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은 좁고 길어야 한다. 이 시간까지 나는 오직 철저함 하나만을 목표로 달려왔다. 여러 번의 꼼꼼한 사전 답사를 거쳐 구멍을 뚫을 위치를 미리 정해두었고, 경내 CCTV의 위치와 순찰 시간, 순찰 경로도 파악해두었다. 진입 방법과 시간을 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달 남짓한 잠행 끝에 나는 경비원을 제외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후 다소 격식을 차린 1차 순찰과 그보다는 형식적인 2차 순찰까지 마치고 나면 경비원이 주로 좁은 경비실에 들어가 눈을 붙이거나 아니면 신김치와 컵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 반병 정도를 혼자 비우는 습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보통 자정이 넘어서 시작되는 경비원의 자작은 오전 2시까지 이어지는 법이 거의 없었고 오전 4시 정도가 되면 광막했던 밤도 귀퉁이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으므로 일을 치르기엔 오전 2시에서 4시 사이가 가장 좋았다. 축시에서 인시로 넘어가는 시간. 소가 물러나고 호랑이가 다가오는 시간. 진입 방법은 역시 담을 넘어가는 쪽이 나았다. 다만 담장이 낮거나 철제 울타리로 된 곳은 넘어가기에 수월해 보여도 경비실과 CCTV가 너무 가까웠다. 산책을 빙자한 여러 차례의 사전 답사 끝에 나는 경비실에서도 멀고 우람한 나뭇가지가 CCTV까지 살짝 가려주는 최적의 위치를 발견했다. 다만 바깥쪽에 서면 담장이 내 키보다 훌쩍 높아서 맨몸으로 넘어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동네 철물점을 찾아가 가벼운 접이식 사다리를 샀고, 어느 늦은 밤 산책을 하는 척하다가 내가 점찍어둔 담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헌 옷 수거함 뒤쪽에 사다리를 감춰두었다. 바깥쪽에서 보면 담장이 높았지만 담 너머 땅은 거리 지면보다 높았고 흙과 마른 나뭇잎으로 덮여 푹신했다. 일단 사다리로 담장 위에 올라간 다음 거기서 안쪽으로 뛰어내리기로 했다. 혹시라도 발목이 접질리는 사고가 날까 봐 미리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발목 강화 운동과 스트레칭을 꾸준히 했다. 진입 시간은 그믐밤으로 정했다. 열 시만 되어도 근처 음식점과 카페가 모두 문을 닫고 조명도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만 남아 일반 상점가나 주택가에 비하면 상당히 어둡고 적막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담장을 넘어가는 모습이 누구의 눈에라도 띄면 낭패가 될 테니 가장 어두운 밤을 택했다. 산 자의 몸으로 죽은 자들의 세계로 넘어가기엔 그믐 만한 시간이 없을 것이다.
   구멍은 좁고 길어야 한다. 난로 연통을 갈아 끼워야 한다고 둘러대고 철물점에서 맞춤한 길이의 양철 원통을 구했다. 꼬챙이에 가깝게 좁고 긴 모양의 호미도 구했다. 담장을 넘은 다음 작은 펜 조명에 의지해 점찍어둔 자리까지 단숨에 걸어갔다. 사실 여러 번 예행연습을 거쳐서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오늘은 배낭에 원통에 호미까지 들었으므로 괜히 넘어졌다간 요란한 소리를 내고 들킬 수 있었다.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끝까지 신중해야 한다. 찍어둔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펜 조명을 입에 물고 원통을 땅에 박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둥근 가장자리를 땅에 대고 나사를 박듯 돌려가며 흙 속에 박아넣었다. 흙은 부드러웠지만 사이사이 잔디 뿌리가 단단히 엉켜있어서 원통이 부드럽게 박히지 않았다. 무덤에 왜 잔디를 입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작고 보드라워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질긴 뿌리를 내려 흙을 지탱하고 있었다. 잔디는 예상 밖의 복병이었다. 나는 원통을 박다 말고 호미를 꺼내 그 안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흙을 파낸다기보다는 그 안에 이어진 잔디 뿌리를 끊어내는 작업에 가까웠다. 선뜩한 가을밤인데도 관자놀이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침착하자.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괜한 동요로 일을 그르치지 말자. 호미를 내려놓고 면장갑 낀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저 멀리 아파트 건설 현장의 대형 크레인이 어둠을 향해 붉은 등을 천천히 깜박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점멸의 속도에 맞춰 호흡을 가다듬었다. 괜찮다. 아직은 괜찮아.
   톳.
   대꾸하듯 지척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마른 잎 사이로 도토리 한 알이 추락했을까? 예상했던 기척이었다. 어둡고 적막한 이곳에서 저 소리를 만나더라도 절대 소스라치지 말 것. 네가 좋아하는 소리였다. 한껏 날카롭지도 마냥 둔탁하지도 않은, 다소 느긋한 추락의 소리. 이맘때면 너는 저 소리를 찾아 이곳을 거닐었다. 나뭇잎 수북한 흙길을 밟으며 소우주 같은 도토리 한 알이 땅에 닿는 순간을 찾아 귀 기울였다.
   도톳.
   이번엔 두 알인가. 나는 펜 조명을 입에 문 채 빙긋 웃었다. 자리를 잘 잡았다. 너는 이 좁고 긴 구멍 안에서도 이맘때면 좋아하는 저 소리를 실컷 들을 수 있다. 나는 호미를 다시 들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저 무덤은 왜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내 물음에 너는 어느 가엾은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자는 고작 열세 살에 왕자와 결혼했다. 왕자가 세제가 되면서 여자는 세제빈이 되었고 왕자가 왕위에 오르자 여자는 왕비가 되었다. 여자 나이 서른셋의 일이었다. 여자는 그 나라 역사상 왕비의 자리에 가장 오래 앉아 있었다지만 왕과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성격이 몹시 괴팍한 것으로 알려진 그 왕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고 다른 여자를 아껴 그 여자와의 사이에 많은 자식을 두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이 아끼는 여자가 낳은 아들을 미워해 오래도록 갈등했고, 왕에게 사랑은 받지 못했으나 왕비의 자리는 지켜야 했던 여자는 왕과 (자신이 낳지도 않은) 미움받는 왕자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결국 왕은 제 손으로 아들을 죽이고 말았고 제 아비의 죽음에 원망을 품고 자랄 운명인 어린 손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했다. 궁궐 안에 피비린내 나는 풍파가 몰아치는 와중에도 여자는 왕비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다 예순여섯 살에 세상을 떠났다.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고 내내 외롭게 했던 이 무정한 왕은 훗날 자신이 죽으면 여자의 곁에 묻으라 명했다. 왕은 여자를 보내는 길에 다음과 같은 행장을 적어 여자를 치하했다.

   왕궁 생활 43년 동안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고, 양전을 극진히 모시고, 게으른 빛이 없었으며, 숙빈 최씨(왕의 생모)의 신주를 모신 육상궁 제전에 기울였던 정성을 고맙게 여겨 기록한다.

   이기적인 새끼. 이 대목에서 너는 항상 욕설로 추임새를 넣었다. 여자의 무덤은 훗날 왕의 자리를 고려해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졌다. 왕의 무덤이 들어설 자리를 고려해 석물까지 미리 2인용으로 맞춤하게 들여놓았다. 그러니까 여자의 옆자리는 수십 년 동안 오직 왕의 죽음만을 기다렸을지도. 그러나 막상 왕이 죽자(이 왕은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뒤를 이은 손자는 왕의 유언을 뒤집고 여자의 옆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 왕을 묻으라 명한다. 왕이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라고 믿었던 곳과 실제로 묻힌 곳은 궁궐을 기준으로 수도의 서쪽 끝과 동쪽 끝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손자의 복수였을까? 현재 왕의 옆자리에는 왕비가 죽은 후 예순다섯 살 왕이 열네 살 처녀를 데려와 앉힌 두 번째 왕비가 묻혀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여자의 무덤은 여전히 옆자리가 비어 있고 여자 대신 왕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그러나 아들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또다른 여자는 같은 경내에 묻혀 있다. 두 여자는 왕이 없어서 쓸쓸했을까? 너는 두 여자의 무덤 앞을 지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때마다 딴지를 걸듯 같은 대답을 했다. 왕을 따돌리고 편안했을걸? 너는 오래도록 왕의 죽음을 기다렸을 여자의 옆자리, 그 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리곤 했다. 그럼 저 자리는 영영 비어 있게 되나? 수백 년간 내내 기다리기만 하면서? 걱정마라. 오늘 그 기다림은 끝났다. 내가 너를 이 자리에 데려다놓을 테니.

   여기가 어딘가요? 네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이다. 내 자리는 어딘가요? 너는 게게하게 풀린 눈으로 내게 물었다. 학원 원장이 마련한 신입 강사 환영식이었다. 입시 학원 수업이란 게 원래 밤늦게 끝나기 때문에 술자리도 느지막이 시작했다. 금요일이 토요일로 넘어가자 다음날 오전 수업이 있는 강사들은 눈치껏 자리를 떠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원장과 너와 나만 남아 식어 빠진 어묵탕 국물을 휘젓고 있었다. 환영식의 주인공은 너였지만 원장의 학교 선배이자 대학 강사 출신 박사, 그리고 이혼(당)한 여자라는 너의 배경을 알게 된 후로 학원 안에서 너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심지어 너를 여기에 ‘꽂아준’ 원장도 부담스러운 짐을 떠맡은 사람의 난처함을 숨기지 않았다. 네가 화장실을 찾아 비틀거리며 술집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원장이 중얼거렸다. 아씨, 저 누나는 술 때문에 그 봉변을 당하고도 여태 정신을 못 차렸네. 방금까지 누나, 원샷! 어쩌고 하며 자꾸 너에게 술을 권하던 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욕설과 구역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선생, 어디 가? 원장이 짜증스럽게 물어 나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하, 씨발년들. 뒤통수로 원장의 나직한 욕이 날아왔다.
   건물 사이 협소한 주차 공간에 들어가 담배를 두 대째 피우고 있는데 네가 왔다. 여기가 어딘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나를, 내 입에 물린 담배를, 내가 기댄 담장을, 그 앞의 건물 외벽을 차례차례 일별하다 다시 물었다. 내 자리는 어딘가요? 네 입가에 토사물의 흔적이 보였다. 그런 네가 한심해 나는 담뱃갑을 들어 보였다. 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담배 하나를 꺼내 네 입에 물려주고 불까지 붙여주었다. 너는 담배를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이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차장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치맛자락이 말려올라가며 너의 마른 허벅지가 드러났다. 너는 앉아서 나는 서서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그날 이후로 너는 학원에서 유일하게 너를 환대한 사람이 나라고 착각했는지 자꾸 나를 쫓아다녔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네가 엄마 뒤를 쫓아다니는 아이처럼 내게 의지하려 들었다. 나는 딱히 네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다소 유치한 너의 질문에 대답하고 조금 성가신 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언제부턴가는 퇴근 후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어느 날 복사실에서 마주친 원장이 드륵드륵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말했다. 고선생, 성격 참 좋아? 무슨 말이냐고 눈으로 묻자 원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희원 누나 말이야. 저 누나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빨판이야. 빨판. 한번 들러붙으면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았거든. 주엽이 형도 어쩌다 물려서 마지못해 결혼했을걸? 그래놓고 지가 먼저 사고를 치냐? 아마 윤교수 사건도 저 누나가 먼저 교수 자리 욕심내 찰싹 들러붙었을 거라는데 내 왼쪽 콧구멍을 건다. 윤교수가 얼마나 점잖은 사람인데 저런 늙다리 아줌마 꼬시려고 술을 먹이고 추행을 했겠어? 고선생도 봤지? 저 누나 술 마시는 거.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면 그다음부턴 쭉쭉이야. 빨판처럼 착 들러붙어 쭉쭉 빨아대는 거지. 고선생도 조심해. 물리기 전에. 앗, 종이 다 썼네? 고선생이 좀 채워놔. 원장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흐흐 웃으며 복사물을 챙겨나갔다. 나는 어쩐지 더러운 기분이 들어 종이를 새로 채워 넣은 카트리지를 신경질적으로 탁 밀어넣었다.

   너의 장례식장에서 오래전 너에게 물렸다는 남자와 네가 낳은 아들을 보았다. 상주 자리에 앉은 너의 어머니는 네 아이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왜 이렇게 컸어? 아휴, 왜 이렇게 몰라보게 커버렸어? 너의 어머니는 네 아이의 성장이 크나큰 잘못이라는 듯 자꾸 아이의 마른 등을 치며 울었다. 보다 못한 너의 전남편이 아이의 몸을 붙잡고 뒤로 살짝 끌어당겼다. 너의 전남편과 아이가 너의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두 번 하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의 뒤통수를, 반짝 드러난 양말 신은 발바닥을, 수굿한 척 내려앉은 등을 차례차례 노려보았다. 너를 버려놓고 이제야 당도한 사람들이었다. 너를 대신해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상주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한 나는 상조회사 직원에게 육개장 두 그릇을 받아들고 두 사람 앞으로 갔다. 너의 아이 옆에 붙어앉아 연신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던 너의 어머니가 너의 전남편에게 나를 소개했다. 희원이랑 같이 살던 선생님이야. 이 사람이 발견했어. 이 사람 아니었으면 우리 희원이 죽은 줄도 몰랐을 거야. 너의 전남편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날카로운 것에 찔린 사람처럼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내 눈빛에서 너를 대신한 적의와 너를 향한 끓는 마음을 동시에 알아볼 만큼 예민한 남자였다.
   아직 온기를 간직한 너의 뼛가루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너의 가족이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언뜻 보기에는 네 몸의 최종 결과물을 흙으로 보낼 것인가, 물로 보낼 것인가를 둘러싸고 입씨름을 벌이는 것 같았지만, 내가 보기엔 처리 절차의 성가신 정도와 비용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래도 때가 되면 찾아가 술이라도 올릴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주장에 너의 오빠가 맞섰다. 희원이는 원래 바다를 좋아했잖아, 엄마! 너와 함께 산 5년 동안 나는 네 오빠의 존재를 들은 적이 없는데 네 오빠는 너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절절하게 말했다. 해양장을 치러도 유골을 뿌린 자리를 부표로 표시해두어 원하면 배를 타고 그 자리에 찾아갈 수 있다는 네 오빠의 설득에 어머니가 넘어갔다. 내가 아는 너는 바다를 싫어했다. 일렁이는 파도가 짐승의 아가리 같아 무섭다고 했다. 가족이 아니라서 의견을 말할 수 없고 너의 마지막을 실은 배에 올라타지도 못한 나는 선착장에 남아 멀어지는 배 꽁무니를 바라보았다. 너의 뼛가루를 한 줌도 훔쳐내지 못한 내가 미워서 오래도록 허공을 노려보았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도 못 되어 너의 오빠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는 네가 남긴 물건을 찬찬히 훑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가져가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너의 물건은 대학 강사 자리에서 쫓겨났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못한 두툼한 전공 책 몇 권, 얼마나 넘겨봤는지 책배에 까맣게 손때가 묻은 낡은 국어사전 하나, 그리고 옷가지 몇 개가 전부였다. 그나마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바꾼 지 얼마 안 되는 스마트폰 정도일까? 너의 오빠는 전원이 꺼진 지 오래된 차가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어쩐지 아쉬운 얼굴로 다시 책상에 내려놓더니 슬그머니 물었다. 이 집 보증금은 얼마나 됩니까? 나는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눌러 참으며 이 집은 처음부터 나 혼자 살던 집이고 너는 도중에 들어와 생활비 조로 약간의 돈을 내며 살았다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너는 내게 얹혀살았다고, 빨판처럼 내게 철썩 들러붙어 나를 쭉쭉 빨며 살았을 뿐이라고, 당신에게 돌아갈 여동생의 유산 따위 한푼도 없으니 어떤 기대도 하지 말라고. 그렇게 들리도록 단어와 어조를 신중히 골라 말했다. 너의 오빠가 눈에 띄게 실망했다. 네 오빠는 미련이 남은 얼굴로 네 책상 위를 좀더 흘낏거리다 공책 옆에 함부로 놓인 만년필을 발견했다. 유명한 만년필 로고 위로 ‘누’라는 한 글자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너의 오빠가 각인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우리 희원이 것입니까? 우리 희원이? 이제 와서? 만년필은 너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쓸데없이 간절한 네 오빠의 눈빛에 항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년필은 나의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누’의 것이었다.
   네가 내 집에 들어온 게 5년 전이고 우리가 한 침대를 쓰기 시작한 게 4년 전이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우리는 룸메이트 사이에서 연인 사이가 되었다. 처음 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날, 너는 아슬아슬하게 들떠서는 나를 백화점에 데려갔다. 너는 웬만한 최신 스마트폰 기기보다 비싼 독일제 한정판 만년필을 척 고르더니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24개월 할부로 해주세요. 그리고 각인 여부를 묻는 직원에게 ‘누’라는 단 한 글자를 새겨달라고 했다. ‘누’가 누구냐고 묻는 내 말에 너는 백화점 식당가 초밥집에서 네 몫의 초밥이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신나게 설명했다. ‘누’는 누구의 옛말이야. 의문형 인칭대명사, 혹은 특정인이 아닌 막연한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 그러니까 누의 자리는 공백.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 너도 나도. 그런데 누는 언제부턴가 문헌에서 사라지고 누구만 남았어. 누의 흔적을 찾는 게 내 박사 논문 주제였지. 너는 여기서 잠시 목이 멘 듯 식어버린 말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한동안 누라는 단어에 집착했어. 누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는 것과 들어올 수 없는 것에 골몰했어. 지도교수는 국문학과가 아니라 철학과에 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지. 전남편도 마찬가지였어. 그는 내가 누의 자리처럼 쓸데없는 개념에 집착하는 사이 네 살이 넘었는데 아직 배변 훈련이 안 된 아이의 엄마 자리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난했어. 그래 놓고 자기는 주말마다 아이를 내게 맡겨두고 학교 연구실에 가 종일 논문을 쓰고 왔지. 나는 유아용 변기에 아이를 앉혀두고 그 앞에 앉아 혀 짧은 소리로 노래했어. 여기가 우리 현이 응가 자리. 여기가 우리 현이 쉬 자리. 기저귀는 아니 아니야. 침대 위도 아니 아니야. 아이가 내 재롱에 까르르 웃었고 나는 그 순간에도 오직 논문 생각에 조급해지는 내가 서러워 아이 몰래 눈물을 훔쳤어. 너는 결국 전남편보다 3년이나 늦게 학위를 받았고 그 사람과 달리 영영 교수 자리에 임용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누’를 고쳐 생각해. 어차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개념이라면 내 맘대로 지어내도 되잖아? 내게 ‘누’는 ‘누구’가 아니야. ‘누’는 ‘너와 나’야. 너와 나라면 우리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고 내가 물었고 너는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용량이 큰 말이야. 우리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너무 많기도 하고 하나도 없을 때도 있어. 나는 우리 속에 들어간 적이 별로 없어. 누구도 나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환대해주지 않았어. 네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넌 달라. 넌 나를 우리라고 불러주었어. 그런 너를 흔한 말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아. 바흐친이 그랬어. 각 단어는 서로 다른 방향의 사회적 힘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하나의 작은 무대라고. 누라는 무대에 오직 너와 나, 단 두 사람만 올리고 싶어. 이제 누는 너와 나만을 위한 단어야. 내가 그렇게 언명했어.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출 거야. 그때 너의 눈빛은 얼마나 번들거렸던가. 나는 너의 열렬함이 부담스러워 팔에 솟은 소름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너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닌 ‘누’의 것이 된 만년필은 네가 아끼는 공책 옆에 놓였다. 여기에 누의 이야기를 기록하자. 네가 원하는 것은 학창 시절 유행했던 교환일기 같기도 했고 동아리 방에 굴러다니던 날적이 같기도 했다. 우리는 한동안 공동 일기에 몰두했다. 나는 지난밤 네 발이 내 종아리에 차갑게 닿아 소스라쳤던 일을 기록하고 그 옆에 ‘한의원에 가서 보약 한 채 지어먹자, 수족 냉증 할머니야’라고 메모를 달았다. 너는 나의 귀가를 기다리며 읽었다는 오래전에 자살한 어느 여자 시인의 시 한 편을 필사하기도 했다.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넣고 카트리지를 세척하고 관리하는 일은 네 몫이었다. 공책을 채우는 너의 문장은 갈수록 뜨거워졌고 나의 문장은 조롱 혹은 냉소에 가까워졌다. 우리의 공동 일기장은 서서히 너만의 기록장이 되었고 그나마도 1년 전부터 기록이 뜸해졌다. ‘누’의 만년필은 책상 위에 방치되었다.
   이 만년필,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우리 희원이 유품으로요. 너의 오빠가 말했다. 카트리지 안에 잉크가 남았다면 지금쯤 바짝 말라 고체가 되었을 것이다. 나날이 건조해졌던 누의 사랑처럼. 점점 고갈되어갔던 누의 언어처럼. 만년필은 영영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네 오빠는 저 만년필을 중고 거래 시장에 내놓을까? 저 각인은 어떻게 처리하려는 걸까? 나는 너의 서랍을 뒤져 만년필을 샀을 때 받은 케이스와 품질보증서를 찾아 네 오빠에게 건넸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서 누의 만년필을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가끔 너를 떠올리며 손에 쥐어보기를, 백지에 네 이름을 한 번이라도 끄적이길 기대하면서.

   제비 뜨개방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안쪽, 길모퉁이에 있었다. 뜨개방 주인은 네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지만(이런 가게에 손님들이 자기 이름 까고 다니지는 않잖아요?) 내가 보여준 핸드폰 속 네 사진을 보자마자 내 신분을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네가 완성해두었다는 옷을 건네주었다. 바로 입을 수 있게 실오라기도 싹 정리해두고 스팀다리미로 한 번 다려두기까지 했다고 했다. 주인은 왜 이제야 옷을 찾으러 왔는지, 혹은 왜 네가 직접 오지 않았는지 묻지 않았다. 내가 비용을 묻자 주인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우린 실만 팔아. 손님들이야 여기 모여서 각자 뜨고 싶은 걸 뜨는 거지. 초보면 내가 가르쳐주고 또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너는 이 옷을 뜨는데 필요한 흰색 면사를 그때그때 구입했다고 했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주인이 날씨를 묻듯 심상하게 물었다. 잘 보냈어요?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주어도 목적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신묘한 주인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제비 뜨개방을 나왔다. 네가 네 손으로 뜬 너의 수의는 불이 붙자 한줌의 재로 변했다. 종이를 태웠을 때 나오는 가벼운 재가 아니라 너의 성격처럼 질척거리는 재였다. 나는 양철통 안에서 까맣게 변해가는 너의 수의를 바라보며 너의 식은 몸을 발견한 뒤 처음으로 따뜻한 너를 만지고 싶어 울었다.

   구멍은 좁고 길어야 한다. 제법 깊이 박힌 원통 속 흙을 모두 파내고 거기에 질척거리는 너의 재를 부었다. 이제 파낸 흙을 다시 채우고 흔적을 지울 차례다. 수백 년 동안 왕을 기다렸던 빈자리 한 귀퉁이가 이제 너의 자리가 될 것이다. 너는 이곳에서 왕을 따돌리고 느긋해진 한 여자와 나란히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휴식할 것이다.
   거기 누구요?
   난데없는 큰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진다. 저 멀리 큼직한 손전등 불빛이 광선 검처럼 이쪽을 향해 흔들린다.
   누구야?
   남자의 조명이 그믐의 어둠을 베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빛에 쫓겨 왕비의 무덤 뒤쪽으로 몸을 숨긴다. 남자의 발소리가 적막했던 공간을 쿵쿵 울린다. 호랑이가 소를 쫓아 달려온다.
   거기 누구냐니까!
   누구 아니라 누. 나는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고 와들와들 떨며 중얼거린다. 누구 아니라 누라고. 우리는 누야. 여긴 누의 자리. 그러나 누의 자리는 너무 좁고 길어 너와 내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가 없다. 탓. 도토리가 남자의 외침보다 더 큰 소리로 떨어진다. 저 작은 것이 먼저 굴러가 무사히 누의 자리에 당도했으면. 나는 왕비 뒤에 몸을 숨기고 조금 더 몸을 움츠려본다.

이주혜

나의 자리, 당신의 자리, 우리의 자리를 찾아 지도를 더듬으며 갑니다. 지도는 종이 위에, 당신의 등 위에, 저 멀리 철새들만의 창공에 있을 겁니다. 완성된 지도를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걷고 있으니까요.

2022/10/25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