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명복



   은철은 전기장판을 끄는 것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겨울에 꼭 전기장판을 켜둔 채 목 끝까지 이불을 덮고 죽었다
   탐폰을 가방에서 꺼내 반드시 앞주머니에 넣는다 뒷주머니에 넣었다가 바지를 내리면서 변기에 빠트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왜 남자라고 생각했지 생각하다가 그만 탐폰을 뒷주머니에 넣고 변기에 앉아버렸다 탐폰을 앞주머니에 넣는 남자를 떠올린다 은철의 오래된 이름은 김은영
   은영씨, 은영씨를 불러본다 은영씨는 자신의 이름이 싫어서 글을 투고할 때마다 남동생의 이름을 겉봉투에 적었다 마포구 서교동 370-13 203호 김은철
   은철씨, 은철씨가 정한 이름으로 불러주자 은철씨는 화장대 옆에 있는 액자 속 남자를 본다 사진 속 남자는 얼굴에 꽃받침을 하고 애인의 어깨에 기대 웃고 있다

   화장실은 곰팡이 하나 없이 깨끗하다 이렇게 깔끔한 사람이 자살을 하다니 빌라 주인이 괴롭다 은철씨는 그게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고 빌라 주인이 죽는다면 자살로는 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은철씨는 시체가 있던 장판 주위를 뜯어낸다 내가 비염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전화벨이 울린다 애인의 전화다 첫 질문은 자주 같다 이번에는 여자야 남자야 은철씨는 궁금하지 않아 대신 모르겠어 라고 말한다

   남자의 집에서 가져온 매니큐어를 바르고 손톱이 닿지 않게 엉거주춤 노트북을 켠다 퇴근 후 블로그에 홍보 글쓰기 고독사 경력3년 공릉동특수청소

   남자는 창문을 빠짐없이 열어두고 나왔는지 떠올린다 남자가 턱을 괴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사랑에 빠질 것 같다 탁자 위 거울에 비친 내가 예쁘다





   창 안에서



   새장이 갖고 싶어진 날이었다
   하루 종일 새를 파는 시장에 돌아다녔는데
   내가 찾는 것은 세상에 아직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새장 몇 개를 사서
   그것을 이어붙이기로 했다

   열두 개의 새장을 이어 붙인다
   어쩔 수 없이 열두 개는 열두 달을 떠올리게 한다

   창의 살 안으로 새가 날아들고 있다

   새는 새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이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새장에 들어간다

   날개만 있는 새는 부리가 없어서 새가 될 수 없고
   부리만 있는 새도 날개가 없어서 · · ·

   새의 바깥에는 새가 있다
   새장의 바깥에는 새장이 · · ·

   새장에 이름을 붙인다

   터져나오는 쓰레기를 투명테이프로 막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달라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나를 가지지 않아도 버릴 수 있다

성다영

어떻게 하면 귀여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까.

2019/01/29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