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산(사회, 본지 편집위원) : 저는 소설 쓰는 이종산이라고 합니다. ‘넷★릭스와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오늘 좌담은 인터넷으로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 서비스 플랫폼, 그리고 장르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논의를 위해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익히 이름을 들어보셨을 법한 세 분을 초청했습니다. 직접 소개와 근황을 부탁드립니다.

이서영 : 소설 쓰는 이서영입니다. 『유미의 연인』 『악어의 맛』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등을 썼습니다. 최근에는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의 오디오 매거진 ‘월말 김어준’ SF 고인물 특집에 출연했습니다.

박현주 : 소설가, 번역가,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는 박현주입니다. 소설 『나의 오컬트한 일상: 봄, 여름 편』 『나의 오컬트한 일상: 가을, 겨울 편』 『서칭 포 허니맨』을 썼습니다.

김용언 :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입니다. 이전에는 영화잡지 《키노》 《필름 2.0》 《씨네 21》,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을 만들었습니다.


1. 일의 시작과 동력


이종산 : 첫번째 질문을 김용언 편집장님께 드려보겠습니다. 처음 《미스테리아》를 봤을 때 ‘어떻게 이런 잡지가 나왔지?’ 하고 놀랐어요. 장르 잡지의 재미와 깊이가 같이 들어 있고, 책의 만듦새도 너무 좋은 거예요. 창간호부터 《미스테리아》의 팬이 되었지요. 그런데 이번 좌담을 준비하면서 김용언 편집장님 이력을 보다보니까 《판타스틱》도 만드셨다는 거예요. 제가 학교 다닐 때 《판타스틱》의 엄청난 팬이었거든요. 편집장님과 말씀 나눌 수 있어 저는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로, 자신이 좋아하고 몰두해 있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뜻한다.)이 아닌가 싶습니다. 《판타스틱》과 《미스테리아》를 만들 당시의 상황을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용언 : 《판타스틱》 같은 경우는 당시 박상준 편집장님이 먼저 창간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페이퍼하우스라는 출판사에서 사람을 모으고 있었고, 그때 저한테 컨택이 왔었습니다. 저는 장르소설들을 워낙 좋아했으니까 굉장히 재미있겠다고만 생각을 하고 흔쾌히 참여했는데, 《판타스틱》은 SF,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가끔은 무협, 로맨스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다루는 잡지였어요. 한 잡지에 최소 세 가지 이상의 장르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그 점이 조금 어렵기는 했어요. 왜냐하면, 모든 장르를 다 잘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SF에서 유명한 작품들을 어느 정도는 읽었지만,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얘기하라면 절대 얘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 미스터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미스터리의 고인물 분과 비하면 저는 정말 피라미예요. 읽은 게 진짜 없어요. 그래서 이 상태로 괜찮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하다가…… 아무래도 잡지가 아주 잘 팔리는 않았어서 아쉽게도 휴간이 됐고, 그 다음에 다른 회사로 인수가 되어 다른 형태로 나오게 됐지만은 초반 멤버들은 휴간할 때 거의 다 그만둔 상황이 되었고요. 《미스테리아》는 그때의 인연이 이어진 게 있어요. 페이퍼하우스와 긴밀한 관계였던 북스피어에서 일하던 임지호 편집장님이 따로 독립을 하셔서 문학동네의 엘릭시르라는 장르소설 임프린트를 차리셨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 임지호 편집장님이 어느 날 미스터리 잡지를 만들어야겠다면서 연락을 하셨죠. 저는 “잡지가 돈이 안 된다는 점을 아셔야 한다. 절대로 이것은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고, 화수분처럼 돈을 까먹는 것이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아니, 화수분은 좋은 거죠. 화수분의 반대말로……

이종산 : 마이너스 화수분?

이서영 : 밑 빠진 독.

김용언 : 네, 밑 빠진 독. 시원하게 돈을 다 까먹을 것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셔도 상관없다면 해보고 싶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회사에서도 “미스터리를 중점으로 한 재미있는 소설들에 대한 수요를 이 잡지로 한번 충족시켜보자, 이걸로 신인 작가들 많이 발굴하고, 단행본도 새로 내고, 이 잡지를 통해서 담론들을 만들어보고…… 그런 것만으로도 무형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라고 하셔서 함께하게 됐어요. 아쉽게도 저 말고 다른 직원들을 못 뽑고 저만 들어가서 엘릭시르의 기존 단행본 편집자 분들이랑 같이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이종산 : 그랬군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학창 시절에 《판타스틱》의 왕팬이었는데, 그때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희 세대의 장르문학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판타스틱》이 일종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해줬거든요. 잡지가 휴간 됐을 때 모두가 굉장히 안타까워했고 동시에 잡지사의 상황과 결정을 이해하기도 했어요. 《판타스틱》의 인연이 이어져 《미스테리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르문학 팬으로서.
   다음으로 이서영 작가님께 질문 드려보겠습니다. 이서영 작가님은 지금처럼 ‘SF 부흥기’라고 불리기 훨씬 이전부터 SF 작품만이 아니라 호러 등 여러 장르를 꾸준히 써오셨지요. 장르소설가로 활동하고 계시기도 하지만, 웹진 《거울》의 편집진이기도 하세요. 저도 웹진의 운영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웹진의 편집진이나 운영위원이라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독자분들 중에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특히 웹진 《거울》은 신비의 베일에 감싸여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왜냐하면 웹진 《거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거울》은 경계가 불분명한 인적 네트워크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제 편집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소개되어 있어요. 거울 중단편선 등 책도 펴내고 다양한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독자의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베일에 싸여 있어요. 웹진 《거울》이 도대체 어떻게 운영이 되는 것인가 궁금합니다.

이서영 : 웹진 《거울》이 처음 만들어질 때 장르문학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발표하면서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없는 상황이었고, 소위 양판소라고 우리가 부르는 대여점에 많이 들어가는 판타지 소설이 주류였어요. 그런 소설들은 정말 장편이죠. 그런데 《거울》에 있는 장르작가들은 단편소설을 주되게 쓰는 작가들이 많았어요. 물론 장편도 썼지만요. 그러다보니까 우리들이 쓴 글을 발표할 지면도 없고, 우리들이 쓴 글에 대해서 평을 받을 곳도 많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그걸 우리끼리 한번 만들어보자고 생각을 해서 만들어진 게 웹진 《거울》이었어요. 어떻게 운영이 됐냐고 물으시면, 《거울》은 좀 협동조합 같은 느낌이에요. 매해 말에 지면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자원을 받아요. 《거울》에서 이벤트를 하고 싶다든가, 기획 기사를 쓰고 싶다든가, 1년 동안 《거울》에서 무언가를 새로 해보겠다든가 하는 아이디어를 받아 회의해요. 연말에 《거울》의 1년의 방향성이 정해지는 거죠. 작가들이 대체로 어떤 것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참여를 하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선물의 경제로 운영이 되는 셈이고, 어떻게 보면 수익모델이 없이 운영되는 상태이죠.

이종산 : 협동조합 같은 형태로 운영이 된다고 하셨는데, 결국은 장르문학을 활발하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모여 만들어지고 있는 게 웹진 《거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사실 수익 모델이 없이 독립잡지가 오래 이어지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웹진 《거울》은 굉장히 장수를 하고 있는 잡지 중 하나이고, 아마 장르 웹진 중에서는 가장 오래 되지 않았나요? 그렇게 장수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서영 : 저희끼리는 농담으로 수익 모델이라고 말해요. 수익 모델이 없어서 장수를 했다고요. 돈이 엮여 있으면 이렇게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도 어떻게든 수익을 내보고자 여러 시도들을 해보았는데 오랫동안 그게 잘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저희는 웹진에 글을 실었을 때 원고료를 주지 않아요. 그냥 지면을 주는 형태거든요. 작가들이 《거울》에 글을 싣는다는 것은, 저도 《거울》에 글을 싣는데, 내가 여기서 원고료를 받겠다는 게 아니라 《거울》에 글을 싣고 싶어서 싣거든요. 어떻게든 원고료를 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해봤던 때도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다 실패했어요. 대신 총판하듯이 (지금은 아작 출판사와 같이 하고 있지만) 책을 찍어 팔아서 전부 다 서버비에 활용을 한다든가 굉장히 가내수공업적인 형태로 유지를 했거든요. 홈페이지 같은 경우도 다 자발적인 기여로 이루어져 있고, 저는 오랫동안 (독자우수단편) 심사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다 자발적인 기여로만 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데리다적 상태에 놓여 있는 웹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종산 : 지금 《거울》이 몇 년째 운영되고 있죠?

이서영 : 2003년부터 운영되었으니까, 고등학생 하나가 자랐네요.

이종산 : 예전에 《판타스틱》도 그랬지만, 《거울》도 꼭 그 지면을 통해 데뷔를 한 것은 아니라도 현재 장르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되어주고 있는 잡지인 것 같습니다. 한편 《미스테리아》는 창간 6주년을 맞았는데요, 웹진 《거울》이 너무 오래 되어서 《거울》의 발행 연수를 듣고 나면 6년이라는 시간은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장르 종이잡지로 6년을 이어온다는 건 쉽지 않은 시간이었으리라 짐작해요. 또 최근까지 좋은 기획들을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미스테리아》가 종이잡지로서 6년간 이어지고 있는 장수 비결도 듣고 싶습니다.

김용언 : 6년이라 하더라도 격월간지이기 때문에 사실 권수로 따지면 지금 38호 만드는 정도이고요. 글쎄요, 장수 비결은 역시 문학동네……(웃음) 회사에서 믿어주시고, 엘릭시르의 임지호 편집장님이 정말 든든한 지원군으로 제 앞을 막아주고 계시고. 엘릭시르 사람들이 모두 다 이 잡지를 굉장히 좋아하고, 기꺼이 여기에 뭔가를 해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서영 작가님도 말씀하셨지만, 일종의 자발적인 상태가 이런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게 상업적으로 굉장히 성공한 잡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믿어주는 것, 그리고 여기에 같이 일을 하는 물적 토대가 되어주는 동료들이 이 잡지를 좋아하고 자발적으로 더 나아지기 위한 의견을 내고 서로 같이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이종산 : 웹진 《비유》는 지금 창간한 지 4년째예요. 그래서 비교적 새내기 웹진으로서 두 분께 장수 비결을 듣고 싶었습니다. 회사의 믿음과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잡지를 만들어나가는 팀원들의 애정과 의기투합이 장수 비결이라는 말씀,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2.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이종산 : 이번에는 박현주 작가님께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박현주 작가님께서는 『나의 오컬트한 일상』부터 『서칭 포 허니맨』까지 미스터리 로맨스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계시지요. 해외에서는 미스터리 로맨스가 많이 나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웹소설이 아닌 이상) 미스터리 로맨스 작품들이 많이 출간되지 않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처음 미스터리 로맨스를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작품을 꾸준하게 쓸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요?

박현주 : 엄밀하게 말해서 제 작품은 로맨스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미스터리 장르에 보다 가깝다고 저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종의 생활 미스터리를 쓰고 싶었어요. 생활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한국에서는 (요새는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제가 쓸 때만 해도 많이 있지 않았던 장르였고, 제가 처음에 『나의 오컬트한 일상』을 냈을 때 어떤 사람은 ‘왜 일상 미스터리라는 레이블을 내세웠냐. 한국에서는 안 되는 장르인데.’라는 말까지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홍시 맛이 나니까 홍시인 것처럼 일상 미스터리를 썼으니까 일상 미스터리라고 말하는 거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계기를 말하자면, 어려서부터 늘 퀴즈와 추리를 좋아했는데, 공포와 범죄 이야기에는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습니다. 미지의 상황에 대한 공포, 그의 대처로서의 이성적 추리, 지적 게임, 그리고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는 범죄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거기에는 늘 누군가의 피해가 있고, 그 누군가는 주로 어린이와 노인, 여성, 그리고 약자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소비에는 늘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범죄소설의 결말에는 반드시 문제 해결의 쾌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시적 정의의 실현이겠지만, 그 전에 타인의 희생을 전제합니다. 특히 소설이 오락적이 될수록 인간의 슬픔을 재료로 삼습니다. 범죄 소설에는 인간의 악의가 깔려 있지만, 저는 그 안에서 선의, 혹은 타인에 대한 마음을 발견하고 싶었고, 그런 의도의 실현에는 미스터리 로맨스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 발표한 작품,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작품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 수수께끼와 오해를 푸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풀릴 필요가 없는 오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인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있다면, 그걸 누군가 알아봐주는 것도 좋지 않을지. 그런 의도에서 미스터리 로맨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미스터리 로맨스는 본질적으로 일상적인 의문에서 시작하고, 저는 평생 겪을 수도, 겪지 않을 수도 있는 거대 사건보다는 미세한 사건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저의 성격적 기질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 또한 오랫동안 추리소설의 독자였고, 번역가였고, 칼럼도 썼기 때문에 나 자신은 추리소설이 갖고 있는 오락적인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해서 생활형 미스터리, 『나의 오컬트한 일상』에서는 소설 내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어요. 그전에(책의 이야기에 등장하기 전에)죽은 사람도 있고, 나중에 죽을 사람도 있겠지만(웃음) 하지만 소설 내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범죄 소설에서 많은 경우 악의를 발견하는 것을, 인간성에 대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한편으로는 숨겨진 선의를 발견하는 것도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이라고 생각했고 숨겨진 선의라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로맨스라는 장르로 확장해서 볼 수 있다면, 제 소설은 로맨스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이런 일상적인 의문에서 우리가 사람이 죽지 않는 미스터리로 풀고 싶다, 그런데 그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선의를 가진 마음이 있다…… 그런 미세한 관찰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미스터리 로맨스를 쓰게 된 것이죠. 어떤 사람들은 ‘미스터리도 아니다, 로맨스도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런 미스터리와 로맨스의 중간에 있는 장르가 저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작가들은 자기가 애호하는 장르를 쓰는 거니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장르 내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작품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종산 : ‘미스터리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니다’라고 느끼는 독자도 있었군요. 저에게는 작가님의 작품들이 훌륭한 미스터리이자 훌륭한 로맨스로 느껴졌답니다. 한편,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니 떠오른 게 있어요. 《미스테리아》 36호에서, 80년대 특집에 실린 편집장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 80년대의 비극적인 범죄 사건이나 역사적 사건들을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고 싶다는 말이 쓰여 있었어요. 희생자가 있는 사건에 대해서 오락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잡지를 읽는 동안 그 안에 많은 아픔들이 있음에도 조금이나마 안정적인 상태로 볼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박현주 작가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나의 오컬트한 일상』을 읽으면서 그 안에 사실 굉장히 냉정한 마음도 있고, 인간의 악의도 있는데 결국은 (읽으면서) 어느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그러면서 이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는데, 그것이 미스터리라고 해서 사회적 약자를 함부로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작가님의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저도 책을 읽으면서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현주 작가님께 하나 더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나의 오컬트한 일상』은 추리, 미스터리, 로맨스에 오컬트까지 결합이 되어 있는 소설인데요. 어떻게 오컬트 요소를 미스터리 로맨스에 넣게 되셨나요?

박현주 : 이성의 힘에 기대는 미스터리와 미지의 공포를 설명하는 오컬트는 그 근원이 다르지 않습니다. 산업 혁명 시대 이전의 고딕 호러를 포함, 이전에는 초자연적인 힘의 소행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논리와 추론으로 밝혀내려는 시도가 추리소설의 시원이었다는 원래의 발생 과정을 생각할 때, 이 두 가지 모두를 다루는 일상 미스터리를 써보자는 것이 처음의 야심이었습니다.
   다른 관점으로는 현재 한국에서 습관적으로 “오컬트”라고 말하는 것들은 주로 악령, 퇴마, 뱀파이어 등의 수퍼내추럴한 존재들, 또한 패러노멀한 현상들, 밀교 등의 비전 등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도 우리의 일상에서도 사소한 미신은 넘치고, 이는 근본적으로 오컬트적인 신념에 기인하고 있죠. 집에 이사를 들어갈 때 고사를 지낸다거나 하는 의식뿐만이 아니라, 신년에 토정비결을 본다거나, 인터넷으로 별자리점을 본다는 사소한 관행들도 모두 포함됩니다. 일상 미스터리는 세간의 습속을 포착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고, 저희가 흔히 벌이는 오컬트한 관행들을 여기에 담고 싶었습니다. 가령, 쉽게 말하면 길을 걸을 때 타일의 금을 밟으면 재수가 없다거나 빨간 글씨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는 터부 같은 거죠. 이건 간단한 미신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상정할 때만 가능한 사고방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들은 무척 널리 퍼져 있죠.
   로맨스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흔히 더 미신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연애운 점 같은 게 대표적이죠. 여기 들어오기 전에 넷플릭스의 ‘지금 뜨는 콘텐츠’를 봤는데, 〈실연당한 이들을 위한 별자리 가이드〉라는 드라마도 나왔더라고요. 패션 잡지만 봐도 권말에 늘 이달의 행운 아이템 같은 걸 적어놓죠. 이런 오컬트적 관행들은 일종의 자기 암시 같은 건데, 로맨스라는 건 무척 불확실한 타인의 마음을 탐구하는 장르이며, 사랑에 빠진 사람은 불안합니다. 그들이 빠지기 쉬운 오컬트적인 환상과 그를 밝히는 미스터리, 그렇게 성취되는 세상의 균형 같은 걸 작품에서 구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오컬트 현상들은 일종의 마술적 사고와 같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믿어서 해로울 건 없는 것이죠. 하지만 어떤 스토리는 특별히 좀더 초자연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 우주를 경외하는 태도로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이종산 : 저는 평소에 제가 믿는 유일한 미신은 MBTI 밖에 없거든요. 근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갑자기 온갖 점을 다 보고 싶어져요. 타로도 보고 싶고, 궁합도 괜히 어플 깔아서 보고, 꽃잎 점까지 치고 싶단 말이에요. 그런 마음이 『나의 오컬트한 일상』에 들어가 있다는 말씀을 들으니 재미있네요. 이번엔 이서영 작가님께 또 한번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이서영 작가님의 소설집 두 권이 있죠. 『유미의 연인』이 올해 나왔고, 『악어의 맛』이 처음에 나왔던 단편집인데요. 그 단편집들을 보면 참 놀라워요. 너무나 여러 장르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 장르들이 하나도 어설프지 않게 모두 ‘찐’ 장르적인 느낌이 다 섞여 있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노동에 대한 문제라든지, 여성에 대한 문제라든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뜨겁게 녹아들어 있단 말이죠. 그래서 저는 이서영 작가님의 세계가 어떻게 시작됐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듣기로는 질에 이빨이 달린 여자가 나오는 소설이 처음 쓰신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그 소설은 언제 쓰신 걸까요?

이서영 : 제가 모 팟캐스트에 나가서 이야기를 한 거였는데, 학교에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요. 그 수업에서 과학 기술에 대한 아무 글이나 써서 내기를 요청받았습니다. 저는 문학 특기자로 학교를 갔기 때문에 소설 말고 써본 게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과학기술에 대한 짧은 꽁트를 써갔어요. 당시에 제가 사이보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사이보그의 뭘 가지고 소설을 쓸까 생각하다가 ‘바기나 덴타타’라고 흔히 부르는 질에 이빨이 달린 여성과 사이보그를 결합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꽁트로 써서 제출한 게 처음으로 쓴 SF였습니다.

이종산 : 저는 그 소설을 문예창작 수업에서 쓰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과목에서 쓰셨던 거였네요.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이서영 작가님은 노동을 핵심적인 주제로 다루는 작품을 쓰실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노동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시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이서영 : 저는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원래 많았고, 지금도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고, 학교 다닐 때도 노동 운동을 했었어요. 사람들은 다 일을 하잖아요. 지금도 여기에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것도 일하는 거잖아요? 줌을 보고 있는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지금 저희 앞에도 많은 분들이 일하고 계세요. 일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일하기 때문에 세상이 유지되는 거잖아요. 저는 일상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일을 그만뒀을 경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어요. 일을 갑자기 안 해버린다면? 그러면 여러 가지가 굴러가지 않겠죠. 그런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쓰다보니까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됐고요. 저는 어릴 때 그런 것들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집에 있는 〈93’ 대예언〉 같은 거 있잖아요. 에볼라 바이러스로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얘기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한 걸 많이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도 SF에 대한 사고로 연결되는 데에 도움이 좀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종산 : 저도 고등학교 때 노동 문제에 대해서 배웠지만 그때까지는 좀 막연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짧게 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다가 대학교 들어가면서 이십대 때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세상에 어느 하나 사람의 손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가령, 보도블록도 다 사람이 하나씩 손으로 깐 것이고, 마트나 편의점에 있는 물건들도 그냥 놓여 있는 건 없다는 말이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구나 하면서 노동 문제를 다른 각도로 보게 됐어요. 이서영 작가님의 작품들도 내가 한 번이라도 노동자였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큰 공감을 하면서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도선」이라는 작품으로 상도 받으셨죠.

이서영 :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기술과 노동이 연결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요. 특히, 지금 현재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인간의 노동이 엮여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플랫폼 노동이라고 할 때 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면 그걸로 끝인 것 같지만 그 뒤에 다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많아요. 「유도선」은 어떤 회사가 그 회사의 규약 같은 것들을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는 A.I. 블록체인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놨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그것을 계속 관리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 규약 뒤에 있는 노동자들이었던 거죠.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불합리하게 징계를 받게 된 노동자가 규약의 맹점을 찾아가면서 고스트 워커들과 접촉했는데 알고 보니 그 고스트 워커가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어서 망했다(웃음), 뭐 그런 스토리의 호러 소설이었습니다.


3. 읽고 쓰는 사람들의 OTT플랫폼 콘텐츠


이종산 : 이제 OTT플랫폼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먼저, 세 분께 공통으로 드리고 싶은 질문인데요. 최근 몇 년 동안 짜릿한 재미를 느꼈던 OTT플랫폼의 콘텐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현주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드라마 감상 팟캐스트를 했었는데 허황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까지 해서 웬만하면 모든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OTT를 말할 때 생각할 수 있는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아마존, 왓챠, 저는 사실 아이치이까지 구독했거든요. 그렇게 많은 드라마를 봤기 때문에 특별하게 뭐가 재밌다고 한두 작품을 꼽아 추천해드리기는 어렵고, 선호하는 장르마다 각기 재밌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죠. 가령,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넷플릭스에서 〈브리저튼〉을 재밌게 보겠죠. 한국 웹툰을 각색한 〈D.P.〉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제가 어젯밤에는 〈더 체스트넛 맨〉이라는 덴마크 미스터리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를 2편까지 봤어요. 요 네스뵈 소설을 연상시키는 구조의 작품이었는데, 이것도 굉장히 흥미로웠고요. 웨이브에서도 오리지널 컨텐츠를 슬슬 만들고 있는 추세인데 작년에 〈SF8〉이라고 하는, 한국의 SF 단편소설들을 바탕으로 한 여덟 개의 작품이 있었어요. 아마 SF를 좋아하는 분들은 보셨을 것 같고요. OTT플랫폼의 드라마들이 미드폼, 숏폼, 롱폼 등 굉장히 많은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고, 각각의 드라마에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종산 : 놀랍네요, 정말로 많은 드라마 콘텐츠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거의 다 보신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웃음)

박현주 : 그때는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했던 것 같은데.(웃음)

이종산 : 헤르미온느의 모래시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박현주 : 그때는 정말 많은 드라마를 봤어요. 물론 모든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은 아니고 ‘4회까지는 본다’가 원칙이었어요. 그래야 내용을 알 수 있으니까. 너무 재미없으면 2화까지만 보지만요. 그리고 내가 재밌는 것이 다른 사람이 재밌어하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취향이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잖아요. 내용을 소개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팟캐스트를 할 때의) 원칙이었어요. 저희는 신작 드라마는 다 리뷰한다는 것이 원칙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많이 들긴 많이 듭니다.

이종산 : 박현주 작가님이 하시는 드라마 비평 팟캐스트를 들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드라마를 보시지?’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렇게까지 많이 보시는 줄은 몰랐거든요. 깜짝 놀랐습니다. 김용언 편집장님도 OTT플랫폼 콘텐츠들을 보시나요?

김용언 : 저도 구독은 몇 가지 하고 있는데, 아마 여기 있는 분들 중에서 제가 제일 덜 보는 편일 것 같기는 해요. 특히나 제가 주로 보는 것들은 놓쳤던 과거의 작품들을 찾아보는 용도로 많이 쓰기 때문에 ‘넷플릭스 신작 두둥’ 이렇게 나왔을 때 그런 신작들을 잘 못 챙겨봅니다. 저는 누구나 아는 작품들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넷플릭스의 〈마인드 헌터〉는 정말 혁신적인 드라마여서 너무 재밌게 봤고요. 그거 말고는 다큐 시리즈들? 특히, 범죄 실화 다큐도 열심히 보는데, 그것보다 스포츠 다큐 쪽을 되게 좋아해요. 국내 방송사 중 KBS의 유튜브 채널 코너명 중 ‘믿고 보는 태웅 PD’라는 게 있을 정도로, 이태웅 PD님이 과거에 만들었던 스포츠 다큐들을 좋아했는데, 그런 형태의 다큐들은 (몇 년 전에 나왔던 것들인데) 요즘은 좀 덜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에 나오는 다큐들이 스포츠에 대한 열망을 채워줬고, 특히 재밌었던 건 〈죽어도 선덜랜드〉라고 선덜랜드 축구팀에 대한 다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손흥민 선수 때문에 몇 년째 토트넘 팀을 계속 팔로우하고 있고요, 그래서 토트넘 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올 오어 낫띵(All or Nothing)〉을 보기 위헤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했습니다. 장르문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웃음) 스포츠 다큐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종산 : 의외예요. 미스터리나 추리물 같은 것들을 보실 줄 알았는데 스포츠 다큐를 제일 좋아하신다니. 예전 콘텐츠들을 주로 보신다고 했는데 저도 최근에 OTT플랫폼에서 제일 재밌게 본 게 〈섹스 앤 더 시티〉이거든요. 제가 드라마를 마지막 화까지 잘 못 보는데 오랜만에 시즌 전체를 다 본 드라마였어요. 왓챠에 추억의 콘텐츠라고 부르는 옛날 드라마들이 많은데, 그런 것이 어릴 때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볼 수 있는 보물 상자 같은 느낌도 있고요. (OTT플랫폼이) 그런 역할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서영 작가님은 어떤 콘텐츠를 재밌게 보셨어요?

이서영 : 저는 SF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좀 봐요. 사람들이 뭘 만드는지 못 따라갈까봐 무서워서 볼 때가 있어요. 그렇게 본 것 중 재밌었던 것은 〈블랙미러〉가 있고요. 〈킹덤〉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려고 보는 게 아닐 때는, 넷플릭스 코미디 시리즈들을 좋아해요. 안 가리고 봐요. 비교적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이는 ‘앨리 웡’이나 ‘완다 사이키스’ 같은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들도 좋아하지만, ‘데이브 샤펠’이나 ‘빌 버’ 같은 엄청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많이 봐요. 저는 그게 재밌더라고요. 작년 설날에 집에 가서, 설날에 집에 가면 할 게 없잖아요.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데 엄마가 옆에 와서 앉더라고요. 앨리 웡의 〈베이비 코브라〉를 틀었는데 엄마가 옆에서 와서 앉았어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베이비 코브라〉에 어마어마한 것들이 나오거든요. 남편과의 섹스 이야기라든가, 막 살았던 이십대 이야기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저희 엄마가 옆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웃으시는 거예요. 평생 저와 그런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그래서 ‘아, 스탠드업 코미디가 나에게만 먹히는 것이 아니다’(웃음) 엄마와 같이 보면서 배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종산 : 어떤 것들을 꼽아주실까 궁금했는데 다들 의외의 작품을 말씀해주셔서 재밌네요. 이서영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면 대사들이 웃길 때가 많거든요. 그리고 갑자기 ‘어, 여기서 웃겨?’ 하는 웃기는 대목들이 튀어나올 때가 있고, 신랄하면서 웃길 때가 많아요. 그런 게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취향이 기반이 되어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서영 : 상호작용이지 않을까요? 제가 그런 성격이라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고, 많이 보다보니까 더 그런 성격이 강화되었을 수 있겠죠.


4. 새로운 물결과 창작자들


이종산 : 현재 3040 세대는 OTT플랫폼보다는 MBC, KBS, SBS를 보던 세대거든요. 그때는 케이블도 없었어요. JTBC도 없었던 시절에 MBC, KBS, SBS가 보여주는 드라마를 가족과 같이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하고 그러면서 성장한 세대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아마 제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뉴스에 ‘드라마 왕국 MBC가 무너졌다’라는 기사 같은 것이 나오고, JTBC와 같은 채널이 연달아 나왔어요. 처음에 저는 MBC의 골수팬으로써 약간 거부감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채널들에서 보여주는 드라마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OTT플랫폼이 성장을 하면서 저는 이제 TV를 보지 않고 OTT플랫폼을 핸드폰이나 타블렛으로 보고 있거든요. 지금의 3040은 이런 변화들을 쭉 거쳐온 세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 변화를 겪으며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실지 궁금했어요.

이서영 : 저도 예전에 MBC, KBS, SBS의 드라마들을 봤죠. 3040이라고 하셨지만, 〈첫사랑〉이나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들을 기억하는 세대잖아요. 인기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간대에 집에 가느라 길에서 사람들이 사라짐을 경험했던 것을 기억하는 세대인데요. 사실 OTT플랫폼은 그럴 일이 없죠. 어디서든 볼 수 있고, 모두가 한순간에 그것을 즐겨야 할 필요가 없고, 누구나 볼 수 있으니까. 아예 플랫폼이 달라졌다는 게, 제작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것이고 다루는 소재가 달라지는 것도 제작하는 방식이나 돈이 들어오는 방식과 연관이 있겠죠. MBC 〈모래시계〉를 예로 들어봅시다. 예전에 〈모래시계〉를 볼 때는 〈검은 태양〉처럼 얼굴에 미친 듯이 PPL 화장품을 바르지 않잖아요. 드라마 〈도깨비〉에서처럼 광고를 위해 특정 음료수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장면들은 옛날에는 없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런 것들이 생긴다는 것은 방송국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고, 자본이 들어오는 양상이 다양하게 발현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스토리가 다양해지는 면도 있고요.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에 천착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동시에 거기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도 있는 것 같아요. 뭐가 좋다 나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이렇게 가게 되어간 건 아니거든요. 이다음에 무엇이 올까 하는 고민이 되기는 합니다.

김용언 : 저는 심지어 SBS가 생기기 이전부터 본 세대예요. EBS 이전에 KBS3이라는 채널이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이대여서요.(웃음) 지금의 플랫폼 환경들을 보면서 여태까지 제법 적응을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사실 이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최근에 그 얘기를 친구랑 잠시 했었는데, 사람들이 레트로 열풍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과 몇 년 전 것이 레트로 콘텐츠가 되고 있잖아요.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과거의 무언가를 가지고 ‘나도 그거 알아’ ‘나도 그거 좋아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어요. 공통의 추억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제 나이대 시청자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공통의 추억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다른’ 세대구나 싶었어요. 특히나 공중파 채널이 가진 강건한 위치가 있고, 〈모래시계〉는 당연할 것이고 그전에 김수현 작가가 연달아서 한국 드라마계를 쥐락펴락하던 시절에 〈사랑이 뭐길래〉 같은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간에는 사람들이 다 TV 보느라 길거리에 안 나오고. 문화 콘텐츠 창작자의 힘이 굉장히 강력한 시대였다고 생각해요. 그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굉장히 강력한 창작자의 힘이 존재했고, 심지어 시청률이 칠십 몇 퍼센트까지 나오던 시절이잖아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콘텐츠를 동일한 시간대에 보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에 대해서 자기들이 유무형의 변화, 그러니까 콘텐츠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 변화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는 개별적인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80년대부터 90년대 중후반까지 그런 공통의 강력한 문화를 즐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였다는 생각을 해요. 요즘에는 넷플릭스 이후의 플랫폼들도 속속 자신의 오리지날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잖아요. 세분화되고 파편화되는 채널들 속에서 예전과 같은 칠십 몇 프로의 시청률은 말도 안 되는 것일 테고요. 요즘은 공중파 드라마도 4, 5퍼센트만 나와도 준수하다고 한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박현주 : 10퍼센트면 대박이라고.

김용언 : 10퍼센트면 대박이군요. 그런 시대에서는 문화 콘텐츠 창작자 입장에서도 내가 이걸로 센 한방을 터트릴 거야, 내지는 뭔가를 바꿔보겠어라는 야심을 갖기는 사실 쉽지 않은 상황이죠. 대신에 그만큼 세분화된 콘텐츠들 사이에서 자신의 개별적인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 섬세한 독자 혹은 시청자들한테는 좀더 선택의 여지가 많은 환경이겠다, 그들한테는 이 상황이 훨씬 좋겠다라는 생각은 해요.

이종산 : 김용언 편집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잠시 추억 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심지어 금성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를 봤었어요. 다이얼로 돌아가는 텔레비전으로요. 그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으로 본방은 물론이고 재방에 재재방까지 보고, 그걸 카세트테이프에 다 녹음을 해서 등하교길에 워크맨으로 들으면서 다녔던 지독한 드라마 키드였거든요. 말씀 들으면서 세월이 많이 변했구나 했어요. 이런 질문을 드린 것이 제 스스로가 지금의 변화에 감흥을 많이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박현주 : 미디어를 연구하는 사람의 관점이라면 시대 구분이나 세대 구분을 분절적으로 하기 마련인데 실질적으로 역사는 분절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잖아요. 제작자적인 관점에서는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거실에서 공동의 TV를 보면서 공동의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시대였지만 이제는 개별의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식의 분석은 가능하겠지만 시청자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저는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동안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텔레비전이 가정에 들어온 것 자체가 사실 50년밖에 되지 않잖아요.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니라 동시 상영을 하는 극장에 가서 하나의 영화를 보던 시절도 있었고요. 드라마를 하는 채널이 몇 개 없었던 시절도 있었죠. 이렇게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거든요.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시간이 가속화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느끼지만, 사실 플랫폼은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늘 변화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아까 SBS 말씀하셨는데 저는 SBS 개국일을 아직도 기억해요. SBS 개국일에 〈모래 위의 욕망〉이라는 드라마를 했는데 이덕화씨, 황신혜씨가 주연을 한 시드니 셀던 류의 추리소설의 느낌이 풀풀 나는 그런 대본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 드라마의 내용이 혁신적인 변화처럼 여겨졌어요. 그리고 그 후에 또 민영 방송국이 생기고, tvN등 케이블 방송국이 강세를 보이고, 후에 종편 채널이 생기는 등등, 긴 관점에서 플랫폼은 늘 새로이 늘어갔고 콘텐츠는 다변화되었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OTT이고, 유튜브인 거죠. 요새는 사람들이 틱톡에서 짧은 동영상을 본다든가 혹은 메타버스에서 무언가를 소비한다든가 형태의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고요.
   많은 분들이 이제 기억도 못하겠지만, 심지어 인터넷도 없었던 시대가 있었고,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대도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닙니다. 처음 PC통신이라는 플랫폼이 생기고, 웹소설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영상화되어 성공했던 〈엽기적인 그녀〉, 그 이후에 나온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같은 작품들이 이 시기의 산물이죠.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방식의 출판물도 있고, 이도 영상물에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시대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것은 오래 남고 어떤 것은 사라지며, 어떤 것은 새로이 생겨납니다. 생산자, 창작자로는 아무래도 오래 남는 것을 쓰거나 새로이 생겨나는 물결에 편승하거나하는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시도는 다른 성격이 아닐 것입니다. 새롭게 생겨나는 물결에 편승하는 것이 오래 남는 것이고, 오래 남는 걸 쓰다보면 새롭게 생겨나는 물결을 따라갈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지금 OTT 시대의 변화에서 창작자들이 느끼는 감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종산 : 지금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이런 시대의 변화에 대해서 너무 개인적인 감상에 빠져서 그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평가로서 분석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객관적으로 시대를 다시 보게 됩니다. 이번에 《미스테리아》 36호에서 80년대 특집하면서 장르문학과 80년대 드라마들의 연결 고리에 대해서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그 시대의 드라마가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셔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

*본 좌담은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오후 7시 연희문학창작촌(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에서 진행했습니다. 좌담 내용을 총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김용언, 박현주, 이서영, 이종산

김용언 : 잡지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드라마, 잘 쓰인 소설을 볼 시간이 너무 부족해 늘 속상합니다.
박현주 : 이전에는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땐 ‘변사 전문’ 번역가라고 했다. 온갖 살인 사건이 나오는 소설들을 번역한 이후에는 내가 직접 쓸 때는 사람이 적게 죽는 추리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내 책에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면 번역가들이 즐겁게, 그러나 ‘도전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서영 : SF와 판타지를 쓰는 소설가. 『악어의 맛』 『유미의 연인』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등의 책을 출간했다. 소설 속에 곧잘 데모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운영위원이다. 〈술꾼도시여자들〉을 보려고 티빙에 가입하느라 웨이브를 해지했다. 언제 또 무엇에 가입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고 있지만, 영상화 판권은 아직 못 팔아봤다.
이종산 : 소설가, 에세이스트. 중·고등학교 때 카세트테이프에 드라마를 녹음해서 듣고 다녔고, 시험 보는 날에는 시험은 대충 보고 시험지에 전날 본 드라마 대사를 기억나는 대로 적으며 전율을 느꼈다. 그걸 본 반 친구가 왜 그렇게 사냐고 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산다. 모든 장르의 소설, 드라마, 영화를 사랑한다.

2021/11/30
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