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의 말



   나를 잊지 마세요
   꽃말을 만든 그 마음을 생각한다
   꽃 속에 말을 넣어 건네는 마음
   꽃말은 못 보고
   꽃만 보는 마음도 생각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아예 꽃을 못 보는 마음
   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
   꽃을 못 보는 그 마음도 생각한다
   꽃말을 처음 만든 마음을 생각한다
   꽃을 전했으되 꽃말은 전해지지 않은
   꽃조차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마음
       마음들 사이에서 시든 꽃도 생각한다





   스트라이크



   회사 반대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십삼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등 뒤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전원을 껐다
   이대로 가다 기차를 타면 바다가 나오리라
   느리게 날카로워지는 능선에 눈길을 주다가
   문득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문재 이문재 이문재
   부르면 부를수록 낯설어져서 그만두었다
   버스는 마주 오는 차를 모두 비켜 가며 달렸다
   세상의 아침은 세상의 아침에게만 아침이었다
   스마트폰을 껐는데도 내가 켜지지 않았다
   다들 내보냈는데도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
   기차를 두어 번 갈아타면 항구까지 가리라

이문재

생에 흠뻑 취하기를, 생에 취했다면 얼른 깨어나기를 바라며 중얼거리는 문장들이 다른 마음과 만나기를 바란다. 요즘 붙잡고 있는 ‘전환’인데 시가 못 따르거나 안 따라줘서 고민이다. 1982년 《시운동》을 통해 발표를 시작했고 『지금 여기가 맨 앞』 『제국호텔』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등의 시집을 냈다.

2018/12/25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