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피부1)



   창문으로 들어가 열쇠를 잃어버려서
   돌아설 때도 있어 익숙한 집이 아니어서

   누구냐고, 집요하게 묻는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도 한 구절만 반복해
   묻는 것 같기도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그래 네가 다 맞아 그러니까 멈춰버렸어

   그냥 우리 사이 방음이 잘 되는 걸까

   손발에서 물갈퀴가 자라나
   뼈도 근육도 없어지겠는걸
   이럴 줄 알았으면 배워둘걸
   나아가지 못할 거라 생각해

   들리지 않는 소리가 가깝게 느껴져

   마구 두드리다 보면
   문이 될 것 같은 소파를 알게 돼
   하지만 힘이 없는걸
   숨쉬기라도 좀 해둘걸

   왜 모든 공간이 네모로 시작돼?
   내 몸엔 맞는 각이 없는데

   숨겨둔 손잡이를 잡히면 덜컹거린다





   날마다 부엌



   흠뻑 젖은 채로 뒤집어진 나무 그릇 무너질까 견고해질까 가벼워지고 날카로워지고 조심스러워지는 날들 마르려고 안간힘 쓰다가도 알아서 흩어지거나 가라앉은 얼룩들 안주할 수 있는 곳으로만 도망가겠지 젖었다는 거에만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문을 잠가도 쌓여있는 접시들 무너지듯이 바닥에서 시작했으니까 바닥을 파고들게 되는 바닥은 발굴해내고 싶은 지하가 있는 거겠지 부엌이라 믿었던 공간도 부엌이 발굴해낸 지하일지 모르겠다는 생각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바나나 검게 젖어들어 무너질까 견고해질까 녹고 있으면서 녹는다는 걸 잊어버리는 단단한 세계 뽑혔으면 좋았을걸 달그락거리고 있어 답하려고 하면 날파리들 몰려오고

박은선

처음 시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감옥에 갔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새끼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위로처럼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도 나는 극복해야 했다. 존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은 목소리들을 부정하며 시를 썼다. 앞으로도 나의 시작은 어렵겠지만 쓸 거다. 써야겠다.

2019/09/24
22호

1
페드로 알모도바르,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어떻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