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지아는 끝까지 가는 사람은 못 됐다. 출근길 지하철 2호선에서 까무룩 잠들어 처음 탔던 역으로 돌아오거나 지아가 진씨라는 걸 빤히 알고 있는 마케팅 팀장으로부터 지진아씨는 아주 무능이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은 종종 들어도 결코 끝까지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중1 때까지만 해도 스타팅 포인트를 박차고 나가는 육상 유망주였는데 이제 사무실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인 채 보급형 운동화 홍보 카피를 고민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대신 예나 지금이나 지아는 뒤돌아보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어떻게든 지각을 면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사당역 환승 통로를 힘껏 달리며,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걷거나 뛰거나 멈춰 선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낯익은 뒤통수를 봤을 때 지아는 문득 저 뒤통수가 그 뒤통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지아를 향해 이리 온, 손짓했고, 지아는 어릴 때 누운 자세가 잘못되는 바람에 한쪽으로 약간 쏠린 사두(斜頭)를, 숱이 빈약해 바람 부는 날 빨랫줄에 널어둔 20수 수건처럼 힘없이 나풀거리는 숏한 파마머리를 따라 한 발짝 두 발짝 걸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따라 걷는 건 분명 자신인데도 무언가 자신을 뒤쫓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무엇이 나를 쫓아오고 있어. 지아는 무엇무엇의 자리에 여러 단어를 넣어보았다. 지각비가 나를 쫓아오고 있어. 카피란 건 써지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는 팀장의 잔소리가 나를 쫓아오고 있어. 역내 사회복무요원의 뛰지 말라는 외침이 나를 쫓아오고 있어. 그러나 앞선 단어들은 모두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페이스메이커에 불과했다. 회사에 십 초 지각해 지각비로 천원을 뜯긴 그날의 다음 날 다다음 날에도 지아는 사당역 환승 통로에서 어른거리는 뒤통수를 보았고 공교롭게도 가는 방향이 같았으므로 그것을 뒤따라 걸었고 그러면서도 결코 그것을 앞지르거나 저기요! 하고 멈춰 세우거나 조용히 다가가 뒤통수를 맞대지 않았다. 대신 뒤를 돌아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별이 나를 쫓아오고 있어. 사력을 다해서, 전력 질주로.


물건 혹은 사람

세상 사람들을 물건과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면 한때 지아는 칭찬이 박한 코치의 입에서 쟤 물건이네, 소리를 하루에 몇 번이고 끄집어내는 아이였다. 인근의 다른 중학교에 다니던 당희가 육상부에 스카우트되어 전학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체형 변화까지 심하게 오면서 기록이 곤두박질친 뒤 마침내 지아는 ‘물건’에서 ‘사람’으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총애를 받던 육상 꿈나무가 하루아침에 눈총 받는 신세가 된 게 서러웠던 어느 날엔가는 엄마에게 파마 로드를 건네면서 “나 이제 육상 관둘까?” 묻기도 했다. 엄마는 입에 고무 밴드를 물고 있어 약간 뭉개진 발음으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하면서도 사당동에서 십수 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해온 여자답게 이렇게 말했다.
  “지아 너, 펌이 너무 세게 들어가면 뽀글거려서 촌스럽다 그러고 너무 약하게 들어가면 금방 풀려버려서 며칠 있다 다시 해달라고 찾아오는 아줌마들 숱하게 봤지? 중요한 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중도를 지키는 거야. 뽀글뽀글과 스트레이트 사이에서 노선만 잘 정하면 최소한 중간은 간다.”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끝까지 가든 중간만 가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주저앉아버리든 지아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잘 달리지는 못해도 달리는 게 좋았으니까. 있는 힘껏 두 발을 교차하며 트랙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자기 자신이 사라지고 오직 달리기만 남는 기분이었으니까.
  사실 그건 언젠가 “너는 왜 육상을 시작했어?” 하고 지아가 물었을 때 당희가 한 말이기도 했다. 뭐랄까, 달리기하는 당희에게는 어떤 자신감이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땡땡하게 부풀어오른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세상에 두 발 딛고 선 몸의 분명한 있음에서 비롯한 자신감(自身感)이었다. 그래서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또치를 닮은 코치가 사슴 같은 발목이나 두꺼운 가슴이나 작은 머리통으로 당희의 신체를 묘사했다면 지아에게 당희란 그런 부분부분보다는 자신의 맞은편에서 쏜살같이 눈부시게 육박해오는 총체로서의 몸에 가까웠다.

여름방학 전지훈련이 끝난 뒤 지아와 당희는 시큼한 땀냄새를 풍기며 뻥튀기와 고기 튀김과 만두 냄새가 한데 섞인 태평백화점 앞 포장마차 거리를 쏘다녔다. 하루는 역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수제 버거집에 햄버거를 먹으러 가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물론 먹으러 갔다고 해서 무조건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부에 불은 환하게 켜져 있는데 어째서인지 가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그 앞을 서성거리던 여자애들이 눈에 밟혔던 주인은 완전히 열린 것도 닫힌 것도 아닌 문 밖으로 상체만 빼꼼 내보내고는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이란다.” 짐짓 장엄한 투로 말했다.
  브레이크 타임? 어려서부터 몸만 썼지 머리 쓰는 일, 특히 영어에는 재능이라곤 없던 지아는 머릿속에서 브레이크와 타임이라는 단어를 조합해보았고 이내 망가지는 시간이라는 요상스러운 문장을 떠올렸다.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다음에 다시 올래?”
  다행히 지아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 창피를 당하기 전에 주인이 먼저 선수를 쳤고, 꿩 대신 닭이라고 둘은 롯데리아 데리버거로 대충 끼니를 때운 뒤 ‘쥬땜’이라고 적힌 회전 간판이 돌아가는 미용실로 돌아왔다. “오늘도 데파트 갔다 왔니?” 엄마는 태평백화점을 꼭 옛날 이름인 ‘태평 데파트’라고 불렀는데, 그럴 때마다 지아는 어떤 당혹감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그쯤이야 당희가 불러일으킨 감정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응, 백화점에 있다 왔어” 하고 무심히 대답할 뿐이었다.
  미용실 카운터 안쪽에는 성인 한 사람이 몸을 뉘일 수 있는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대개는 손님이 없을 때 엄마가 잠깐 눈을 붙이는 용도였다면 그 여름 동안만큼은 지아와 당희의 비밀스러운 아지트로 더 많이 쓰이곤 했다. 그날도 발을 쭉 뻗고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또치 코치의 성질 더러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이내 화제의 바통은 요새 부쩍 군기를 잡으려고 드는 3학년 선배들에게 넘어갔다. 앞에서 대놓고 갈구는 건 눈치 보이니까 자기보다 기록이 잘 나오는 후배들한테 사이즈가 작은 신발을 옜다 던져주고 발가락이 온통 물집 범벅이 될 때까지 운동장 뺑뺑이를 돌게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얘깃거리가 다 떨어져 둘 사이에 나른한 침묵이 내려앉으려 할 즈음 당희는 다짜고짜 이렇게 속삭였다.
  “근데 몰랐는데 지아 너는 귀가 참 예쁘다.”
  그 순간 지아는 파마약을 발라 분자의 결합이 느슨해진 머리카락처럼 마음이 약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걸 느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뭐? 하고 물었다.
  “지아 너 귀가 진짜 예쁘다고.”
  “사람 귀가 예쁘면 뭐 얼마나 예쁘다고.”
  “아냐, 예뻐.”
  “어떻게 예쁜데?”
  “네 귓바퀴에서 달리기하고 싶을 정도로 예뻐.”
  지아는 자신의 귓바퀴 가장자리에 크라우칭 자세로 몸을 숙이고 있다가 준비, 땅! 하는 총성과 함께 박차고 나아가는 당희의 모습을 생각했다.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주말에 엄마와 함께 아현동 설항 이모네를 찾아가려고 양손 가득 반찬통을 들고서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실었을 때에도 누군가 제 귓바퀴를 달리고 있는 것마냥 귀가 간지러웠다. 엄마가 큰이모나 둘째 이모와 통화하던 걸 대강 주워듣기로 설항 이모는 아현동 달동네 방에서 늘상 누군가와 ‘동거’란 걸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몇 달에 한 번씩 그 집을 들락거리는 동안 지아는 이모의 동거인이라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신 신발은 봤다. 엄마와 이모가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는 울고 웃고 때로는 나도 사는 게 힘들어 죽겠어, 속삭거리는 동안 지아는 조용히 몸을 이끌고 나와 굳게 닫힌 미닫이 신발장 문을 열어보았다. 발에 다한증이 있어 퀴퀴한 냄새를 풍기던 이모의 신발이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그 옆의 신발은 달마다 계절마다 계속 달라졌다. 어떤 때는 280밀리미터 페니 로퍼가, 어떤 때는 220밀리미터 메리제인 샌들이, 어떤 때는 250밀리미터 아식스 운동화가 놓여 있기도 했다. 물론 지아는 그게 이모에게 어떤 의미일지 깊이 생각하기보다 최대한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 애쓰며 신발장 안 깊숙이 처박힌 누군가의 차갑고 축축한 신발 안에 제 발을 슬쩍 넣어볼 뿐이었다.
  돌아가는 지하철에는 올 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고 겨우 자리를 잡은 지아는 옆 사람의 어깨와 어깨 사이의 비좁은 공간 안에서 몸을 옹송그렸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서서히 굳고 뻐근해져가는 걸 견디다 공벌레처럼 자기 자신 쪽으로 몸을 구부정하게 만 채 책을 읽고 있는 맞은편 사람을 힐끗 건너다보았다. 표지에 커다란 하트가 그려진 두꺼운 장정의 책이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의 맞은편에 내가 있구나. 지아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 내가 있다, 하고 곧장 스트레이트로 말하면 되는 걸 맞은편에 있는 사람의 맞은편에 내가 있다, 하고 계속 중얼거렸다. 순간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전속력으로 달린 직후처럼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마구 뜀박질했다. 그런데다 하필 그때 당희에게 문자까지 오는 바람에 쿵쿵대는 소리로 귀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내일 5시, 사랑에서 만나.


사랑은 물집을 타고

‘사랑에서 만나’는 아마 ‘사당에서 만나’가 잘못 타이핑된 것에 불과했겠지만, 지아는 약속 장소인 사당역 앞 수제 버거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도 자신이 진짜 목적지 삼고 싶은 곳은 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사랑은 물리적으로 발 들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더욱 그 멀고도 요원한 땅을 두 발로 디뎌보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남편과 사별해 과부가 되기 무섭게 엄마가 악착같이 기술을 배워 차린 미용실 상호명 ‘쥬땜’이 ‘사랑해’라는 뜻의 불어인 것처럼.
  당희가 약속 장소에 나타난 건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는 시간인 5시가 한참 지난 뒤였다. 얼마 전 비공식이긴 해도 800미터 신기록을 갱신해 기어코 선배들의 눈 밖에 난 당희는 분명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잔뜩 잡혔을 텐데도 개의치 않고 지아를 향해 달려왔고 지아 또한 물집이 잡힌 두 발을 있는 힘껏 교차하며 당희를 향해 달려갔다.
  문제는 지아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였다. 잘 달리다 말고 뒤돌아보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럴 때마다 코치는 너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소리쳤고 지아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순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은 아니었다. 선두 자리를 뺏길까봐 그런 거면 차라리 낫지 꼴찌가 유력한 상황임에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으니까. 어느 날엔가 “근데 넌 진짜 왜 그러는 거야?” 하고 당희가 물었을 때 지아는 “그냥 뭐가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아서.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하고 대강 얼버무렸다. 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았다. 지금 무엇이 자신의 뒤를 무섭게 쫓고 있는지.
  “근데 당희 너 발은 괜찮아?”
  당희의 바로 코앞에 멈춰 선 지아가 가쁜 숨을 고르며 물었다.
  “괜찮지 뭐. 근데 넌 기합 안 받아도 되는데 굳이 왜 같이 뛴다고 했어?”
  지아는 그야 너를 좋아하니까, 진심을 내뱉는 대신 “우리 이따 버거 먹고 쥬땜 갈까?” 하고 말했다. 그냥 우리 집 갈까, 하면 되는 걸 굳이 쥬땜 갈까? 했다.
  그리고 대망의 수제 버거라는 걸 처음 받아봤을 때 지아는 다소 실망하고 말았다. 롯데리아에서 파는 구백원짜리 데리버거와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하나 있다면 버거 한가운데에 기다란 나무 꼬챙이가 꽂혀 있다는 건데, 그걸 쏙 빼서 버거를 두 손에 쥐자마자 젠가처럼 층층이 쌓여 있던 각각의 재료들이 느슨하게 무너지며 흐트러졌다. 그래도 지아는 최대한 실망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버거를 한 입 베어 물기 무섭게 당희가 여기 진짜 괜찮다. 다음에 또 오자, 하고 말했으니까. 서로의 취향이 정반대로 갈리는 것과 별개로 그때 지아는 자신의 맞은편에 당희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엄지발가락에 생긴 물집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사실이 당희가 지아의 편이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지아는 언제까지고 당희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함께 시간을 겪고 견디고 달리고 싶었다.

여느 때처럼 당희와 함께 미용실에 발을 들였을 때 웬일인지 가게엔 손님은 없고 설항 이모만이 손님용 미용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이모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언니, 하고 말하다가 입구 쪽으로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고는 아가씨들 안녕, 하고 찡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엄마는 아가씨치고 너무 앳돼 보이는 두 사람에게 얼른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몰아세우듯 외쳤지만 카운터 안쪽에 있는 그 공간을 ‘방’이라고 하기엔 문짝도 없는 데다 터무니없이 비좁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지아는 설항 이모가 예전에도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에게 돈을 빌려 카스테라 가게를 차렸다가 동거인이자 동업자라는 인간이 뒤통수를 쳐 한순간에 풀썩 주저앉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삶이란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할수록 마지막이 계속 유예되는 것이구나, 또치 코치가 마지막 바퀴! 하고 꾀어놓고는 마지막 바퀴를 돌고 오자마자 진짜 마지막으로 세 바퀴 더! 하고 소리치는 거랑 똑같은 거구나, 생각했다.
  “근데 발 안 아파?”
  지아는 신고 있던 양말을 벗은 다음 너도 벗어봐, 하면서 당희의 양말 끝을 쥐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풍선껌처럼 잔뜩 부풀어올라 투명하게 속이 비쳐 보이는 물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얘는 물집이 잡혔는데도 어쩜 발이 이렇게 예쁠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아는 말했다.
  “이거, 내가 터뜨려줄까?”
  “네가?”
  “응. 내가.”
  “네가 왜? 더럽잖아.”
  그야 내가 너를 더럽게 좋아하니까. 지아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선반에서 반짇고리를 가져와서는 끝이 뾰족한 바늘을 빼 들었다. 그러곤 지금 당희에게 아픔을 주는 물집을 터뜨릴 작정으로 바늘을 쥔 손을 물집에 가져다 댔다. 그럼 못써 얘, 하고 설항 이모가 소리친 건 바늘 끝과 물집이 만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아는 대체 뭘 못쓴다는 건지 다소 억울한 얼굴로 방해꾼 이모를 바라보았다.
  “지아 너, 어디 아프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이모는 질문을 던져놓고서는 지아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렇게 바늘로 물집을 직접 터뜨리면 못쓴다고 했다. 대신 바늘에 실 한 가닥을 꿴 다음 물집을 통과시키고 하룻밤만 두면 실이 안에 가득차 있던 물을 전부 흡수해줄 거라고 했다. 이모는 바늘에 실을 꿴 다음 그것으로 당희의 물집을 관통했다. 그런 뒤 바통 터치하듯 지아에게 바늘을 건네면서 “지아 너 육상부라며? 이모도 너처럼 잘 달려볼게” 하고 속삭였다. 그 순간 지아는 어떤 이물감을 느꼈는데, 매번 꼴찌를 면치 못하는 자신에게 ‘너처럼’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모가 달리기하는 모습을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제자리에 주저앉은 순간까지를 달리기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면 모를까.
  부탁은 못 들어줘도 드라이는 해줄 수 있으니 잠깐 있다 가라는 엄마의 말에도 이모는 내 머리가 이렇게 숏한데 드라이는 무슨 드라이, 하고 웃어 보이며 작별 인사를 했다. 역까지 배웅이라도 해주겠다며 엄마가 이모를 따라 나선 뒤 미용실에는 지아와 당희,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았다. 이때다 싶어 지아는 당희의 물집을 관통한 그 바늘을 그대로 자기 엄지발가락에 생긴 물집을 향해 겨냥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종이컵으로 만든 실 전화기로 이모와 밀담을 나누었듯 실을 꿴 바늘로 물집과 물집을 연결했다. 아파? 지아가 물었고 당희는 안 아파, 했다. 물집은 말 그대로 물이 차 있는 집이고 그건 몸의 일부이지만 그렇다고 살은 아니고 신경이란 게 없어서 아무리 바늘로 찔러도 아픔이 전해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그걸, 양쪽에서부터 실이 조금씩 서서히 이물스럽게 젖어드는 과정을 어떤 주고받음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지아는 어느새 코를 골고 이까지 갈며 잠든 당희를 등지고 누웠다. 그런 뒤 당희의 한쪽으로 약간 쏠린 뒤통수에 자신의 뒤통수를 맞댄 자세로, 지금 이 시간 이 순간이 엄마가 말아준 파마처럼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까 이모는 방해꾼이 아니라 내 편이었던 걸까, 그랬던 거라면 잠깐 밖에 나가서 이모를 배웅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나, 생각했다. 뒤늦게 잘 가, 하고 대답해보았지만 그 음성이 이모에게까지 가닿기엔 두 사람은 이미 너무 멀어진 뒤였다. 어떤 헤어짐은 발이 너무 빨라서 뒤늦게 전력 질주해봐도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발로 쓴 시와 손쓸 수 없는 것들

또치 코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육상과 관련된 명언 따위를 단체 문자로 돌렸는데, 전국소년체전 경기 전날에 보내온 내용은 ‘달리기는 트랙이라는 종이 위에 발로 쓰는 시다’였다. 평소대로라면 뭔 개소리래, 하면서 곧장 삭제 버튼을 눌렀겠지만 그날 지아는 그 문자를 노트에 옮겨 적기까지 했다. 달리기가 발로 쓰는 시라면 당희는 매일 시를, 그것도 연애시를 쓰고 있었으니까. 운동장 트랙을 수십 수백 바퀴 달리는 동안 자신이 발로, 그리고 사랑으로 쓴 시를 당희가 한 번쯤 읽어봐주길 바랐으니까.
  그러나 당희는 ‘물건’답게 달리기에만 에너지를 쏟느라 지아가 전속력으로 쓴 시집 따위 펼쳐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타깃 독자의 그런 태도는 사랑이라는, 마음의 상태가 아닌 장소를 뜻하는 무형의 공간으로 지아를 더욱 몰아넣었다. 그곳은 육상 경기장 공식 규격에 알맞게 트랙이 깔려 있지도 않았고 노면도 울퉁불퉁해 자빠지기도 쉬웠지만 그럼에도 지아는 사랑 안에서 오직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생각하며 달렸다. 어느 날은 답답함에 못 이긴 지아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있지, 왜 전번에 또치가 달리기는 발로 쓰는 시라고 했잖아.”
  “그렇지.”
  “근데 시라는 건 기본적으로 독자가 있어야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네가 달리면서 쓴 시는 누가 읽어주면 좋겠어? 누가 제일 좋을 것 같아?”
  지아의 말에 당희는 얘가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야 진지아. 지아 너 정신 좀 차려야겠다. 대회가 코앞인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할 시간에 그냥 뛰어라 좀.”

대망의 전국소년체전 경기 날, 당희가 기록을 무려 0.1초나 앞당기는 동안 지아는 고작 800미터를 끝까지 완주하지도 못하고 자빠지면서 경기에서 중도 하차했다. 물론 아무도 지아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긴 했다. 그래도 육상이 네 길이 아닌 것 같으니 유도나 역도 쪽으로 진로를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직접, 것도 회식 직전에 듣는 건 마음이 느슨해지다 못해 뚝뚝 끊어지는 일이었다. 업소용 육절기로 마음을 가차 없이 슬라이스 당하는 기분이랄까.
  회식 장소는 사당역 근처의 대승삼겹살이었고, 지아는 당희에게 ‘이따 사랑에서 만날까?’ 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어째서인지 당희는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삼겹살집에 도착해서 아까 내가 보낸 문자 봤어? 하고 물어도 무슨 문자? 할 뿐이었다. 이내 둘 사이의 어색한 공기는 “대승이가 대패를 아주 기가 막히게 하니까 배 터지게 먹어라!” 하고 목청껏 소리치는 또치의 목소리로 메워졌다. 대승이라는 사람은 몇 년 전 코치의 육상부 제자였다가 이제 손님상에 오른 삼겹살을 굽고 뒤집고 불판을 가는 일을 했고 그건 달리기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였다.
  살이 닿는 느낌이 소스라지게 차가운 스테인리스 원형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은 서로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지아는 입맛이 없어서 대패삼겹살이고 뭐고 입에도 대기 싫었는데 당희는 잘 먹었다. 테이블 밑에서 종아리를 발로 툭 쳐봐도 그게 무슨 사인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이내 당희가 너네 아무도 생마늘 안 먹지? 하고 종지에 들어 있던 생마늘을 모조리 불판 위로 투하해버렸을 때 지아는 나 먹는데? 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당희 너! 네 맘대로 마늘을 다 구워버리면 어떡하냐 진짜. 한 번 구운 마늘은 다시 생마늘이 될 수 없는 거잖아. 스타팅 포인트로 돌아갈 수 없는 거잖아. 생마늘에게는 생마늘의 레인이 있고, 구운 마늘한테는 구운 마늘의 레인이 있는 거잖아. 너 달리기 좀 한다는 애가 리빙 더 레인 몰라? 뛰다가 레인 이탈하면 바로 얄짤 없이 실격 처리 되는 거 진짜 몰라서 그래? 어?”
  지아가 한바탕 속내를 쏟아내는 동안 딱딱하고 동그랗게 말려 있던 냉동 대패 삼겹살은 어느새 달궈진 철판 위에서 몸에 힘을 빼고 기다랗고 연한 모양새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생마늘이냐 구운 마늘이냐 하는 문제를 앞에 두고 얼어붙을 대로 꽁꽁 얼어버린 지아의 마음도 당희가 “야, 언니가 잘못했어!” 하고 양 볼을 꼬집자마자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지아는 당희가 우리 사랑에서 만나, 하는 문자 내용을 육상부 선배들과 돌려보며 깔깔거리는 풍경을 목격했을 때 그만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걸 느꼈다. 누가 때린 것도 아닌데 너무 아파 찔끔 눈물 흘릴 정도였고 그건 좀전까지 한 몸처럼, 이인삼각 선수처럼 함께 달리던 사랑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7시, 해와 달이 같이 떠 있어 완전한 낮도 밤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회식 자리가 파한 뒤 육상부원들은 사당역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왜인지 그날따라 지아는 유독 당희와 더 멀리 헤어진 느낌이었다. 헤어짐이 운동장처럼 커다랗고 널따래진 느낌이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알 수 없는 것도 화딱지가 나 죽겠는데 물웅덩이에 발이 빠져 운동화가 쫄딱 젖기까지 했다. 지아는 언젠가 또치 코치가 보낸 명언을 자기 맘대로 이렇게 변형해 중얼거렸다.
  새는 (날고)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덥석 미끼를 물고 사람은 (달린다) 잘 달리다가도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고꾸라진다. 그러니까 전부 바보가 따로 없다. 새도, 물고기도, 나라는 사람도.
  그날 집 앞까지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온 지아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안쪽에서 울려퍼지는 설항이니? 너 설항이 맞지? 소리에 굳은 듯 멈춰 섰다. 얼마 전부터 이모는 이모랑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절부절 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제야 소식이 닿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아는 암만 부정하고 부정하려야 자신이 지금 여전히 사랑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파마가 너무 뽀글뽀글하게 나와버린 손님더러 언니야, 며칠 밤만 지나면 예뻐! 기약 없는 미래를 담보로 걸어두었다면 지아에겐 언제나 지금이 중요했다. 언젠가 사랑이라는 트랙을 달리다 말 순간이, 누군가 너 지금 사랑이니? 하고 물었을 때 저 지금 사랑 아니에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지언정 분명한 건 지아가 지금 사랑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지아는 발길을 돌려 누가 뒤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아는 미용실 앞의 고장 난 가로등에서부터 건전지가 거의 다 떨어져 불빛이 깜빡거리는 손전등을 들고 수위가 야간 순찰중일 학교를 지나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비킬 생각을 않는 사당역 앞 비둘기 무리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지나 당희와 함께 갔던 수제 버거집 앞에 덩그러니 버려진, 냉동 패티 비닐이 비죽 비어져나온 종량제 봉투를 지나 달렸다. 여기서 내가 없어지고 달리기만 남는 순간이 올 때까지 브레이크 타임도 없이, 이번이 진짜 마지막 바퀴야! 속으로 다짐하면서 똑같은 길을 몇 바퀴고 계속 달리고 또 달렸지만 애석하게도 거기에 달리기만 남는 법은 없었다. 대신 당희가 남았다. 그리고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지아는 여전히 고장 나 있어 불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미용실 앞 가로등 밑으로, 처음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비록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결코 제자리걸음은 아니야.
  먼 훗날, 출근길 2호선 순환선에서 까무룩 잠들어 몇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탑승 역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엄마의 갑상선암 투병으로 미용실 유리문에 폐업 안내문을 써 붙여야 했을 때에도, 며칠 밤을 지새워가며 작성한 운동화 광고 기획서가 반려돼 모든 일을 프롬 스크래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을 때에도 지아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곤 했다. 내가 비록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결코 제자리걸음은 아니야. 출발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건 아니야.


한 사람의 한 켤레

무언가를 관두게 되는 일은 가위로 실을 자르듯 단번에 이루어졌다. 함께 시간을 겪고 견디고 달리던 육상부 친구들과도 하루아침에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건 물론이었다. 그래도 어느 날엔가 태평백화점 앞에서 다른 애들과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있는 당희를 만났을 때 용기를 내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날 두 사람은 일전의 그 수제 버거집에 가서 여전히 모양이 망가지기 십상인 버거를 먹었다. 야무지게 포크와 나이프를 요구함으로써 손을 일절 더럽히지 않은 당희와 달리 지아는 두 손으로 집어 든 버거에서 소스니 양상추니 토마토니 속재료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바람에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아는 이 집이 냉동 패티를 쓰는 걸 자기가 똑똑히 봤다고, 수제라고 뻥만 쳤지 사실 롯데리아 데리버거랑 다를 게 하나 없더라고 진실을 폭로하려다 소스 한 방울 안 남기고 접시를 비운 당희가 “지아 너, 여기 처음이지? 역시 수제는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냐” 하고 말하는 걸 듣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물집은 발에만 잡히는 게 아니라 시간에도 잡힌다. 외부의 세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형성되는 액체 주머니가 물집이라면 지아는 지금 자신을 둘러싼 시간에 물집이 가득 잡힌 느낌이었다. 사랑이 원래대로 사당이 되었는데,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공간의 실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지아를 사방에서 마구 짓눌러 아프게 했다. 그건 엄마가 1994년에 정식 백화점이 된 장소를 여전히 거리낌 없이 태평 데파트라고 부를 때 지아가 느꼈던 당혹감과도 흡사했다.
  훗날 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로 태평백화점이 완전히 문을 닫은 뒤 이모에 대한 지아의 기억조차 흐릿해졌을 무렵,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던 엄마는 불 꺼진 미용실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 말고 “왜 네가 갓 돌 지났을 땐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네 이모가 구두를 꼭 하나 사주고 싶다기에 같이 쇼핑을 갔었는데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데파트 냉각탑에 불이 붙어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뭐냐” 하고 말했다. 화재 경보가 울려서 정신이 없는 데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누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등 뒤에서 이모가 언니! 하고 부르며 달려오더니 자기 손을 잡고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헐레벌떡 밖으로 나오고 보니 웬걸 신발 한 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고. 일단 내 거라도 신어 언니, 하고 이모가 건넨 성의를 거절하기가 뭣해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꾸역꾸역 집까지 걸어오고 나니 발이 완전히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고.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 그때 그 시간을 꼭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시간이 흘러 당희는 오른발 중족골 골절로 지아처럼 ‘물건’에서 ‘사람’이 되었지만 둘은 예전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마음을 나누거나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대신 지아는 교문을 나선 당희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걷다가 이따금 땅바닥에 어른거리는 당희의 발자국에 제 발을 고요히 포개보았다. 사이즈가 어찌나 꼭 맞는지 두 사람의 족적이 하나를 이룰 때마다 지아는 이유 모를 이물감을 느꼈고, 그럼에도 서로 집에 가는 방향이 달라지는 역 앞 갈림길까지 그 뼈아픈 발자국 안을 오래도록 배회하곤 했다.
  그날 지아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홀로 아현동 이모네 집을 찾아갔다. 며칠 전에 엄마가 전화기에 대고 설항이니? 그 사람이 뭐? 울지 말고 똑바로 말 좀 해봐, 하고 말했던 게 내심 눈에 밟혀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금 자기 자신에게 이모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달동네 꼭대기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 집에 다다랐을 때 지아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모! 하고 큰 소리로 외쳤는데도 안쪽에서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기에 지아는 대문 안쪽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기척이 없었을 뿐 방 안에 있던 이모는 무슨 일인지 땀까지 뻘뻘 흘려가면서 창문 틈새에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이는 중이었다.
  “뭐 해 이모?”
  지아가 말했고, 갑작스러운 지아의 방문에 화들짝 놀란 기색이던 이모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냥, 웃풍이 너무 심해서, 했다.
  “아직 겨울 되려면 멀었는데?”
  “멀긴 한데 그래도 곧이니까. 네가 대회 대비 훈련 받는 거랑 비슷한 거야.”
  “그럼 내가 좀 도와줄까?”
  “아니, 안 돼.”
  “치, 안 되면 말고.”
  “근데 지아, 너 괜찮니?”
  “뭐가?”
  “너 얼굴에 안 괜찮다고 쓰여 있어서.”
  지아는 나 진짜 괜찮아, 하면서도 고개를 휙 돌려 뿌옇게 김이 서린 경대 거울을 바라보며 “근데 어디? 어디 쓰여 있어?” 했다. 그때 지그시 지아의 뒤를 바라보던 이모가 울먹이듯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아야, 나는 네가 앞뒤가 달라서 좋아.”
  “응?”
  “아직 너는 이해 못 하겠지만, 앞뒤가 너무 똑같은 사람은 무섭거든.”
  “근데 나도 알 것 같애.”
  “그래?”
  “응. 막 완전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것 같애.”
  “그렇구나.”
  “근데 있잖아, 이모.”
  “응.”
  “나 이제 달리기 관두게 됐어.”
  “그렇게 됐구나.”
  “응. 이제 영어 공부도 좀 하고, 것도 아닌 것 같으면 엄마 따라 미용도 배워보고 그러게. 그래도 나 이모처럼 잘 달려볼게.”
  이모는 그래, 그래야지, 하면서 지아를 제 품에 안았고 두 손으로 지아의 뒤통수를 감쌌다. 지아 또한 코끝을 찌르는 시큼한 땀냄새 때문에 힘껏 숨을 참으면서도 작디작은 두 손으로 이모의 뒤통수를 동그랗게 어루만졌다. 어떤 헤어짐은 사건이라기보다 장소에 가까워서, 살면서 지아는 왜 이모를 더 많이 안아주지 못했는지보다 왜 이모의 신발에는 단 한 번도 발을 넣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맴돌곤 했다.
  그날 이모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선 지아는 아현동에서 사당동까지, 걸어가기에는 좀 먼 거리를 걸어서 갔고 그러느라 발에 물집이 잡혔다. 지아는 일전에 이모가 알려줬던 방법 그대로 바늘에 실을 꿴 다음 물집을 통과시켰고 이내 바늘은 반짇고리로, 축축히 젖어든 실은 쓰레기통으로, 물집은 흉터로,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멀리 가지 않아도 무언가와 멀어질 수 있다는 건 다행일까, 불행일까. 분명한 건 당희와 함께 운동장을 돌며 발로 사랑시를 쓰던 열다섯에도, 갑상선암은 그래도 착한 암이라며 실없이 웃어 보이는 엄마를 옆에 두고 병실에서 꾸역꾸역 신제품 기획안을 쥐어짜내야 했던 서른에도, 지아는 시간이란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것인 동시에 저 멀리 보내주는 것이라는 걸, 이별은 말 그대로 이별일 뿐 세상에 착한 이별 따위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어 발 빠짐을 주의해야 하는 지하철에서 내려 여느 날과 같이 사당역 환승 통로를 지날 때 지아는 저만치 멀리서 어른거리는 뒤통수를 보고 그것을 앞지르거나 저기요! 하고 멈춰 세우거나 조용히 다가가 뒤통수를 맞대는 대신 또 보내, 했다. 속삭임이 트랙을 달리는 아이의 맑고 앳된 뒤통수처럼 목구멍 안쪽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맴돌고 있었다.


*육상에 관한 자료는 『자유와 황홀, 육상』(김화성, 알렙, 2011)을 참고했다.



이선진

2020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밤의 반만이라도』가 있다.

나에게 문학이란 뒤통수 바라보기다. 뒤통수로 뒤통수 바라보기다. 나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어. 내게 이 문장은 그 어떤 말보다도 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나는 어떤 이의 목 위에 둥실 떠 있는 동그랗고 환한 뒤통수를 본다. 눈으로 한 번 보고 뒤통수로 한 번 더 본다. 앞의 봄은 어긋난 마주침이고 뒤의 봄은 어긋난 어긋남이다. 저 뒤통수가 내가 아는 그 뒤통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간에 그것은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앞으로 사랑할 수많은 뒤통수들과 나를 접속시킨다. 뒤통수는 정면이 아니지만 나는 뒤통수를 정면으로 보는 게 좋다. 무언가를 정면으로 보는 건 진짜 진짜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좋다. 눈치챘겠지만 이 글도 나의 뒤통수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마주한 그대, 내 뒤를 좀 봐주기를. 이왕이면 정면으로.

2024/04/17
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