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15회 [연결 12] 우리는 정말 실패했을까요
2009년 1월 20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의 남일당 건물 점거농성 현장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9년 6월 24일, 농성에 참여했다가 징역형을 살아야 했던 한 철거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0년이 흘렀으나 용산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과거의 사건으로 잊혀서는 안 되는 일들을 ‘지금’ 다르게 사유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묻고, 무엇을 들어야 할까요?
2009년 6월 9일, 188인의 작가들이 모여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제목으로 6.9 작가선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말하기’를 통해 용산참사에 대한 ‘듣기’를 이어갔던 작가들에게 그날의 선언이 지금 어떤 경험으로 남아 있는지 조심스럽게 질문해보았습니다. 작가들의 과거 연대 경험을 경청하는 일은 그때와 지금을 다르게 연결해주지 않을까요?
6.9 작가선언을 기점으로 10년간의 작가 연대 경험에 대한 아카이빙 연재 기획, ‘연결’을 시작합니다.
카카오톡에 새 메시지가 뜹니다. 얼굴 보기 힘든 친구입니다. 딱히 일이 없으면 집에 있어도 더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친구는 어떤 일을 해도 반응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같이 하자고 하면 살며시 손을 얹거나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거의 말이 없고 적극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시는 무척 잘 쓰고 상도 종종 받고 성실한 시인입니다. 아, 이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온 그의 글에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연이 있던 동네서점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작가들이 힘을 모아주었으면 하는 성명서를 내는데 연명을 받는다고 합니다.
○○문고를 살리는 일에 우리 작가들도 함께합니다.
첫 문장이었습니다. 그는 절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무엇이 친구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부탁에 제 이름과 함께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며칠을 친구와 이 일로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한 것은 고작 연명하고, 동의하는 작가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뿐이었는데 누군가의 마음에는 환한 불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서점은 사라졌습니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이 실망했을까요.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았다고, 그것은 성공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친구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연대의 경험이 얼마나 우리를 환하게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싶음입니다. 작은 하나의 약속이 친구에게는 아주 큰 기쁨이었나봅니다. 메시지에 기쁨이 묻어나옵니다. 우리는 결코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2010년 4월 24일 ‘두물머리, 강이 되어 흐르자: 작가와 독자가 함께 강변 걷기’ 행사 모습.
저는 2009년 용산을 기억합니다. 2009년 두리반을, 쌍용차 노동자를 기억합니다. 2010년 낙동강 도보 순례를 기억합니다. 2011년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노동자 김진숙을 기억합니다. 2013년 강정을 기억합니다. 2018년 노동자 김용균을 기억합니다. 2019년 삼성노동자 김용희를 기억합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의 낭독회, 마리낭독회, 궁중족발 후원 낭독회 그리고 304 낭독회를 기억합니다. 수많은 연대의 장소를 기억합니다. 저는 작가들이 연대한 곳에서 소리 내 글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당사자의 연대자로 한 발 비켜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지만 마음 한 귀퉁이가 뻥 뚫린 것 같아 꾸역꾸역 함께했습니다. 저는 왜 그랬을까요. 그 마음이 뭐였을까요.
2014년 3월 한 대학교의 문예창작과가 폐지 통보를 받습니다.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아무 고민도 없이 문예창작과는 폐지 수순을 밟았습니다. 저는 그 과를 졸업하였고(여차여차 저에게는 무척 소중한 학과였던), 서른다섯에 만난 스무 살들과 공부했고 제 나이 또래의 작가들에게 배웠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소중한 무엇 하나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라는 것은 억울함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고 산다고 했습니다. 산다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주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회사를 열심히 다녔고 시를 열심히 썼고 어떤 거리에서 시를 읽어달라고 하면 읽었습니다.
저는 시인보다는 일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학과 폐지는 견딜 수 없는 억울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언론사 기고를 하게 되고 글 쓰는 친구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부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이었습니다. 게으르고 쓸모없는 것들을 좋아하고 얼굴 내보이는 걸 주저하고 목소리 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나의 친구, 친구의 친구들은 저의 작은 목소리에 반응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처음인 나의 동료들은 그렇게 학과 폐지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후배들에게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학과는 폐지되었습니다. 네, 제가 졸업한 학과는 사라졌고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느 곳에서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성명서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목소리로 문학을 읽고 손으로 글을 쓰는 일뿐이지만 그것이 부끄럽지만 한끼 밥을 먹지 않고 밥값을 송금하고 무용할 뿐이라는 다짐 속에서도 성명서에 연명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시민 한 사람으로 함께하는 작가들에게 저는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동네서점 하나 사라지는 것에 마음 아파 수줍게 문자를 보내는 연대의 마음을 그저 무심하게 받을 것입니다. 때론 오지라퍼가 되어 동네 사람들의 억울함을 들여다볼 것입니다. 그것이 목소리가 되었든, 글이 되었든, 후원금이 되었든 아니면 그저 생각만 해도 되는 그런 마음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이 모든 기억은 저의 목소리에 반응했던 작가 친구들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함께 읽고 함께 기록하고 함께 기억하는 그 마음 하나로 느리게 걸어가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답답할지라도 그 아름다움에 물들기 시작하는 나의 작가들이 있는 까닭입니다.
부탁하고 부탁의 거절을 견디고 쓸쓸함을 감수하고 슬픔을 꾸역꾸역 삼킬 수 있는 근육이 언젠가는 생기겠죠. 아니 끊임없이 저는 좌절하고 주저할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백만 번 생각하고 또 도리질할 것입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무엇인가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입니다. 그것이 제가 경험한 연대의 마음이며, 할 수 있는 연대일 뿐입니다.
유현아
집에는 주로 고양이가 집을 지키고 있다. 귀찮아, 짜증나, 하기 싫어를 습관처럼 말하지만 느릿느릿 무엇인가 새롭게 하는 걸 좋아한다. 숫자와 문서에 굉장히 강해 작가들 행사에 기획 및 정산 업무를 맡는다. 캔디크러쉬소다 게임에 미쳐 있다.
2021/11/30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