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들어갈수록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어제와 다른 이들이 같은 문으로 들어와 아무렇게나 자리를 채워 앉았다. 일부는 낯이 익었지만 이름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천장을 가득 메운 담배 연기는 여러 몸뚱이가 내뿜는 열기와 엉켜 금방이라도 빗방울을 떨굴 것 같았다. 그중에 일부는 정말로 수증기였다. 온종일 무언가를 끓여대는 냄비가 줄지어 불 위에 올려져 있었다. 손님들은 입에 넣고, 씹다가, 삼키는가 하면 걸리는 걸 아무렇게나 뱉어버렸다. 끈적거리는 바닥은 쉽게 닦이지 않았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는 엷은 물의 막이 생겨 미끌거렸다. 자리에 둘러앉은 건 하나같이 몸이 더럽고, 이빨이 누런 자들이었다. 의자에 팬 깊은 엉덩이 자국은 누구에게나 들어맞았다.
   엄마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잘하고 있다는 말만 했다. 말을 건넬 때 어깨 너머를 보는 것이 엄마의 습관이었다. 내가 아닌 누구에게라도 그랬다. 눈을 맞추려고 하면 방에 들어갔다. 문을 두드려도 자는 척하고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거의 잠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우리집에서 오래 자는 건 붉은귀거북뿐이었다. 처음 집에 데려온 날 어항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너’라고 적었다. 너는 가끔 깨어서 돌멩이 위에 올라 몸을 말렸다. 집을 나설 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건 너가 전부였다. 너는 사료 말고도 양배추 조각 같은 것을 넣어주면 좋아했다. 나는 너가 잘게 잘린 방울토마토 먹는 것을 보며 잘하고 있다 말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잘하고 있지 않았다.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긴 했다. 조금의 쓸모도 없는 일이었다.

   일을 소개해준 건 태이였다. 급하게 서울을 떠나야 한다며 자신이 일하던 자리를 채워줄 수 없겠냐고 했다. 나는 마침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고, 온종일 집에 있는 게 괴로운 참이었다. 인수인계를 핑계로 한 술자리에서 태이는 좀처럼 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얼마 전 집에 새로 들인 앵무새가 가르치지 않은 말을 한다고 했다. 태이가 보여준 동영상 속 앵무새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주여, 주씨옵쏘서, 하다가 아~~~~멘, 하며 부르르 떨었다. 거무튀튀한 앵무의 혀가 부리를 들락거리는 게 뱀처럼 보였다.
   “교회에서 데려온 거야?”
   “아니. 당근 했어.”
   “주인이 교회 다녔나보지.”
   “아니야. 스님이 나왔어.”
   “머리 깎았다고 다 중인가.”
   “승복도 입었어.”
   “교회 다니는 중인가보지.”
   태이가 어느 정도 수긍하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이의 잔이 어느새 비어있었다. 나는 내 잔을 기울여 태이의 잔을 채워줬다. 거품이 올라와 조금 따랐는데도 많아 보였다. 태이가 손목을 들어 시계를 봤다. 때가 됐다는 듯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가면 아무한테도 친한 척하지 마. 친해질 생각도 하지 말고.”
   “손님들이 험해?”
   “험하다기보다 음험해.”
   “돈 빌려달라 그러고 뒤통수쳐?”
   “그것보다 심해.”
   “어떤데?”
   “사람이 아니야. 뭔 말인지 알지?”
   “몰라.”
   “맞아. 모르는 게 낫지. 계속 모르길 바란다.”
   태이는 땅굴을 찾는 회사에 취직했다. 휴전선을 넘어 태양궁에 연결된 땅굴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금괴를 가져오면 조금 나눠주기로 약속했다.

   이른 출근과 지각은 구별되지 않았다. 언제 도착하든 홀에는 손님들이 가득 차 있고, 나를 감독하는 사람은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출근 카드에 시간을 조금 당겨 적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지극히 자율적인 직장인 게 불만스러울 따름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율, 자율, 자율. 그 지긋지긋한 자율 때문에 내가 일을 시작했다는 걸 생각해보라고! 제발 나한테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키고 잔소리도 좀 해줬으면 좋겠어. 사장님이 불쑥 나와서 일을 뭐 이따위로 하냐며 걸레 빤 양동이를 걷어찬다든가. 당신이야말로 우리 가게의 보배라며 갑자기 무등을 태워준다든가. 어느 쪽이든 당장에 때려치울 이유로는 충분할 것 같으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수십 대의 CCTV는 내게 무관심했다. 나는 가끔 담배를, 맥주를, 주전부리를 가져다주고 대중없는 돈을 받았다. 정가란 게 없었다.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받고서 당황한 것도 하루이틀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큰 단위의 지폐들. 돈통에 적당한 돈을 넣고 나머지는 내 주머니로 향했다.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은 기억은 없다. 가치라는 건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걸 다시금 새겼다. 끝없이 돌아가는 패……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카드로 게임을 하는 이들…… 아무래도 나는 여기 잘못 온 것 같다. 저 많은 카메라는 대체 뭘 감시하는 걸까?
   “5번 테이블에 앉은 대머리에게 프리지아 한 다발 전해줘.”
   처음 방문한 듯 낯선 손님의 생소한 주문이었다. 날씨에 맞지 않게 팔꿈치까지 오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실례지만 저희에게는 꽃이 준비돼있지 않은데요?”
   “여기 없는 게 어디 꽃뿐이겠어?”
   손님은 지갑에서 꺼낸 오만 원짜리 몇 장을 신경질적으로 내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이 밤에 어디로 가야 프리지아 한 다발을 살 수 있을까. 장미라면 모를까 프리지아를 한여름에 찾는 것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돈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이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럴 때 정중하게 손님을 뿌리치고 ‘저희 가게에서는 꽃을 팔지 않습니다. 차라리 마티니 한 잔을 보내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대신 말해주는 관리자가 있으면 좋겠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한 사람이 어깨를 움츠리고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넓이였다. 갑자기 손님이 내려오는 탓에 중간까지 올라가다 뒤돌아서 다시 내려갔다. 계단을 쓸어내리듯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디딘 그가 나를 스쳐갈 때 썩은 내를 풍겼다. 기다린 사람에게는 왜 아무것도 주지 않나요?
   
   걸어도 걸어도 꽃집은 나오지 않았다. 장사를 마치고 솥을 씻는 분식집의 형광등이 환하게 빛났다. 조금 일찍 나왔으면 순대 한 접시를 시킬 수 있었을 텐데. 짐승이 다른 짐승의 내장을 파먹는 건 끔찍한 일이야. 그렇게 나오신다면 오뎅 한 꼬치. 짐승이 다른 짐승의 살을 갈아 뭉쳐 먹는 것도 끔찍한 일이지. 떡볶이 정도면 괜찮겠어? 그건 너무 빨개. 분식에 관한 형이상학적 토론을 계속하며 걷다가 노란 불을 밝힌 과일 트럭을 만났다. 방울토마토가 있나 봤더니 방울토마토가 있었다. 방울토마토는 대체로 여름에 구하기 쉬운 작물인 것이다.
   “백열등 아래서 덥지 않으세요?”
   오랜만에 사람에게 말을 거는 탓에 쓸데없는 소리를 해버렸다. 그래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 세상에 남은 친절을 증명했다는 뿌듯한 마음 탓이었다.
   “아, 괜찮아. 이건 엘이디야.”
   “방울토마토 한 바구니 얼마예요?”
   “오천 원. 밤이 늦었으니 사천 원.”
   둥글고 노란 전구가 엘이디라니 참 신통하구나. 세상에 뒤처진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검은 봉지에 담긴 방울토마토가 수줍게 뒤척이며 울었다. 긴 밤이 될 거야. 오늘은 집에 갈 때까지 오래 견뎌야 할 것이야. 건네받은 봉지의 입구를 묶으며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지폐를 건네는 내 손이 쓸쓸했다.
   “혹시 근처에 꽃집 있어요?”
   “가다가 약국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오래된 꽃집이 하나 있어.”
   “이 밤에도 꽃을 팔까요?”
   “나야 모르지. 행운이 함께 하길.”
   행운을 상징하는 제스처와 함께였다.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맞부딪히고 어깨를 쓸어내린 뒤 가슴 앞에서 육망성을 그리는 복잡한 동작의,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뜻밖의 축성에 보답이 될만한 인사가 필수였다.
   “많이 파세요.”
   “뭐?”
   “많이 파시라고요.”
   “조금 팔 건데?”
   “네?”
   “적당히 하루하루 겨우 먹고살 만할 정도로 조금씩만 팔 건데?”
   과일 팔던 사람은 화가 잔뜩 난 듯 널어놓은 과일 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결례를 저지른 기분이라 뒷걸음질 치며 자리를 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늘 어려웠다. 부디 하루에 만오천 원 안짝으로 파시길.

   엄마는 꽃이라면 질색을 했다. 무쳐 먹을 수도 없고 마르면 쓰레기나 되는 쓰잘데기 없는 꽃! 비염을 달고 사는 엄마에게 꽃가루 역시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미친 것 같다. 이런저런 영향들에 미쳐서 온전한 정신을 놓아버리고 집 안에만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성향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내게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일부만 미쳐버린 거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그런 제목의 책을 본 일이 있다. 헤롯왕에게 동방 박사들이 찾아갔을 때 왕이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저주를 끊기 위해 굿판을 벌여야 했다. 동방 박사들은 아마도 그런 것을 할 줄 알았을 것이다. 별을 보고 사막을 헤매는 종류의 인간들은 귀신하고도 친할 가능성이 크다. 굿을 하지 않아서 헤롯의 가문은 멸망했다. 기회가 되면 나 역시 굿을 하고 싶다. 굿은 여러모로 굿이다. 굿판을 벌이지 배드판을 벌이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해체한 K-POP 그룹 미쓰에이의 <배드 걸 굿 걸>을 보면 우리네 대중문화에 무속 신앙이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융화돼있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꽃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철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꽃집에서 먹고 자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재채기를 심하게 할 가능성도 있고…… 습기가 기관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더이상 꽃집을 찾아 헤매는 건 무의미하게 생각됐다. 가게 앞에 눈비를 맞고 오랜 세월을 보낸듯한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 앉아 좀 전에 입구를 꽁꽁 묶어두었던 방울토마토를 꺼냈다. 꼭지를 따서 옷소매에 비비는 것으로 잔류 농약에 대한 걱정을 무마시키는 요식 행위를 했다. 흐르는 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토마토를 산 건 너 때문이었다. 오늘 낮 티브이에서는 최불암이 등장하는 <한국인의 밥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전체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은 피디랑 작가들이 가서 담아온 화면인데 최불암은 제일 맛있는 걸 먹을 때만 나타나서 괜한 추임새를 넣으며 밥을 얻어먹고, 김영철이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이십 년쯤 뒤에는 최불암처럼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항 속 돌멩이 위에서 일광욕을 하던 너가 나와 눈을 맞추고 정확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도마도마도마도”
   나는 너가 혹시라도 다른 말을 더하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만족스러운 일광욕을 마친듯 너는 얕은 물에 들어가 몸을 적셨고 거북이는 어째서 오래 살까, 먹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필요한 영양소를 적절히 섭취할 수 있어서인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따져보면 프리지아를 사다 달라는 손님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내게 말한 셈인데, 어째서 너의 요구에는 내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은 반면 손님의 요구는 돈을 받았음에도 진절머리가 나는 것이며 짜증이 밀려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꽃집의 맞은편 빌라 2층은 방충망이 닫힌 채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격앙된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옆에서 떠드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흘러나왔다.
   “이 밤에 내가 왜 커피를 마시자고 할까? 내 기분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어? 그런데 반응을 꼭 그렇게 했어야 해? 계속 얘기하잖아. 지금도 그 얘기 계속하고 있잖아. 반대로, 반대로 생각을 해봐. 내가 나오라 그럴 때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 거 생각하면 내가 어떤 기분이 들겠냐고.”
   그런데 저기요, 그 사람은 밤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는 종류의 고민을 갖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밤에 집에서 나오려고 하면 잠귀가 밝은 식구들이 죄다 깨버려서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소란이냐며 온갖 질타를 받아야 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요? 사실은 그냥 니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사람이 눈치란 게 있어야지.
   시간이 허락되면 격앙된 사람과 몇 마디라도 나누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나는 프리지아 한 다발을 찾기 위해 가게를 나섰고 프리지아는 없다. 노란 꽃 아무거나 가져가서 대충 쇼부를 보자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가게 근처 뚝방에 해바라기가 솟아 있던 것이 기억났다. 손님이 프리지아가 아닌 해바라기를 가져온 것에 전혀 다이죠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미마셍 스미마셍 하다보면 어찌저찌 유두리 있게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가 뭐래도 오까네를 받았으니 완전히 쌩까는 것은 양심리스한 처사였다. 엘이디 조명이 번쩍거리는 풀튜닝한 인력거가 종소리를 울리며 나를 스쳐갔고, 인력거꾼은 에어 조던을 신고 있었다.

   처량하게 밤거리를 걷다보니 지하 보도를 서성거리던 고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타짜>를 백 번도 넘게 봤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은 새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나는 익숙한 것에 파묻히는 걸 좋아했다. 나중에는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도박에 젬병인 고니에 대해서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따듯하고 인간적인 그림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정 마담이 비스듬한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한 어절, 한 어절씩 끊어 말하는 모습.
   “고니를, 아냐고요. 잘, 모르겠어요.”
   정 마담은 정말로 고니를 모르는 것이다. 남원 가구 창고에서 누나가 받아온 위자료를 몽땅 날린 고니는 무릎 꿇고 가족 앞에 사죄한 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며 누나에게 빚을 갚아 나간다. 삼촌과 함께 차린 중식당이 성업하며 파워 블로거들이 즐겨 찾는 지역의 대표 맛집으로 자리매김한다. 젊은 날의 그릇된 선택을 내내 반성하며 명절에도 화투판이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 고니는 광한루에 놀러온 화란이를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사랑하면 좋겠다. 평범한 인생에 스릴 같은 건 적을수록 좋다.
   고니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까?
   벤자민 버튼이 아기로 돌아간 뒤 역의 역으로 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장성할 기회를 얻는다면?
   기다리던 고도가 많이 늦었지만 약속된 장소에 도착해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밥이라도 한 끼 사줄 수 있다면?
   우리에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힘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기회를 날리곤 하지만. 나 역시 원한다면 다르게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프리지아 따위는 잊어버리고 집에 돌아가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도 있다. 잠에서 깬 뒤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하고 국비 지원 교육을 듣고 자격증을 딴 뒤 멀쩡한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월급 받고 세금 내고 보험도 가입하고……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다. 어렸을 적 내 꿈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지구의 환경을 개선한다든가,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한다든가 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당장 계획을 세우고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 사단법인 정도로는 뜻을 이루기 힘들다. 오단법인이나 육단법인 정도는 필요하다. 정관을 만들고 등기 이사도 임명하고 (이사는 태이가 맡아주면 좋겠지만 최근 들어 바빠졌으니 너로 하면 좋겠다) 하루에 한 개씩 선언문을 발표하는 거다. 처음에는 가볍게 「중랑천 물막이 공사에 따른 토종 어류 생식환경 변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 같은 대의적인 것으로 시작해 「북수원 떼까마귀 출몰에 따른 차량 외관 관리 주의의 건」 같은 생활 밀착형 이슈까지 다룰 것이다. 중요한 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같은 시간에 입장문을 게재하는 것이다. 성실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마련이니까.
   대의를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뚝방에 닿았다. 내가 기억하던 해바라기는 그곳에 없었다. 공공근로 하는 사람들이 길게 자란 잡초를 밀면서 전부 꺾어버린 모양이었다. 짧게 잘린 풀이 묻은 마대 자루가 산책로 주변에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어느 자루엔가는 숨이 죽은 해바라기가 젖은 채로 죽어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깟 심부름이 뭐라고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이런 일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나 자신이 초라할 따름이었다. 이대로 집에 가버릴까? 얼른 집에 가서 대의를 도모하는 일에 전념해볼까? 하지만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가지고 사라지는 일은 절도나 사기에 해당하는 일이 될 것이므로 향후에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아무래도 고약한 일을 맡았구나 싶었다.
   야광 조끼를 입은 경찰 두 명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풀에 후레쉬를 비추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눈치였다. 어디선가 딸기 향이 코를 스쳐 갔다. 밤에 딸기는 부끄러워 붉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방울토마토 역시 마찬가지겠지.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경찰이 내 얼굴에 불을 비췄다. 인상을 찌푸렸지만 기분이 나빠서는 아니었다.
   “산책 중이십니까?”
   성의 없는 거수경례를 올린 경찰이 내게 물었다.
   “대충 비슷합니다.”
   “게를 찾고 있습니다. 실종 신고가 들어와서요.”
   “개를 찾으시는군요. 어떻게 생긴 개인가요?”
   “개가 아닙니다. 게입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말을 정정한 경찰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검은 봉지를 향했다.
   “기에요. 기에.”
   옆에 있던 경찰이 강조하듯 다시 말했다.
   “옆으로 걷는 게요?”
   “집게라서 아마 앞으로 갈 거예요.”
   “어두워서 찾기 힘드시겠네요.”
   “혹시 들고 계신 봉지를 좀 봐도 될까요?”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일반적인 절차라고 생각해주시죠.”
   나는 봉지를 주섬주섬 열어 경찰의 얼굴 앞에 갖고 갔다. 안을 들여다본 경찰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이 아주 나빠 보였다.
   “토마토라고 말을 했어야죠. 알레르기가 있단 말입니다.”
   “저희 둘 다요. 토마토라면 질색인데요.”
   천변에서 밤에 만난 두 명의 경찰이 모두 토마토에 알레르기가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들과 만난 사람이 들고 있는 봉지에 방울토마토가 들어있을 확률은? 아무래도 이건 함정인 것 같았다.
   “안 물어봤잖아요.”
   나는 적잖이 억울해서 항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서까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왜요?”
   “일단 가시죠.”
   “싫은데요.”
   “박 순경. 연행해.”
   나는 내 팔을 붙잡으려는 경찰의 얼굴에 방울토마토 봉지를 던졌다. 토마토를 정면에 맞은 경찰이 얼굴을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테이저건을 꺼내려는 다른 경찰을 밀쳐내고 달리기 시작했다. 잘못한 게 없었는데 잘못이 생겨버렸다. 공무집행방해 같은 거로 기소돼도 할 말이 없어져 버린 거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너에게 줄 방울토마토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뛰었더니 옆구리가 급격하게 결려왔다. 더이상은 도저히 뛸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저앉으려는데 어디선가 튀어나온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타라.”
   “누구세요?”
   “사장이다.”

   처음 만난 사장의 몸은 거대했다. 제법 큰 오토바이가 스쿠터처럼 보일 정도였다. 커다란 등판에 몸을 기대고 내 뒤로 멀어져가는 가로등 불빛을 구경했다. 사장을 만난다면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손님들은 대체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가게에 어째서 아무런 간판도 달아 놓지 않은 건지. 정말로 휴일은 없는 건지. 바람 가르는 소리가 너무 커서 말을 붙여도 제대로 된 답을 듣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사장이 나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주리란 보장도 없었다. 말을 걸었다가 무시당하느니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편이 나았다. 궁금증이 많은 직원을 성가시게 생각한다면 앞으로의 근무가 피곤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장에게 잘 보일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사장을 만나고 나니 성실한 직원처럼 보이고 싶었다. 손님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알아주겠지. 사장도 처음에는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원체 집에 돈이 많아 놀고먹다가 별 뜻 없이 시작한 사업이 대박 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런 스타일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예상이 커다란 몸집 때문인지 배기음이 시끄러운 오토바이 때문인지 알 수는 없어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자수성가한 사람에게는 일정 정도 존경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큰돈은 스스로를 돕는 자기충족적 경향이 있으니 모든 부자는 돈에 의해 자수성가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장이 스스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은 것은 그가 일종의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장에겐 사장과 얼굴을 공유하는 열다섯 명의 친구들이 있을 것이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직원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현현할 것이다. 오늘로써 나는 사장의 진짜 얼굴을 본 최초의 직원이 되어 지복을 누릴 가능성이 컸다.
   한참을 달려 사장이 나를 내려준 곳은 가게 앞이 아니었다. 어느 허물어져 가는 건물의 입구에서 나는 내렸다. 사장은 품에서 프리지아 한 다발을 꺼내 내게 건넸다. 꽃잎이 모두 벌어져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야 할 거야.”
   “사장님 왜 저를 태워준 거죠?”
   “고향이 남원이라며.”
   “저 부산이에요.”
   사장은 허파에 구멍이 난 것처럼 숨을 몰아쉬며 낄낄대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버렸다.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는데 태이가 책상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를 보고 있었다. 태이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컴퍼스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닳고 닳은 지도 위에 원을 그려댔다.
   “꽃은 필요 없어. 가고자 하는 곳의 이름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돼.”
   “가게로 돌아갈 거야.”
   “거길 뭐하러? 사람이 아닌 것들뿐인데.”
   “내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어.”
   태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어두운 굴 하나를 가리켰다. 한없이 밑으로 뻗어 있는 구멍이었다.
   “어머니한테 안부 전해줘라.”
   태이의 마지막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굴속으로 몸을 던졌다.

   한때 나는 배치 신고된 경호업체에 소속돼서 온갖 현장에 용역 요원으로 투입된 적이 있었다. 반가사유상이 파업을 하는 현장이었고 가부좌를 틀고 있어야 할 불상들이 모두 허리를 편 채 일어나 있었다. 그제야 세상이 일종의 이차원적 함수 그래프로 표현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들어가는 구멍이 있으면 나와야 하는 게 운명인 거고 서 있는 사람이 누우려면 공간이 필요했다. 점심에는 약속이나 한 듯 휴전 상태에서 삼천 원짜리 도시락을 먹었다. 밀어붙이는 쪽과 버티는 쪽은 어색하게 물을 나눠 마셨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갈 때쯤 흰 봉투에 담긴 일급이 쥐어졌다. 부처님이 배웅해줬다.
   구불구불한 땅굴을 지나 도착한 곳은 가게의 창고 출입문이었다. 대걸레 자루를 밀어놓고 문을 열고 나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거짓말처럼 텅 빈 가게의 끓고 있던 냄비에서 물이 넘치고 있었다. 가스 불을 끄고 다찌에 앉아 어질러진 테이블을 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가게 한편에서 룰렛 위를 플라스틱 구슬이 긁는 소리를 내며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아주 태워버릴 때까지 구슬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영원한 것은 없고 나는 여기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까지 내가 본 것은 많이 취한 사람의 헛소리와 섞인 새벽의 환영과 다를 바 없었다.
   태이의 앵무새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너는 오늘도 돌멩이 위에 앉아 나를 기다릴 것이다. 풀숲을 헤매던 집게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앞발을 다듬을 것이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에 프리지아 한 다발을 올려놓고 기도를 올렸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달라고.

김홍

빈칸이 많은 십 년 일기장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스모킹 오레오』와 단편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를 냈습니다.

2021/06/29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