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깬 지 9시간이 지났지만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
   오줌을 참다 참다 화장실에 겨우 갔는데 변기에 앉자마자 오줌과 눈물이 동시에 흘렀다. 이렇게 살아서 뭐해. 오늘은 반드시 죽자고 다짐했다. 화장실에 온 김에 샤워를 했다. 죽으면서 들으려고 케이팝 걸 그룹 플레이 리스트도 만들어두었다. 머리를 말리며 위키미키의 〈시에스타 Siesta〉를 들었다. 죽는다고 해서 노래까지 축 처질 필요는 없다.
   창문 틈새를 공업용 테이프로 틀어막았다. 번개탄을 양은 냄비 속에 집어넣었다.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따라 단번에 들이켰다. 침대로 돌아가 눈을 감았다. 매캐한 유독 가스가 서서히 방안을 채웠다. 스피커에선 레드벨벳의 〈행복〉이 흘렀다. 조이가 랩을 했다. 내 기억 속 조이의 포지션은 서브보컬인데. 랩이라니? 검색해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시 잠을 청했다.
   〈행복〉이 끝났다. 〈덤디덤디〉가 끝났다. 제프 버클리의 〈라스트 굿바이 Last Goodbye〉가 시작되었다. ‘라스트 굿바이’는 인생의 마지막 재생 목록에 가장 넣고 싶지 않은 음악이다. 죽을 때만이라도 가뿐해지고 싶다. 내가 죽고 세상에 없을 미래의 위키피디아에는 이렇게 기록될지도 모른다.
   삶이 불행으로 점철됐던 무명의 가수 정혜진은 죽는 순간까지도 제프 버클리를 들었다.
   나는 제프 버클리를 지우려고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몽롱해진 정신을 붙들고 잠금을 풀었다. 한쪽 눈만 간신히 뜬 채 노래를 삭제할 무렵이었다. 유튜브 알림이 떴다. 죽을 건데 확인해봤자 무의미했다. 알림 확인은 이미 눌렀으나 생각만은 그렇게 했다.
   누군가 내 채널에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고 갔다. 무플 상태였던 게시글에 첫 댓글이 달렸다. 감고 있던 한쪽 눈을 마저 뜨고 글을 읽었다. 여긴 부계정 채널인가요? 이제야 발견했네요. 구독 누르고 갑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위클리의 〈홀리데이 파티 Holiday Party〉가 흘렀다.
   오래전 나는 네오사이키델릭에서 펑크, 힙합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스타 뮤지션들의 히트곡을 커버했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어쿠스틱 버전으로 해석한 노래들을 불렀다. 조니 미첼의 〈리버 River〉와 킨키 키즈의 〈신데렐라 크리스마스 シンデレラ クリスマス〉는 옥외 트리가 반짝이던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광장에서, 블링크-182의 〈아이 미스 유 I Miss You〉는 가평 수목원의 온실에서, 88라이징의 〈피치 잼 Peach Jam〉은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양양의 해변에서 열창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유튜브에 올렸다. 10분을 넘지 않는 짧은 영상들이었지만 제대로 하고 싶었다. 촬영 장비도 대여했었고, 국비 지원을 받아 학원에서 편집 기술도 배웠다.
   하지만 나는 본계정만 굴렸지 부계정은 따로 없었다. 이 사람은 나를 누구와 착각한 걸까?
   유튜브에 게시한 커버 영상의 재생 횟수는 한 곡당 50회를 못 넘겼다. 그중 30회는 새로운 기기로 접속할 때마다 내가 직접 조회한 것이었다. 그때는 관심받지 못해도 괜찮은 척했다. 영상 아래 ‘더보기’란에 적어둔 문장들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음악이 좋으니까 그냥 계속 노래할 뿐.
   꾸준히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다독였던 문장들. 이제 나는 무너졌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할 만큼 했다. 더는 하고 싶지 않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아까 그 사람이다. 내가 두 번째로 올린 영상에도 글을 남겼다. 매번 느낀 건데 목소리가 참 맑으세요. 조니 미첼이 이 노래 들으면 분명 뿌듯해할 겁니다. 손가락이 미끄러져 실수로 하트를 눌렀다. 할 수 없이 대댓글을 달았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양시훈이라는 사람의 댓글이 이어졌다.
   혹시 고독한 정혜진 방의 존재를 아시나요?
   들어오시면 예전에 찍은 고화질 공연 사진 드릴게요.
   내게는 팬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7년 가까이 노래를 불렀지만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한 사람이 없었는데. 고독한 정혜진 방을 검색했다. 진짜 있네. 이런 게 존재했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내일이나 모레 죽었을 텐데. 숨을 쉬는 게 점점 고통스러웠다. 연기 때문에 코가 찌릿했다. 방 안에는 하얀 장막이 낮게 깔렸다. 졸음이 밀려들었다. 한 시간만 있다 죽을까. 테이프를 뜯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장막이 밖으로 흘러나갔다.

   고독한 정혜진 방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정혜진 사운드 클라우드 개설일(dddd) + 사운드 클라우드에 처음 노래 올린 날(bbbb)
   정신이 혼미한 탓에 덧셈을 두 번 틀렸다. 계정에 접속해 날짜를 재확인하고 세번째 시도한 끝에 겨우 입장했다. 인원은 방장과 부방장 단 두 명이었다. 방장은 점(.)이고 양시훈은 부방장이었다. 나는 안녕하세요 정혜진까지 쓰다 지웠고, 이모티콘을 찾다 관뒀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공연 사진 가지고 계신 게 정말인가요?
   잘 나왔으면 영정 사진으로나 써야지. 말풍선 옆에 2였던 숫자가 1로 바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시훈의 글이 올라왔다. 채팅 금지입니다. 나는 서둘러 키패드를 눌렀다. 저 정혜진이에요. 사진 준다면서요. 양시훈은 메시지를 삭제시킨 다음 나를 칼같이 내보냈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유독 가스를 흡입해서인지, 아니면 낯선 사람에게 문전박대를 당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이 메스꺼웠다. 양시훈의 댓글에 누른 하트를 취소했다. 감사하다는 댓글을 삭제하고 새 답글을 남겼다. 나랑 장난쳐요? 뭐하세요?
   창문을 다시 닫으려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양시훈이 댓글을 또 달았다. 방금 그게 진짜였다고요? 꺼지라고 욕을 하려다 못했다. 예외 없이 공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내 머리 위에는 늘 먹구름이 떠다니는데, 그것들이 산산이 부서져서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 것만 같은 이 느낌. 서둘러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벌려 그 안에 얼굴을 밀어넣었다. 바스락거리는 어둠 속에서 공기를 들이마셨다. 죽고 싶은데도 죽을 것 같은 이 느낌을 두려워하는 내가 싫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얇은 비닐이 얼굴 피부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벽을 등지고 숨만 쉬는데 핸드폰이 떨렸다. 봉투를 벗고 글을 확인했다. 누가 들어와서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워낙에 월드 스타시니까요.
   유튜브 재생 횟수 50회도 못 넘기는 내가 월드 스타? 이 세상에는 연예인, 정치인, 법조인 등 사칭할 사람이 도처에 널렸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30분 후에 라이브 켤게요. 이 정도면 인증이 될까요? 내가 적자 양시훈은 확인했다는 의미로 붉은색 하트를 찍었다.
   번개탄을 끄고 형광등을 켰다. 전등 하나는 아예 나갔고 남은 하나마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계속 깜박거렸다. 애초에 불을 얼마 만에 켜본 건지 모르겠다. 집안의 창문들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밤은 길 것이다. 아직 내게는 다섯 개의 번개탄이 남아 있다. 어느덧 형광등은 점멸을 멈춘 채 어둡고 누르스름한 빛을 내뿜었다. 30촉짜리 알전구만도 못한 밝기였지만 상관없었다.
   태블릿을 거치대로 고정시키고 실시간 라이브를 켰다. 핸드폰으로는 방송이 제대로 송출되는지 점검했다. 온 에어 화면에 내 모습이 보였다. 양시훈이 입장하기를 기다리며 재생 목록을 다시 짰다. 얼굴 인증만 하고 끌 생각이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조차 배경 음악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었다. 잔잔하지만 슬프지 않은 노래들로 골랐다. 볼륨은 중간보다 작은 크기로 설정했다. 양시훈은 들어오자마자 라이브 채팅창에 메시지를 연달아 세 번 보냈다. 진짜였군요. 죄송합니다. 제발 다시 들어와주세요.
   나는 고독방에 재입장했다. 얼른, 이라는 말밖에 입력하지 못했는데 양시훈의 메시지가 세 번 또 떴다. 엇 근데 이 노래. DEHD 아닌가요? 제목 뭐더라? 이 인간의 디지털 순발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 손가락을 포기하고 입을 택했다. 화면상이긴 하지만 51일 만에 처음으로 타인에게 도달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얼른 주세요, 사진.
   그렇게 말하고 침을 삼키자 목구멍이 욱신거렸다. 카메라 렌즈를 보는 것도, 화면 속 내 얼굴을 보는 것도 어색하기만 해서 딴청을 부렸다. 고독방을 둘러보다 양시훈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주된 피사체는 저물녘에 물든 분홍색 강과 구름이었다. 사진을 조금 더 크게 확대해보았다. 벤치가 아닌 시설물 같은 데에 앉아 강변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희미한 옆태가 보였다. 역광 현상이 심해 얼굴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뭐랄까. 실루엣만 봐도 멍때리는 중이었다. 유심히 관찰하는 사이 열 장 남짓한 사진들이 차례로 떴다.
   내 윗입술 언저리에 난 작은 점까지도 포착하는 고화질의 사진들이었다. 에프에프, 클럽 빵, 제비다방, 언플러그드…… 각각의 사진들은 공연 장소도 저마다 달랐다. '170611_취한제비'라고 기록된 날의 나를 들여다봤다. 신시사이저를 조작하는 진지한 얼굴. 기타를 튜닝 중이거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의 올라간 입꼬리가 낯설었다. 라이브 방송 중인 화면 너머로 내 얼굴을 흘깃 봤다. 지금은 그냥 죽상이다. 문득 궁금해져서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누구세요?
   렉이 의심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자리를 비운 탓에 못 들었을까 싶어, 저 아세요? 라고 자판도 두드려봤다. 세 곡의 노래가 지났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생각을 고쳐먹고 문장을 입력했다. 사진 감사합니다. 이만 방송 종료할게요. 촬영 모드를 마치려는 순간 메시지가 올라왔다. 저는 일개 팬입니다. 사진은……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니에요. 방장이 찍은 건데 지금 여기 없어서 대신 전해드려요. 나는 종료 버튼을 누르는 대신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그럼 방장님은 제가 아는 분일까요? 3분 13초. 우리 사이에 한 곡 분의 침묵이 또 흘렀다. 하지만 이번엔 방송을 종료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단지 기다렸다. 문장이 올라왔다.
   아마 모르실 거예요. 워낙 조용하게 다녀서. 그래도 걔가 정말 좋아했어요.
   좋아했어요, 라는 문장을 읽자 그만 울컥했다. 분하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고마워서. 그동안 살면서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가기 전에 듣게 되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살짝만 시끄럽게 다녀줬으면 좋았을 텐데. 잘 듣고 있어요. 한 마디라도 해줬더라면 내 마음속 깃든 빛이 열 촉은 밝아졌을 텐데.
   얼른 눈물을 훔쳤으나 시신경이 고장이라도 난 듯 염도 높은 물이 양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민망해서 의자 등받이에 걸쳐둔 후드 집업을 입었다. 머리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목 부근에 달린 끈을 최대한 조여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가렸다. 스피커에서는 스미스 웨스턴즈의 〈올 다이 영 All Die Young〉이 흘렀다. 여름 저녁의 바다가 떠오르는 노래였다. 어쩐지 따뜻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양시훈은 울지 말라는 둥, 힘내라는 둥, 하나마나한 위로를 하지 않았다. 화제를 돌리며 담백하게 물었다. 지금 트는 노래들 다 좋아요. 몇 곡 남았어요? 나는 재생 목록을 일별했다. 엠팔삼, 페이브먼트, 스타퍼커, 이스트 리버 파이프, 라이언 아담스. 앞으로 다섯 곡이요. 내가 말하자 양시훈이 썼다. 그럼 저희 남은 노래 마저 듣고 가요.

   우리는 어떤 말도 보태지 않은 채 〈웨이트 Wait〉를 들었고 〈히어 Here〉를 들었다. 〈골든 라이트 Golden Light〉가 나올 때는 내가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리듬을 탔다. 〈마티 Marty〉의 기타 소리가 찰랑거릴 즈음 처음 듣는 노래라며 양시훈이 아티스트의 이름을 물었다. 그런 걸 제외하고 별다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이제 라이언 아담스가 하모니카를 불었다. 〈컴 픽 미 업 Come Pick Me Up〉. 마지막 곡이었다. 양시훈이 글을 띄웠다. 신청곡도 틀어주나요?
   음악 방송을 할 마음까진 없었건만. 덕분에 영정 사진도 구했고, 유튜브에 ‘구독’과 ‘좋아요’도 생겼으니 죽기 전에 성불하는 마음으로 틀어주기로 했다. 너무 축 처지는 노래만 아니면 틀어드릴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시훈이 적었다. 정혜진의 〈나를 불러줘〉 듣고 싶습니다.
   대답할 수 없어서 눈알만 한참 굴렸다. 나한테 그런 노래는 없었다. 기억을 곱씹어볼 문제도 아닌 것이 정식 발매한 곡은 세 곡이 다였다.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그걸 또 뒤지고 있다. 데모곡 중에 그런 제목의 노래가 있나 하고. 유튜브와 사운드 클라우드, 구글 드라이브를 검색했다.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서 이러고 있는 건가 싶다.
   라이언 아담스의 마지막 노래가 끝나자 정적이 흘렀다. 다시금 불안해진 나는 급한 대로 재생 목록을 한 곡 반복 듣기로 설정해두고 고백했다. 저는 그런 노래 부른 적 없어요. 양시훈이 물음표를 두 번 띄우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나를 불러줘〉는 방장과 저의 최애곡인데요? 내가 머뭇거리자 양시훈이 바로 썼다. 그 수록곡 있는 음반으로 상도 많이 받으셨잖아요. 히든 트랙이라 까먹으신 건가요? 내 입으로 내뱉기도 낯부끄러워 이번만큼은 채팅으로 적었다. 키보드가 눌릴 때마다 토독토독 경쾌한 소리를 냈다. 무슨 상을 받아요, 제가. 양시훈이 대답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 받으셨잖아요.
   이 자식은 나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미는커녕 국내 오디션 프로 본선이라도 진출했다면 내가 소원이 없었겠다. 듣기 나쁜 농담은 아니어서 피식 웃자 양시훈이 또 적었다. 어? 왜 말 같지도 않은 말 한다는 듯이 그렇게 웃으시는 거죠? 왜죠? 이 뻔뻔함의 끝이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속는 척을 해보기로 했다. 정말 못 찾아서 그러는데 음원 링크나 파일 보내주시면 제가 틀어드릴게요.
   양시훈이 썼다. 그거 LP 히든 트랙이어서 웹으로 못 듣잖아요. 저작권자니까 음원 파일이 있으신가 해서 여쭤본 거였어요. 날조도 이만하면 정성이 갸륵했다. 불신하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양시훈이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말을 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저야말로 지금 님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틀어주기 싫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시지……
   없는 걸 자꾸만 있다고 하는 양시훈이 답답했다. 양시훈은 있는 걸 없다고 우기는 나 때문에 환장하겠다고 한다. 나는 말했다. 저 진짜 그런 유명인 아니고요. 제 노래 듣는 사람 있는 줄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양시훈은 발 빠르게 증거 사진들을 가져왔다. ‘정혜진’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차콜색 재킷 앨범과 2022 그래미 어워드 수상 정보 이력, 천만 뷰를 넘긴 공연 영상의 캡처본들이 순서대로 올라왔다. 라이브 채팅창에는 이렇게 썼다. 지금 입장하신 고독방 인원수만 해도 900명이 넘는데 무슨 노래를 듣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고독방의 인원은 나, 방장, 양시훈, 이렇게 셋이 전부였다. 캠에 대고 직접 고독방의 상태를 보여줬다. 아니 진짜 주작하지 마세요. 내가 빈정거리자 양시훈은 탤런트 김수미가 소주병 나발 부는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그러고는 적었다. zerogravity. 제 카톡 아이디인데 페이스톡 주세요.
   나는 아이디를 입력해 친구 추가를 했다. 페이스톡을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양시훈 말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끝내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 열두 자리까지 알려줬다.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어봤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죽으려고 남겨둔 알량한 힘까지 실랑이 벌이는 데에 다 쓰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 쪽에선 통화 연결음이 잘만 들리는데. 양시훈은 채팅창에 썼다. 제 번호로 걸고 있는 것 맞나요? 안 오는데? 이번에도 카메라 렌즈 가까이에 핸드폰 화면을 가져다 댔다. 그가 마저 썼다. 그 번호 맞는데 왜 그럴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나도 어리둥절했지만 방송을 자연스럽게 끌 생각으로 재생 중인 노래를 바꿨다. 엔하이픈의 〈플리커 Flicker〉. 이것만 듣고 진짜 죽으러 가야지, 생각했는데 라이브 채팅창에 링크 하나가 올라왔다. 새 탭을 열어서 복사한 주소를 붙여넣었다.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캠의 밝기를 조절하는 남자가 보였다. 그가 켜놓은 노트북 화면 속에는 실시간 방송 중인 나의 모습이 보였다. 말하자면 내 방송을 보는 양시훈의 방송을 보는 나. 뭐가 이렇게 복잡해. 혼란한 와중에 그가 손을 흔들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들어오셨네. 저 잘 보이죠?
   나는 몸을 움츠렸다.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라인이어도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는 게 어색했다. 잠깐만요. 턴테이블 좀 가져올게요. 양시훈은 그렇게 말하고 방을 비웠다. 나는 화면 속 그의 방을 구경했다. RGB 무지갯빛이 쏟아지는 기계식 키보드. 잘 정돈된 침대. 올리브색 벽 한편에 세워둔 유영국의 그림 액자. 마찬가지로 캠이 비추는 내 방을 비교했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는데 아직도 덮고 있는 겨울 솜이불. 먼지가 하얗게 내려앉은 기타. 창문 모서리에서 덜렁덜렁 춤을 추는 공업용 청테이프. 이 꼴을 하고 방송을 켰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양시훈이 돌아와 턴테이블에 바이닐을 올렸다. 틀어둔 음악을 정지시키고 내가 불렀다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가 바늘의 위치를 조정하며 히든 트랙을 가늠했다. 곧 노래의 도입부가 흘렀다.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실체 없는 멜로디가 이상적인 소리의 형태로 구현된 노래였다. 목소리도 음악 스타일도 내 것이 확실했다. 양시훈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괸 채 노래를 들었다. 간혹 리듬에 맞춰 머리를 움직이기도 했다.
   영원 같던 4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운을 뗐다. 저희는 다른 우주에 있나 봐요. 양시훈은 잠시 멍하게 입을 벌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안도한다는 듯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더니 말했다. 그런 게 있다고 하니까 다행이에요. 나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왜요? 그가 답했다. 저는 절망 편이지만 다른 시공간에 보통 편도 있고 희망 편도 있다 생각하니까 마음이 좋아져서요. 방장도 어딘가에선 잘살고 있을 테고. 나는 방장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그는 별로 내키지 않았는지 화제를 바꿨다. 거기는 스파이더맨이 누구인가요? 양시훈이 장난스레 물었고, 우린 동시에 외쳤다. 나는 톰 홀랜드, 양시훈은 에이든 매컬러스.
   에이든이란 이름을 들으니 반가웠다. 예전에 아역 배우로 드문드문 활동하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배우였는데, 양시훈의 세계에서는 어엿한 스파이더맨이 되었구나. 기특하다. 어떤 우주에서는 티모시 샬라메가 스파이더맨을 하고 있을지도. 그런 상상을 하며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한결 편해진 분위기를 틈타 양시훈이 제안했다. 다른 우주의 앨범 계속 들으실래요?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졌다. 내가 있는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래미상을 받았다는 나의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 그런 다음 여기서도 동일한 제목과 곡조를 가진 노래를 만들어낸다. 트랙리스트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앨범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의 내 인생이 180도 달라질까? 계속 살고 싶을까?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을 양시훈에게 알렸다. 아니요. 이 우주에서의 나는 그런 것들을 다시 시작할 에너지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다. 대신 다른 게 궁금해졌다. 그곳의 내가 행복한 버전이라면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살고 있을까. 처음으로 화면 속 양시훈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노래는 괜찮고 그 세계의 저에 대해 더 말씀해주세요.
   말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양시훈은 그렇게 말하고 마우스와 자판을 두드렸다. 곧 화면을 통해 동영상 창 하나가 나타났다. 내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모습이었다.
   정혜진. 이름 석 자가 호명된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앞에 앉은 빌리 아일리시, 옆에 앉은 코난 그레이, 뒤에 앉은 해리 스타일스가 다 같이 일어나 축하해준다. 나는 기립 박수를 뒤로 하고 무대를 향해 걸어올라간다. 축음기 모양의 금빛 트로피를 받을 때에는 이를 드러내며 웃기도 한다. 하지만 웃는다고 해서 행복하다 장담할 순 없다. 나는 한동안 어, 어, 어, 우물거리다 장내의 가수들에게 격려 박수를 받는다. 떨리는 양손을 꽉 맞잡고 힘겹게 입을 연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감정의 교환이, 저한테는 죽고 싶을 만큼 힘이 듭니다. 수상 소감이 시작되자 뒤편의 스크린에서 영한 동시 번역 자막이 뜬다. 나는 계속 말한다. 이런 주제에 무슨 노래를 부른다고. 웃기죠? 거기까지 말하고 멈춘다. 문득 허공 위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나는 그것을 올려다본다. 입술은 바싹 마르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다. 아마도 내 눈앞은 까맣게 암전.
   나의 감상. 그래미의 흑역사. 억지로 공황을 삼킨 이후로도 한참이나 파편화된 말을 주절대는데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만 보여주는 행동을 통해 짐작할 뿐이었다. 내가 꿈조차 꿔본 적 없던 업적을 모두 이룬 다른 세상의 나도 공허해하고 우울해하며 늘 죽음을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가길 견뎌내고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간들 마땅한 대책도 없다. 살아 있는 한 내가 끌어안은 우울과 동거해야겠지. 죽어야 끝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양시훈이 별안간 영상을 멈추고 말했다. 거기서도 여전하신 것 같아요.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희망 편은 다른 곳에 있나 봐요. 양시훈이 말했다.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뭔데요? 내가 묻자 양시훈이 답했다. 아까 고독방 방장, 그러니까 당신 사진 찍은 사람. 궁금해요. 저랑은 잘 지내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죽지만 않고 잘살고 있었으면. 아니 잘 안 살아도 되니까 그냥 살아만 있었으면. 가서 확인 한 번만 해주세요. 살고 있는지.
   그의 연인은 죽기 전까지 노들섬의 라이브하우스에서 일했다고 한다. 저녁 8시에 일이 끝나요. 나는 시계를 보고 얘기했다. 지금 7시 40분이에요. 그가 덧붙였다. 8시부터 9시까지 노들섬에 앉아 있다가 갑니다. 입구에 보면 Nodeul Island라는 알파벳 조각상이 있는데 아마 n에 앉아 있을 거예요. 만약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옆에 가만히 앉아 있어 주세요. 당신도 당신의 이어폰을 끼고 듣고 싶은 노래를 들어도 좋을 것 같고요. 나도 방장이 궁금했지만 집밖으로 나가기 두려워 망설였다. 양시훈은 계속 말했다. 빵을 먹고 있으면 두유를 하나 건네주세요. 울고 있으면 휴지를 하나 빌려주세요. 만약 노래가 끝났는데도 울고 있으면 그칠 때까지만 곁에 있어 주세요.
   수락해놓고 보니 부탁이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투덜거리며 포스트잇에 챙겨야 할 준비물들을 하나씩 썼다. 1.이어폰 2.두유 3.휴지. 서랍에서 한쪽이 망가진 줄 이어폰을 꺼냈다. 두유는 가다가 편의점에 들러서 사야지. 휴지. 책상 위에 있던 휴대용 티슈를 가방에 챙겨넣었다. 아주 오래전 거리의 전도자에게 받은 거였는데, 그 사람은 티슈를 건네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앞면에는 교회 약도가 그려져 있었고, 뒷면에는 잠언 8장 17절의 성경 문구가 박혀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 집에 돌아와 굵은 네임펜으로 글씨를 고쳐 썼다. 나를 외면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잊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

   51일 만에 외출했다. 공기 중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굵은 빗방울 하나가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우산도 챙기지 않았는데 나오자마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이 정도는 낙담할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우산을 챙기면 비가 내리지 않고, 우산을 챙기지 않으면 비가 내린다. 내 눈물처럼 맥락 없이 떨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노들섬으로 향했다.
   여자는 양시훈이 말한 대로 Island의 n 위에 앉아 있었다. 노래를 듣거나, 빵을 먹거나, 울고 있거나 하나만 할 줄 알았는데 그 세 개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꼈는데 노랫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와서 다 들렸다. 빵 먹으며 우는 사람 실제로 처음 봐서 신기했다. 나는 옆으로 조용히 다가가 Island의 s에 가서 앉았다. a나 d에 가서 앉기에는 가깝고 껄끄러웠다. 무엇보다 s의 양옆에 대문자 I와 소문자 l이 방벽 역할을 해줘서 나름 안정감이 들었다.
   한쪽만 나오는 이어폰을 핸드폰에 꽂고 노래를 들었다. 나는 지금 아일랜드에 앉았으니까 민수의 〈섬〉을 재생시켰다. 드럼 템포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애매하게 떨어지는 비 때문에 이어폰에서 정전기가 돋았다. 고막이 짜르르 울렸다. 가방에서 두유와 휴지를 꺼냈지만 이 곡만 마저 듣고 해야지. 선뜻 건네기가 쑥스럽다. 흐르는 배경 음악에 기댄 채 노들섬의 풍경을 구경했다. 차양 벤치에 앉아 음주를 즐기는 무리. 반려견을 데리고 저녁 산책을 나온 가족들. 이따금 지나다니는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두유와 휴지를 만지작거리며 그냥 돌아갈까 고민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양시훈이었다. 귀신같은 놈. 유튜브에 댓글을 남겼다. 도착하셨나요? 전 지금 d에 앉았는데 그 애도 있나요? 나는 d를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휑했고 n에 앉은 여자와 괜히 눈만 마주쳤다. 여자가 이어폰을 빼고 말했다. 정혜진님 아니신가요. 목소리가 잔잔하게 일렁였다. 나도 이어폰을 빼고 말했다. 네 맞아요. 알파벳 l과 a를 지나쳐 두유와 휴지를 건네주었다. 이거 하세요. 여자가 그것들을 받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s까지 다시 돌아가기가 좀 그래서 다른 우주의 양시훈이 앉아 있다는 d에 가서 앉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여자는 휴지로 눈물을 닦고, 두유에 빨대를 꽂아 몇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종이봉투에 들어있던 소금 빵 하나를 꺼냈다. 내 허벅지 위에 빵을 올리며 말했다. 팬이에요. 정확히 빵 밑바닥 크기만큼의 허벅지 표피가 마비된 것처럼 아려왔다. 내 다리 위의 빵을 멀뚱히 보고만 있자 여자가 말했다. 제가 지금 마땅히 드릴 게 없어서. 문득 어제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는 게 생각났다.
   음식물을 천천히 씹으며 흐르는 강을 바라봤다. 바닥을 헤아리기 힘든 수심 깊은 강물이 내 앞에서 흐른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물결에서 작은 파동이 발생하지만 일시적이다. 강은 완만한 파고를 그리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쉼 없이 지나간다. 강은 태어난 이래로 단 한 번도 저 시간에 따른 물의 흐름을 멈춘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고 멈출 수 있다. 물에 잠긴 나를 상상한다. 그곳은 아주 어둡고 차갑겠지.
   빵을 삼킨 목구멍이 먹먹하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의 재생 시간은 3분 1초. 노래가 끝나기 전에 저기까지 걸어들어갈 수 있겠지. 슬픔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돌을 주머니에 넣고 몇 발자국만 앞으로 옮기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데 여자가 말했다.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실제로 들으니 알게 됐다. 그렇게 휘발되는 말 한마디로는 내 마음속 깃든 빛이 열 촉은커녕 세 촉도 밝아질 수 없다는 것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또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리란 것을.
   석양이 지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자 우리가 앉은 Nodeul Island 조각상에 희고 가냘픈 불이 켜졌다. 다리 사이로 미지근한 빛이 스며들었다. 무심코 고개를 숙였는데 물방울 하나가 내 발등 위로 툭 떨어지는 게 보였다.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권혜영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을 때. 끝내주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울고 있는 내게 휴지를 건네주는 낯선 당신을 만났을 때. 짧지만 강렬하고, 희박하지만 불안을 잠재우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모여 저를 살아 있게 합니다.

2022/07/26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