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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섞정’. 몸을 섞다 생긴 정의 줄임말이었다. 후재는 그 두 음절의 단어로 저와 내 사이를 정의내렸다. 후재는 신장 백팔십 센티가 조금 안되는 덩치 좋은 남자였다. 여기저기 발품을 많이 팔고 다녀서 그런지 하체가 단단했다. 허벅지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부분엔 멋진 근육이 새겨져 있었다. 팔사년 생 서른세 살의 후재는 조금씩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허벅지라고 불러야 할지 엉덩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호한 그 부분만큼은 처음 만난 삼 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후재는 영화 제작팀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바로 군대에 갔던 후재는 상병을 달 때쯤 저보다 열 살 많은 서른 살의 후임을 만났다. 그는 단편영화를 몇 편 찍고 감독님 소리 좀 들어본 그냥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서른 살 후임은 마틴 스콜세지나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보여주며 후재에게 지적 허영심을 심어주었다. 후재는 영화가 하고 싶어졌다.
   서른 살 후임의 조언으로 야간 대학 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학교 선배 소개로 상업 영화 현장에 발을 들였다. 그때부터 승합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배움은 없어 보여도 쾌활했던 후재는 이런저런 영화 현장에 잘도 불려 다니다가 제작부장까지 달았다. 후재를 만난 건 각색 작가로 참여했던 어느 영화의 뒤풀이에서였다. 말도 안되게 밝은 보라색 머리라고 생각했다. 튀고 싶어 안달 난 양아치인가 싶었는데 후재의 보라색 머리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후재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트랙터 운전을 해야 했던 농촌 출신이었다. 제 출신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인 듯 떠벌리고 다녔지만 사실은 콤플렉스였다. 제대 후 홀로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부터는 줄곧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보라색 머리는 차츰 색이 바래 노란빛이 돌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는 금발 머리가 더 어울렸다. 후재와는 영화 뒤풀이 날 만취했던 새벽 이후로 삼 년을 몸을 섞었다. 삼 년 동안 별다른 균열도 없이 꾸준히 ‘섞정’을 쌓았다.
   지난봄. 후재는 나에게 신대방동의 어느 모텔에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 몇 주 뒤면 크랭크인(crank in)을 하는 영화의 앞 풀이 자리를 끝낸 뒤 신사동에 있었다. 나는 집까지 가기 귀찮아서 후재랑 자고 갈까 싶었던 터였지만, 신대방동에 가느니 혜화 집으로 가는 게 나았다. 후재는 나를 설득했다. 신대방동의 모 모텔에 가면 나를 닮은 여자가 있다고 했다. 그 모텔의 302호에 그림이 하나 걸려있는데 그 그림 속 여자가 식겁할 정도로 날 닮았다고. 좀처럼 몸이 달아오르지 않는 여자친구를 겨우 붙잡아 모텔에 들어갔는데 ‘섞정’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제대로 서질 않았다고. 후재는 취하면 나를 ‘섞정아’라고 불렀다. 섞정아, 한 번만 가자. 너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되게 작품 같은 그림이라니까. 모텔말구……. 그래, 코끼리 열차 타고 가는 거기……. 코끼리 열차라니. 비웃음과 함께 답을 알려줬다. 과천 현대 미술관? 후재는 속없이 웃었다. 어, 그래 맞아 거기. 그런 데 있어야 할 거 같은 그림이었어. 택시비는 후재가 내기로 했다. 법카 쓰면 안 되겠지. 후재가 중얼거렸다.
   신대방동의 모텔에서 나는 나에게 남은 운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다. 후재나 나나 서로의 옷이나 벗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들어간 모텔이었다. 하지만 그 신대방동의 모텔은 302호를 우리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후재는 무척이나 실망했다. 시무룩해진 후재를 다독이며 302호의 옆방, 303호로 들어갔다. 후재와 나는 서로의 몸을 지분대다가 관둬버렸다. 후재는 잠이 들었고 시끄럽게 코를 골았다. 베개를 후재와 내 머리 사이에 세워두고 아주 두꺼운 파티션을 갖다 놓은 것처럼 상상했다. 잘 되지 않았다. 방안에 마련된 샤워가운을 입고 남은 맥주를 마셨다. 개새끼야, 내가 이렇게 살려달라고 하잖아. 때리지마. 살려달라고 새끼야. 새된 여자의 외침이 들렸다. 옆방 302호였다. 어딜가나 저렇게 변태 행위를 즐기는 ‘섞정’이 존재했다. 서로를 때리고 할퀴고 조르고. 잠을 자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변태들과 코골이 사이에서 뜬눈으로 지새워야겠구나 각오를 했다. 그런데 302호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자는 연이어 비명을 지르며 애원의 목소리를 내었고, 의당 들려야 했을 야하고 찰진 사운드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고민을 했다. 먹고 사느라 남은커녕 가족도 살피지 못하는 내가, 어쩌면 변태 성행위를 즐기고 있을 연인들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간섭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원래 그렇게까지 이타성이 발달한 인간이 아니지 않나. 그래도 나는 매달 이만 원을 인권운동 단체에 기부하고 있었다. 그 단체가 지켜주려고 하는 많은 인권 중 하나가 여성 인권이 아니었나. 그 안에는 남편에게 맞는 여자,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여자 등 여하튼 얼마나 불합리한 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이 많았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고, 나는 샤워가운을 추스르고 방을 나섰다. 망설이지 않고 302호의 문을 두드렸다. 만약에 저 안의 여자가 내가 도와줄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후재가 말했던 나 닮은 그림이나 재빨리 보고 나와야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노크를 몇 번 한 후에야 302호 안에서 응답이 들렸다. 뭐야, 씨발. 나는 대범하게 대응했다. 경찰입니다. 잠시 문 좀 열어주세요, 선생님. 302호의 선생님은 거칠게 문을 열었다. 내가 걱정했던 민망한 상황은 아니었다. 여자는 충분히 도움이 필요해 보였고, 302호 선생님은 역시나 맛이 간 놈이었다. 그는 돌연 나를 방안으로 끌어당겼다. 302호의 문이 닫혔다. 내 손목을 쥔 302호 선생님. 그의 길고 마른 맨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몸에는 수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콧물도, 침도, 피도, 땀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몸. 스무 살 여름, 봉긋한 패드가 장착된 내 가슴에 손을 얹던 중학생 남자애. 10층의 아빠 집까지 올라가던 아빠 집까지 올라가던 엘리베이터 안. 그 애도 만지면 푸석 거릴 것 같은 몸을 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말라서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쿠쿠다스 같은. 니년들 둘이 덤벼도 나 못 이겨. 쿠쿠다스 중학생이 자라나 302호 선생님이 된 거 같았다. 그 중학생 남자애는 알고 보니 아빠네 앞집에 사는 애였다. 아빠 말로는 아침마다 엄마와 포옹을 하고 등교를 하는 귀여운 애랬다. 아니다, 니네 둘이 싸워 봐. 링 위라고 생각하고 침대 위에 올라가서. 여자가 속옷만 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 이제 안 때릴 거야? 살려줄 거냐고. 선생님은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여자는 대단히 큰 결심이라도 한 눈빛으로 침대 위에 올라갔다. 언니, 신고도 하지 말고 저항도 하지 마요. 기왕에 도와주려고 왔으면 저 새끼가 하자는 대로 해. 어쩐지 결연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다 포기한 듯한 눈을 하고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후 십오 년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아빠한테 얻어맞은 건 그냥 맞아준 거였다. 엄마는 서두르지 않고 집 나갈 준비를 했다. 가능한 한 아빠에게서 먼 곳에 집을 얻고, 내 전학 수속을 밟고, 돈이 될만한 물건을 빼돌리고.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과 고삼이었던 나. 둘 중에 누굴 데려갈지 고민하긴 했다. 그러다 엄마는 남편의 단점만 닮은 듯한 딸이 불쌍해졌다.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간택’되었다. 엄마의 주도면밀한 ‘출가’에 아빠는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애나 가끔 보내라. 남매 사이를 갈라놓으면 쓰겠냐. 아빠는 묘하게 엄마 탓을 했다.
   여자는 침대 위에서 두 주먹을 쥐고 어정쩡한 포즈로 서 있었다. 혹시 이건 내가 걱정했던 민망한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302호 선생님과 여자는 합의를 보았고 나는……. 너도 올라가라고, 이년아. 선생님이 내 뺨을 쳤다. 그때 정신이 들었다. 후재가 얘기했던 그림, 그 그림이 어딨나. 뺨을 맞아 꺾인 고개를 들어 302호 방안을 두리번거렸는데 그림 따위는 없었다. 후재는 아랫도리가 무거운 편이 아니었다. 후재가 제가 갔던 수많은 모텔 중에 신대방동의 특정 모텔을 기억해냈다는 것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선생님이 나를 본격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거 맛 간 년 아니야? 나도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았다. 선생님은 머리채가 잡힌 채로 나한테 발길질을 해댔다. 침대 위의 여자는 나와 선생님 중에 누굴 응원해야 할지 몰라 복싱 자세를 어정쩡하게 유지한 채 서 있었다. 벨이 울렸다. 손님,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은 손의 힘을 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선생님은 나를 넘어트리고 그 위에 올라타 내 목을 조르는데 문이 열렸다.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무장한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일명 발리송이라 불리는 지명 수배범을 찾고 있었다. 발리송은 발리송 나이프로 세 명을 죽이고 두 명을 중태에 빠트린 채 도주 중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발리송 나이프는 일종의 주머니칼로 맥가이버칼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그 작은 칼로 세 사람을 잔인하게 보내버린 발리송이었다. 그리고 2016년 봄, 현존하는 칼잡이 발리송(41세, 남)은 신대방동의 모텔에 숨어들었다. 그를 쫓던 경찰들은 모텔 방 하나하나를 뒤졌는데 그러다가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올라타 목을 조르는 순간을 목격했다. 칼잡이를 잡으러 왔다가 살인 미수범을 먼저 잡았다. 내가 경찰이라면 신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세상엔 왜 이리도 미친놈들이 많은가. 신대방동 모텔 안에는 대체 몇 명의 미친놈들이 처박혀 있는가. 발리송 그 새끼, 여기서 벌써 토낀 거 아냐? 경찰 중 하나가 선생님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아저씨, 좀 이따 봅시다. 아가씨들은 옷 좀 추스르고. 조서 쓰러 가야지. 경찰은 살인 미수범한테는 존댓말을 쓰는데 나와 침대 위의 여자에게는 슬쩍 말을 놓았다. 그때 이 경찰 아저씨들아 왜 함부로 말을 놓니?라고 따졌어야 했을까. 내가 그걸 따져 묻느라 경찰들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었다면. 그랬다면 칼잡이 발리송은 별일 없이 모텔을 빠져나갔을까. 누군가의 목덜미에 발리송 나이프를 들이밀고 인질극을 벌이지 않았어도 됐을까. 아니다. 어쨌든 발리송은 누구든 인질 하나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도주 생활에 지친 발리송은 성인 남자를 보면 무턱대고 사복 경찰로 의심했다. 경찰들을 피해 신대방동 모텔에 들어온 발리송은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투숙객의 지갑을 훔쳤다. 더 이상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코골이를 심하게 하며 자고 있던 지갑의 주인을 뒤로하고 문밖 상황을 살폈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콘돔을 손에 들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왠지 어색해 보였다. 발리송은 남자가 사복 경찰이라 생각했다. 대체 몇 명의 경찰 새끼들이 저를 쫓고 있는 것인지 두려웠다. 제가 훔친 지갑의 주인을 깨워 칼을 겨눴다. 모텔 밖에는 도주를 도와주기로 한 동료가 차를 대고 기다렸다. 냉철한 동료는 약속 시각을 어기면 단 일 분도 지체하지 않겠다고 몇 번을 말했었다. 발리송은 비몽사몽 팬티 바람의 인질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복도에서 비명이 들렸다. 무척이나 저음의, 두꺼운 비명이었다. 경찰 둘과 나, 복싱 자세를 풀고 침대 위에서 내려온 여자, 수갑을 찬 선생님. 이렇게 다섯명이 복도로 뛰쳐나갔다. 한손에 콘돔을 든 풍채 좋은 남자가 시동 걸린 바이크의 모터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모터가 돌아갈 때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덜덜덜. 내가 그 남자에게 한눈팔고 있을 때, 후재는 삼십삼 년의 인생을 마감할 뻔한 칼끝과 마주하고 있었다. 섞정아……. 후재는 그 와중에도 술이 덜 깨었는지 나를 섞정아라고 부르며 울상을 짓고 서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발리송의 키가 후재보다 커서 발리송의 한쪽 손에 목이 감긴 채 붙잡혀 있는 후재의 꼴이, 앉아있는 것도 서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는 아니었다는 것. 두 다리를 제대로 펴고 서 있는 후재가 그렇게까지 모양 빠지는 인질은 아니었다는 것. ‘사나이는 가오 빼면 시체’라는 철 지난 슬로건을 외치던 후재는 <스카페이스> (브라이언 드 팔마, 1983)의 알 파치노를 동경했다. 1980년대의 알 파치노에게서는 후광이 보인다고 했다. 그때의 알 파치노는 얼굴이 참 뺀질뺀질한 게 후광은 몰라도 낯빛에 기름기가 가득하긴 했다. 후재는 그냥 젊은 알 파치노의 패기를 닮고 싶은 것 같았다. 서른 줄에 들어서면 같이 성장해 온 친구들에게서 패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되는 법. 그들에게 패기는 먹고 살아가기 힘들게 만드는 치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후재는 깨달았다. 아무리 스스로 배움이 짧다고 인정하는 후재도 그정도는 알았다. 후재는 제작부장을 달기 전까지 깽값으로 칠백만 원 가까이 써야 했다. 후재말로는 먼저 시비를 걸어오는 놈들을 상대했을 뿐이랬다. 깽값은 좀 나왔지만 가오는 지켰다고 자부했다. 후재는 싸움을 잘하긴 했다. 그래도 발리송 나이프를 목덜미에 들이댄 지명 수배범에게 함부로 덤빌 순 없었다. 후재는 스스로 배움이 짧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머리를 잘 굴렸다. 설마 이 새끼가 날 찌르겠어? 인질은 살아있어야 유효한 거지. 영화에서도 인질을 죽인 범인은 다 뒈지잖아. 지가 지를 죽이던가, 총을 맞아 뒈지던가. 설마 이새끼 머릿속에 나를 죽이고 지도 죽는 계획이 있진 않을 거야. 그렇게 모두가 불행해지는 머리 나쁜 판단을 할 리 없어. 지도 살고 싶으면 현명하게 굴겠지. 후재가 자기 목을 나이프로 겨누고 있는 발리송이 이미 다섯 명의 급소를 몇 차례씩 찌르다 못해 후벼 파 댄 악질이라는 것을 아는 편이 나았을까. 그랬다면 체념하고 나도 죽고 너도 죽자라는 마음으로 발리송에게 덤벼보기로 했을까. 애초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 저 사람 나이프로 찔러대고 다니지 않았을 텐데.
   후재는 수술 경과가 좋았음에도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발리송에게 찔린 곳은 총 세 군데. 목덜미 부분은 간신히 급소를 피해갔고, 어깻죽지 한번과 옆구리 한번. 친절한 한의사가 침을 꽂기 전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짚어가며 아픈 곳을 묻듯. 발리송은 후재의 오른쪽 상체를 그렇게 짚어가며 찔렀다. 그런데 의외로 그 세 군데의 상처는 잘 아물었다. 저도 김후재님이 왜 깨어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주치의가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리 말해서 나도 그런가 보다 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리에 난 상처 때문인가……. 거기도 거의 아물었는데 정말 이상하네요. 그렇다고 퇴원할 수도 없고 어떡하죠, 보호자분. 나는 보호자도 뭣도 아니었고 후재의 여자친구를 피해 간신히 두어 번 면회를 갔을 뿐인데. 후재는 마지막으로 옆구리를 찔렸을 때 옆으로 고꾸라지면서 벽에 부딪혔다. 후재와의 충돌을 견디지 못한 벽이 제 몸을 붙들고 있던 액자를 놓쳐버렸다. 액자는 그대로 후재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그 모습까지 지켜보던 발리송이 돌연 몸을 돌려 도망쳤다. 경찰들이 그 뒤를 쫓았지만 발리송은 창문을 통해 3층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멋지게 착지. 와이어를 달고 허공을 나르던 배우를 보고 넋을 잃던 후재였는데. 좋은 구경을 놓치고 모텔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찔린 곳이 세 곳이라 어디부터 지혈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도 제일 위험한 건 목이겠거니 싶었다. 나는 입고 있던 샤워가운의 아랫자락을 후재의 목덜미에 가져갔다. 후재 옆에는 후재에게 마지막 타격을 가한 액자가 떨어져 있었다. 아이고, 후재야 네가 찾던 그림 여기 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른 몸에 가슴도 없고 아랫배가 살짝 나온, 초점 없는 큰 눈. 액자 속 벗은 몸의 여자는 나를 닮아있었다. 후재야, 근데 이 여자 못생겼어. 새끼야. 수갑을 찬 302호 선생님이 후재 대신 넋을 잃고 발리송이 막 뛰어내린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경찰들은 자기네들은 뛰어내리지 못하니까 계단으로 내려갔다. 이미 한보가 아니라 천 보는 늦었다는 걸 아는 모양새였다. 302호 여자는 방에서 수건을 가져와 후재의 어깻죽지와 옆구리를 막아주었다.

   302호 여자와 나는 경찰서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내 경우는 후재의 여자친구라는 이유로 일단 발리송 사건의 참고인으로. 302호 여자는 내 목을 조르던 302호 선생님 사건의 참고인으로. 내 맞은편에 앉을 담당 형사를 기다리는 중에 나는 옆자리에 끼어들어 한몫을 하고자 했다. 나는 이타심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기왕에 도와주기로 한 것 제대로 하고 싶었다. 제가 목 졸린 것보다 이 여자분이 폭력을 당하고 있던 게 먼저라니까요.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서 제가 들어갔고……. 네? 아니, 형사님. 남녀가 모텔에 들어가면 뭘 하겠어요? 보통은 피곤해서 자든가, 합의하에 뭔가 하든가 둘 중 하나죠. 대개 합의하에 뭔갈 하는데…… 그 뭔가가 폭력은 아니잖아요. 아니요, 아니. 제 말은, 남다른 취향 같은 거 말구요. 맞으면 기분 좋아지구 그런 거 아니구요. 그러니까 제가 그 방안에 안 들어갔으면 형사님들은 살인 미수범이 아니라 살인범을 잡았을 수도 있죠. 아, 이건 너무 갔나. 어쨌든, 살인 미수범 놓치고 살인 미수범이라도 잡았네요. 사실 그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입바른 소리를 해댈 수 있었던 건 구급차에 실려 가던 후재가 나한테 멀쩡하게 한마디 했기 때문이었다. 섞정아, 나 영화배우 된 거 같아. 후재가 그런 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난 후재가 죽긴 글렀구나 싶었다. 걱정을 덜 해도 되는구나 싶었다. 화장실에 갔다던 내 담당 형사가 돌아왔다. 가만 보자. 이름이 뭐랬죠? 김석정 씨? 나는 형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닌데요, 제 이름. 아니 아까 남자친구 분이 그렇게 부르던데. 사실 남자친구도 아니에요. 그럼 왜 모텔엔 같이 갔습니까? 갈 만하니까 갔죠. 뭐요? 허, 참…… 알겠어요, 그러면 왜 김후재 씨랑 같이 303호에 있지 않고 302호에 있었던 겁니까? 그러니까 그 얘길 옆쪽에도 하고 있었던 참인데요. 그 얘길 다시 나한테 해주면 되겠네, 이름부터 말하고. 왜 반말해요? 반말은 무슨, 말하다 보니까……. 말끝 흐리는 것도 반말이에요. 말끝 흐리지 마세요. 이봐요, 김석정 씨. 아니지, 참. 당신 진짜 운 좋은 거 알아요? 303호에 있었으면 발리송 그 새끼가 김석정 씨……. 아니, 당신을 인질로 잡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여자를 인질로 잡는 편이 훨씬 유리하니까. 형사는 내가 운이 좋았다는 얘기를 참 재수 없게도 했다. 분하게도 그 말에 움찔하긴 했다. 내가 또 운이 좋아 버렸구나. 몇 년 째 궁상떨고 살아서 세상 모든 운이 나를 피해가나 싶었는데. 302호의 비명이 나를 살렸구나. 형사의 말을 인정해버렸다. 그리고 ‘김석정’이라는 풀네임은 대체 어디서 만들어진 건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운이 좋았던 탓에 칼빵을 세대, 액자빵을 한 대 맞은 후재가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섞정아, 섞정아 중얼거리긴 했었는데.

   후재의 여자친구(25세)가 울었다. 타이밍 좋게 마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후재의 여자친구를 세 번째 면회 때 마주쳐버렸다. 공항에 가기 전 후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후재는 사고가 일어난 후로 한 달 째 깨어나지 못하고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다. 주치의는 이제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가 부러진 환자를 후재보다 더 살피는 듯했다. 그는 한 달 째 누워있는 후재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후재의 여자친구를 보았다. 우리 두 사람을 몇 번 씩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주치의(30대 후반 추정, 남)는 출세를 못 할 사람이었다. 윗사람 앞에서 아닌 척, 모르는 척, 좋은 척 적당히 구라 칠 능력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둘 중에 누가 여자친구냐고 묻지는 않았다. 주책맞게 또 오셨네요. 라며 나에게 아는 척을 해오지도 않았다. 그저 예의 무기력한 표정을 지으며 맥박 체크를 한 후 형식적으로 고개를 까닥하고는 사라졌다. 후재의 여자친구는 연신 훌쩍대며 말했다. 연락이 없길래. 전화하니까 오빠네 어머니가 받으시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싸우지 말걸. ‘이럴 줄 알면 싸우지 말걸’. 예쁜데 연기력은 딸리는 여자 탤런트가 아침 드라마에 나와서 하는 대사 같았다. 후재의 여자친구는 탤런트마냥 예쁘긴 했다. 그냥 걔랑은 맛있는 거나 먹으러 다녀. 후재의 심드렁한 말투가 떠올랐다. 아니다. 맛있는 것만 먹으러 다니기에는 지나치게 몸매가 좋았다. 가슴도 컸다. 나처럼 패드를 장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김후재 이새끼야, 너 얘 데리고 맛집만 찾으러 다니기엔 힘들었겠다? 곤히 자고 있는 듯한 후재에게 묻고 싶었다. 가련하게 눈물을 보이는 후재의 예쁜 여자친구를 보고 있자니 후재가 운이 아주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후재는 괜찮은 여자들만 골라 사귀었다. 자기는 알 파치노 꼬봉처럼굴면서 착하고, 어리고, 이목구비가 반짝이는 그런 여자애들을 잘도 만났다. 그래도 여자 운 하나는 좋은 편이었다. 더럽게 재수도 없이 모텔에서 칼을 맞았지만 수술 경과는 좋으니 돌연 깨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깨어나면 섞정아 나 형사 영화 찍은 거 같아. 그런 소리를 해댈 수도 있었다. 칼빵 맞고 쓰러질 때 얼마나 멋있었는지 물어볼지도 몰랐다. 그렇게 들떠서 예쁘고 어린 여자친구에게 ‘오빠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늘어놓을 수도. 물론 사고 당일 모텔에서 누구와 있었고 무얼 했는지는 이런저런 살을 붙이겠지만. 근데 후재야. 너 발리송한테 주먹질 한번 못해보고 쓰러졌잖아. 그거 니 슬로건에 위배되는 거 아니냐? 사나이는 가오 빼면 시체. 멀리 미국에서 알 파치노 형님이 혀를 차고 있겠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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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사이 관광객이 제법 늘었을 텐데도 그 공항은 변함이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코앞이 입국심사대였다. 그 뒤로 계단 몇 개를 내려가면 맡겨두었던 짐을 찾을 수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동선이 짧아 기분이 묘했다. 타국에 왔음을 느끼는 건 낯설고 복잡한 공항에서부터 시작되는 건데.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웬만한 식당보다 나은, 먹거리가 즐비한 편의점. 지역 특산물인 소고기를 패티로 사용한다는 패스트 푸드점 겸 카페. 작지만 알찬 면세점. 공항에 없으면 섭섭할 등산복과 골프웨어를 적당힌 섞어 입은 중년의 패키지여행 팀까지. 국내선만 운항하던 것을, 이 층 건물에 한 층을 더 올려 국제선을 취항한 지 칠 년째였다. 취항이라고 해봤자 두세 시간 거리인 이웃 나라의 도시 몇 개뿐이었다. 그 도시들 안에 서울이 포함되었다. 하루에 단 두 편만이 서울을 오고 갔다. 오전 열한시쯤 서울에서 출발해 오후 한 시경이면 그 공항에 도착했다. 그 비행기가 다시 사람들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처음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고 서울을 떠나 그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대전쯤 온 기분이었다. 한 시간 오십 분의 비행시간, 착륙 후 삼사십 분이면 빠져나오는 공항의 동선. 내 예산을 보고 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 동네를 추천해준 유학원 직원의 말을 떠올렸다. 아마 공항에 도착하면 당황 좀 하실 거에요. 지나치게 합리적인 공항이라. 짐 찾으면 바로 뛰어나가서 앞에 서 있는 버스를 타세요. 그거 타면 동네까지 우리 돈 오천 원이면 가는데 놓치면 다섯 배 정도 주고 택시 타야 하거든요. 들어가는 버스가 하루 한대에요. 그래도 서울발 비행기 맞춰서 버스 대기 시켜놓는 거 기특하잖아요. 버스는 오년 전과 변함없이 푸르고 지루한 논밭을 끼고 달렸다. 언젠가 내 워킹홀리데이 시절을 궁금해하던 후재에게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보는 게 논밭, 논밭, 논밭이라고 말해줬더니 진절머리를 쳤었다. 열세 살 때부터 아버지한테 욕 들어가며 트랙터를 몰던 기억이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그딴 촌 동네가 무슨 외국이냐? 그랬음에도 후재는 나를 다시 오년 전 그곳으로 밀어 넣었다.

   후재는 술이 들어가면 우리가 나눈 얘기의 반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게 내가 후재에게 주절거리게 만드는 이유였다. 평균적으로 반이라는 거지, 어떨 때는 나하고 같이 술을 마셨다는 상황만 기억할 때도 있었다. 내가 누굴 죽였다는 고백을 해도 높은 확률로 기억 못 할 후재였다. 한번은 오년 전의 타국살이에 대해 조서 작성하듯 자세히도 떠들어댔던 적이 있었다. 워낙에 방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다음 날 모텔에서 일어난 후재는 단 하나의 에피소드도 기억하지 못했다. 너 여자친구한테는 그러면 안 돼. 뭐가? 여자친구가 한 얘기 기억 못 하고 그러면 차인다. 걔는 나한테 얘길 안 해. 그럼 뭐하는데? 그냥 걔랑은 맛있는 거나 먹으러 다녀. 여자친구가 김후재 너랑 비슷한가 보다. 응, 나랑 비슷해. 걔는 근데 술 안 먹어. 술 안 먹으니까 별 얘기도 안 하고. 내가 하는 건 별 얘기고? 별 얘길 했으니까 꼭 담날 기억나냐고 묻는 거잖어. 이새끼, 생각보다 똑똑하네. 말 좀 곱게 써. 니가 좋아하는 알 파치노가 스카페이스에서 몇 번이나 FUCK을 외치는 줄 알아? 몰라, 영어 못 알아들어서. 야, 너 스카페이스 열 번 봤다며. 그래도 영어는 하나도 안 들려. 자랑이다, 멍충아. 신대방동 모텔에 들어가기 전에 후재는 모텔 앞에서 담배를 하나 피우자고 했다. 그 담배 때문에 후재가 각성했는지도 몰랐다. 반쯤 감긴 눈으로 후재가 어눌하게 말했다. 나는 니가 거기 한번 가봤음 좋겠어. 그때만 해도 나는 나 닮은 여자를 보러 모텔에 가자는 소린 줄 알았다. 이 새끼가 취해서 지가 말하던 신대방동 모텔 앞에 서 있는 것도 모르는구나 싶었다. 지금 왔잖아, 담배 끄고 빨리 들어가 그럼. 후재는 아예 눈을 감고 말하기 시작했다. 걔도 운 좋게 살았을 수도 있잖아. 니가 걔 죽는 거 봤어? 넌 가끔 너무 섣부르게 판단해. 뭐, 그래놓고 당황하는 게 귀엽긴 한데……. 후재는 저도 모르게 담배를 떨어트렸다. 1년 전 담뱃값이 올랐을 때부터 담배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짧아질 때까지 기를 쓰고 물고 있던 후재였다. 역시 후재는 취한 게 맞았다. 취한 건 맞는데, 돌연 기억이 돌아온 것뿐이었다. 둘이서 소주를 네 병 반을 나눠마신 날 내가 했던 얘기를 후재는 몇 개월 후 신대방동의 모텔 앞에서 기억해냈다. 비행기 타고 두 시간이면 가는데 그냥 가봐라 좀. 가서 걔가 살아있으면 걔랑 한 번 더 해. 아니 두 번은 하고 와야지. 졸라 멋진 사내가 되어있을지 모르잖어. 야 내가 지금 표 끊어주께. 후재는 돌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핸드폰을 꺼내 항공사 앱을 눌렀다. 나는 그런 후재에게 입을 맞췄다. 아 이 새끼 다 기억했어. 후재를 어린 여자친구에게 맡겨두고 병원 복도를 걸으며 후재가 깨어날 때까지 이제 면회는 그만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순간. 아이폰 화면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2016. 3. 24 11:00 인천발… 3일 전입니다.’ 후재는 그 취한 와중에도 기어코 예매를 해냈다.

   재수 없게도 글 쓰는 재주를 닮아서……. 뭐해 먹고 살지 나한테 묻지나 말아라. 대학교 졸업식 날. 설렁탕과 오징어순대를 사주던 엄마. 닮으려면 니 아빠 잘난 상판이나 닮지……. 뭐, 그래도 졸업한 건 장한 일이다. 서울 변두리 대학의 국문과를 나와 무얼 해 먹고 살지 고민이 되긴 했다. 입학할 때부터, 졸업 전까지 등단하지 못하면 소설가는 관두자는 마음이었다. 오로지 등단을 목표로 하며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에게까지 무책임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너는 재주는 있는데 열정이 없어. 글 쓰는 거 별로 재미없지? 아빠가 선배랍시고 충고해주는 게 싫었다. 아빠는 신인상이 아니라 노력상 받은 거네. 다 늙도록 포기를 모르니까 격려차 주는 노력상. 근데 나는 노력상은 싫어. 패전 군인한테 주는 초콜릿 같아서. 옆에서 깍두기를 집던 엄마가 실실 웃었다. 엄마는 깍두기를 아빠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나불대는 재주도 똑 닮은 게 소름 끼치지, 당신? 먹고 살길은 의외로 금방 찾았다. 입시 학원에서 논술 강사를 하던 중에 선배 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일찌감치 등단은 때려치우고 드라마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너 영화 좋아했지? 가끔 시나리오도 쓰고 그랬잖아. 에이, 언니 그거 재미로 몇 번 끄적인 거죠. 아니야, 내 기억엔 너 소설보다 시나리오 쪽이었어. 그때 영화과 수업 같이 들었을 때 교수가 너 맘에 들어 했잖아. 글 잘 쓴다고. 아, 그거요. 그건 언제 한번 다 같이 술 먹었잖아요. 그때 내가 입바른 소리 좀 했거든. 그 뒤부터 내 눈치 보느라……. 야, 됐구 너 각색 작가 한번 해봐. 뭔 작가요? 요즘 좀 잘나가는 감독인데, 그 밑에서 책 좀 고쳐줘. 뭔 고집인지 초짜 작가 찾는대. 내가 하려다가 기성 작가들은 신선함이 떨어지네 어쩌네 하면서 말이 많드라. 잘나가는 감독님은 정말 말이 많았다.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감독님, 그렇게 현학적으로 표현 안하셔도 되는데. 그냥 대놓고 말하셔도 저 상처 안 받고 잘 쓸 수 있어요. 감독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스물네 살의 어리고 경력 없는 여자애쯤은 홀랑 넘어오게 하고도 남을 현학적인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나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혹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나이와 직업 때문이었다. 예술하는 하는 아저씨(45세, 남). 자연스럽게 아빠가 떠올랐다. 나는 그 감독 밑에서 팔 개월 정도 버티다가 나보다 더 어리고, 귀엽고, 예술하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다른 작가에게 밀렸다. 그 후 스물다섯이 되던 해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모아둔 돈이 오백뿐이라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한국말로 풀어 읽으면 ‘자하’라는 이름의 동네였다. 오년 전 자하에 도착했을 때, 시골 온천마을의 고즈넉함을 기대해도 좋다던 유학원 직원의 말과는 달리 자하의 공기는 어수선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읍장’이 몇 개월 전 급사를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보궐선거를 치른 뒤였다. 원래 그 시골 동네에 온천을 하러 오는 이들은 깃발 들고 떼를 지어오는 중년들뿐이었다. 고인이 된 전 읍장이 싼값의 패키지여행 상품을 만들어 놓은 덕분이었다. 새로 당선된 젊은 읍장은 안 그래도 고령화된 동네에 가끔 오가는 관광객들마저, 기차 타고 오는 국내 여행객들부터 비행기 타고 오는 외국인들까지 죄다 어르신들인 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재빨리 ‘자하 워킹 홀리데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자하는 물가가 쌉니다. 인심은 후합니다.’ 읍장이 직접 만들었다던 이 문구에 나 같은 가난한 청년들 여럿이 혹했을 터였다. 유학원 직원은 물가도 싸고 인심도 후한데 시급은 서울의 두 배라며 적극 권유했다. 나는 자하에 도착하자마자 동네에서 제일 큰 마트에서 캐셔로 일했다. 실제로 받은 시급은 서울의 1.7배 정도였다. 시간당 팔천 오백 원을 받는 셈이었다. 당시 서울의 최저시급은 오천 원이 못 되었다. 서울과 비슷한 물가이면서도 시급이 서울의 1.7배라는 것. 타국살이를 경험해보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일을 하며 누가 봐도 급조된 티가 확 나는 어학원도 잠깐 다녔다. 실은 학원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동네에 있는 물류 회사의 남는 방 서너 개를 빌려 책걸상을 넣어놓은 정도였다. 그래도 레벨 별로 반을 나누는 체계 정도는 잡혀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더듬더듬이나마 글자는 읽을 수 있게 배워갔던 터라 기초 2반에 들어갔다. 마트에 오는 손님들의 말을 눈치 반 듣기 반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찰스를 만났다. 찰스는 읽기로 치면 기초 3반에 가야 할 실력인데 회화는 제법 할 줄 알아서 기초 2반에 오게 되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서울 깍쟁이처럼 말간 얼굴을 하고서는 닉네임이 찰스니까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그때 기초 2반에 앉아있던 나와 중국 애들 셋은 뭐 어쩌라고 라는 표정으로 찰스를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찰스는 결혼한 누나가 사는 영국에서 반년 정도 체류를 했던 모양이었다. 본명이 박철승인데, 영국 애들이 철승을 자꾸 처르스라고 불렀고 그게 찰스로 굳어졌다고 했다. 나는 중국 애들 아니면 한국 애들 뿐인 어학원에서 굳이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마트에서 일을 하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일주일에 40시간을 꽉 채워 일하며 돈 모으는 재미에 살았다. 찰스는 내가 일하는 마트에 자주 장을 보러 왔다. 주로 프리미엄이 붙은 비싼 맥주나 베이컨 같은 걸 사 갔다. 어학원에서 젊은 여자 선생님들이 속닥이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기초 2반에 한국인 남자가 새로 들어왔다, 잘생겼다, 스물여덟 살이다, 한국에선 뮤지션이었다더라, 한국인 남자친구는 어떨까, 오늘 회식에 오라고 할까……. 계산을 하며 앞에 서 있는 찰스의 얼굴을 힐끔댔다. 여기 나이로 스물여덟이면 한국에서는 서른. 나하고는 다섯 살 차. 아저씨구만. 뮤지션? 저 말간 얼굴로 현학적인 가사나 읊으며 여자 꽤나 만났겠지. 이따 밤에 같이 담배 필래요? 술 먹자, 밥 먹자 그런 말들 하다가 지루하니까 저런 대사를 다 읊나 싶었다. 그쪽 건너편 집에 살아요, 나. 흰색 페인트칠한 목조 건물……. 거기 살죠? 난 그 앞에 맨션 사는데. 밤에 나와서 담배 피는 거 몇 번 봤어요. 예술하는 아저씨들은 싫었다. 등단 후 엄마 때리는 거 말고는 하는 일이 없었던 아빠, 변태 현학자 같던 영화감독. 나는 찰스를 빤히 보며 예술하는 아저씨 주제에라고 머릿속으로 비웃었다. 캔맥주도 한잔해요, 그럼. 나는 그저 찰스가 계산대에 올려놓은 보통 맥주보다 이천 원이 더 비싼, 프리미엄 딱지가 붙은 그 캔맥주의 맛이 궁금했다.
   찰스는 말하자면 작곡가였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곡 만들었소’라고 말할 입장은 못되었다. 작가로 치면 유령작가였다. 찰스의 대표작은 몇 해 전 잠깐 유행했던 록 발라드의 후렴구, 어느 망한 아이돌의 데뷔곡 도입부 등이었다. 찰스는 단 한 번도 노래 전체를 작곡해 본 적이 없었다. 잘나가는 작곡가들이 찰스에게서 몇 마디 멜로디만을 돈 몇십에 사 갈 뿐이었다. 운 좋으면 몇백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내 노랜데 내 노래가 아닌 기분 알아요? 내가 살던 목조 건물 근처, 음료 자판기 옆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내 글인데 내 글이 아닌 기분은 알죠. 논술 학원에서 애들 글을 첨삭하다 보니 아예 정답을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것, 내가 만든 정답을 달달 외워 입시에 성공한 애들이 몇 있는데 지들이 잘난 덕인 줄 안다는 것, 현학적인 감독의 말을 애써 해석해서 써낸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가 영화화됐는데 내가 쓴 대사가 영화 속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는 것. 크레딧에 나는 없었다는 것. 그 얘기들을 다 했을 때 찰스는 가만히 내 한쪽 손을 잡았다.
   나는 오직 월세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갔던 좁고 습한 목조 원룸에서 나와, 찰스의 맨션으로 옮겼다. 찰스는 한국에서는 서울 구기동에 살았다. 제 말로는 본가가 돈이 많을랑 말랑한 수준의 중산층이랬다. 찰스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아니었다. 어학연수 비자로 와 자하에서 제일 좋은 맨션에서 살고 있었다. 맨션은 방이 두 개, 거실 하나. 내가 살았던 원룸과는 다르게 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찰스는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어학원 사람들과의 술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나를 꼭 제 스쿠터 뒷좌석에 태우고 다녔다. 학원의 여자들은,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나를 곱게 보지 않았다. 유독 찰스를 좋아했던 기초 2반 담임 선생님(28세, 여)은 수업 중에 나에겐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과제를 해왔는지 어쨌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쯤엔 어학원에서보다 마트에서 직원들, 손님들과 부딪히며 배우는 게 더 많았기에 망설임 없이 어학원을 관뒀다. 찰스는 어학 비자라 어학원을 관둘 수는 없었지만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많았다. 어학원에서는 찰스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출석률이 저조해 비자 연장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찰스는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기타를 튕겼다. 동거한 지 반년째, 찰스가 동네 스낵바의 종업원과 만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제가 따르던 마담 언니가 시골에 가게를 낸다고 하니 따라 온 스물둘의 여자애. 찰스는 노래 몇 마디 판 대가를 그 애와 놀고 마시는 데 썼다. 자하에 그 애만 한 미모가 없긴 했다. 작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몸매, 뽀얀 피부, 동그란 눈, 아무렇게나 묶어도 예쁜 긴 생머리. 그애가 자하에 온 이후로 찰스와 나는 몸을 섞는 대신 비디오 게임을 했다. 엑스박스라는 물건을 사갖고 들어온 찰스는 밤새 총싸움을 해댔다. 쥐꼬리만 한 금액이긴 했지만 집주인 찰스에게 꼬박꼬박 월세를 주고 있었으므로 나는 시끄럽다고 항의할 자격이 있긴 했다. 야, 우리 편 나눠서 해보자. 니가 괴물 쪽 해. 그쪽이 훨 강하거든. 난 약한 쪽이 강한 쪽 죽이는 게 좋으니까 니가 괴물 해. 찰스가 말하는 꼴이 신나 보여서 나는 그냥 괴물이 되었다. 그 뒤로 찰스와 나는 우리가 몸을 섞은 횟수보다 더 많이 게임을 했다. 찰스는 괴물이 된 나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자 찰스도 나도 슬슬 게임이 지겨워졌다. 세상엔 절대 안 되는 것도 있구나. 찰스는 그렇게 중얼댄 이후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학원 기초 2반의 담임 선생님이 맨션으로 찾아왔다. 찰스는 어학원비를 체납하고 사라졌다. 알고 보니 월세도 두 달 째 밀려 있었다. 부동산 계약서를 보니 내가 찰스의 집에 들어온 달부터 나는 실 동거인이 되어있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한 사람 살겠다고 들어와서 둘이 살게 되면 재계약 하거든. 법이 그래. 황당해하는 나를 다독이듯 말하던 부동산업자. 결국엔 나에게 밀린 월세를 내라는 뜻이었다. 나는 찰스의 구기동 본가에도 연락을 해보았지만 신호만 갈 뿐 응답이 없었다. 스낵바 종업원을 찾아가자 그 애는 자기한테 찰스의 행방을 묻는 것을 어이없어했다. 우리 그렇게 대단한 사이 아니었는데. 무엇보다 여자친구는 그쪽이잖아요? 보름 안에 집을 비워주기로 하고 짐을 쌌다. 찰스의 물건 대부분을 버렸는데, 엑스박스는 고이 모셔뒀다가 팔아서 밀린 월세에 보태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혼자서 총싸움을 했다. 괴물이 아니라 그를 물리치기 위해 먼 나라에서 파견된 군인이 되어서. 의외로 괴물은 쉽게 쓰러졌다. 맥이 풀렸다.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의 전화. 난데, 나 한국 왔어. 음, 미안해. 찰스였다. 저기, 엑스박스는 너 가져. 너 되게 좋아하더라. 음, 그 게임 엔딩이 괴물 물리치고 군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거거든. 괴물한테 핵폭탄 열 번 정도 쏘면 끝나. 그동안은 니가 재미있어하길래 그냥 엔딩 안 보고 미뤄둔 건데. 사실 그 게임이 엑박에서 제일 시시한 거야. 야…… 왜 말이 없어? 하여튼…… 미안해.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내가 찰스를 불렀다. 세상엔 절대 안 되는 것도 있구나, 그 말은 무슨 뜻이었어? 내가 그런 말 했어? 게임 하다가 그런 말 했잖아. 아…… 기억난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으니까. 그니까 너도 너무 열심히 살지마. 해도 안되는 게 널렸어. 세상에 노력해서 되는 건 게임정도 일걸. 그마저도 엄청 허무해. 엔딩보면 끝이잖아. 같은 엔딩 보려고 다시 한번 뼈 빠지게 노력하고 싶지도 않구. 찰스의 무기력한 말투에 나도 힘이 빠졌다. 역시 예술하는 나부랭이들하고는 몸은 섞어도 말은 섞으면 안 되는 건데. 예술한답시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아빠 생각이 났다. 그런 모자란 남자한테 맞고 산 엄마가 생각이 났다. 어지러웠다.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렸다. 내가 서 있던 거실이 꿀렁꿀렁댔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티브이 화면 속 핵폭탄을 맞아 몸에 구멍이 열 몇 개쯤 뚫린 괴물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은 앞으로 고꾸러졌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파편 같은 것들이 튀었다. 순간 괴물이 뿜어낸 핏덩이들인가 싶었다. 실은 티브이 액정이 깨져 조각이 되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거였는데. 찰스야, 지진 났나 봐. 뭐라고? 지진? 야, 그 집 그 동네에서 내진설계로는 최고야. 강진이 나더라도 한 달은 버틴다고 했어. 그럼 한 달 후에는? 그건 나도 몰라. 하여튼 일단 집에 있어, 나가지 말고. 야, 이제 전화 끊어야겠다. 원래 이렇게까지 오래 통화할 생각 없었는데, 돈 많이 나오겠다. 끊을게. 뭐? 월세는 어쩔건데 이새끼야. 야, 박철승. 끊었냐? 아우, 개새끼. 너 같은 예술가 나부랭이들 존나 싫다 진짜.

   흔들리는 복도를 갈지자로 걸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누군가 괜찮냐고 말을 걸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여자가 보였다. 나는 그 아기엄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말이 길어지면 타지 사람인 게 티가 나는 게 싫어서 짐짓 침착한 척, 느긋한 척 천천히 말했던 나인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속에 있던 소리가 발음, 문법 따위 상관없이 입 밖으로 막 나왔다. 아니요, 속이 안 좋아요. 소화제를 먹어야 할 거 같은데. 아니 그보다 일 층까지 어떻게 내려가요? 엘리베이터 타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그래도 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대로 가다간 토하다가 죽을 거 같아. 아기 엄마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거 같았다. 외국인? 방에 들어가서 여권이랑 현금 좀 갖고 나와요. 재난 가방 같은 거 없어요? 이렇게 빈손이면 안 돼요. 나가서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중요한 건 좀 챙겨 갖고 나와야지. 돌연 아기가 울었다. 아기 엄마는 나에게서 매몰차게 돌아서 아이를 어르며 흔들리는 복도를 잘도 걸어 나갔다. 저 바른 걸음걸이는 국민성인가. 다년간의 재난훈련을 거친 내공인건 가. 나는 거의 기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여권하고 현금 몇만 원 정도를 챙겨 다시 기다시피 해서 집을 나왔다. 엑스박스 망가지면 되팔지도 못하는데……. 칠 층에서 일 층까지 어떻게 걸어서 내려가지. 존나 귀찮다. 헬기 같은 거 안 오나. 대사관 놈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자국민이 이렇게 토할 거 같은데. 오분을 기어갔는데 겨우 비상구 앞에 다다랐을 뿐이었다. 내가 삶에 대한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트에서 직원교육 때 안내받은 대피소의 위치가 가물가물했다. 그냥 맨션에서 꽤 거리가 있었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대피소까지 가는 것을 그냥 포기하고 싶었다. 비상구 앞에 주저앉아 구역질을 해대고 있는데 누군가 또 괜찮냐고 물었다. 이번엔 아주 잘생긴 소년이었다. 기껏해야 스무 살이나 먹었을까 싶은. 누나, 우리 이대로 대피소는 무리에요. 가다 말고 죽을 수도 있어요. 이 건물 내진 설계는 끝내준다니까 차라리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나아요. 내가 나가는 사람들마다 말렸는데. 다들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더라구요. 남자애는 그 급박한 와중에 변죽도 좋았다. 그래도 누나라니. 내가 지 또래가 아니라고 너무 쉽게 판단해버린 건 아닌가 싶었다.
   소년은 자기를 프랭키라고 불러달라 했다. 서구의 피가 섞였나 싶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극히 동양적으로 예쁜 이목구비였다. 오밀조밀한 눈 코 입, 백칠십 안팎으로 보이는 키, 군살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몸매. 자하 최고의 여자애가 스낵바의 종업원이었다면 자하 최고의 남자애는 이 녀석이다 싶었다, 프랭키. 나는 프랭키의 말을 믿고 맨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피소까지 가기 귀찮아서 죽을 각오까지 했던 나에게 프랭키는 좋은 변명거리였다. 타국의 잘생긴 남자애가 나에게 흔들리는 건물에 함께 남자고 한다는 것. 나는 절대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 더욱더 본능에 충실하며 인간의 본질에 가까워지고 있었달까. 내 손을 잡고 제가 사는 13층으로 이끄는 프랭키를 믿고 싶었다.
   프랭키의 집은 찰스의 집보다 두 배 정도 더 커 보였다. 일단 거실이 넓었고, 욕실이 두 개였고, 드레스룸까지 있었다. 집이 크다 보니 공간을 메꿀 가구나 소품들이 많았다. 그것들 대부분이 고꾸라져 있거나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피를 토해내고 있는 듯한 형상의 와인셀러였다. 원래는 부엌 한구석에 고매하게 자리하고 있었을 터였다. 나처럼 지진에 멀미라도 한 듯한 와인셀러는 술 취한 사람이 가로등에 기대어 토하는 모양새로 앞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에 머리맡을 대고 검붉은 액체를 쏟아내고 있었다. 프랭키, 너 뭐 하는 사람이야? 아니, 미안. 말 놓아도 되는 건가. 나 원래 일곱 살짜리한테도 반말 안 하는 사람인데. 괜찮아, 누나. 나도 놓을게. 고마워, 너 직업이 뭔지도 물어봐도 돼? 당연하지, 나 배우야. 배우라고? 응, 잘 봐봐 기억날걸. 아, 미안. 나 여기서는 드라마나 영화 잘 안 봐. 뉴스는 좋아하는데. 누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한국인이야. 남한? 당연하지. 뭐가 당연해? 북한에 살면 여기 못 와. 헉, 왜? 너 뉴스 안 봐? 북한이 어떤 덴지 몰라? 알아, 핵 만들잖아. 몰래 숨어서. 그래, 무서운 놈들이야. 근데 프랭키, 너 정말 배우야? 대표작이 뭔데? <새엄마와 차 안에서> 알아? 아니…… 몰라. 그럼 <옆집 누나와 화장실에서>는? 미안, 나 야동은 고등학교 때 이후로 안 봐. 그래? 근데 한국 남자들이 우리나라 야동 좋아한다는 거 사실이야? 우리 거 가져가서 불법 배포한다는데. 응, 엄청 좋아해. 불법 배포는 뭐랄까…… 많은 이들에게 필요악이라고 해야하나. 누나, 그럼 나도 유명해? 한국 남자들 사이에서? 그들이 남자인 너한테 집중할 시간이 있을까? 누나 말 듣고 보니 그렇네. 프랭키, 너 그럼 화장실에서도 해본 거야? 당연하지. 작품에서 진짜로 하니까. 화장실은 어때? 너무 좁아서 카메라 앵글이 잘 안 나와. 너는 어떤데? 나도 별로지. 난 정상적인 게 좋아. 작품 컨셉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그래도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해. 나는 그나마 멀쩡한 와인을 하나 골라 병째 마셨다. 그 와중에도 건물은 흔들렸다. 멀미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프랭키는 옆집 누나와 화장실에서라는 작품을 찍다 변기 여럿을 박살 냈다는 얘기, 어떤 중학교의 화장실에 숨어들어 몰래 촬영을 했던 얘기를 무용담처럼 떠들었다. 나는 프랭키가 귀여웠고, 좋았다. 프랭키와 나는 값비싼 와인을 입에서 입으로 나눠 마셨다. 누나, 나 누나 좋은 것 같아. 프랭키와 나는 프랭키의 집 거실 바닥에서 몸을 섞었다. 프랭키의 몸은 깡말랐지만 잔 근육이 가득했다. 프랭키는 좀처럼 지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했을 때서야 내 위에서 내려왔다. 누나, 우리 겨우 한 시간 했는데. 프랭키, 나 배고파. 우리는 프랭키가 저녁밥으로 사뒀던 편의점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맨션은 더 이상 좌우로 흔들리지 않았다. 알림 방송이 나왔다. 자하 주민센터에서 알려드립니다. 건물 안에 계신 주민분들은 신속히 옥상으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지면이 매우 불안한 상태이므로 외출을 삼가고 옥상으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옥상으로 대피할 시에는 간단한 식음료, 간이 텐트나 침낭 등을 준비해서 올라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건물 안에 계신 주민분들은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중으로 구조 물자를 전달해 드리고 순차적으로 구조를 실시하겠습니다. 이상, 자하 읍 재난관리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프랭키가 사는 13층은 맨션의 최고층이었고 바로 위가 옥상이었다. 극세사 담요 두 장, 1리터 생수 하나, 녹차 맛 크래커, 매실 장아찌 통조림, 고약한 향의 싸구려 위스키, 열 개비의 럭키 스트라이크. 그것들이 우리가 옥상에 가져갈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에 담요 한 장을 깔고 한 장은 함께 덮었다. 담배는 한 시간에 한 개비씩 나눠 폈다. 위스키는 몇 모금 마시자 특유의 소독약 냄새도 참을만 했다. 우리는 아수라장이 된 프랭키의 집이 텅 빈 옥상보다야 아늑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해가 밝아올 때까지만 견뎌보기로 했다. 프랭키 말로는 재난 상황에서는 언제 구조 헬기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했다. 구조 헬기는 참을성이 별로 없어서 옥상에 사람이 안 보이면 그대로 방향을 돌려버려. 우리가 이렇게 앉아있는데도 그저 구조물자만 툭 하고 떨어트려 놓고는 언제 다시 오겠다는 말도 없이 가버릴 수도 있어. 너넨 그냥 우리가 다시 올 때가지 거기서 기다리라는 거지. 아까 방송 들었지? 순차적으로 구조하겠다잖아.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견딜 수 없을 때쯤 구해주겠다는 소리야. 구조라는 거 절대 쉽게 해주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다들 기를 쓰고 대피소를 가지. 뭐, 대피소라고 사정이 좋진 않을걸. 체육관 같은 데 한데 몰아넣고 지난번 대피 때 사용했던 이불 깔고 자고, 밥은 주먹밥 아니면 팥빵. 그래도 생존자들을 굶기진 않으니까. 뭐, 우리는 아주 운이 나쁘다고 해도 삼사일 뒤엔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누나, 이 깜깜한 밤을 무서워하지마. 프랭키는 원래 도시 출신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현대무용을 했는데 프랭키를 후원해주던 기업이 도산을 해버리는 바람에 그만뒀다. 티브이 뉴스에서 그 기업의 하청을 받던 업체 사람들이 나와 울고불고 했다. 분신을 시도하는 이도 있었다. 기업의 후원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프랭키에게 마지막 후원금을 송금했다고 했다. 적은 돈이라 미안하네. 그래도 다음 콩크르까진 준비할 수 있을거야. 그도, 프랭키도 다음 콩크르 따위는 이제 무의미해져 버린 것을 알고 있었다. 프랭키는 마지막 후원금으로 국내 여행을 시작했다. 북쪽에서부터 밑으로 내려왔는데 중간쯤 왔을 때 지쳐버려서 사람 적고 조용한 자하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후 프랭키는 동네 사우나에서 포르노계의 거물을 만났다. 거물은 제작하는 작품마다 히트를 쳤다. 거물은 프랭키의 알몸을 뚫어져라 보며 요즘엔 너 같은 근육밖에 없는 마른 몸이 인기라고 했다. 프랭키는 별 고민 없이 거물의 작품에 출연했다. 무용을 해서인지 낭창낭창했던 프랭키의 몸은 잘 팔렸다. 프랭키는 포르노계의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 프랭키는 자하에 있는 거물의 맨션에서 지냈다. 거물은 쉬고 싶을 때만 자하를 찾아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떠났다. 맨션은 거의 프랭키 혼자 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거물은 와인셀러만 건드리지 않으면 집안의 모든 것을 내키는 대로 써도 좋다고 했다. 프랭키는 포르노 스타가 된 뒤로 예전에 알던 사람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는 연락을 막지는 않았다. 돈 빌려 달라는 연락이 대부분이었지만.
   프랭키라는 예명은 첫 작품의 엔딩 크레딧 담당자가 멋대로 만들어낸 거였다. 왜 하필 프랭키였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프랭키는 포르노가 좋았다. 무용처럼 몸을 쓰는 일이었고, 몸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몸이 성할 때까지 포르노를 하고 싶었다. 나는 처음으로 예술하는 남자가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프랭키, 옥상에서는 해본 적 있어? 아니, 없어. 이 건물 사람들은 다들 대피소로 간 걸까? 누나, 여기 사람 살고 있는 집이 몇 안 돼. 월세가 쓸데없이 비싸니까.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지진 나자마자 다들 빠져나가더라구. 너는 왜 안 갔어? 지난번 지진 때 대피소에서 하루 잤는데 아까 말했다시피 할 짓이 못되더라구. 이 건물 내진설계가 좋기두 하구. 전국에서 제일 솜씨 좋은 내진설계 전문가한테 맡겼다나. 니네 집은 완전 엉망이던데? 와인셀러는 완전 피 토하고 있고 책꽂이는 침대랑 합체됐던데. 내진설계가 튼튼하면 지면이 흔들리는 대로 건물이 움직여. 더 많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론 안전한 거지. 집 물건들이 쓰러진 건 이번이 처음이야. 예사 지진이 아닌 것 같긴 했어. 사장이 와인셀러 보면 기함하겠네. 너 사장한테 맞는 거 아니야? 이것만은 건드리지 말랬지 이새끼야 막 그러면서. 누나, 우리 사장 그렇게까지 악덕 업주 아니야. 괜찮아, 내가 또 작품 찍어서 우리 사장 돈 벌게 해주고 그 돈으로 와인셀러 다시 장만하지 뭐. 프랭키, 그럼 이 옥상엔 당분간 우리 둘인 거네. 이 건물 전체가 다 우리거야, 누나. 당분간은. 그러네. 되게 어드벤처 무비 같다, 그치.

3

   버스는 논밭을 달리고 달려 자하에 도착했다. 지진 후 일 년 만에 완전히 복구되었다던 동네에는 전보다 숙박업소들이 늘어난 듯했고 처음 보는 식당이나 카페들도 보였다. 동네 곳곳에 붙어있는 전단을 보니 오년 전의 읍장이 재당선된 듯했다. ‘젊은 자하, 밝은 자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읍장의 슬로건 대로 자하에는 젊은 사람들이 꽤 눈에 띄었다. 도시의 치솟는 물가를 못 이겨 흘러 흘러 자하까지 온 청년들은 오년 전부터 꽤 있었다. 그들 중엔 자하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정착한 이들도 있을 터였다. 이제 자하는 밝고 활기찬 관광지였다. 거리에는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골이었던 중국인 부부의 만둣집은 사라졌다. 서울에 돌아가서도 그 육즙이 흘러내리는 만두만 생각하면 침이 고였는데. 만둣집의 중국인 부부도 나처럼 타국의 요동치는 땅이 무서워 제 나라로 도망가버렸는지도 몰랐다. 만둣집 뒤쪽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스낵바가 있었다. 자하의 남자들은 만둣집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비싼 술을 마시러 스낵바로 갔다. 찰스도 그런 남자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돌연 스낵바의 생존이 궁금해졌다. 이제는 이십 대 후반이 되었을 스낵바의 예쁜 종업원도 궁금해졌다. 담배를 하나 태우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스낵바만큼은 건재할 것 같더라니. ‘스낵바 미니’. 불을 켜지 않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문이 열리기엔 좀 이른 시간이어서 삼십 분 정도는 기다려볼 요량으로 가게 앞에서 담배를 두 대쯤 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종업원(27세, 여)이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지친 얼굴로 담배를 물고는. 층 하나 없이 올곧게 자른 단발머리가 어울렸다. 그 애는 여전히 자하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처럼 보였다. 너는 왜 늙지도 않냐. 열 받는다 정말. 나는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그 애를 빤히 보며. 그 애는 반쯤 감긴 눈으로 심드렁하게 담배만 피워댔다. 사랑받는 여자애들은 잘 안 늙어. 계속 사랑받고 싶어서 가꾸고 또 가꾸거든. 엄마 말이 맞았다. 괜히 짜증이 나서 담배를 아무렇게나 지르밟고 돌아섰다. 잊고 있던 타국의 말이 들려왔다. 있지, 그 맨션이요. 이제 거기 호텔이에요. 이차 지진 때 그 맨션, 반 토막이 나버렸거든. 그래서 무너진 김에 아예 호텔로 만든 거지. 다시 몸을 돌리자 그 애는 아직 졸린 눈 그대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여기 주인이에요. 우리 사장 언닌 이제 없거든. 나중에 술 생각나면 와요. 레이디 디스카운트 그런 것도 하니까. 그러고 보니 그쪽도 잘 살아남았네. 또 봐요. 찰스야, 나는 지금까지 쟤가 예쁜 게 긴 머리 때문인 줄 알았는데 쟤는 똑 자른 단발도 예쁘다. 쟤도 잘 살아남아서 잘 지내고 있었네.
   맨션은 자하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고층의 관광호텔이 되어있었다. 낡은 목조건물들이 대부분이던 오년 전, 홀로 우뚝 솟아있던 콘크리트 맨션은 좀 우스꽝스러웠다. 지나치게 번듯하고 매끈한 외관이 시골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 이만큼 잘난 놈이야라고 으스대고 있는 꼴을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느낌이랄까. 이제 자하에도 곳곳에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오년 전 지진 때 자하의 전통가옥이나 다름없던 오래된 목조 집들 대부분이 무너졌다. 그 후 전국의 웬만한 시공사들이 자하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새 건물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목조를 고수하는 집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쪽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관광호텔에 묵기로 했다. 현재는 흔적도 찾아볼 수도 없는 옛집을 추억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높은 곳에 올라가 자하를 조망하고 싶었다. 호텔 프론트에 남아있는 방 중에 최고층으로 달라고 했다. 고객님, 십일층입니다. 오늘 밤엔 자하산에서 연등제를 하는데 방에서 보시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프랭키와 나는 옥상에서 날이 밝길 기다리며 싸구려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웠다. 담배가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뒤로 미루고 취한 채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우리는 새벽바람의 차가움을 이기고 서로의 맨몸을 부딪쳤다. 날이 밝아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도 모르면서. 서로의 맨살을 느끼며 잠들었던 우리는 해가 떠오르자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그제야 추위를 느끼며 각자 담요를 한 장씩 몸에 둘렀다. 해는 서서히 하늘 높은 곳으로 옮겨갔다. 그러자 밤새 감춰져 있던 자하가 드러났다. 프랭키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간으로 향했다. 누나, 나는 우리가 오늘 구조됐음 좋겠어. 나도 그래, 프랭키. 우리는 무너져 내린 자하와 마주했다. 그 시간 자하에서 온전한 건 오직 프랭키와 나,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건물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좀 무리해서라도 도시로 가는 게 낫지 않겠니.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기 일주일 전에 아빠를 만났다. 나는 그 나라에 그런 동네가 있는지도 몰랐다. 정말 괜찮겠니? 나는 타들어 가는 삼겹살들을 아빠 앞에 놓았다. 아빠가 암 걸린다고 탄 거는 절대 입도 안 대서 탄 고기는 늘 엄마 차지였어. 아빠 알고 있었지? 엄마가 잘 익은 고기만 골라서 아빠 앞에 놔줬던 거. 내가 엄마였으면 아빠한테 맞은 거 다음으로 그 기억이 제일 싫을 거 같아.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바싹 타들어 간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아빠,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아들내미나 좀 돌봐. 걔는 아직 청소년이잖아. 뒤틀린 땅과, 무너져 내린 산의 잔해들, 그 잔해에 깔린 집들, 또 그 집들의 잔해를 보았을 때 나는 아빠의 말을 떠올렸다. 그 모자란 아저씨도 맞는 소리를 할 때가 있구나 싶었다. 프랭키는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담배를 쥔 프랭키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프랭키의 집으로 돌아가 온 집안을 꼼꼼하게 뒤졌다. 지지대 부분이 좀 녹슬었지만 그런대로 쓸 만해 보이는 텐트를 찾아냈다. 옥상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두꺼운 이불을 깔았다. 집안에 남아있는 식량은 별로 없었다. 냉동실에서 녹고 있는 깍두기처럼 잘린 냉동 아보카도를 발견하긴 했다. 이건 뭐야, 프랭키? 아보카도야, 주스 만들어 먹으려고 사둔 건데. 구석에 처박혀 있었네. 이거 맛있어? 먹을 만해. 맛없어도 먹어야 해, 누나. 우리 이제 먹을 건 이거밖에 없어. 우리는 집안 여기저기를 굴러다니고 있는 깨진 와인 병들 안에 남아있던 와인들을 한데 모았다. 일 리터짜리 생수 통이 반 조금 넘게 채워졌다. 냉동 아보카도와 이 맛 저 맛 섞인 와인. 그것들이 우리의 마지막 식량이었다. 칠층에 있는 찰스의 집에도 다녀올까 싶었지만 찰스나 나나 집에서 뭘 먹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생수 정도는 있었겠지만 칠 층에서 십삼 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할 체력이 없었다. 프랭키와 나는 텐트의 두꺼운 이불 속에 들어갔다. 누나, 있잖아. <옆집 누나와 화장실에서>가 내 작품 중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어. 곧 속편도 만들어. 그 속편까지 인기 있으면 속편의 속편도 만든대. 프랭키는 아무 맛도 안 나고 느끼한 식감만 느껴지는 냉동 아보카도를 잘도 먹었다. 나는 와인만 마셔댔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옆에 프랭키가 있었음에도 외로웠다. 무너진 동네에 나 홀로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낮에는 도저히 텐트 밖을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연등제는 해가 지고 저녁 일곱시 반쯤부터 시작됐다. 어딘가에서는 구슬픈 리듬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산머리에 매달린 연등들부터 차례로 불을 밝혔다. 백여 개의 연등들이 전부 빛을 내기 시작했을 때는 장관이었다. 자하산을 가득 메운 연등들이 피리 소리에 맞춰 흔들흔들 춤을 췄다. 치자 빛, 쪽빛 등 모두 자연의 색을 담은 연등들 백여 개가 봄바람에 몸을 맡긴 듯 살랑댔다. 마을이 전부 복구된 후로 매년 연등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먼저 가버린 넋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저희에겐 잊어선 안 되는 존재들이니까요. 방에서 연등제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탓인지 호텔 직원은 연등제를 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피리 소리가 점점 더 구슬퍼졌다. 왠지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호텔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컵라면을 만지작대다가 럭키 스트라이크 한 갑만 사서 나왔다. 담배를 피우며 자하의 밤길을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만을 골라다니 다가 스낵바 미니 앞에 멈췄다. 아직은 취한 아저씨들이 들이닥칠 시간은 아니었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하는데 문이 열렸다. 낮에 보았던 종업원, 아니 이제는 사장이 된 그녀가 나왔다. 짙은 화장을 하고 하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추운지 몸을 떨며 쓰레기봉투를 내놓던 그녀는 나를 발견했다. 위스키 한 잔 줄게요, 온더록스로.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미사리에서 있을 법한 카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흔히 불륜 카페라고 부르는, 남녀가 서로 정답게 기댈 수 있는 소파와 엔틱을 표방한 촌스러운 테이블이 있는. 그리고 한쪽엔 작게 음료를 제조하는 바가 자리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바 쪽에 앉혔다. 모두들 자신을 미니라고 부른다고 했다. 미니는 원래 예전 사장 언니 닉네임이었어요. 언니가 일 시작할 때 마담이 지어준 이름이 미니였대요. 언니는 뭔가 국적이 불분명해 보이는 게 그 이름이 맘에 들었구. 나는 그냥 물려받았어요. 가게도 물려받고 이름도 물려받고. 미니는 온더록스 위스키에 시트러스를 띄워 건넸다. 술맛이 좋았다. 미니는 청주를 마셨다. 언니는 오년 전 그날 먼저 가버렸어요. 언니랑 나랑은 대피소에 같이 있었는데. 언니가 혈압약을 먹었거든요. 근데 그걸 가게에 놓고 온 거지. 언니는 안된다고 했는데 내가 우겨서 나 혼자 가게로 약을 가지러 갔거든요. 그 와중에 이차 지진이 터져버렸네. 나는 가게 테이블 밑에 숨어 있었어요. 아 이대로 가는구나 싶었지 뭐. 나중에 눈 떠 보니까 병원이더라구. 우리 가게, 한때 잘 나갔던 건축가가 지어준 거거든. 그 사람이 우리 사장 언니 애인일 때.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가게가 단단했나 봐요. 무너지긴 무너졌는데 사람이 죽을 정도는 아니었어. 이차 지진 때 사람이 제일 많이 죽어 나간 데가 어딘 줄 알아요? 대피소에요. 세상에 누가 알았겠어. 대피소가 무너질 줄. 다들 그렇게 대피소에서 기를 쓰며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었는데. 언니는 내가 화장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뿌려줬어요. 다들 그렇게 하더라구. 여긴 뭐, 강이나 바다 같은 건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 자하산 위에서 떠났어요. 매년 오늘, 연등제도 그래서 하는 거고. 사장 언니를 그렇게 보내고 오는데 반 토막이 난 맨션이 보이더라구. 그게 또 우리 집 단골손님이 살던 곳이네. 어차피 단골손님은 가고 없으니 마음이 놓였는데. 그 맨션에 그 사람만 사는 게 아니잖아. 나, 그쪽이 나한테 와서 찰스 행방을 묻는데 좀 부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쪽이 아니라 찰스가. 내가 자하올때 야반도주하다시피 해서 우리 사장 언니만 믿고 따라왔거든. 여기 와서 누가 나 좀 찾아줬음 좋겠다, 나 좀 궁금해했음 좋겠다.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그래서 괜히 찰스가 부러운 거야. 하여튼 그쪽이 생각났어요. 그 두 동강 난 맨션을 보는데. 누구라도 좋으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아무라도 무사했으면 했어. 아까는, 그쪽을 보는데 좋드라구. 잘 살아남아서 다시 자하에 왔구나, 다행이다 싶었어요. 미니가 웃었다. 사실 나는 미니가 싫었다. 어린 나이를 무기로, 잘난 몸매를 무기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예쁜 여자애가 싫었다. 그렇지만 미니가 아직 자하에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니처럼 프랭키도 자하 어딘가에서 잘 있기를 바랐다.

   나는 프랭키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두꺼운 이불을 깔았다 한들 텐트에서 잠들기엔 등이 아팠고 더 이상 프랭키와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욕구를 부추기는 술도 다 떨어졌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 손이 떨렸다. 프랭키는 내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자하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지진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다. 나에게 지진이라는 것은 토네이도와 같이 절대 경험할 리 없는 상상 속의 재난이었다. 그런데 자하에 오니 진도 3에서 4의 지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날까 싶어 잠들지 못하고 꼬박 밤을 지새우고 마트에 출근을 하면, 성격이 수더분하던 엄마 나이의 동료가 웃으며 나를 다독였다. 자하에 큰 지진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십 년 전에도 옆 동네는 산 무너지고 집 무너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아 또 흔들리나보다 그러면서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야 알았다니까. 옆 동네가 아주 그냥 풍비박산이 나 있지 뭐야. 그게 이십 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지. 자하는 하늘에서 지켜주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녀는 자하는 하늘에서 지켜주고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때마다 그녀의 선한 눈빛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고 믿었다. 프랭키는 내 옆에서 옅게 코를 골았다. 날이 밝자 드러난 자하의 모습에 프랭키 역시 놀라긴 했지만 타지에서 온 나만큼은 아닌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랭키는 제가 살아온 스무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지진을 봐왔을 터였다. 언젠가는 한번 땅이 뒤틀리고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지진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은연중에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그 나라의 사람이라면 저도 모르게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을 각오 같은 게. 그러나 나는 온전히 타지의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겪어 본 재난이라고는 통근 전철을 멈추게 했던 폭설 정도였다. 심지어 그때 나는 무척 기뻐했다. 출근하던 학원에는 전철도, 택시도 못 다니는 상황이니 오늘은 부득이하게 결근을 하겠다고 말했다. 뜻하지 않은 휴가가 얼마나 좋던지. 딴생각 않고 집에 돌아가 화장을 지우고 바로 다시 잠을 잤다. 나에게 재난이란 그 정도의 것이었다. 분명히 피해를 주지만 웃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의 것. 본격적인 7도 지진 같은 건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날이 밝자마자 참혹한 광경과 마주할 줄은 몰랐다. 그저 평소보다 많이 흔들렸고 그 와중에 잘생긴 스물한 살 남자애를 만났고 그 애와 약간은 섹슈얼한 어드밴처 무비를 찍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는데. 나와 프랭키는 지진이 일어난 밤 동안 고약한 향의 위스키를 많이 마신 탓에 대체 자하가 어떤 꼴이 났는지 보지 못한 거였다. 프랭키의 코골이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프랭키가 못 미더워졌다. 어쩌면 구조 헬기 따위는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직 어린 프랭키가 아무 의심도 없이 그저 제 나라를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만약에 구조 헬기에 자리가 단 하나밖에 없다면? 제 나라 국민인 프랭키만 태워가고 나는 이 옥상에 방치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한국 대사관에서 나를 구하러 그 비싼 헬기를 띄울 리도 없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잘도 잠든 프랭키의 눈치를 괜히 한번 보았다. 이미 방전된 내 휴대폰 대신 프랭키의 휴대폰을 집었다. 텐트를 나와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욕을 해댔다. 야 이년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화하기가 그렇게 힘들든? 뉴스 보니까 통신망은 벌써 복구됐다는데. 유학원에 전화해보니 니년만 생사 확인이 안 된다고. 다들 어학원에 모여 있던데 대체 너는 어딨냐? 기집애야, 내가 어디 가서 튀는 행동만 안 하면 무탈하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이구 속 터져. 공항은 멀쩡하다던데 너 공항까지 갈 순 있겠냐? 엄마는 지상직 승무원으로 일하는 친구 딸에게 부탁해 서울행 비행기를 하나 구했다. 자하는 그 난리가 났는데도 자하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져 있는 공항은 정상 운항을 해도 될 만큼 멀쩡했다. 어떻게든 공항까지만 가면 나는 서울로 갈 수 있었다. 한국 들어오는 비행기가 거의 만석이라 겨우 구한 게 오늘 오후 표야. 너랑 연락 안 되면 버리는 셈 치고 예약한 건데……. 이 기집애야 빨리 짐 싸서 공항 가. 아니, 여권만 갖구 빨랑 튀어나와. 엄마는 열일곱의 여름이 기억났을 터였다. 끔찍이도 비가 많이 내리던 그 여름에 엄마와 식구들이 살던 춘천의 낡은 집은 홍수에 무너졌다. 어떻게 손을 써볼 틈도 없이 태어나서 자란 집이 빗물에 사라졌다. 저거 언제 한번 보양식 만들어 잡숴야겠다며 큰 삼촌이 노리던 백구 만동이도 빗물에 쓸려가 버렸다. 엄마는 엉엉 울었다. 나중에 비가 그치고 동네에 흐르던 강의 하구에서 집안 살림살이를 건져내다가 만동이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때 엄마는 뵈는 게 없이 확 돌아버렸다. 다들 물건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안달인 와중에 담배나 뻐금거리고 있는 큰 삼촌에게 악을 썼다. 삼촌 너처럼 맨날 술이나 처먹는 놈이 뒈졌어야 했는데. 삼촌 너는 고마워해라. 우리 만동이가 너 살리고 죽은 거니까. 왜, 만동이 건져서 개소주 담아 먹고 싶어? 나는 삼촌 너를 확 소주로 담가버리고 싶은데. 큰 삼촌은 얼이 빠져 아무 말도 못 했다. 옆에서 밥그릇을 건지던 엄마의 할머니는 열일곱 손녀를 보며 감탄을 했다. 저년이 보통 년은 아닌 줄 알았는데 말하는 꼴을 보니 진짜 난년이구만. 나도 내 새끼를 내 손으로 확 강물에 처박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도 말 못하는디. 저 기집애는 말 한번 잘하는구만. 속이다 뻥 뚫리네. 엄마는 그 홍수의 기억이 싫었을 터였다. 홍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열일곱의 여름. 그 기억이 되살아나 나를 자하에서 얼른 빼내고 싶었는지도. 나는 엄마와 전화를 끊고 텐트로 들어가 프랭키의 자는 얼굴을 잠깐동안 바라보았다. 잘 있어, 프랭키. 네 예쁜 얼굴, 단단한 몸은 잊지 않을게. 네가 출연하는 영화들은 종종 다운 받아볼게. 너는 내가 아는 예술하는 남자들 중에서 제일 멋진 남자야. 프랭키, 안녕. 프랭키를 두고 나는 찰스의 집으로 돌아왔다. 십삼 층에서 칠 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나는 조금 훌쩍거렸다. 그냥 조금 눈물이 났다. 찰스의 집은 프랭키의 집보다 훨씬 상태가 양호했다. 지난밤 집에서 뛰쳐나올 때 엎어졌던 티브이를 제외하곤 다들 원래 있던 위치에서 조금씩 움직인 것뿐이었다. 나는 바로 방전된 휴대폰을 충전했다. 엄마가 예약한 비행기의 출발 시각은 오후 세 시 반. 공항에 최소한 두시까지는 가야 하는데 버스가 운행할 리는 없었고 뭐라도 잡아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휴대폰이 켜질 만큼 충전이 되자 연락처를 뒤져 불법 택시에 전화를 했다. 찰스는 가끔 다른 동네에서 술을 마시고 불법 택시를 타고 자하까지 왔다. 불법 택시는 주로 택시가 끊기는 새벽에 다니는데 일반 택시 요금의 1.5배였다. 그래도 찰스처럼 대책 없이 술을 마셔대는 밤손님들에겐 인기가 좋았다. 차종도 아우디 미니쿠퍼라서 외제차 타는 기분이 좋다고 언젠가 찰스가 말했다. 나는 절대 탈리가 없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진도 7의 지진에 그 불법 택시가 살아남으려나 싶었다. 그런데 신호음이 두 번 울리자마자 대뜸 들리는 말이. 때가 때인지라 평소 요금의 세밴데. 타실 거에요? 사기꾼은 호랑이굴에 들어가서도 호랑이를 상대로 사기를 친다더니. 나는 당황하지 않고 협상을 했다. 제가 내일 결혼식이거든요. 좀 먼 곳에서. 그래서 공항에 가야 해요. 기사님, 그냥 두 배만 쳐서 공항 갑시다. 진짜 운도 드럽게 없지 않나요? 결혼이 코앞인데 지진이라니. 남자친구 부모님들은 신부한테 부정 탔다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가서 해명을 할 기회는 있어야죠. 택시비 없어서 못 가면 제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러면 전 기사님을 평생 저주하면서 살 수도 있다구요. 기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공항까지 이십만 원을 불렀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지나있었다. 나는 지금 당장 공항으로 가고 싶다고 기사에게 말했다. 공항은 안전하다는 것, 그것이 나를 어서 빨리 이 맨션에서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기사는 한시까지 맨션 앞으로 오겠다고 했다. 쓸데없는 것은 제외하고 그동안 모아둔 현금과 여권, 죽어도 버리기 싫은 옷 몇 가지를 챙겼다.
   기사는 내 또래의 남자애였다. 그는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운전만 하다가 돈을 받아 챙기고 나를 내려준 뒤 곧바로 떠났다. 그리고 그와 나는 출국 게이트 앞에서 마주쳤다. 그는 한국인이었다. 그 역시 가까스로 서울행 티켓을 예매하고 차를 몰아 공항으로 가려던 중에 내 전화를 받은 거였다. 출국 게이트 앞에서 나를 만나자 조금 민망해하던 그는 이십만 원 중에 십만 원을 돌려줬다. 그래도 나 없었으면 공항에 못 왔을 거 아니에요. 공항까지 오는 내내 조용하더니 말을 잘했다. 기사에게 돌려받은 십만 원으로 면세점에서 엄마 선물을 샀다. 다들 여행을 오면 하나씩 사간다는 마유 크림이었다. 말의 기름을 짜서 만든 화장품이라니. 공정 과정이 꽤나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살 수밖에 없었다. 때를 탓하며 변변한 선물도 없이 빈손으로 가고 싶진 않았다. 공항은 한산했다. 그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 나처럼 이 시골까지 워킹 홀리데이를 온 한국인들 아니면 중국인들뿐이었다. 세 시쯤 비행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엄마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비행기는 삼십 분 정도 늦게 이륙했다. 나는 곯아떨어졌다. 내가 상공을 날고 있을 때 자하에서는 이차 지진이 일어났다. 프랭키가 남아있던 맨션은 하루 만에 다시 찾아온 지진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미니의 스낵바에서 나온 후 담배를 태우며 밤거리를 걸었다. 누군가를 두고 떠났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진 말아요. 그 누구도 이튿날 더 무시무시한 지진이 올 거라고 생각 못했으니까. 스치는 인연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두면 그게 더 괴로워요. 미니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미니는 직업상 이래저래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많았을 터였다. 마음속에 사람을 들이고 내보내는 일이 나보다야 익숙하지 않을까 싶었다. 미니의 직업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미니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소주를 두병쯤 마시면 프랭키 생각이 났다. 나는 나만큼 취한 후재를 앉혀놓고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운이 좋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있는 건데. 그게 내가 된 게 나빠? 자하에 가기 전까지 지진이라고는 어릴 때 어디 과학관 가서 지진 체험해 본 게 전부였는데. 내가 무서운 건 당연하지. 원래 겁 많은 사람이 먼저 행동하게 되어 있는 거잖아. 난 너무 무섭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살고 싶은 게 나빠? 생존 본능이 나빠? 후재는 고개를 저었다. 맞어, 섞정아. 사람은 살고 싶은 게 당연하고 하고 싶은 게 당연해. 우리 이제 자러 갈까? 나 피곤해.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굳이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는 후재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후재야, 너 옆집 누나와 화장실에서라는 야동 본 적 있어? 후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새엄마와 차 안에서>는? 야, 그런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서 다운받으면 망해. 졸라 재미없으니까 제목으로 쇼부 보려는 거지. 너 야동 보고 싶냐? 그게 아니라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난 아무리 찾아도 없드라구. 야, 너 혹시…… 전 남친한테 동영상이라도 찍힌 거야 설마? 뭐래, 멍충아. 후재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생각났다. 밤거리를 걸으며 문득 후재가 보고 싶어졌다. 나한테는 후재가 깨어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쉽게 갈 사람이 아니었는데…….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곧잘 그렇게 말하지만. 후재가 딱 그랬다.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웃고 떠들고 술 퍼마시고 그러다 여자랑 자버리고. 후재는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제 적성과 딱 맞는 인생을 살고 있던 후재였다. 그러니 절대 그냥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후재에게 그런 믿음이 있었다. 내가 좀만 더 변죽이 좋았다면 후재의 예쁜 여자친구에게 말해줬을지도 몰랐다. 사실 저는 꽤 높은 확률로 김후재가 깨어난다고 봐요. 그 자식은 세상 사는 게 즐거운 놈이거든요. 절대 죽을 놈이 아니에요. 김후재가 일어나 또 헛소리해대면 그동안 흘린 눈물이 아까울 걸요. 밤거리를 걷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했던 마트가 보였다. 문을 닫기 삼십분 전이었다. 그 시간쯤 가면 늘 팔다 남은 먹거리에 할인 딱지가 붙어있었다. 술도 한잔했겠다 배가 슬슬 고팠다. 마트로 가서 캔맥주와 새우튀김, 스낵 감자 칩을 샀다. 계산대에 서서 마트를 둘러보았다. 오 년이나 흘렀으니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모든 지진이 끝나고 난 뒤에 동네를 걸을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혹시라도 아는 사람들과 마주칠까 싶어서. 한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싶어서. 미니가 그랬듯이 나도 확인을 하고 싶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오년 전의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나 주길. 그냥 막연하게나마 기대했다. 장을 보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경찰서였다. 후재가 발리송에 칼빵을 맞던 날, 모텔 302호에 있던 그 선생님이 같이 있던 여자를 감금 및 폭행, 여자를 도와주려던 나를 폭행한 죄로 재판을 받는다고 했다. 담당 형사는 나에게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자식, 전과범이에요. 전 부인도 허구한 날 패서 이혼당했다니까. 그 상놈의 새끼. 아빠도 엄마와 이혼을 하고도 꾸준히 여자를 만났다. 어느 날 애인과 헤어졌다는 아빠의 말에 그 여자도 때렸냐고 물었었다. 아빠는 얼굴이 벌게졌다. 아무 말을 못 했다. 그래도 니 아빠가 너는 안 때렸잖어. 엄마는 종종 그리 말했다. 호텔에 돌아와 맥주부터 마셨다. 자하산의 연등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나야. 어디니? 자하에 왔어. 잘했네. 아빠는 나 여기 있는 거 싫어했잖아. 싫어하긴, 걱정한 거지. 아빠,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응…… 있어. 잘 좀 해, 성질대로 다 하지 말고. 미안해, 아빠가. 아빠, 난 엄마랑 둘이 살아서 좋아. 어차피 아빠랑 나랑은 같이 못 살어. 집안에 글쟁이가 둘은 좀 아닌 거 같아. 그건 그렇네. 끊을게, 그만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나는 자하에 오래 머물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음 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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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재는 여름이 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후재의 여자친구한테서 가끔 연락이 왔다. 후재 친구라고는 나밖에 모른다고 했다. 언니가 오빠랑 많이 친한 거 같아서요. 언니하고 오빠 얘기하고 싶어요. 안 그러면 힘들 것 같아요, 저. 나는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후재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술에 취한 후재의 여자친구는 나에게 다른 남자가 좋아진다는 고백을 했다. 울먹이면서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김후재가 나쁜 놈이지 뭐. 그렇게 오래 누워있으니까. 여자친구 냅두고 동면하는 것도 아니고, 나참. 나는 내 방식대로 그녀를 다독였다. 늦여름이 기승을 부리던 9월. 후재의 여자친구는 후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시는 후재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10월이 되었다. 302호 선생님은 폭행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결혼 생활 삼년동안 폭력을 견딘 전 부인, 도를 넘는 협박과 의심에 시달렸다며 울먹이던 전 여자친구, 그 여자친구를 도와주려다가 목이 졸린 나. 세 명의 증언이 있었다. 그 후에 소개팅이 세건 들어왔다. 전부 나가봤지만 한건도 성공하지 못했다. 세 번 다 저녁에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는데 지루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주선자들에게 걔 술을 너무 먹더라 라는 얘기를 했다. 그중에 하나는 첫 만남 이후 연락이 왔는데 결혼이 급해 보였다. 나는 그 남자의 결혼 상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미안해요, 전 아직 놀고 싶어요. 소개팅도 좀 더 즐겁게 놀아보려고 나간 건데. 귀한 시간 낭비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얼마 전 일산의 서른아홉 평짜리 아파트를 계약했다는 남자에게 했던 말이었다.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후재와의 관계를 알고 있던 친구가 진지하게 말했다. 걔랑 관계는 이제 정리할 때야. 여자친구도 떠난 마당에 니가 걔 기다리는 것도 웃기잖아. 너 걔 좋아해?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후재에게 주절대던 시간, 결국 나 혼자 중얼거린 거나 마찬가지인 시간을 좋아했다. 마치 버릇처럼 자하에 다녀온 후기를 후재를 앞에 두고 떠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좀만 더 기다려보고 싶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동생의 생일이었다. 엄마와 나는 내키지는 않아도 아빠의 집으로 갔다. 동생은 여느 열여덟의 남자애들처럼 방문을 닫고 게임이나 해대며 식구들하고는 말도 잘 섞지 않았다. 예전부터 동생은 네 가족이 둘씩 따로 사는 이유를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동생이 머리가 좀 컸을 무렵, 나는 동생에게 우리 남매가 떨어져 살게 된 이유를 말해줬다. 아빠가 엄마 때렸다고? 언제? 한 팔구 년 전까지. 아, 뭐야……. 옛날얘기네. 나는 엄마에게 동생이 아빠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는 웃었다. 글쟁이 짓은 니가 따라 하잖아. 자기 닮은 자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보는 게 니 아빠가 받는 벌이야. 동생은 엄마가 만들어 온 잡채를 잘 먹었다. 엄마한테 말은 한마디도 안 건네면서. 단숨에 세 접시를 먹어치우더니 잘 먹었다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도 이제 잡채 정도는 배우지그래? 아빠가 동생이 저 모양인 것을 이혼을 요구했던 엄마 탓이라 생각한다면, 나는 아빠가 그게 틀린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아빠와 동생을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잡채가 진짜 손 많이 가는 거 아빠는 모르지? 내 질문에 아빠는 잡채를 한 젓가락 뜨다 말고 입맛만 다셨다. 엄마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웃으며 소주를 홀짝거렸다. 너 만나던 남자랑 헤어졌지?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리 물었다. 요즘엔 집에 잘도 들어오데. 그래서 걱정했다. 이 기집애가 또 차였나 싶어서. 만나던 남자가 뇌진탕 땜에 입원해 있어. 별 그짓말을 다하네, 이제. 진짜야. 됐다, 이년아. 넌 어차피 시집가면 안 돼. 시집가서 글 쓴답시고 남편 속을 다 뒤집어놓을 거야. 글 쓰는 거 빼곤 아무것도 안 하면서 말이야. 아빠는 겨우 한입 넣은 잡채가 목에 걸렸는지 캑캑댔다. 나는 아빠의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 넣었다. 마셔가면서 드세요, 목 막혀.
   후재를 찌른 것까지 해서 전과 6범이 되어버린 발리송은 겨울이 되도록 잡히지 않았다. 나는 주간 웹진에서 소설을 연재했는데 매주 마감 날을 맞추는 게 버거웠다. 12월, 겨울. 후재가 지난봄까지 출근하던 영화사의 피디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원래는 나한테 시나리오 각색 일을 맡기려는 전화였는데 어쩌다 보니 후재의 얘기가 나왔다. 영화사 사람들이 후재의 짐을 정리해서 두었는데 마음대로 처분하기가 뭐한 모양이었다. 짐을 차마 후재의 본가로 보내지는 못한 듯했다. 본가로 보내서 후재의 부모님이 병상에 있는 아들의 짐을 박스째 받아본다고 생각하면 것도 못 할 짓이었다. 나는 후재의 짐을 나한테 보내라고 했다. 피디는 후재와 내가 몸을 섞는 건 몰라도 막역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 이상한 처사는 아니었다. 야, 김후재 이 자식 박스 안에 좋은 거 있드라. 내가 가지려다가 그냥 보낸다. 새끼, 취향이 좋아. 피디는 속없이 낄낄댔다. 나는 며칠 뒤 후재의 물건이 들은 제법 큰 박스를 하나 받았다. 노트북, 피다 만 담배 한 갑, 라이터, 제본된 시나리오 한 부, 영화사 로고가 박힌 텀블러, 삼선 슬리퍼, 캡모자 등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디브이디 한 장. 피디가 말한 좋은 취향은 그것을 말하는 듯했다. 헐벗은 여자가 뇌쇄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표지 때문에 피식 웃었다. 대체 왜 회사 물건을 정리한 박스에서 포르노 디브이디가 나오는 건지. 포르노의 제목은 <옆집 남자와 엘리베이터에서>였다. 자극적인 제목의 포르노는 막상 보면 별거 없다는 포르노에 대한 지론을 가진 후재였지만 <옆집 남자와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옆집 남자와 엘리베이터에서>를 재생시켰다. 육감적인 몸매의 여자가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벙거지를 깊게 눌러 쓴, 추레한 차림의 남자가 탔다. 그러다 돌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고장이었다. 여자는 비상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를 힐끔댔다. 남자가 싫은 눈치였다. 천장의 등까지 깜빡였다. 곧 정전이라도 될 것처럼. 남자가 여자한테 다가왔다. 그는 대뜸 고백을 했다. 501호 사시죠? 저는 502호 삽니다. 실은……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남자가 벙거지를 벗자, 뽀얀 피부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여자의 눈빛이 좀 누그러졌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건 저한테 기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얼굴이 벌게지며 소리쳤고, 여자는 미소 지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돌연 입을 맞췄다. 그때부터 둘의 엘리베이터 정사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언제 부끄러워했냐는 듯 여자를 몰아붙였다. 여자는 남자의 말랐지만 단단한 몸을 껴안았다. 작가로서 <옆집 남자와 엘리베이터에서>를 비평하자면. 이야기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하며, 잘생긴 놈은 어떻게든 되는 외모지상주의가 느껴진다는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다.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를 외치는 그의 눈빛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빛 같았다. 여자를 거칠게 몰아붙일 때는 온몸이 바스러지도록 그녀를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처음으로 포르노를 보며 예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롯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는데 배우의 연기로 그 구멍들을 다 메꾸는 영화였다. 후재 취향은 아닐 터였다. 일단 많은 남자들처럼 후재는 포르노의 서사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후재는 과연 <옆집 남자와 엘리베이터에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을까. 나는 어쩔 수 없이 후재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발리송에게는 은신의 귀재라는 해묵은 수식어가 붙었다. 희대의 탈주범인 신창원처럼 발리송과 함께 살며 그를 돌봐주는 여자가 있다는 얘기도 돌았다. 발리송의 현상금이 제법 높아졌다. 야, 김후재. 너 찌른 놈 몸값이 얼마나 뛰었는 줄 아냐? 오천만 원이야, 오천만 원. 그 말을 전달하면 단순한 김후재가, 가오 안 서는 것은 죽어도 못 견디던 김후재가 돌연 눈을 뜨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다. 후재는 눈을 감은 채 벌써부터 발리송을 쫓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 챕터를 실패하면 다시 그 챕터가 반복되는 게임처럼, 후재는 발리송을 잡을 뻔했다가 놓치는 걸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느라 눈을 못 뜨고 있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났다. 후재라면 그럴 만도 했다. 후재가 보고 싶어졌다. 후재가 내가 했던 얘기들을 기억한 건 우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하게도 내 얘기들이 후재의 머릿속 가장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다가 가장 높은 곳까지 불현듯 튀어 올랐을지도 몰랐다. 우연하게도 후재는 이런저런 야동을 찾아보다가 왠지 모를 익숙함에 <옆집 남자와 엘리베이터에서>라는 제목에 꽂혔을지도 몰랐다. 후재에게 찾아온 그 우연들이 다행스러워졌다. 잠들어 있는 후재가 도주범 발리송을 잡는데 열을 올리는 것 말고, 열세 살로 돌아가 깡촌의 논에서 트랙터를 몰고 다니는 꿈을 꾼다면 좋을 것 같았다. 운전이 서툴러 아버지에게 욕을 실컷 얻어먹는 꿈을 꾼다면. 그래서 진저리를 치며 눈을 뜬다면. 서른세 살의 후재가 바보처럼 겁에 질린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면. 그런다면, 나는 잠자코 후재의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후재야, 이젠 너를 괴롭히는 고물 트랙터는 없어.

배기정

알량하게나마 주어진 글 쓰는 재주가 인생의 재난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몇 년 전 진짜 재난을 겪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뭔가 쓸 줄 안다는 것은 고마운 것.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