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되기 위한 쇼



   우리는, 파이프를 세우고 파이프를 눕힌다 서로에게 기울지 않아도 될 만큼 다져진 바닥 끝을 끝에 조심히 내밀면 끝까지 끝을 내민다 체결하듯 서로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결속 둔중한 파이프, 그 파이프를 조이면 여전히 세워지고 여전히 일어서고 여전히 놓여진다 우리는, 단면을 갖추자 단면을 갖추자 단면을, 외치자 다면체를 둘러 쌓는 시간은 배경만큼 광활해진다 무대 안으로 집중되는 재료들이 있고 결합하기 위한 시간을 갖자 골격을 갖추려는 의지 외피를 누르려는 응집 내장재를 구겨넣는 고집 행동 지침을 따르는 배우들이 건설 현장 위에 존재한다 형태를 갖추면 해체되는 무대에서 외줄을 타자 쇠막대 하나를 쥐자 매달린, 붕붕 뜨는 몸짓들이 있다 아슬아슬, 한 발의 외줄 타기 다음 한 발을 내딛는 몸부림은 무대를 기웃거리는 단역 배우의 리허설 아시바 쇠파이프는 건설되는 모든 형태보다 먼저 서야 하고 먼저 쓰러져야 하는 해체를 위한 약속, 존재하지 않았던 온전한 형태를 가져본 적 없는 우리는, 모든 다면체를 위한 우리는





   비둘기



   전쟁 종식을 선포한 당신 망명 중인가? 아가리 벌린 운동화 풀풀 고린내 끊어진 다리는 절뚝이 2박자 외발 인생 보도블록 부스러기 쪼아먹네 당신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는가? 사각 평면 위에서 변곡점으로 다가서기 위한 몸짓 저공으로 펄럭이는 날개 서로를 뜯어먹는 한낮의 공원에서 사내는 의자를 점령한다 구-구-구 사각 평면을 덮는 마름모는 별개의 세계 정중앙 물 뿜는 분수대 주변으로 퍼지는 무지개는 굳게 닫힌 젠장 사내의 행동은 의자의 동행 무의미의 행동 멈춰버린 행동 동행하지 않는 행동 의자의 행동 의자에 누워 저 허공에 손짓 공원에 퍼지는 주술 같은 중얼거림 겨드랑이 사타구니 피고름에 진득한 냄새는 허름한 이 옷에서 풍겨오는 쉰내 그보다 머리에 베고 있는 검정 비닐 쏟아지는 육장 반질반질 흐느끼는 윤기 당신의 엄폐물 그 안에서 떠돌뱅이 공원 인생 애걸해도 파란 하늘 안녕한지 당신의 유배 안녕할 수 있을지 구-구-구 3음절의 단호한 음률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알 수 없는 울분 뱉어내는 울부짖음 흔들거리고 반복되는 두통 짓거리고 떨쳐내려 한다는 것은 사내의 고통 물줄기가 사라진다 뿌드득 몸짓의 활공 개기름 처바른 날개 앙상한 날갯죽지 뻗어오른다 서부역을 조감하는 당신 빙글빙글 사각 평면 위에 선명한 당신의 그림자 염천교 지하도를 관통한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간결함 아슬아슬 사각 평면을 지나 마름모 안으로 진입을 시도한다 다시 한번 힘차게 광장 육장 젠장

이용훈

수화물 터미널에서 일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2021/06/29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