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생각



   너는 그러니까 정말 아이 생각이 영 없는 거냐고,
   커피를 마시며, 밥을 한술 뜨며, 동그란 귤을 까며, 조심스러워하며, 지나가는 말처럼, 악의 없는 호기심으로 너에게서, 나는 듣는 것이다.

   나는 그러니까 정말 아이 생각이 없는가.

   일단 생각을 좀 해볼게.
   나는 장난이 조금 치고 싶어서 고통스럽다. 사실 나 아이를…… 하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릴 수도 있고, 얼굴을 폭발시키며 네가 뭔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의자를 뒤로 자빠뜨리며 일어설 수도 있다. 미소를 전부 지우고 갑자기 왜, 라고 정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심장이 간질거리도록 장난이 조금 치고 싶어서,
   나 아이 있어, 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그래놓고 내 아이는 내 옷이고 내 신발이고, 내가 싼 똥이야. 그런 거짓말을 뱉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 아이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고, 미래 산업 자원이고, 아니지 인간은 자원이 아니지, 인간은 인간이지, 그래, 아이는 소중하고 아이는 작은 개처럼 작은 고양이처럼, 작은 물고기처럼 소중하고, 아이는 날벌레처럼 우왕좌왕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그런 작은 신 같은 아이가 내게도 있어, 라고 장난을 치고 싶은데

   장난이 아니다.
   그런 장난을 치면, 너와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난칠 게 따로 있지. 그런 말로 끝나지 않는. 나는 그런 것은 싫어.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겨서 너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그런 일은 싫고, 그래서 아이를 미워하게 되는 그런 일은 정말로 싫고, 그러니까 장난치고 싶은 내 마음과 아이를 사랑하려는 마음과 우리 아이를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힌 다음, 어디 보자,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들을 내어준다. 술을 조금 타주기도 한다. 너무 많이 우는 아기에게 꿀 탄 위스키를 반 티스푼 먹여 재우듯, 이 공포를 재우는 것이다.

   자라,
   아이야 자라. 내 아이는 술에 취한 듯 잔다. 내가 먹는 것을 이 아이도 다 먹고, 내가 가는 곳을 이 아이도 다 따라오지만 대개는 잔다. 기차가 이렇게 요란하게 달리고, 화통을 삶아 지축을 뒤흔드는데 아이는 꿈속의 아기처럼 잘도 잔다. 여전히 나는 조금 장난이 치고 싶어서, 괴롭다. 우리 아이가 너를 오늘 따라간다. 조심해라. 일러줄까 싶다가도, 나처럼 장난처럼 옷장에서 튀어나오고, 밥솥에서 튀어나오고, 신발을 죄다 흩어놓고,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을 미워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 그것만은 막아야겠지 싶어서 조용히 웃으며 말한다.

   없어.
   정말 없어.

   사실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뭘 불러도 저를 부르는 줄 알고, 아프면 아프다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네가 없으면 죽는다는 걸 감추지 못하는 이 아이가 네게로 간다.





   노을 보기



   나의 친구는 피를 보면 어지럽고
   화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피를 흘리고
   앉은 자리마다 피를 묻히고
   피를 어쩌지 못했다.
   피 흐르는 날에는 고요하게
   피 흐르는 걸 느낄 수밖에……
   그것은 의지가 수상한 수류탄 같아서
   핀을 뽑아도 안 터지고
   핀을 놔두어도 터져버린다.
   해 지는 것이 보인다.
   수습을 하자, 욕실로 들어가
   멈출 때까지만 이렇게 있자, 그랬다.

   닫힌 욕실 문에 대한 메아리처럼
   응답처럼
   해 지는 것이 보였다.
   용서를 요구하고
   이해는 바라지 않는 피.
   흘러서는
   웅덩이.
   웅덩이 위에 웅덩이.
   웅덩이 아래에 웅덩이.
   해가 지는 동안 마음 놓고
   나의 피가
   나를 감당하지 않을 때
   머리끝까지 솟구치거나 바닥보다 더 낮은 바닥을 알아낼 때
   내 높낮이를 갱신해 낼 때
   나를 되살릴 때

   해 지는 것이 보인다.
   웅덩이는 피를 이해한다.
   친구를 이해한다.
   노을을 감상할 줄 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웅덩이에게 보답을 하자,
   나는
   욕실 의자를 해가 질 때마다 옮긴다.

김복희

2021년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버린 느낌이다. 뭘 했는지 모르겠다. 분명 많은 일을 했는데, 많은 일이 있었는데, 매번 실수하고 매번 이해받는 일을 저질렀는데, 백업이 안 된 하드 드라이브처럼 깨끗하다. 시를 안 썼으면 정말 무슨 일들이 내게 있었는지 다 잊을 뻔했다.

2021/12/28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