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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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속 누워만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더이상 세상이 나를 맞이하지 않아도 나는 세상의 끝으로 가련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의지가 느껴지는군.
차미가 말했다.
의자가 느껴진다고?
내가 되묻자 차미가 책을 내려놓고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나의 목을 잡고 흔든다.
그만 뱉어내란 말이야.
웃음기가 감돌다 점점 일그러지는 차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뱉어내라는 말은 우리가 언어의 유희 속에 빠져있거나 잠들어 있을 때 쓰는 우리만의 약속된 말로 그만 눈을 뜨라는 뜻이다. 내가 무언가 뱉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기 원숭이를 뱉어내고 싶다. 붉은 얼굴의 작고 귀여운 원숭이. 황금색 솜털이 돋아난 꼬리는 또 어떤가. 너무나 환한 세상에 놀라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쿨키이즈쿨키이즈, 소리를 지르겠지. 우리는 해가 몇 번이고 지고 뜰 때까지 입가에 번지는 미소와 함께 원숭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름을 붙이고 싶어지면 이름을 붙여도 좋으리라.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니다. 차라리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게 좋다. 이름을 붙이고 나면 이름이 존재를 뒤덮어버린다. 꼼짝 못 하게 만든다. 네이밍 네트워크에 갇히게 된다.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전기를 껐다가 켰다가 하게 된다. 태양을 가릴 수 있다면 밤도 사라질 거야, 대기의 온도를 낮추는 말들을 계속 중얼거리게 된다.
나는 이제 무언가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능력을 버린다. 애초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었다. 그러니 내 입에서 뱉어질 수 있는 원숭이라면, 원숭이여, 너는 이름 없는 원숭이로 되어가거라. 살아가거라.
내가 이런 우스꽝스럽지만 물리칠 수 없는 생각의 끝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차미는 차미대로 어떤 풍요로운 상념에 젖어 있었는지 촉촉한 눈동자로 내 목에서 손을 풀어 냄새를 맡은 뒤 다시 제자리로 가져갔다.
다시 제자리라니? 이전까지 차미의 손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기계유령처럼 천천히 흔들리며 멀어져 가는 차미의 야무진 손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밤을 지샌 후의 새벽이었고 안개가 자욱한 기차역이었다. 나는 안갯속에 갇힌 발 때문에 어린아이로 돌아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차미는 다 뱉어내고 싶다며 기차가 오는 방향을 향해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치아가 사과의 씨에 닿기 전 마지막 한 입 같은 기억이다. 나는 영원히 한쪽 다리를 안개에 빼앗기고 말았고 차미는 달려오는 기차를 삼켰다. 어째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을까.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아득하다. 모든 게 선명하지만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차미와 나는 세계의 점진적 변혁과 함께 늙어 현명해지기 전에 다시 만났고 이제 우리는 삶이라는 유희의 끝에 다다라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서로를 향해 무슨 말을 해도, 어떤 몸짓을 해도 우리는 되받아 칠 줄 알고 모든 애매한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놀라워할 줄 안다.
우리의 말은 드물지 않게 서로를 비껴나가 우리의 눈빛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떨어져 납작해지지만 그 말들이 언제고 다시 생기를 되찾아 우리의 머릿속을 명쾌하게 울리며 언어의 비밀을 속삭여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은 언제고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때가 늦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는 계속 말한다. 말해야 한다. 말을 아끼면서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말을 하는 사이, 말로 교감하고 유희하는 사이 천사와 악마의 그림자로 만석이 된 기차가 우리의 기억을 깔아뭉개고 지나가기도 한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공통 감각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착각이었다. 우리가 되묻고 되돌리려 열망했던 것들이 세상으로 차올린 팽팽한 공인 줄 알았는데 이제 헝겊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누더기 공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침울한 얼굴로 누더기 공의 헝겊만 만지작거릴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신경을 다른 곳에 쏟아야 한다. 바로 방금 전까지 우리가 했던 말들, 우리의 낮은 목소리가 읽어낸 문장들, 그리고 잠시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게 만드는 초시간적 감각에 대하여. 우리는 두리번거려야 한다.
우리의 의식과 현상계가 모종의 암약 속에서 타협하고 있는 지각 작용을 흔들어놓아야 한다. 세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나 무작위적으로 쏟아지는 언어의 물방울들을 흡수하는 분홍색 더듬이가 우리의 정수리에서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추상적인 말로 시간의 노화가 주는 순수한 언어적 간섭이다.
한때, 그러니까 우리가 밤을 지새운 새벽, 기차역에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은 침묵에 대한 예찬도 치유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고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슬픔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손을 잡으면 손가락 사이사이로 무언가 계속 빠져나갔다.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말의 입막음. 말로 말의 입막음. 너무나 많은 말이 가득 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실오라기 같은 말의 끄트머리가 신음처럼 새어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말이 되지 못한 음성을 귀 기울여 채집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를 멀어지게 했고 다시 만난 우리가 서로의 얼굴과 몸에 파묻힌 언어를 더듬고 말을 되듣고 되풀이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우리는 한 번 되들린 말이 최초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 파묻힌 장면과 우리가 기억해내는 장면이 다르듯이 말이다. 말없이 말할 수 있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영혼은 4인칭 나선형 시점으로 서로를 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두리번거린다.
눈앞의 풍경이 거품기로 한 번 돌린 것만 같다. 하늘은 하늘답게 푸르고 나무는 나무답게 서 있고, 바람은 바람답게 어디선가 불어온다. 그러나 하늘의 푸른색에 사람들의 지문이 묻어 있는 것만 같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무의 뿌리는 땅 밑에서 얽혀들어가고 있을 것이고,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있다면 좋으리라. 한 마리 귀여운 원숭이가 바람의 방향을 거슬러 달려와 우리의 품에 안겨 쿨키이즈쿨키이즈, 소리를 내면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도 있겠지만 원숭이가 우리에게 달려올 까닭은 없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눈앞의 현상계에서 일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제로에 가까운 것이지 제로는 아니다.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현상계를 가리고 있는 물질의 입자들은 고집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변덕이 심할 수도 있다.
원숭이 그리고 그 밖에 모든 것에 빠지고 나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다 심리적 진동이 일어난다. 마음의 해일이 인다. 하지만 마음 역시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원숭이 그리고 그 밖에 모든 것이 내 의식세계 안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언어와 이미지의 미로를 통과하다 제풀에 지쳐 잠잠해지는지 따져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다고 나의 의식을 절제해볼 수도 없지 않은가. 이 끊을 수 없는 사변의 문어 대가리. 언어의 감미료가 쏟아내는 지각의 화학작용. 나는 나의 의식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관심 없는 척을 하며 살아왔다. 세계와 일상의 수레바퀴에 매달려 얄팍한 휴머니티를 간직한 명예로운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의 고리를 자주 끊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어 해야 했다. 고만고만하면서도 핑계가 많은 삶이었다.
나는 숫자를 잘못 기입한 은행원이었고, 덜떨어진 정치인의 보좌관이었고, 오일 뚜껑을 잃어버린 자동차정비공이었고, 모든 인간의 병을 노리는 제약회사 납품업자였고, 더 넓은 들판을 꿈꾸다 낭떠러지로 추락한 소몰이꾼이었고, 건물을 거꾸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었다. 숫자들이 쏟아지는 허구의 세계 속에서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다 자기의 이름을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의식의 주름을 원했으나 세계의 시간을 탕진하며 늘어난 건 몸의 주름뿐이었다. 이제 몸의 주름에 새겨진 것들을 의식으로 옮겨놓는 행위가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되묻기. 신체 기관의 여기저기에서 떠돌며 달그락거리는 말들을 되물어 신비롭고 아름다운 비선형 지도로 펼치기.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을 찾은 것만 같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삶의 디테일로는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 희미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렷해지는 말의 시선들, 말의 몸짓들. 나는 두리번거리는 것으로 나의 의식을 탐구한다. 차미를 다시 만나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차미의 촉촉한 눈을 보고 있으면 계속 두리번거려도 좋을 것만 같다. 차미의 시선과 몸짓의 점진적인 이동을 따라간다.
마침 차미의 오른쪽 다리가 나의 왼쪽 다리에 얹힌다. 세계는 거품기를 한 번 돌린 것만 같고 차미의 다리는 무게감이 없다. 차미의 목소리를 더듬어 되듣는다.
의지가 느껴지는군.
방금 전까지 우리는 겨울음악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지금은 봄이고 음악도 없지만 우리는 겨울음악공원에 있다. 겨울음악공원은 차미가 붙인 이름이다. 차미는 이름을 붙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내가 차미에게 질투를 느낀다면 이름을 붙이는 능력에 대해서일 것이다.
공원은 폐쇄된 것과 다름없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에 우리는 놀라워했다. 어쩌면 우리는 겨울음악공원 주변을 맴돌며 우연히 만나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연히 만났어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절대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필요했다. 수십 번의 겨울이 지날 동안 겨울음악공원 역시 얕은 숨결을 내뱉으며 우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공원이지만 우리에게는 오래전 우리의 사랑언어사고실험을 위한 무대이자 공간이었다. 우리는 겨울음악공원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만큼 침묵했으며, 우리 주변의 풍경이 열릴 때까지 멀고도 가까운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그 실험을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물에 젖어 달라붙은 채 말라버린, 책의 낱장을 조금씩 떼어내듯 실패한 사랑언어사고실험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확실함에 확신을 가질 때까지 겨울음악공원에 우리는 찾아들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사랑언어사고실험은 지속되어야 한다.
나는 의자를 느껴보려고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놓았다. 한 번쯤 세상의 물리법칙을 혼탁하게 만들며 의자 속으로 나의 하체가 스며드는 것은 어떨까. 의자가 느껴진다. 의자와 내가 겹쳐진다.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오래된 셀룰로이드 필름처럼 구겨지고 만다. 차미는 빛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투과할 수 없는 구겨진 필름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린다. 책의 귀를 접듯 나의 귀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여전히 차미는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귀를 만지작거리지 않으면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었다. 나와 헤어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어둠 속으로 점점 퍼져가는 사랑의 변주곡을 혀끝 뿌리로 연주했을까. 전율이 일어난다. 나 역시 차미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의 손에 내 귀를 맡겨보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귀는 점점 기형이 되어갔다. 나보다 내 귀가 먼저 차미를 향해 열리고 펄럭였고, 혼자 밤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귀가 위로 솟구쳐 올라 지상의 세계를 조롱해도 좋았다. 그다음은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
차미와 나는 서로의 말과 시선과 몸짓을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서로를 향하던 지난 삶에 빗금을 치듯 책을 읽고 있다.
우리는 이제 책을 읽는 거야.
우리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시간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이것밖에 없어. 그리고 예쁘게 늙어가는 거야.
왜 시간에 저항해야 하는데, 그리고 왜 예쁘게 늙어가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데, 라고 나는 묻지 않았다. 물었다면 차미가 읽지마, 라고 말하며 책을 빼앗고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내 마음을 한 웅큼 떼어내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인간은 손에 무언가 들고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고, 책을 들고 있는 것만큼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도 없어.
나는 차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날 이후 책을 읽기 전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쥐고 만지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책은 항상 차미가 가져왔다. 손에 들기 좋은 책이었고, 읽을 때 가끔씩 허공에서 물방울이 터지는 것만 같은 문장을 담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책은 이해하기 이전, 읽기에 좋으면 충분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읽고 싶은 만큼 조용히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당신 몸은 엉망인데 목소리는 그대로야. 신기해. 나도 그래?
처음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차미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 침이 말라 자주 쩝쩝거리긴 했어도 목소리는 젊었을 때와 비슷했다. 어느 순간부터 쩝쩝 소리가 시간에 저항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전율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입가에 번지는 미소로 7년 동안 서로의 노란 알몸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헤어지고 26년이 흘러 엉망이 된 몸으로 만나 책을 읽고 있다. 이 숫자에 우리는 가끔 놀라워한다. 허구의 숫자들이 우리의 창백한 영혼 안에서 물방울처럼 터진다. 어제 헤어지고 오늘 만난 것만 같은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착 달라붙어 있어 절대 떼어지는 않는 책의 낱장 뭉텅이 같은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 우리는 잠시 동안 많은 것을 잊고 하나가 되는 착각에 빠진다. 두 엉망이의 목소리가 세상에 엉켜 있는 거미줄에 가닿으려 한다.
나의 눈은 점점 멀어져 간다. 눈이 점점 멀어져 간다니.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 걸까. 나의 시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지만 이렇게 말하면 뭔가 생각이 단절되는 기분이 든다. 글자를 보고 있으면 눈이 더 피로해진다. 눈앞이 흐려진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활자가 춤을 추고 박자를 놓치고 리듬이 단절되고 스텝이 어긋나고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진다. 처음이 어렵지 계속 읽다 보면 글보다 내가 먼저 글 끝에 도착해 문장을 기다리게 된다.
차미는 내가 잘못 읽고 있는 책의 부분에 대해서 한 번도 딴죽을 걸거나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게 퍽 마음에 들었고, 우리가 다시 멋진 한 팀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어쩌면 차미 역시 나처럼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에 힘을 주어 차미가 읽고 있는 글을 따라가 보지만 어림없다는 듯 차미는 또박또박 글을 읽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차미가 읽어내는 글이 내 귀를 통과해 바람에 실려 사라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떤 목소리는 다시 듣고 싶어도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차미가 벤치에 등을 기댄 채 양팔을 쭉 펴셔 늘인다. 차미의 오른쪽 팔이 내 가슴을 때린다. 그리고 하품을 한다. 나 역시 전염된 척 차미를 따라서 하품을 만들어낸다. 하품을 만들어내자 이번엔 정말로 하품이 나온다. 차미가 나의 하품을 받아 다시 하품을 한다. 잠시 우리는 하늘의 구름이 모든 슬픔을 걷어내듯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본다.
차미가 옆에 있는 책을 들어 만지작거리다 나의 허벅지에 던지듯 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손을 올려 지그시 누른다. 점점 강도가 세진다. 차미의 손이 책을 통과하고 내 허벅지를 통과해 한없이 아래도 떨어진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책이 내 다리 위에서 빻아지고 있다. 나는 차미가 눈의 크기를 줄이며 집중하는 세계를 열고 싶다. 그 세계가 텅 빈 가상의 공간이라 해도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사라지고 싶다. 책 속의 활자들이 제멋대로 분열되었다가 재조립된다.
다시 읽어볼까?
다시 읽을 수 없어.
왜 다시 읽을 수 없는 걸까?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
차미가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말로 반응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의자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바로 방금 전까지 내 몸에 남아 있었던 느낌이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말을 할수록 우리의 기분은 상승되었다가 추락하곤 한다. 어떤 말이 우리의 기분을 다르게 만드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말이 차오르기 전에 다시 목소리를 더듬는다. 차미의 목소리가 하울링처럼 퍼져간다. 목소리에 우리가 말하고 들었던 목소리가 겹쳐진다. 그 목소리가 비타민을 과다 섭취한 젤리 문어처럼 꿈틀대는 내 의식의 뇌관을 살짝 누른다. 내 몸이 기울어져 차미에게 기댄다. 차미와 나의 귀가 달라붙었다가 미끄러진다.
나는 점점 흐릿해지는 눈앞의 풍경을 닦아내기 위해 눈을 감고 우리가 읽었던 이야기를 되뇌어 본다. 이미 사라진 이야기. 기억할수록 전혀 다른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이야기. 시간에 저항할 수 없어 시간의 반대편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마는 이야기. 우리의 흔들리는 기분을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는 또 다른 유희의 시작이다.
가방을 든 한 남자가 이제 막 역에 도착한다. 남자는 자신이 타야 할 열차가 이제 막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열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열차는 열차의 꽁무니까지 가져가 버렸다. 다음 열차는 한 시간 후에 올 것이다. 다음 열차가 온다면, 다음 열차가 온다고 해도 또다시 열차를 놓칠 수 있을까. 뭔가 급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전혀 급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는 자신이 왜 이런 생각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 흔들리는 생각을 더 흔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생각처럼 마음대로 생각이 흔들리지 않았다. 도무지 모르겠군. 남자는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척하며 역사 안을 두리번거린다. 남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남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사랑스러운 원숭이들 같군. 하지만 모든 게 비에 젖은 그림 같아. 남자는 헛기침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는다. 남자는 정수리에 땀이 맺힌 것만 같다고, 머리가 가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남자가 긁고 싶은 것은 두피가 아니라 머릿속이다. 남자를 대신해 우리가 남자의 머릿속을 살살 긁어보자.
중절모를 쓰는 게 잘못이었어. 중산모를 쓸걸. 언제나 이게 문제야. 중산모를 쓰면 중절모를 쓰고 싶고 중절모를 쓰면 중산모를 쓰고 싶어지지. 남자는 모자를 벗어 뒤집은 뒤 머리에 다시 썼다. 앞에 앉아 있는 두 남녀가 포옹을 풀고 남자를 보고 피식 웃어 보였다. 둘은 같은 파란색 후드 티를 입고 있고 중앙에는 COOL KIDS NEVER SLEEP 이란 글씨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남자는 둘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남녀와의 물리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고, 멀어진 거리만큼 이전부터 그 둘과 무척 가까운 사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자는 자신의 사고체계가 점점 엉켜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전의 삶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다면 그곳은 흰 구름 아래 흰 양떼들이 모여드는 곳이겠지요. 남자는 노래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일어나 가방을 둔 채 역사 안을 빠져 나왔다. 뒤에서 남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오랫동안 걸어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깡마른 모습으로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이미 폐쇄되었고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얽히고설킨 나무줄기 사이로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오른쪽 엄지와 남은 손가락들을 동그랗게 오므려 여자를 원 안에 담아 보았다. 이 원을 오랫동안 간직해야지. 남자는 손가락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공원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남자가 공원을 맴돌자 4인칭 나선형 시점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이야기의 자기장에 이끌린 나는 현상계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된 가상계로 나의 의식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 뱉어내란 말이야.
어느새 차미는 잠들어 있다. 겨울잠에 들어간 작은 동물처럼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린다. 이 작은 동물을 깨운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잠에 든 것은 차미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맞다. 그래서 나는 차미가 나의 목을 잡고 흔드는 통에 눈을 뜨고 말았다. 눈을 뜨자 세상은 더 선명해져 있었다. 오후에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전에 눈을 뜬 것만 같았다. 차미는 두 손을 모아 펼치곤 무언가를 받아내고 있었다. 차미의 손에 담기는 보이지 않는 입자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 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얇고 끈적끈적한 막이 내 얼굴을 감싼 채 빨아들였다.
책을 읽으니 오늘은 목욕을 하고 싶어지네.
차미는 고개를 숙여 낡은 버건디 구두를 바라보며 명랑하게 말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공중목욕탕을 찾아가기로 했다. 차미가 책을 들고 먼저 일어났고, 내가 뒤를 따랐다. 겨울음악공원의 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얽히고설킨 나무를 타고 넘어 밖으로 나왔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을 각오로 겨울음악공원을 나왔다. 우리의 말과 몸짓의 일부를 잃어버리고 겨울음악공원을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겨울음악공원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 기분을 간직하도록 하자. 우리는 앞으로 걸어가며 겨울음악공원의 영역을 점점 지우는 동시에 넓혀갔다.
나는 다리를 조금씩 절며 차미의 손목을 잡고 공중목욕탕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몇 사람과 마주쳤는데 우리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지 우리 앞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뒷모습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것에 새삼 놀라워했다.
뒷모습은 같이 볼 수 없겠지.
뒷모습을 같이 볼 수 없다니.
공중목욕탕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각자의 입구로 들어갔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바로 다시 나왔다. 누군가의 몸을 보고, 누군가에게 몸을 보여준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조차 나의 몸을 보는 것이 어렵다. 나는 나의 몸이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렇게 자신을 설득시키며 밖으로 나왔다. 차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목욕탕 입구에서 서성이다 건너편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보르작이란 이름이 어울릴 것 같은 주인이 알은체를 한다.
어서 오세요.
제가 보이나요?
아주 잘 보이는데요.
보이는군요.
오늘도 같은 차를 드시지요?
아니요, 같은 차를 주세요.
내 앞에 한 잔의 차가 놓여 있다. 차는 아주 천천히 식을 것이고, 카페 유리 문을 통해 보이는 건너편 목욕탕에는 차미가 있다. 목욕탕의 뿌옇고 시큰한 공기 속에서 거울을 통해 뒷모습을 비춰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뒷모습은 같이 볼 수 없는 거야. 목소리가 들린다. 한 번 들리면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희고 푸른 주름의 결과 겹의 목소리.
나는 안경을 끼고 있지 않지만 안경을 벗는 척하며 안경을 내려놓았고, 머플러를 하고 있지 않지만 머플러를 푸는 척하며 머플러를 풀었다. 그리고 모자는 또 어떤가. 눈물이 흐르지 않지만 눈물을 조금 흘려도 좋겠다는 생각에 눈가를 훔쳤다. 차미가 나오면 기계우동을 먹으러 가야겠다. 가는 길에 이전처럼 책을 마음에 드는 장소에 놓아둘 것이다. 누군가 읽을 수도 있고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처럼 의지를 느끼거나 의자를 느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버려진 책을 본체만체하며 자신의 갈 길을 가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책은 발견되기 위해 그곳에 머물러 있기도 하고, 숨은 사물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읽었던 책들. 우리가 읽고 버렸던 책들. 우리가 앞으로 읽지 않을 책들. 내가 떠올린 모든 것은 누군가 읽다 만 책의 문장을 흉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장처럼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안개에 발목을 잃은 사람과 기차를 삼킨 사람. 그건 정말 우리의 이야기였을까.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까지. 우리의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를 불러내서 살고 싶다. 읽고 싶다. 말하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나는 작은 원숭이가 되어 허리를 구부린 채 얼굴을 찻잔에 붙이고 입으로 차를 마신다. 목욕탕 입구로 차미가 나온다.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차미는 두리번거린다. 차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봐왔던 장면. 차미의 주변이 온통 환하다. 나는 오른손 엄지와 남은 손가락들을 동그랗게 오므려 원을 만든다. 차미가 원 주위를 맴돈다. 차미가 움직일 때마다 빛의 파장이 일어난다. 손가락을 좀더 모은다. 그 안에 빛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우리의 광학기계. 원은 점점 작아지고 눈앞의 풍경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또 다른 세계의 주름이 펼쳐진다. 내 몸의 주름과 세계의 주름이 겹쳐져 전자파도를 일으킨다. 내 의식세계 밖으로 뻗어나간 노이즈가 차미의 목소리로 되들린다. 다 뱉어내고 싶어. 목소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목소리의 몸짓을 따라간다. 우리는 겨울음악공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이제 내가 다시 두리번거릴 차례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의지가 느껴지는군.
차미가 말했다.
의자가 느껴진다고?
내가 되묻자 차미가 책을 내려놓고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나의 목을 잡고 흔든다.
그만 뱉어내란 말이야.
웃음기가 감돌다 점점 일그러지는 차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뱉어내라는 말은 우리가 언어의 유희 속에 빠져있거나 잠들어 있을 때 쓰는 우리만의 약속된 말로 그만 눈을 뜨라는 뜻이다. 내가 무언가 뱉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기 원숭이를 뱉어내고 싶다. 붉은 얼굴의 작고 귀여운 원숭이. 황금색 솜털이 돋아난 꼬리는 또 어떤가. 너무나 환한 세상에 놀라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쿨키이즈쿨키이즈, 소리를 지르겠지. 우리는 해가 몇 번이고 지고 뜰 때까지 입가에 번지는 미소와 함께 원숭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름을 붙이고 싶어지면 이름을 붙여도 좋으리라.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니다. 차라리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게 좋다. 이름을 붙이고 나면 이름이 존재를 뒤덮어버린다. 꼼짝 못 하게 만든다. 네이밍 네트워크에 갇히게 된다.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전기를 껐다가 켰다가 하게 된다. 태양을 가릴 수 있다면 밤도 사라질 거야, 대기의 온도를 낮추는 말들을 계속 중얼거리게 된다.
나는 이제 무언가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능력을 버린다. 애초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었다. 그러니 내 입에서 뱉어질 수 있는 원숭이라면, 원숭이여, 너는 이름 없는 원숭이로 되어가거라. 살아가거라.
내가 이런 우스꽝스럽지만 물리칠 수 없는 생각의 끝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차미는 차미대로 어떤 풍요로운 상념에 젖어 있었는지 촉촉한 눈동자로 내 목에서 손을 풀어 냄새를 맡은 뒤 다시 제자리로 가져갔다.
다시 제자리라니? 이전까지 차미의 손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기계유령처럼 천천히 흔들리며 멀어져 가는 차미의 야무진 손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밤을 지샌 후의 새벽이었고 안개가 자욱한 기차역이었다. 나는 안갯속에 갇힌 발 때문에 어린아이로 돌아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차미는 다 뱉어내고 싶다며 기차가 오는 방향을 향해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치아가 사과의 씨에 닿기 전 마지막 한 입 같은 기억이다. 나는 영원히 한쪽 다리를 안개에 빼앗기고 말았고 차미는 달려오는 기차를 삼켰다. 어째서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을까.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아득하다. 모든 게 선명하지만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차미와 나는 세계의 점진적 변혁과 함께 늙어 현명해지기 전에 다시 만났고 이제 우리는 삶이라는 유희의 끝에 다다라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서로를 향해 무슨 말을 해도, 어떤 몸짓을 해도 우리는 되받아 칠 줄 알고 모든 애매한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놀라워할 줄 안다.
우리의 말은 드물지 않게 서로를 비껴나가 우리의 눈빛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떨어져 납작해지지만 그 말들이 언제고 다시 생기를 되찾아 우리의 머릿속을 명쾌하게 울리며 언어의 비밀을 속삭여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은 언제고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때가 늦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는 계속 말한다. 말해야 한다. 말을 아끼면서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말을 하는 사이, 말로 교감하고 유희하는 사이 천사와 악마의 그림자로 만석이 된 기차가 우리의 기억을 깔아뭉개고 지나가기도 한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공통 감각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착각이었다. 우리가 되묻고 되돌리려 열망했던 것들이 세상으로 차올린 팽팽한 공인 줄 알았는데 이제 헝겊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누더기 공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침울한 얼굴로 누더기 공의 헝겊만 만지작거릴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신경을 다른 곳에 쏟아야 한다. 바로 방금 전까지 우리가 했던 말들, 우리의 낮은 목소리가 읽어낸 문장들, 그리고 잠시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게 만드는 초시간적 감각에 대하여. 우리는 두리번거려야 한다.
우리의 의식과 현상계가 모종의 암약 속에서 타협하고 있는 지각 작용을 흔들어놓아야 한다. 세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나 무작위적으로 쏟아지는 언어의 물방울들을 흡수하는 분홍색 더듬이가 우리의 정수리에서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추상적인 말로 시간의 노화가 주는 순수한 언어적 간섭이다.
한때, 그러니까 우리가 밤을 지새운 새벽, 기차역에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은 침묵에 대한 예찬도 치유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을 고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슬픔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손을 잡으면 손가락 사이사이로 무언가 계속 빠져나갔다.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말의 입막음. 말로 말의 입막음. 너무나 많은 말이 가득 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실오라기 같은 말의 끄트머리가 신음처럼 새어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말이 되지 못한 음성을 귀 기울여 채집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를 멀어지게 했고 다시 만난 우리가 서로의 얼굴과 몸에 파묻힌 언어를 더듬고 말을 되듣고 되풀이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우리는 한 번 되들린 말이 최초의 말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 파묻힌 장면과 우리가 기억해내는 장면이 다르듯이 말이다. 말없이 말할 수 있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영혼은 4인칭 나선형 시점으로 서로를 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두리번거린다.
눈앞의 풍경이 거품기로 한 번 돌린 것만 같다. 하늘은 하늘답게 푸르고 나무는 나무답게 서 있고, 바람은 바람답게 어디선가 불어온다. 그러나 하늘의 푸른색에 사람들의 지문이 묻어 있는 것만 같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무의 뿌리는 땅 밑에서 얽혀들어가고 있을 것이고,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있다면 좋으리라. 한 마리 귀여운 원숭이가 바람의 방향을 거슬러 달려와 우리의 품에 안겨 쿨키이즈쿨키이즈, 소리를 내면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도 있겠지만 원숭이가 우리에게 달려올 까닭은 없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눈앞의 현상계에서 일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제로에 가까운 것이지 제로는 아니다.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현상계를 가리고 있는 물질의 입자들은 고집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변덕이 심할 수도 있다.
원숭이 그리고 그 밖에 모든 것에 빠지고 나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다 심리적 진동이 일어난다. 마음의 해일이 인다. 하지만 마음 역시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원숭이 그리고 그 밖에 모든 것이 내 의식세계 안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언어와 이미지의 미로를 통과하다 제풀에 지쳐 잠잠해지는지 따져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다고 나의 의식을 절제해볼 수도 없지 않은가. 이 끊을 수 없는 사변의 문어 대가리. 언어의 감미료가 쏟아내는 지각의 화학작용. 나는 나의 의식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관심 없는 척을 하며 살아왔다. 세계와 일상의 수레바퀴에 매달려 얄팍한 휴머니티를 간직한 명예로운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의 고리를 자주 끊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어 해야 했다. 고만고만하면서도 핑계가 많은 삶이었다.
나는 숫자를 잘못 기입한 은행원이었고, 덜떨어진 정치인의 보좌관이었고, 오일 뚜껑을 잃어버린 자동차정비공이었고, 모든 인간의 병을 노리는 제약회사 납품업자였고, 더 넓은 들판을 꿈꾸다 낭떠러지로 추락한 소몰이꾼이었고, 건물을 거꾸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었다. 숫자들이 쏟아지는 허구의 세계 속에서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다 자기의 이름을 잊어버린 사람이었다.
의식의 주름을 원했으나 세계의 시간을 탕진하며 늘어난 건 몸의 주름뿐이었다. 이제 몸의 주름에 새겨진 것들을 의식으로 옮겨놓는 행위가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되묻기. 신체 기관의 여기저기에서 떠돌며 달그락거리는 말들을 되물어 신비롭고 아름다운 비선형 지도로 펼치기.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을 찾은 것만 같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삶의 디테일로는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 희미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렷해지는 말의 시선들, 말의 몸짓들. 나는 두리번거리는 것으로 나의 의식을 탐구한다. 차미를 다시 만나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차미의 촉촉한 눈을 보고 있으면 계속 두리번거려도 좋을 것만 같다. 차미의 시선과 몸짓의 점진적인 이동을 따라간다.
마침 차미의 오른쪽 다리가 나의 왼쪽 다리에 얹힌다. 세계는 거품기를 한 번 돌린 것만 같고 차미의 다리는 무게감이 없다. 차미의 목소리를 더듬어 되듣는다.
의지가 느껴지는군.
방금 전까지 우리는 겨울음악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지금은 봄이고 음악도 없지만 우리는 겨울음악공원에 있다. 겨울음악공원은 차미가 붙인 이름이다. 차미는 이름을 붙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내가 차미에게 질투를 느낀다면 이름을 붙이는 능력에 대해서일 것이다.
공원은 폐쇄된 것과 다름없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에 우리는 놀라워했다. 어쩌면 우리는 겨울음악공원 주변을 맴돌며 우연히 만나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연히 만났어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절대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필요했다. 수십 번의 겨울이 지날 동안 겨울음악공원 역시 얕은 숨결을 내뱉으며 우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공원이지만 우리에게는 오래전 우리의 사랑언어사고실험을 위한 무대이자 공간이었다. 우리는 겨울음악공원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만큼 침묵했으며, 우리 주변의 풍경이 열릴 때까지 멀고도 가까운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그 실험을 실패했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물에 젖어 달라붙은 채 말라버린, 책의 낱장을 조금씩 떼어내듯 실패한 사랑언어사고실험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확실함에 확신을 가질 때까지 겨울음악공원에 우리는 찾아들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사랑언어사고실험은 지속되어야 한다.
나는 의자를 느껴보려고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놓았다. 한 번쯤 세상의 물리법칙을 혼탁하게 만들며 의자 속으로 나의 하체가 스며드는 것은 어떨까. 의자가 느껴진다. 의자와 내가 겹쳐진다.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오래된 셀룰로이드 필름처럼 구겨지고 만다. 차미는 빛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투과할 수 없는 구겨진 필름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린다. 책의 귀를 접듯 나의 귀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여전히 차미는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귀를 만지작거리지 않으면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었다. 나와 헤어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어둠 속으로 점점 퍼져가는 사랑의 변주곡을 혀끝 뿌리로 연주했을까. 전율이 일어난다. 나 역시 차미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의 손에 내 귀를 맡겨보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귀는 점점 기형이 되어갔다. 나보다 내 귀가 먼저 차미를 향해 열리고 펄럭였고, 혼자 밤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귀가 위로 솟구쳐 올라 지상의 세계를 조롱해도 좋았다. 그다음은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
차미와 나는 서로의 말과 시선과 몸짓을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서로를 향하던 지난 삶에 빗금을 치듯 책을 읽고 있다.
우리는 이제 책을 읽는 거야.
우리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시간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이것밖에 없어. 그리고 예쁘게 늙어가는 거야.
왜 시간에 저항해야 하는데, 그리고 왜 예쁘게 늙어가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데, 라고 나는 묻지 않았다. 물었다면 차미가 읽지마, 라고 말하며 책을 빼앗고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내 마음을 한 웅큼 떼어내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인간은 손에 무언가 들고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고, 책을 들고 있는 것만큼 인간에게 어울리는 것도 없어.
나는 차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날 이후 책을 읽기 전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쥐고 만지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책은 항상 차미가 가져왔다. 손에 들기 좋은 책이었고, 읽을 때 가끔씩 허공에서 물방울이 터지는 것만 같은 문장을 담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책은 이해하기 이전, 읽기에 좋으면 충분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읽고 싶은 만큼 조용히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당신 몸은 엉망인데 목소리는 그대로야. 신기해. 나도 그래?
처음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차미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 침이 말라 자주 쩝쩝거리긴 했어도 목소리는 젊었을 때와 비슷했다. 어느 순간부터 쩝쩝 소리가 시간에 저항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전율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입가에 번지는 미소로 7년 동안 서로의 노란 알몸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헤어지고 26년이 흘러 엉망이 된 몸으로 만나 책을 읽고 있다. 이 숫자에 우리는 가끔 놀라워한다. 허구의 숫자들이 우리의 창백한 영혼 안에서 물방울처럼 터진다. 어제 헤어지고 오늘 만난 것만 같은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착 달라붙어 있어 절대 떼어지는 않는 책의 낱장 뭉텅이 같은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있을 때 우리는 잠시 동안 많은 것을 잊고 하나가 되는 착각에 빠진다. 두 엉망이의 목소리가 세상에 엉켜 있는 거미줄에 가닿으려 한다.
나의 눈은 점점 멀어져 간다. 눈이 점점 멀어져 간다니.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 걸까. 나의 시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지만 이렇게 말하면 뭔가 생각이 단절되는 기분이 든다. 글자를 보고 있으면 눈이 더 피로해진다. 눈앞이 흐려진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활자가 춤을 추고 박자를 놓치고 리듬이 단절되고 스텝이 어긋나고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진다. 처음이 어렵지 계속 읽다 보면 글보다 내가 먼저 글 끝에 도착해 문장을 기다리게 된다.
차미는 내가 잘못 읽고 있는 책의 부분에 대해서 한 번도 딴죽을 걸거나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게 퍽 마음에 들었고, 우리가 다시 멋진 한 팀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어쩌면 차미 역시 나처럼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에 힘을 주어 차미가 읽고 있는 글을 따라가 보지만 어림없다는 듯 차미는 또박또박 글을 읽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차미가 읽어내는 글이 내 귀를 통과해 바람에 실려 사라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떤 목소리는 다시 듣고 싶어도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차미가 벤치에 등을 기댄 채 양팔을 쭉 펴셔 늘인다. 차미의 오른쪽 팔이 내 가슴을 때린다. 그리고 하품을 한다. 나 역시 전염된 척 차미를 따라서 하품을 만들어낸다. 하품을 만들어내자 이번엔 정말로 하품이 나온다. 차미가 나의 하품을 받아 다시 하품을 한다. 잠시 우리는 하늘의 구름이 모든 슬픔을 걷어내듯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본다.
차미가 옆에 있는 책을 들어 만지작거리다 나의 허벅지에 던지듯 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손을 올려 지그시 누른다. 점점 강도가 세진다. 차미의 손이 책을 통과하고 내 허벅지를 통과해 한없이 아래도 떨어진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책이 내 다리 위에서 빻아지고 있다. 나는 차미가 눈의 크기를 줄이며 집중하는 세계를 열고 싶다. 그 세계가 텅 빈 가상의 공간이라 해도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사라지고 싶다. 책 속의 활자들이 제멋대로 분열되었다가 재조립된다.
다시 읽어볼까?
다시 읽을 수 없어.
왜 다시 읽을 수 없는 걸까?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
차미가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말로 반응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의자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바로 방금 전까지 내 몸에 남아 있었던 느낌이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말을 할수록 우리의 기분은 상승되었다가 추락하곤 한다. 어떤 말이 우리의 기분을 다르게 만드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말이 차오르기 전에 다시 목소리를 더듬는다. 차미의 목소리가 하울링처럼 퍼져간다. 목소리에 우리가 말하고 들었던 목소리가 겹쳐진다. 그 목소리가 비타민을 과다 섭취한 젤리 문어처럼 꿈틀대는 내 의식의 뇌관을 살짝 누른다. 내 몸이 기울어져 차미에게 기댄다. 차미와 나의 귀가 달라붙었다가 미끄러진다.
나는 점점 흐릿해지는 눈앞의 풍경을 닦아내기 위해 눈을 감고 우리가 읽었던 이야기를 되뇌어 본다. 이미 사라진 이야기. 기억할수록 전혀 다른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이야기. 시간에 저항할 수 없어 시간의 반대편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마는 이야기. 우리의 흔들리는 기분을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는 또 다른 유희의 시작이다.
가방을 든 한 남자가 이제 막 역에 도착한다. 남자는 자신이 타야 할 열차가 이제 막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열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열차는 열차의 꽁무니까지 가져가 버렸다. 다음 열차는 한 시간 후에 올 것이다. 다음 열차가 온다면, 다음 열차가 온다고 해도 또다시 열차를 놓칠 수 있을까. 뭔가 급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전혀 급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는 자신이 왜 이런 생각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 흔들리는 생각을 더 흔들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생각처럼 마음대로 생각이 흔들리지 않았다. 도무지 모르겠군. 남자는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척하며 역사 안을 두리번거린다. 남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남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사랑스러운 원숭이들 같군. 하지만 모든 게 비에 젖은 그림 같아. 남자는 헛기침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는다. 남자는 정수리에 땀이 맺힌 것만 같다고, 머리가 가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남자가 긁고 싶은 것은 두피가 아니라 머릿속이다. 남자를 대신해 우리가 남자의 머릿속을 살살 긁어보자.
중절모를 쓰는 게 잘못이었어. 중산모를 쓸걸. 언제나 이게 문제야. 중산모를 쓰면 중절모를 쓰고 싶고 중절모를 쓰면 중산모를 쓰고 싶어지지. 남자는 모자를 벗어 뒤집은 뒤 머리에 다시 썼다. 앞에 앉아 있는 두 남녀가 포옹을 풀고 남자를 보고 피식 웃어 보였다. 둘은 같은 파란색 후드 티를 입고 있고 중앙에는 COOL KIDS NEVER SLEEP 이란 글씨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남자는 둘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남녀와의 물리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고, 멀어진 거리만큼 이전부터 그 둘과 무척 가까운 사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자는 자신의 사고체계가 점점 엉켜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전의 삶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다면 그곳은 흰 구름 아래 흰 양떼들이 모여드는 곳이겠지요. 남자는 노래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곤 일어나 가방을 둔 채 역사 안을 빠져 나왔다. 뒤에서 남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오랫동안 걸어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깡마른 모습으로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이미 폐쇄되었고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얽히고설킨 나무줄기 사이로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오른쪽 엄지와 남은 손가락들을 동그랗게 오므려 여자를 원 안에 담아 보았다. 이 원을 오랫동안 간직해야지. 남자는 손가락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공원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남자가 공원을 맴돌자 4인칭 나선형 시점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이야기의 자기장에 이끌린 나는 현상계와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된 가상계로 나의 의식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 뱉어내란 말이야.
어느새 차미는 잠들어 있다. 겨울잠에 들어간 작은 동물처럼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린다. 이 작은 동물을 깨운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잠에 든 것은 차미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맞다. 그래서 나는 차미가 나의 목을 잡고 흔드는 통에 눈을 뜨고 말았다. 눈을 뜨자 세상은 더 선명해져 있었다. 오후에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전에 눈을 뜬 것만 같았다. 차미는 두 손을 모아 펼치곤 무언가를 받아내고 있었다. 차미의 손에 담기는 보이지 않는 입자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 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얇고 끈적끈적한 막이 내 얼굴을 감싼 채 빨아들였다.
책을 읽으니 오늘은 목욕을 하고 싶어지네.
차미는 고개를 숙여 낡은 버건디 구두를 바라보며 명랑하게 말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공중목욕탕을 찾아가기로 했다. 차미가 책을 들고 먼저 일어났고, 내가 뒤를 따랐다. 겨울음악공원의 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얽히고설킨 나무를 타고 넘어 밖으로 나왔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을 각오로 겨울음악공원을 나왔다. 우리의 말과 몸짓의 일부를 잃어버리고 겨울음악공원을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겨울음악공원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 기분을 간직하도록 하자. 우리는 앞으로 걸어가며 겨울음악공원의 영역을 점점 지우는 동시에 넓혀갔다.
나는 다리를 조금씩 절며 차미의 손목을 잡고 공중목욕탕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몇 사람과 마주쳤는데 우리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지 우리 앞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뒷모습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것에 새삼 놀라워했다.
뒷모습은 같이 볼 수 없겠지.
뒷모습을 같이 볼 수 없다니.
공중목욕탕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각자의 입구로 들어갔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바로 다시 나왔다. 누군가의 몸을 보고, 누군가에게 몸을 보여준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조차 나의 몸을 보는 것이 어렵다. 나는 나의 몸이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렇게 자신을 설득시키며 밖으로 나왔다. 차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목욕탕 입구에서 서성이다 건너편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보르작이란 이름이 어울릴 것 같은 주인이 알은체를 한다.
어서 오세요.
제가 보이나요?
아주 잘 보이는데요.
보이는군요.
오늘도 같은 차를 드시지요?
아니요, 같은 차를 주세요.
내 앞에 한 잔의 차가 놓여 있다. 차는 아주 천천히 식을 것이고, 카페 유리 문을 통해 보이는 건너편 목욕탕에는 차미가 있다. 목욕탕의 뿌옇고 시큰한 공기 속에서 거울을 통해 뒷모습을 비춰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뒷모습은 같이 볼 수 없는 거야. 목소리가 들린다. 한 번 들리면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희고 푸른 주름의 결과 겹의 목소리.
나는 안경을 끼고 있지 않지만 안경을 벗는 척하며 안경을 내려놓았고, 머플러를 하고 있지 않지만 머플러를 푸는 척하며 머플러를 풀었다. 그리고 모자는 또 어떤가. 눈물이 흐르지 않지만 눈물을 조금 흘려도 좋겠다는 생각에 눈가를 훔쳤다. 차미가 나오면 기계우동을 먹으러 가야겠다. 가는 길에 이전처럼 책을 마음에 드는 장소에 놓아둘 것이다. 누군가 읽을 수도 있고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처럼 의지를 느끼거나 의자를 느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버려진 책을 본체만체하며 자신의 갈 길을 가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책은 발견되기 위해 그곳에 머물러 있기도 하고, 숨은 사물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읽었던 책들. 우리가 읽고 버렸던 책들. 우리가 앞으로 읽지 않을 책들. 내가 떠올린 모든 것은 누군가 읽다 만 책의 문장을 흉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장처럼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안개에 발목을 잃은 사람과 기차를 삼킨 사람. 그건 정말 우리의 이야기였을까.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까지. 우리의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를 불러내서 살고 싶다. 읽고 싶다. 말하고 싶다.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나는 작은 원숭이가 되어 허리를 구부린 채 얼굴을 찻잔에 붙이고 입으로 차를 마신다. 목욕탕 입구로 차미가 나온다.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차미는 두리번거린다. 차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봐왔던 장면. 차미의 주변이 온통 환하다. 나는 오른손 엄지와 남은 손가락들을 동그랗게 오므려 원을 만든다. 차미가 원 주위를 맴돈다. 차미가 움직일 때마다 빛의 파장이 일어난다. 손가락을 좀더 모은다. 그 안에 빛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우리의 광학기계. 원은 점점 작아지고 눈앞의 풍경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또 다른 세계의 주름이 펼쳐진다. 내 몸의 주름과 세계의 주름이 겹쳐져 전자파도를 일으킨다. 내 의식세계 밖으로 뻗어나간 노이즈가 차미의 목소리로 되들린다. 다 뱉어내고 싶어. 목소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목소리의 몸짓을 따라간다. 우리는 겨울음악공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이제 내가 다시 두리번거릴 차례다.
김태용
소설가. 우리의 의식도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날이 따뜻해지니 더 오래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2019/03/26
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