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경자
이경자는 부친의 사촌 여동생으로,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삼십 년 전이다. 아홉 살 되던 해, 조부의 환갑잔치가 열리던 날이었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환갑은 크게 축하할 집안 행사였기에 부친의 형제들은 물론 일가친척, 조부의 친구들까지 집안 전체에 사람이 가득 찼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잔치를 벌이던 중에 활짝 열린 대문 밖으로 노란색 택시가 우리집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번호판에 서울이라고 적힌 택시가 대문 앞에 정차하자마자 진녹색 투피스 정장을 입은 늘씬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떠들썩하던 우리집 마당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두가 얼어붙은 것처럼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대문 안으로 걸어오는 이경자의 하이힐 소리만 또각또각 들려왔다. 서양 귀부인처럼 챙이 달린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미모는 조금도 가려지지 않았다. 아홉 살의 나는 이경자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예쁘다고 생각했고,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뒤이어 교통순경처럼 푸른색 옷을 입은 택시 기사가 차 트렁크에서 박스 여러 개를 꺼내 층층이 쌓아올린 채로 들고 따라 들어왔다. 기사가 손에 든 박스를 집 마당에 내려놓기도 전에 조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낯짝을 내밀어? 앞으로 내 집은 물론 고향 땅에 얼씬도 하지 마라. 우리 집안에 너 같은 종자는 없었다. 크게 내세울 건 없어도 사람 도리는 지키고 살았단 말이다. 우리 집안에 그동안 감옥소 간 사람 없고, 이혼한 사람 없고, 첩질한 사람 없다. 사내놈이 첩질을 해도 다리를 분질러 놓을 일인데 하물며 너는…… 내 입에 담기도 망측하다. 죽은 니 애비가 저세상에서도 피눈물을 흘릴 일이다.”
이경자는 큰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서 택시까지 타고 고향에 내려왔지만, 마당에 서서 홀대만 당하고 돌아갔다. 그 후로 가족 중에서 이경자를 본 사람은 없다. 환갑보다 더 요란했던 조부의 칠순 잔치에 이경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부의 팔순 때는 식구들끼리 밥 한 끼 먹는 것이 다였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분위기가 그런 잔치를 크게 열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조부는 구순을 한 해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두 해 정도 병상에 있었던 조부는 종종 자리에 누운 채로 이경자 이야기를 꺼냈다. 큰아버지가 죽을 날이 가까워져도 코빼기조차 비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경자 년 그 년은 참말로 독한 년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환갑잔치 자리에서 조카를 세워놓고 악담을 퍼부으며,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쳤던 일을 잊으신 거냐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조부에게 나는 그저 참하고 귀한 손녀였다. 모친이 조부가 나의 이혼 사실을 모른 채 돌아가시기를 바랐기에 나는 가끔 집에 올 때마다 말을 극도로 아꼈다.
부친 역시 이경자를 경자 년이라고 불렀다.
“경자 년이 어려서부터 얼굴 반반한 거 하나 믿고서는 찧고 까불더니 결국은 그렇게 사고를 치더구나. 작은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시절이다. 집안의 질서가 엄했지. 딴따라는 절대 안 된다고 할아버지께서 호통을 치며 반대하시니 결국은 어리숙한 작은어머니를 꼬드겨 기어코 두 모녀가 서울로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살던 집과 전답은 몰래 헐값에 넘겨버린 채 말이다. 그게 그 모녀 재산이더냐. 작은아버님 몫으로 집안에서 떼어준 우리 집안 재산이란 말이다.”
이경자는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에 재주가 있었고,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집안 어른들의 반대도 그 꿈을 꺾을 수 없었고, 그녀는 모친을 설득해 몰래 고향을 떠나기로 했다. 서울로 올라간 이경자는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고향에서 가지고 올라온 돈은 비바람을 피할 만한 집 한 칸 겨우 얻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해 이경자와 그의 모친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경자는 배우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밤무대 업소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중 권력자들의 술자리에 불려가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고, 그들 중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된 모양이었다. 이경자는 권력자의 첩이 되었다.
그때는 그런 게 가능한 시대였다.
권력자의 술자리에 여대생을 부르고, 본처가 있는데도 젊은 여자와 따로 살림을 차릴 수 있는…… 남자는 안기부에서 일한 적 있는 고위 관료라고 들었다. 부친은 과거의 독재자는 지금까지 옹호하면서도 그 부하의 첩이 된 이경자는 경멸했다.
모친의 생각은 달랐다. 모친은 이경자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만큼 고맙다고 했다.
“경자 아가씨가 얼마나 정이 많은 사람인데, 마음도 얼굴만큼이나 고왔다. 내가 스물한 살에 시집왔을 때 경자 아가씨는 그때 열여덟 살 여고생이었다. 층층시하 시어른들 모시고 시집살이하느라 허리 한 번 펴기 힘든 내 손을 끌고 아가씨가 작은 집에 데리고 가곤 했다. 자수 놓기 가사 숙제해야 하는데 새언니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제 방에 데려가 쉬게 해줬지. 그뿐이 아니야. 기태 일만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경자 아가씨 앞에서 절을 해도 모자란다. 너희 외삼촌이 군대에 있을 때 내가 경자 아가씨에게 연락을 했다. 남동생이 지금 최전방 부대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고. 혹시 동생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방도를 알아보다가 아가씨한테까지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했는데, 이건 시어른들도 모르는 일이다. 친정 일로 경자 아가씨를 찾았다는 걸 어른들이 아시면 경을 치겠지만 그래도 일단 기태부터 살려야겠다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전화통을 붙들고 울었다.”
나의 외삼촌 박기태는 평소 치질을 앓아왔는데 입대해 철책선을 지키는 최전방 부대에 배치받은 후 고질병이 도졌다. 당시 외삼촌이 있던 부대는 군기가 세고 얼차려도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군대에서 첫 겨울을 맞은 이병 박기태는 치질 증상이 심각해져 앉고 일어설 때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으며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든 상태에 처했다. 그럼에도 이병 박기태는 제대로 치료를 받기는커녕 밤마다 일렬로 엎드려뻗쳐를 한 자세로 볼기를 맞아야 했다. 항문에 생긴 치핵이 터져 팬티와 바지가 피범벅이 되도록 맞았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제발 여기에서 좀 꺼내 달라는 남동생의 편지를 받고 모친은 가슴을 치며 울었다고 한다. 박기태의 부친, 그러니까 나의 외조부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당장 강원도의 군부대로 찾아갔지만 특별훈련 기간이라는 이유로 면회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모친이 이경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지프가 박기태의 부대에 찾아왔다. 박기태는 그 차를 타고 국군병원에 입원했고, 치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복을 마친 박기태는 원래 속해 있던 최전방 부대가 아닌 집 근처의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이병 박기태는 이러한 행운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1984년의 일이다. 그때는 그런 게 가능한 시대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도 여러 번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수도 있다.
“경자 아가씨를 만나보면 어떨까. 네가 한번 찾아가 봐라.”
모친은 내게 이경자를 만나보라고 말했다. 수원 구치소에서 우현의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들른 해장국 집에서였다. 나는 국밥을 한술 뜨려다가 이경자라는 이름이 모친의 입에서 나온 순간 지금은 2020년이라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냐고 되물으며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모친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국밥에 숟가락만 담가놓은 채로 울기만 했다. 말이 없기는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부친은 뚝배기에 코를 박은 채 국물을 쉴 새 없이 들이켰다. 마치 국밥을 먹기 위해 세 시간 넘게 고속버스를 타고 이곳에 온 사람처럼. 나는 숟가락을 들어 다시 밥을 먹어보려다가 영 내키지 않아 다시 내려놓고 냉수를 들이켰다. 스테로이드제가 함유된 로션이 든 종이가방이 내 발밑에 놓여 있었다. 우현에게 주려고 내 이름으로 대용량 로션을 처방받아 왔지만 구치소 내에 반입이 불가했다. 지낼 만하냐고, 밥은 먹었느냐는 부모의 질문에 우현은 몸이 너무 가려워서 잠을 잘 수 없다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면회 도중에도 그 아이는 팔다리를 피가 나도록 긁어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현은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 가족들의 걱정을 샀다. 아토피 증상이 심해질 때면 모친은 그 아이가 몸을 긁지 못하도록 양팔을 붙잡았고, 나는 열한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의 전신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로션을 발라주느라 잠을 설쳐야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우현은 아토피 피부염을 관리하기 위해 식이요법을 철저히 지켰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소주를 석 잔이나 받아마셨으면, 불편하고 힘든 자리였을 것이다. 우현은 어렵사리 취업한 회사에서 수습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보름 전 우현이 전화를 걸어와 큰 문제가 없다면 정규직으로 채용이 확정될 거라고, 정규직이 되면 내게 빌린 돈을 갚겠다고 해서 나는 그 돈에 대해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우현의 직장 상사, 그 팀장이라는 자가 술을 거절하는 우현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운전을 시켰다. 술은 의지로 마시는 것이다, 사회생활도 의지다. 이렇게까지 내 술을 거절하는 너는 나와 함께 일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팀장의 강압적인 태도에 우현은 소주를 석 잔 받아 마셨다. 회식 자리가 파할 때쯤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그날따라 기사 배정이 바로 이뤄지지 않고 30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뜨자 팀장은 우현에게 차 키를 줬다. 너는 술을 얼마 마시지 않았으니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대리비는 너에게 줄게. 하며 선심이라도 쓰듯 운전대를 떠넘겼다. 내가 아는 우현은 술을 석 잔씩이나 마실 수 없고, 그런 상태에서 절대 운전을 할 사람이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강압이 작용했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강요가 있든 없든 잘못을 저지른 건 우현이니까. 우현은 술을 마신 채로 운전을 했고, 사람이 다쳤다.
스물한 살의 라이더라고 했다. 급하게 배달을 마치고 다른 가게로 픽업을 하기 위해 달리다가 우현이 몰던 차와 교차로에서 만나 충돌했다. 배기량이 큰 팀장의 SUV는 상대적으로 멀쩡했던 반면 라이더가 탄 오토바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튕겨 나갔다. 그 라이더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
나는 이경자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은 모친에게 나 또한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전화를 받은 이경자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며 어떻게 컸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경자를 만나러 간 건 결코 내 의지가 아니었고, 그녀에게 뭔가를 기대한 것은 더욱 아니었다.
이경자가 사는 삼성동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는 일이 구치소 면회 절차보다 복잡하게 느껴졌다. 공동현관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안전요원은 내게 몇 호의 누구를 찾아왔는지,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지 물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안내 데스크에서 다시 방명록을 작성하고 발열 체크를 해야 했다. 원래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아파트 단지였고, 코로나19로 인해 외부인 출입이 더 까다로워진 모양이었다. 제복을 입은 안내 데스크 직원이 함께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따라와 카드키를 찍어준 다음에야 이경자가 사는 17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벨을 누르자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이경자의 집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긴 복도가 이어졌고, 복도 형태의 현관을 지나 유리로 된 중문을 밀어젖힌 후에야 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얀색 대리석 바닥에 미색의 벽지로 마감된 이경자의 거실은 밝고, 환하고, 깨끗했다. 으리으리한 세간살이를 갖춰놓고 화려하게 꾸며놓은 집안 풍경을 예상했던 나는 생각보다 그 집에 가구나 물건 같은 것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벽에 고정된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 아래에 낮은 장식장이 하나 놓여 있었고, 맞은편에 ㄱ자로 된 4인용 소파와 소파 테이블이 놓여 있는 것 외에 거실 대부분의 공간은 비어있었다. 5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파트 거실에 그림 한 점, 화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말끔하게 치워진 거실은 좋게 말하면 모던한 느낌이었지만, 어쩐지 황량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사람을 위축되고 작아지게 만드는 인테리어였다.
이경자가 안방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캐시미어 소재의 버건디색 니트 반팔 티에 스판기가 있는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이경자는 30대 후반의 나보다 훨씬 더 날씬했다. 60대를 바라보는 이경자의 얼굴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었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관리가 잘 된 편이었다. 아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젊어 보일 정도로 팽팽한 피부 상태는 평생 관리에만 열과 성을 다해온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경자가 ㄱ자로 된 소파의 머리 부분에 앉으면서 내게 앉기를 권했고, 나는 그녀의 오른편에 무릎을 모은 채 앉았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도우미 아주머니가 차와 과일을 가지고 나왔다. 이경자 역시 나와의 자리가 어색한 눈치였지만,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이와 결혼 여부, 하는 일과 사는 곳 등의 질문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 조카에게 물어보기에 가장 보편적인 화제였다. 그녀의 식상한 질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답했다. 올해 서른아홉이 되었고, 혼자 후암동에 살면서 종로에 있는 홍보대행사로 출퇴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친한 사람들이 아닌 이상 굳이 밝히지 않는 이혼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굳이 이혼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은 왠지 이경자 앞에서 솔직하게 굴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 동시에 그녀라면 내 이혼을 흠잡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에 놀란 기색을 보이며 이혼은 왜 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나는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3년간의 결혼 생활과 이혼에 대해 할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어머, 미안. 이건 좀 실례 같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연은 있는 법이니까.”
이경자가 내게 툭 던진 말에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건 모친이 이경자를 두둔할 때 곧잘 쓰던 말이었다. 이경자가 친척들 사이에서 입방아에 오를 때면 모친은 그녀에 대한 험담을 자르며 “자네들이 경자 아가씨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했나,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연은 있는 법이야. 모르는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지.”라고 말하곤 했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대화를 이어나가려면 내가 이경자에게 뭔가를 물어야 할 테지만, 그녀에게 물어볼 만한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야말로 사연이 많은 사람이니까. 이십 대 초반에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권력자의 내연녀로 아이 없이 살아왔다는 것, 부동산 투기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은 이미 전해 들은 상태였다. 물론 내가 들은 것이 정확한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아는 척을 할 수도 없었다.
창밖의 사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옷을 바꿔 입고 나온 도우미 아주머니가 퇴근을 하겠다며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그럼 놀다 가세요.”라고 말하며 나에게 짧게 목례를 했고, 그 순간 내가 놀러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을 떠난 후 나는 어렵사리 우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경자는 내 이혼 얘기에 흥미를 가지던 것과는 달리, 다소 지루하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경자의 무심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모종의 모욕감을 느꼈고,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해 우현의 억울함을 전달하려 애썼다. 이경자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수록 나는 초조해졌고, 그녀를 설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그녀가 우현의 재판관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눈치를 보고 반응을 살피게 됐다. 말이 길어지면서 사연이 점점 구구절절해지고 스스로 구차해지고 있을 지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우현이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는지에 대해, 그리고 지금 그 아이가 앓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서까지도. 이경자는 그만 듣고 싶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 뭐 대충 상황은 알겠는데 이 일 때문에 나를 찾아온 건가?”
나는 순간 움찔하며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뭔가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저 모친의 심부름을 한다는 생각으로, 모친에게 이경자를 만나 우현의 사정을 전했다는 알리바이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안타깝다거나, 가슴이 아프다는 위로 정도는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전과자로 살게 됐다는 이야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경자의 태도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여기를 찾아온 것 자체가 잘못이라 듯이 굴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이경자가 손톱을 매만지며 다시 물었다.
“그 배달원은 중환자실에 있다고? 가족들은 만나 봤고?”
“네, 찾아가긴 했는데 그쪽 가족들도 제정신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어요.”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경자의 말에 나는 울컥해 목소리를 높이며 우현을 변호했다.
“동생이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이건 억울한 부분이 많아요. 인사권을 쥔 팀장의 요구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어요?”
“누구도 한 톨의 억울함도 없이 잘못한 만큼만 비례해서 벌을 받지는 않아.”
이경자는 약간 비웃듯이 말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발끈하고 말았다.
“한 다리 건너라고 말 참 편하게 하시네요. 어차피 도움을 기대하고 찾아온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말을 이렇게 하셔야겠어요?”
“흥분을 잘하는 성격을 보니 아버지를 닮았구나. 도움을 줄 수 없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경자가 나를 쳐다보며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 말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려 당황하며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물론 네 외삼촌 때처럼 다음 날 당장 그 아이를 빼내 어디론가 옮겨주는 일은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변호사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방법이 있을까요?”
“처벌을 피하긴 어려울 거다. 그래도 어떤 변호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부분은 많지. 하지만 아주 비쌀 거야. 동식 오빠, 너희 아버지 말이다. 사촌오빠가 그런 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버지는 우현이를 위해서라면 집이라도 파실걸요.”
“그깟 시골집 팔아봤자 얼마 한다고?”
이경자는 냉소적인 얼굴로 웃었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랐다.
“경찰에서는 합의부터 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어요. 그쪽 가족들 뜻이 너무 완고해요. 환자가 깨어난 후에 합의하겠다고만 해요. 저희는 하루가 급한데 환자가 깨어나지를 못해서 아직 합의를 못하고 있어요.”
“사경을 헤매고 있다면서…… 진짜 그 사람이 깨어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게 무슨 소리세요?”
“그건 이쪽에게 좋은 일이 아니야.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네? 뭐가요?”
“그 사람이 살아있는 게 아마 합의를 더 어렵게 만들 거야.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건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경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이경자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나 있는 걸까,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얼굴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 이경자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방금 내뱉은 말의 뜻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나 또한 그 뜻을 깊이 이해하고 ‘정말 그 편이 우현에게 더 유리한 걸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녁 시간이네. 어차피 혼자 먹어야 하는데, 같이 먹고 가겠니?”
“죄송합니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요.”
나는 더이상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두려워져서 핑계를 대며 서둘러 그 집을 떠났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핸드폰을 꺼내봤더니 모친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모친이 내게 이경자를 만나보라고 그렇게까지 애원한 까닭을 알 것도 같았다. 이경자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그것은 집안사람들 모두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일이었다.
이경자의 아파트에서 나왔다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모친에게 전화가 왔다. 모친은 이경자가 변호사를 알아봐 줄 수 있다는 말에 반색하면서도, 우현이 쉽게 풀려나올 수 없을 거라는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제 경자 아가씨 남편도 옛날처럼 힘이 있는 게 아니니까. 시대가 변한 건 나도 안다.”
모친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때와는 다른 시대가 됐다. 외삼촌처럼 정체불명의 지프가 나타나 우현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와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해주고 따뜻한 음식을 주고…… 어떤 권력자도 그렇게 해줄 수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다. 모친 또한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낙담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모친을 달래다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게 가능하면 그래도 되는 건가. 우현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고, 그로 인해 지금 누군가의 생명이 위험하고, 그 가족들의 인생 또한 흔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벌을 받아야 한다, 우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온몸을 긁어대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이경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변호사의 명함이 찍힌 사진 한 장이 첨부된 메시지였다. 나는 이경자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나중에 또 인사드리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날 일은 없기를 바랐다.
“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낯짝을 내밀어? 앞으로 내 집은 물론 고향 땅에 얼씬도 하지 마라. 우리 집안에 너 같은 종자는 없었다. 크게 내세울 건 없어도 사람 도리는 지키고 살았단 말이다. 우리 집안에 그동안 감옥소 간 사람 없고, 이혼한 사람 없고, 첩질한 사람 없다. 사내놈이 첩질을 해도 다리를 분질러 놓을 일인데 하물며 너는…… 내 입에 담기도 망측하다. 죽은 니 애비가 저세상에서도 피눈물을 흘릴 일이다.”
이경자는 큰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서 택시까지 타고 고향에 내려왔지만, 마당에 서서 홀대만 당하고 돌아갔다. 그 후로 가족 중에서 이경자를 본 사람은 없다. 환갑보다 더 요란했던 조부의 칠순 잔치에 이경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부의 팔순 때는 식구들끼리 밥 한 끼 먹는 것이 다였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분위기가 그런 잔치를 크게 열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조부는 구순을 한 해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두 해 정도 병상에 있었던 조부는 종종 자리에 누운 채로 이경자 이야기를 꺼냈다. 큰아버지가 죽을 날이 가까워져도 코빼기조차 비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경자 년 그 년은 참말로 독한 년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환갑잔치 자리에서 조카를 세워놓고 악담을 퍼부으며,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쳤던 일을 잊으신 거냐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조부에게 나는 그저 참하고 귀한 손녀였다. 모친이 조부가 나의 이혼 사실을 모른 채 돌아가시기를 바랐기에 나는 가끔 집에 올 때마다 말을 극도로 아꼈다.
부친 역시 이경자를 경자 년이라고 불렀다.
“경자 년이 어려서부터 얼굴 반반한 거 하나 믿고서는 찧고 까불더니 결국은 그렇게 사고를 치더구나. 작은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시절이다. 집안의 질서가 엄했지. 딴따라는 절대 안 된다고 할아버지께서 호통을 치며 반대하시니 결국은 어리숙한 작은어머니를 꼬드겨 기어코 두 모녀가 서울로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살던 집과 전답은 몰래 헐값에 넘겨버린 채 말이다. 그게 그 모녀 재산이더냐. 작은아버님 몫으로 집안에서 떼어준 우리 집안 재산이란 말이다.”
이경자는 어려서부터 춤과 노래에 재주가 있었고,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집안 어른들의 반대도 그 꿈을 꺾을 수 없었고, 그녀는 모친을 설득해 몰래 고향을 떠나기로 했다. 서울로 올라간 이경자는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고향에서 가지고 올라온 돈은 비바람을 피할 만한 집 한 칸 겨우 얻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해 이경자와 그의 모친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경자는 배우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밤무대 업소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중 권력자들의 술자리에 불려가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고, 그들 중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된 모양이었다. 이경자는 권력자의 첩이 되었다.
그때는 그런 게 가능한 시대였다.
권력자의 술자리에 여대생을 부르고, 본처가 있는데도 젊은 여자와 따로 살림을 차릴 수 있는…… 남자는 안기부에서 일한 적 있는 고위 관료라고 들었다. 부친은 과거의 독재자는 지금까지 옹호하면서도 그 부하의 첩이 된 이경자는 경멸했다.
모친의 생각은 달랐다. 모친은 이경자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만큼 고맙다고 했다.
“경자 아가씨가 얼마나 정이 많은 사람인데, 마음도 얼굴만큼이나 고왔다. 내가 스물한 살에 시집왔을 때 경자 아가씨는 그때 열여덟 살 여고생이었다. 층층시하 시어른들 모시고 시집살이하느라 허리 한 번 펴기 힘든 내 손을 끌고 아가씨가 작은 집에 데리고 가곤 했다. 자수 놓기 가사 숙제해야 하는데 새언니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제 방에 데려가 쉬게 해줬지. 그뿐이 아니야. 기태 일만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경자 아가씨 앞에서 절을 해도 모자란다. 너희 외삼촌이 군대에 있을 때 내가 경자 아가씨에게 연락을 했다. 남동생이 지금 최전방 부대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고. 혹시 동생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방도를 알아보다가 아가씨한테까지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했는데, 이건 시어른들도 모르는 일이다. 친정 일로 경자 아가씨를 찾았다는 걸 어른들이 아시면 경을 치겠지만 그래도 일단 기태부터 살려야겠다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전화통을 붙들고 울었다.”
나의 외삼촌 박기태는 평소 치질을 앓아왔는데 입대해 철책선을 지키는 최전방 부대에 배치받은 후 고질병이 도졌다. 당시 외삼촌이 있던 부대는 군기가 세고 얼차려도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군대에서 첫 겨울을 맞은 이병 박기태는 치질 증상이 심각해져 앉고 일어설 때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으며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든 상태에 처했다. 그럼에도 이병 박기태는 제대로 치료를 받기는커녕 밤마다 일렬로 엎드려뻗쳐를 한 자세로 볼기를 맞아야 했다. 항문에 생긴 치핵이 터져 팬티와 바지가 피범벅이 되도록 맞았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제발 여기에서 좀 꺼내 달라는 남동생의 편지를 받고 모친은 가슴을 치며 울었다고 한다. 박기태의 부친, 그러니까 나의 외조부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당장 강원도의 군부대로 찾아갔지만 특별훈련 기간이라는 이유로 면회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모친이 이경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지프가 박기태의 부대에 찾아왔다. 박기태는 그 차를 타고 국군병원에 입원했고, 치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복을 마친 박기태는 원래 속해 있던 최전방 부대가 아닌 집 근처의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이병 박기태는 이러한 행운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1984년의 일이다. 그때는 그런 게 가능한 시대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도 여러 번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수도 있다.
“경자 아가씨를 만나보면 어떨까. 네가 한번 찾아가 봐라.”
모친은 내게 이경자를 만나보라고 말했다. 수원 구치소에서 우현의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들른 해장국 집에서였다. 나는 국밥을 한술 뜨려다가 이경자라는 이름이 모친의 입에서 나온 순간 지금은 2020년이라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냐고 되물으며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모친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국밥에 숟가락만 담가놓은 채로 울기만 했다. 말이 없기는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부친은 뚝배기에 코를 박은 채 국물을 쉴 새 없이 들이켰다. 마치 국밥을 먹기 위해 세 시간 넘게 고속버스를 타고 이곳에 온 사람처럼. 나는 숟가락을 들어 다시 밥을 먹어보려다가 영 내키지 않아 다시 내려놓고 냉수를 들이켰다. 스테로이드제가 함유된 로션이 든 종이가방이 내 발밑에 놓여 있었다. 우현에게 주려고 내 이름으로 대용량 로션을 처방받아 왔지만 구치소 내에 반입이 불가했다. 지낼 만하냐고, 밥은 먹었느냐는 부모의 질문에 우현은 몸이 너무 가려워서 잠을 잘 수 없다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면회 도중에도 그 아이는 팔다리를 피가 나도록 긁어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현은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 가족들의 걱정을 샀다. 아토피 증상이 심해질 때면 모친은 그 아이가 몸을 긁지 못하도록 양팔을 붙잡았고, 나는 열한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의 전신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로션을 발라주느라 잠을 설쳐야 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우현은 아토피 피부염을 관리하기 위해 식이요법을 철저히 지켰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소주를 석 잔이나 받아마셨으면, 불편하고 힘든 자리였을 것이다. 우현은 어렵사리 취업한 회사에서 수습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보름 전 우현이 전화를 걸어와 큰 문제가 없다면 정규직으로 채용이 확정될 거라고, 정규직이 되면 내게 빌린 돈을 갚겠다고 해서 나는 그 돈에 대해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우현의 직장 상사, 그 팀장이라는 자가 술을 거절하는 우현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운전을 시켰다. 술은 의지로 마시는 것이다, 사회생활도 의지다. 이렇게까지 내 술을 거절하는 너는 나와 함께 일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팀장의 강압적인 태도에 우현은 소주를 석 잔 받아 마셨다. 회식 자리가 파할 때쯤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그날따라 기사 배정이 바로 이뤄지지 않고 30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뜨자 팀장은 우현에게 차 키를 줬다. 너는 술을 얼마 마시지 않았으니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대리비는 너에게 줄게. 하며 선심이라도 쓰듯 운전대를 떠넘겼다. 내가 아는 우현은 술을 석 잔씩이나 마실 수 없고, 그런 상태에서 절대 운전을 할 사람이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강압이 작용했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강요가 있든 없든 잘못을 저지른 건 우현이니까. 우현은 술을 마신 채로 운전을 했고, 사람이 다쳤다.
스물한 살의 라이더라고 했다. 급하게 배달을 마치고 다른 가게로 픽업을 하기 위해 달리다가 우현이 몰던 차와 교차로에서 만나 충돌했다. 배기량이 큰 팀장의 SUV는 상대적으로 멀쩡했던 반면 라이더가 탄 오토바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튕겨 나갔다. 그 라이더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
나는 이경자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은 모친에게 나 또한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전화를 받은 이경자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며 어떻게 컸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경자를 만나러 간 건 결코 내 의지가 아니었고, 그녀에게 뭔가를 기대한 것은 더욱 아니었다.
이경자가 사는 삼성동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는 일이 구치소 면회 절차보다 복잡하게 느껴졌다. 공동현관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안전요원은 내게 몇 호의 누구를 찾아왔는지, 미리 약속이 되어 있는지 물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안내 데스크에서 다시 방명록을 작성하고 발열 체크를 해야 했다. 원래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아파트 단지였고, 코로나19로 인해 외부인 출입이 더 까다로워진 모양이었다. 제복을 입은 안내 데스크 직원이 함께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따라와 카드키를 찍어준 다음에야 이경자가 사는 17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벨을 누르자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이경자의 집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긴 복도가 이어졌고, 복도 형태의 현관을 지나 유리로 된 중문을 밀어젖힌 후에야 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얀색 대리석 바닥에 미색의 벽지로 마감된 이경자의 거실은 밝고, 환하고, 깨끗했다. 으리으리한 세간살이를 갖춰놓고 화려하게 꾸며놓은 집안 풍경을 예상했던 나는 생각보다 그 집에 가구나 물건 같은 것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벽에 고정된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 아래에 낮은 장식장이 하나 놓여 있었고, 맞은편에 ㄱ자로 된 4인용 소파와 소파 테이블이 놓여 있는 것 외에 거실 대부분의 공간은 비어있었다. 5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파트 거실에 그림 한 점, 화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말끔하게 치워진 거실은 좋게 말하면 모던한 느낌이었지만, 어쩐지 황량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사람을 위축되고 작아지게 만드는 인테리어였다.
이경자가 안방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캐시미어 소재의 버건디색 니트 반팔 티에 스판기가 있는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이경자는 30대 후반의 나보다 훨씬 더 날씬했다. 60대를 바라보는 이경자의 얼굴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었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관리가 잘 된 편이었다. 아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젊어 보일 정도로 팽팽한 피부 상태는 평생 관리에만 열과 성을 다해온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경자가 ㄱ자로 된 소파의 머리 부분에 앉으면서 내게 앉기를 권했고, 나는 그녀의 오른편에 무릎을 모은 채 앉았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도우미 아주머니가 차와 과일을 가지고 나왔다. 이경자 역시 나와의 자리가 어색한 눈치였지만,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이와 결혼 여부, 하는 일과 사는 곳 등의 질문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 조카에게 물어보기에 가장 보편적인 화제였다. 그녀의 식상한 질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답했다. 올해 서른아홉이 되었고, 혼자 후암동에 살면서 종로에 있는 홍보대행사로 출퇴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친한 사람들이 아닌 이상 굳이 밝히지 않는 이혼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굳이 이혼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은 왠지 이경자 앞에서 솔직하게 굴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 동시에 그녀라면 내 이혼을 흠잡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에 놀란 기색을 보이며 이혼은 왜 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나는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3년간의 결혼 생활과 이혼에 대해 할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어머, 미안. 이건 좀 실례 같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연은 있는 법이니까.”
이경자가 내게 툭 던진 말에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건 모친이 이경자를 두둔할 때 곧잘 쓰던 말이었다. 이경자가 친척들 사이에서 입방아에 오를 때면 모친은 그녀에 대한 험담을 자르며 “자네들이 경자 아가씨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했나,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연은 있는 법이야. 모르는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지.”라고 말하곤 했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대화를 이어나가려면 내가 이경자에게 뭔가를 물어야 할 테지만, 그녀에게 물어볼 만한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야말로 사연이 많은 사람이니까. 이십 대 초반에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권력자의 내연녀로 아이 없이 살아왔다는 것, 부동산 투기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은 이미 전해 들은 상태였다. 물론 내가 들은 것이 정확한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아는 척을 할 수도 없었다.
창밖의 사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옷을 바꿔 입고 나온 도우미 아주머니가 퇴근을 하겠다며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그럼 놀다 가세요.”라고 말하며 나에게 짧게 목례를 했고, 그 순간 내가 놀러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을 떠난 후 나는 어렵사리 우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경자는 내 이혼 얘기에 흥미를 가지던 것과는 달리, 다소 지루하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경자의 무심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모종의 모욕감을 느꼈고,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해 우현의 억울함을 전달하려 애썼다. 이경자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수록 나는 초조해졌고, 그녀를 설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그녀가 우현의 재판관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눈치를 보고 반응을 살피게 됐다. 말이 길어지면서 사연이 점점 구구절절해지고 스스로 구차해지고 있을 지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우현이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는지에 대해, 그리고 지금 그 아이가 앓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서까지도. 이경자는 그만 듣고 싶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 뭐 대충 상황은 알겠는데 이 일 때문에 나를 찾아온 건가?”
나는 순간 움찔하며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뭔가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저 모친의 심부름을 한다는 생각으로, 모친에게 이경자를 만나 우현의 사정을 전했다는 알리바이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안타깝다거나, 가슴이 아프다는 위로 정도는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전과자로 살게 됐다는 이야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경자의 태도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여기를 찾아온 것 자체가 잘못이라 듯이 굴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이경자가 손톱을 매만지며 다시 물었다.
“그 배달원은 중환자실에 있다고? 가족들은 만나 봤고?”
“네, 찾아가긴 했는데 그쪽 가족들도 제정신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어요.”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경자의 말에 나는 울컥해 목소리를 높이며 우현을 변호했다.
“동생이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이건 억울한 부분이 많아요. 인사권을 쥔 팀장의 요구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어요?”
“누구도 한 톨의 억울함도 없이 잘못한 만큼만 비례해서 벌을 받지는 않아.”
이경자는 약간 비웃듯이 말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발끈하고 말았다.
“한 다리 건너라고 말 참 편하게 하시네요. 어차피 도움을 기대하고 찾아온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말을 이렇게 하셔야겠어요?”
“흥분을 잘하는 성격을 보니 아버지를 닮았구나. 도움을 줄 수 없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경자가 나를 쳐다보며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 말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려 당황하며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물론 네 외삼촌 때처럼 다음 날 당장 그 아이를 빼내 어디론가 옮겨주는 일은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변호사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방법이 있을까요?”
“처벌을 피하긴 어려울 거다. 그래도 어떤 변호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부분은 많지. 하지만 아주 비쌀 거야. 동식 오빠, 너희 아버지 말이다. 사촌오빠가 그런 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버지는 우현이를 위해서라면 집이라도 파실걸요.”
“그깟 시골집 팔아봤자 얼마 한다고?”
이경자는 냉소적인 얼굴로 웃었다. 나는 입안이 바짝 말랐다.
“경찰에서는 합의부터 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어요. 그쪽 가족들 뜻이 너무 완고해요. 환자가 깨어난 후에 합의하겠다고만 해요. 저희는 하루가 급한데 환자가 깨어나지를 못해서 아직 합의를 못하고 있어요.”
“사경을 헤매고 있다면서…… 진짜 그 사람이 깨어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게 무슨 소리세요?”
“그건 이쪽에게 좋은 일이 아니야.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네? 뭐가요?”
“그 사람이 살아있는 게 아마 합의를 더 어렵게 만들 거야.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건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경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이경자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고나 있는 걸까,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얼굴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 이경자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방금 내뱉은 말의 뜻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나 또한 그 뜻을 깊이 이해하고 ‘정말 그 편이 우현에게 더 유리한 걸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녁 시간이네. 어차피 혼자 먹어야 하는데, 같이 먹고 가겠니?”
“죄송합니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요.”
나는 더이상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두려워져서 핑계를 대며 서둘러 그 집을 떠났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핸드폰을 꺼내봤더니 모친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모친이 내게 이경자를 만나보라고 그렇게까지 애원한 까닭을 알 것도 같았다. 이경자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그것은 집안사람들 모두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일이었다.
이경자의 아파트에서 나왔다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모친에게 전화가 왔다. 모친은 이경자가 변호사를 알아봐 줄 수 있다는 말에 반색하면서도, 우현이 쉽게 풀려나올 수 없을 거라는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제 경자 아가씨 남편도 옛날처럼 힘이 있는 게 아니니까. 시대가 변한 건 나도 안다.”
모친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때와는 다른 시대가 됐다. 외삼촌처럼 정체불명의 지프가 나타나 우현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와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해주고 따뜻한 음식을 주고…… 어떤 권력자도 그렇게 해줄 수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됐다. 모친 또한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낙담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모친을 달래다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게 가능하면 그래도 되는 건가. 우현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고, 그로 인해 지금 누군가의 생명이 위험하고, 그 가족들의 인생 또한 흔들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벌을 받아야 한다, 우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온몸을 긁어대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이경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변호사의 명함이 찍힌 사진 한 장이 첨부된 메시지였다. 나는 이경자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나중에 또 인사드리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날 일은 없기를 바랐다.
김유담
엄마보다는 이모, 고모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간다. 엄마보다 쉽게 사랑하고, 덜 아프게 미워할 수 있는 여자들이라서.
2020/11/24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