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land



   그 영화는 퀴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주제는 로맨스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날 극장 밖은 빛으로 가득했고 하늘은 맑아서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채 동네를 몇 바퀴 돌게 되고 서로의 것을 한 입씩 베어먹으며 우리 부부에겐 취향이 있고 죄가 없었다 영화는 여름으로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데 어째서 여름만 기억날까 우리가 겪는 계절적 체험이 조금씩 미묘해지고 운하 옆 벤치, 아내의 머리 위 손차양을 만들어주면 튤립과 풍차 오렌지빛, 우리가 어떻게 이 낯선 나라에 오게 됐는지 아내는 더듬더듬 떠올리기 시작하고 십 년 전의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낯선 곳 낯선 날의 시간이 어떻게 일상을 이루었는지 사랑으로 복수하는 꿈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더 분명하게 만들어주었는지…… 그러나 생각보다 앞서 우리 부부는 쉽게 감동하고 웃는다 서로의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에 반응하며 느린 강물을 바라본다 모두의 강물 사이로 우리의 서사성과 상징성 그러나 이것은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는 아니다





   오후의 낯선 물체



   나는 파과적으로 혼자가 되었습니다 원인을 찾아보는 오후입니다 창밖에 나무가 있고 바람이 불어서 그렇다, 말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보니 여기는 이상하군요 오늘 보니 여기는 더 온전하군요 네덜란드, 이 나라 사람들은 불을 잘 켜지 않고 밖을 만듭니다

   건너편 꼭대기의 시계 수리공은 나를 보지 않는데 나는 왜 그를 발견할까요 건물 아래에서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고 공터를 가로질러 한 사람의 자전거가 굴러들어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질 야구공 같은 것이 위로 날아오고 있는데

   잘 헤어지고 왔어?
   그랬지
   눈물은 잘 흘렸어?
   눈물을 잘 흘렸지
   잘했구나 정말 잘했어
   ……

   천천히 정지하듯 머무는
   오후의 낯선 물체1)

   삼층 창가에서 나는 그것을 손에 쥐듯 바라봅니다
   마치 유에프오의 선명한 빛 같은, 마음

   수리공이 놓친 아주 작은 나사 같은

   세 번째 사람이 두 사람에게 야구공을 보여줍니다 건너편 건물의 사람은 복도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지릅니다 그 사람도 나를 발견하진 못했군요 불을 켜지 않고 바구니에서 과일을 골라내는 마음으로 나는 가만히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바깥이 나를 만들다 마는 것처럼, 나는 파과적으로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제재

네덜란드 틸뷔르흐에 머무르며 온전함과 자유에 대해 상상하고 있다. 시청, 거리의 횡단보도, 집집마다 발견되는 무지개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중이다. 시집 『글라스드 아이즈』로 활동을 시작했다.

2022/01/25
50호

1
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정오의 낯선 물체 Mysterious Object At Noon>의 제목을 빌려와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