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공동(체)’ 코너에서는 지난 10년 간 작가들이 사회적 사건에 연대하거나 함께한 경험을 되돌아보는 연속 기획 ‘연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결’에서는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사건 이후 변화된 문학계 전반의 상황이 문학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미친 영향과 제기된 질문들에 대해 자유롭게 듣고자 합니다. 우리는 2010년대 중반 sns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단_내_성폭력 고발과 이에 연대하는 움직임이 불러온 사회 변화를 겪었고, 이로 인해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을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의 질문들에 봉착했습니다. 건강한 문학 생태계란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에서부터 독자와 매체, 출판 환경의 변화에 관한 사유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들과 경험에 대해 묻고자 하는 이번 기획은, 문학이 ‘공동(체)’라는 단어를 ‘지금-여기’에서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초가 되어줄 것입니다.


   사실 이 지면의 기획에 내가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단편 형태의 소설을 썼을 정도로 그 이전엔 배수아를 읽고 그에게 심취하였던 적이 있었을 뿐 한국문학을 읽거나 쓰는 데에 깊은 관심이 없었다. 물론 중·고등학생 때 연재물 형태의 글을 쓰거나 시를 쓰곤 했다. 고3 땐 몇 번 문창과로의 진학을 추천받기도 했지만, 내가 아는 대단한 작가들을 떠올려 보건대 나는 작가가 되긴 그른 것 같았고 그래서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 땐 외국어 전공을 했고 외국의 대학에서도 문학보다는 인류학에 관심을 가졌으니, 한국문학과 문단 사정을 알아갈 만한 시간이나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 그러게,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문창과를 가지 않은 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문학 자체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 말이다. 만약 한국문학이 독자와 더 가까웠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애써 노력하지 않는 이상 문학과 문단을 잘 알기 어려웠던 것은 어쩌면 당시 우리 문단의 폐쇄성을 짐작할 수 있는 한 면이 아닐까? 이 생각은 작가로 활동하면 할수록 더욱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왜냐면 알려지지 않은 좋은 한국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은 너무나 많은데 작가가 아니었던 때의 나는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소위 ‘좋은’ 문학을 선별하기라도 했던 걸까? 위계와 권위에 의해, 권력자의 눈에 드는 소수의 문학만이 빛을 내게 되는 구조가 혹 그곳에 있었던 아닐까.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이게 바로 내가 이 지면의 기획 및 주제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그러니까 오랜 시간 이 집단을 겪지는 않았기에 나보다 오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말이다. 사실 문단이라는 개념은 애당초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나 시인, 평론가 등은 프리랜서이고, 그러므로 어떤 집단으로 환원되지 않아야 맞으니까. 내게는 늘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처음 국문과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조차도 나는 이곳에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것을 이용해 누군가를 짓누를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몰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에 석사에 입학한 경우이다. 한마디로 그런 일이 없어서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시기를 통과하게 되면서 겪었던 마음의 충격과 부침이 꽤나 굉장했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도 말했지만 이곳에 오래 있었을 사람들에 비하면 그 고통의 시간이 짧았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운이 좋게도 말이다.
   누군가 요즘 여성 작가들이,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이용’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나는 시상식 뒷풀이나 모임을 거의 가지 않지만 대학원을 다니다보면 그런 자리에 있어야만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당시 나는 조교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 빠질 수가 없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채 도망갈 궁리만 하다가 1차가 마무리될 무렵 일어서려 했을 때였다. 단지 등단을 하고 소설집을 냈고 수상을 몇 번 했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그날의 중심이 되었던 한 남성 소설가가 내 팔목을 잡았고 믿기 어렵겠지만 핸드폰을 켜더니 내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전화번호를 주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만약 거기서 내가 전화번호라도 말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 남성 소설가는 나도 자신을 좋아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주 뻔한 주장이고, 범죄자들이 써먹는 가장 손쉬운 가스라이팅의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나는 그날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고 기세 좋게 뿌리쳤다지만 설사 누군가 그 상황에 몰려 전화번호를 줬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나 같은 경우가 없어서 동기들은 당황했고(여자 동기들은 속으론 좋아했고) 분위기는 황량해졌다. 왜냐면 권력자들은 여태 그런 식으로 약자가 거부할 수 없는 토대를 다져놨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등단하고 나서는 웬 연구실에 불려가 ‘문단에 들어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내가 들어오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이 이야기들이 믿기 어려울 수도 있고 또다른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자신이 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벌게지기도 할 것이다. 내가 문창 전공이 아닌 연구 쪽에 기웃대게 된 것도 이런 분위기에 질려서이다. 거친 표현을 자제하고 싶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질린’다. 물론 이런 질리는 분위기는 술자리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문단 성범죄는 확실히 권력에 기인한 바, 이 권력은 누군가의 취향에 대해서도 ‘선생’을, 그러니까 권력자의 기준을 최우선으로 삼는 분위기를 가져온 듯했다. 대학원 신입생 시절, “어떤 작가를 좋아해?”라는 물음에 나는 “배수아하고 이영도요.”라고 했고 이런 내 답에 되돌아왔던 말은 단호하고 무례했다. “배수아 좋아하지 마, 등단 못 해.” “이영도? 그런 판타지 작가 말고 좋은 책을 읽도록 해.” 물론 이 고난은 연구 쪽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문학을 참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문학 연구에서 멀어진 것 또한 이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였다. 이문구에 관련된 논문을 보던 중 작품 속에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신하게 된 인물을 두고 ‘생명을 잉태함으로써 거듭난 여성의 몸’과 같은 표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남성 연구자들이나 평론가들의 문장이 나를 지치게 했다. 아니, 강간을 두고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글을 쓴 사람이 내 지도교수라거나 문단에서 유명한 평론가라면 이런 질문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학부 전공 특성상 외국인 교수의 수업만을 들었던 나는 질문을 할 수 없는 분위기 자체도 이해되지 않았다. 나보다 다 책도 많이 읽었고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인간 한 명에게 쩔쩔매는 걸까. 그래, 외부에서 볼 때는 가능한 생각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 상황 속에 위축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내 소설에 섹스와 자극이 없어서 등단하긴 어려울 것이란 말들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어른들’이 있던 그런 집단 분위기에 오래 노출되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위축된 사람들에게 성범죄를 사랑이라는 말로, 예술이라는 말로 서슴없이 저질렀던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 걸까.
   사실 지금의 나는 이제 다른 의미로 그걸 가늠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등단한지 꽤 되었고 그런 기준에서 한 집단을 바라보면 그 집단이 무조건 이전보다는 평온하게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분명 변화했다고 느낀다. 그것은 엄청난 백 래시가 도처에서 날뛰듯 일어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말은 페미니즘이 논의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 취향에 대해 논평 받았던 황당하고 끔찍한 경험들이 줄어든 것도 사실일 것이다. 장르에 대해 뒷말을 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저런 식으로 타인의 취향에 험담하고 재단하는 사람은 예전보다는 확실히 적어졌으니까. ‘등단’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대한 맹신 또한 이전보다 가라앉았다고 느낀다. 이제 등단이 아니더라도 책을 내거나 활동할 기회가 더 많아졌고 독자들의 자체적 판단도 무척 예리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그만큼 한국문학이 이전보다 장르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 다양하게 넓어졌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희망이나 사랑, 낙관과 같은 단어를 다분히 ‘여성적’이며 어리숙하다고 비꼬던 시선 또한 줄어든 것도 맞다. 소설 안에서 여성의 몸과, 아이와, 노인과 장애인, 비인간의 존재를 대상화하는 묘사가 이전에 비해 줄어들고 조심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용기’로 목소리를 내준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실천하려 노력한 사람들이 많아진 덕분일 것이다. 그러니 확실히 그 순간들로부터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삶에서 ‘아는 척’하는 삶으로 스스로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어떤 사람은 ‘소설 쓸 때 이제 너무 많은 걸 알고 써야 돼’ 하고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는 척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그리고 아마, 더 많은 사람이 앞으로 서로에게 더 아는 척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가장 큰 변화, 그거 아닐까. 우리가 서로에게 ‘아는 척’을 좀 시작했고 적어도 모르는 척하진 않을 것이라는 것 말이다.

한정현

한국어로 소설을 씁니다. 문화사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합니다. 언젠가 소설쓰기가 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한 편을 쓸 때마다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이 남은 생의 목표입니다.

2023/01/31
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