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은 한 자 차이가 사람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매일 실감하고 있었다.
  그의 병원에는 두 명의 안내데스크 직원이 있었는데 수진과 수미가 그들이었다. 자매마냥 이름의 끝 자만 다른 둘은 개원 멤버로 병원이 처음 열었을 때부터 일하기 시작해 그의 병원에서 이십 대를 다 보냈다. 월급은 수미가 10만 원 더 받았고 월차는 수진이 하루 더 썼으며 원장은 수진을 티 나게 편애했다.
  그는 매일 아침 안내데스크에 서서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두 사람을 보며 체 보고 옷 짓고 꼴 보고 이름 짓는다, 라는 속담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부모는 아이들이 갓 태어났을 때 각자에게서 어떤 꼴을 보았기에 이름을 그리 지은 걸까. 분명한 건 수미의 부모가 수진의 부모보다 딸에게 더 큰 기대를 품었다는 것이고 처음부터 원장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10년 전에 둘을 면접했을 때부터 기미가 보였다. 수진이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자 수미가 톡 튀어나와 저는 초대졸이요,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있고요, 하고 말했다. 그런 연유로 수미의 월급이 조금 더 높은 것이지만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원장은 전문대를 졸업했다고 말하는 대신 초대졸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수진이 수미에게 초대졸이 무슨 뜻이냐고 물은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서였다.
  “전문대 나왔단 소리지. 대학 나왔다고 하면 다들 4년제 나온 줄 알잖아.”
  “초가 무슨 촌데요?”
  “나도 모르지.”
  둘은 한 살 터울이었지만 수진은 수미에게 깍듯이 존대했다. 그것이 그녀가 사람들과 거리를 벌리는 방법이었다. 수미가 물었다. “너 동대학은 아냐?” 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얼마 전까진 동대학이 동국대 말하는 건 줄 알았다. 세상 사람들이 왜 다 대학원을 동국대로 가나 했지. 동이 동국대 동이 아니라 같을 동이란다. 너도 어디 가서 기 안 죽으려면 알아 둬.”
  그날 밤, 수진은 집에 돌아가 단어공책에 초대졸과 동대학을 적었다. 그녀는 새로 알게 된 단어는 반드시 공책에 적었다. 그런 용도의 공책이 따로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단순히 단어공책이라고 불렀다. 종이를 안쪽으로 말아 접선을 손날로 눌러 왼쪽 칸에는 단어를, 오른쪽 칸에는 의미를 적었다.
  최근에는 우듬지가 등재됐다. 우듬지라는 단어를 알고부터 지하철 2호선 당산에서 합정으로 넘어가는 구간이 달라 뵀다. 새싹을 틔운 연한 연둣빛 우듬지가 강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는 걸 보며 수진은 속으로 우듬지, 우듬지, 되뇌며 기뻐했다. 우듬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새 말을 기입하는 건 새 세계를들여오는 일 엉뚱한 문장이 수진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누가 말을 걸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요즘 들어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귀지 때문인 것 같아 점심시간을 이용해 일하는 병원 아래층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자꾸 말소리가 들린다고요?”
  의사가 보름달처럼 생긴 영상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남들에게 안 들리는 소리가 들려요?”
  수진이 말했다. “저 환청 아니에요.”
  “환청이 별건가. 그냥 자기 생각이 들리는 건데.”
  수진은 귓구멍을 파고드는 길고 뾰족한 기구에 몸서리치며 “아니요. 그건 제 생각도 아닌걸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수진의 귀로 흘러드는 말은 수진의 생각이 아니었다. 어떤 편지에서 읽은 구절들이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서 읽은 것들이 맥락 없이 그러나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최근에 심하게 스트레스받은 일이라도 있어요?” 의사가 물었다.
  “딱히……” 수진은 말했지만, 말하는 동시에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찍을래요?” 의사가 파낸 귀지를 휴지에 올려 내밀었다.

*


  수진이 동거하던 애인과 헤어진 건 유월이었다. 둘은 여섯 평 남짓의 방 하나짜리 월세 집에서 같이 살았다. 옆으로 긴 모양으로 양 끝에 베란다와 방이 있고 둘을 잇는 복도에 싱크대와 화장실이 있었다. 집의 폭이 어찌나 좁은지 신발장에서 싱크대까지 두 걸음이 채 되지 않았다.
  수진의 집이었고, 남자가 얹혀사는 것이었으므로, 남자가 요리했다. 싱크대에서 덮밥을 만들어 접이식 좌식 식탁에 얹어 방으로 들고 오면 두 사람은 나란히 매트리스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그릇째 들고 밥을 먹었다. 토요일엔 맥주와 오다리를 먹었다. 겨울엔 한기가 돌다 못해 서리가 맺히는 외벽을 피해 매트리스를 방 한가운데로 옮기고 여름엔 다시 외벽으로 옮겨 다리를 차가운 벽에 대고 잤다.
  처음에 둘은 우연히 만났다. 미세먼지가 심해 버스도 도로도 한산한 일요일 오후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간격을 두고 앉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수진과 남자, 둘뿐이었다. 버스가 서울역에서 명동 방향으로 크게 커브를 도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일제히 창밖을 내다봤다. 모두가 기다리던 먼지를 씻어줄 비였다. 그때 수진의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 낙망한 소리를 내더니 좋은 부사란 힘주지 않은 스핀으로 크게 꺾이는 변화구 같은 것 그대로 몸을 돌려 수진에게 차비 좀 꿔달라고 했다. “제가 집에서 동전 스물여섯 개 딱 갖고 나왔거든요.” 사연인 즉 남자는 돈이 없어 차비가 생겨야지만 외출할 수 있는 사람인데 모처럼 나와 그런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버렸고 수진이 돈을 꿔주지 않으면 집까지 걸어가게 생겼다고 했다. ‘한 바퀴 돌면 되지 않나?’ 수진은 생각했지만, 그러면서도 남자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 날이었다. 갑자기를 아낄 생각이 없던 오후. 그녀는 우연에 마음을 활짝 열어둔 채였다.
  수진은 버스카드로 남자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남자가 가리킨 버스에 탄 두 사람은 앞뒤로 앉아 조용히 빗소리를 들었다. 좋은 부사 목록에 갑자기와 문득은 영원히 들어가지 않으며…… 남자가 다시 몸을 돌려 물었다.
  “돈 많아요?”
  “아닌데요.” 수진이 말했다.
  “그래요? 근데 왜 길에 돈을 막 뿌리고 다녀요?”
  무례하기보다…… 수진은 남자가 살면서 이런 식으로 재미를 봤나보다 싶었다. 예측 불허의 말을 던져 주의를 확 끄는 식으로, 한두 번은 혹해도 이내 지루해지는 식으로. 남자가 계속 떠들어댔다. “환승할 수 있는데, 것도 둘씩이나. 근데 환승 안 하면 손해 보는 거잖아요.” 수진은 웃었다.
  그날 둘은 총 네 번 환승했다. 아무 데나 내려 걷다가 다른 번호의 버스를 탔고 밤이 되자 더 오래 걷다가 다른 번호의 버스를 탔다. 둘은 굳은 표정으로 마스크를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스치며 먼지를 잔뜩 먹고 많이 웃으며 오래 걸었다. 그렇게 몇 번의 주말을 보내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남자가 수진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


  “이게 다 가욋일이다.”
  수미가 의자 안으로 몸을 깊숙이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녀는 폭발 직전의 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소형우주선에 탄 사람처럼 눈을 감고 붕 떠 있었다. 수진의 연상은 그렇게나 평이했다. 우주선. 36개월 대여로 달마다 3만 원씩 나가는 원장의 안마의자를 만든 사람이 목표한 이미지도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돈도 못 받는데 이렇게라도 뽕 뽑아야지.” 그날 둘은 진료 시간에 차트 하나를 못 찾아 밤새 차트 정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일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수미 씨는 희한한 말을 많이 아네요.”
  “할머니랑 살아서 그래.”
  사실 수진은 가욋일을 과외일로 알아들어 단어공책에도 그렇게 적어 놓았지만 다행히 뜻을 찾는 과정에서 가욋일임을 알았다.
  “개새끼.” 수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그랬어요?”
  “대체 그게 뭐니? 뭐냐고!” 수미가 안마의자 안에서 몸을 뻗대며 말했다. “내가 자격증만 따면 진짜 여기 뜬다.” 허벅지에 올려둔 문제집은 고무줄로 묶여있었다. 수미가 고무줄을 풀자 돌돌 말려있던 문제집이 풀리면서 <아동예술독서융합놀이치료사 자격증 기출 문제집>이라는 긴 이름의 제목이 보였다. 그녀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마사지 볼이 등줄기를 훑을 때마다 흉부가 활짝 펴졌다.
  수미가 공부하는 동안 수진은 비상계단으로 갔다. 거기에 화분이 있었다. 빛도 안 들고 환기도 안 되는 계단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선물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흙이 영양제를 무섭게 빨아들여 진녹색의 화초는 빽빽하고 풍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잎이 누렇게 떠 있었다.  수진은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리며, 원장의 묘한 버릇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종종 수진과 수미의 얼굴에 분무기를 뿌렸다. 칙칙. 딱 두 번 뿌리고 갈 길 갔다. 둘은 영문도 모른 채 물을 맞았다.

*


  남자가 버스비를 못 낼 정도로 돈이 없던 건 그가 예술가라서가 아니었다. 그는 예술가였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아니 그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영상작업을 하고 있어.”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했고 수진은 소설가 말고 화가나 감독도 작가라고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늘 ‘작업’이라고 했다. 작업. 그 말은 예술과 노동 중 노동에 살짝 더 당겨있는 느낌을 주었다.
  돈이 없는 건 그가 작가라서가 아니라 전 애인에게 고소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전 애인은 연상의 회사원으로 용모도 아름다웠다. 고소 사유는 사생활 침해였다. 남자는 누나가 출근한 사이 노트북에 자동 로그인되어 있던 그녀의 이메일을 뒤져 그녀의 전 애인들 신상을 알아냈다. 주소까지 알아내는 데는 한 달이 더 걸렸다. 그는 명단을 들고 누나의 전 애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발각됐고 고소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
  “누나가 죽어도 이해를 못하더라고. 나는 누나의 과거가 궁금한 게 진짜 아니었거든? 인터뷰 딴 건 영화에 별로 쓰지도 않았어. 중요한 건 여정인데.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찾아다니며 요동치는 내 마음의 상태랄지 그날의 풍경이랄지, 계절, 냄새, 공기 같은 거. 내가 담고 싶은 건 그거였어. 누나는 그냥 매개였는데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 하더라고. 암만 애호가래도 누나도 일반인이었으니까. 말해 뭐해. 찍은 거 다 버렸어. 그 뒤로 내 신세도 쭉.”
  “형사야, 민사야?”
  “응?”
  수진의 물음에 남자는 눈알을 굴리다 사실은 누나가 고소를 취하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위자료 조로 누나에게 다달이 돈을 보내고 있어.” 덧붙여 말하고는 텔레비전 쪽으로 밀어놓은 좌식 식탁 위에 있는 사발을 치우기 시작했다. 수진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을 했다. ‘매개는 적고, 여정은 어떻게 할까? 대충 뜻은 아는데…… 아니다. 초심을 잃지 말자. 게을러지지 말자.’ 그녀는 밤에 방에서 몰래 빠져나와 단어공책에 매개와 여정을 적었다. 여정에는 역정과 같은 드라마틱한 다른 뜻은 없었다.

  기온이 갑자기 오른 5월이었다. 야근하고 돌아온 수진은 바닥에 누워 핸드폰으로 블라우스 황변 없애는 법을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그냥 누워 있었다. 만사가 귀찮고 피곤했다. 척척한 스타킹에서 발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그래도.’
  수진은 까부라지는 몸을 일으켜 기어 방으로 갔다. 문을 빠끔 열어보니 남자가 매트리스에 얼굴을 박고 자고 있었다. “자? 나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자? 자는 척하는 거 아냐?” 수진이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가끔 그러면 남자가 웃으며 일어나 “안 잤어.” 하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진은 조심히 문을 닫고 기쁘게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단어공책과 종이 뭉치.  그것들은 싱크대 안에 있었다. 하부장과 벽 사이, 수도 연결을 위해 패널을 잘라낸 곳에 숨겨 있었다. 수진은 잔뜩 쌓인 냄비와 프라이팬을 치우고 잘린 곳에 손을 넣어 단어공책을 꺼냈다. 잠시 종이 뭉치도 꺼낼까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피곤했다. 요즘 들어 내내 야근이라 종이 뭉치는 엄두도 못 냈다. 그녀는 단어공책만 들고 차 한 잔을 끓여 방 반대편에 있는 베란다로 나갔다.
  코딱지만 한 베란다였다. 세탁기, 건조대, 전자레인지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수진은 일단 전자레인지 위에 찻잔과 공책을 올리고 건조대를 복도로 내보냈다. 걸려있던 수건들을 발로 차 바닥에 내던졌다. 건조대를 치워 겨우 생긴 자리에 비집고 들어가자 배 바로 앞에 세탁기가, 등 바로 뒤에 전자레인지가, 팔 바로 옆에 창문이 있었다. 창문을 열자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창밖에 매달아 놓은 페트병을 잘라 만든 화분에서 대파가 하얗게 올라와 있었다.
  수진은 한동안 밖을 내다봤다. 거대한 붉은색 교회 십자가가 밤을 사 등분 하고  있었다. ‘맞다! 팥!’ 붉은색을 보고 팥을 떠올린 수진이 베란다 밖으로 나와 거실에 던져놓은 가방에서 새로 산 핫팩을 꺼내왔다. 남자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걸었다. 다시 베란다 문을 조용히 닫고 속에 팥이 든 핫팩을 전자레인지에 2분간 데워 어깨에 얹었다. 뭉친 어깨가 얼얼하게 마비되면서 달콤한 탄내가 올라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숨을 깊게 쉬고, 세탁기 위에 신발 박스를 올렸다. 높이가 딱 좋았다. 그 높이를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박스를 버렸는지 모른다. 주말마다 대형 마트에 가서 버려진 박스의 높이를 줄자로 재곤 했다. ‘스탠딩 책상이 별건가? 서서 읽고 쓸 수 있음 스탠딩 책상이지.’ 수진은 선 채로 구불구불한 세탁기 호스를 맨발로 꾹꾹 밟으며 단어공책을 박스 위에 올리고 몇 자 적었다.
  모르는 단어가 점점 줄고 있었다. 수진의 어휘력이 향상돼서기도 했지만 생활 반경이 협소한 게 더 컸다. 매일 가는 곳, 매일 보는 얼굴, 매일 듣는 소리. 서사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누구 죽이지 말고 되도 않는 반전 꾸미지 말고 움직이고 또 움직일 것!핫팩이 식었다. 수진은 핫팩을 다시 데우기 위해 뒤돌면 바로 있는 전자레인지로 까치발 해  갔다. ‘획기적인 이동!’ 수진은 혼자 쿡 하고 웃었다. 만약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수진은 스스로 물었다. ‘어디로 갈까?’ 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수진은 밤의 베란다가 미치게 좋았다. 매일 밤 누려도, 매일 밤 좋았다.

  그때,
  “뭐 해?”
  몰래 문을 연 남자가 새시 사이에 목을 끼고 수진을 보고 있었다.
  “뭐어 해?”
  남자가 새시 문을 열고 베란다로 들어왔다. 남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수진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곤 자신의 턱을 그녀의 어깨에 올리고 단어공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수진이, 집필 중이야?”
  남자가 킥킥 웃었다.

  싱크대에서 라면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라고 했다. 종이 뭉치는 수진이 6년간 써온 소설이었다. 열두 편의 단편소설. 수진은 1년에 두 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두 번 문예지에 투고했고, 두 번 답장을 받았다. 문예지에 실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작년에 쓴 게 제일 낫던걸?”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죽어도 모를 게 사람 속이다. 난 네가 소설을 쓸 거라곤 정말이지…… 넌 책도 별로 안 읽잖아! 알고 봤더니 우리 예술가 커플이었네.”
  수진은 남자와 자기 사이에 무언의 셈법이 있다고 믿었다. 내놓고 말하진 않았어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정교한 셈법에 의해 서로 찰 것도 결할 것도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제 짝이라 여겼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남자는 처음부터 규칙을 몰랐다. 신발 상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수진은 연인 관계가 끝났음을 알았다. 남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수진은 남자의 말이 전부 거짓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것도, 누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녀에게 돈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대학 때 찍은 단편영화가 넥스트 릴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공짜로 뉴욕에 가봤다는 것도, 다 거짓말일 수 있었다. 증거도 없었고 수진도 요구하지 않았다. 수진이 아는 것이라곤 실제 존재하든 아니든 남자만이 알고 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늘 그것에 대해 떠들어댔다. 무엇을 보든 자신의 것과 비교했다. “적어도 내 작업이 저것보단 더 나아갔어. 알아? 저것보단 더 갔다고!” 그는 늘 더 갔다고 했고 더 갈 수 있었다고 했고 수진은 더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역시 묻지 않았다. 가끔 남자는 펑펑 울었다. 그에게는 만들지 못한 영화가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해 좌절하고 아무도 보지 못해 안도하는 그 영화는 그의 내면에서 걷잡을 수 없이 위대해지다가 추락하곤 했다.
  수진도 k 출판사에 투고하기 전까지는 그와 비슷했다. 수년간 아무도 보여주지 않은 채 혼자 소설을 썼다. 그러다 결국 고립이 그녀를 좀먹기 시작했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학원을 기웃대게 됐다. 첫 수업 때 강사가 칠판에 적은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칠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습작생이 아니다. 나는 지망생이 아니다. 나는 예비 작가가 아니다. 나는 작가다.’ 한 명이 질문이 있다고 했다. “오, 질문, 좋지.” 학생은 말했다. “환불 돼요?” 전액 환불은 되지 않았다. 첫날 치 수업료가 제해졌다. 그는 수강 취소 사유에 적었다. ‘자신을 억지로 규정해야 하는 사람은 그 규정에 속하지 못한 사람.’
  몇 주 뒤에 수진도 학원을 그만두었다. 강사가 등에 탕파를 지고 들어오며 말했다. “작가들은 디스크가 직업병이에요. 쓰는 게 직업이라,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여러분도 작가 하려면 의자 좋은 거 사. 사실 내가 해줄 말은 그거밖에 없어. 작가 그거 나쁜 직업이야, 드런 직업이야.” 수진은 그날 병원에서 8시간 동안 앉아 근무했다. 지하철에 자리가 나도 서서 갔다. 수업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집에 갈 때도 서서 갔다. 씻고, 저녁 먹고, 건조대 치우고, 세탁기 위에 박스 올리고 박스 위에 노트북 올려 선 채로 3시간 동안 글을 썼다. 그녀는 고졸이었지만, 젊은 여자고 무난했기에 앉아서 일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서 하는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강사는 소설 쓰기도 일개 노동이라고 했다. 일개. 수진은 그곳에 다시 가지 않았다.
  수진은 다시 혼자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못 쓴 밤엔 적어도 단어공책이라도 쓰려 했다. 그러다 점점 소설 쓰기와 단어 쓰기 사이의 차등을 지우려 했고 그래야지만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종이 뭉치라 불렀고,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내리려 했고, 종국에는 ‘내리다’라는 표현도 지우려 했지만, 그 안에 어떤 자격지심 같은 게 있다는 걸 모르지 못했고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의 투쟁임을, 비밀스러운 투쟁임을 알았다.
  비밀스러운…… 수진은 매일 밤 남자와 같은 침대를 쓰며 딴생각을 했다. 각자 등을 돌리고 핸드폰을 할 때 그녀는 소설에 필요한 정보를 검색했다. 가끔 남자가 “뭐 봐?” 하고 물으면 핸드폰 화면을 빠르게 올리며 “웹툰.”이라고 답했다. 묻지 않기. 그것이 계약이었다. 누나에게 돈은 부치면서 왜 집세는 안 내? 누나를 아직 사랑해? 누나란 사람 정말 있어? 라고 묻지 않듯 수진은 그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너 밤에 뭐해? 라는 질문을 받지 않을 권리.
  밤에 베란다에서 쓰기.
  밤, 베란다, 쓰기.
  수진은 세 조건을 과장하지 않았다. 행갈이를 통한 고조의 비열함. 그것에 기대어 지루한 일상을 버텨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전으로서의 창조행위, 내가 지금은 여기서 이러고 있지만 밤만 돼봐라 같은 생각, 클라크 켄트의 비밀. 명사 끝내기의 낯간지러움. 그럼에도 밤과 베란다와 쓰기는 그녀에게 중요했다. 하루 중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겨우 밤뿐이었다. 어떤 루틴을 축 삼아 밤을 보낼 것인가,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한땐 수영이 축이었다. 이제 그녀는 일 년에 두 편의 소설을 쓰고 두 번의 반려 통지서를 받았다. 그를 축 삼아 그녀의 일부는 살아갔다. 그 시간대의 그녀는 다른 시간대의 그녀와 비슷하지만 달랐을 것이다. 남자가 침범한 건 바로 그 시간대였다.
  둘은 헤어졌다. 남자는 이유도 모른 채 그녀의 집에서 나가야 했다. 그는 한 달을 보챘다. 헤어지는 건 헤어지는 건데 이유나 알고 헤어지자고 했다. 그녀는 말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말하려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생략이 노출보다 나은 법입니다. 그녀는 입을 닫았다. 그렇게 그녀는 신비로운 이야기, 신비로운 여자가 되기로 했다. 수진에게도 그 정도의 허영심은 있었다.

*


  “저 땄어요.”
  샤브샤브 국물이 막 끓기 시작할 무렵 수미가 원장의 턱 밑에 아동예술독서융합놀이치료사 자격증을 들이밀었다. 국이 피워 올린 수증기에 압인금박 된 빳빳한 종이 자격증이 살짝 구부러졌다. 원장은 자격증을 물끄러미 보다 자기 밥그릇으로 시선을 돌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댔다.
  “…… 인간들 뭐 좀 안 하면 안 되나. 뭘 할 줄 안다고 그렇게들 뭘 해.”
  공중에 떠 있던 자격증이 걷어 들여졌고, 셋은 조용히 국물을 떠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원장이 시선을 수진에게로 옮겼다. 그녀는 어깨를 수그린 채 종지 구석에 밀어뒀던 고추냉이를 조금씩 간장에 풀고 있었다. 역시 수진이 낫다, 원장은 생각했다. 이름부터 그래. 수미란 이름에는 있는 허식이 수진이란 이름에는 없다. 꼴 보고 이름 짓는다 했지. 수진은 자기 자신을 알아. 고추냉이가 끝없이 풀어지고 있었다.
  “저도 뭐 해요.”
  수진이 회전하는 젓가락 끝을 보며 심상히 말했다.
  “뭐 하는데?”
  수미가 청경채를 우적우적 씹으며 물었다.
  “소설 써.”
  “소설?”
  “응, 밤에.”
  원장이 고개를 확 꺾었다. 그는 정말 싫어하는 건 아예 볼 수가 없다. 시야에서 사라지게 해 눈으로라도 죽여야 한다. 이제 그의 시야에서 수진이 죽었다.
  “멋지다. 그럼 너 소설가야?”
  셋은 또 국물만 퍼먹었다. 번들거리는 콧잔등을 하고 각자 생각에 빠져 있었다. 덥고 공기도 답답했다. 먹다 말고 원장이 방석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러더니 코를 골며 죽은 사람처럼 잤다.
  시간이 꽤 흐르고, 수미가 원장을 흔들어 깨웠다. 원장은 테이블을 붙들고 힘겹게 일어났다. 테이블이 끌리면서 공기 위에 올린 젓가락이 떨어졌다. 컵에서 물이 쏟아졌다. 이제 컵엔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 원장은 한동안 유리컵을 노려보다 안으로 주먹을 밀어 넣었다. 물에 잠긴 엄지와 검지가 부풀어 보였다. 톡톡. 원장이 수진의 얼굴에 물을 두 번 뿌렸다. 톡톡. 상에 올라오려는 고양이 벌하듯이.
  “수진아.”
  수진의 얼굴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수진아? 너 수진이지. 그치. 수진이 맞지. 그치.”
  원장은 연거푸 수진이, 수진이 했다. 너 수진이 맞지. 응? 수진이지. 수진이. 수진이. 수진이 꼴에 맞는 수진이. 응? “취해 살지 말어.” 원장이 고개를 뒤로 꺾곤 그대로 다시 누워버렸다.

*


  다음날 수진은 출근하지 않았다.
  그녀가 매년 소설을 보내는 k 출판사는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대부분이 k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문예지를 몰랐고 제작비도 많은 부분 국가 지원금으로 충당했다. 수진이 그곳에 글을 보내기 시작한 이유는 유일하게 등단하지 않은 사람의 투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6년 전, 처음으로 글을 보내기 전에 확인 차 메일을 보냈다. 이틀 뒤 답장이 왔다.
  -네, 투고 가능합니다. 미등단자, 비등단자, 반등단자 다 가능합니다.
  그녀는 답장을 보내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노인인지 청년인지, 한 명인지 여럿인지 알지 못했다. 막연히 편집자일 거로 추측했다. 사람들이 그럴 거라 말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두 편의 소설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왜 답장이 오지 않는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분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죽었나 봐.
  자주 가는 문학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k 출판사의 예의 심하게 정성스럽고 묘하게 미쳐 있는 답장을 받은 건 수진만이 아니었다. 누구든, 어떤 글이든 k 출판사의 편집자는 답장했다.
  -지 성질 못 이겨서 뒈졌겠지.
  소설만 표현의 자유를 누린 게 아니었다. 반려 통지서도 못지않게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그 때문에 한때 불매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k 출판사의 폭력적인 비평이 캡처되어 돌아다닌다. 그것은 좋은 글 감사하오나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아서, 게재 예정 원고가 밀려 있어서, 또는 영원한 침묵 외의 답을 구하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당신도 첫 문단만 읽으면 각이 나온단 말을 믿어?’ 하는 항의를 받지는 않았다. 각은 나올 수도 있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각 이후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 줄 만에 각이 나왔네, 쓰레기네, 누가 또 일기랑 소설이랑 구분을 못 했네…… 그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그건 눈 밝음이 아니라 신념의 문제였다.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보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읽을 가치가 없을 게 뻔한 원고를 집에 들고 가 맥주 한 캔 놓고 밤새 꼼꼼히 읽었다. 그러곤 분노에 찬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에게서 편지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그보다 성실한 독자는 없었다. 그보다 열정적인 인간은 없었다. 그보다 화가 난 비평가도 없었다.
  -그립네요. 그분의 미스터리한 인장!
  편지에는 고유의 사인이 있었다. 편지 맨 끝에 매번 다른 숫자가 적혀 있었다. 157:30, 320:13, 78:59. 아무도 숫자의 의미를 몰랐다.

  전화를 받은 k 출판사의 직원은 수진의 사연을 듣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녀는 건물 맨 아래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기다렸다. 콘센트가 모두 막혀 있는 커피숍은 출판사와 같은 이름이었다. 1시 28분, 마른 남자 한 명이 내려와 수진의 앞에 앉았다. 더운 날인데도 긴 팔 남방을 입고 있었다. 차를 시키겠냐는 수진의 말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젓고는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얘기 들었습니다.”
  수진은 편지를 보낸 사람의 문체는 알았다. 하지만 어투는 몰랐다.
  “그분을 찾고 있어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소식이 없어 걱정되기도 하고요.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어요.”
  “그분 죽었어요.”
  남자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왜 죽었느냐고 묻자 “과로사했어요.”라고  말했다.
  얼굴 근육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수진은 조용히 웃었다. 찾아가고 싶어서 그러니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대답 대신 수진의 뒤에 걸린 벽시계만 뚫어지게 노려봤다. 세상에는 그런 관계가 있다. 더없이 가까우나 무덤에는 가볼 수 없는 관계. 둘은 다른 시간대의 일이므로.
  “이제 됐죠? 가보겠습니다.”
  남자가 1시 37분에 일어났다. 수진은 멍하니 그가 카페 밖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콱콱 내리찍듯 걸었다. 걸음의 리듬이 문장이 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승강기 앞까지 갔던 남자가 못내 찜찜하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수진의 앞에 서서 시계를 다시 보곤 잠시 생각하더니 수진이 마신 커피 영수증 뒤에 휘갈겨 썼다. 00:09.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커피숍을 나오는데 수진의 귀에 문장 하나가 흘러들었다. 새 말이 체화돼 암묵지가 될 때까지 쓰고 또 쓸 것. 4년 전, 여름 소설에 대한 답장에 적혀 있던 문장이었다. 그때 그는 수진에게 어휘력이 부족하니 국어사전을 세 번 베껴 쓰라고 했다. 수진은 대신 단어공책을 썼고 새로 알게 된 단어는 자꾸 써 몸에 박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건물을 나와 길을 걸으며 최근에 알게 된 말을 입안에서 천천히 굴려봤다. 가욋일, 가욋일, 가욋일……

  수진은 편집자가 보낸 편지를 늘어놓았다. 157:30, 320:13, 78:59… 그리고 00:09. 996시간 28분. 약 41일. 어쩌면 편집자가 정말 과로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수진은 차마 고마워도 못하고 생각했다. 편지 아래 적힌 숫자는 편집자가 소설을 읽고 답장한 시간의 총합이었다. 한때 그것은 그에게 신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이 아닌 건 아니었다.

  그날 그는 작가와 함께하는 책의 밤의 사회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밤 9시, 둘이 만났던 커피숍에서였다. 그는 소용도 없으면서 초시계를 들고 나갔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의 “와”가 입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주머니 속 초시계를 눌렀다. 그는 정확히 측정했고, 매일 기록했다. 방 책상 위에는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한 노동시간을 표시한 그래프가 붙어 있었다. 해마다 기록은 경신되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저항 중이었다. 수진은 그의 저항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수진은 그에게 다시는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

  그해 여름, 수진이 쓰다 만 소설의 제목은 <아포리즘으로 남은 사나이>였다. 제목이란 없으면 글의 반 토막이 날아갈 정도로 결정적이어야 합니다. 수진은 조금 웃다가 신발 박스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판지가 소리 없이 무너졌다. 편지 속 문장은 수진에게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온전치 못한 채로. 편집자의 말은 구부러지고 조각나 이리저리 엉뚱한 데 붙다가 결국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인터넷에는 여전히 그의 지랄 맞은 편지가 돌아다닌다. 그렇게 그는 이따금 떠오르는 출처 불명의 아포리즘이 되었다. 문장의 운명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여름이 끝나고 월세 계약도 끝났다. 밤의 베란다는 사라졌다. 수진은 베란다가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제 파 화분은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고 수진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의 소설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을 이기는 위대한 소설이라는 의미에서는 그랬다. 한 계절은커녕 첫 자부터 끝 자까지 읽을 삼사십 분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녀의 소설을 잃었다고 한들 그것은 세계의 손실도, 누구 하나의 손실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사정일 뿐이었다. 그녀만의 사정. 수진은 한때 그걸 가졌었다. 자신만의 사정을. 조용한 기쁨이 있었다.

참고한 것들
* 박준석의 말과 글에서 전반적인 아이디어부터 몇몇 구체적인 단어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 빚졌음을 밝힌다.
* 신새벽, 문체수집, 《비문》3호.
* 찰스 부코스키, 『글쓰기에 대하여』.


이미상

올해 글로 번 돈 0원

2018/11/27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