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아이



   물이 많은 도시에서 살았다. 자주 저녁밥을 굶었고 숨구멍 사이로 고개를 디밀고 자박자박 비 오는 날을 기다렸다.

   물로 허기를 속인 쪽잠 곁에서 세상에 없는 사람은 다정했다. 아랫목에 누워 지난겨울 방패연을 따라 떠난 이웃 아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던 밤,

   물속에서 별을 줍던 아이를 보았다. 그을음에 그을음을 입고 서 있었지만, 예배당 종탑 틈 사이에 끼인 그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

   푸른 습자지엔 온통 멍뿐이었던 여름

   밀밭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발자국 장단으로 알지 못하는 나라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헌 옷 위로 음정을 자주 놓쳤고 밀밭에서 회색 숲까지 종일 걸었다.

   풀섶의 푸른 달개비를 헤치며 무명 손수건이 젖었고, 달팽이의 붉은 눈을 빌려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던 시절

   과일나무의 청보라 그늘을 떼어 이마에 붙이고 날개 없는 것들을 만지며 여름이 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삐져나오는 은빛 소음에 귀를 대고 바람을 쓸쓸히 쓸어볼 때면

   어둠에서 떨어져 나온 별빛을 포대 자루 가득 담고 달마중 간 늙은 아비의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천행(天行)1)



   아낙들이 양지에 앉아 살비듬을 털고 있습니다. 한낮의 몽상이 하오의 긴 그림자를 거두고

   청마루의 피붙이들 눈 감아야 보이는 것들을 그리다 눈 뜨지 않습니다.

   살림채에는 타지 못하는 솔가리들, 살레발2) 엔 그을음…… 어질고 둥근 배를 만지며 몇 나절 느작거리다

   청지기의 아내가 막 소세를 마친 말간 얼굴을 만집니다. 찬물에 밥 말아 먹은 지 오래, 동경에 비친 낯빛이 차고

   여드레 건너 여드레 만에 목을 축입니다. 간밤에 끌어들인 하현달 간데없고, 소서에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장 먼 별에서 찾아온 밤이 문 두드리고, 파란 입술의 아이는 어미 손을 놓았는데

   누가 흙 속의 어린 발목을 잘라 산허리에 꽃불을 놓았나요.

   풀나비 다녀간 수파련 혼자 흔들리고, 하늘 뒤켠에 홑청을 너는데……

   외눈 삽살이 오는 기척에 문밖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최형심

저는 빈 병에 닿은 바람을 즐겨 마시는 사람입니다. 고요의 뼈를 만지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견고한 벽 속에 내리는 비를 헤아리며 자주 젖기도 합니다. 저는 밤마다 타인의 마음속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많은 이들이 함부로 서로의 국경을 넘나들게 될 거라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2021/02/23
39호

1
계절에 따라 유행하는 전염병
2
찬장을 이르는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