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내적인 코 / 포스트잇에 생각 적기
내적인 코
콜라를 마셨다 속으로 트림을 했는데 익숙한 냄새가 났다 속으로 냄새를 맡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 코는 외부에 있다 코가 안쪽에도 나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부의 코가 느껴진다 작은 삼각형 그것은 외부의 코와 등을 맞대고 정확히 반대편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외롭고 그것은 앙증맞은 두 개의 구멍을 가졌다 트림이 다시 올라온다 안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나는 콜라가 일으킨 내적 냄새와 어떤 구체적 인간과의 연관성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나와는 정확히 반대편 어둠을 바라보고 있는 어떤 인간을 허공에서 허공으로 쓰러지고 있는, 못 박힌 나무판자 냄새와 소젖이 출렁이는 양철통 바닥 냄새, 뼈 그림책에서 뼈의 개수를 일일이 세고 있는 어느 어린이의 정수리 냄새가 합쳐져 한 명의 구체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내적인 코는 두 개의 콧구멍으로 커다란 어둠을 빨아들인다 트림이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온몸으로 냄새를 풍기며 슬픔에 대한 지구력을 알리며 콜라를 마신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안에서 냄새가 났다 내적인 코가 사람을 찾아 킁킁거린다
포스트잇에 생각 적기
생각을 방귀처럼 뀌자 몇 초 후 냄새가 되어 돌아온다 방에 가서 포스트잇을 가져오자, 라는 생각을 하자 이 생각을 적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새치기를 한다 생각이 도망가지 않도록 나는 얼른 생각을 받아 적는다 그러나, 방에서 포스트잇을 가져오자, 라고 쓰는 순간 포스트잇이 필요했던 애초의 이유는 더 날쌔게 도망가버렸으며 어쨌든 나는 방으로 향하는데 향하는 도중 생각을 잃어버린다 나는 방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는 이제 방에서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조차 잃어버려서 방에서 나갈 수 없고, 마침내, 방에서 나가야 해, 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드디어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는 나를 생각하며 침대에 앉아 있다 나는 생각을 다잡아 방을 나간다 방을 나가며 내가 아까 무슨 생각을 했는데… 하고 생각하며 책상에 앉는데, 앉는 순간, 아, 포스트잇을 가지러 방에 갔었지, 라는 생각이 돌아온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미 포스트잇에 적혀 있다 나는 포스트잇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포스트잇에 포스트잇을 가지러 방으로 가라는 문장을 적었으므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포스트잇이 필요했던 애초의 이유는 기억나질 않고 포스트잇이 필요했던 이유는 포스트잇에 포스트잇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적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돌아오자 생각이란 놈은 아무것도 안 하는 주제에 약간 잔인한 측면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문보영
밤 열차를 좋아합니다. 터널과 풍경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둘 다 어둡습니다. 풍경의 어둠은 그러나 빛을 가린 어둠이 아니라 원래 어둠이라 빛을 뺏긴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갑자기 터널이 나타나도 그 어둠과 그 어둠이 구분되지 않아 좋습니다. 터널이든 현실이든 둘 다 어둠이어서 억울할 게 없습니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