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병원 / 소요
병원
잘못했어요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고
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하얀 침대에 하얀 얼굴로 누운 이들을 몰래 관찰하면서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신음으로 꽉 찬 복도를 산책하면서
쉿, 얘들아, 여기서 그렇게 웃으면 안 된다
사람이 있잖니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
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무수한 지문이 득실거리는 회전문을 밀고 유유히 밖으로 걸어나가면서
붕대를 휘감고 경련하는 햇살이 참 아름답다 중얼거리면서
얘들아, 아니다
나는 아니다
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용서를 빌었다
간신히 웃음을 참는 얼굴로
살려주세요 말할 수 없었다
소요
사람이 있는 풍경,
그 한 장의 사진을 본다
눈이 오고 있으므로
사람은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눈은 쌓이고
사람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휘청거린다
풍경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의 걸음으로 인해
풍경은 두근거림을 피하지 못한다
나는 본다
반쯤 녹아버린 눈사람과 같은 표정으로
왜 이런 사진을 찍었나
왜 이런 사진을 들여다보나
눈이 오고 있으므로
눈 속 몸부림치는 한 사람으로 인해
눈은 쌓이고
쌓일수록 거세고
사람은 기어코 넘어진다 앙상한 무릎을 짓찧는다
풍경 저 바깥 어딘가
손을 흔드는 또다른 사람이 있는가 어쩌면
넘어진 사람은 일어선다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사람은 걷는다
저 바깥 어딘가
그러나 결코 당도하지 못할 한 사람을
나는 본다
눈이 오고 있으므로
눈이 그치지 않고 있으므로
박소란
자꾸만 죽음에 대해 말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대체로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으므로. 그러나 나의 말은 지나치게 왜소하다. 때로는 낯 뜨거울 만큼 어색하게 몸을 부풀린다. 제대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그게 너무 미안하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