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풍경



   오늘의 책상 앞에 앉는다.
   어제 책상에서 비켰는데 오늘 다시 앉는다.
   컵에는 녹지 않은 머리카락, 그러므로 다시 비켜야 한다.
   의자는 얇고 빙글빙글 돌고

   책상 위의 종이들이 날아간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창밖으로

   흩어지는 종이 카드들
   계단에 붙고
   플라스틱 입간판에 붙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지나가는 자전거에 붙는다.

   죽은 나무들을 따라가며 집들은
   창밖에서 회전하는 파편으로 남는다.

   풍경이 되고 싶지 않은 풍경
   그림자가 되고 싶지 않은 그림자
   간격을 두고 끼어드는 비상 사이렌을

   피해

   이쪽으로 저쪽으로 비켜 가는 종이 카드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 쪼가리를

   행인 한 사람이 주워들고 읽는다.





   정오의 총알



   방충망에 매미가 붙어 있다. 두 마리 세 마리 그러더니 지금은 한 마리가 붙어 있다. 붙어 있는 체한다. 방금 전까지 요란하게 울어댔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울지 않는다. 울지 않는 체한다. 얼굴을 꿰맨 것 같은, 몸과 날개를 꿰맨 것 같은 매미는 지금 포복을 멈춘 몸이다. 더이상 흩어지지 않는다. 너는 어디서 왔는가,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나는 그와 마주하고 있다. 언제든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망에 붙은 몸을 떼어내는 것은 언제나 민망한 일이다. 방충망을 가볍게 치니 매미는 정오의 총알처럼 솟아오른다.

이수명

커튼을 걷고 책상에 앉는다. 책상을 떠난다. 다시 책상에 앉는다.

2022/08/30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