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화에 이어서)


5. OTT플랫폼 콘텐츠와 장르문학의 가능성


이종산(사회, 본지 편집위원) : OTT플랫폼이 대세가 되면서 플랫폼 안에서 세계적으로 많은 장르물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이 1위를 하기도 했는데요. 김용언 편집장님께 질문을 드려볼게요. 장르 잡지 편집장으로서 이런 트렌드가 장르문학이나 장르문학 출판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용언 : 독자 혹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영향이 크다고 생각을 해요.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스릴러 드라마들이 넷플릭스 등이 일상화되기 이전보다 확연히 많아졌고, 예전에는 영미권이나 일본 드라마들을 주로 보아왔는데 요즘은 북유럽이나 중국의 현대 드라마 등 굉장히 다양한 국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똑같은 스릴러라 하더라도 이 나라는 이런 풍으로 만드는구나 하고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도 있을 거고요. 스릴러나 미스터리 혹은 호러라는 장르에 대해서 훨씬 더 쉽게 친숙해질 수 있다는 영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마케터나 편집자 분들에게도 여쭤봤어요. 그런데 들은 이야기는 아주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웃음) 출판계 자체의 어려움 때문일 거예요. 출판계와 OTT플랫폼의 관계에서만 좁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출판계 특히 해외 문학을 담당하는 출판사들은 몇 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물론 어떤 드라마의 원작이라면 홍보하기는 훨씬 쉽다고 합니다. 카드뉴스를 만들었을 때든 웹용 홍보 작품을 만들었을 때든 사람들이 좀더 많이 클릭을 해서 보고, 다른 타이틀에 비해서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주기 때문이지요. 일단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유의미한 판매로 이어져야 하는데 책 자체의 판매량, 특히 해외 작품의 판매량이 국내 출판계에서는 굉장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드라마 원작이라는 타이틀이 판매되는 데에 영향이 생각보다 큰 것 같지는 않아요. 이것은 해외문학에 국한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고, 다만 한국 작품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것 같아요. 최근까지는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한국 작품들이 오리지날 창작물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고, 원작이 있는 경우가 이제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요. 이것은 올해 이후부터의 상황을 봐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의 장르소설을 향한 구애는 진행 중입니다. 실제로 한국 미스터리 작품이 출간되면 득달같이 제작사로부터 판권 문의가 들어오고 계약을 하자는 얘기가 오가요. 일단은 원작이 나오면 그 원작을 제작사에서 미리 확보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는 것은 맞고, 특히나 미스터리 스릴러 쪽이 드라마로 구조를 만들기에 유용한 장르이기 때문에 원작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원작이 나온 다음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최대 수년이 걸릴 수도 있잖아요. 지금 당장 한국 콘텐츠가 굉장히 유의미한 무언가를 이루었다, 출판계에 수요가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조금 애매한 것 같고 아마도 올해를 기점으로 해서 내년, 내후년 정도까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분이 그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넷플릭스에서 나오는 미스터리나 스릴러 콘텐츠들만 보자면 현재 이런 콘텐츠 영상물을 제일 잘 만드는 데가 한국이다, 다른 나라 드라마보다 한국 드라마가 제일 재밌는 것 같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도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것 같은 재미를 담보하는 원작이 여럿 출간되면 그때는 좀더 움직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웹툰은 주로 무료로 볼 수 있지만, 단행본은 돈을 내야 하거든요. 단행본 시장으로 수요가 이어지기에는, 아직까지는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종산 : 넷플릭스의 원작 소설이라고 하면 불티나게 팔릴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는 말씀도 해주셨는데요. 김용언 편집장님께서 장르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바라본 상황을 이야기해주셨다면, 박현주 작가님은 장르소설을 쓰는 창작자로서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합니다.

박현주 : 제가 처음 책을 냈던 게 2006년인데, 그때와 비교해서도 초판 부수가 현저히 적어졌습니다. 즉, 이 말은 스토리 콘텐츠가 출판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규모가 무척 줄었다는 거죠. 1만5천원짜리 책은 1만4천원짜리 넷플릭스(4인 동시접속 가능 구독권 기준)와 경쟁해야 합니다. 어떤 쪽에 승산이 있을까요? 여기서 확실히 전망할 수 있는 건 (웹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출판 시장은 앞으로도 작아질 거란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장르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책의 물성보다 여러 가지로 이용할 수 있는 스토리라는 내용물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무리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장르문학의 경우에는 비평 매체가 거의 전무합니다. SF는 요새 소위 ‘주류 문단’의 관심을 받아서 비평이 등장하고 있지만, 추리소설, 로맨스, 판타지, 무협 등은 상대적으로 비평 매체가 협소한 편입니다. 그래서 장르문학은 더욱 독자의 선택에 의존하게 되는데, 결국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영상화’가 주요 판로가 되는 상황입니다. 사실 한국문학 평론, 비평에 대해서 저는 양가적인 감정이 있습니다만, 간단하게 보면 평론은 마케팅적 관점에서 독자가 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프레이밍의 역할을 합니다. ‘좋은 작품인가? 즉, 사볼 만한 작품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 평론가, 혹은 요새는 북튜버를 포함한 인플루언서의 관점을 신뢰하겠죠. ‘OTT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인가?’라는 질문은 이런 평론가의 관점을 대체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새 카카오 등지에서 아예 공모를 열어 ‘영상화 가능한 작품’을 표방하는 것도 작가들의 집필 방법에 영향을 끼치기는 할 것입니다. 실제로 공모전 수상은 추천서 역할을 하고, 그런 추천서 한 줄이라도 얻으려면 결국 OSMU(one source multi-use,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하여 파급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작가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제 소설은 초반에 ‘드라마로 만들기 좋다’라는 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쓴 소설이 씬 구성에 초점을 맞추어 비주얼한 묘사로 진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피소드형 챕터 구성도 어떤 면에서는 시리즈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드라마화를 염두에 두고 썼는가?’라는 질문도 받지만, 그런 의도가 강해서라기보다는 제가 그런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하고 소설에서 시각화(visualization)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 같습니다. 드라마화하기 좋은 작품을 쓴다고 한들 그런 의도대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고요. 요약하면 OTT플랫폼에서 많은 콘텐츠를 요구하고 결국은 그게 시장이 되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품 집필 경향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이서영 : 박현주 작가님이 말씀하신 많은 부분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저의 경우에는 가끔 영상화 판권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지만 팔아본 적이 없고요. 그건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발생하는 인생의 이벤트 같은 것이었고(웃음) 저는 영상화가 될 것을 염두에 두면서 글을 쓸 수 없어요. 저는 그런 방식으로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그게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게 되는 작가들이 있어요. 작가들끼리 모여서 OTT플랫폼 이야기를 할 때 ‘〈러브, 데스+로봇〉 새로 나온 거 봤냐, 장난 아니더라, 그런 거 나오는데 우리가 글은 써서 뭐하냐, 다 때려치우자’ 이런 이야기를 하지, 글을 팔아야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실제로 SF 작가들 중에는 억대 영상 판권을 파는 작가들이 생기고 있고요. 어떤 작가님의 경우에는 여덟 개째 팔기도 했어요.

이종산 : 혹시 임태운 작가님 아니신가요?(웃음)

이서영 : 얘기해도 되는 거예요?(웃음)

이종산 : 비밀인가요?

이서영 : 그분은 영상으로 만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세요. 어떻게 하면 보기 좋게 영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를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프레젠테이션 할지도 생각을 하세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저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죠.(웃음) 제가 보기에는 OTT플랫폼이 작가나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두 가지 영역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출판 소설 영역이 있고, 웹 소설 영역이 있죠. 웹 소설 영역에서는 좀더 영향력이 강해요. 웹 소설 영역은 출판 소설보다 훨씬 더 휘발적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토리 라인이 아주 빠르거든요. 빠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갈 수 있는 작품들에 OTT플랫폼이 관심을 가지는 경우들도 많고요. 모든 작가나 작품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OTT플랫폼의 영향으로 장르작품의 형태나 양상이 다변화하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요.

이종산 : 억대로 판권을 판 분도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지금까지는 드라마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OTT플랫폼의 연애 예능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고 싶습니다. 박현주 작가님의 『서칭 포 허니맨』은 제주의 풍경들을 매우 아름답고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책을 읽으면서 이건 영상화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연애 예능 프로그램 〈체인지 데이즈〉도 제주를 배경으로 연인들의 마음을 추리하는 이야기라 『서칭 포 허니맨』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요즘 연애 예능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을 재밌게 보셨는지, 혹은 OTT플랫폼이 제공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박현주 : 요새 대세인 데이트쇼는 역시 〈환승연애〉죠.(웃음) 저는 원래부터 데이트쇼를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데이트쇼는 근본적으로 추리의 과정이 들어가거든요. 언어적, 비언어적인 장치를 사용해서 심리를 맞춰야 하는 거잖아요. 저 사람이 눈길을 어떻게 주는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하면서요. 말씀하셨듯이 〈서칭 포 허니맨〉은 이런 심리 추론 과정의 오해를 다룬 소설입니다. 우리가 해석해야 하는 많은 신호들의 사회적 관습을 탐구하고, 그 관습에 따라 행동하며, 거기서 야기되는 실패를 그린 로맨스죠.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밌게 여겨지는 점은 그 같은 프로그램이 영화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는 거예요. 실제의 일이지만 편집이라든가 음악이라든가 배경을 통해서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가공되어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하트 시그널〉을 보면 분명히 내가 했던 연애하고는 달라요. 각 에피소드가 굉장히 아름답게 그려지고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아름다운 음악들이 나와요. 이런 부분들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어요. 픽션이 현실을 닮아간다고 말하지만 관찰 리얼리티쇼 영역에서는 현실이 픽션을 닮아가는 과정이 보인다는 점에서 굉장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저는 요새 티빙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환승연애〉를 재미있게 봤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과거에 연인이었던 커플들이 나오고 어떤 집에 함께 모여 살며 새로운 인연을 찾는, 즉 자신의 엑스(전) 연인이 있는 가운데서 새로운 인연을 찾는 데이트쇼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사악한 지점은 감정의 착취가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전 연인과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 연인을 만나야 하는데 그 과정을 전 연인이 지켜보고 있는 거죠. 그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복잡한 과정들이 만들어지고, 거기에서 길티 플레저가 생기고, 타인의 감정을 오락으로 삼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자,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러한 픽션이 현실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것은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나 나오는 대사 아냐?’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을 프로그램에서 실제 사람들이 주고받고 있고, 현실이 저렇게 극적이라면 픽션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OTT플랫폼이 주는,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극단적인 감정을 이용하는 자극들이 있다면, 이것을 픽션이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앞으로도 역시 픽션의 가장 큰 경쟁자는 현실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추리물의 가장 큰 대항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쇼잖아요. 유튜브나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실화 기반의 이야기쇼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장르적인 변화의 방향을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종산 : 저는 로맨스를 쓴다고 스스로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요즘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과연 저것보다 재밌는 로맨스를 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거든요. 넷플릭스나 왓챠 등의 서비스에 더는 가입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을 꺾으려고 하는 것이 〈환승연애〉예요. 모두가 〈환승연애〉가 최고라고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오늘밤에 티빙에 가입을 해야겠구나 생각을 해봅니다.(웃음)


6. 다가오는 미래, 장르문학의 변화


이종산 : 이제 마지막 질문이니만큼 약간 거창한 질문을 드려보려고 합니다. SF에서는 AI, 환경, 장애, 퀴어 등의 정체성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추세입니다. 로맨스에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발생하는 폭력과 사랑의 윤리가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었고요. 범죄·미스터리 소설에서는 여전히 도덕의 문제, 이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악에 대한 관심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장르문학이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요? 세 분께서 각각 범죄·미스터리, SF와 호러, 로맨스를 맡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금 크고 막막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장르문학 출판계에서 오래 일해오신 세 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김용언 : 아직까지 한국의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수가 적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훨씬 더 많아져야 하고, 작품 종수 자체가 늘어나야 해요. 몇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늘어났지만 그래도 부족해요. 세어봐도 몇 년 사이에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늘지도 않았어요. 질적인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범죄라는 것―그러니까 사람 죽이는 장르죠 한마디로― 추리소설 혹은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소설 속 범죄에 대해서 ‘이건 어디까지나 픽션이야’라고만은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고, 사실 어릴 때에는 추리소설을 무조건 ‘재미’의 측면으로만 읽기 때문에 잔혹한 범죄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질 않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범죄의 묘사와 표현에 대해 의식을 하게 되더라고요. 《미스테리아》 같은 경우도 이번에 나온 37호에서 ‘범죄 실화’ 특집을 마련하여 피해자 가족 내지는 가해자 가족이 쓴 논픽션들을 다뤘거든요. 우리가 범죄 실화를 통해서 소비하는 특정 사건들이 있는데, 그 사건들을 단순히 재미의 측면으로 바라보며 결과적으로 정의가 실현되어서 너무 좋다는 식으로 말할 수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건이 다 종결된 이후에도 그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남아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의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어떤 쇼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인데, 그것에 대한 책임감? 독자로서 또 시청자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을 같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마련을 했던 특집이었어요.
   앞으로 소설에서도 그런 책임감이 계속 요구될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의식을 하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미스터리 소설에서 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사람은 대부분 약자들이잖아요. 약자들의 죽음을 다룰 때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피 튀기는 스펙터클로 소비를 하느냐(의 문제). ‘이것은 꼭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다!’라는 식으로 (흥미 위주로) 다루기에는 죽은 자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이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어디까지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도 계속 의식을 하게 되고요. 작품들도 그런 면에서 달라지고 강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추리소설을 발표한 특히 젊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이 유의미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비중이 앞으로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소설은 재밌어야 하지만 그 재미를 위해서 우리가 너무 끔찍해질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더 강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서영 :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 등 로봇이 등장하는 수많은 소설들을 생각해보면, 로봇이라는 형태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죠. SF는 마치 인간과 로봇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과학기술 자체가 주인공이거든요. 또, 그때 당시의 기술 변화의 양상을 즉각적으로 적용하고 있어요. 한국에 SF 열풍이 분 것은 알파고 이후이고 당시 압도적으로 인공지능 관련한 작품들이 와르르 쏟아져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현실에서 우리가 과학적으로 어디까지 나아갔는지와 SF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환경, 장애, 퀴어 등의 이야기들이 연관지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어떤 반영인 거죠.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 양상은 사회가 어떻게 생겼는가와 별도로 작동하지 않거든요. 대체로 기술은 사회가 생긴 대로 생겨요. 완전히 별개의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만든다는 거죠. 플랫폼 노동이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하는 것도 실제로 돈을 많이 버는 걸 우선으로 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걸 말하려는 거죠.
   저는 요즘에 나오는 SF 중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예전에 한때 게놈 프로젝트 같은 것이 많이 나왔을 때 유전자와 관련된 SF가 많이 나왔어요. 〈미도콘드리아 이브〉 같은 것이 그때 많이 나왔는데,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다시 유전자 SF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신체와 질병, 바이러스와 유전자와 관련된 SF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 현상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저의 관심사이기도 한데, 저는 5년 전부터 계속 밀고 있는데, ‘노동 SF’ 붐이 온다고요.(웃음) 과학기술이 우리의 직업과 일의 양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계속 체감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자면, 이마트에서는 현재 3년째 채용이 별로 없어요. 노동 과부하가 쌓이는 것을 전부 다 키오스크라든가 하는 것으로 메우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통해 일상에서 우리가 일을 할 때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 느낀다는 말이죠. 특히 코로나 시대에 재택근무가 활발해지면서 우리의 일상과 기술이 점점 더 떨어질 수 없는 영역이 되고 있어요. ‘향후에 어떤 SF가 부각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요약하자면, 제가 관심을 두고 보는 영역은 ‘유전자 SF’와 ‘노동 SF’입니다.

박현주 : 질문을 들었을 때 크고 막연한 질문이 맞다고 생각을 했어요. 중요한 것은 로맨스가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장르이면서, 가장 보수적인 장르라는 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얘기는 로맨스 장르가 변화에 보수적인 것이라는 건데요. 헤테로 로맨스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언더그라운드 장르인 BL/GL도 다르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장르라는 것은 계급의 배분, 생물학적 성과 별개로 커플 내에서 고정된 역할 관념의 클리셰적 소비,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많은 폭력적인 관계들이 여전히 장르 내에 잔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비혼과 저출산의 시대잖아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채 로맨스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로맨스는 재미있는 콘텐츠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토론의 가치가 있는 장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트랜스 휴머니즘’에 관심이 있습니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많은 경우에 SF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소설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인간을 인식할 때 인간이라는 육체로서, 생물학적인 관념으로서 인간을 인식하는 것이 아닌 거죠. 동물권이나 장애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렇다면 생물학적인 성 결정론으로부터의 탈피는 모든 장르에서 공통적으로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장르에서는 주요 주제로 나타나게 될 거고요. 로맨스 또한 인간성을 탐구하는 문학이므로, 이제까지 인식해왔던 인간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문학을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종산 : 사실 이 질문은 준비하면서도 대답하기가 (어렵다기보다는) 좀 곤란한 질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세 분께서 잘 말씀을 해주셔서 저도 공부를 하는 느낌으로 들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관객 여러분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7. 물음과 대답


질문 1. 한국 장르문학이 해외 장르문학과 다르게 갖고 있는 특징이 있나요? 한국 장르문학만의 어떠한 특징이 전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불러일으켰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은 여러 편견과 오해, 비교를 받아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장르문학을 집필하는 작가님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서영 : 최근에 한국 장르문학만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장르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넓어요. 로맨스도 장르고 추리도 장르고 미스터리도 장르이지요. SF도, 호러도 장르이고요. 저는 한국의 문단문학도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해요. 너무 장르적이에요, 문단문학이라는 형태 자체가. 너무나 장르가 많아서, 특징은 장르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SF, 판타지, 호러 쪽을 쓰다보니까 거기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SF 씬은 좀 독특하게 형성된 면이 있죠. 한국의 SF 씬은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농담으로, 독자와 작가 다 합쳐서 500명밖에 안 된다, 책 500권 이상 찍으면 안 된다, 절대 안 팔린다 등의 얘기를 하곤 했어요. 그렇게 고립되어 있다보니까 작가들이 서로의 소설에 영향을 많이 주고받은 경우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하나의 흐름이라는 게 굉장히 분명하죠. 여러 갈래로 뻗어가기보다는 장르소설이 쓰는 주된 흐름을 가져온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퀴어, 환경, 장애, 페미니즘 등에 대한 관심, 특히 트위터 등 SNS의 영향과 결합하면서, 그런 주제의 작품을 점점 더 많이 발표하고 정치적인 작품을 쓰게 된 경향성이 SF에서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문단문학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신춘문예라는 등단 제도가 계속 있어왔고, 계간지에서도 주로 단편작품을 실어왔어요. 이런 점이 매우 기형적이다, 문제가 있다는 진단은 적어도 2000년대 초반 장르문학 비평의 주류였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아주 독특한 단편들, 완성도 높은 장르 단편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지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질문 2. 장르문학이 책으로 소비되는 일은 이제 점점 줄어들까요?

박현주 : 책을 종이책으로 한정하거나 장르문학의 포맷으로 규정하면, 책이 소비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유튜브 프리미엄보다 비싸고 넷플릭스보다도 비싸니까요. 책을 선형적 서사의 구성물이고 물리적인 형태가 있는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줄어드는 것이 맞는데 그것은 사실은 꼭 책이라는 물체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많은 경우에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가령, 음악의 경우에도 아이돌 팬덤에서 구입하는 CD 정도를 제외하고는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다 디지털화 되고 줄어드는 추세이고, 이 또한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종이책의 소실에 대해서 그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책을 선형적인 서사에 물리적인 외피가 있는 물체가 아니라 그 이상의 확장을 생각하면 책은 당연히 존재하겠죠.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도 사실 스티븐 킹이 없었다면 역사적인 흐름에서 나오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테고요.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이 내용적인 형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줄어든다기보다는 변화하는 것으로 봐야 하고요. 저는 종이책의 소실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안타까운 마음이 없어요. 나무도 살려야 하고, 공간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변화에 대해서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면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이서영 :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저와 이 대화를 나눈 친구는 저보다 여섯 살이 어린 친구였는데 이 친구가 제가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약간 의아해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기는 모르겠다. 그리고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읽는 데에 그렇게 편안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네가 좋아하는 그 취향은 도태될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해보니까 그렇잖아요. 책이라는 물체, 물상으로써 읽을 때의 즐거움이라는 게 사실 있어요. 이것은 점점 더 마니악한 즐거움이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유튜브로 보면 10분 동안 봐야할 것을 문자 언어로 읽으면 1분 안에 읽을 수 있는 것도 있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것 자체의 즐거움이 있어요. 만약에 즐기는 사람이 더 줄어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그 즐거움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엄청 마니악한 취미가 될 수도 있죠. 유튜브에서 잉글리시 헤리티지 같은 채널을 보면 옛날 방식으로 영국식 버터 만들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내가 그런 사람들처럼 여겨질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즐거운 일이에요. 내가 그게 즐거우면 됐고, 저는 그걸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멸종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종산 :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소설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되게 많이 겹쳐서 사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소설이 사라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소설로 먹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이야기라는 형태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고 그렇다면 박현주 작가님의 말씀처럼 그저 형태가 변하는 것뿐이고. 저는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OTT플랫폼에서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아직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되게 강하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전 오히려 희망을 품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책이나 소설을)보는 사람이 아주 소수가 되더라도, 그러니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버터나 치즈를 집에서 만드는 그런 사람들처럼, 저도 최후의 순간까지 그 소수의 사람들 편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요. 아마 지금 웹진 《비유》의 이런 좌담을 듣고 계신 분들도 아마 그 소수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저의 노년까지 같이 해주실 분들이 아닌가(웃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질문 3. 호러 장르에 관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날의 SF문학처럼, 국내의 호러 문학계도 소비 및 창작집단 내의 주류에 가깝도록 부상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만약 그렇다면 언제쯤으로 예상하시는지요? 다른 하나는, 모든 장르들이 단연 호러로 재정렬 중입니다. 무엇이 이 물결을 불러왔는지, 그리고 사회자님 포함 패널들 모두 호러에 대한 패기와 야망,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서영 : 「유도선」 이야기를 앞서 했는데요, 그 작품은 《거울》이랑 괴이학회라는 호러 동인이랑 ‘괴이한 거울’이라는 프로젝트에서 쓴 것이었어요. SF를 쓰는 《거울》 작가들이 호러를 짬뽕해서 만들어보자, 호러 작가들도 호러나 SF를 짬뽕해서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들었던 게 그 프로젝트였거든요. 저는 사실은 호러가 지금 그렇게 대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호러를 좋아해요. 스티븐 킹의 호러 소설들을 정말 좋아하고요. 유튜브에서 괴담 영상 같은 것도 엄청 많이 보기는 해요. 그런데, 글쎄요…… “SF가 창작집단 내의 주류에 가깝도록 부상”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문단문학이 포섭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에요. 그것 말고는 제가 보기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어떤 하나의 씬의 목표가 되어야 할까요? 저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호러가 가지는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죠. 호러가 생길 수밖에 없는 어떤 조건들도 있고요. 사실 저는 호러에 대한 패기와 야망, 계획은 없는데요.(웃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호러가 사람들에게 주는 강한 인상이라는 게 그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돌아올 때 무서워한다는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유도선」을 쓸 때도 잊힌 존재가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를 쓸 때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세계로 돌아와서 후려치는 것에서 오는 무서움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세계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주목하느냐에 따라서 호러의 향방이 결정될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현주 : 호러를 장르 레이블로 본다면 저는 거기에 전문적인 관점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장르들이 단연 호러로 재정렬 중”이라는 관찰과 언급은 흥미롭게 들리는데요. 오히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이 자극적 공포를 말하는 것이라면, OTT 영상물이 많이 제작되며 지상파 프로그램이 묶인 검열에서 자유롭고, 동시에 경쟁이 심화된 상황 속에서 시각적으로 흥미를 끌 수 있는 강렬한 소재를 찾다보니까 그렇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비물, 크리처물, 오컬트 호러물을 언급하신 거라면, 아마 그런 이유겠지요.
   제게도 유령과 관련된 장소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있습니다만, 고딕 호러의 관점과 연결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생활 미스터리에 가깝습니다. 고전 추리의 관습을 재구성하여 한국의 일상 공간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를 만들고, 서사를 진행시키는 방식으로서 호러적 요소가 있습니다. 공포는 우리 장르문학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공포는 사실 우리의 일상 공간에 늘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코로나 시대로 심화되기도 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세계관은 어느 정도 공포에 기인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것들이 늘 어떤 미스터리를 만들고 서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호러적 요소는 늘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장르문학의 근본에는 공포가 있거든요. SF 이야기를 할 때 기술 이야기도 하셨지만, 기술에 대한 경이가 SF의 배경이라고 한다면 사실 경이 뒤에는 공포도 있는 거잖아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어느 정도 공포에 기인하고 있고, 공포를 자극하는 방식의 콘텐츠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죠. 이를 다루는 각각의 다른 방식이 장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패기이고 야망이라면 그럴 수 있죠.

이종산 : 사회자 포함이라고 해주셔서 저도 짧게 답변을 해보자면, 저는 이 질문에서 패기와 야망이라는 키워드가 재밌었거든요. 패기와 야망이라는 게 내가 뭘 보여주겠어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그런 패기라기보다는 좋은 호러를 써보고 싶다는 야망은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호러 소설집 원고를 마무리해서 출판사에 보낸 상태거든요. 지금 책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야망이라 한다면 이 책이 좋은 호러물 중에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질문 4. 요즘 영어덜트를 대상으로 한 장르문학도 인기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어덜트 대상 장르문학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김용언 : 영어덜트 대상이라는 것은 영미권에서 통용되는 기준 같아요. 어떤 편집자 분은 ‘해리포터 이후로 인기 있는 영어덜트가 있었나? 그렇게 잘 팔린 게 없을 텐데?’라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좀더 좁혀서 얘기하자면, 있긴 있는데 영어덜트라고 이름을 붙여서 내지는 않잖아요. 이건 정말 스토리텔링의 힘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엘릭시르에서 나오는 책 중에 십이국기 시리즈라든가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사실은 영어덜트이거든요. 요네자와 호네부의 고전부 시리즈도 그럴 것이고요. 주인공들이 십대이고 풀어가는 사건들도 학교나 가족 등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이야기 자체가 워낙 재미있고 굳이 ‘이건 청소년용이니까 청소년들만 읽으세요’ 식이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똑같이 재밌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팔리죠. 굳이 아마존 등에서 YA(Young Age)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코너에서 책을 고르지 않는다는 거, 그 점이 핵심일 것 같고요. 실제로 청소년 대상으로 잘 팔리는 건, 장르소설이 아니라 지식이 필요해서 읽는 책들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권하는 책들, 자소서나 논술에 쓰는 책들은 잘 팔린대요. 청소년 권장 도서라는 라벨이 들어가고,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이 권해주는 책들이요.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특별히 YA라는 라벨링이 붙는 게 중요한 변수가 되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박현주 : 저도 김용언 편집장님 말씀에 동의를 하는데요. 많은 장르소설들이 사실은 YA예요. 왜냐하면 청소년들이 주로 많이 보고,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아요. 그렇다고 본다면 영어덜트의 비전은 무궁무진한 거죠. 책을 안 읽던 사람이 갑자기 책을 읽을 가능성은 별로 없잖아요. YA나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시장이 비전이 좋다는 것은 그냥 관찰적인 면에서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요새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점은 한국에서 나오는 YA―판타지 소설이나 외국소설 등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는 장르소설이라고 넓게 이야기를 했을 때―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무국적성’인 거예요. 초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케이팝처럼 한국에서 만들었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그런 토양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이 꼭 한국 이름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혹은 한국의 전형적인 이름을 갖고 있더라도 그 이야기 자체에 보편성이라는 게 존재하죠. 문학에서 시작은 됐지만 OTT플랫폼을 통해서 나아갈 수 있는 방향들이 있을 거고요. 이런 면에서는 젊은 층(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문학 자체는 정말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이서영 : 저는 SF를 쓰다보니까 출판사에서 청소년 대상의 책을 기획할 경우 과학에 대한 정보를 함께 전달하는 SF를 청탁받을 때가 있어요. 과학적 지식에 대해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도록 써달라고요.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르소설을 써주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장르소설이면 애들이 재밌어 하겠지? SF로 공부를 할 수도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해리포터, 달러구트, 십이국기, 그리고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작품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저희가 같이 했던 앤솔러지(『인어의 걸음마』)도 청소년 SF로 청탁받은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장르문학이라고 한다면 좀더 청소년에게 다가기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출판사의 기획과 제안은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경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장르문학이 존재해서 영어덜트로 가는 것보다는 영어덜트라는 기획이 장르문학으로 건너오는 사례들은 상당히 있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하나의 씬을 만들고 있을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종산 : 저는 청소년소설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는 체감이 있어요. 독자층의 수요가 넓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덜트를 원하는) 출판사의 수요는 늘어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1년 동안 청소년소설 청탁을 받는 일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새로운 YA 시리즈를 준비하는 출판사들이 있더라고요. 앤솔러지도 굉장히 활발하게 나오고 있고요. 혹시 이 질문을 주신 분이 영어덜트를 쓰고자 하셔서 그 비전이 궁금하신 것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비전이 있는 장르라고 저는 답변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십대들이 주인공인 콘텐츠들이 인기 순위에 빠르게 오르는 것을 보면서 (장르는 아니지만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등) 독자들이 좋은 영어덜트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질문 5. SF는 문단에서 환영하는 분위기인데 판타지를 포함한 다른 장르는 그보다 덜 환영받는 느낌이 들어요. OTT플랫폼에선 오히려 친근한 장르인데도요. (예를 들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쓴 이미예 작가님의 단편은 어째서 문예지에서 볼 수 없는 건지 의문이 들곤 해요.) 패널 분들이 체감하는 분위기는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이종산 : 앞서 이서영 작가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도 우리나라에서 문단문학이 장르의 일종 같다는 생각을 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SF는 문단문학이 최근 몇 년 동안 주목했던 키워드(페미니즘과 윤리적 다양성 등)를 공유하는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스타일적인 측면에서도 콕 집어 어떤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문단문학이 선호하는 취향과 겹치는 부분이 있고요. 국내에서 그런 책들을 번역 출간하여 소개한 부분도 있겠지만 SF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휴고상의 수상 목록들을 보면 확실히 문단문학이 관심을 가진 키워드들과 겹치는 데가 있어요. SF는 그런 점에서 문단문학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문예지라는 것은 결국 현재는 문단문학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장르 잡지가 되었는데, 판타지는 SF에 비해서 문단문학과 겹치는 코드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게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은 게, 휴고상 수상 작가들은 노벨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조앤 롤링이 노벨상 후보에 오른 적은 없잖아요. 이제는 상업적으로 잘 팔리는 소설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상업 소설이라는 말 자체도 좀 무색해졌지만, 애초에 문예지는 옛날 옛적 굉장히 잘 팔리는 상업 소설들이 존재했을 때 상업 소설과는 구분되는 문단문학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잡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말씀하신 이미예 작가님의 작품이나 다른 판타지 작가들의 작품을 문예지에서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도 합니다. 국내나 해외나 판타지 소설은 상업 소설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으니까요. 윗세대는 어떤지 몰라도 제가 지난 10년 간 활동하면서 체감한 것으로는 문단 내부에서 판타지를 문단문학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등 얕잡아 보는 분위기는 적어도 저희 세대에서는 없었어요. 제가 만난 작가나 편집자는 대개 문학 덕후들이었는데, 문단문학을 포함해서 장르 불문하지 않고 소설이라면 다 좋아하는 덕후와 몇 가지 장르를 특히 선호하는 덕후, 문단문학만 파는 덕후들로 나뉘어진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문예지에서 판타지 소설을 거의 싣지 않는 것이 문예지가 문단문학 덕후를 위한 장르 잡지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출판계에서 문단문학이 주류로서 가진 힘의 관점에서 보면 또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국내 문단이나 출판계가 들여다볼수록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제가 말씀드린 게 정답은 아닐 것 같고, 내부에서 활동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이러한 측면도 있다는 정도로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받기 전에도 이미예 작가님의 작품을 《비유》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가님이 청탁을 받아주실지 모르겠어요.


8. 마무리하며


이종산 : 마지막으로 패널 분들께 장르소설을 세 권씩 추천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요. 어떤 책을 고르셨는지 추천 이유와 함께 말씀해주세요.

이서영 : 좌백의 『좌백 무협 단편집―마음을 베는 칼』, 이종산의 『커스터머』, 전삼혜의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를 골랐어요.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는 정확히 영어덜트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에요. 저는 전삼혜 작가님이 청소년소설을 의식적으로 쓰려고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작가가 청소년들이 가지는 어떤 소설적 특성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는 제네시스라는 우주 개발을 하는 회사가 있고, 그 회사가 특수한 능력들을 가진 청소년들을 모아서 그 안에서 우주 개발을 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상황들과 인물들 간의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이 책은 사랑 이야기인데 청소년들의 특수한 어떤 특징을 담고 있어요. 청소년들은 사랑을 전달하는 데에 서투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처음이라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엉망진창으로 사랑을 해요. 그래서 이런 감정이 서로 잘 전달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까 궤도의 밖으로 나가죠. 이 책 안에서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계속 궤도를 어긋나요. 그런데 그 궤도가 어긋나서 굉장히 먼 길을 돌아와서 다른 사람한테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상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거든요. 단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러 편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의 룸메이트예요. 이 세계에서 룸메이트라는 것은 서로의 역사를 섬처럼 공유하는 일대일의 고립된 집단인 것이죠. 그 고립된 집단 안에서 청소년들이 엉망진창으로 사랑을 하는 이야기인데 그런 감정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그리고 그게 심지어 우주적인 스케일로 어긋나버리고 그래서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거든요. 저는 이런 이야기가 정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야만 쓸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SF가 가지는 경이감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잘 살린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다들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종산 : 전삼혜 작가님은 십대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중에 한 분이신 것 같아요. 저도 강력 추천드립니다.

김용언 : 이두온의 『타오르는 마음』, 애거서 크리스티의 『끝없는 밤』,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저체온증』까지 세 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각각 성격이 다른 작품들로 고르려고 고심을 해보았고요. 이중에서 『타오르는 마음』에 대해 코멘트를 하자면, 이 작품이 나오고 나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독자평을 봤어요. 독자평 중에서 좋아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화를 내는 분도 좀 있었어요. 화를 내는 이유 중 하나는 무국적성에 대한 것이었어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국 이름 같지 않아요. 배경도 사막이에요. 한국에는 사막이 없잖아요. 작가님에게도 여쭤봤더니 미국이나 호주에 있는 사막을 배경으로 생각하고 쓰셨다고 하거든요. 공간부터 이름까지 무국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썼느냐고 화를 내는 반응이 있었고, 또하나는 ‘문장을 이렇게 써도 되느냐’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독자평이 있었어요. 저는 충분히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각자의 취향이 있는 법이니까요. 어쨌든 그것을 보면서 이 작품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인공이 십대 여성이고, 이 인물이 연쇄 살인마의 뒤를 혼자서 쫓는 이야기예요. 그 인물의 성격이 저는 되게 좋았어요. 이 책의 주인공은 되게 비호감이라고 할 수도 있는 성격의 인물이고,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이 소녀를 싫어합니다. 주인공이 필요할 때 이 인물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서 어떤 트라우마에 대처해야 하고 또 공포를 이겨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연쇄 살인마와 맞서는 인물인데, 이런 여성 주인공이 나왔다는 것이 저는 굉장히 기뻤습니다. 고집스럽고, 약간 돌아버린 것도 같고, 그러면서 동시에 누구보다 외롭고 용감한 소녀 말이죠. 스토리텔링의 힘이라는 것이 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 때 흥분이 되는 거잖아요. 원래 스타일적인 유사성이 있는 책들이 있어서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면 이걸 읽어보라는 식으로 추천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타오르는 마음』 같은 경우는 제가 비교의 대상을 잘 못 찾겠더라고요. 굉장히 낯설고 뜨거운 작품인데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종산 : 저도 좋아하는 책은 제가 쓴 게 아닌데도 서평을 찾아볼 때가 있어요. 거기에 악평이 있으면 너무 옹호를 하고 싶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타오르는 마음』을 추천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박현주 :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 설혜원의 『클린 코드』,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클린 코드』는 사회파적인 관찰 안에서 미스터리 문법을 깔끔하게 적용한 단편집이어서 사회소설에 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홍학의 자리』는 정공법으로 쓰인 반전 스릴러여서 스피드가 좋은데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고 섬세한 묘사가 있지만 저는 최종 반전의 윤리성에 대해서는 토론해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읽어보시고 생각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복합 장르의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섬세한 문장이 아름답고 거기에 깃든 감성이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그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은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인데 타임리프 설정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감성적이고 영리한 미스터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셋 다 무척 영리한 소설이라는 점이 좋습니다.

이종산 : 저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장치가 되게 흥미로운 소설이었어요. 혹시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집은 현대의 젊은 장르 작가의 경향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해서 어떤 경향을 알고 싶다 하시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패널 분들의 책 추천을 끝으로 여기서 좌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함께해주신 분들께 크나큰 감사를 드립니다.

*본 좌담은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오후 7시 연희문학창작촌(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에서 진행했습니다. 좌담 내용을 총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김용언, 박현주, 이서영, 이종산

김용언 : 잡지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드라마, 잘 쓰인 소설을 볼 시간이 너무 부족해 늘 속상합니다.
박현주 : 이전에는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땐 ‘변사 전문’ 번역가라고 했다. 온갖 살인 사건이 나오는 소설들을 번역한 이후에는 내가 직접 쓸 때는 사람이 적게 죽는 추리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내 책에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면 번역가들이 즐겁게, 그러나 ‘도전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서영 : SF와 판타지를 쓰는 소설가. 『악어의 맛』 『유미의 연인』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등의 책을 출간했다. 소설 속에 곧잘 데모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운영위원이다. 〈술꾼도시여자들〉을 보려고 티빙에 가입하느라 웨이브를 해지했다. 언제 또 무엇에 가입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고 있지만, 영상화 판권은 아직 못 팔아봤다.
이종산 : 소설가, 에세이스트. 중·고등학교 때 카세트테이프에 드라마를 녹음해서 듣고 다녔고, 시험 보는 날에는 시험은 대충 보고 시험지에 전날 본 드라마 대사를 기억나는 대로 적으며 전율을 느꼈다. 그걸 본 반 친구가 왜 그렇게 사냐고 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산다. 모든 장르의 소설, 드라마, 영화를 사랑한다.

2021/12/14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