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향인회 모임에 갔다가 밤 열 시에 가까워 집으로 돌아온 판조와 순임은 난장이 된 집안 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둑이 든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베란다의 화분이 깨진 것 외에 금전적 손해는 없었다. 돈 되는 걸 찾으려는 듯 온 집안을 헤집어놨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돈이 되는 것들이 많지 않았고 현금을 집에 두는 편도 아니었다.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은 초범의 소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쩌면 어린 학생들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 층이라 베란다로 쉽게 들어왔을 거고. 다른 데서는 신고가 들어온 게 없어요. 그냥 쉬운 장소여서 들어온 것 같은데 충동적이었을 수도 있고……”
   경찰은 베란다 창문을 열어 밖을 한번 휙 훑어보고 거실로 돌아왔다. 거실엔 벽걸이 티브이와 검은 가죽소파가 전부였다. 장식장도 없고 액자나 달력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는 의자가 세 개 있는 식탁이, 안방에는 침대와 옷장과 화장대가, 서재에는 양쪽 벽면에 책장만 하나씩 있었다. 책장도 꽉 차 있지 않고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도둑도 여기저기 쑤셔댄 것 같지만 얼핏 봐도 값비싼 물건이라고는 없어 허탕만 쳤다고 생각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집에 뭐가 좀 없네요.”
   “이 사람이 맨날 버려서.”
   순임의 대답에 판조는 뜨끔했다. 지난해 정년 퇴임을 한 판조는 집 청소에 열을 올렸다. 그중에서도 버리는 일에 몰두했다. 판조의 아내 순임이 집이 점점 휑해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따님은 뭐 없어진 거 없나요?”
   “그건 걔가 와 봐야 알겠는데.”
   “언제 오죠?”
   “출장 갔어요. 중국에서 무슨……”
   순임의 말을 자르며 판조가 대답했다.
   “일주일 뒤에나 옵니다.”
   정확히는 닷새 후였다. 판조는 훔쳐간 것도 없으니 빨리 경찰을 돌려보내고 쉬고 싶었다. 안 그래도 몇 달 동안 앓아온 허리디스크로 고생인데 도둑이라니, 두통까지 심해져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긴 채 허리에 손을 짚고 있었다.
   “아, 지금 확인 못할까요? 문이 잠겨 있는 것 같던데.”
   “열쇠는 걔만 들고 있어요. 잠겨 있어서 아마 도둑도 못 들어갔을 거예요.”
   순임의 말에 경찰은 피식 웃었다.
   “도둑이 괜히 도둑입니까. 잠긴 문 따고 들어가는 게 도둑이죠.”
   경찰이 돌아간 뒤에 순임은 혜주의 방 열쇠를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억지로라도 열어볼까 싶었지만 판조가 말렸다.
   “도둑이 들어갔으면 굳이 다시 잠그고 나왔겠어?”
   혜주가 방문을 잠그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판조가 퇴직 이후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렸다. 판조가 보기에는 분명히 안 쓰는 것임이 확실한 낡은 천 가방 하나가 혜주 방 옷걸이에 축 늘어진 채 걸려 있기에 버린 것이다. 분명 자주 쓰는 가방은 아니었다. 혜주는 그 사실을 일주일쯤 후에 알았고 친구가 손수 만들어 선물해준 것인데 왜 남의 물건을 물어보지도 않고 버렸냐며 화를 냈다. 판조가 생각하기에도 충분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으므로 할 말이 없었다. 다음부터는 허락 없이 혜주의 물건에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혜주가 일을 가고 순임이 계모임을 간 낮에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다가 무료해지면 또 더 버릴 것은 없나 집을 둘러보았고 그러면 시선은 늘 혜주의 방으로 향했다. 그 방에서 일이 분 머무르며 컴퓨터 책상과, 화장대, 침대, 옷장, 옷걸이를 둘러보면 판조는 버려도 될 법한 것들을 네다섯 가지는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컴퓨터 책상에는 카페에서 받아온 듯한 쿠폰과 멤버십 카드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던져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사용기한을 넘긴 것도 있었다. 화장대 위에 뒤집힌 채 놓여 있는 스킨 한 통은 들어보니 다 쓴 것 같았다. 침대 위의 빈 포장지나 옷장 위의 빈 택배 상자, 옷걸이에 걸려 있는 지저분해 보이는 종이가방들도 다 버렸으면 싶은 것들이었다. 책장에 겹겹이 쌓여 있는 책들은 분명 읽지도 않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혜주가 가진 것 중에서 판조의 마음에 드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몇 차례 버려보았고 혜주는 어떤 것은 그날 저녁에 당장, 또 어떤 것은 며칠이 지나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소리쳐 판조를 불렀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자 혜주는 문을 잠그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더 버릴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판조는 마지막으로 서재에 있는 오래된 책상을 버리기로 했다. 몇 해 전에 친구의 사무실에서 얻어온 철제 책상이었는데 몇 번 앉아보지도 못한 채 녹이 슬어버렸다. 다음 달 실업급여를 받으면 책상을 하나 사자고 마음먹으면서 책상 서랍을 비웠지만 아직도 새로 사지 못했다. 책상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허리를 살짝 굽히며 양팔에 힘을 실었을 때 굽은 등에서 찌릿, 하는 느낌을 받았다. 잠깐 허리를 폈더니 괜찮아져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책상을 밖으로 버리는 일까지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거실 한가운데에 요를 깔고 저녁 내내 누워 있었다. 퇴근해서 돌아온 혜주가 사정을 듣더니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병명이 추간판탈출증, 흔히 허리디스크라 말하는 것이었다. MRI 사진을 들여다보니 6, 7번 척추뼈 사이의 추간판이라는 것이 얌전히 있는 다른 것들과 달리 뼈 사이의 압력을 못 이긴 듯 비죽 흘러나와 있었다. 이미 진행이 많이 된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주사나 수술을 권했지만 주위에 물어보니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해 우선은 물리치료만 받기로 했다. 지난 석 달간 병원이며 한의원을 출퇴근하듯 드나들었지만 다 나은 것 같다가도 아프기 시작했고 심한 날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혜주 물건 뭐 없어졌으면 어쩌지? 훔쳐갈 만한 거 없었나?”
   “노트북은 가져갔을 거고. 뭐 없지 않나. 죄다 잡동사니뿐인데.”
   “그래도 반지 같은 귀금속도 있을 거고.”
   판조는 순임이 어질러진 방을 치우는 동안에도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침대에 누웠다.
   순임은 아무래도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방문을 열기로 작정했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열쇠 수리공을 부르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어떻게 드라이버나 실핀 같은 걸로 찔러보면 열릴 것도 같았다. 실핀 같은 건 판조가 다 버렸는지 화장대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던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싱크대 서랍에 넣어두었던 것도 같았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두었던 다른 잡동사니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고 받은 일회용 나무젓가락이나 이쑤시개를 비롯하여 한 번씩은 쓸 일이 생기던 노란 고무줄,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찌개에 넣으려고 남겨둔 라면 수프 같은 것도 없었다. 아예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있던 거, 다 버렸어?”
   판조는 안방에서 도둑이 바닥에 팽개쳐놓은 옷들을 보며 버릴 것이 없나 살펴보다가 순임이 가리키는 ‘여기’를 한번 돌아보고는 대답했다.
   “아니.”
   “당신 아니면 누가 버려.”
   “내가 무슨 버리는 사람이야?”
   “아니야?”
   순임의 질문에 판조는 아무 말도 않았다. 순임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순임이 그런 심증을 갖고 있다는 것에는 어쩐지 억울한 심정이었다. 못 버릴 걸 버린 것도 아니고 전부 꾀죄죄한 쓸데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런 것 좀 모아두지 마.”
   “내가 쓰려고 둔 건데 무슨 상관이야.”
   “꼬질꼬질해가지고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
   순임은 다른 서랍도 열어보았지만 사정이 비슷했는지 한숨만 푹 내쉬었다.
   “드라이버도 버렸어?”
   “그걸 왜 버려. 베란다에 공구함에 있어.”
   베란다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도둑의 침입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깨진 화분이 흙을 쏟아낸 채 그대로 있었다. 막 꽃봉오리를 맺은 군자란이었다. 순임은 화분을 넘으면서 내일 날이 밝으면 새 화분을 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구함에는 십자드라이버뿐이었다. 순임은 이제 휴대폰을 꺼내 계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으로 들어가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방문을 열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메시지를 보내는 게 조금 망설여졌지만 긴급상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개의 메시지가 왔고 그중 해볼 만한 것은 문틈 사이로 칼이나 카드 같은 것을 밀어넣어보는 것이었다. 카드는 왠지 손상될 것 같아 순임은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왔다. 어느새 판조는 또 거실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통증이 느껴지는 듯 허리에 손을 짚고서 눈을 꾹 감고 으, 으 하는 신음을 간간이 내뱉었다. 혜주의 방 앞에서 슥슥 하는 소리가 나자 눈을 치켜뜨고 “뭐해?”하고 물었다. 순임은 문을 여는 일에 열중하느라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판조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으, 하고 신음을 내뱉는 일로 돌아갔다.
   문을 여는 일은 실패였다. 방문과 문틀에 자국만 남았다.
   “쓸데없이 튼튼하네.”
   그 때문에 역시 도둑도 이 문을 열지 못했을 거라는 결론에 이를 뻔했지만 경찰이 말한 대로 도둑은 도둑이었다. 무슨 일인가 벌어져서 이 방안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난장판이 되어 있다면 그걸 제일 먼저 확인하는 사람이 혜주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서른이 가까운 다 큰 딸이라고 해도 순임에게는 여전히 겁 많고 철없는 애였다.
   자정이었다. 열쇠 수리 집은 24시간을 할 테지만 판조가 내일 아침 일찍 전화하자고 말했다. 순임도 피곤이 몰려왔기에 엉망진창이 된 옷들도 한쪽에 그대로 두고 베란다 창문만 단단히 잠근 채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판조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바로 곁에서 끙끙대는 판조 때문에 순임도 잠을 설쳤다. 땀을 흘릴 정도로 심하게 고통스러워해서, 그렇다고 딸이 아플 때와 같이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고통을 줄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응급실에 가볼까 물었으나 판조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고통은 밤이면 더 심했다. 가끔 등뼈 쪽이, 그러니까 6번과 7번 사이의 디스크가 있을 법한 자리에 미지근한 물을 쏟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피부에도 느껴져 판조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그쪽으로 가져가보았다. 땀도 나지 않았고 그냥 좀 거칠한 피부가 느껴졌을 뿐이었다. 눈을 감으면 MRI 사진, 비죽 흘러나온 디스크가 계속 아른거렸다.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계속 아팠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판조는 밤 내내 6번과 7번 사이의 디스크가 비죽 나온 그 모습을 계속 생각했다. 한번도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 몸속에 있었다. 그것 때문에 아픈 것이었다. 있는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막살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나쁜 버릇 때문에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약한 일이 벌어졌을까. 판조는 건강한 사람들이 다 얄미웠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순임은 열쇠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현관에 열쇠 수리 전화번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므로 몇 곳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안 받거나 다른 곳에 가 있거나 해서 당장 올 수 없다고 했다. 방문이 잠겼다고 했더니 그건 카드로도 열 수 있어요, 하고 순임이 계원에게서 얻었던 방법을 일러주고는 전화를 끊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배가 불렀지.”
   일찌감치 거실에 누운 판조는 허리 밑에 손을 넣어 받치고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병원 안 가봐도 되겠어?”
   순임은 언젠가 티브이에서 봤던 디스크에 좋다던 약재들의 이름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다. 그런 거라도 고아줄까? 하고 물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병원에 다니는 게 훨씬 나을 것이었다.
   “점심 먹고 가려고.”
   “문은 어쩌지?”
   “그냥 냅둬. 갔다 와서 지가 열쇠로 열겠지.”
   “혹시 뭐 훔쳐갔으면?”
   “경찰 다시 불러야지.”
   그렇게 말하고 판조는 다시 아아, 하고 탄식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얼른 병원 다녀와.”
   “같이 갈래?”
   “내가 뭐하러.”
   “집에 혼자 있음 심심하잖아.”
   “안 심심해. 드라마 보고 있지 뭐.”
   “그놈의 드라마.”
   “맞다. 나 점심 약속 있어.”
   “누구랑?”
   “한마음.”
   한마음은 순임과 함께 산을 다니는 사람들의 모임 이름이었다. 그것 말고도 고교 동창 모임과 구립 수영장 오전반 모임, 주민센터 서예반 모임에도 나가고 있었다.
   “그래.”
   “나갈 때 같이 가면 되겠네.”
   “난 점심 먹고 가려고.”
   “아, 밥 없는데.”
   “라면 끓여 먹을 거야.”
   “그래, 그럼.”
   순임이 모임을 가기 전 미용실에 들러야겠다며 집을 나선 다음에 판조는 어제 다 정리하지 못한 옷들을 정리했다. 버리고 싶은 옷이 몇 개 눈에 띄었다. 사십 대 때 입던 것인데 살이 조금 더 붙기도 했고 지금 입기엔 어려 보이는 옷들이라 앞으로 더는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추려낸 피케 셔츠 몇 가지와 아직 그대로 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청바지, 넥타이, 허리띠 들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집어넣었다. 땀을 흘리며 그런 일들을 마치고 나니 허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고 그래서 다시 조금 아프기 시작했다.
   봉지는 반 정도만 찼기 때문에 판조는 더 버릴 것이 없나를 살펴보았다. 순임의 옷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언제 입은 건지 기억도 안 나는 꽃무늬 원피스가 세 벌이나 있었다. 그것도 봉지에 넣었다. 프릴이 치렁치렁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목이 늘어난 반팔 티도 몇 장 넣었다. 그것들을 한데 넣어버려도 집은 전과 똑같아 보였다. 하지만 서랍 어딘가에 굴러다니던, 판조 자신도 미처 몰랐던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또 사라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한층 더 쾌적하게 느껴졌다. 판조는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잘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언제 썩어 문드러져서 고약한 냄새를 풍길지 모르니까.
   쓸데없는 것을 점점 더 줄여나간다는 점에 판조는 만족하면서 혼자인 틈을 타 집 구석구석을 또 살펴보았다. 싱크대 서랍장은 몇 번이나 보았던 것이지만 그래도 혹시 놓치고 간 곳이 있을지 몰라 또 보았다. 순임은 자질구레한 걸 다 모아두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새 또 새로 생겨난 고무줄이 몇 개 있었고 판조는 그걸 얼른 쓰레기통에 버렸다. 서랍을 다 꺼내 그 뒤로 넘어가 떨어져 있는 것들은 없는지도 살펴보았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도 한 번씩 살펴보고 좀 시들한 것, 같은 종류가 여러 개 있는 것들은 버려도 되지 않을까 따져보았다. 깨진 화분과 쏟아져나온 흙들도 따로 봉지를 가져와 조심조심 넣었다. 그렇게 쪼그려앉아 있다 보니 허리가 조금씩 시큰거리며 열이 나는 것 같아 거실 바닥에 누웠다가 그 딱딱함과 차가움이 조금 못마땅해져서 안방의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도 눈알을 굴리며 안방엔 더 버릴 것이 없나를 따져보았고 침대의 밑판이 서랍 형태로 되어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픈 허리를 다독이며 일어나 서랍을 당겨보았으나 오래 쓰지 않은 탓에 꽉 맞물려 잘 열리지 않았고 한참을 낑낑댄 다음에 완전히 열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정말이지 쓸데없는 것들, 20세기에 나왔던 커다란 휴대 전화와 삐삐, 배터리들, 콘돔, 어디에 쓰는 건지 알 수 없는 전선들, 옛날 텔레비전의 리모컨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판조는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찾았다는 데 기뻤다.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열쇠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집의 열쇠들이 다 있는 꾸러미였는데 여벌로 만들어둔 것 같았다. 판조는 그 꾸러미를 들고 혜주 방 앞으로 가서 하나씩 맞춰보았다. 마지막으로 넣어본 것이 맞아서 판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다행히도 혜주의 방은 털리지 않은 채였다. 도둑은 혼자였을지 여럿이었을지 모르지만 잠긴 방문 하나를 열지 못했으니 초짜였던 게 분명하다. 며칠 잠겨 있어서 그런지 혜주 방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화장품과 섬유유연제가 뒤섞인 냄새였다. 판조는 방문을 닫고 나왔다. 다시 문을 잠그면서도 계속 택배 상자가 눈에 밟혔다. 저 정도는 버려도 되지 않을까. 판조는 버리는 일에 중독된 사람처럼 그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문을 열고 빈 택배 상자를 가지고 나왔고 모든 일은 도둑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도둑에게 문을 따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닐 테고 온 집을 헤집었는데 방 하나를 빼먹을 리가 없었다. 혜주에게는 그렇게 말하면 된다. 판조는 버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버리고 모든 책임을 도둑에게 전가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고 너무 기뻐서 흥분이 되기까지 했다. 판조는 새 봉지를 가져와 쓸데없는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판조가 손댈 수, 없었던 곳이라 버릴 것 천지였다. 아직 애들 취향을 못 벗어난 것 같은 장난감 장식품들, 사은품으로 받았다는 자질구레한 정체불명의 것들, 집안에서도 뒤집어쓰고 다니던 검정 후드티, 판조의 기준에서 쓸데없는 것들, 무용한 것들, 못마땅했던 것들을 모조리 봉지에 넣었다. 점점 정리되어가는 방을 볼수록, 점점 볼록해지는 봉지를 볼수록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곧 낭패감이 찾아왔다. 도둑들이 변태가 아니고서야 뭐하러 이런 쓸데없는 걸 다 가져간단 말인가. 결국 판조는 쓸모없는 것을 버리기 위해서 쓸모있는 것들도 몇 개 쓰레기봉투에 넣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냥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은 다 봉투에 담았다. 귀금속에 손을 대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화장대 위에 있던 반지와 귀걸이도 담았다. 한참을 봉투를 채우고 있자니 허리가 뜨끈해져왔고 판조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혜주의 침대에 누웠다.
   판조는 몸을 쭉 펴고 누워 눈을 감고서 혜주가 돌아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생각해보았다. 당연히 처음엔 다짜고짜 화를 낼 것이다. 그럼 판조는 왜 이런 지경이 됐는지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낼 것이다. 도둑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가고 모든 것을 다 부쉈어. 그럼 혜주는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체념할 것이고 없어진 것이 뭣뭣인지를 헤아려볼 것이다. 그중 몇 개는 없어졌는지 눈치채지도 못할 것이다. 결국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게 될 것이고, 그건 실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나은 것이 아닌가. 판조는 허리가 아파 쓰레기를 밖에 내놓지는 못하고 혜주의 방에 둔 채로 문을 잠갔다. 순임에게는 열쇠를 찾았다는 말은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판조가 허리께에 손을 짚고 누워 있다가 일어났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수습할 틈도 없이 순임이 들어왔다. 점심 약속이 취소됐다며 미용실에 들렀다 온 순임이 집에 돌아왔다. 빈 화분 하나를 품에 안은 채였다.
   “이 봉지는 뭐야?”
   안방으로 들어간 순임은 봉지를 발견했는지 소리쳐 물었다.
   “점심 약속은 어떻게 하고?”
   “취소됐다니까. 근데 이거 버리는 거야?”
   “이건 내가 아까 청소하던 거……”
   순임은 대수롭지 않게 봉지를 눈으로 훑다가 그 안에서 익숙한 꽃무늬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거! 이거 누가 버리래?”
   판조는 갑자기 터져나온 소리에 움찔 놀라면서 조심조심 대답했다.
   “옛날 옷인 것 같은데 안 입는 거 아냐?”
   순임은 봉지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지난주에 홈쇼핑에서 산 건데.”
   “당신이 이런 걸 입는다고?”
   순임은 말없이 옷을 끄집어내고는 제발 허락 없이 다른 사람 물건에 손 좀 대지 말라고 말하고는 베란다로 가서 화분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다. 판조는 불을 다루는 일엔 영 소질이 없었으므로 끓이는 건 순임이 하고 설거지는 판조가 했다. 판조는 라면 물 맞추는 일에도 서툴렀는데 그냥 계량컵으로 봉지에 쓰인 대로 해도 완성하고 나면 늘 싱겁거나 짰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설명서를 보고 해도 나아지는 게 없다니, 이렇게 멍청해서야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라면도 못 먹고, 판조가 젓가락질을 하면서 그렇게 신세한탄을 하면 순임은 사람을 부려먹으려고 별소리를 다한다고 타박을 주었다.
   “먹고 병원 갈 거야?”
   “좀 괜찮은 것 같은데.”
   “밤 되면 또 아플걸.”
   “가는 게 낫겠지?”
   “그걸 말이라고. 디스크 그거 무서운 병이더라. 미용실에서 들어보니까 심하면 마비도 온대. 확실히 수술은 안 하는 게 낫긴 한데, 해도 또 재발하고 그런다더라. 그래도 너무 아프면 수술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대. 심심하면 같이 갈까?”
   판조는 고개를 저었다.
   “뭣하러.”
   순임도 두 번 권하지 않았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는 분갈이를 시작했다. 새 화분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면서 여기 쏟아졌던 흙을 다 어쨌냐며, 혹시 버린 거냐며 잠깐 언성이 높아질 뻔했지만 판조가 미처 내다버리지 못한, 깨진 화분과 흙을 담아두었던 봉지를 가져다주어 문제는 해결되었다.
   판조는 라면을 다 먹고 설거지를 끝낸 다음 병원이나 가려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병원은 가지 않았다. 병원 근처까지 좀 걷다보니 허리가 전혀 아프질 않았다. 의사가 적당한 운동이 도움이 될 거라고, 그 식상한 말을 했을 때는 그 말은 나도 하겠다며 툴툴거렸지만 막상 걸어보니 적절한 처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한가롭게 걷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집을 나설 때는 회사나 식당, 마트, 병원, 약속 장소 같은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목적지가 있었고 집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차를 탔다. 오늘도 갈 데가 있어 나왔지만 그곳을 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설렁설렁 걷다보니 애초에 이러려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한 번씩 나와서 이렇게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집 근처에 걸을 만한 공원이 없는 것이 영 아쉬웠지만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걷거나 달리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도 종종 보아왔다. 그 무리에 합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이렇게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래 살아온 동네인데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는다는 새로운 기분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아무 골목이나 싸다니다가 어느 집 앞에 누가 버리려고 내다 놓은 책상과 의자를 봤을 때 당장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일요일까지 기다렸다가 스티커 붙일게요.’ 하고 쓴 종이가 붙어 있는 걸 봤을 때는 누가 남이 쓰다가 버린 걸 가져가겠냐고 생각한 정도였다. 하지만 애초에 목적지가 없어 아무렇게나 걷다보니 다시금 그 골목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때는 책상이 꽤 쓸 만해 보였다. 마침 판조가 사려고 생각 중인 책상의 용도, 의자 하나를 놓고 앉아 책을 읽기에 적당한 사이즈였고 버리려고 내놓은 것치고는 상태도 멀끔했다. 책상다리에 조금 흠집이 나 있는 것만 빼면 튼튼해 보였다. 그 흠집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았다. 세 번째에는 일부러 그 골목을 찾아들어갔다. 그사이 누가 가져가지는 않았을까 조마조마했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걸 발견하고는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집까지는 걸어서 15분은 가야 했고 그 거리를 가지고 갈 만큼 가벼운 무게도 아니었다. 차 트렁크에 실으면 문은 닫히지 않을지라도 그럭저럭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판조는 책상을 갖기로 마음먹고 차로 가져오려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순임은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판조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걸 보더니 청소기를 끄고 물었다.
   “병원 안 갔어?”
   “어?”
   “카드 안 썼던데.”
   “아, 현금 있어서 현금 냈어.”
   “병원에선 뭐래?”
   “그냥 뭐 똑같지. 물리 치료하고 올바른 자세, 적당한 운동.”
   판조는 신발을 벗으며 수개월간 병원을 다니며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들을 또 반복했다. 순임은 별 달라진 것 없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청소기를 켰다. 판조는 식탁 위에 있던 차 키를 들고 다시 집을 나왔다. 현관을 나설 때 순임이 어딜 가느냐고 물었지만 판조는 잠깐만, 이라고만 말했다.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와 서둘러 그 골목으로 향했다. 하지만 걸어서는 지나갈 수 있었던 길이 일방통행이라 차로 진입할 수 없었기에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자 마음먹고 다른 입구를 찾느라 조금 시간이 지체됐다. 더군다나 다른 입구를 찾지도 못했다.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방통행인 걸 무시하고 차머리를 골목으로 집어넣으려고 했을 때 하필이면 골목 안쪽에 주차되어 있던 차 한 대가 나오면서 빵빵거려 도로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해두고 책상이 있던 곳으로 가보았지만 책상은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 의심해보았지만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라고 써 있던 종이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판조는 생각할수록 없어져버린 그 책상이 완벽했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 집의 초인종을 눌러 책상을 어디에서 샀던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 심정이 너무 커서 주체할 수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자신이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판조는 차로 향하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차로 가다가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난 다음에 결심하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세요? 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판조는 묻고 싶은 것을 얼른 물어보았다.
   “저기 죄송한데, 지나가던 사람인데, 여기 버렸던 책상 말입니다.”
   “아아, 네. 뭐 땜에 그러시죠?”
   “어디서 샀습니까?”
   안쪽에서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아마 젊은 남자는 인터폰으로 판조의 얼굴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판조는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정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제법 애를 썼다.
   “모르겠는데요. 왜 그러시는데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럽니다.”
   “가져가시면 돼요. 그러라고 종이도 써붙여놨을 건데?”
   “그러려고 했는데 누가 벌써 가져갔더라고요.”
   “제가 산 게 아니라서 어디서 샀는지 모르겠네요.”
   “누가 산 건데요? 좀 물어봐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물으면서 판조는 책상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흔한 책상이었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판판한 면이 있고 다리가 네 개 달린, 기본적인 크기의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책상이었다. 그 흔한 책상이 어째서 마음에 들었냐 하면 우연히 두 번이나 마주쳤기 때문이라고 판조는 생각했다. 그리고 가지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사라지고 없었다.
   “죽었는데요.”
   “네?”
   “그거 산 사람 죽었는데요. 그래서 못 물어봐요.”
   그렇게 말하면서 안쪽의 남자는 인터폰을 끊어버렸다. 판조는 다시 벨을 누를까 하다가 할 말이 없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밤에 판조는 다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하고, 옆에 누운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을 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비틀었기 때문에 순임도 잠에서 깨어났다. 판조의 허리에 손을 갖다 대며 순임이 말했다.
   “많이 아파?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야? 수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밤새 혼자 끙끙대던 판조는 다정하게 말을 거는 순임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판조는 별로 울어본 적이 없어서 그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인지 잘 몰랐다. 그냥 주절주절 순임에게 다 털어놓았다.
   “살면서 말이야. 디스크 같은 게 몸에 있다는 걸 생각해볼 이유가 없잖아. 하루 종일 이 육 번 칠 번 사이에 있는 디스크라는 놈만 생각하게 되는데 내가 살면서 뭔가를 그렇게 열렬히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순임은 손바닥으로 판조의 등허리를 몇 차례 쓸어주었다. 판조는 순임이 쓸어내리는 대로 가만히 허리를 맡기고 있다가 괜스레 짜증을 내며 이제 그만두라고 순임의 손을 물리쳤다. 순임은 별다른 말없이 그만두었다. 판조는 침대 매트리스 때문에 더 아픈 것 같다며 거실에 나가 자겠다고 이불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날 순임은 수영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저녁에나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판조는 혜주의 방에서 버릴 것들을 봉투에 담다가 허리가 아파져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왔다. 판조는 자신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면서 가져갈 책상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제 그 골목을 한번 더 지날 때 기분이 좋아졌다. 사라졌던 책상이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주워갔다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내놨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옆에 있던 쓰레기봉투 몇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이 차를 가지러 돌아간 사이 나타난 누구라도 건드리고 싶지 않도록. 어차피 가져가서 닦아야 할 테니 그쯤 쓰레기봉투가 잠깐 올라가 있던 정도로는 책상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차를 갖고 돌아온 다음에도 책상은 그대로 있었다. 판조는 아파트 앞까지 차로 책상을 옮긴 다음 집까지는 경비원의 도움을 받고 답례로 박카스 한 상자를 사주었다.
   순임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판조는 지친 사람처럼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실제로 상당히 지치기도 했다. 순임은 누워 있는 판조를 한번 들여다보고 샤워를 하러 욕실로 향하다가 열린 서재 문틈으로 못 보던 책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순임은 안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운 판조에게 물었다.
   “서재에 저거 뭐야?”
   “책상.”
   “그걸 몰라서 물어? 어디서 났냐고.”
   “주웠어.”
   “뭐?”
   “허리 아파서 동네 산책하다가 쓸 만한 거 같길래.”
   “쓸만하긴 뭐가 쓸 만해. 나무도 다 상했구만. 괜히 버렸겠어?”
   “아니야, 쓸 만해.”
   “누가 뭣에 쓰던 물건인 줄 알고 함부로 주워 오냐고.”
   “사람이 책상으로 썼겠지!”
   “다시 갖다 놔!”
   “쓰려고 갖고 온 거라니까. 서로 갖고 가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아니 맨날 처버릴 때는 언제고 무슨 쓰레기를 주워 와!”
   “필요하다니까!”
   “잘도 필요하겠다!”
   판조는 울고 싶었다. 순임도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불필요한지, 뭐가 귀하고 뭐가 쓸데없는지 서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치 살았으면 이제 알 때도 됐을 텐데 저 인간은 정말 나이만 먹고 헛살았다고, 혜주가 있었으면 분명 자신의 편을 들었을 거라고, 판조도 순임도 생각했다.
   판조는 순임이 씻는 동안 그 책상의 주인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분명히 그 집의 남자가 책상을 산 사람은 죽었다고 말했다. 아직 쓸 만한 걸 버린 것도 주인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걸 떠올리니 조금 후회가 됐다. 죽은 사람이 쓰던 건데. 그 말은 좀 이상했다. 그 책상을 쓰는 동안에는 그 사람은 살아 있었다. 그 관계 속에서 한쪽이 사라지자마자 책상도 쓰레기가 되었다. 그게 아주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다시 판조가 주워왔으니까.
   그날 밤 순임이 잠에서 깬 것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다. 꼭 잠이 들 만하면 들려오던 으, 으, 하는 판조의 소리가 없었다. 순임은 잠에서 깨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잠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불현듯 놀랐다. 아마도 화장실에 간 것이겠거니 판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방 밖에서는 조금씩 인기척이 들리기만 할 뿐 판조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런 게 신경 쓰여 다시 잠들지 못한 순임은 물을 마시기 위해 방에서 나왔다. 순임은 아마도 거실에 자신의 잠을 방해해왔던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실 바닥에도 흐트러진 이불만 있을 뿐 한숨도 탄식도 신음도 없었다. 물론 판조도 없었다. 밖에 나갔을 것 같진 않았다. 무슨 심각한 일이 아니고서야 새벽 세 시에 집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 너무 아파 병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틀림없이 순임을 깨웠을 것이다. 집 어딘가에 판조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있어야 할 거실에도, 갈 확률이 높은 부엌이나 화장실에도 판조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서재도 들여다보았지만 판조는 없었다. 썩어가는 책상만 있을 뿐이었다. 베란다에 나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서 뭔가 소리가 났다. 순간 자신의 집을 헤집어놨던 도둑이 떠올랐다.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아무것도 훔칠 것 없는 이런 집에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순임은 거실을 가로질러 가서 베란다 문을 열었다.
   “당신이야? 거기 있어?”
   순임은 베란다 구석의 어둠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둡고 탁해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베란다 쪽으로 희미하게 드리워졌지만 그 구석까지 닿지 않아 그곳은 더 어둡게만 보였다. 하룻밤을 방치하고 분갈이를 했던 탓인지 군자란은 시들해 보였다. 한참이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침묵이 두려워져 순임은 뒷걸음질치고 싶어졌다. 그러나 다시 한발 다가갔다. 거기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고 확인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구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림자뿐이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혜주의 방문 손잡이를 돌렸을 때 순임은 그 문이 열린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방이 텅 비어 있어서 더 놀랐다. 혜주의 방에는 완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이야말로 그림자뿐이었다. 순임은 자신이 잠이 덜 깨 헛것을 보는 게 아닌지 찌푸린 눈으로 인상을 쓰고 방을 들여다보다가 불을 켰다. 형광등 불빛에 방이 환해지자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는 것이 더 확실해졌다. 침대가 있던 자리, 책상이 있던 자리, 옷장이 있던 자리의 장판이 눌린 자국이 보였다. 열린 창문으로 커튼을 흔들며 바람이 마구 들어왔다. 순임은 창문 앞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쩌면 그 밖에 자기를 깜짝 놀라게 할, 혜주의 방이 텅 비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 줄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창밖에는 어둠뿐이었다. 늦은 귀가인지 이른 출타인지 모를 차들의 소음이 가로등 불빛을 뚫고 들려올 뿐이었다. 순임은 창문을 닫고 방을 빠져나왔다. 물론 불을 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창문을 닫은 다음에도 커튼은 잔잔히 흔들렸다.
   그 방을 채우고 있던 것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순임은 알지 못했다. 순임은 혜주에게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를 몰라 곤란해하다가 깨졌던 화분을 떠올리고 안도했다. 그래, 모든 게 도둑 때문이지. 순임은 하품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판조의 신음을 듣고는 또 안도하여 남은 잠을 푹 잤다.

김지연

얼마 전 방 청소를 하며 쓸데없는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방 청소를 끝내고 보니 달라진 점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도 조금은 홀가분해졌습니다.

2022/01/25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