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적자, “생존”이라고 / 순환론
적자, “생존”이라고
모든 것에는 라이벌이 있다
가령
봄나물의 라이벌, 냉이 vs. 달래라든가
혹은
식후 커피의 라이벌, 뜨아 vs. 아아라든가
어떤 학자는 자연선택을 말했고,
또 다른 학자는 용불용을 말했는데
하나는 살아남고 하나는 살아남지 못했다
적자생존이었다
모든 것에는 서바이벌이 있다
가령
도전 골든벨부터, 더 지니어스까지
슈퍼스타K부터 프로듀스 101까지
혹은
배틀로얄부터 배틀그라운드까지
심지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솔로엔시스와, 호모 데니소바까지, 그리고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되어 살아남았다. 슬기로웠기에, 호모포비아로서, a rival을 이기고,
arrival,
모든 것에는 어라이벌이 있다
가령
어제를 지난 오늘이라든가
거기를 거친 여기라든가
혹은
오늘을 지난 내일이라든가
여기를 거친 저기라든가
그래서
오늘과 여기는 어라이벌이 되지 못하고
살아남지 못했다
적자생존이었다
냉이와 달래는 둘 다 살아남았다
오늘의 일이다
냉이와 달래가 라이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다
어제, 거기의 나
나는 슬기롭지 못해서
어라이벌이 되지 못한다
내일의 나도 덜 슬기로와서
오늘의 나와 a rival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섞어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
멍청한 질문이었다
순환론
세계의 마라의 날은 없다
있다. 말하는 순간
세계 마라의 날이 제정되고
믿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된다
먹는 사람에게는 유행이 된다
믿지도 먹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날은 없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혀가 얼얼해지지 않으며
얼얼해지는 것만으로는 맵다고 말하기 어렵다
세계 마라의 날은 생기고 말았다
세계 마라의 날은 있다
없다. 말하는 순간
세계 마라의 날이 폐지되고
믿는 사람에게는 배신이 된다
먹는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 된다
믿지도 먹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이미 말하였기 때문에
그런 날이 있었던 것이 되고
마라라는 것만으로 혀가 얼얼해지며
얼얼해지는 것만으로 맵다고 느낄 수 있다
세계 마라의 날은 사라지고 말았다고
말하는 순간
순간 마라는 사라지고
세계 마라의 날은 역사의 뒤안길로 향한다
권창섭
거꾸로 하면 섭창권
2020/01/28
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