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처음 만난 건, 나흘째 쉬지 않고 폭설이 내리던 밤이었다.
   종종 챙겨주던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가 추울까 봐 스티로폼 박스와 핫팩을 챙겨서 아이들이 지내던 컨테이너 쪽으로 갔다. 보통은 아이들의 이름을 몇 번 불러놓고 챙겨 온 사료와 물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으면 어디에 있다 왔는지 어느새 컨테이너 모서리에 엄마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두 발을 예쁘고 모으고 시선은 떼지 않은 채. 하지만 그날은 이름을 몇번 더 부르고 좀더 기다려도 아이들이 나타나 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챙겨주기 시작한 건 봄부터였다. 집에서 차로 십 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 근처에 자주 보이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누군가 챙겨주고 있는 듯 밥자리도 보였다. 플라스틱 사료통과 물그릇은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구멍을 뚫고 노끈을 묶어 펜스에 고정해두고, 비가 와도 사료가 젖지 않도록 스티로폼 박스 뚜껑으로 지붕을 만들어 역시 노끈으로 고정해둔 자리였다. 매일 챙겨주는 고마운 분이 있구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가끔 빈 사료통과 물그릇 주변에 모여 있는 고양이들을 보게 될 때가 있었다. 매일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도 어떤 날은 운이 나빠서, 혹은 힘이 약해서 한 끼도 먹지 못하거나 물 한 모금 먹기 힘든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사료통과 물그릇이 비어 있을 때만 채워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너무 예쁜, 아직 너무 어린, 그런데 배가 바닥까지 쳐진, 임신한 엄마 고양이를 보게 됐다. 한동안 안 보인다 싶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는 아기 고양이 무려 다섯 명과 함께였다.
   한여름이었다. 아이들은 건강했고 아이답게 발랄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눈에 띄게 마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전에 없던 폭우가 일주일 가깝게 이어졌고 그 후로는 다섯 중 단 한 아이도 다시 볼 수 없었다.
   두어 달이나 지났을까. 어린 고양이는 다시 임신한 채 나타났다. 이번에는 추울 때 낳게 될 텐데. 걱정됐지만 만날 때마다 좀더 영양가 있는 밥을 챙겨주는 것 말고는 딱히 뭘 더 해줄 수 있을지 몰랐다. 임신 전에는 헬스장 갈 때마다 매번 만나지는 못했는데 한창 배가 불러올 때는 습식 캔 뚜껑을 따고 있으면 반드시 나타났다. 내 차를 알아봤고,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난 출산 때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기 시작할 때는 아이를 낳으러 갔구나 싶으면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임신이 아니었는데 내가 착각한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얼마쯤 지나서 엄마 고양이는 혼자서 뛰어다닐 정도로만 자란 아기 고양이와 함께 나타났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밥자리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컨테이너 주변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처음부터 하나만 낳은 건지, 하나만 살아남은 건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이번엔 제발 무사히 살아남아주기를 바랐는데, 한동안 겨울치고는 포근한 날씨가 이어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나흘 씩이나 쉬지 않고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 자주 만나던 다른 고양이 중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날은 겨울 집과 핫팩을 준비해 가기도 했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핸드폰 플래시를 켠 채 주변을 살피며 고양이들이 듣기를,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불렀다.
   그때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펜스 바깥쪽에 정차한 오토바이에서 누군가 내리더니 민트색 배달 캐리어를 열었다. 주변 가게 대부분 문을 닫은 늦은 시간이었다. 지금 여기서 누군가 배달시켰을 것 같지는 않은데. 헬멧부터 점퍼, 바지, 신발까지 모두 검은색이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두꺼운 패딩 점퍼에 패딩 바지 때문인지 덩치가 커 보였다. 순간 긴장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무서워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건, 항상 겉모습만 보고 무서워한 다음이다. 괜히 혼자서 무섭다고 느껴버린 다음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매번 다짐해봐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은 이미 그래 버린 다음에 온다.
   단단히 무장하고 밥자리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온 그 사람은 봄부터 겨울이 되도록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던 바로 그 캣맘인 것 같았다. 아이들의 그릇을 닦고 사료를 담고 얼어버린 물을 깬 후 물그릇을 헹궈서 따뜻한 새 물을 담아주는 모습에 망설임이나 거침이 없는 걸 보고 확신했다. 그는 일을 마친 후, 나름대로 몸을 숨겼다고 생각했던 내 쪽을 보고 물었다.
   “저기요, 그거 뭐죠?”
   당황해서 “네?” 하고 반사적으로 되물었지만 내가 가져온 스티로폼 상자에 대한 질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거 혹시 애들 겨울 집이라고 가져온 거면 도로 갖고 가서 버리세요. 그 집에서 애들 다 죽어있는 꼴 보고 싶은 거 아니면.”
   따뜻한 안식처가 됐으면 해서 준비한 스티로폼 박스가 어째서 아이들을 죽인다는 건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둘째치고, 궁금해서 이유라도 묻고 싶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휭하니 가버렸다. 그것이 엄마와의 첫 만남이었다. 2년 전의 일이다.

   이번 겨울은 유독 눈이 잦았다. 역시 눈이 내리는 중이었고, 글쓰기 수업이 열리는 작은 공방은 오르막길에 있는 건물 2층이라 창밖이 잘 보였다.
   “이번 겨울은 유독 눈이 자주 오네요.”
   공방에 들어온 강사가 목도리를 세 바퀴째 풀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유독 눈이 자주 오네요’라는 말, 진짜 많이 들어본 거 같지 않아요? 실제로 문학 작품들에도 자주 나오고…… 지난겨울에도 똑같은 말 했었다는 걸 봄, 여름, 가을 동안 다들 까먹나 봐요. 약간 ‘문학의 위기’랑 비슷한 느낌?”
    사람들은 웃고. 눈을 이야기했다. 눈이 왜 좋은지, 왜 싫은지 이야기하다 보니 사실 그건 눈의 어떤 모습이 좋고 싫은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경기도의 한 도시, 그중에서도 작은 공방에서 열리는 소규모 글쓰기 수업에 모인 사람들이라 이미 어느 정도는 취향의 공동체인 건가. 조금씩 표현은 달랐지만 적어도 눈이 내리고 있는 모습만큼은, 소복이 내려 쌓여있는 모습을 볼 때만큼은, 싫다는 사람이 없었다.
   창밖에 퍼붓는 눈을 보며 너무 예쁘다, 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눈이 너무 싫다고, 눈도 싫고 비도 싫고 뭐든 영영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눈을 싫어하는 이유를 말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그 관심에 기대 이야기를 시작하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일부러라도 말해볼까 잠시 생각했다. 한 동물권 운동가가 어느 강연에서 이제는 혼자서 조용히 실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설득해나가려고 해야 한다고 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두자. 나는 거기까지인 사람이었다. 얕은 물에만 발을 담그고 사람들의 시선이 내 발을 향하지 못하도록 존재감을 최소화하는 사람. 나보다 더 약한 존재를 지켜주고 싶어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스스로를 지키는 데 가장 주력하는 사람. 얕고, 비겁한 사람.
   “오늘은 마침내! 쓰고 싶은 것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글쓰기 수업은 주 2회,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지만 10시에 끝난 적은 없다. 총 12주, 무려 3개월짜리 수업이었다. 처음 4주는 강사가 정해준 책을 읽고, 읽은 것에 대해 간단히 쓰고, 읽은 것과 쓴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러다 쓰지 않고 읽지 않은 것에 관해서까지도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다 돼서 헤어지곤 했다. 강사가 ‘마침내’라고 한 것은 드디어 읽은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쓰고 싶은 것을 써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공방 대표가 제 고등학교 동창이잖아요, 이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목공예는 나무를 깎아서 그 속에 숨어 있던 모양을 꺼내는 거라고. 없던 모양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너무 어려운데 이 안에 이미 어떤 모양이 있고, 그걸 가리고 있는 나무들을 조금씩 깎아내서 속에 든 걸 꺼내준다는 마음으로 하면 훨씬 쉽다고.”
   강사는 글쓰기도 비슷하다고 했다.
   “자, 누구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이걸 말해도 될까.
   글쓰기 수업을 신청할 무렵 어떤 사람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인지 노르웨이인지 하여간 북유럽 드라마에서 스치듯 들었던 민들레 안에 갇힌 남자에 대한 이야기. 한 등장인물이 또다른 등장인물에게 해준 이야기라는 건 기억나지만 어떤 상황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 그 남자는 어떻게 민들레 안에 갇히게 됐는지 또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저 “한 남자가 민들레 안에 갇혀 있었대.”라는 대사만 기억에 남아 있는. 그 후로 민들레 안에 갇힌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종종 생각했지만 빈약한 내 상상력은 그 남자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주 가끔만 떠올렸다. 맞다, 민들레에 갇힌 남자가 있었지. 그러다 점점 그 남자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는 결국 민들레에서 빠져나왔을까. 자꾸 생각하다보니, 내가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하면 그 남자는 영원히 그 안에 갇혀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그 남자가 아직도 민들레에 갇혀 있다면 그건 왠지 내 탓일 것만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 남자를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그걸 써보고 싶다고 말해도 괜찮을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엄마를 만난 후부터는 어쩐지 모든 게 더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날마다 한결같이 밥자리를 돌며 밥과 물을 챙겨주는 사람들에 비하면 볼 일이 있을 때만, 밥그릇이나 물그릇이 비어 있을 때만, 겨우 조금 챙긴답시고 내가 하는 일들이 부끄러웠다. 인스타그램에는 이유도 대가도 없이 아프거나 약한 동네 고양이들을 구조해 돌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몸이 아파도 매일 아침저녁 규칙적으로 밥과 물을 새로 채워주는 사람도 있었고, 적게는 열에서 많게는 스무 명 가까운 고양이들을 먹일 무거운 사료와 물을 이고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정기적으로 챙겨주지 못할 거라면 아이들의 생존 능력만 약하게 만드는 거니 아예 챙기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었고, 일회성 동정심으로 약한 아이들을 살려봐야 결국 더 극심한 생존 경쟁으로 내몰아 더 큰 고통을 받게 할 뿐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번은 스티로폼 겨울 집 안에 핫팩을 넣어주고 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핫팩을 갈아주러 갔다가 사람 소리에 놀란 아기 고양이가 뛰쳐나오는 걸 봤다. 갈아주려고 꺼낸 핫팩 하나는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따뜻했다. 핫팩 하나만한 조그만 몸이 종일 핫팩과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따뜻한 핫팩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친한 친구들이 있는 채팅방에 썼는데 친구들은 내가 너무 착하고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며칠 후 인스타그램에서 핫팩에 화상 입은 고양이 사진을 보게 됐다. 칼바람이 무서워서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몇 시간이고 핫팩 위에 앉아 있다가 화상을 입은 거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끼라도 배부르게 먹기를, 하루라도 따뜻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길에 사는 고양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그저 나 하나 마음 편하자는 것일지도 몰라. ‘~일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은 이미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러나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을 본능적으로 만들려고 할 때나 쓰는 표현이었다. 꾸준한 마음이 아닌 일회성 마음은 고양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내 마음 편하기 위한 거라고 봐야겠지. 이봐, 또 그냥 인정을 못 하고 ‘~거라고 봐야겠지’라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네.
   그러면서도 헬스장 갈 때 비정기적으로 고양이들 밥이며 물 챙기는 걸 멈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매일 가지도 못했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멈추지도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한데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다양한 경고는 무시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해도 되는 이유만 찾았다. 매일 챙겨주는 분이 계시니까 내가 가끔 주는 영양제나 다른 종류의 밥, 가끔 비어 있거나 얼어 있는 물그릇에 채워주는 새 물이 어쨌거나 보탬이 될 거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것도 그리 길게 가진 못했다. 엄마가 스티로폼 박스를 갖다버리라고 차갑게 말했던 이유를, 엄마에게 직접 묻지 못했던 그 이유를 결국 알아버렸기 때문에.

   글쓰기 수업의 숙제 제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한 남자가 민들레 안에 갇혀 있었대’라는 문장에 갇혀 있었다. 내가 문장에 갇힌 것처럼 그 남자도 결국은 비유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사람이 실제로 민들레 안에 갇힐 리 없잖아, 비유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실제로 민들레 안에 갇혀 있는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민들레는 작다, 작은 민들레에 갇힐 만큼 남자도 작겠지만 그래도 그곳은 매우 좁을 것이다.
    옷을 챙겨입고 예전에 다녔던 헬스장 건물로 갔다. 생각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여보세요. 글쓰기 강사가 해준 거의 유일하게 기억할 만한 조언이었다.
   “엄마!”
   여느 때와 같이 검은색으로 단단히 무장한 엄마가 오토바이 뒤쪽 박스에서 사료며 간식, 물을 꺼내고 있었다.
   “왔어?”
   “네, 글쓰기 숙제해야 하는데 도무지 글이 안 써져서 나왔어요.”
   “뭐 쓸지는 정했고?”
   “정하긴 했는데…… 잘 안 써져요…… 있잖아요,”
   손이 바쁜 엄마 옆에서 나는 종알대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가 있는데요, 그 남자가 민들레 안에 갇혔대요. 그 남자는 어쩌다 민들레 같은 데 갇힌 걸까요. 그 남자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아직도 갇혀 있을까요.”
   “음…… 그 남자가 어쩌다 갇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길에 사는 고양이들 다 민들레 안에 가둬버리고 싶네. 눈, 비 오고 춥고 덥고 그럴 때 민들레 안에 넣어서 숨겨놨다가 날 좋으면 꺼내주고 필요하면 또 가두고……”
   엄마는 늘 그렇게 고양이 걱정이었다.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이상하고 잔혹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평범하고 매정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날은 고양이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가 또 금세 고양이를 모르던 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날 때마다 인사처럼 꼭 한 번씩은 하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또 그 소리냐고 하면서도 엄마의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는 내 탓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엄마를 처음 만났던 그날, 스티로폼 겨울 집을 거기 놓지 않고 집으로 도로 가져가긴 했었다. 잘은 몰라도 이대로는 부족한가보다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아이 다섯을 잃은 경험 때문인지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는 유독 더 붙어다녔기에 한 집에 꼭 붙어서 서로 체온을 나누기를 바라며 조금 큰 스티로폼 박스를 구해서 뽁뽁이도 몇 겹이나 감고 입구에 비닐 커튼도 달아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놓아줬다.
   매일은 아니어도 운동하러 가는 날이면 꼭 들러서 확인했다. 고양이들이 겨울 집에 있는 걸 보면 왠지 뿌듯했고 다른 곳에 있으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핫팩은 미리 데워놨다가 화상 입지 않도록 두꺼운 담요 밑에 잘 넣어줬다. 엄마가 매일 주는 사료보다 좀더 특별하고 맛있어 보이는 영양식도 챙겨줬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대로 구충제도 구해서 먹였다. 아기 고양이에게는 여름 폭우보다 겨울 폭설이 더 위험할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됐는데 생각보다 잘 지내줘서 안심됐다.
   가혹한 겨울도 그렇게 조금씩 물러나는 것 같았다.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가 잘 지내는 걸 보면서 어쩐지 조금은 내 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사이 봄에 끊었던 헬스 연간 회원권 만료일이 다가왔다. 운동은 드문드문 나갔지만 기온이 조금씩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추위에 아이들이 잘못될까 전처럼 걱정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매일이 기로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챙겨주다 잠깐 방심하면 그게 더 위험하다는걸. 어설프고 게으른 마음은 길 위의 위태로운 생명들에게는 독이라는 걸 그때는 까맣게 몰랐다. 2월 말, 여느 해처럼 사람들이 ‘봄비’라고 부르는 겨울비가 내렸다. 비 다음엔 어김없이 꽃샘추위. 한동안 운동을 못 나가다가 아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살피러 갔다.
   겨울 집 앞에 엄마 고양이가 앉아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는데 평소와 달리 도망가지 않고 계속 거기에 앉아 뭐라고 말을 했다. 동물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말을 할 때 무조건 ‘운다’고 표현하는 건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는 글을 본 후로, 나는 웬만하면 ‘고양이가 운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겨울 집 앞까지 가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안을 들여다본 순간, 엄마 고양이가 정말로 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겨울 집 안에 아기 고양이가, 가만히, 꼼짝도 하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손이 벌벌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로드킬 사고 현장을 지나친 적은 있지만 숨을 쉬지 않고 누워 있는 고양이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정말로 숨을 쉬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는데 도저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동네 고양이들은 손을 태우면 위험하다는 말을 들어서 그때까진 살아 있는 고양이도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해야 해. 확인해야 해. 아직 살아 있다면 얼른 안고 병원에 데려가야 해.
   그런 마음으로 겨울 집 가까이 손을 가져가면 엄마 고양이가 뒤에서 으르렁댔다. 으르렁대는 엄마 고양이가 무섭다기보다는 마주하고 있는 그 장면이, 곧 알게 될 사실이 무서웠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나는 딱 한 번 만난 엄마의 오토바이 소리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오토바이에서 채 내리기도 전에 달려가서 저기요, 하고 엄마의 팔을 붙잡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저기요, 다음에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나쁜 일이 있다는걸 알았던 것 같다.
   엄마는 겨울 집에서 조심스럽게 아기 고양이를 꺼냈다. 추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작게 뚫어뒀던 입구는 아이들이 드나들면서 어느새 넓어져 있었다. 엄마는 두 손에 채 다 차지도 않는 작은 아기 고양이의 배에 얼굴을 대고 숨소리를 기다렸다. 기다렸지만. 엄마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숨을 내쉬고 아기 고양이를 품에 꼭 안았다.
   엄마와는 그렇게 알게 됐다. 어설프게 만들어서 오래 방치한 겨울 집을 믿고 그곳에서 버티다 차갑게 식어버린, 너무 작고 너무 예쁜 아기 고양이를 영원히 잃은 후에.

   나는 스스로를 원망하는 대신 알고 있는 모든 신을 원망했다. 아직 어린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가 함께 나는 첫 겨울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챙겨줬을 뿐인데, 이런 건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해코지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째서 좋은 마음으로 고양이들을 챙겨준 내게 이렇게까지 가혹한 일을 겪게 하는 건지, 너무너무 원망스러웠다. 이 원망이 스스로를 향한 혐오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더는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믿어본 적도 없는 신들을 향한 원망과 분노를 내 안에 꼿꼿이 세운 채 그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곳에서 도와준 사람이 엄마였다. 엄마를 아는 사람들이 고양이 엄마, 고양이 엄마, 부르다가 귀찮다고 그냥 엄마라고 불러버린. 그렇게 길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고양이의 엄마가 되고 그걸 지켜보고 응원하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엄마라고 불리게 돼버린.
   친한 친구는 진짜 엄마를 두고 생판 모르는 남을 엄마라고 부르는 게 되더냐고, 자기는 시어머니한테도 ‘엄마’ 소리는 안 나온다고 했지만, 엄마를 만나면 알게 된다. 이름은 사람들이 지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거라서 누구든 언제든 그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다는걸. 나는 그걸 엄마를 만나서 알게 됐다. 이름은 짓는 게 아니라 꺼내는 거라는걸.
   아기 고양이의 장례를 치른 후 엄마가 전화번호를 물어왔다. 며칠 뒤에는 전화해서 밥자리로 잠깐 나와보라고 하더니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줬다. 밥은 어떻게 줘야 하고, 물은 어떻게 주면 좋은지, 또 겨울 집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군가를 잘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은 나는 죄송하지만 자신이 없다고, 또다시 어설프고 게으른 마음으로 비극을 만들까 봐 무섭다고, 그래서 이제는 오롯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은 아예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책임지라는 거 아니라고 했다. 가끔 엄마에게 일이 생겨서 올 수 없을 때 부탁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마저 사정이 있을 때 그럴 때만 가끔 부탁하려고 알려주는 거라고 했다.
    보려고 애쓰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지 않으려고 하면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엄마에게 제대로 배우고 나니 이상하게 자꾸자꾸 보였다. 재빠르게 모습을 감추는 크고 작고 노랗고 까맣고 알록달록한 고양이들, 사람이 주는 음식은 받아먹지만 절대 손길은 허락하지 않는 야무진 고양이들, 사람을 좋아해 다리에 머리를 비비고 눈만 마주쳐도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이는 살가운 고양이들, 고양이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떠도는 약한 고양이들, 입에서 침을 흘리고 상처 난 몸에서 피를 흘리는 아픈 고양이들. 누군가 그들을 위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마련해준 밥자리와 쉴 자리도, 이물 섞인 밥그릇과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붙여놓은 경고문 같은 것들도 모두 너무 잘 보였다.
   그것이 십 년 가까이 캣맘 생활을 해온 엄마가 고양이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고양이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이유였다.

   글쓰기 수업 숙제를 제출하는 날 나는 아무것도 내지 못했다.
   “죄송해요,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는데……”
   강사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마감을 지키지 못한 내게 더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였다.
   “일주일만 시간을 더 주시면, 다음주까지 완성해서 가져와도 괜찮을까요.”
   꼭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제가 써야 할 얘기가 아니었나 봐요. 그런데 이제 정말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요. 제 손으로 제가 써야 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던 거 같아요.
   마감을 미뤄달라는 말에 강사는 또 쉽게 그러세요, 했기 때문에 실제로 뒷말을 덧붙이진 못했지만.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나는 내가 아닌 척하려고 했다. 생각이 전혀 뻗어가지 않는 이야기를 붙잡고 뭔가 그럴듯한 걸 쓰겠다는 쓸데없는 욕심만 부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사실은 정말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이야기, 그건 따로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식탁에 앉으면 소리 없이 슬며시 다가와 네 다리를 곱게 모으고 꼬리로 우아하게 발을 감싼 채 나를 올려다보는 그 분, 원망하는 듯 2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은 허락하지 않지만 눈을 맞춰주고 눈 키스를 해주는 그분, 실제로 여섯, 혹은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는 아이의 엄마였으나 가혹한 길에 모두 빼앗겨버렸고 이제 더는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게 된 그분.
   이제는 그분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보다 몇 배나 빠른 시간을 살고 있어서 나보다 더 빠르게 나이를 먹는 그분과의 날들에 대해. 자다가 깼을 때, 일하다가 뒤돌아봤을 때,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늘 거기 있어주는 나의 식구.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웃게 되는 내 가족.
   그분의 이름은, 내가 빼앗아버린 아이 몫까지 실컷 불러주려고 내가 꺼내줬다.
   “엄마! 귀여운 엄마! 이리 와, 밥 먹자.”

은미향

독립문예지 ≪영향력≫을 완간한 후,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습니다.
제 손가락 끝에서 걸어나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준 존재들에게 고맙습니다.

2023/01/31
62호