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다름 아닌 땅콩 / 일기예보
다름 아닌 땅콩
어쩌다 이런 곳에 땅콩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문득 손바닥에 거칠게 만져지는 게 있어 들여다보니 땅콩이 틀림없구나. 손바닥 한가운데 땅콩이 박혀있는데도 아프지 않다니. 나는 땅콩 나무가 되어가는 것일까?
이렇게 물렁한 살갗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낙엽을 떨구듯 옷을 홀랑 벗고 거울 앞에 서 본다. 고개를 빼서 뒷모습을 확인해보아도 땅콩이라곤 주먹 속 하나뿐이다.
나무라기보다는 그저 땅콩 하나가 들러붙은 사람. 그것도 아니라면? 이렇게 작고 딱딱한 귀신도 있나. 그러나 땅콩에게서는 아무런 원한도 읽히지 않는다.
굳은살처럼 그저 만져지는. 난생처음 반지를 낀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들여다보게 되는. 손가락을 펴면 소중한 것을 쥐고 있던 사람처럼 그것이 잘 있는지
불편한 것이 없다. 누군가와 손을 잡을 때 빼고는
내게 아프지 않은 땅콩이 그에게는 돌멩이처럼 박히는구나. 땅콩이 무어라고. 땅콩을 떼어내버리자 그만큼 움푹 팬 자국이 남아있다. 땅콩 따위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나는 그와 다시 손을 잡는다. 있는 힘껏 잡아도 맞붙은 손바닥 사이에는
여전히 땅콩 같은 것이
일기예보
누군가의 흠에 대하여 그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는 사람
비로 내리기 시작해서
눈으로 바닥에 쏟아지듯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우산이 필요해지듯이
갑작스러운 마주침에 대하여
그는 손을 터는 사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며
들고 있던 초콜릿을 마저 입에 넣고
내가 그에게 건넨 말이
이미 녹아 없어지고 있다
밤이 온다
질척거리는 길을 걷는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집을 나서던 길인데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이 밤길을 다시 걷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밤을 지나왔는지
그러다 종아리에 까만 물이 몇 방울 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9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선정 작가의 작품입니다.
조해주
휴일에는 눈뜨자마자 날씨를 확인하고, 해가 지기 전에 외출하려고 노력한다.
2021/04/27
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