우고.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하루가 된 일들. 서른일곱, 동갑내기 부부는 기쁘고 힘들다. 잘, 해보자. 잘하자. 피곤하지만 벅찬 이야기를.





   시간의 결


   - 보고 싶어, 가고 싶어, 자고 싶어.


   나성훈(아빠) : 결이 태어난 후에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야?

   장은혜(엄마) : <곡성>. 너무 무서워서 산후에 아직 맞춰지지 않은 기관들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랄까. 그때는 동물로 따지면 어미 된 모습만 가지고 있는 거잖아. 젖 물리고 기저귀 치우고…… 일을 반복하다보니 강한 자극이 필요했어. 그래서 무서운 영화를 본 건데 생각보다 너무 강했던 거지.

   나성훈 : 그동안 여행도 잘 못 갔잖아.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장은혜 : 태국 치앙마이. 더운 거 좋아하지 않는데 그냥 가보고 싶어. 호시하나 빌리지라는 숙소는 관광지랑 떨어져 있어서 인위적인 게 많지 않고 TV도 없대. 결이는 심심하려나?

   나성훈 : 아무래도 결혼 전에 가는 여행이랑 느낌이 다르겠지?

   장은혜 : 같이 가는 여행은 여행 같지 않아. 미안한 얘기지만…… 낯선 환경에서 피곤한 건 더할 거 아냐? 아이 먼저 챙겨야 하니까. 하루에 맥주 한 잔도 못 마실걸?

   나성훈 : 나는 결혼하고 나니까 외국 여행을 꺼리게 돼. 혼자일 때보다 걱정도 많아지고. 낯선 데서 헤어지게 되거나 우리 중 누구라도 아프거나 다치면 잘 대처할 수 있을지 불안해. 결이 낳은 후로 잠자는 건 어때? 난 잠을 끝까지 자보고 싶은 게 제일 큰 소원이야.

   장은혜 : 잠에 대한 욕구는 그렇게 크지 않아. 지금은 결이가 패턴이 생겨서 괜찮아. 그것에 맞추면 조금이라도 잘 수 있잖아.

   나성훈 : 나는 대자로 뻗어서 계속 잤으면 좋겠어. 내 리듬대로 잠들고 일어나고 움직이고…… 그런 지가 정말 오래된 것 같아. 지금은 결이가 오래 자니까 괜찮은데 한동안 자주 깰 때는 미칠 것 같더라.


결이의 낮잠 시간. 짧은 '브런치 무비 타임'.


   - 건강하게, 겸손하게, 결이답게


   나성훈 : 결이 키우면서 걱정되는 건 뭐야?

   장은혜 : 이승환 노래 가사 중에 ‘첫번째 내 소원은 나 없는 곳에서 아프지 말아요’라는 부분이 있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결이가 다치거나 자기 명만큼 못 살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어. 건강하게 큰 사고 없이 자라면 좋겠어.

   나성훈 : 결이는 어떻게 클까?

   장은혜 : 아이가 다 자란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좋은 아이가 되면 좋겠지. 겸손한 사람이면 좋겠지. 어려운 일이 생겨도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유쾌하고 밝은 아이였으면 좋겠어. 물론 편하게 살면 제일 좋지. 하지만 나는 사람이 힘든 일이 없으면 다른 이를 이해하는 폭이 좁아진다고 생각하거든.

   나성훈 : 나는 결이에게 아무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어. 타고난 대로 자기를 표현하고 재능을 발휘하면서 마음껏 살았으면 좋겠어. 감정의 폭이 크면 크게 살고, 원하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고 싶어. 이름처럼 자기 결대로 살아야지. 




함께 여행하기에는 아직 작은 손과 발.


   결의 시간


잘 준비를 끝낸 결의 친구들.


취침 전 행동, 멍멍이 인형을 토닥토닥.


멍멍이 가습기에게도 굿바이 인사!


“자자!”라는 말에 헤드뱅잉.


결의 숙면을 기다리며 turn off.


   엄마의 시간


   잠을 자든 책을 보든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 아, 사진 하는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던가. 자유는 역시 혼자일 때 즐길 수 있는 것. 그런 날이 다시 올까? 시간은 과연 약일까, 독일까?
   잠과 영화와 여행. 결이 동생이 태어나니 다시 잃을 것들. 별것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들. 자신을 잃지 않고 아이도 건강하게 키우는 일. 부부는 두렵고 벅차다. 잘, 해보자. 잘하자. 달리 누가 하겠나.
   우리는 부모다. 아이가 한 명 있다. 이름은 결. 처음 겪는 이 시간이 이제야 익숙하다. 먹이고, 치우고, 재우고. 우리 곁에 다가와 하루가 되어버린 것들. 잘하고 싶다. 어렵다. 할 만큼 하고 손을 놓는다.


   사실 내 소원은……


   나는 궁금할 때가 있어. 내 아이니까 당연히 사랑하는데 가끔은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기는 거야. 왜냐하면 꿈도 미래도 다 내려놓고 희생하는 엄마들도 있잖아.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진 않거든. 지금도 최선이라고 생각하거든.
   육아에 완벽하게 몰입을 못하는 걸까? 집중적으로 육아하는 기간이 끝나면 나도 사진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막상 그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아이도 잘 키워야겠지만 자기 일도 하는 게 맞는 것도 같고……
   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 사회적인 인정에 대한 갈급이 있어. 이런 마음은 단지 아이 잘 키우고 자기 일도 잘하는 ‘좋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인 걸까? 지금은 찍을 수 있는 게 아이 사진뿐이야.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면서도 이런 사진을 누가 알아줄지 확신이 없어. 한편으론 되묻고 싶어. 보통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사회의 역할 아닌지, 나는 내 몫의 삶을 잘 살았는데 왜 걱정해야 하는지 말이야. 인정을 구할 건 내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사진글방

장은혜는 사진 찍고, 나성훈은 글 씁니다. 사진과 글을 도구로 세상의 작은 것들을 정성스럽게 담아냅니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