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독히 현실주의자이면서 몰래 과거에 산다. 과거에 산다는 걸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사는 걸 그만두지도 못한다. 언제나 어영부영이고 자기가 한 말을 자기가 뒤집는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끌고 가는 내 인생이 나에게 솔직하게 알려준 딱 한 가지의 진실은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나는 지독히 현실주의자이면서도 나만 아는 현실에서 산다. 상상이 아니라 한계가 만든 세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으로 세워진 집에서 나 혼자 산다. 나만의 규칙과 나만의 사회성을 가진 채로 산다. 내가 특별하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데 나 역시 그렇다는 뜻이다. 다만 나는 이 사실을 좀 뒤늦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현실을 공유하며 살고 있고 나만 거기에서 비껴났고 어긋나 있다는 감각 때문에 내내 외로워하고 궁금해했다.
  다른 사람들끼리는 어떻게 저렇게 이야기가 잘 통할까? 나는 왜 항상 절반만 말이 통하는 기분일까? 관심사가 같으면 말이 더 잘 통하는 걸까? 그런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진 않을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또래집단에 밀어넣어졌을 때부터 그런 사람들이 가장 신기했다. 두 아이의 얼굴에 모두 확신이 빛나는 아이들, 서로의 반쪽처럼 꼭 붙어다니는 아이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얘를 보면 쟤를 떠올리고 쟤를 보면 얘의 안부를 묻는 한 쌍. 서로의 옆자리에 앉아도 되나 고민하지 않고 털썩 앉으며 쟤 팔에 팔짱을 껴도 되는지 의심하지 않고 팔을 쑥 걸치며 여럿이서 함께 이야기를 할 때도 얘의 머리카락을 자기 머리카락인 양 자연스레 가져와서 날랜 손가락으로 땋고 풀고 묶고 빙빙 꼬기를 반복하는 아이들. 한 쌍의 친구. 단둘의 친구인 각각의 한 명. 그 사람의 개개인은 없고 서로의 짝꿍으로 더 색깔이 뚜렷한 아이들이 신기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얼굴이 닮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어느 겨울에는 혜수가 그랬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의 글쓰기 수업에서 뒤늦게 들어와 차가운 바깥 공기를 풍기며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는 혜수를 봤을 때 나는 아주 오래된 기억, 그땐 친구였지만 지금은 아닌 사람, 그러나 여전히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몇 다리 건너 이어져 있어 종종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나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곤 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어쩌다 가까워져 서서히 불편해지다가 어색하게 찢어진 친구였다.
나는 첫 수업을 듣는 내내 혜수의 표정을 봤다. 강사의 말에 집중하는 또랑또랑한 눈을. 검고 긴 생머리를. 혜수를 보면서 실은 혜수를 보지 않았다. 혜수가 그 친구도 아닌데 그 친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봐, 더 정확히 말하면 니가 어쩌나 보자, 똑바로 말하나 보자, 시간이 흘렀다고 뭐가 달라졌나 보자, 하는 식의 눈길을 보내고 있으면 어쩌지 하고 혼자 조마조마했다. 혜수는 그런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텐데. 나는 혜수가 나를 보지 않을 때만 혜수를 봤다.
  글쓰기 수업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혜수는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적었다. 돌아가며 감상을 말할 때에도 먼저 목소리를 틔우는 경우는 적었고, 그러나 혜수씨는? 하고 물어보면 곤란해하지 않았다.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타입이 아니라 의견이 있어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타입으로 보였다. 그런 건 자신감인가, 아니면 자신감 없음인가. 모임에서는 굳이 나이를 묻지 않았으므로 혜수의 나이를 몰랐으나 나는 그가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릴 거라고 짐작했다. 혜수가 직장생활 이야기를 할 때 얼핏 그의 연차나 직급 등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몇 년 전 지나온 자리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모두들 이 모임엔 어떻게 신청하게 되었냐고 물었고 혜수의 차례가 왔을 때 그는 사 년 정도 다닌 회사 생활에 권태감을 느껴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자기 생각에 몰두했으면 해서 덜컥 신청했다고 말했다.
  내가 이야기할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 서점을 삼 년째 운영하고 있고, 좋은 기회로 글쓰기 모임을 열게 되었다고 말했다. 강사의 말에 맞는 대답인 것도 같고 틀린 대답인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좀더 맞는 대답을 했으면 좋았을걸. 말을 뱉자마자 잘못 말한 것 같다는 생각에 후회했는데 별로 놀랄 것도 없는 것이 나는 언제나 그랬다. 생각하고 말할걸, 하고 말한 뒤에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닌 나의 습관 중 하나는 상대방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듣고 싶은 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고치려고 애쓴 습관이기도 했다. 정답이 있으면 뭐? 틀리면 뭐? 맡겨 놨어? 어쩌라고…… 하는 섀도복싱을 하며. 길거리 깡패처럼 (정답을 요구한 적도 없는 상대방에게) 툭툭 쳐대는 것은 실은 비뚤어진 나를 향해 치는 펀치였다. 솜방망이 펀치긴 하지만. 제발, 그런 태도를 싹 긁어내 버릴 수 있다면 길거리 깡패에게 삥이라도 뜯길 것이다. 기꺼이.

*

혜수와 닮은 그 친구의 이름은 진경이다. 정진경. 그 가지런한 이름을 나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실은 내내 잊어버리고 있다가 혜수를 본 순간 다시 떠올랐다.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것. 진경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적이 있다는 것이. 나는 누구보다 기쁘게 현재에 살면서 동시에 기쁘지 않은 과거에 누구보다 오래 머무른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그저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일임에도, 나는 생을 여러 번 사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영 다른 사람으로 다른 방식으로 뚜벅뚜벅 걷고 있는 것을 상상한다. 나란한 시간. 흘러가지만 흘러가지 않는 시간. 지나가지만 지나가지 않는 시간. 어릴 때의 나는 창피함과 부끄러움으로 뭉쳐진 겁쟁이였다. 놀랄 만큼 많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친구들이 지적할 때는 언제나 창피했으며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시시각각 무서워했다.
  중학생 시절 나는 교복을 줄여도 무릎 위까지는 줄이지 못할 만큼 겁이 많았고 그러면서 교복 치마 속에 속바지를 입는 건 싫어했다. 여름엔 맨다리 위에 치마를 입는 걸 좋아하면서도 속바지 안 입어? 하고 놀라는 친구들을 보고 스멀스멀 창피함이 차올라 입어야지, 하고 말만 하고 마는 애였다. 좁은 이마가 싫어 늘 앞머리를 내리고 다니며 앞머리가 날려 이마가 드러나는 걸 창피해했고 그 앞머리에 대해 무리 지어 다니던 친구 하나가 너 앞머리 니가 잘라? 그냥 미용실 가, 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때도 부끄러움이 솟구쳤지만 겉으로는 안 부끄러운 척했다. 안 부끄러운 척했지만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그렇게 말했던 친구가 진경이다. 한때 나에게 가장 자주 부끄러움을 안겼던 사람.
  지금 그런 부끄러움은 어디론가 다 사라졌나? 부끄러움은 사라지지 않고 이동한다. 지금의 나는 다른 것들이 부끄럽다. 아직도 그런 게 부끄러울까봐 부끄럽고 나 자신이 당당하지 못할까봐 부끄럽다. 어릴 때의 나는 두렵고 부끄러워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고 지금의 나는 말하지 못한 것들을 부끄러워한다. 여전히 두려워하는 것 같은 나를 발견하면 부끄러워진다. 혜수를 처음 본 날 밤 나는 수업이 끝나고 하나둘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며, 강사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하며, 불을 끄고 서점 문을 걸어 잠그며 오랜만에 좀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움의 출처를 정연하게 알 수 없고 단지 뿌옇고 흐릿한 가운데 부끄러움의 씨앗이 싹을 트려고 꿈틀거리는 느낌이라 그 간지러운 느낌을 참으려 처음 본 사람들에게 실없는 소리를 건네고 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혜수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곁눈질했다.
  몇 차례 서점에서 이런 모임을 진행해본바, 모임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몇 부류로 나뉜다. 끝나자마자 곧장 짐을 챙겨 빠르게 사라지는 사람, 강사에게 다가가 모임에 대해서나 개인적인 궁금증을 질문하는 사람, 자신이 챙겨온 강사의 책에 서명을 받는 사람, 같이 온 사람이 서명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서점을 구경하는 사람, 모두가 나간 뒤 강사에게 한마디라도 걸어보려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 혜수는 첫번째 부류였다. 인사를 하고 혜수는 곧장 문을 열고 나갔다.
  혜수가 문을 열었을 때 고요하던 서점에 바깥에서 부는 거센 바람이 들이쳤고 순식간에 찬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투명한 창 너머로 혜수가 총총 걸어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혜수는 커다란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너무 두꺼운 목도리 탓에 아래를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혜수가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마음 때문에만 조마조마했던 것은 아니고.

*

같은 초등학교에서 같은 중학교로 올라왔을 때, 진경은 내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그 팔짱이 언제나 좀 덥고 무거웠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게 진경은 언제나 좀 어린애 같았는데, 중학생의 시간이 흐르면서는 점차 진경이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이 늘어 갔다. 진경은 나의 온갖 매무새를 체크했다. 내가 관심 없는 나의 부분에 진경은 관심이 있었다. 머리와 교복, 화장을 하지 않는 맨얼굴과 제모를 하지 않는 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내고도 진경은 한 교시 한 교시가 끝날 때마다 돌변하여 불쑥 팔짱을 끼고 물었다. 너 왜 나 안 챙겨? 익숙하고 애교 있는 말투로. 그때 나는 그 두 가지가 모두 당혹스러웠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채로 뭔가를 왈칵 맞아버린 느낌이었다.
  한쪽으로는 먼저 커버린 언니처럼 내가 알던 때와 영 다르게 입고 다르게 굴며 나에게 아직 변하지 않았냐고 잔소리를 퍼붓고, 다른 한쪽으로는 여전히 내가 알던 때에 머무는 듯 아이처럼 순수하게 왜 나 안 챙겨? 하고 묻는 진경이 낯설었다. 언제나 무리에 섞여 보아오던 진경의 얼굴이, 존재가 낯설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까. 한번 의식하자 진경이 스스럼없이 내 팔에 자기 팔을 거는 것도 어색해졌다. 작은 동네에서 내게 가장 자주 팔짱을 끼는 친구가 진경이라 그냥 그렇게 둔 것이지 내가 원한 적은 없었다는 걸 아마도 그때 처음 안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고 온종일 딱 붙어다니는 친구를 내가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 그러는 애들이 부럽긴 했지만 그저 부러웠던 거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그 혼란은 그때보다 조금 더 지나서야 보다 명확해졌고 그때는 그저 불에 덴 듯이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열네 살, 열다섯 살의 나는 아마 양철 나무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기름칠이 덜 되어 삐걱거리는. 자기가 따뜻함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모르는 유연하지 않은 몸뚱아리와 헝겊 심장의 소유자. 그런 나를 좀 이상하게 보는 동갑내기들의 시선도……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들이 뭘 해도 불편하게 만들었겠지. 그러니 내가 뭘 해도 탐탁지 않아졌을 테고. 어른의 머리로는 이토록 쉬운 것이 십대의 머리로는 너무 어려워서, 나는 진경의 오락가락함을 쫓아가지 못했다. 어느 날은 친밀하고, 어느 날은 퉁명스러운 그애를.
  그때 나는 좀 로봇 같았던 것 같다. 또래집단의 약속이나 그 나이대 애들의 감정 변화를 겨우겨우 배우는, 배워도 잘 흉내내지 못하고 주억거릴 줄이나 아는 열등생. 이해를 못하고 외우는 편이었고 외우고 나서도 응용은 못하는 그런 학생 말이다. 학교가 끝나고 진경에게서 해방되면 나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알아서 나머지 수업을 했다. 맨 먼저 교복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감사하며. 말려 올라간 치마 안에 속바지가 없거나 다리털을 밀지 않았더라도 누군가가 질책하지 않음에 안도하며, 내 앞머리나 숨소리가 누군가에게 거슬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그날 하루치의 위급 상황들을 떠올려 보기 바빴다. 진경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으나 나에게는 매번 퀘스트이자 테스트였던 진경의 말과 표정을 몇 번이고 떠올리며 다음번엔 다음 단계로 수월히 넘어가기를, 테스트를 통과하기를 바랐다.
  나 왜 안 챙겨. 나 챙겨줘. 챙겨줘가 무슨 뜻이지? 뭘 챙기라는 거지? 자기를. 자기를 챙기라고 했다. 챙기는 게 뭐지? 쉬는 시간이 되면 그애 자리로 가는 것. 옆자리에 앉는 것.(같은 반의 다른 대표 단짝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한 것이다.) 좋아 입력…… 쉬는 시간이 되면 진경의 자리로 간다. 자 다음…… 팔짱. 팔짱은 언제 끼면 되는가. 진경의 경우? 진경의 기분이 좋을 때. 그럼 나도 내 기분이 좋을 때 진경에게 팔짱을 껴도 되는가? 나는 기분이 좋으면 누군가에게 팔짱을 끼고 싶은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손을 잡을까? 나는 기분이 좋을 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가? 아니…… 그것도 아닌데…… 손잡기와 팔짱은 기각. 기각한다. 팔짱을 안 끼는 게 문제가 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그것이 그때 나의 오답노트 작성이었고 하루 일과였고 관계 연습이었다.

*

두번째로 진행된 글쓰기 수업에서 강사는 글쓰기 주제를 정해주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입장에 대해 쓸 겁니다.
  그렇게 얘기하며 강사가 읽어오길 권한 책은 비비언 고닉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였다. 그 책을 추천하며 강사는 앞으로 우리가 쓸 것, 쓰려고 고민해야 할 것에 대해 길게 덧붙였다.
  ……저는 관계가 연금술이나 마법사의 냄비 같아요. 내가 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실제로 한 것과 타인이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너무 많은 경우의 수들이 있다는 점에서요. 내가 넣은 것, 넣어서 나온 것, 그것이 지닌 가치나 파괴력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요. 이 연금술의 순간을 포착하는 건 쉽고도 어려운데요, 늘 순식간에 지나가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복기하게 되기 마련이죠. 그중엔 한번쯤 내 의도와 달라진 결과 같은 걸 생각해본 뒤 잊을 수 있는 일과, 수없이 복기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뒤섞여 있을 거예요. 그런 걸 상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상해볼 수도 있겠죠. 그런 순간이란 어떤 게 있을까요.
  말하는 입장과 말해지는 쪽의 입장이 가장 뚜렷하고도 애매하고 팽팽하고도 알 수 없는…… 뒷담화 같은 걸로 예를 들어볼까요? 뒷담화의 정의는 뭘까요?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하는 그 사람 이야기’로 정의한다면 뒷담화 안 하는 사람은 드물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 나쁠 것도 없다만…… 누군가가 뒷담화를 한다는 말에는 누군가를 욕했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걔 누구랑 사귀면서 다른 애랑 잤대.” 이런 이야기는 “걔가 니 뒷담화하더라.” 할 때 욕했다는 의미에 들어맞는 것 같죠. 누가 누구랑 사귀고 잤는지, 그런 건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 가십거리에 가까우니까. 욕하기 위한 욕하기, 모인 사람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이야기. 이것은 ‘그런’ 뒷담화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떠세요? “누구 있잖아. 친구일 때는 좋았는데 같이 일할 일이 생기니까 좀 힘들어. 걔 몰랐는데 그런 면이 있더라.” 이건 ‘그런’ 뒷담화인가요 아닌가요? 이 정보는 아마도 말하는 이의 주관적 사실에 가깝겠죠. 영 터무니없는 가십은 아닌 말하는 이가 겪은 경험이니까요. 이렇게 이야기를 할 경우에는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게 되죠. 이를테면 그 ‘누구’가 일로 만나면 누구에게나 대체로 좀 힘든 사람인 경우. 또는 ‘누구’의 일하는 스타일이 ‘나’에게만 유독 맞지 않는 경우. 아니면 그 ‘누구’가 원래는 안 그러는데 하필 ‘나’와 일할 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어서 ‘나’를 배려하지 못했을 경우.
  다른 경우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덧붙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땐 말하는 이의 의도도 제법 중요해 보여요. 애초에 ‘누구’ 욕을 하고 싶었던 경우와 그럴 의도가 아니었던 경우. 일단 ‘누구’를 욕하고 싶던 게 아니라 정말로 그와 일하며 힘들었다고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 전부라면, 그 얘기를 하고 나서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자기가 했던 말이 다시 돌아 돌아 “너 걔 욕했다며?”로 들려온다면 퍽 억울할 것 같죠. 이런 경우에는 또, 말하는 이의 의도만큼 듣는 이의 판단도 역시 중요해지죠.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말을 전하니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잖아요.
  위의 대화 이후 다른 모임에 가서 “‘나’ 잘 지낸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듣는 이가 “걔 요즘 일하면서 힘들었대.”라고 전하는 것과 “걔가 ‘누구’ 욕하던데?”라고 전하는 것은 무척 다르죠. 또 생각해봅시다. 말하는 이의 의도와 진실은 말하는 이만 알긴 하지만, 듣는 이도 조금은 감지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경우도 있겠죠. 애초에 욕을 하고 싶었는데 다짜고짜 욕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니까,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욕하는 건 아닌데……” 혹은 “내가 진짜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같은 말로 욕 알맹이를 감싸는 경우. 저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경우에 대해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제 그만할게요.
  정리하면 우리는 서로의 입장이 달랐던, 달랐을 거라고 생각되는 어떤 순간에 대해 쓰는 겁니다. 예시처럼 뭔가 미묘한 순간도 좋고, 누군가와 확실히 대립했던 순간도 좋아요.
  강사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비비언 고닉의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글을 제출한 뒤 함께 이야기할 때는 글을 쓴 쪽의 입장이 아닌 글에 쓰인 사람의 입장을 상상하는 감상을 말해볼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모인 구성원에게 내 입장을 이해받고 싶다면, 글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입장을 쓰셔야 합니다. 아셨죠? 한쪽 입장에서 쓰인 글을 읽고, 반대쪽 입장을 상상해볼 것.
  나는 강사의 말을 천천히 따라가보았다. 전부 이해되지는 않았으나 입장의 가능성을 상상해보라는 뜻 같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혜수를 바라봤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혜수는 무엇에 대해 쓰려나. 나는 무엇에 대해 쓸 수 있으려나. 나는 자꾸 혜수를 살폈다. 그건 애써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혜수를 본 지 몇 번 만에 세우게 된 안테나 같은 것이었다. 그 안테나로 정확히는 혜수와 진경의 비슷한 점을, 혜수와 나와의 비슷한 점을 찾았다. 그러면 진경과 나의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의 진경과 나의 달랐던 점을 덮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게 말이 안 되는 유치한 짓이란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래서 찾은 비슷한 점이 뭐가 그렇게 많고, 뭐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이를테면 혜수와 나는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울 목도리를 가지고 있었다. 색깔이 미묘하게 다르긴 했지만 무채색으로 톤도 비슷했다. 그 아래 입은 코트도 목깃이 넓고 어깨가 둥글게 떨어지며 길이가 발목 위까지 낙낙하게 내려오는 비슷한 모양의 코트였다. 어쩌면 자주 신는 로퍼의 모양도 비슷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게 뭐. 서울을 돌아다니면 열에 일곱은 그런 차림이다. 나는 항상 그런 것에서 안도감을 느꼈지만, 그러니까 그게 다 뭐란 말인가. 그건 그저 내가 살아오면서 열심히 다른 사람들을 힐금거려온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비슷한 코트와 비슷한 목도리, 비슷한 구두를 신은 사람들을 보면 나는 유행하는 브랜드에 영 관심이 없어서 친구들의 미묘한 눈빛을 견뎌야 했던 열다섯 살 즈음이 떠오르곤 한다.

곁눈질도 제대로 못하던 때. 곁눈질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저걸 왜 입어야 해? 하고 의아해하던 때. 그렇다고 당당하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변명하던 때다. 모두가 입는 걸 입어야 하고 없으면 비슷한 것이라도 주워 입어야 했던 때였다. 그때 나는 정말로 그 애들이 입는 브랜드의 옷과 신발이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입는 브랜드가 아닌 옷과 신발에 자신이 있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양쪽으로 찌그러진 모양에 가까웠다. 모르는 걸 모른 채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그래서 그들과 다른 나만의 뭔가가 있었냐고 하면 손에 잡히지 않아 가슴이 서늘했던 때. 나는 또래집단의 분위기와 유행 같은 걸 의심 없이 바로바로 알아채고 납득(의 과정도 필요 없어 보이는)하고 따라가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진심으로 그걸 예쁘다고 믿는 아이들이.
  사복을 입을 때나 교복을 입을 때나 가리지 않고 나는 속한 무리에게 자주 퉁박을 먹었다. 그들이 합의한 패션 규칙은 아주아주 다양하고 아주아주 디테일했다. 학교가 정한 복식 규정이 아닌 우리가 정한 규정. 그 규정을 약속할 때 아마 나는 결석했던 게 틀림없다. 먼저 교복 버전. 너 실핀 없어?(교복 조끼 앞 작은 주머니에 실핀을 여러 개 꽂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슬리퍼 왜 그거 신어?(삼선 슬리퍼도) 치마 왜 이렇게 커?(말했듯 무릎 위로 치마를 자르기가 겁났다) 와이셔츠 단추 좀 풀어.(나는 다 채우는 게 좋은데) 속바지는 왜 안 입어?(그놈의 속바지) 그리고 사복 버전. 엄마 옷 입고 왔어?(엄마 옷이었다) 옷 좀 사.(……) 넌 교복이 잘 어울린다.(거짓말 교복 치마 줄이래놓곤……) 너 신발 어디 거야?(몰라) 나이키나 아디다스 없어?(없어……) 선생님의 단속보다 친구들의 복장 단속이 엄했다. 자체 선도부는 한둘도 아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흐흐 웃고 말았다. 열다섯 살이면 적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또래 친구들은 어른을 흉내내고 유행에 민감할 때 나는 좀 뒤진 편이라 여전히 어릴 때 봤던 동화를 되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내가 이 세계의 숨겨진 주인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이 쓰는 이야기 속 주인공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하늘을 올려다본 건 그래서였다. 저 위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내가 겪는 이 시련을. 시련이라고 하기에는 좀 짜친…… 그러나 성실히 받는 구박들을. 아마 디즈니 신데렐라에 심취해서 그랬을 것이다. 신데렐라가 다른 공주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아마 구박을 받았다는 데 있지 않을까. 마녀의 저주도 감금도 변신도 아닌 그저 언니들의 시시콜콜한 구박. 옷이 그게 뭐니? 머리는 다 헝클어지고. 온통 잿더미로구나, 더러워. 그저 그런 말들. 그런 말들에 사람 좋게 웃으며 할 일을 하는 신데렐라. 지금 보면 참 속없는 친구군 하고 생각했을 캐릭터인데 열다섯 살에는 내가 그 속없는 캐릭터였다. 속이 없진 않았는데. 성질이 있긴 했는데 말이다. 특별한 괴롭힘은 아니고 구박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 강도와 빈도를 달리 더 정확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시 구박이겠지. 나는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그들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거참 신기하지.

*

겨울은 몹시도 추웠고 손님도 없는 책방에 머물며 내가 가장 많이 한 짓은 책방으로 오는 길에 언 얼음 깨기. 며칠에 걸쳐 눈이 많이 왔다. 포장도로에 쌓인 눈을 쓸었다고 쓸었는데 가장자리에 모인 눈들이 얼어 빙판이 되었고 그것들이 녹지 않았을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그 위로 스륵스륵 미끄러져보았다. 무료하게 손님을 기다리며 책방에 혼자 머무는 시간 중 가장 짧고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온도가 영상으로 올라갈 때 즈음 빙판은 가장자리 혹은 공기가 들어간 부분부터 밟으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때부터는 얼음을 밟아 깨는 일을 즐겨 했다. 그날도 무아지경으로 바작바작 얼음을 밟아 깨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이영씨.
  혜수였다. 혜수는 수업이 없는 날도 종종 책방에 들렀다. 책을 사가는 날도 있었고 나와 이야기만 조금 나누다 가는 날도 있었다. 혜수가 나타나는 날이 일정하지 않아서 나는 매일 혜수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커다란 목도리를 둘러 코까지 가린 채였다. 눈이 참 예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머쓱해서 웃었더니 혜수도 따라 웃었다.
  첫번째 수업에서 혜수를 발견한 순간부터 나는 혜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신경 쓰였다. 관찰하는 눈, 평가하는 눈, 눈치보게 하는 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내가 내렸던 판단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인정하고 철회해야 했다. 관찰하고 판단한 건 나였지. 첫인상이란 얼마나 주관적이고 부질없는지. 그 주관적이고 부질없는 기준으로 내가 서점에 방문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판단해왔는지. 갈수록 책을 사는 사람은 줄었지만 여전히 독서 모임이나 쓰기 수업에 오려는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서점에서 끊임없이 모임을 운영하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말투와 손짓을 구경했다.
  그러다보면, 그들에게서 종종 비슷한 열망 같은 게 느껴졌다. 그건 자기가 읽은 것을 통해 자기를 소개하고,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 같은 것이었다. 모임이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이 끝나고도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삼삼오오 남아 책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책 이야기를 하거나, 책 이야기에 섞여 나온 자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모임에서 알게 되어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구나. 그런 걸 매번 하나의 모임이 갖는 시간을 다 채워야만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걸 읽고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무척 강해 보였다. 혜수도 다르지 않았다.
  뭐 하세요?
  얼음 밟아요.
  내 말에 혜수는 나를 따라 선 자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얼음을 자박자박 밟았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왠지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얼음을 밟다 말고 서서 혜수가 볼 때 나도 그렇게 보였나? 조금 생각했다. 하지만 뭐 그렇게 보이면 어떤가 싶어졌다. 서글픔을 들키는 사이라니 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얼음을 밟던 혜수는 나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을 내려면 어떤 마음과 얼마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지 물었다.
  왜요?
  내 대답이 방어적이었는지 혜수는 손사래를 치며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저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것을 갖게 되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궁금했다고.
  책방 하시게요?
  로망 같은 건 있잖아요.
  나는 이번에도 웃지 않았다.
  하지 마세요.
  생각할 새도 없이 툭 뱉어놓고 따라오는 침묵에 속으로 떨었다. 너무했나. 너무했지. 저 사람 왜 저러나 싶었겠지. 그냥 물어본 건데 왜 발작이야. 그렇게 생각해도 할말이 없었다. 나는 또 집에 돌아가서 내내 후회하겠지. 후회해도 시간을 돌릴 순 없음에 베개나 때리고. 한 번 더 이렇게 생겨 먹은 나를 탓하고. 그러나 지금은 이게 최선인걸. 더 다정하게 대답할 수도 없었다. 다정하게 대답해보지 않아서. 나는 이제 혜수를 참고서삼아 홀로 있는 시간에 혜수의 말과 눈빛을 떠올리며 ‘다음에는 꼭 다정하게 말하는 법’을 연습할지도 몰랐다. 나는 언제까지 이럴까. 혜수를 앞에 두고 삐걱거릴 때마다, 진경과 닮은 혜수가 진경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괜히 긴장되었다. 긴장한 티를 안 내려고 하다가 더 삐걱거리게 되고. 나는 정말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그래서 장사가 잘 안 되나? 고민과 걱정이 불어나서 눈치를 보며 얼음만 밟고 있는데 혜수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안 해요.
  ……
  저도 이런저런 카페나 서점 아르바이트 많이 해봤어요. 좋은 공간은 손님으로 올 때 좋은 거 알아요.
  저기, 제가 너무 정색했죠, 이번 달도 적자라 그랬나봐요.
  제가 많이 올게요. 저 여기 좋아요. 사장님도 좋고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혜수를 와락 안고 싶었다. 발밑의 얼음도, 내 마음의 뾰족한 것도 녹는 느낌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사람을 녹이니…… 그런 말을, 그런 태도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거냐고 혜수에게 묻고 싶었다. 그것 말고도. 혜수에게는 언제나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묻고 싶은 게 많기는 했는데 그게 전부 다 그걸 알아서 어디다 쓸 거냐고 하면 할말이 없어지는 것들이었다.
  혜수씨, 혜수씨는 친구가 많아요? 먼저 말 걸 때 어렵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상해지는 순간들 없었나요? 그게 무서워서 생각보다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의외로 오래 친구가 되거나 하는 경험이요. 저는 항상 그렇더라고요. 좋아하면 망치더라고요. 자연스러운 건 어떤 건지 알았던 적이 없어요. 혜수씨는 알아요? 혜수에게 궁금한 것들을 쏟아내고 있자면 그게 질문인지 푸념인지 고백인지 알 수 없어 막막해지곤 했다.
  혜수를 좋아하는 마음이 문제없이 깨끗한 이 관계를 망칠까봐 나는 혜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혜수가 궁금하고 알고 싶으면서도.

*

어린아이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함에는 언제나 더러움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고, 그저 내 어린 시절을 위한 의견이고 주장이다. 혼자 있을 때의 불결함. 내가 그것을 얼마나 즐겼는지. 귀 뒤, 손가락과 발가락, 그 외 몸의 이곳저곳 냄새를 맡는 일. 넘어져서 생긴 무릎의 딱지를 잡아 떼는 일. 피부 아래 동그랗게 말려 있는 털을 뽑는 일. 손톱 밑 때를 긁어내는 일. 귓속을 아플 때까지 뒤져 나온 귀지를 들여다보는 일. 감지 않은 머리를 뒤져 비듬을 찾아내고 또 찾아내는 일.
  예닐곱 살 무렵 나는 엄마가 옷을 개어 넣어둔 서랍에서 종종 발견되던, ‘옷 벌레’(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가 벗어둔 허물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래 들여다봤었다. 왜 그런 게 신기했을까. 예쁜 것에는 가깝지 않은 것들이. 예쁘고자 하는 욕망은 없고 집요해지고자 하는 욕망만 있었나. 그 욕망이 더 강했나, 그때는. 그래서 더러운가. 음침한가. 그 기운이 티가 나서 진경과 애들이 나에게 그렇게 한소리씩 해댄 건가. 내가 확실히 위생관념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더러운 거야 하고 알려주는 이가 있기 전에 이미 자기만의 재미를 찾아내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집요했던 만큼 나에게 너 틀렸어, 하고 말하는 일에 집요했던 진경과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내내 그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친구 관계에서 탈락한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게 괴로웠고, 스스로 탈주할 용기는 없었다. 진경의 곁에 있으면 진경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관자놀이가 팽팽해지는 느낌이었고,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했다. 이상하지. 진경은 언제나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도 너 오늘 좀 못생겼어, 피부가 왜 이래? 너 여기 뭐 났어, 좀 가려라, 같은 말을 했는데, 그러니까 내 앞에서 내 욕 같은 걸 안 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내가 화장실에 가거나 진경과 친구들이 있는 자리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내가 없는 곳에서 진경이 내 욕을 하지는 않을지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나는 진경과 헤어지는 날, 중학교 졸업식 날이 되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졸업을 하면 진경과 헤어질 수 있었다. 가까운 듯 먼 사이에서 정말로 멀어질 수 있었다. 졸업식 날, 눈 쌓인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아이들을 바라만 보았다. 꽃다발과 카메라를 들고 학교에 온 엄마는 진경의 무리와 멀찍이 떨어진 나를 툭 건드리며 왜 진경이랑 같이 사진 안 찍어? 라고 물었다. 그날 한 장쯤이야, 찍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아무 말 없이 다시 진경의 무리로 끼어들면 진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사진을 찍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때의 내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다시 볼 자신이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그때까지의 나는 중학교 운동장에 버려두고 다른 사람의 옷을 입으려던 차였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제발 좀 잘 따라가야지. 이상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친구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져보고 머리도 옷도 신경 써봐야지. 그런 결심을 하고 있었다. 진경 같은 친구는 만나지 말아야지, 라거나 진경과 반대인 친구를 만나야지, 같은 결심 말고.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대로 굴어도 좋아해줄 친구를 만나야지, 같은 결심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런 자신감은 나에게 없었다. 진경과 헤어지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나는 서서히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지는 않은 사람이 되어갔다. 그건 그냥 어른이 되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릴 때 하던 짓을 하지 않게 되는. 자기중심적 상상을 덜 하고 이유 모를 원초적 쾌락보다는 쾌락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가늠해보는. 내 기분보다는 타인의 편안함을 생각하는.

*

저희 숙제 같이 할래요?
  남은 수업을 남겨두고 그렇게 물어온 것은 혜수였다. 그 정도 제안에도 나는 경계하기 바빴다. 왜 이렇게 나한테 다가오지. 왜 이렇게 잘해주지.
  네? 저는 안 써도 되는데요.
  그런 게 어딨어요.
  웃는 혜수를 보고 나는 나에게 질문했다. 타인과의 관계가 생겨날 때, 상대를 자신에게 적응시키는 사람과, 상대에게 적응하려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대체로 어떤 편인가? 나는 산 날의 대부분 후자였다. 글쓰기 숙제를 내주던 강사처럼 생각해보자면 내 기억 속에는 없지만 분명 나도 모르게 전자였던 경우가 있겠지만. 혜수는 어떨까. 혜수의 입장이 궁금했다. 그래서 혜수의 제안을 승낙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혜수가 나와 뭔가를 함께하고 싶어한다는, 혜수의 필요 쪽에 나를 적응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좋았다.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든 혜수와 둘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게.
  나는 혜수 덕분에 오랜만에 긴 글을, 시작과 끝이 있는 글을 썼다. 서로 완성한 글을 들고 서점 근처 카페에 마주앉은 혜수는 나에게 물었다.
  어떤 입장 썼어요?
  옛날 일이요. 나는 괴로웠는데, 그애도 괴롭지 않았을까, 하는.
  내가 기억을 더듬어 써낸 것은 진경과 완전히 끝난 날이었다. 잔잔한 물 아래서 헤엄치던 것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같던 순간. 끝이구나, 되돌릴 수 없구나, 하고 직감했던 날이 타이핑을 하면서 다시, 생생히 떠올랐다. 강당에서였다.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무렵의 언젠가 우리는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강당에서 서울에서 왔다는 어떤 작가의 특강을 들었고, 진경을 중심으로 좌우상하에 진경이 좋아하는 친구들이 앉았다. 나는 진경이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때까지 함께 어울리고 있었으므로 진경의 뒤에 앉아 있었다. 진경은 나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앞자리 친구의 머리를 땋으며 장난쳤고, 좌우에 앉은 친구들과 발장난을 했다. 문자를 주고받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빼꼼히 쳐다보면서, 너무 모르는 척 따로 떨어진 척은 하기 싫어서 아는 척 구경하는 척 가끔 흐흐 웃었다. 자신 없는 웃음이었다. 진경은 묘하게 내가 웃을 때만 슬쩍 뒤쪽을 보았다. 몸을 완전히 돌리지는 않고 고개만 슬쩍 돌려 무슨 소리가 났나? 하는 것처럼. 내가 몇 번이고 거듭해서 웃었을 때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보인 진경의 표정은 마치 독서실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낸 사람에게 지을 법한, 경고하는 듯한 무표정이었다.
  나는 그 시간이 어렵고 길었다. 오늘 진경이 기분이 많이 안 좋나? 그렇게 주눅들어 있었다. 다른 때보다 특히 더. 특강이 끝나고 진경은 으아아, 하며 기지개를 켰고 그런 진경을 보며 찌뿌둥하다 그치? 하고 말을 걸었으나 진경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옆자리 친구의 무릎 뒤를 무릎으로 쿡 찌르고 뛰어갔다. 그건 진경과 친구들이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자주 하는 장난이었다. 그들이 그런 장난을 하고 야 죽을래? 진짜 죽인다 이번엔, 하며 쫓고 도망치며 달릴 때마다 나는 그들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그들을 따라갔다. 혼자 남는 게 두려웠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따라 뛰었는지. 나를 끼워주지도 않는 애들을. 무리의 다른 친구들도 진경이 없을 때, 나와 둘이거나 셋일 때는 잘해주다가 진경이 장난을 걸어오면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를 내버려둔 채 전력으로 쫓고 쫓겼다. 나는 그때마다 진경이 했던 말을 다시 학습했다. 나 좀 챙겨줘.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내 팔에 팔짱을 끼고 나와 같은 속도로 걸으며 쟤네 좀 봐 존나 유치하지 않냐? 하고 같이 웃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결국 진경을 잡는 데 성공한 친구는 자못 진지하게 야 이번에 진짜 아팠다고, 나 진지하다고, 여름인데 멍 들면 어쩔래? 하고 따졌다. 진경은 헥헥거리면서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아 존나 끈질겨! 하고 소리쳤다.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그 친구를 향해 웃고 있었다. 둘은 내내 투닥거리며 키득거렸고, 장난을 받아주던 친구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하자 진경이 말했다.
  쏘리!
  그때 이미 나는 진경과 대화다운 대화는 할 수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진경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무리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정말 내쳐졌구나, 나동그라졌구나, 하고 인정하기는 싫고 해서 진경의 말에 댓글을 다는 것처럼 한마디 정도 겨우 내뱉었다. 그것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주눅이 들어서였지만, 나름대로의 알리바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진경이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넘어가면, 내 목소리가 작아서 그렇지 하고 생각하기 위해서였는지도. 그때도 나는 비굴한 웃음을 띠며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사과가 너무 짧다.
  그때 내내 무의미한 댓글 같은 내 말을 무시하던 진경이 홱 돌아섰다. 언제나 나를 보던 무표정이 아닌 짜증이 가득 배어난 표정이었다.
  짧긴 뭐가 짧아. 미안한 걸 미안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 그래? 아까부터 왜 자꾸 뒤에서 똑바로 들리지도 않게 중얼대는데? 존나 짜증나네 진짜.
  진경이 거의 소리를 질러서, 강당 입구를 빠져나가던 학생들이 기웃기웃 우리를 쳐다봤다. 장난을 치던 친구들도 멈춘 채 나와 진경을 보고만 있었다. 넌더리가 난 표정으로 나에게 쏘아붙이고 진경은 빠른 걸음으로 강당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빠른 속도로 나를 내버려두고 가는 진경을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가지 못한 것도 맞을 것이다. 그때는 네가 싫어, 하는 마음을 표정과 말투에 듬뿍 담는, 티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진경이 무섭고, 누군가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슬프고, 외롭고, 나에게 왜 이러나 싶었는데. 시간이 흘러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살다가 간혹 진경의 소식을 듣고 진경을 떠올리게 될 때마다,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 어릴 때의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확연히 어른스러워진 분위기의 진경을 스칠 때마다, 이상하게 입장을 바꿔보게 되었다.
  걔도 얼마나 싫었을까. 어쩌다 싫어진, 거슬리는 구석이 쌓이고 쌓여 결국 싫어하게 된 애가 있는데 계속 같이 놀아야 하고. 대놓고 야 이제 우리 같이 놀지 말자 할 수도 없고. 가까스로 무시하고 있었는데 자꾸 잡치는 소리 하면 얼마나 속이 터질까. 내가 저를 싫어하는 걸 알아서 눈치를 보는데 눈치를 보는 그 모습마저 싫고. 그런데 걔는 제대로 눈치 보지도 못하면서 맨날 눈치만 보고 그러니까 재미없고 비굴한 소리만 하고. 그러니까 더 싫어지고.
  싫어하는 마음은 쓰나미 같다. 잔잔한 것 같다가 순식간에 높아진 수위로 거세게 모든 것을 덮친다. 일단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하면 처음 싫어하게 된 이유로부터 그 사람의 전체로 번져간다. 입는 거 씹는 거 걷는 거 웃는 거 말하는 거 하나하나 거슬린다는 것을 안다. 나도 싫어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으므로.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만 많았으므로. 언제나 어떤 이유로 누군가가 싫고 결국에는 그 사람이 싫은 이유를 천만 가지 댈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진경, 너도 그럴까. 너도 그랬을까. 우리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네가 그 때문에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은 꽤 비슷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걔가 특히 나쁜 애였나, 악질이었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보통 사람. 싫어하는 애가 있는 열다섯 살. 무리에서 조금 예쁘고 그래서 자기중심적이고 그래서 당당하고 그래서 친구들이 알아서 따랐던 열다섯 살. 그게 나랑은 좀 다르네. 나는 진경을 싫어하지 않았고 진경보다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으나 더 강한 중심에는 빨려들어가는 편이었고 그래서 당당하지 못했고 그래서 친구들을 따라갔다. 그런 입장 차이가 있었네,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를 쓰고 혜수에게 보여주자 혜수는 입을 삐죽 내밀고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해, 하고 말했다. 혜수가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지어주어 좋았다.
  내가 쓴 글을 다 읽고 혜수는 말했다.
  뭘 이렇게까지 바꿔요? 너무 바꾼 거 아니에요 입장?
  글인데 뭐 어때요.
  그래도.
  난 하니까 좋은데. 쓰니까 되네요.
  그래요? 그래도. 난 이영씨가 너무……
  상상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처음으로 혜수를 혜수로 바라보았다. 진경을 닮은 사람이 아닌 혜수로. 나 대신 화내주는 사람. 대신 답답해하고 미워해주는 사람. 참 좋구나. 침묵이 길어질까봐 나는 바삐 물었다.
  혜수씨는 뭐 썼는데요?
  저요? 저 보이스피싱 당했던 얘기요.
  당했어요?
  당할 뻔했어요. 돈 인출하고 거의 건네줄 뻔하다가 제정신이 돌아와서 경찰서로 뛰어들어갔어요.
  그건…… 누구 입장을 쓴 거예요? 피싱범?
  아뇨, 그때 온 경찰…… 저를 엄청 한심하게 쳐다봤거든요. 그랬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건 제 입장이고 경찰은 그냥 무심하게 쳐다본 걸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전 그 와중에 그게 엄청 수치스러웠어요. 경찰 입장은 모르겠고 막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있잖아요, 그런 일이 하루에 수십 건씩 접수된대요. 그래서 경찰은 담담했겠구나 생각해봤어요, 이 글 쓰면서 처음으로. 저는 그때 며칠 내내 심장이 벌렁벌렁했는데.
  나는 혜수의 말에, 그날이 떠오른 듯 생생하게 낙심한 혜수의 표정에, 그만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미안해요. 웃으면 안 되는데.
  이제 괜찮아요. 몇 년 전 얘기라.
  그래도 잃은 게 없다니 다행이에요, 정말.
  잃은 거 있어요. 현대캐피탈 대출 수수료 6,020원. 보이스피싱이었다고 바로 다시 입금했는데. 사채는 진짜 쓰면 안 돼요.
  그 말을 하는 혜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혜수씨 똘똘해 보였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혜수를 놀렸고 너무하다는 표정으로 혜수는 내 팔을 살짝 때렸다. 그 순간 우리는 친구 같았다. 그런 전형적인 수법의 보이스피싱에 속는 애는 너밖에 없다고 몇 년 동안 친구들에게 놀림당했다며, 여전히 창피한 표정으로 출력한 종이를,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엎어놓은 채 나에게 밀었다. 어차피 팔랑 뒤집으면 그만인 건데도. 금세 읽게 될 건데도 굳이. 저런 사람은 참 귀엽네, 그런 생각을 했다. 종이를 뒤집어 글을 읽으면서도 큭큭 웃는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혜수가 문득 말했다.
  이영씨, 우리……
  네.
  말 놓을래요?
  그 순간 나는 어떤 자신감이 생겨서, 다 읽은 혜수의 글을 다시 건네주며 그럴까?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민 손을 덥석 잡는 순간의 쾌감은 잘 마른 얼음을 밟아 깨는 순간의 쾌감과도 닮아 있었다. 혜수는 내가 건네는 종이를 박력 있게 잡으며 말했다.
  진짜 놓는다.
  훌쩍 가까워진 혜수의 손에서 보송한 비누 냄새가 났다.

*

세번째 수업에서 우리는 서로의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혜수의 글은 인기가 많았다. 사람들은 혜수가 읽어주는 문장마다 웃었다. 강사는 읽기를 마친 혜수에게 사람을 웃게 만드는 글을 쓰는 건 재능이에요, 하고 말했다. 제가 뭐라고 재능이라고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재능은 재능이에요, 하고 다시 한번 덧붙였다. 강사의 말에 혜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웃었다. 나는 그런 혜수의 글을 미리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혜수는 나를 기다렸다. 말 놓을래요? 하고 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김치나베 먹으러 갈래? 하고 물었다. 자꾸만 나에게 묻는 이 사람은 누구지, 몇 초 동안 혜수의 눈을 바라봤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혜수는 혜수. 나는 혜수를 따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네를 걸어 김치나베를 먹으러 갔다.
  기세 좋게 물은 것과 달리 혜수도 처음 가보는 곳인지, 혜수는 내내 휴대폰 지도에 코를 박고 걸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걷던 내가, 길에 주공아파트가 늘어서 있기에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어릴 때 주공아파트 살았다. 그때는 주공아파트가 우리 동네에만 있는 줄 알았어. 옆 동네 애가 주공아파트 산다고 하면 어? 너도 주공 살아? 그랬지.
  귀엽다. 몇 살 때?
  아마…… 열 살?
  그럼 그럴 만하지.
  혜수가 그렇게 말해줘서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그땐 그렇게밖에 몰랐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 무엇을 더 알게 될까. 세상은 영영 몰라도 나 자신에 대해서나 조금 알면 좋으련만. 그때, 열 살이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쳤는데 나랑 똑같이 열 살이던 그애는 야 주공은 여기 말고도 다 있어, 했다. 물정에 밝은 아이였다. 내가 어두웠던 것도 맞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부끄러운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주공 사는 친구가 면박을 줄 때 나는 부끄러웠다. 아 그래? 몰랐어, 하고 당당히 웃질 못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 어색하고 부끄러운 것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지금까지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러하다면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이겠지. 상상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에 가깝진 못할 것이다. 어렸던 나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미안해. 달라지지 못했어. 호쾌해지지도 당당해지지도 못했어. 여전히 그런 순간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표정에서 전부 티가 나. 머쓱의 아이콘으로 살고 있어. 열 살에도 서른이 넘어서도.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는데 혜수가 내 팔꿈치를 톡톡 치며 늘어선 나무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길에 있는 가로수, 다 벚나무인 거 알아?
  알지. 여기 내 나와바린데.
  혜수는 깔깔 웃었다. 그 말이 그렇게 웃겼나……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한 번 더 멈춰 서서 웃었다.
  진짜 웃겨.
  뭐가…… 여기 벚꽃길인 거 몰랐어?
  오늘 식당 검색하다가 처음 알았잖아. 나 진짜 뭐하고 살았나 몰라.
  나도 자주 안 와봤어. 귀찮아서.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니는 것만 알아.
  잘 됐다. 우리 4월에 벚꽃 산책하자.
  ……그래.
  혜수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마른 나무들을 올려다봤다. 4월에는 글쓰기 수업이 없는데. 만날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고 상큼하게 미래를 약속하는 혜수가 좋아 보였다. 그 좋아 보이는 말이 나를 향한 거라니 조금 얼떨떨했다. 마른 나뭇가지에 연분홍빛 벚꽃이 피는 날을 꼽아보다가, 다시 열 살의 나에게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그러나 있잖아. 여전히 그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네가 서른이 넘으면 너를 궁금해하는 친구가 하나 생길 거야. 네가 얼음을 밟고 있으면 같이 얼음을 밟고 얼음이 녹으면 뜨끈한 나베를 먹으러 가고 다음에는 벚꽃 구경을 하자고 말하는.
  혜수 덕분에 뿌듯해진 나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진경에게 괜히 우쭐거리고 뽐내고 싶어진다. 진경, 잘 지내니? 나는 너와 다른, 나와 다른 이 사람이 좋다. 그때와 다른 사람인 내가 좋다. 그런데 아마 진경, 너도 마찬가지겠지. 진경도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거의 대부분…… 살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가니까. 겉은 같아 보여도 그 안쪽은, 예전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뜯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도 하니까.
  누군가는 내면세계에 골몰하는 일을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무시할지도 모르나, 나는 그것이 좋다. 내가 그저 뼈에 살에 몇 줌의 털인 인간이 아니라 실은 보이지 않은 곳에 깊은 동굴 같은 걸 품고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 동굴엔 물이 떨어질까. 박쥐가 살까. 종유석이 있을까. 아니면 계모로부터 도망친 공주가 계모의 저주로 백조가 된 백한 명의 오빠들을 위해 가시덤불로 스웨터를 짜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열 살인 나와 열다섯 살인 내가 숨죽인 채 살고 있을지도. 내면세계에 뭘 갖고 있는지에 따라 그걸 궁금해하는 친구가 생기는 걸까. 그럼 열다섯 살의 내 내면세계엔 아무리 뒤져봐도 진경이 끌릴 만한 게 없었던 걸지도 몰라. 없는 사람도 있지. 없을 수도 있지. 암 그렇고말고……
  진경에게 한 번이라도 우쭐해보기 위해 시작한 생각은 여지없이 익숙한 방향으로, 내 탓 쪽으로 뻗는다. 남 탓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속고 속아도 내가 걔를 오해하는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 탓을 하느라 이미 벌어진 상처를 헤집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을 답답해하고,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진경과 함께일 때 내가 그랬고, 함께하지 않을 때에도 나는 그렇다. 나의 가장 연한 부분은 남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다. 내 입안의 혀를 가장 자주 피 흘리게 하는 것이 입 밖에서 들어온 무언가가 아니라 내 입안의 유난히 뾰족한 송곳니인 것처럼. 나를 다치게 하는 건 나다. 나에게 가장 날카로운 것도 언제나 나 자신.
  아 그만, 이제 그만 생각하자, 하며 쉴새없이 자라는 넝쿨 같은 생각을 머릿속의 칼로 싹둑싹둑 자르는 상상을 하는 내 눈앞에 칼로 베이지 않을 정도로 말랑해 보이는 표정의 혜수가 불쑥 등장한다. 상상이 아니라 실제인 혜수. 앞서 걷던 혜수는 우뚝 서서 내게 뭐라고 얘기한다.
  뭐라고?
  어떡해……
  왜?
  김치나베…… 재료 소진……
  어지간히 허망한 듯 툭 떨어지는 혜수의 팔을 붙들고 나는 또 한번 실컷 웃는다. 머릿속의 칼을 떨어뜨린 채로. 멈추지 못한 웃음 아래로 새로운 생각이 넝쿨의 새싹처럼 돋아난다. 이것은 열다섯의 나에게도 열 살의 나에게도 하는 말이 아닌 그저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나의 내면세계 어딘가에 있을 동굴 벽에 생기는 지금 이 순간의 낙서.
  나는 그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그때의 내가 필요로 했던 한 명의 친구를 만난다. 내가 또다른 사람이 되면 이때의 친구를 잃어버리게 될까. 그런 무서움은 말하지 않는다. 잃어버리면 나는 또다른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니까. 무서워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김화진

소설가.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공룡의 이동 경로』가 있다. 2023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평소에 나베를 즐겨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 소설에 나베를 자주 등장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세어보면 또 자주까지는 아니지만…… 딱 그 정도 거리감에 나눠 먹자고 청하기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나봅니다. 김치찌개는 너무 가까운 음식 같고 스튜는 좀 먼 음식 같다는 저만의 편견도 작용한 것 같고요. 추운 계절 한가운데서 뜨끈한 국물 먹으면 좋죠.

2024/01/17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