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훼파



   오늘의 나무 꽃나무
   오늘의 나무 꽃나무 아래
   누가 있다

   누가 무허가의 좌판을 벌여놓고
   젖은 낙엽을 깔고 앉아
   혼자의 힘으로 주먹구구를 하고 있다

   기계주름을 하고 있다

   사루비아
   시클라멘
   오필리어
   무당버섯 풀물이 든 손으로 패를 펼치고 있다

   (이렇게 빼앗는 것이구나)

   모서리를 누른 네 개의 돌

   네 글자로 이루어진 고독의 목록

   우주자석
   사슴벌레
   파리지옥
   코스모스 바람이 분다 비구름이 온다 매미가 운다 암호를 대라

   누가 휘파람을 분다

   흙냄새가 난다

   삽자루에 기대어 선 사람이 나를 돌아본다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이 남의 꽃에 물을 주는 사람이 양봉모자를 쓴 사람이

   (이렇게 빼앗기는 것이구나)

   나를 돌아본다
   오늘의 나무 꽃나무
   꽃의 나무

   나무는 한없이 컸다 나는 다 소용이 없었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옥텟



   “올 것이 왔어”
   하나가 말했다

   “뭘 좀 먹어야겠지”
   또 하나가 말했다

   “죄 없는 자들은 목이 마르지 않아도 물을 마신대”
   또 하나가 말했다

보자기에 모가지는



   노래가 들렸다

지저귀고 기저귀고
바구니에 가자미가
누더기네 구더기네



   “여념이 없는 거야”
   또 하나가 말했다

기저귀던 지저귀는
누더기다 바구니고



   “음치, 하고 웃을까”
   또 하나가 말했다

모자기네 보가지네



   간발의 차이로 해가 지고
   혼비백산의 가루가 날리고

가자미던 구더기에


   기다리고 있었지

   인적 없는 미래에

   우리는 아름답고 거추장스러운 옛날 악기를 들고

신해욱

네 글자로 이루어진 고독의 무한한 목록을 쓰지 못했다 맨드라미 아스피린 쥐며느리 을지오뎅 파우스트 스크래치 짚신벌레 설탕단풍 부르주아 주머니칼 뭉게구름 몽고메리 허무맹랑 에메랄드 네덜란드 해바라기 차이밍량 가을배추 백작빌라 풍년철물 맥각중독 …………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