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제가 꾸었던 가장 무서운 꿈은 부모님이 치즈로 변해버리는 꿈이었습니다. 코에 큼지막한 사마귀를 단 마녀가 배가 고프다며 부모님을 펄펄 끓는 양파 수프에 집어넣어 버렸지요. 네모난 치즈 조각들이 살려달라고 이쑤시개 같은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끔찍하던지요. (물론 본래 치즈에는 팔다리가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하루 온종일 케이블 채널을 시청하던 고작 일곱 살짜리 아이의 꿈속 장면일 뿐이니, 적당히 넘어가 주세요.) 치즈로 변한 부모님은 꼭 네모난 노란 벌레 같은 모습이더군요. 구멍이 송송 뚫린 샛노란 치즈에 가느다란 사지가 달려 있었고, 한 면에는 정교히 조각한 것처럼 부모님의 얼굴이 박혀있었죠. 냄새는 또 어찌나 지독하던지! 어떤가요. 퍽 끔찍한 꿈 아닌가요?
   하지만 이 잔혹 동화 같은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마녀는 저를 펄펄 끓는 무쇠솥 앞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사람 얼굴만한 국자에 수프를 한가득 떠 먹어보겠냐고 물었습니다. 아주 연한 연두색의 수프가 기포 방울을 팡팡 터뜨리며 끓고 있었습니다. 양파 껍질이 노인의 머리카락처럼 국자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죠. 왜 그 불쾌한 음식을 보고도 고개를 끄덕인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린애가 꾸는 개꿈에서 맥락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저는 새 부리처럼 조그만 입을 국자 앞으로 가져갔죠. 그 맛이 어땠을까요?
   아주 환상적이었답니다. 제가 그때까지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도 따뜻하고, 향기로우며 다채로운 맛이 났지요. 저는 부모님의 맛이 역하지 않고 아주 향기롭다는 데에 충격을 받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게 꿈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얼마나 아쉽던지요. 그 수프에 코를 처박고 무쇠솥의 바닥까지 싹싹 핥아먹었어야 했는데요. 마른 입술을 뻐끔거리며 입맛을 다지는데, 뒤늦게 제가 무슨 꿈을 꾼 건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정신이 들더군요. 어떻게 감히 부모님을 먹는 생각을 한 걸까요? 하늘 같은 부모님은 아직 손 많이 가는 핏덩이에 불과한 저에게 방을 주고, 침대를 주고, 옷도 주고, 텔레비전도 보게 해주고, 가끔 먹을 것도 주는 훌륭한 분들인데요. 얼마 다니지 않은 어린이집에서 노래도 불렀지요. 부모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랬나?
   꿈에서 깨어났을 땐 여전히 밤이었고, 저는 오래도록 하지도 않은 패륜과 식인의 죄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저를 집요하게 괴롭혔지요. 저는 어둠 속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했답니다. 부모님이 치즈로 변하지 않게 해주세요. 적어도 지금은, 절대로 변하면 안 된다고요. 뭐, 지금 생각하면 그저 억울할 따름입니다. 저는 그저 꿈속의 괴상하고 역겨운 치즈 양파 수프를 한입 먹었을 뿐이니까요.
   한입. 그 한입이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아무리 그 끔찍한 꿈을 잊으려 해보아도, 잠을 자고 자고 또 자도, 어떤 달콤한 간식을 맛보아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매일 다르게 제공되는 밥과 국과 세 개의 반찬을 먹을 수 있게 되어도, 전단지를 돌려 번 몇천 원으로 마트 유제품 코너에서 디저트 치즈를 사 먹어보아도…… 그 맛만은 늘 조롱하듯 제 혓바닥 위를 맴돌았습니다. 전 정말이지, 다시 그 맛을 맛볼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 꿈을 딱 한 번,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특성화고에서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었지요. 아마 고등학교 수학여행이었을 겁니다. 선생님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잠든 새벽 네 시. 우리는 어둠 속에서 진실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 옆 남고의 누구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다, 그런 간질간질하고도 은밀한 이야기들이 지나가고 야심한 새벽 시간대를 즐기는 차례에 이르렀죠.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전부 인터넷 게시판에서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법한 시시한 이야기들이었답니다.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지만 함께 꺅꺅 소리를 지르는 건 꽤 재밌더군요. 그리고 제 차례가 돌아왔을 때, 저는 그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건 내가 직접 꾼 가장 끔찍한 꿈이야. 친구들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죠. 무슨 꿈인데? 말해 봐. 우리에게 다 털어놓아 봐. 살인마가 쫓아왔어? 귀신이나 사신이 나타났어? 죽은 사람이 널 저주했어?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치즈로 변해버렸고 제가 그것을 먹어버렸다는 걸요.
   그다음 순간,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푸핫, 쿠쿡, 하하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죽인 채 웃었죠.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제 어깨를 치며 속삭였습니다. 무서운 이야기 하라고 했잖아! 갑자기 웃기면 어떡해? 평소엔 농담도 안 하더니 참.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도 저를 향해 웃기는 소리 한다고 한마디씩 하는 게 아니겠어요? 무덤을 앞에 둔 이름만 호텔인 모텔방은 순식간에 여고생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저만 웃지 못했지요. 다들 이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걸까요? 이 꿈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웃긴 건지, 저는 전혀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종종 궁금해져요. 제가 꾸었던 꿈은 무서운 꿈일까요, 아니면 웃기는 꿈일까요? 만약 그때 웃음을 터뜨린 친구들이 지금 제 눈앞의 장면을 본다면, 역시 웃음을 터뜨리게 될까요?

   저는 지금 블루치즈를 먹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쓸 법한 새하얀 접시 위에 시퍼런 반점이 버짐처럼 핀 치즈 한 덩이, 짭조롬한 크래커 다섯 개와 통후추가 뿌려진 그린 올리브 세 개가 놓여있습니다. 그 옆에는 레드 와인이 얌전히 담긴 와인 잔이 지키고 있죠. 그거 아시나요? 와인 잔은 스템이 길고 가느다랄수록 비싸답니다. 제 건 집 앞 다이소에서 이천 원에 산 거라 가운뎃손가락만큼 두껍지만요.
   어쨌든 저는 이 풍경에 퍽 마음에 듭니다. 누구나 사소한 로망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저 같은 경우엔 역시, 치즈였습니다. 치즈는 본래 유제품을 굳히고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라 우유가 귀했던 옛 유럽에서는 꽤 고급스러운 식재료였답니다. 사실 중세 유럽까지 갈 것도 없이, 마트에만 가더라도 비싼 치즈가 널려있지요. 주먹만한 크기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품도 있습니다. 프레쉬, 모짜렐라, 체다, 블루, 리코타, 카망베르……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치즈가 있는지요. 저는 그 모든 치즈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정확히는 꿈에서 맛본 그 맛을, 쌉싸름하고 달콤한 양파 수프에 깃든 진한 풍미를 찾아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발견해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즈를 고급스러운 접시에 올려놓고 아주 천천히, 어떤 와인 어떤 식재료와 잘 어울리는지 하나하나 음미하며 먹어보는 게 꿈이었네요.
   뭐, 얼추 이룬 것 같습니다만. 와인 잔이 역시 영 걸립니다. 스템이 너무 두꺼워요. 안에 담긴 와인도 빛깔이 탁합니다. 블루치즈의 콧속을 찡하게 후벼파는 고릿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군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구색을 갖출 수 있는 지금에 저는 감사하고 있답니다. 어쨌든 제 앞에는 그렇게 꿈꾸던 치즈가 있잖아요. 이 블루치즈에서는 수프에 넣기 전 부모님들과 같은 아주 지독한 냄새가 풍겨요. 블루치즈란 게 원래 그런 음식이죠. 멀쩡한 치즈에 균을 넣어 공들여 썩히는.

   식탁 앞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다음 와인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구고,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요. 치즈 모서리를 조그맣게 자릅니다. 나이프를 내려놓은 뒤 이제 크래커를 들어요. 그 위에 잘라낸 치즈와 올리브 반쪽을 올려 한입에 맛봅니다. 아, 코가 톡 쏘일만큼 짙은 치즈의 향이 입안 가득 퍼져나갑니다. 이건 제가 지금껏 먹어본 블루치즈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에요. 미슐랭 식당을 운영하는 프랑스 출신 셰프가 손수 만들어준 치즈도 이 맛과 비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네요. 짜고, 달고, 역하고, 사랑스러운 맛.
   바로 꿈속의 그 맛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맛을 찾아내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블루치즈를 만들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숙성입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까지 알맞은 습도와 온도를 갖춘 저장고에 숙성을 시키죠. 옛날 사람들은 주로 동굴에 넣어뒀다고 하더군요. 이 기간 동안 미리 뚫어둔 구멍을 통해 공기와 접촉한 곰팡이균은 무럭무럭 퍼져나갑니다. 그렇게 맛깔스러운 블루치즈로 거듭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일곱 살의 저는 숙성을 기다리는 치즈처럼, 그 방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하나의 침대와 낮은 좌식 책상, 요강과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던 방이었지요. 초기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그 방에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셨는데, 어느날 요구르트가 먹고 싶다고 집을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18평짜리 아파트를 당시 원룸에서 저를 키우던 엄마가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이사를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저에게 방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저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친구들에게 방이 생긴 사실을 자랑할 생각에 무척 설레었답니다. 엄마는 할머니의 퀴퀴한 요를 치우고 침대를 들였습니다. 좌식 책상은 원룸에서 식탁 대신 쓰던 물건이고, 요강과 텔레비전은 할머니가 쓰던 걸 버리지 않고 두었지요.
   처음에는 엄마가 왜 요강을 방에 두는지 알지 못했어요. 방 밖에 화장실이 있잖아요. 할머니처럼 거동이 힘들다거나, 움직이는 게 어지간히 귀찮지 않은 이상 굳이 쓸 일이 없는 물건이었죠. 하지만 곧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집 정리가 끝나는 날 새아빠가 찾아왔거든요. 광택이 다 죽은 회색 정장을 입고 온 새아빠는 저에게 당시 제일 유행하던 캐릭터 인형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실의 소파를 차지하고는 말했습니다.

   “우리 희지, 방에 들어가서 인형이랑 놀까?”

   저는 고개를 끄덕였고, 방에 들어갔어요. 엄마가 문을 닫았습니다.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 문고리를 보았더니 웬걸, 손잡이가 떨어져 덜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이사 과정에서 안쪽 손잡이가 고장났는데, 그걸 그냥 둔 겁니다. 밖에서 문을 잠그면 저는 누군가 열어주기 전까지는 그 안에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문틈에 귀를 가져다 대니 엄마와 새아빠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엄마의 그런 웃음소리는 정말 오랜만이었지요. 저는 엄마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대로 침대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인형과 함께 놀았습니다. 언젠가 열어주겠거니, 하고요.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금요일 저녁 일곱 시에 방영하던 어린이 드라마를 제가 무척 좋아했거든요. 드라마가 끝날쯤, 엄마가 문을 열고 웬 봉지를 넣어주더군요. 그리고 뭐라 할 새도 없이 다시 문이 닫혔습니다. 봉지 안에는 편의점 삼각김밥과 과자, 사탕, 빵, 젤리들이 가득했어요. 마침 배가 고파져 삼각김밥을 먹었지요. 그러다 잠이 들었습니다. 선잠을 깨운 건 술에 취한 엄마의 노랫소리였어요. 술기운이 가득한 콧소리로 드라이브를 하자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소리가 들렸습니다. 제 방문이 아니라 무거운 현관문이 크게 열고 닫히는 소리요. 네, 다정한 새아빠가 그 야심한 금요일 밤에 엄마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간 겁니다.

   저는 그 방 안에 둔 채로요.

   저는 주인을 찾는 강아지처럼 문 앞에서 낑낑거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그 문이 열리는 일도 없었죠. 저는 눈치 빠른 어린애답게 상황을 금방 받아들였습니다. 쓸데없는 울음은 에너지만 잡아먹을 뿐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아요. 배고프면 과자를 먹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요강에 볼일을 보았죠. 심심하면 인형에게 말을 걸고 텔레비전을 보며 꿈도 키웠습니다. 그때 본 채널에는 전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젊은 셰프가 나왔습니다. 이탈리아인과 한국인 혼혈인 셰프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바다 같은 푸른 눈을 하고 고르곤졸라_블루치즈의 한 종류_의 제조법에 대해 설명해주었죠. 저는 그 달콤한 눈빛에 매혹되었어요. 흰 접시 위 덩그러니 놓인 한 덩이의 치즈는 그 자체로 어떤 장인이 만든 공예품처럼 완벽해 보였답니다. 요리사를 꿈꾸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입니다. 저는 멀리서는 모두가 코를 찡그리지만 입안에 넣는 순간 황홀경을 느낀다는 블루치즈의 맛이 너무나도 궁금했어요.
   하지만 방송이 끝나고 제 앞에 남은 건 다 먹은 삼각김밥의 비닐, 과자 부스러기, 설탕 가루가 묻은 젤리 봉지뿐이었네요. 그것들을 다 먹고 몇 번인지 모를 낮잠을 자고 요강이 가득 찰 때까지도 엄마와 새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셰프가 했던 말을 자주 떠올렸어요. 여러분, 블루치즈를 만들 때 숙성은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길게는 6개월까지도 우리의 치즈들은 어둠 속에서 풍미를 쌓아간답니다. 그러니, 훗날 그런 꿈을 꾼 것도 아주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어요?
   엄마가 돌아온 건 이틀이 지난 일요일 밤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과자 부스러기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땡볕 아래 해초처럼 바짝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방안에는 요강에서 흘러나온 악취가 빼곡했고, 며칠 동안 씻지 않은 탓에 몸에서도 안 좋은 냄새가 풍겼죠. 그때는 먹어본 적이 없어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분명 잘 숙성된 치즈의 냄새와 비슷했을 겁니다. 현관문 소리가 나자마자 저는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 나무문을 뭉툭한 손끝으로 긁으며 엄마를 불렀어요. 나갈 때와는 반대로 엄마는 비교적 멀쩡했고 새아빠는 술에 찌든 듯 주정을 해댔죠. 잠시 뒤, 삼일동안 잠겨있던 방문이 열렸습니다. 그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세안 밴드까지 한 엄마는 저를 보자마자 코부터 틀어막았습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방안을 둘러보고는, 무릎을 굽혀 저와 눈을 맞추었어요. 타인의 눈을 본다는 게 그렇게나 안심되는 행위인 걸 처음 깨달았죠. 엄마는 왼손 검지손가락을 입술 앞에 가져다대고 이렇게 속삭였어요.

   “아빠 자니까 조용히 해. 방 치우고 씻으렴. 내일 어린이집 갈 준비해야지.”

   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요강을 비우고, 몸을 씻고, 방을 치우고, 머리를 감았어요. 다음 날 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린이집에 등원했습니다. 몸에서 계속 냄새가 나는 착각에 온종일 코를 킁킁거렸지만요. 일부러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고 느지막이 돌아온 집에는 여전히 새아빠가 있었어요. 그는 소파 위에 무능한 황제처럼 길게 늘어져 축구 채널을 보고 있었지요. 저는 그가 이 집을 쉽게 떠나지 않을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집에 있다는 게 뜻하는 건 한가지였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라면을 끓여주고서 집에 오면 곧장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도저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상냥한 목소리로요.
   그리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답니다. 몇 시간에서 하루, 하루에서 이틀, 사흘, 일주일 혹은 그보다 더 길게……

   언젠가부터는 저는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 방학을 조금 앞두었을 때부터였을 겁니다. 끔찍할 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다 보면 잘생긴 셰프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그 꿈을 꾼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즐겨보던 어린이 드라마도, 셰프가 나오는 미식 여행 프로그램도 종영해 날짜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쯤 되었을까요? 아니면 2주에서 3주 사이? 혹은 3개월에서 6개월? 어쩌면 난 이미 죽어서 유령이 된 건 아닐까?
   요강은 진즉 흘러넘친 지 오래였고, 방 안에는 바퀴벌레들이 기어다녔습니다. 캐릭터빵만 아직 두어 개가 남아있었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들은 문밖의 소리는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였습니다. 엄마와 새아빠는 며칠 밤낮을 싸웠어요. 종종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보다 자주 거친 욕설이 오갔습니다. 먼저 나간 건 새아빠입니다. 현관문을 부술 듯이 닫는 게 딱 그였죠. 그다음은 죽음 같은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떡진 머리를 바닥에 문대고 있던 저는 바닥을 타고 미약하게 울리는 진동음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건 캐리어를 끄는 소리였습니다. 엄마가 이곳에 이사 왔을 때 그 소리요. 얼마 안 지나, 다시 현관문이 여닫혔습니다.
   창문이 없어 해도 들지 않고, 전구가 나가 형광등도 켜지지 않는 그 어두운 밤에 홀로 눈 감고 있다 보면 꼭 우주 한복판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각양각색의 악몽들이 부드럽게 저를 어루만지죠. 그 꿈도 그때 꾸었던 다정한 악몽 중 하나랍니다. 제가 왜 부모님이 치즈로 변하면 안 된다고 빌었는지 이제 아시겠나요? 치즈는 문을 열어주지 못하니까요. 그 바늘 같은 팔다리로 손잡이를 돌릴 수나 있겠어요?

   사람들은 제가 그 방에서 3주 하고도 이틀을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안에서 삼십 년은 족히 보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던데요. 무수한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채널들이 그 방의 풍경을 찍어갔습니다. 방학이 끝났는데도 제가 등원하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어린이집 교사가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마침 새아빠에게 돈을 빌려준 빚쟁이가 집에 찾아와 저는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방에서 구출되어 시설로 보내졌습니다. 이후 새아빠는 발뺌했고, 엄마는 형을 받았다고 해요. 고등학생 때까지, 저는 복지시설과 국가의 보조금을 받으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생활했습니다. 전문대 조리학과에 합격했을 땐 뛸듯이 기뻤지요. 부지런히 배우고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 방에서 꾸었던 악몽들이 떠오르지 않게요.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한 호텔주방 출신 셰프가 차린 양식집에서 보조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브루스케타 치즈 만드는 법, 연어의 비린 맛을 없애는 법, 가장 완벽한 크림소스 레시피, 양파 수프 만드는 법, 그리고 미국의 어떤 요리학교는 입학하려면 통장에 현금으로 10만 달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죠. 그리고 10만 달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귀여운 월급을 받은 날, 저는 전화를 받았답니다. 막 출소한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요.

   십여 년 만에 마주한 엄마는 전신 마비가 되어 사물처럼 누워있었습니다. 뼈 포함 오십육 킬로그램짜리 몸에서 엄마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눈꺼풀과 새끼손가락이 고작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 건 직계 가족이며 경제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바로 저였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이게 바로 카르마, 라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어마어마한 병원비와 학자금 대출을 등에 지고 엄마와 함께 일곱 살을 보낸 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행히 주변 동네가 재개발되는 와중에도 그 아파트만은 후줄근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죠. 과거에 할머니의 방이었고, 또 제 방이었던 그 방을 엄마만을 위한 방으로 꾸며주었어요. (사실 등받이를 조절할 수 있는 침대 하나를 넣어준 것뿐이지만. 정면에 텔레비전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네요.) 안쪽 문고리는 여전히 고장나 있었고, 저에게는 열쇠가 있었죠. 어차피 엄마는 문 앞까지 가지도 못하는 몸이지만, 기분 아니겠어요?
   엄마를 방에 눕힌 첫날, 저는 키보드 자판을 앞에 두고 엄마에게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 한 가지를 던졌습니다. 그때, 집을 나간 후에 단 한 번이라도 방안에 있을 저를 떠올린 적은 없느냐고요. 엄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깜 빡 햇 서’

   웃음이 나더군요.

   저는 방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열쇠를 돌려 문을 잠그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답니다. 제가 밖에서 근로기준법 따위는 가뿐히 지르밟는 노동을 하며 빚을 갚고 생활비를 버는 동안, 엄마는 소변줄을 꽂은 채 그 안에 있었어요. 텔레비전 채널조차 마음대로 돌릴 수 없는 상태로요. 제가 일부러 리모컨을 새끼손가락에서 저 멀리 치워두었거든요. 하루 종일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쓴 채 스프를 젓다가도 그 사실을 떠올리면 푸쉬쉬 웃음이 나더라고요. 일상의 사소한 활력이 이렇게나 힘이 된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하지만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은은하게 집안에 흐르는 악취만은, 견디기 힘들더군요. 저는 엄마가 왜 그렇게까지 화들짝 놀라며 코를 틀어막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났죠. 등에는 욕창이 생기고 얼굴은 이미 죽은 사람처럼 푹 꺼지자, 냄새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문득 억울해지는 겁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스스로 요강도 비우고 몸도 씻었는데, 엄마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런 날에는 텔레비전과 전등까지 끄고 문을 굳게 닫아버렸죠. 언제까지고. 제 귀여운 복수였달까요.

   엄마가 그 방에 들어오고 일 년쯤 지났을 때, 저는 직원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화제의 요리 방송에 나와 크게 인기를 끌게 된 셰프가 통 크게 쏜 것이지요. 장소는 그토록 고대하던 유럽이었어요. 프랑스에서 삼일, 이탈리아에서 이틀을 묵는 일정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정말 다양한 치즈를 맛보았답니다. 황홀했어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블루치즈의 제조 마을에 갔을 때는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초겨울처럼 서늘한 동굴에 치즈들이 지독하고 향기롭게 숙성되어가고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 치즈들을 보며 어린 시절의 저와 지금의 엄마를 떠올린 게 어떤 예지 같은 것 아니었나 싶어요. 그곳의 친절한 농장주가 제 눈물이 인상적이라며 그램당 십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블루치즈를 한 조각 건넸어요. 저는 꿈에서 그리던 그 맛을 다시 맛보는 순간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치즈를 코앞에 가져갔죠. 네, 확실히 비슷하게 꼬릿한 냄새가 났습니다. 서둘러 입에 넣고 이빨로 으깬 다음 혀로 음미하며 굴려보았죠. 음, 비싼 건 역시. 음. 다르군. 음?
   이게 뭐야.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형편없는 맛이었어요. 저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로 남은 일정을 어영부영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단순한 실망감을 넘어서는 절망이, 무기력이, 공허가 저를 야금야금 파먹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평생을 쫓아온 그 맛은 누구도 다시 맛볼 수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맛이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 유명한 파랑새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은 없겠죠. 남매는 행복을 뜻하는 파랑새를 찾아 집을 떠나지만, 결국 파랑새는 먼 길을 돌아온 그들의 집 지붕 위에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저는 집 문을 여는 순간, 엄마의 방에서 풍기는 냄새가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역겹고, 짙으며, 천 가지 만 가지 고통을 머금고 있는 다채로운 향이었지요. 한 입 베어먹고 싶을 정도로요. 저는 그 향취에 홀린 듯이, 코를 틀어막지도 않고서 열쇠를 꽂아 방문을 열었습니다. 일주일째 켜져 있던 텔레비전에선 때마침 건강식에 대한 다큐가 방송되고 있었어요. 수제 요구르트 만드는 법이 흘러나왔죠. 전구가 나간 것인지 방안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엄마의 새끼손가락이 유난히 희게 빛나는 것 아니겠어요? 대리석 무늬 같은 검푸른 반점이 뻗어있는 채로 말이죠.
   저는 간신히 숨만 내쉬는 엄마의 오른손에 코를 처박았습니다. 뇌가 깨어나는 것 같더군요. 바로 그 냄새였어요. 평생을 좇았던 꿈의 냄새! 손바닥과 새끼손가락은 색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저는 그 희한한 새끼손가락을 톡, 아주 살짝 톡하고 건드렸을 뿐입니다. 그랬더니, 손가락이 툭 떨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엄마는 발작하듯 부릅뜬 큰 눈을 깜박거렸습니다. 하지만 뭐, 알 바입니까? 저는 떨어진 새끼손가락을 주워 관찰했습니다. 겉은 미라의 피부처럼 메말랐지만 안쪽은 공들여 숙성시킨 치즈처럼 부드러워 보였죠. 고름도, 뼈도, 근육도 없었습니다. 깔끔히 잘린 단면 속 말캉한 속살이 어서 와인을 가져오라고 저를 유혹했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한입을 베어물었어요. 그리고 환희를 느꼈습니다.

   네. 그것은 잘 숙성된 치즈였던 겁니다. 엄마는 그 방에서 서서히, 치즈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곧바로 엄마의 하반신을 덮은 얇은 모포를 걷어냈어요. 걸리적거리는 환자복을 가위로 자르고 그 밑을 확인했습니다. 엄마의 하반신은 이미 온통 치즈였어요. 고르곤졸라? 블뢰 드 젝스? 로크포르? 오라 치즈? 옥스퍼드 블루? 새끼손가락으로 곳곳을 찍어 맛보았지만 딱 어떤 치즈라고는 정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태어나서 딱 두 번째로 맛보는, 그야말로 신의 음식 같은 맛이었어요. 입안에 풍미의 폭죽이 터지고, 앓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부위마다 맛은 약간씩 달랐지만 전부 끔찍할 만큼 황홀했죠. 엄마는 눈에 실핏줄을 터뜨리며 하나 남은 새끼손가락을 떨어댔습니다.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즈 칼을 가져와, 발목 모양을 한 치즈를 덜어냈답니다. 그리고 방을 나와 다시 문을 닫았어요. 아직 완전히 숙성이 되지 않았으니,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블루치즈 중에는 블루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종이 있습니다. 사람의 뇌 모양을 닮아서 그렇게 불린다고 합니다. 저는 그날 저녁, 미리 덜어낸 치즈와 함께 마트에서 급히 사 온 레드 와인을 마시며 과연 가장 완벽한 블루 브레인을 맛볼 수 있을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저만의 파랑새는 바로 그 방에 있었던 겁니다. 정말이지 행복한 저녁이었어요.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난 지금, 치즈는 완벽히 숙성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완벽한 치즈와 수프를 맛보는 가장 완벽한 날을 만들기 위해 연차를 내었어요. 아침부터 수프를 끓이기 위한 장을 보고, 다이소에 들러 식기도 몇 개 장만하였습니다. 모든 조리 준비를 끝낸 뒤에 드디어 그 방에 들어가, 치즈의 상태를 확인하였죠. 치즈는 정말이지 완벽했습니다. 아래쪽은 제가 야금야금 덜어먹은 탓에 얼마 남아 있지 않았어요. 저는 상반신의 가운데를 치즈 칼로 죽 그어 벌렸습니다. 그리고 이날을 위해 아껴둔 왼쪽 가슴 밑의 치즈 한 덩이를 꺼냈답니다.
   부엌의 커다란 솥에는 연둣 빛을 띠는 양파 수프가 보글보글 끓고 있어요. 체크무늬 식탁보가 둘러진 테이블에는 붉은 빛의 냅킨과, 스템이 두터운 와인 잔 그리고 흰 접시가 놓여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제단이나 마찬가지인 그 접시 위에 소중한 치즈를 올렸답니다. 모서리를 조금 덜어 수프에 넣었어요. 양파 수프의 향이 한결 깊어졌네요. 크래커와 올리브 몇 개를 덜어놓을 땐 입안에 침이 절로 고이더군요. 저는 애써 식욕을 참고, 수프가 다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솥 바닥에 늘어붙지 않게 열심히 국자를 저었습니다. 딱 알맞게 걸죽해진 수프를 보울에 옮겨 담아 식탁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 와인을 한 모금, 수프를 홀짝. 달고, 짜고, 쓰고, 떫고, 고통스럽지만 끊을 수 없는 바로 그 맛이 내장 기관을 타고 제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나이프와 포크를 들어 치즈를 조금 잘라내었어요. 크래커 위에 치즈를 바르고 올리브를 올렸습니다. 한 번에 입안에 밀어넣자 감은 눈 안쪽으로 천사가 나팔을 부는 환상까지 보이네요. 이 멋진 치즈가 아직 잔뜩 남았다고 생각하니, 흥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이 황홀한 걸 저 혼자 맛보는 게 아까워 당신을 불렀답니다. 원한다면 제 멋진 숙성고를 구경시켜줄 생각도 있어요.
   그럼, 식사를 계속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질게요.
   어떤가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인가요, 웃기는 이야기인가요?

조예은

토요일 저녁 열한 시 이십 분에 하는 프로그램을 종종 봅니다.
치즈에 관한 악몽은 어린 시절 직접 꾼 것입니다.

2023/02/28
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