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혜주
그해 봄은 혜주와 보냈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혜주와 혜주의 아버지. 셋이서 함께 한 계절을 보냈다. 우리 셋은 혜주의 아버지가 입원한 대학 병원에서만 만났다. 내가 처음으로 병원을 방문했던 날, 혜주는 근처에 공원이 있으니 바람도 쐴 겸 함께 산책을 가자고 했다. 나는 그들 부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혜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혜주는 매일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며 그곳을 돈다고 했다. 한 바퀴 그리고 또 한 바퀴. 환자복을 입은 채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이쪽을 지켜보다 하나, 둘 사라져버렸다.
“싫다.”
혜주의 아버지.
그는 자주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분지인 이곳은 매년 다른 지역보다 무더웠고, 그해는 유달리 더위가 일찍 시작해 볕이 대단했다. 등나무 아래 벤치 옆으로 휠체어를 세우자마자 그는 역정을 냈다. 그리고 조급하게 다른 곳으로 갈 것을 주문했다. 그것은 참 이상한 장면이었는데, 누가 봐도 그곳이 볕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고집을 피웠다.
“장례식장 때문이야.”
나중에 혜주는 늦은 밤 통화를 하며 설명해주었다. 벤치에 앉으면 암센터 건너편에 있는 장례식장이 보였다. 혜주의 아버지는 그곳을 보기가 싫은 것 같았다. 병원 밥을 싫어하는 그를 데리고 몰래 근처 국숫집이나 백반집 같은 곳에 갈 때가 있었는데, 장례식장을 지나가면 곧장 병원의 중문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을, 그 길로 다니기 싫다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빙 둘러서 간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길이 재포장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혼자서 돌부리를 피해 이리저리 휠체어를 미느라 애를 먹는 혜주를 떠올렸다. 남자인 내가 가서 도와주겠다고 하자 혜주는 딴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아무 말이 없다가 뜬금없이 이상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뭐가.”
“그게 잘 표현을 못하겠어. 그냥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한번은 어딘가에 걸려 움직이지 않는 바퀴를 들어올리느라 무척 힘들었는데. 아버지가 끙끙대는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고 했다.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가만히 있는 그를 보니 화가 치밀었다. 그냥 저 길로 가면 안 되냐고 쏘아붙이자, 그는 물끄러미 혜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둘을 저기서 보냈다. 그래서 그래. 그래서 무섭다. 두피가 보일 정도로 성글은 뒤통수가 어느 때보다 작고 순해 보였다고 했다.
“기어이 날 힘들게 하는 게 좋은가 봐.”
혜주는 자주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털어놓았다. 나는 처음에는 흥미롭게 듣다가 나중에는 휴대폰을 머리맡에 있는 충전기에 꽂아둔 채 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본 이야기들이었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 정도였지만 어스름한 새벽이 될 때까지 나는 이불 속에서 혜주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오래전 아내와 이혼한 그는 가족이 혜주밖에 없었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전했다고 했다. 다음날 그녀는 휴가를 써서 내려왔다. 소변줄을 꽂은 채 등산용 지팡이를 의지해 걷는 아버지를 보았고 담당 의사를 만나보았다. 의사는 앞으로 있을 검사들, 신장의 조직을 조금 떼어 살펴보거나, 췌장과 같은 보다 깊숙한 곳에 있는 장기들을 보기 위해 찍을 사진들을 설명해주었다. 면역 체계가 망가지는 바람에 다리 쪽에 있는 혈관들이 대부분 막혀버렸고, 염증이 복부 쪽으로 올라와 장기까지 손상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고 했다. 희귀성 질환.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병명도 생소한 것이었고 무엇 때문에 이런 병에 걸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음주와 흡연과는 거리가 멀었고 한 달에 한 번 사람들과 등산을 했다. 차라리 간암이나 췌장암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불평하듯 말했다.
“무슨 말이 그래.”
혜주는 사과를 깎다가 눈을 치켜떴다.
“억울해서 그런다.”
억울해서…… 그는 끙 몸을 돌리며 토라지듯 말했다. 무엇인지라도 알고 있는 게 낫지. 모르니까 더 억울하다.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억울하다. 억울해 미치겠다…… 그는 침대 모서리에 바짝 붙어서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혜주는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왔다. 간병인을 쓸 수 있었지만 그가 완강하게 다른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 혼자서 병상 옆에 바퀴가 달린 작은 보조 침대에서 먹고 자며 간병 생활을 했다.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5년 동안 하다 다시 내려와 보니 아는 사람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혜주는 한탄했다. 바보가 된 것 같아. 하얗게 사방이 막힌 곳에 혼자 있는 기분이야. 혜주는 우연히 연락이 닿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네 친구였다. 중학교 때는 내가 혜주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크게 싸웠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굴다 졸업하기 전에서야 다시금 말을 섞었다. 하지만 혜주가 서울로 가버리면서 사이가 예전과 같진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이곳 지역을 벗어나고 싶어 했으므로, 혜주가 그렇게 떠나버리는 게 딱히 섭섭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혜주를 좋아했던 감정도 희미해져 버린 지 오래였다. 다만 항상 당당하던 그녀가 많이 지쳐있어서 조금 놀랐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외롭냐고 물었다. 혜주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불쑥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후로 나는 혜주의 부탁으로 종종 병원을 찾았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있어야 하는 그녀를 위해 소설책이나 잡지를 빌려주거나 환자의 속옷을 건네주는 일이었다. 혜주는 목에 보호자 등록 카드 목걸이를 건 채 머리가 기름진 모습으로 다녔다. 어떤 날은 가까이 다가가면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또렷하게 혜주의 기운을 느끼거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좀 씻고 다녀. 내 타박에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씻을 데가 없어, 하고 대답했다.
“정말이야. 씻을 데가 없어.”
환자들을 씻길 수 있는 욕실은 있지만, 간병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욕실은 없었다. 그녀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대충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어떤 날은 몰래 머리를 감는다고 했다. 혜주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해 허옇게 부은 얼굴로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검사 결과 혜주의 아버지는 다행히 장기까지 염증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혈전이 생겨 자꾸만 열이 나고 다리가 부었다.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매일매일 소변의 양을 기록해야 해서 혜주가 직접 소변 통을 그의 고추에 갖다 대 오줌을 받았다. 그녀는 손에 오줌이 튀어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매일 양을 확인하고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다인실 화장실 변기에 쪼르륵 그것을 흘려보냈다.
그는 검진하러 내려온 햇병아리 레지던트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게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왜 아직도 그대로입니까. 내가 한가한 사람인 줄 압니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갓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돌아섰다.
“그러지 마요.”
혜주는 그 사람들처럼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제발 그러지 마요.”
그는 못 들은 척 아침 드라마와 뉴스 채널을 번갈아 가며 돌렸다.
“못됐다.”
“맞아, 못됐어.”
혜주는 내가 건네주는 커피를 받았다. 하지만 손에만 쥐고 마시진 않았다. 나는 언젠가 그가 공무원 시험을 재수하고 있는 내 처지에 대해 한심하다고 한 일이 떠올랐다. 본래도 온순한 성격이 아닌데,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꾸만 별것 아닌 일로 왈칵 짜증을 내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자꾸만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주변 환자들도 그를 싫어한다고 했다. 6인실 끝에 있는 노인 환자가 그를 피해 복도로 침대를 옮겨달라고 한 일도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덩그러니 있는 노인을 향해 간호사들이 어르신, 들어가셔야 해요, 하고 말을 걸었지만 노인은 천장을 보면서 여기가 편해, 하고 손사래를 쳤다. 여기가 시원해. 노인은 혜주의 아버지가 소란을 피울 때마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앉은키가 제법 컸지만 까맣게 마르고 호흡줄을 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혜주를 보며 더위 때문, 이라고 말했을 때 혜주는 부끄러워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날 밤엔 말이야. 화가 나 미치는 줄 알았어.” 혜주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정말,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아버지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분을 삭였다고 했다. 가습기의 습도를 맞춰가며, 혹은 자리끼가 필요할까 싶어 물병을 그의 머리맡에 두면서. 오래오래 잠든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아버지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게 화가 났다. 조금 입을 벌리고, 완전히 무해하다는 얼굴로, 코까지 낮게 골면서, 아무것도 꺼릴 것이 없다는 태도로 잠들어 버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다. 그런 아버지의 위로 단단하고 무거운 것을 올려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아버지의 몸을 누르다가 가라앉아 버렸으면. 결국에는 아버지의 몸에…… 들어가 버렸으면. 그래서 아주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의 가슴에 무언가 남아버렸으면, 하고 바랐다고 했다.
“나 못됐지?‘
”그래, 못됐다.“
나는 혜주가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혜주는 난간에 기대어 습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다 이내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무엇을 그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을까. 과연 그가 그만둘 수 있는 것들이 있나. 그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무엇 때문인지 이유도 모르고,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산 죄밖에 없었다. 아주 열심히, 그냥 살았을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잠시 눈이 마주쳤다. 혜주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혜주야.”
저 멀리 어둑한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났다. 혜주야. 수액 걸이를 의지한 채 혜주의 아버지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 오줌 마렵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그의 윤곽은 마치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혜주는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혜주가 안 됐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아픈 아버지를 두고 그런 마음을 먹는다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그런 혜주가 안 됐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혜주의 아버지는 느리게 차도를 보였다. 나아지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사의 말이었고, 육안으로는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어쩌다 가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나를 앉혀두고 젊었을 적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해 가게를 세 개나 운영했던 것이나 건강했던 시절 정복했던 산들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퇴원을 하면 나를 데리고 강원도에 있는 산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 체력을 단련 시켜 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런 말을 할 때 그는 어딘지 들뜬 상태로 희망과 낙관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기운이 떨어지면 금세 풀이 죽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한없이 가라앉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도 기대와 실망을 자주 오가는 일이 더 힘든 듯했다. 괜히 기대하고, 실망하고, 다시금 기대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는 조금씩 야위어갔다. 무엇보다도 혜주가 더 지쳐갔다. 그 무렵 혜주는 자주 죽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혜주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분명하지 못한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혜주의 아버지가 사라진 것이었다.
“몰라,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다 찾아봤는데 없어.”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감쪽같이 그가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그길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혜주와 만나 병원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개켜져 있어서 그가 빠져나간 자리가 마치 작은 동굴 같았다. 손을 넣어 만져보았을 때 미적지근하게 온기가 남아 있었다. 병원 복도에 세워진 휠체어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였고, 등산용 지팡이도 침대 옆 탁자에 기댄 채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벨 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따라 가보니 그의 머리에 눌려 납작해진 베개 아래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지갑, 자동차 열쇠는 탁자 아래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가두었다고 했다. 열쇠는 혜주에게 있었으므로 그가 그것들을 꺼낼 수는 없었다. 혜주와 나는 층을 나눠서 살펴보다 일일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기도 했고 다른 동으로 건너가 찾아보기도 했다. 병원 측에서도 담당 환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특히 그는 고위험 환자로 분류되었으므로, 미아를 찾는 것처럼 여러 번 안내 방송을 했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병원의 주차장과 공원, 흡연 부스까지 살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평소 그를 담당하던 교수가 경찰을 부르자고 해서 경찰차 두 대가 병원으로 와주었지만 역시나 그를 찾을 수 없었다. 해가 머리 위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땀을 뚝뚝 흘리면서 사나운 마음이 되어갔다. 그동안의 그의 행동들이 떠올랐고, 더운 날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참지 못하고 날 선 말들을 내뱉었다.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지만. 이건 대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거야. 무슨 권리로. 대체 무슨 권리로.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무감한 사람이다. 평생 자기가 옳다는 확신과 그것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옆에서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았다. 하물며 기린이나 코끼리 같은 짐승도 죽을 때는 무리에서 이탈해 홀로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애초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든가. 정말 그래 버리든가. 이렇게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그리고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야말로 무슨 권리로 이런 주제넘은 말들을 하나 싶었다. 내가 정확히 저런 말들을 했는지조차도 스스로 의심스러웠다.
“그러지 마.”
어느 순간부터 혜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해. 혜주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뭘 알아.”
혜주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네가……”
그녀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다가 등지고 선 채 두 손바닥으로 눈언저리를 꾹 눌렀다.
“뭘 알고 있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땀을 흘리며 한참 동안 혜주의 옆에 서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몹시 더러워진 차림으로 나타났다. 환자복을 입고 어디를 그렇게 다녔던 건지 바짓단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어디를 갔었느냐는 말에 그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잔뜩 주눅이 든 모습으로 답답해서……, 그냥 바람을 쐬려고…… 같은 두서없는 말들을 했다. 혜주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그가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기면서 그의 발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소독약을 빌려와 꼼꼼히 발라주고는 새 이불을 꺼내 그의 턱밑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침대 옆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혜주는 그가 잠들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이따금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열이 나는지 확인하거나 잠들어버린 그의 손을 꼭 쥔 채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따금 만나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하지만 무언가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혜주는 이제 필요한 것들이 없다고 했다. 보고 싶은 책은 휴대폰이나 랩탑을 통해 이북으로 보면 되고, 병원에 있으면서 친해진 간호사분 덕에 병원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부득이하게 새 속옷이나 양말이 필요할 때도 있었는데, 편의점에 가보니 사이즈나 색깔별로 팔고 있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주변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때그때 작은 도움을 받거나 주면서 지낸다고 했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혜주의 말을 기억하고는 커다란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서 지나가는 길에 불쑥 들른 적이 있었다. 혜주는 반갑게 나를 맞았다. 병원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와 함께 병실을 쓰던 사람들이 몇 명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냄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같은 것들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혜주의 아버지는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지만, 계속되는 방사선 치료 때문인지 기운이 없었고 계속해서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정작 혜주는 자기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고는 이가 시려서 더는 못 먹겠다며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따금 밤늦게 걸려오던 전화도 더는 오지 않았다. 나는 미루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따금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산책을 할 때도 있었는데, 어쩌다 병원 앞까지 걸어가 본 적은 있었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뀐 다음에야 혜주에게서 잘 지내고 있냐는 메시지가 왔다. 혜주는 청소를 하다 냉장고에서 내가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고 했다. 겉에 성에가 끼어서 꺼내두었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그대로였다고 했다. 조심스레 한 입 떠먹어보았는데 조금 향이 희미해졌지만 놀랍도록 단맛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신기하지. 나는 혜주의 메시지에 그러게, 신기하다, 하고 답장을 보내려다 답문을 모두 지워버렸다. 혜주는 내가 메시지를 읽은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계절은 계속해서 변했다. 나는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새로운 곳에 취직해 다른 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서, 대부분 예전 기억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거기에는 물론 혜주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그러다 올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컴퓨터를 켜둔 채 대부분 인터넷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증상이나, 내 주변 확진자들의 동선을 찾아보기도 하고 세계 곳곳에 벌어지는 아비규환을 편안하게 내 방에서 보았다. 그리고 집단 감염이 일어난 내가 살던 지역에 대한 뉴스를 읽었다. 인터넷 기사에는 한때 내가 혜주와 매일 같이 걸었던 텅 빈 거리 사진이 있었다. 도시 봉쇄령이나 병상 부족, 병원 전면 출입금지 같은 무서운 말을 보고 잠시 혜주와 혜주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일어나 손을 씻고,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신 다음 혜주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신호음이 울렸지만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혜주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싫다.”
혜주의 아버지.
그는 자주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분지인 이곳은 매년 다른 지역보다 무더웠고, 그해는 유달리 더위가 일찍 시작해 볕이 대단했다. 등나무 아래 벤치 옆으로 휠체어를 세우자마자 그는 역정을 냈다. 그리고 조급하게 다른 곳으로 갈 것을 주문했다. 그것은 참 이상한 장면이었는데, 누가 봐도 그곳이 볕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고집을 피웠다.
“장례식장 때문이야.”
나중에 혜주는 늦은 밤 통화를 하며 설명해주었다. 벤치에 앉으면 암센터 건너편에 있는 장례식장이 보였다. 혜주의 아버지는 그곳을 보기가 싫은 것 같았다. 병원 밥을 싫어하는 그를 데리고 몰래 근처 국숫집이나 백반집 같은 곳에 갈 때가 있었는데, 장례식장을 지나가면 곧장 병원의 중문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을, 그 길로 다니기 싫다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빙 둘러서 간다고 했다. 문제는 다른 길이 재포장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혼자서 돌부리를 피해 이리저리 휠체어를 미느라 애를 먹는 혜주를 떠올렸다. 남자인 내가 가서 도와주겠다고 하자 혜주는 딴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아무 말이 없다가 뜬금없이 이상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뭐가.”
“그게 잘 표현을 못하겠어. 그냥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한번은 어딘가에 걸려 움직이지 않는 바퀴를 들어올리느라 무척 힘들었는데. 아버지가 끙끙대는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고 했다.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가만히 있는 그를 보니 화가 치밀었다. 그냥 저 길로 가면 안 되냐고 쏘아붙이자, 그는 물끄러미 혜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둘을 저기서 보냈다. 그래서 그래. 그래서 무섭다. 두피가 보일 정도로 성글은 뒤통수가 어느 때보다 작고 순해 보였다고 했다.
“기어이 날 힘들게 하는 게 좋은가 봐.”
혜주는 자주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털어놓았다. 나는 처음에는 흥미롭게 듣다가 나중에는 휴대폰을 머리맡에 있는 충전기에 꽂아둔 채 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본 이야기들이었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 정도였지만 어스름한 새벽이 될 때까지 나는 이불 속에서 혜주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오래전 아내와 이혼한 그는 가족이 혜주밖에 없었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전했다고 했다. 다음날 그녀는 휴가를 써서 내려왔다. 소변줄을 꽂은 채 등산용 지팡이를 의지해 걷는 아버지를 보았고 담당 의사를 만나보았다. 의사는 앞으로 있을 검사들, 신장의 조직을 조금 떼어 살펴보거나, 췌장과 같은 보다 깊숙한 곳에 있는 장기들을 보기 위해 찍을 사진들을 설명해주었다. 면역 체계가 망가지는 바람에 다리 쪽에 있는 혈관들이 대부분 막혀버렸고, 염증이 복부 쪽으로 올라와 장기까지 손상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고 했다. 희귀성 질환.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병명도 생소한 것이었고 무엇 때문에 이런 병에 걸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음주와 흡연과는 거리가 멀었고 한 달에 한 번 사람들과 등산을 했다. 차라리 간암이나 췌장암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불평하듯 말했다.
“무슨 말이 그래.”
혜주는 사과를 깎다가 눈을 치켜떴다.
“억울해서 그런다.”
억울해서…… 그는 끙 몸을 돌리며 토라지듯 말했다. 무엇인지라도 알고 있는 게 낫지. 모르니까 더 억울하다.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억울하다. 억울해 미치겠다…… 그는 침대 모서리에 바짝 붙어서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혜주는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왔다. 간병인을 쓸 수 있었지만 그가 완강하게 다른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 혼자서 병상 옆에 바퀴가 달린 작은 보조 침대에서 먹고 자며 간병 생활을 했다.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을 5년 동안 하다 다시 내려와 보니 아는 사람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혜주는 한탄했다. 바보가 된 것 같아. 하얗게 사방이 막힌 곳에 혼자 있는 기분이야. 혜주는 우연히 연락이 닿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네 친구였다. 중학교 때는 내가 혜주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크게 싸웠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굴다 졸업하기 전에서야 다시금 말을 섞었다. 하지만 혜주가 서울로 가버리면서 사이가 예전과 같진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이곳 지역을 벗어나고 싶어 했으므로, 혜주가 그렇게 떠나버리는 게 딱히 섭섭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혜주를 좋아했던 감정도 희미해져 버린 지 오래였다. 다만 항상 당당하던 그녀가 많이 지쳐있어서 조금 놀랐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외롭냐고 물었다. 혜주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불쑥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후로 나는 혜주의 부탁으로 종종 병원을 찾았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있어야 하는 그녀를 위해 소설책이나 잡지를 빌려주거나 환자의 속옷을 건네주는 일이었다. 혜주는 목에 보호자 등록 카드 목걸이를 건 채 머리가 기름진 모습으로 다녔다. 어떤 날은 가까이 다가가면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또렷하게 혜주의 기운을 느끼거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좀 씻고 다녀. 내 타박에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씻을 데가 없어, 하고 대답했다.
“정말이야. 씻을 데가 없어.”
환자들을 씻길 수 있는 욕실은 있지만, 간병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욕실은 없었다. 그녀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대충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어떤 날은 몰래 머리를 감는다고 했다. 혜주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해 허옇게 부은 얼굴로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검사 결과 혜주의 아버지는 다행히 장기까지 염증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혈전이 생겨 자꾸만 열이 나고 다리가 부었다.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매일매일 소변의 양을 기록해야 해서 혜주가 직접 소변 통을 그의 고추에 갖다 대 오줌을 받았다. 그녀는 손에 오줌이 튀어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매일 양을 확인하고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다인실 화장실 변기에 쪼르륵 그것을 흘려보냈다.
그는 검진하러 내려온 햇병아리 레지던트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게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왜 아직도 그대로입니까. 내가 한가한 사람인 줄 압니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갓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돌아섰다.
“그러지 마요.”
혜주는 그 사람들처럼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제발 그러지 마요.”
그는 못 들은 척 아침 드라마와 뉴스 채널을 번갈아 가며 돌렸다.
“못됐다.”
“맞아, 못됐어.”
혜주는 내가 건네주는 커피를 받았다. 하지만 손에만 쥐고 마시진 않았다. 나는 언젠가 그가 공무원 시험을 재수하고 있는 내 처지에 대해 한심하다고 한 일이 떠올랐다. 본래도 온순한 성격이 아닌데,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꾸만 별것 아닌 일로 왈칵 짜증을 내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자꾸만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주변 환자들도 그를 싫어한다고 했다. 6인실 끝에 있는 노인 환자가 그를 피해 복도로 침대를 옮겨달라고 한 일도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 덩그러니 있는 노인을 향해 간호사들이 어르신, 들어가셔야 해요, 하고 말을 걸었지만 노인은 천장을 보면서 여기가 편해, 하고 손사래를 쳤다. 여기가 시원해. 노인은 혜주의 아버지가 소란을 피울 때마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앉은키가 제법 컸지만 까맣게 마르고 호흡줄을 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혜주를 보며 더위 때문, 이라고 말했을 때 혜주는 부끄러워 죽고 싶었다고 했다.
“그날 밤엔 말이야. 화가 나 미치는 줄 알았어.” 혜주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정말,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아버지가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분을 삭였다고 했다. 가습기의 습도를 맞춰가며, 혹은 자리끼가 필요할까 싶어 물병을 그의 머리맡에 두면서. 오래오래 잠든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아버지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게 화가 났다. 조금 입을 벌리고, 완전히 무해하다는 얼굴로, 코까지 낮게 골면서, 아무것도 꺼릴 것이 없다는 태도로 잠들어 버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뻐근했다. 그런 아버지의 위로 단단하고 무거운 것을 올려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아버지의 몸을 누르다가 가라앉아 버렸으면. 결국에는 아버지의 몸에…… 들어가 버렸으면. 그래서 아주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의 가슴에 무언가 남아버렸으면, 하고 바랐다고 했다.
“나 못됐지?‘
”그래, 못됐다.“
나는 혜주가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혜주는 난간에 기대어 습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다 이내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무엇을 그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을까. 과연 그가 그만둘 수 있는 것들이 있나. 그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무엇 때문인지 이유도 모르고, 이날 이때까지 열심히 산 죄밖에 없었다. 아주 열심히, 그냥 살았을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잠시 눈이 마주쳤다. 혜주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혜주야.”
저 멀리 어둑한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났다. 혜주야. 수액 걸이를 의지한 채 혜주의 아버지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 오줌 마렵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그의 윤곽은 마치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혜주는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혜주가 안 됐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아픈 아버지를 두고 그런 마음을 먹는다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그런 혜주가 안 됐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혜주의 아버지는 느리게 차도를 보였다. 나아지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사의 말이었고, 육안으로는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어쩌다 가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나를 앉혀두고 젊었을 적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해 가게를 세 개나 운영했던 것이나 건강했던 시절 정복했던 산들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퇴원을 하면 나를 데리고 강원도에 있는 산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 체력을 단련 시켜 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런 말을 할 때 그는 어딘지 들뜬 상태로 희망과 낙관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기운이 떨어지면 금세 풀이 죽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한없이 가라앉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도 기대와 실망을 자주 오가는 일이 더 힘든 듯했다. 괜히 기대하고, 실망하고, 다시금 기대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는 조금씩 야위어갔다. 무엇보다도 혜주가 더 지쳐갔다. 그 무렵 혜주는 자주 죽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혜주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분명하지 못한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혜주의 아버지가 사라진 것이었다.
“몰라,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다 찾아봤는데 없어.”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감쪽같이 그가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그길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혜주와 만나 병원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개켜져 있어서 그가 빠져나간 자리가 마치 작은 동굴 같았다. 손을 넣어 만져보았을 때 미적지근하게 온기가 남아 있었다. 병원 복도에 세워진 휠체어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였고, 등산용 지팡이도 침대 옆 탁자에 기댄 채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벨 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따라 가보니 그의 머리에 눌려 납작해진 베개 아래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지갑, 자동차 열쇠는 탁자 아래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가두었다고 했다. 열쇠는 혜주에게 있었으므로 그가 그것들을 꺼낼 수는 없었다. 혜주와 나는 층을 나눠서 살펴보다 일일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기도 했고 다른 동으로 건너가 찾아보기도 했다. 병원 측에서도 담당 환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특히 그는 고위험 환자로 분류되었으므로, 미아를 찾는 것처럼 여러 번 안내 방송을 했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병원의 주차장과 공원, 흡연 부스까지 살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평소 그를 담당하던 교수가 경찰을 부르자고 해서 경찰차 두 대가 병원으로 와주었지만 역시나 그를 찾을 수 없었다. 해가 머리 위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땀을 뚝뚝 흘리면서 사나운 마음이 되어갔다. 그동안의 그의 행동들이 떠올랐고, 더운 날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참지 못하고 날 선 말들을 내뱉었다. 아무리 아픈 사람이라지만. 이건 대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거야. 무슨 권리로. 대체 무슨 권리로.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무감한 사람이다. 평생 자기가 옳다는 확신과 그것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옆에서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았다. 하물며 기린이나 코끼리 같은 짐승도 죽을 때는 무리에서 이탈해 홀로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애초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든가. 정말 그래 버리든가. 이렇게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그리고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야말로 무슨 권리로 이런 주제넘은 말들을 하나 싶었다. 내가 정확히 저런 말들을 했는지조차도 스스로 의심스러웠다.
“그러지 마.”
어느 순간부터 혜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해. 혜주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뭘 알아.”
혜주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네가……”
그녀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다가 등지고 선 채 두 손바닥으로 눈언저리를 꾹 눌렀다.
“뭘 알고 있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땀을 흘리며 한참 동안 혜주의 옆에 서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몹시 더러워진 차림으로 나타났다. 환자복을 입고 어디를 그렇게 다녔던 건지 바짓단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어디를 갔었느냐는 말에 그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잔뜩 주눅이 든 모습으로 답답해서……, 그냥 바람을 쐬려고…… 같은 두서없는 말들을 했다. 혜주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그가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기면서 그의 발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소독약을 빌려와 꼼꼼히 발라주고는 새 이불을 꺼내 그의 턱밑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침대 옆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혜주는 그가 잠들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이따금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열이 나는지 확인하거나 잠들어버린 그의 손을 꼭 쥔 채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따금 만나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하지만 무언가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혜주는 이제 필요한 것들이 없다고 했다. 보고 싶은 책은 휴대폰이나 랩탑을 통해 이북으로 보면 되고, 병원에 있으면서 친해진 간호사분 덕에 병원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부득이하게 새 속옷이나 양말이 필요할 때도 있었는데, 편의점에 가보니 사이즈나 색깔별로 팔고 있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주변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때그때 작은 도움을 받거나 주면서 지낸다고 했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혜주의 말을 기억하고는 커다란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서 지나가는 길에 불쑥 들른 적이 있었다. 혜주는 반갑게 나를 맞았다. 병원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와 함께 병실을 쓰던 사람들이 몇 명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냄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같은 것들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혜주의 아버지는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지만, 계속되는 방사선 치료 때문인지 기운이 없었고 계속해서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정작 혜주는 자기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고는 이가 시려서 더는 못 먹겠다며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따금 밤늦게 걸려오던 전화도 더는 오지 않았다. 나는 미루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따금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산책을 할 때도 있었는데, 어쩌다 병원 앞까지 걸어가 본 적은 있었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뀐 다음에야 혜주에게서 잘 지내고 있냐는 메시지가 왔다. 혜주는 청소를 하다 냉장고에서 내가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고 했다. 겉에 성에가 끼어서 꺼내두었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그대로였다고 했다. 조심스레 한 입 떠먹어보았는데 조금 향이 희미해졌지만 놀랍도록 단맛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했다. 신기하지. 나는 혜주의 메시지에 그러게, 신기하다, 하고 답장을 보내려다 답문을 모두 지워버렸다. 혜주는 내가 메시지를 읽은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계절은 계속해서 변했다. 나는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새로운 곳에 취직해 다른 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서, 대부분 예전 기억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거기에는 물론 혜주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그러다 올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컴퓨터를 켜둔 채 대부분 인터넷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증상이나, 내 주변 확진자들의 동선을 찾아보기도 하고 세계 곳곳에 벌어지는 아비규환을 편안하게 내 방에서 보았다. 그리고 집단 감염이 일어난 내가 살던 지역에 대한 뉴스를 읽었다. 인터넷 기사에는 한때 내가 혜주와 매일 같이 걸었던 텅 빈 거리 사진이 있었다. 도시 봉쇄령이나 병상 부족, 병원 전면 출입금지 같은 무서운 말을 보고 잠시 혜주와 혜주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일어나 손을 씻고,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신 다음 혜주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신호음이 울렸지만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혜주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장희원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을 돌보면서 느꼈던 것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한 것 같다.
2020/11/24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